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1차 창작콘테스트 단편소설부분 - 복실이

by 파랑거북이 posted Sep 08,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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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실이

 

 이 녀석을 처음 만난 것은 1999 4월 이었다. 20세기의 마지막 해 그 해 3월에 나는 육군에 입대하였고, 훈련소에서 훈련을 마친 후 4월말에 자대 배치를 받았다. 경기도 산 아래에 위치한 육군 제 xxxx부대, 갓 전입 온 이등병인 나를 대놓고 반갑게 맞아 주는 사람은 없었다. 초장에 군기도 잡고, 위계질서가 명확한 군대의 특성상 살갑게 맞아주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이 녀석은 그러하지 않았다. 처음 봤을 때부터 꼬리를 흔들며, 반겨주었다.


복실이는 부대에서 키우던 진돗개 잡종이었다. 암컷이고, 나이는 세 살 반, 그리고, 얼핏 보면 영락없는 진돗개일 정도로 잘 생겼으나, 크기가 좀 작았다. 이 놈의 뒤치다꺼리도 내 일과 중의 하나였다. 매일 먹을 것을 챙겨주고, 주변 청소도 해야 했다. 전혀 힘들지 않았고, 내무실 청소나 화장실 청소, 잡초 제거 등등 여타의 잡무보다 난 복실이를 돌보는 시간이 좋았다. 동물을 좋아하기도 하였고, 매일 살기등등한 고참들만 대하다가 내가 편하게 대할 수 있는 존재와 같이 있는 시간은 나에게 큰 위안을 주었다. 복실이는 내가 지금까지 본 개들 중에 가장 똑똑했다. 앞발을 내밀어 악수를 할 수 있게 훈련되어 있었으며, 그 외에도 몇몇 재주가 있었다. 더 중요한 건 사람 말을 몇 가지 알아듣는 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오른손하면, 오른발을 내밀고, 왼손하면 왼발을 내밀었다. 양손하면 오른발을 먼저 내밀고, 뒷발로 일어서면서 왼발을 내밀었다. 만약 오른손, 왼손이 아닌 오른발, 왼발로 말하거나 또는 친하지 않은 사람이 호령하면, 고개를 돌리고 외면하였다.


고참들이 강아지 때부터 장난 삼아 훈련을 시켰기 때문인데 일어서고, 던지는 것을 받아 물고, 고개 흔들고, 다 하는데 배를 하늘로 향하고 바닥을 구르는 것은 절대 하지 않았다. 내가 볼 때 할 줄 알면서도 안하고 끝까지 개기는 것 같았다. 말 못하는 동물이지만 나름의 철학이 있었던 것 같다


부대 안에서 계속 살았기 때문인지 입맛도 아주 까다로웠다. 건빵은 절대 먹지 않았다. 아마 하도 많이 먹어서 질려버린 모양이다. 그리고, 먹고 남긴 잔반에서 고기만을 모아서 먹었는데 국에 들어가서 살이 흐물흐물해진 고기는 잘 먹지 않았고, 닭고기 보다는 돼지고기나 소고기를 더 좋아하였다. 캔커피도 좋아하였는데 헤이즐넛 커피나 아메리카노는 먹지 않았다. 맛스타는 가끔 먹었다. 우린 식사시간에 반찬이 부실하게 나오면 오늘은 복실이도 안 먹는 게 나왔다고 불평하곤 하였다


특이하게도 이 놈은 이등병을 가장 좋아하고, 계급이 높을수록 싫어했다. 병장이나 상병들이 가까이 오면 경계하는 눈빛이 역력하였고, 우리와 더부살이를 하고 있는 옆 부대 사령관과는 무슨 원수라도 진 것처럼 적대심을 가지고 있었다. 사령관과 마주치면 죽기살기로 짖으면서 정말로 물 것만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진지하고, 험악한 표정은 다른 때는 정말로 보기 어려웠다. 사령관을 만나기만 하면 이 모양이기 때문에 복실이는 대부분의 시간 즉 사령관이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목줄을 한 채로 묶여 있어야 했다. 그게 안타까워서 야간에 사무실 불침번 근무를 할 때 잠시 사무실에 들여다 놓고, 교대시간이 되면 다시 밖에 묶어두었다. 사무실에 들여놓으면 여름이면 시원한 문가에서 겨울이면 벽 쪽 라디에이터 앞에 딱 붙어서 세상 좋게 늘어져 잠을 자곤 했다


