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1차 창작콘테스트 단편소설부분 [뭉개뭉개 구름]

by 이예니 posted Aug 29,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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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개뭉개 구름]


prologue.

"웃어 바다야. 웃어야 사진이 이쁘게 나오지?"


노란 원피스를 입고 미래 아파트 301동 근처 그네에 앉아 다리를 놀리고 있을 때 

엄마가 폴더폰을 들이밀며 말했다. 

삐뚤빼뚤한 이가 양치할 때마다 이쁘지 않다고 생각해서 

이빨을 보이지 않으려고 입꼬리를 최대한 올렸다. 


"에이~ 이빨이 보여야 웃는 거지. 자 활짝 웃어봐!"

'에이, 이빨 보이기 싫은데.' 

엄마는 잘 타이르다가 말을 듣지 않는 성 싶으면 벌컥 화를 내곤 했다. 눈치를 보다가 

콧잔등을 찌뿌리며 웃었다. 이렇게 웃으면 엄마는 개구지게 웃는다고 좋아했다. 


"아구 잘 웃는다. 너무 귀엽다 우리 딸!"

'내 속마음도 모르면서 뭘 잘 웃어...' 


찰칵 소리를 내며 내 찡그린 콧잔등이 엄마 폴더폰에 저장되었다. 

그 예쁘지도 않은 12살 내 사진은 엄마가 스마트폰으로 기기를 옮겼을 때도 배경화면으로 자리잡았다. 


01. 수상한 개. 

음향기기 판매 사업을 하던 아빠가 자그마치 12년차 친구한테 

홀랑 속아서 사업을 말아먹었을 때, 아빠는 가족 볼 낯이 없어 말 그대로 간이랑 쓸개를 

팔아버리고 싶다고 했다. 내 곤히 자는 얼굴과 엄마의 다독임에 힘을 얻어 다시 시작하기로 했지만 

평생 살아오던 대전에서는 더 이상 살 수 없을 것 같다고 느꼈단다. 그래서 내가 중학교를 막 

들어갈 무렵 우리 세식구는 서울로 보금자리를 옮겼다. 


새로 이사한 집은 좁고 곰팡이가 많았다. 가구들을 들이기 전에 우리는 가서 수세미로 벽과 가구를 닦고 

곰팡이 제거제와 락스를 꼼꼼히 뿌렸다. 

"이 정도면 내일 가구 들여놔도 괜찮을 것 같은데?" 

아빠가 땀범벅인 얼굴을 팔로 쓸며 말했다. 

"팔에도 락스랑 제거제 다 튀겼을 텐데 그걸 그냥 얼굴에 갖다대면 어떡해요?" 

엄마가 타박하며 깨끗히 씻은 손으로 아빠 얼굴을 쓸어주었다. 

나는 문득 바나나 우유가 마시고 싶었다. 집 바로 앞에 편의점을 봐두어서 

아빠한테 현금을 얻어타 잔돈을 가지는 댓가로 아이스크림 심부름까지 겸사겸사 하기로 했다. 


편의점까지는 걸어서 5분도 채 안된다. 

저녁으로는 짜장면을 먹기로 했고 그 생각에 나는 기분이 좋았다. '내친김에 탕수육까지 시키면 좋겠다.'

편의점 가는 길 골목으로 들어가던 그때 나는 흙먼지투성이인 개 한마리를 보았다. 

개는 그냥 골목에 앉아있었다. 작은 크기는 아니었고 깨끗하지 못한 혓바닥이 나와있었다. 

'뭐하는 개야?' 그 개는 내가 지나쳐갈 동안 날 관심없이 바라보았다. 

그런데도 나는 괜히 개 눈치를 보며 편의점에 갔고 일부러 마주치기 싫어서 빙 돌아 집으로 돌아갔다.


아빠한테 아이스크림을 건네며 물었다. "아빠 여기는 개를 그냥 밖에서도 키우나?"

"마당이 있으면 그럴 수도 있지." 

"아니 그냥 돌아다니게 두냔 말이야." 

"흠 동네가 안전한가? 그런데 개 주인 맘일수도 있지." 


밤에 할머니 집 소파에서 잠을 자려는데 문득 그 개가 자꾸 생각났다. 

예쁘지도 않은 개였고, 더럽고 지저분했는데 그 개의 무관심한 눈빛이 자꾸 생각났다. 

'개 이름은 뭘까. 왜 밖에다가 기르지? 짖지도 않던데. 늙어서 기운이 없나?'

개 생각만 하다가 잠든 그 밤에는 온통 회색빛깔 꿈만 꾸었다.


