제30차 창작콘테스트 단편소설부문 - 프리즘

by 한시반 posted Jul 27,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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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


 이상한 꿈을 꾼 아침에 눈을 뜨이게 하는 건 블라인드의 어긋난 틈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이었다. 따로 알람을 쓸 필요가 없이 아침이면 햇빛이 방에 들이쳤으므로 잠에서 깨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빠져나오고 싶지 않은 단잠이든 어서 빠져나와야 하는 악몽이든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일이 요즘은 흔해졌다. 건물 사이에 끼어있는 내 방이건만 왜 동쪽은 애매하게 쓸데없이 그 틈에 걸쳐있어 아침마다 해를 마주보는 건지. 차라리 여러 겹 장막에 둘러싸여 아침을 부시는 그것들이 없었으면 좋으련만, 현실은 아무리 맞춰도 조금씩은 어긋나는 블라인드뿐이었다. 햇살의 선과 그 선위를 구르는 먼지들을 바라본다. 먼지들은 어쩔 수 없이 떨어져 방바닥으로, 내 몸 위로 내려앉겠지. 내가 얼마나 이대로 있으면 먼지들에 파묻힐 수 있을까. 그 먼지들의 움직임과 무의지를 바라보다 어쩔 수 없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다. 저것들도 흙에 떨어진다면 한 줌에 같이 섞여 생산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텐데 어쩔 수 없이 내 방에 떨어져 의미를 찾지 못하는구나. 그 나름대로 재수가 없는 부유물들의 불시착을 바라보며 몸을 일으켰고 드디어 잠에서 깼다.

 조건반사가 되어 일어나자마자 확인하는 전화의 액정, 노트북 화면은 그 햇살의 연장선 같은 것이었다. 항상 그렇듯 휴대폰은 조용하고, 메일함은 온갖 스팸메일들의 향연이었다. 매일 찾아오는 읽히지 않는 광고들과 쌓이다 못해 버려지는 과정의 싸움은 하나의 루틴이었다. 그 중 대부분은 새로 나온 청소기나 건강보조식품, 연극을 보러오라는 내용이었다. 나에겐 해당되지 않는 7만원 이상 일시불 결제를 할 수 있는 건강한 지갑의 소유자를 위한 이벤트도 있었다. 이것들이 어디서 오든 무엇이든 휴지통에는 같은 손을 잡고 갔다. 물론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를 따뜻한 하루를 위한 오늘의 한마디 이런 것들도.

 휴지통으로 가는 것들이니 휴지라고 하겠다. 내가 휴지들을 매일 일일이 휴지통으로 보내는 작업을 하는 이유는 그 사이의 휴지가 아닌 것을 찾기 위해서이다. 물론 오늘 아침도 없다. 물론이라는 단어를 부정의 의미에 더해 쓴다는 것은 어느 순간부터 기대를 무뎌지게 하는 것이었다. 서류면접을 통과했다는 메일은 보이지 않는다. 몇몇 휴지들 사이로 길게 늘여 써진 물론 당신은 우리 회사의 면접에 떨어졌어요.’의 의미는 오늘도 바늘구멍의 간격을 좁히는 것이었다. 너무 넓어버린 메일제목 칸은 클릭을 통한 내용에 다다르게 하지 않았다. 고대하며 산 중고장터의 택배 상자의 겉면에 대놓고 이건 사실 벽돌이에요.’ 라고 써져 있는 기분이랄까.

 좋지 않은 대학을 나와, 마이너한 학과에, 멀쩡한 곳이 별로 없이 찌그러져 버린 성적의 삼연타는 불가항력이 되어 매일 아침 모니터에 정직한 결과물로 나타난다. 그리고 결과물의 예외 없음이라는 것은 어떤 수학공식에 미지수에 항상 같은 수를 넣고 다른 답이 도출되기를 바라는 기분이다. 어쩌면 오래전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받아온 성적표의 숫자들은 인생은 실전이야. 그리고 이미 시작됐지.’ 라는 말을 해왔던 것일지도 몰랐다. 며칠 뒤엔 어제 넣었던 네 곳의 이력서의 결과가 다시 나타나겠지. 아침을, 나아가서 하루를 썩히는 역한 햇살처럼 꾸준히 반복되는 것들이었다. 휴지들을 모아서 휴지통으로 보냈다. 이번에 썼던 이력서도 그들의 손을 잡고 말았다.