물론 나 말고도 복실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가끔씩 사무실 야간 근무교대를 하러 들어서면, 앞 근무자 고참이 이미 사무실에 들여다 놓은 복실이와 마주치는 경우도 있었다. 문이 열리면 힐끗 쳐다보고는 다시 고개를 파 묻고 자는 모습이 때론 건방지게 보이기도 하였다. 복실이는 이름 말고도 별명이 있었다. ‘복하사’, 이름의 첫 글자와 하사 계급을 붙여서 그렇게 불렀다. 삼 년 반이라는 시간을 군대에 있었고, 사무실에서 자다가 쳐다보는 건방진 행동처럼 자주 거만하게 고참같이 행동해서 그런 별명을 가지게 된 것이다. 짓궂은 고참들은 나에게 복실이가 고참이니 경례를 하라고 했다. 그렇게 따지면 그 고참도 복실이에게 경례를 해야 하는데 왜 만만한 후임병한테 그런 장난을 시키는 건지 모르겠다. 어차피 장난으로 시키는 것이니 난 복실이한테 한 번도 경례를 안하고, 개겼다. 나는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고, 복실이는 개인데 그건 아니지 싶었다


복실이가 사령관 말고 정말로 싫어하는 존재가 또 있긴 했다. 바로 고양이였다. 부대 뒤쪽이 산과 연결되어 있어서 그런지 야생 고양이들이 부대 안에 많았다. 고양이가 나타나면 맹렬하게 짖기 시작했고, 복실이가 줄에 묶여 있다는 것을 아는 고양이들은 복실이를 딱히 두려워하지 않았다. 복실이는 가끔 한밤중에 나타난 고양이를 보고 짖었고, 그 때마다 잠이 깬 고참들 때문에 내가 나와서 복실이를 달래고, 때로는 협박하여 더 이상 시끄럽게 굴지 못하게 하였다. 고양이를 싫어하는 이유는 강아지 시절, 짓궂은 고참들이 고양이를 잡아와서 종종 싸움을 붙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린 시절 고양이한테 얻어터진 기억 때문인지 고양이를 보면 죽기 살기로 덤벼 들었다.


하루는 마침 복실이가 목줄을 풀고 있을 때 덩치가 작은 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났다. 복실이가 짖기 시작했고, 곧 고양이에게 내달리기 시작했다. 이런 경우가 몇 번 있었는데 이 경우 고양이는 빠르게 나무위로 올라가고, 복실이는 나무 아래에서 한 종일을 버티다가 우리 손에 이끌려서 다시 목줄이 채워지는 게 결말이었다. 그러데 이 날은 달랐다. 한 동안 복실이를 쳐다보던 고양이는 싸울 결심을 한 모양이었다. 꼬리를 빳빳이 세우고 야옹하고 울부짖으며 복실이를 맞았다. 한 번 고양이가 앞발로 복실이 얼굴을 할퀴었다. 복실이는 다시 휘두르는 고양이의 앞 발을 피해, 주둥이를 아래로 내리깔고는 고양이 배를 물고 낚아채서 빠르게 그리고는 여러 번 흔들어 찢어 던졌다. 고양이는 뱃속이 터진 채 순식간에 죽었다. 우린 모두 당황했다. 스물 한 살, 스물 두 살 우린 나라를 지키고, 전시에 전장에 뛰어들어야 할 군인이지만, 이러한 잔인한 광경에는 오히려 너무나 익숙하지 않았다. 그 날 이후 복실이는 더 많은 시간을 줄에 묶어 있어야 했다. 아무도 복실이에게 물려 죽은 고양이를 또 다시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1999년 가을 나는 일병이 되었고, 복실이는 여전했다. 어느 날, 야간 사무실 불침번 근무를 서다가 근무가 끝난 후 복실이를 사무실에서 끌고 나가 목줄을 채웠다. 그런데 그 날 따라 복실이가 목에 힘을 주고, 목줄을 조이자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지만, 정말로 불편해 보여서 목줄을 한 칸 늘려서 묶었다. 원래 복실이 목줄은 세 번째 칸에 채워야 하는데 네 번째 칸에 묶었다. 복실이 목줄 묶는 칸도 딱 정해져 있었다. 윗 고참이 그렇게 가르쳐 주었고, 난 다른 것들도 그러하듯이 질문하지 않고, 시키는 대로 지금껏 해 왔다. 그 날만 제외하곤.