02. 이삿날.

엄마가 새벽부터 날 깨웠다. 난 떠지지도 않는 눈으로 양치를 하고 

할머니가 차려준 밥상에서 도리질을 하고 다시 선잠을 잤다. 

눈을 떠보니 이사 온 집 앞이었다. 난 가구를 옮기지도 않는데 그냥 자게 

두지 뭘 굳이 깨워서 데려왔나 싶은 심정으로 우리 차 옆에 쭈구리고 앉아 애꿏은 돌맹이로 땅만 쳐댔다. 


그때 그 개를 다시 봤다.


개는 종종 걸음으로 우리집 골목으로 들어오는 길 앞 아스팔트 오르막길을 오르고 있었다. 

'쟤는 아침부터 어딜 가?' 

"엄마 나 요 앞에 초등학교 좀 갔다올게. 심심해서 운동장이나 돌려고."

"그래. 목마르면 음료수 사 마셔."

엄마가 쥐어주는 삼천원을 주머니에 넣고 눈 앞에서 사라진 개를 찾으려 골목 밖으로 뛰어나갔다.

다행히 개는 다리가 짧아서 눈에 닿는 곳에서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개가 날 눈치 챌 까봐 나도 용건이 있는 척 앞만 보며 힐끗댔다. 

개는 초등학교로 들어가는 골목 직전에 다시 왼편으로 꺾어 오르막길을 올라갔다. 

'아 왜 자꾸 오르막길로 가. 다리도 짧은게.'

열심히 따라 오르니 파란 지붕 집이 나왔다. 개는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나는 그 옆 자동차에 몸을 나름 숨겼다. 개가 집 문을 박박 긁자 왠 아주머니가 나왔다. 


"얘 또 왔네. 너 뭐 우리 집에 사료 맡겨 놨니?" 

아주머니는 핀잔을 주며 개밥그릇에 담긴 사료를 건넸다. 

나는 망설이다 말을 걸었다. "혹시 아줌마가 키우는 개예요?" 

"아니? 우리 집 개 산책시키다가 만난 개인데 졸졸 따라오길래 밥이나 먹으라고 

사료 좀 줬더니 그 뒤로 자꾸 우리 집 와서 문을 긁어대, 밥 달라고."

"혹시 이름은 아세요?" 

"얘? 아니 나도 몰라." 


그때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렸다. 

'빨리받아 엄마' 

엄마가 저장해놓은 이름이었다. 빨리 안받으면 화 내는 거 어차피 

아니까 최대한 빨리 받으라고. 나름 효과적이긴 했다. 

"어. 집에 오라고? 알았어 지금 가." 

"안녕히 계세요."

"그래 잘 가렴." 


밥그릇에 고개를 박고 열심히 먹는 개가 신경 쓰였지만 

화 내는 엄마가 더 신경 쓰여서 말도 못하고 그냥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 날 밤에도 나는 온통 먼지투성이 회색 털로 가득한 꿈을 꾸었다.


03. 비가 오고 천둥이 치는 날.

다음 날부터 장마 였다. 나는 빗소리에 잠에서 깼고 아침을 먹다가 크게 울리는 

천둥 소리에 속이 더부룩해졌다. 엄마는 오히려 

"비도 오고 좀 시원해지겠네. 빗소리 들으니까 밥도 잘 들어간다." 라고 좋아했고 

아빠는 "그래도 이사 다 하고 비와서 너무 좋네." 하고 껄껄 웃었다.

'에이 오늘 초등학교 놀이터 가려고 했는데.'

속으로 괜히 툴툴 대며 소시지볶음을 입에 넣었다. 


그런데 문득 개가 생각났다. 

아줌마도 키우는 개가 아니라고 했던, 사료를 열심히 먹던 그 더러운 개.

이렇게 지붕도 뚫을 듯이 비가 오는데 그 개는 뭐하고 있을 지 너무 궁금했다. 

그래서 엄마한테 괜히,

"엄마. 우리 샀던 우비 있잖아. 나 그거 입고 동네 조금만 돌아다녀 봐도 돼?

그거 어차피 형광 핑크 색이어서 눈에도 잘 뛸텐데. 나 한시간만 놀고 올게.

근데 이 소시지볶음 너무 맛있다. 밥도 잘 됐네. 어때?"

눈치보며 말을 걸었다.

사실 평소 같았으면 안된다고 했을 텐데 내 칭찬이 통한 건지 

딱 한시간의 외출 시간을 얻었다. 