 

 2리터 페트병엔 물이 한 모금 남았다. 텁텁한 입에 털어 넣자 물이 금세 바닥났다. 휴지를 버리고 난 후엔 항상 물을 마셨다. 어떤 부분의 결핍인지 그 양이 꽤 많았는데 반 모금 같은 한 모금으로는 속이 축축해지는 기분이 아니었다. 싱크대 아래를 열어봤지만 빈 비닐만 찢겨 있을 뿐이었다.

- 물이 없네

 개운하지 않은 감각을 가지고 다시 누웠다. 사실 이 다음부터가 문제다. 백전백패의 싸움 뒤에 한 가닥 남아있는 생산성의 회로가 뭘 해야 할지를 모르는 탓이다. 최소한의 삶을 위한 아르바이트는 오후 7시부터 새벽 4시까지였다. 술을 나르고 음식을 갖다 주는 일이었음에도 메뉴를 아직도 숙지하지 못해 적잖이 당황하는 모습과 그에 따라 돌아오는 많은 하대와 무례는 시작할 때의 자신감을 사그라들게 했다. 나에게 날아오는 화살에 대해 내가 아르바이트생이 아니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은 이게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간극인가하는 생각으로 이어져 취직에 대한 열망을 더 강하게 했다. 그렇게 항상 준비한 사직이라는 이름의 리볼버에는 양복 입은 첫 출근의 총알이 좀체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그 덕에 아침이라는 것은 백수라는 커다란 궤도 안의 오후 7시를 향해 달려가는 작은 트랙이 겹쳐진 스프린트의 총성이었다. 주자의 명찰이 달라붙은 나를 잡아 끌고 가는 건 시곗바늘이다. 이들은 단 한번을 지치지 않았다.

 이 건조하고도 무감한 경주의 반복엔 처음엔 유튜브나 웹서핑을 하는 걸로 하루를 다 보냈다. 문제는 그것들을 처음에 적당히 질려서 관두지 못하고 지금도 어느 부분을 차지하고 하루를 붙잡는 것이다. 뭐든지 적당히 하는 게 좋다고 하지만 돈 대신 비생산적인 시간의 어마어마한 부자가 되어버린 나에겐 적당히의 기준점마저 소실된 것 같았다. 휴대폰의 작은 액정에는 걸그룹, 게임, 영화정보, 세계의 미스터리 같은 것들이 그럴듯한 썸네일과 함께 나열되어 있다. 게임채널에서는 새로 나온 전략전술, 얼마 전 컴백한 대형 걸그룹의 채널에서는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촬영한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하이라이트가 가득했다. 아이러니 했던 것은 그들이 그저 숨을 쉬고 걸어 다니는 것만으로도 돈을 생산해낸다는 사실이었다. 휴일을 맞아 쇼핑하러 간다는 내용의 동영상에서 그녀들은 오직 얼굴만을 카메라로 찍히고 있을 뿐인데.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자기에게 몰리는 것을 즐기는 삶이란 등 뒤로 땀이 나거나, 눈동자가 길을 잃는 일 따윈 일어나지 않겠지.

 한 뼘 크기의 직사각형 안에서 보이는 그녀들의 소비는 6평 원룸의 나의 삶과 많이 달랐다. 하늘거리는 원피스를 실바람에 날리며 또각또각 걸어가는 그녀들은 아름다웠다. 빛이 투과되는 수족관의 열대어 같다고 할까. 그녀들이 가진 색깔들이 햇살에 묻어 곳곳에 스미는 것 같았다. 그 햇빛은 색색의 셀로판지를 투과한 것이었고 나의 것과는 참 달랐다. 나는 영상을 보면서 그녀가 이쁘다며 무심코 집어든 모자의 가치를 내 끼니와 대조해볼 뿐이었다.

 비교의 저울질이 한쪽으로 꽤 기울었음에 생각을 멈췄을 때 영상은 어느새 다음 것으로 넘어가 있었다. 일산에서 근무하는 어떤 판사의 근엄한 얼굴이 있었다. 체구나 골격은 그리 크지 않았으나 법복의 힘인지 그가 내뿜는 어떤 아우라는 피고에게 법정의 지엄함을 충분히 지각시킬 수 있을 듯 했다. ‘일산 김OO 판사님의 통쾌한 소년재판이라는 제목답게 그가 죄를 심판하는 내용이었고 피고는 그 곳에서 누구보다 나약한 존재들이었다. 그들은 허리가 굽어진 채로 손을 모으고 파리처럼 빌고 있는데, 떨리는 목소리로 죄송하다는 말과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말이 스트리밍된 음원처럼 반복된다.