근무 교대하러 내무실로 가는 길은 야트막한 숲길을 따라 10분 정도 걸어가야 했다. 산 중턱의 교회 불빛을 제외하곤 그 길에 다른 불빛은 없기 때문에 가끔 으스스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 날도 그 길을 따라 내무실로 가고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 따라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난 별다른 생각 없이 뒤를 돌아보려다가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어서 고개를 어깨너머로 살짝 돌려서 뒤돌아온 길을 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당연하지 하고는 또 걷기 시작했는데 바스락 거리는 발자국 소리가 들였다. 나랑 일정한 간격을 두고, 그리고 더 무서운 건 그건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아니었다. 보다 가볍고, 두 개 이상의 발을 동시에 땅에 내딛는 그런 걸음 소리였다. 심호흡을 했다. 뒤를 돌아보기 전에 마음 속으로 하나만 생각했다. 제발 빨간 눈이어라. 여긴 산과 맞닿아 있어서 이 맘 때쯤 야생 동물이 내려오는 경우가 있었다. 어둠 속에서 초식동물은 빨간 눈, 그리고 육식 동물은 녹색 눈으로 보인다고 TV에서 본 적이 있다. 몸을 홱하고 돌려서 뒤를 확인한 순간 저기 고개너머 커다란 녹색 눈 두 개가 보였다. 나는 진짜 깜깜한 밤에 순간 하늘이 노래지는 경험을 하였다. 거의 주저앉을 뻔 하였다. 복실이가 꼬리를 흔들면서 익숙한 걸음걸이로 가까이 오지 않았더라면


갑자기 기쁨, 안도, 민망함, 짜증, 분노가 차례로 다가왔다. 이걸 또 데려가서 묶어두어야 한다. 알고 보니 복실이는 목줄을 조금만 느슨하게 묶어도 줄을 푸는 방법을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고참들은 그러한 사실을 알기 때문에 목줄을 단단히 묶고 나에게도 세 번째 칸에 맞추어서 묶으라고 한 것이었다. 복실이의 목줄은 그 날 이후 더 단단하게 묶여졌다. 난 그 날밤의 일을 후임병들에게도 다 알려주었고, 다들 이제는 목줄 세 번째 칸의 의미를 알았기 때문에 느슨하게 목줄을 묶는 사람은 없어졌다.

시간은 흘러 다시 봄이 찾아왔고, 복실이는 강아지 6마리를 낳았다. 그런데 2마리는 이틀 후 죽었다. 복실이 몸집에 비해 강아지들 크기가 컸고, 너무 많았다. 복실이는 강아지 4마리만이 젖을 빨 수 있을 정도의 크기밖에 되지 않았기에 형제들과의 경쟁에 밀려 젖을 빨지 못한 두 마리는 결국 죽었다. 죽은 강아지 2마리를 복실이 집에서 끄집어 낼 때, 복실이는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낑낑거리며 필사적으로 죽은 새끼를 뺏기지 않기 위해 우리를 밀쳐내었다. 미안했다. 좀 빨리 이런 사실을 알았더라면 두 마리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았을지도 모르는데


아무튼 나머지 강아지 4마리는 무럭무럭 자라났다. 한 마리는 복실이와 같은 누런색, 두 마리는 옆 부대 덩치 큰 수컷개와 똑같은 검은색, 그리고 특이하게 흰색 강아지가 한 마리 있었다. 복실이가 여러 개들을 만나고 다녔지만 흰색개와 같이 있는 것은 본 적이 없고, 부대 주위에 흰색 개는 없다. 숨겨진 열성 유전자가 모습을 드러낸 것일지도 모른다. 복실이는 강아지들을 키우는데 전념했다. 고양이를 봐도 덤벼들지 않고, 항상 새끼들을 불러 모으고, 같이 놀고, 그렇게 복실이와 네 마리 강아지들을 보는 것은 하루의 고단함을 잠시라도 잊게 해주는 아름다운 풍경이 그려진 한 폭의 그림과도 같았다