우비를 냉큼 챙겨입고 그 개를 처음 봤던 골목으로 향했다. 

개는 없었다.  

사료를 건네던 아주머니가 사는 파란지붕 집으로 갔다.

그 곳에도 개는 없었다. 

허탕친 마음에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향했다. 바닥이 모레가 아니라 

펠트지 처리가 되어있어서 발이 푹푹 들어가지 않았다. 


우비만 믿고 우산을 안가지고 나와서 자꾸 비에 젖는 느낌이었다.

"에이 우비가 영 쓸모가 없네." 툴툴 대며 미끄럼틀 아래로 들어갔다.

그 개는 거기 있었다. 

들어가서 앉으려는데 눈이 마주쳤고 다시 태연하게 나갈지 말지를 계속 고민했다.

'야 뭐 어때. 쟤가 여기 전세냈냐?'

괜히 움츠려드는 어깨를 피려고 노력하며 앉았다. 그 개는 나를 좀 보다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저게 자꾸 나를 길가 동맹이 보듯이 보네.'

괜한 오기가 생겼다. 그래서 말을 걸었다.

"야. 넌 이름이 뭐냐?" 

개의 귀가 조금 움직였다. 

"그래 너 말야. 이름이 뭐냐고."

개는 자기한테 하는 말인줄은 아는 건 같은데 내 말을 영 이해를 못했다.

"아 미치겠네. 너 그냥 구름 해. 지금 하늘에 잔뜩 있는 거 말이야. 뭉개 구름 하라고."

개가 고개를 돌려 날 바라봤다. 뭔가 배가 고파보였다. 

"선심 썼다. 이거 내 바나나 우유값인데. 너 소시지나 사줄게. 좀 기다려봐."


개한테는 최대한 여유있게 말하려고 했지만 사실 

소시지를 사러 갔다 오면 쟤가 없어져 있지 않을 까 걱정이 됐다. 

그래서 미끄럼틀을 벗어나 학교 앞  편의점 까지 전속력으로 뛰었다. 

헉헉 대며 소시지 두 개를 사는 나를 알바생이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뭐든 상관 없었다. 저 회색 개랑 친해질 수만 있다면. 


04. 형광 핑크 우비

다행히 회색 개, 타칭 구름은 거기 있었다.

소시지를 급히 까 내밀었다. 경계심도 없이 다가와 냄새를 몇번 맡더니 잘도 먹었다. 

만지고 싶었는데 털이 너무 젖어 있어서 만질 엄두가 안났다. 


부드러운 혀가 내 손바닥에 스칠 때마다 간지러워서 긁고 싶었는데 편안한 식사를 위해 간신히 참았다. 

구름은 소시지 두 개를 그 자리에서 다 먹어버렸다. 

더 주고 싶었는데 남은 게 없었다. 그런데 문득 드는 생각이 

'난 집은 있는데, 얘는 없잖아. 우비라도 줄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비를 일단 벗긴 했는데, 구름에게 입히려니 긴장이 너무 되었다. 

날 물면 어떡하지, 아니 피하면 어떡하지, 이게 형광 색이라 싫어하면 어떡하지 

과학시간 쪽지시험을 보던 때보다 더 긴장이 되는 순간이었다. 

내가 벗은 우비를 갖다대는 걸 구름은 또 가만히 쳐다보았다. 

바람처럼 빠른 속도로 (적어도 내 기억에는 그렇다) 우비를 구름에게 걸치고 똑딱이를 잠궜다. 

비에 쫄딱 젖은 채 형광 핑크 우비를 입은 회색 개는 좀 불편해보였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난 집에 어떻게 가지.' 

미끄럼틀 밖에는 여전히 비가 계속 내리고 있었다. 핸드폰을 보니 거의 한시간이 다 되가고 있었다. 

'신데렐라도 나같은 기분이었나? 그래도 걔는 마차를 기부하진 않았잖아.' 

에라 모르겠다 라는 심정으로 미끄럼틀을 뛰쳐 나갔다. 좀 뛰다가 

숨도 차고 어차피 뛰나 걷나 비는 맞을 거고 싶어서 걸었다. 그런데 뒤에서 

찰박찰박 하는 작은 소리가 들렸다. 설마 해서 돌아보니 구름이 형광 핑크 우비를 끌며 날 쫓아오고 있었다. 


05. 조심해 저 트럭. 

'아니 이러면 안되지. 이건 계획에 없는 일인데.' 

그래도 이대로 구름과 집에 갈 수는 없어서 빌라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엄마한테 댈 변명과 앞으로의 계획을 생각하던 차에 빌라 옆에 주차되어 있는 트럭이 눈에 띄였다. 