- 용서는 나한테 구하지 말고 너희들이 괴롭힌 애들한테 해야지.

 지엄한 목소리가 잔뜩 꼬여버린 어린 생에게 내리쳐졌다. 타인의 삶을 풀기 어려울 정도로 매듭지어버리면서 스스로까지 묶어버린 꼴이었다. 그 작디작은 구걸은 교복이 제복이 된 무소불위의 힘의 논리와 권력 구조의 마지막 중 하나였고, 피고인석에서 모자이크 처리된 그들의 실루엣은 그들이 휘둘렀던 언행을 받아내던 동급생들처럼 비루했다. 영상이 편집된 탓에 여러 명의 재판이 나타났는데, 게 중에는 가해자의 아버지나 담임선생님이 같이 등장해 선처를 바라는 모습도 있었다. 하지만 김 판사라는 사람은 그런 상황에서 더 단단했다. 어쩌면 피고가 아니라 그 상황의 모순을 내려치기 위해 판사가 된 것처럼 질타와 판결에 막힘이 없었다.

 이 상황들의 연속에 댓글창의 익명들은 통쾌함과 시원함, 정의구현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학교라는 피라미드의 가장 아래쪽에서 무서운 녀석들의 물리력을 맛 본 경험이 영상에 버무려지며 가해자가 용서를 구하는 모습이 역겨웠다. 선배가 시켜서 그랬다는 궤변은 비겁했고, 맞을 짓을 해서 때렸다고 말하는 어떤 모자이크의 조각들 사이로 뒤틀린 웃음이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갱생의 길을 끊어버린 그 회색 후드 티는 이 상황마저 나중에 자신의 이력 따위로 삼아 술안주로 나눌 추악한 모습이었다. 이들은 보는 것은 오만 악한 짓을 한 사람이 죽어서는 천국행 티켓에 도장이나 찍어달라고 하는 모습을 보는 기분이랄까.

 용서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본다. 가해자가 진심을 담아도 피해자에게 남긴 언행과 기억은 명백한 사실로 어딘가에 기록된다. 살에 난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낫지만 속에 난 상처는 곪아서 종양이 되는 것처럼 몸에 남긴 시퍼런 멍보다는 그들이 앗아간 11, 한 달 일 년이라는 시간과 그만큼 지속된 더러운 기분들, 삶에 대한 뒤틀린 시각은 다시 보상받을 수 없는 기억이다. 박힌 못을 빼내도 자국은 남는다고 하지 않던가. 그럼에도 용서를 한다는 것은 피해자가 내 고통을 이제 여기서 묻어두겠다.’ 하는 선언으로써 어떤 큰 동력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액정 안의 녀석들이 발길질이 날아가고 돈을 빼앗은 그 관계에서가 아닌 생전 처음 보는 판사 앞에서 피가 나도록 손발을 비는 것에는 진심도 미안함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그들의 처지가, 인생이 속된 말로 작살나게 생겼으니 그러는 것이다. 만일 저 가해자들의 피해자가 나라면? 나를 괴롭혔던 그 악마들이 나에게 와서 용서를 빈다면 나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았다. 아니, 만남조차 무서웠다. 다만 그 시절과는 다른 종류의 두려움이었다. 나에겐 그만큼 큰 동력도 없으며 심지어 지금 내 인생이 누구에게 용서를 하고 받고 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용서를 내가 받아들이건 말건 간에 그 녀석들이 지금 용서를 구하러 온다면 적어도 지금은 그 때처럼 병신처럼 보이면 안 되는 거잖아. 동영상이 끝나고 꺼버린 검은 액정에 내 얼굴이 비쳐졌다. 나는 그 시절과 달라진 게 없었다.