강아지들이 워낙 젖을 많이 세게 빨기 때문에 복실이 건강이 안 좋아졌다. 우린 강아지들에게 빵이나 우유 같은 것들을 조금씩 먹였다. 빨리 젖을 떼게 해서 복실이가 건강을 회복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하지만 그 일은 하지 않는 게 더 좋았다. 복실이가 워낙 똑똑하기 때문에 복실이의 강아지들을 가지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부대 안의 군무원, 납품 기사 등등, 많은 사람들이 강아지를 가지고 싶어했다. 강아지들이 젖 말고, 다른 것도 먹을 수 있게 되자마자, 한 마리씩 누군가가 입양해갔다. 누런색 강아지가 가장 늦게 입양되었는데 누런색 강아지는 색깔 때문인지 좀 똥개 같아 보이기도 했고, 발육도 늦었다. 마지막 남은 누런색 강아지를 복실이는 살뜰히 보살폈으나 아주아주 우울해 보였다. 내가 입대하기 전에 사실 복실이는 출산 경험이 있었다. 두 살 즈음에 강아지 세 마리를 낳아서 똑같은 경험을 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복실이의 엄마 개(진돗개 였다.)도 여기에 있다가 복실이와 복실이 형제들을 낳은 후 다 팔리거나 입양 당하고, 복실이만 남게 된 것이다. 아마 마지막 강아지를 보면서 다음에 나가는 게 네가 될까, 내가 될까 이러한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이러한 사실들이 우리에게 꽤 마음 아프게 다가온 까닭은 우리도 집을 떠나 부모님, 형제들과 난생처음 멀리 그리고 오랫동안 떨어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그 다음해에 신체검사 받고, 그 해 또는 그 다음해에 일반적으로 입대를 하기 때문에 입대하기 전에 거의가 집을 떠나서 산 경험이 없었다. 어디 외국에 나가 본 적은 고사하고, 비행기도 한 번 타 본적이 없기에 군부대는 집에서 너무나 멀게 느껴졌고, 외롭고 항상 집이나 부모님 생각이 많이 났다. 복실이의 모습을 보면서 가족, 특히나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마지막 누런 강아지는 부대에 식음료 납품하는 기사가 거의 뺏들다시피 가져갔다. 행보관님에게 돈을 건네고, 강아지를 움켜잡고 트럭에 재빨리 올라타고 가 버렸다. 복실이는 낯선 사람이 강아지를 집어 들자 맹렬히 짖으며 달려들었지만 행보관님에게 붙잡혀서 결국 강아지가 떠나는 것을 바라만 봐야 하였다. 그 이후로 복실이는 우울해하였지만 몇 달이 지나자 다시 예전의 복실이로 돌아왔다. 고양이를 쫓고, 오른손, 왼손을 내미는 재롱도 다시 부리기 시작했고, 빠졌던 살도 다시 붙기 시작했다. 그 이후 강아지들의 소식은 가끔씩 들려왔다. 검둥이 두 마리는 아빠 개를 닮았는지 폭풍성장을 하여 훌륭한 집 지키는 개가 되었고, 흰 강아지는 동네 말썽꾸러기에다가 난봉꾼이 되었다. 하지만 멀리 떠난 누런 강아지 소식은 전혀 들을 수가 없었다


그 해 겨울 마음씨 좋은 행보관님이 우리 부대로 오셨고, 그 분은 복실이를 아주 좋아하셨다. 가끔씩 짖궂은 장난을 거는 우리보다 복실이도 더 행보관님을 따르는 것 같았다. 행보관님은 종종 복실이를 데리고 산책을 하기도 하셨고, 퇴근하실 때 종종 복실이 목줄을 풀어놓고 가시곤 했다. 복실이를 위해서 한 일이지만, 그 일도 역시 하지 않는 게 더 좋았다. 복실이는 어느 날 행보관님이 퇴근하면서 풀어줘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그 날 따라 부대를 시찰하는 옆 부대 사령관 일행과 마주쳐 버렸다. 오랜만에 만나보는 사령관을 향해 복실이는 맹렬하게 짖으며 덤벼들었고, 수행하는 간부들도 그 기세에 눌려 몸을 피하기 바빴다. 복실이가 사령관의 군화를 꽉 물었고, 시끄러운 소리에 우리 부대 행정관님이 달려 나와 복실이를 떼 놓았다.


이 개 아직도 있잖아, 내가 이 개 팔아버리라고 했지? 사람 무는 개를 부대 안에서 어떻게 키워?”


화가 난 사령관은 노발대발했고, 복실이는 팔기로 결정이 났다. 사령관의 참모가 우리 부대 대장님에게 전화하였고, 대장님도 화를 내며 빨리 팔라고 명령했기 때문에 무조건 팔아야 했다. 그런데 누구에게 어떻게 판단 말인가? 우린 복실이가 좋은 곳에 가길 원했고, 마침 적임자가 있었다. 부대 앞에 농사를 짓는 사람이 있는데 수송관님이 잘 아는 사람이었다. 집에 혈통 좋은 개를 몇 마리 키우고 있는데, 다 수컷이라 복실이를 데려가서 강아지를 얻고 싶어하였다. 꽤 많은 돈을 받고 복실이는 팔려갔고, 우리는 그저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그 날 우리는 하루 종일 우울했다. 점호시간에 점호보고가 끝나고, 분대장인 P병장이 말을 꺼냈다. P병장은 우리 중 유일하게 복실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26살이라는 나이에 늦게 군대 입대하여 막내 때, 복실이 뒤치다꺼리하면서 감정이 상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싫어하는 것 같았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잘 모르지만, 둘은 소 닭 보는 듯한 그런 관계였다.