회색에 낡은 트럭이었는데, 검은색 막으로 트럭에 실은 무언가를 덮어놓은 모양새였다. 

그런데 자꾸 이상한 소리가 트럭에서 들렸다. 


긁는 소리, 헥헥 거리는 소리, 부딪히는 소리. 

하필 비가 오고 천둥이 쳐서 더 무서웠는데 그래도 낮이고 주택가이며 

뛰어가면 집이 2분도 채 안걸리는 거리에 있다는 사실을 믿고 막을 살짝 들추었다. 

세상에, 거기에는 여러 종류의 개들이 좁은 케이지 안에 갇혀 있었다. 

말 그대로 갇혀 있었다. 케이지는 한 마리에게는 좀 넉넉했을 지 몰라도 여러 마리 개가 

들어가서 저 남미의 악명 높은 감옥 같은 모양새 였다. 숨쉴 틈도 없이 고통을 느끼라고 만든 그 감옥. 


케이지 안의 개들은 너무 슬퍼 보였고 무서웠다. 

케이지를 둘러 보았는데 입구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 개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이 내게는 하나도 없었다. 

문득 구름 생각이 났다. '이걸 보면 얼마나 충격받을까?'

고개를 돌렸는데 구름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런데 주차장 안쪽 차 끄트머리에서 

형광 핑크 우비의 자락이 보였다. 구름은 거기에 웅크려 있었다. 

"너 저 트럭 조심해. 돌아다니더라도 저 트럭 보이면 냅다 도망가." 

구름이 내 말을 알아듣는 지 알 수 없었다. 

"바보야. 저거 조심하란 말이야." 

구름이 고개를 들어 날 쳐다보았다. 반짝이는 검은 눈에 대고 다시 말했다.

"너도 저 케이지에 들어가게 될 수도 있어. 잡힐 수도 있단 말이야."


아무리 말해도 못 알아듣는 것 같았다. 

우비가 조금 벗겨진 것 같아 다시 제대로 입히려는데 구름의 몸에 손이 닿았다.

'떨고 있잖아?' 구름은 내 손을 피하지 않았다. 그냥 가만히 있었는데 몸이 계속 떨고 있었다. 

뭉개 구름이 몸을 떨면서 빗방울을 내리는 것처럼. 그렇게 우는 것 같았다. 


주머니 속 핸드폰이 진동 했다. 틀림 없이 엄마였다. 

그러나 전화를 받지 않아 혼낼 엄마보다 구름을 데려가 화낼 엄마가 더 무서웠다. 

그래도 저 개들이 갇힌 케이지를 가득 실은 트럭보다 무섭진 않았다.  


구름을 냅다 안고 달렸다. 

아니면 갑자기 트럭 운전사가 나타나 구름을 내놓으라고 할 것 같았다. 

'안돼. 절대 안돼. 내 우비 입었으니 이제 내 개야!' 

현관문 도어락을 누를 때도 구름은 잘게 떨고 있었다. 

그리고 들려온 엄마의 비명에 나도 떨었다. 정말이지 오줌을 지리는 줄 알았다. 


epilogue. 

구름이 이제 우리 집에 온 지 4년 째다. 

병원에 가서 알게 된 사실인데 구름은 성대 수술을 해서 짖을 수가 없다. 

그리고 떠돌이 생활을 오래 한 것 같다고 했다. 

그래도 처음 집에 데려와 씻길 때의 마르고 못난 구름의 사진은 아직 내 배경화면이다.  

나는 그래도 어릴 적 엄마 말은 알아듣고 억지로 웃기라도 했는데, 

얘는 카메라에 시선도 주지 않는다. 


그래도 구름은 한결 같이 예쁘다. 엄마는 내가 노란 원피스 입고 그네 탈 때가 

더 예쁘고 말도 잘 들었다고 하는데 카톡 배경 사진은 지금 나와 구름이의 사진이다. 

구름이 온 후로 바나나 우유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료다. 

그리고 가장 충격이었던건 개는 사람 먹는 소시지를 먹으면 안된다는 거다. 

개가 먹는 소시지가 사람 먹는 소시지보다 비싸다. 

그럼 사람 먹는 소시지는 뭘 넣어서 만드는 건지. 


뭉개뭉개 구름은 이제 몸을 떨지 않는다. 

털이 길어서 더 뭉개뭉개 구름 같아 졌다. 

대신 하늘 위 우는 구름 보다 더 행복한 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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