 생각보다 일찍 막을 내린 동영상의 극장 덕에 시간이 더 늘어난 기분이었다. 별 차이 없는 듯 했지만 시간이 늘어난 것은 여느 날과 달리 조금의 차이를 만들었다. 세상에, 내가 12시 이전에 첫 끼니를 먹다니. 밥솥에 밥이 있는지 가물가물한 기억으로 열어본 밥솥엔 기막히게 남은 한 덩이의 밥이 솥 구석에 뭉쳐있었다. 밥이 다 떨어졌구나.

 매일 똑같은 반찬의 마지막 밥을 삼켰다. 햄이나 장조림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햄이라는 이름은 애초부터 생필품의 목록이 아니었다. 밥그릇이 텅- 소리를 내며 싱크대에 가볍게 던져졌다. 씻기지 않은 수저와 밥그릇들이 몇 개 있었다.

 마트를 가야겠다고 생각한 건 생필품의 부재가 여럿 겹친 탓이다. 물과 쌀은 시작이었을 뿐이고 티슈, 샴푸, 치약까지 마지막을 장식한 것은 마치 집안 살림이 노조를 이뤄 파업을 하는 것 같았다. 설거지를 하며 체크해본 세제와 주방세제는 그래도 분량이 조금 남아있었다. 그것들이 다행이었던 이유는 쓸 수 있는 돈이 3만원밖에 없었으므로 세제들까지 없었다면 값을 다 지불할 수 있을지 미지수였기 때문이었다. ‘고맙게도 너희들 노조 안에서도 소통이 잘 안 됐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숨죽은 솜 조끼를 걸치고 신발을 신자 집을 나서는 문 앞에서만 살고 있는 적막이 빨리 나가라고 말했다.

 마트로 향하는 길은 질주하는 자동차들의 소음과 수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이 빼곡한 틈을 비집고도 봄이 왔는지 초록의 잎이 곳곳에 보이기도 했다. 가벼운 옷차림으로 나왔음에도 그렇게 춥지 않은 날이었다. 게다가 주말인 탓에 나들이를 가는 가족들이나 생기 넘치는 커플들이 많이 보였다. 대부분에게서 웃음이 끊이질 않는 건 긴 겨울 끝에 찾아온 봄이 좋아서일까 아니면 그들이 제 길을 잘 걸어가고 있기 때문일까. 그들의 길에 봄이 더해진 덕분일까. 신호등 앞에 멈춰서 문득 나의 길에 봄이 오는 것을 상상해보았다. 취직을 한다, 이사를 간다, 결혼을 한다잠시나마 밀려온 봄의 파도는 초록불의 등장과 함께 현실로 돌아왔다.

그 때 거짓말처럼 봄이 오는 소리가 들렸다.

 띠링- , 문자가 도착하는 소리는 환청이 아니었다. 이어서 울린 두 번의 진동이 명백한 증거였다. 친구들은 연락이 안 되고, 지인도 없다. 엊그제 또 당황한 나를 못마땅하다는 듯이 바라본 사장은 문자보단 전화를 하는 사람이었다. 어쨌든 연락이 올만한 곳은 내가 수없이 붙인 이력서들을 떼어간 곳이었다. 제발을 몇 번이나 반복하며 문자를 확인한다. 떨리는 손은 지금 무엇보다 빨랐다. 하지만 그 속도와 비례하듯이 실망감도 역시 빨리 들이닥쳤다. 봄이 오는 줄로만 알았던 문자는 마트의 할인쿠폰 광고 문자였다. 하지만 2만원 이상 구매 시 10% 할인이라는 내용은 적다면 적은 수치지만 나에게는 라면 한 봉지라도 더 살 수 있음에  꽤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와 함께 오늘은 왠지 마트에 꼭 가야하는 날인가 하는 기분이 들었다.

 나오는 사람들과 섞여 마트 안에 들어서자 점심 근처에 찾아온 나를 반기듯이 1층 바로 앞 맥도날드에 사람들이 또 줄을 길게 서있다. 백원을 꽂아 차지한 쇼핑카트를 밀며 온갖 생필품의 장으로 들어서자 직원이 반갑게 인사를 했다.

- 감사합니다. 즐거운 쇼핑 되세요.

 주말의 유동하는 모든 소비자들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한다는 것을 새삼 대단하게 생각했다. 나의 위태로운 직장 역시 사람을 대하는 일이지만 비슷한 서비스 업종이라는 것에 동질감이 들기 보단 수많은 사람들의 파도에 방파제처럼 꿋꿋한 태도가 나와는 다르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나라면 열이면 열 무시하고 지나가는 것보다 열이면 열에게 인사를 하는 것이 더 어렵게 느껴질 일이었다. 당연하게도 그중 간혹 하나가 인사에 대답을 해주는 상황이 온다거나 여러 간단한 민원을 물어보는 일에 나를 대입하자 정답도 오답도 아닌 하얀 종이가 그대로 제출되었다. 사람들에게 환히 웃는 모습에서 아침에 본 연예인들이 문득 떠올랐다.

 물이 있는 곳은 지하 1층이었다. 물을 비롯해 물로 만드는 것들, 물이 들어간 것들이 있는 이 식품 코너는 사방천지가 먹을 것이니 일곱 살 어린애처럼 눈이 돌아가는 것이 어쩔 수 없다. 가난할수록 먹는 것에 대한 욕심이 강하다는 것을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다. 가령 인터넷에 우스갯소리로 돌아다니는, ‘복권에 당첨된다면 치킨을 한입만 먹고 버리겠다.’ 라든지 요거트를 뚜껑만 핥고 버리겠다.’ 라는 말들도 어쩌면 그런 심리들이 반영되어 나타나는 것들일지도 몰랐다. 물론 가난은 상대적이라 더 가난한 자보다 부유한 그 익명의 이름들은 대부분 그런 말들에 ㅋㅋㅋ댓글을 다는 것에 그쳤지만 그 댓글들 사이로 보이는 그 전제에 초점을 맞춘 진짜 복권 한 번 됐으면 좋겠다.’ 라는 글을 남긴 사람들은 몇몇이었다.

 복권은 불로소득이다. ‘불로라는 말은 그 노동의 공백을 이상의 실현이나 여행 따위의 휴식에 쓰는 점에서 참 매력적이다. 하지만 그 복권에 관한 우스갯소리를 접하고 떠오른 불로소득에 대한 고찰에서 나는 소득이라는 단어에 꽤나 오랫동안 멈춰있었다. 몇몇에 내가 포함된 이유이기도 했다. 그 날 아침에도 버렸던 휴지들. 휴지통에 차곡차곡 쌓이는 삶의 소모가 나도 모르게 속에서 썩어 고이는 느낌인지도 몰랐다. 다시 마트로 돌아오자면, 나는 복권에 당첨된다면 가장 먼저 여기 지하 1층으로 와서 쇼핑카트 한 가득 음식을 담을 것이다. 소시지를 만지작거리다 내려놓는 곳이 제자리가 아닌 내 카트가 되는 것이다. 치킨을 한 입만 먹고 버릴 사람들은 가장 먼저 집을 산다거나, 여행을 떠난다는 여유를 일확천금의 기회에 이어 붙인다. 그 사람들은 지금도 내 기준에 꽤나 비싼 돈가스 한 팩을 사는데 거리낌이 없을 수도, 저녁에 간단하게 먹을 맥주를 사는데 에이 까짓 거 한 병 더 사지 뭐.’ 하는 생각이 쉽게 찾아오고 그것을 받아들이는데 어려움이 없는 사람들일 수도 있다. 그들이 무감해진 그런 여유를 과식하듯이 누리고 싶은 게 다였다.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느덧 그 맛들을 기억 못하는 혀나, 녹여본 기억이 희미해진 위장은 머리에게 어서 사라고 소요를 일으켰다. 머리는 눈동자에게 힐끗힐끗하는 명령을 내리는 것으로 안 된다는 의사를 표한다. 성찬들 속에서 물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곳에 가서 하나 잡아 담을 뿐이었다. 묵직함에 집에 가는 길이 걱정되긴 했지만. 쌀은 물의 시선에서 가까운 곳에 있었다. 20kg3만원이 넘을 뿐더러 들고 갈수도 없어서 가장 작은 것을 담았다. 이게 한 2kg 되려나. 이제 남은 일은 다시 1층으로 올라가 잡화를 사서 집에 돌아가면 된다.

 샴푸, 치약, 티슈가 한 층에 모여 있다는 것은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2, 3층으로 올라갔다면 다시 복권으로 돌아가서 거기도 모조리 담는 상상과 돌아가는 눈이 보여주는 현실의 괴리를 또 맛볼지 몰랐다. 여긴 반이 여성용품이라 그렇게 탐나진 않아서 다행이었다. 4개짜리 치약세트와 3개짜리 티슈묶음을 담는데 어느덧 근성이 된 가난이 왜 이것들을 낱개로 팔지 않는지 하는 생각으로 나타났다. 3만원의 한도를 가지고 있지만 구태여 3만원에 가까워지는 영수증은 필요 없는데.

 마지막 여정, 샴푸를 파는 곳은 시끄러운 곳에 있었다. 여느 마트의 웅성거리는 소리들의 총합 같은 게 아니라, 놀이방 같은 곳이 바로 옆에 있어서 하이 톤의 고성이 맴도는 곳이었다. 애들이 시끄러운 건 아무래도 상관이 없다. 난 지금 10종이 넘는 샴푸들의 값을 일일이 비교해 3만원의 오차범위를 맞추느라 바빴다. 할인쿠폰의 존재가 그런 방음에 두께를 더했다. 중건성이 뭔지, 한방샴푸가 어떤 효과인지 알 수 없었다. 사람 머리카락마다 성질이 다르구나 하는 걸 처음으로 알았을 뿐이다. 내 머리카락이 어떤 성질인지, 어떤 샴푸를 써야하는지는 그저 가격표의 자릿수마다 오르내리는 숫자에 따라 달라지고 있었다.

 하지만 눈길을 안주기에 옆의 꼬마들은 커다란 고무공에 오르내리다가 매트리스에 몸을 던지는 둥 상당히 요란하게 놀았다. 그 중에서 기막혔던 것은 손에 쥐어진 물총이었다. 직접 가지고 온 건지 계산하기도 전에 뜯은 건지 몰랐지만 사람이 이렇게 많은 곳에서 물총을 가지고 놀고 있다니.

 나는 마시려고 사는 물을 너네는 뿌리면서 재미를 보고 있구나. 그 아이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그러다 한 녀석과 눈이 마주치고 이어서 몇 개의 눈동자가 나를 향하다 모든 시선이 나를 바라볼 때 사람이 이렇게 많은 곳에서라는 생각을 고쳐먹었다. 그것은 4층짜리 대형마트의 전체적인 개념이었고 지금 민폐에 대한 개념이 아직 없는 물총으로 무장한 자칭 어린이 특수부대원들의 눈앞에선 샴푸를 사고 있는 건 나밖에 없었다.

- 공격!

 나를 향해 일제히 물총을 쏘아댄다. 린치를 당하는 느낌이란 굴욕적이다. 잊고 싶은 기억들도 몇 개 생각이 난다. 의도야 어찌됐든 이 녀석들이 급격히 추락하다 졸업과 함께 펴진 자존감의 낙하산에 구멍을 뚫어버린 것 같았다. 더러운 맛이 다시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래, 사람을 고통스럽게 죽이는데 집단폭행만한 게 없지. 어린 시절이 아닌 지금 맞는 물총은 실탄보다 더 아프게 느껴졌다.

 그들의 눈에 나는 그저 커다란 쿠키몬스터 내지는 지구를 침공한 공룡 정도로 보일지 몰랐지만 나의 개념과 시선에서 그건 명백히 못된 장난이었다. 화를 내야할지, 부모님 데려오라고 해야 할지 몰랐다. 평소의 나에게 그 방법들은 아무래도 나에게 익숙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이 상황은 충분한 자극제가 될 만도 한데 지금의 나는 그 빌어먹을 평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마 나는 물을 잔뜩 맞고 아무런 말도 못한 채 집으로 돌아가겠지. 나는 그들의 괴물로 완벽하게 분하여 죽는 시늉이나 쓰러지며 너네가 이겼어.’ 라는 말을 처절하게 해줄만한 위인도 못된다. 매일 아침의 햇빛을 역겨워 하며 이미 나는 무언가가 조금씩 죽어가고 있었고, 햇빛이 물리력이 된 이 물총세례는 그것을 조금 더 촉진시킬 뿐이었다. 아무도 말리거나 찾아오지 않는 샴푸 코너는 외딴 섬이었다.

- 내가 마무리 할게! 받아라. 슈퍼울트라핵폭탄!

 곧 사격이 그치며 물을 막으려 눈앞에 펼친 손가락 사이로 한 녀석이 익숙하게 생긴 무엇인가를 던졌다. 사이다 캔이 내 눈 앞으로 날아왔다. 따진 채로.

 

 사이다가 자극제가 될 줄은 몰랐다. 상대가 어린애라는 건 상관이 없었다. 화내도 되는 상황이라고, 이제는 표현하라고 속에서 말하는 것 같았다. 좋게 타일러야 하는 단계는 이미 지났으며, 이미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또는 상관있이 눈동자가 차갑게 사이다를 향했다. 그리고 나는 그 아이에게 걸어간다.

- 괴물이 온다! 도망쳐!

 진짜 괴물이 뭘까. 비겁한 장난을 쳐도 아직 어린애잖아요.’ 의 강철방패 속에 숨어버리는 너희일까. 아니면 진짜로 내가 자존감이 삐딱한 방향으로 추락하는 내가 괴물이 되어가는 걸까.

 뒤로 물러서며 즐거워하는 그 녀석들 중 사이다를 붙잡았다. 이래도 될까. 그 짧은 순간에도 머릿속에선 갈등이 자란다. ‘그래도 아무것도 모르는 아직 어린애잖아.’이번엔 네가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아직 어린애잖아.’가 맞섰다. 아무래도 전자를 따라야 하겠지만 어두웠던 과거를 먹고, 역겨운 아침의 햇빛을 받아, 못된 물총이 물을 준 탓인지 후자가 비정상적으로 몸집이 커짐을 나는 알고 있었다. 나는 사이다를 집어 던졌다. 사이다가 나에게 집어던진 것처럼.

 활짝 열린 목젖의 울음소리가 1층을 채우자 정신이 퍼뜩 들었다. 사람들의 주의가 모이고 있었고, 누군가 오는 것도 느껴졌다. 고민하던 샴푸 중에 아무거나 카트에 집어던지고 자리를 떴다. 부끄러움 불안함 통쾌함 따위의 감정이 뒤섞여 표정을 일그러뜨리고 두통을 만들었다.

 

 할인쿠폰을 사용해서 29300. 정말 아슬아슬하게 세이프했다. 굳이 3층까지 올라와서 계산을 하고 이제 나갈 일만 남았음에도 아까 전에 벌어진 사태에 머리가 복잡했다. 출입구에는 들어올 때 봤던 어리버리한 직원이 서있다. 나를 찾는 거겠지. 누군가가 나를 붙잡진 않을까. 내 인상착의는 봤겠지? 흔한 검은색 옷이라 못 알아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나의 군데군데 젖어있는 옷들이 흔치 않은 상황의 당사자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나는 출입구 구석의 한 의자에 앉았다. 이 상황을 재구성하며 내가 억울한 상황이었음을 어필해야 했다. 그 녀석들은 아직 계산도 안한 물총을 뜯었으며 사이다까지 나한테 던졌다. 그 부분을 강하게 주장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감정에의 호소도 해보자. 여럿이 한 명을 괴롭히는 데 어떻게 가만있냐고. 하지만 나는 성인이라는 점에서 커다란 패널티를 안아야한다. 그런데 혹시 사이다가 다치진 않았을까? 다쳤다면 아무래도 내가 불리할 텐데.

 머리가 깨질 것같이 아프다. 집안 살림은 왜 오늘 다 같이 바닥이 났으며, 할인쿠폰은 왜 오늘 날아왔는지 처음으로 되돌아가 그것들을 탓해본다. 나를 어떻게 해서든 마트로 보내 나를 엿 먹이려는 수작이었나. 마트까지 집안 살림 노조에 가입이 되어있었던 건가.

 직원이 나를 알아챈 것 같다. 얼굴을 보려는데 눈이 마주칠까봐 볼 수가 없다. 나는 덜덜 떨고 있겠지. 나도 모르게 손톱도 뜯고 있을 거야. 감정 중에서도 피할 수 없는 두려움을 숨기지 못하는 건 오래된 습관이다. 뚜벅 뚜벅 걸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사이다의 부모님이 얼마를 뜯어내려 할까. 주머니 속 700원이 손에 잡힌다.

 하지만 뜻 밖에 다가온 직원은 내 옆자리에 붙이는 메모지를 한 장 붙이고 사라졌다. 메모지의 존재를 본 동시에 올려다봤지만 떠난 게 아니라 진짜 꿈이나 마법처럼 사라지고 없었다. 메모지의 내용은 나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 멋진 사과를 해주실래요?


 모든 내용을 각설하고 오직 그 한 줄만이 적혀 있었다. 흔히 서두에 붙이는 고객님으로 시작되는 말이나 피해자의 상황, CCTV에 다 녹화되었으니 어디로 찾아오라는 말조차 없이 달랑 한 줄이었다. 모든 게 나의 예상과는 빗나갔다. 물질적 보상이나 법적 근거가 아닌 멋진 사과를 해달라니내가 살면서 받아야 했던 것들이 단 한 번의 쌍방과실(남이 보기엔 다 내 잘못이겠지만)로 내가 주길 바라는 쪽지였다. 취직도 안 되며 속도 없고, 마음도 현실도 가난한 내가 멋진 사과를 할 수 있을까. 피해보상이나 합의와 달리 너무 쉬운 제안임에도 너무 어렵게 느껴졌다.

 멋진 사과는 무엇일까. 아침에 본 법정의 영상 속 비겁한 회피의 사과는 아니었다. 매일 아침 휴지통으로 향하는 휴지들의 이름인 귀하는 안타깝게도 이번 면접에 떨어졌습니다.’ 같은 예의 바른 언어들의 구성일까. 하지만 사이다는 많이 잡아도 10살인데 어떻게 멋지게 사과를 할지 갈피가 안 잡혔다.

 사이다가 어디선가 다가온 것은 그 때였다. 내 앞에 섰을 때 얼굴은 시무룩한 표정이었다. 정황을 알게 된 부모가 타박을 했는지, 아니면 진짜 미안한 표정인지 어쨌든 나에게 화가 난 것 같지는 않았다. 다만 이어서 내민 왼손에 그 표정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흥건한 나에게 건넨 수건은 보드라웠다.

- 미안해요. 사과드릴게요. 장난으로 그랬던건데

 사이다의 목소리는 정중했다. 기억이 흐릿해지다 사라지는 경계까지 되감았지만 처음으로 받아본 사과였던 것 같다. 그 직원이 사이다에게도 멋진 사과를 부탁한다는 말을 했을까. 미사여구가 아닌 그냥 미안하다는 말과 수건 한 장이었지만 울컥하는 마음도 들었다. 직원은 사람들을 멋지게 받아들이는 연예인들이 아니라, 판사일지도 몰랐다.

- 나도 미안해.

 사이다는 그제야 눈과 입꼬리를 움직이며 웃었다. 그 표정은 생채기에 연고를 바른 느낌처럼 시원해보이면서도 편안해보였다. 그 얼굴이 못내 부러웠다.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가던지 아니면 멋진 어른인 양 머리를 쓰다듬어주던지 했다면 자연스러운 연결이었겠지만 섣불리 자리에서 일어설 수 없었다. 고작 생각난 그 이유가 그냥 앉아있는 편이 사이다의 눈높이에 맞아서 그럴거야라는 건 일어나지 못한 변명일 뿐이었다. 사이다의 생긋한 표정 어린애의 그것 그대로를 보면서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머니에 들어있는 계산하고 남은 고작 700원의 가치를 찾아내려 시선을 돌리자 자판기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걸 핑계로 자리에서 일어나자 사이다보다 머리 두 개 정도는 더 큰 내가 있었다.

 자판기의 음료는 지금 나의 상황에 여의치 않은 제품들이 많았다. 페트병에 담긴 게 절반, 비싼 브랜드의 음료수가 또 절반. 700원을 자신있게 집어넣고 꺼낼 수 있는 거라곤 사이다 캔 하나 뿐 이었다.

 ‘왜 하필 사이다야.’

 하지만 자판기 앞까지 나름 당당한 척 걸어온 주제에 머뭇거린다는 건 오늘 적잖이 구겨진 나를 더 안타깝게 하는 일이었으므로 사이다의 버튼을 꾸욱 눌렀다. 의미야 어찌됐든 부여하면 되는 것이니까. 덜컹하는 소리와 함께 음료가 나왔다.

- 이거라도 사줄게. 사이다라도 마실래?

 배출구로 손을 내밀며 뒤를 돌아봤다. 자판기안의 손이 허공을 저으며 사이다는 그 곳에 없었다.

 

 이상한 꿈을 꾼 아침에 눈을 뜨이게 하는 건 블라인드의 어긋난 틈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이었다.


김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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