개 한 마리 팔렸다고, 분위기 다운 시키지 마라. 내 진작에 그렇게 될 줄 알았다. 사령관한테 대드니까 그렇게 될 수 밖에. 자업자득이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기분 나쁘다


솔직히 사령관이 복실이한테 물렸다 길래 속으로 통쾌했었다. 사령관은 항상 거드름 피우길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그 부대의 간부들은 우리 직속상관도 아닌데 경례할 때 소리가 작다느니, 걸음이 안 맞다니 등등 종종 트집을 잡던 사람들이다. 우리 부대 규모가 훨씬 작아서 식당을 비롯한 일부 시설을 더부살이하여 빌려 쓰고 있었는데 그런 것이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어쩌면 복실이는 우리를 야단치고, 혼내는 옆 부대 간부들과 사령관을 우리를 대변해서 맞서 준 것 일수도 있다. 우리 중에 적어도 반 정도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복실이가 없어졌지만 우리의 삶은 언제나 그대로였다. 군대에서 개 한 마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뭐 그리 크겠는가? 복실이가 팔려간 주의 토요일에 우리 부대는 회식을 하였다. 복실이를 판 돈으로. 고기도 먹고, 술도 마셨지만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 뭐 그런 느낌이었다. 그 전 회식은 누런 강아지 판 돈으로도 하였고, 이젠 복실이 판 돈으로 회식을 한다.


며칠이 지났다. 아침에 점호를 마치고, 일과를 시작하려는 즈음, ? 낯 잊은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복실이였다. 살은 쪽 빠졌고, 털은 진흙이 묻어 있었다. 우린 반갑게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보았다. 마침, 수송관님이 출근하였고, 출근하자마자 복실이 못 보았냐고 우리에게 물었다. 그리고는 어떻게 된 일 이냐고 묻는 우리에게 그간 며칠간의 일을 이야기 해 주셨다.


, 그 형님이 어떻게든 복실이를 길들여서 새끼 보려고, 처음에 데리고 와서 북어 대가리도 삶아서 주고 했는데 복실이가 안 먹는 거야. 계속 도망만 다니고, 으르렁거리고 해서, 묶어두고 삼일 동안 물 한 모금도 안 줬대. 자기가 지금까지 살면서 삼일 굶고 말 안 듣는 개 못 봤다고 그랬대.”


그래서 복실이가 살이 쏙 빠졌구나. 우린 조용히 듣기만 했다. 복실이가 굶은 게 화가 나서 뭐라고 한 마디하고 싶었지만,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가만히 있었다.


그런데 삼일 째 되던 날 먹을 것을 가져다 주니까 복실이가 그 때도 짖으면서 물려고 덤빈다는 거야. 그래도 먹을 건 먹겠지 했는데 이 놈이 앞 발로 밥그릇을 엎어버리고, 거들떠 보지도 않더래. 살다 살다 이렇게 독한 개는 처음 봤다 하더라.”


그러다가 어제 밤에 목줄을 풀고는 잡으러 다니면 계속 도망 다니고, 그리 넓지도 않은 마당에서 형님 내외가 용을 써서 잡으러 해 봤지만 얼마나 빠른지 잡지도 못하고, 어거지로 잡으려다 손까지 물리고, 결국 포기하고, 날 밝으면 잡자고 들어가서 잤는데, 오늘 아침에 보니까 울타리 아래를 땅을 파고 기어코 탈출 했더라 이거야.”


지금 만나고 오는 길인데 화가 나서 뭐 그런 개를 팔았냐고, 당장 잡아오라고 승질을 내더라고. 그래서 복실이가 결국 갈 데가 여기밖에 없는데 해서 오늘 빨리 출근한 거지. 그 형님 부대 문 앞에서 몽둥이 들고 기다리고 있어.”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땅을 파고 탈출하느라 흙투성이가 되었고, 나흘 동안 쫄쫄 굶어서 야위었구나. 그리고, 복실이가 헐거운 목줄 푸는 거 도가 튼 건 우리가 다 아는 사실이니. 아마 굶어서 살이 빠지니까 목줄이 헐거워진 모양이다. 얼마나 목줄을 풀기 위해 용을 썼던지 목 주위의 털은 움푹 파여진 것처럼 뽑혀나가 듬성듬성 하였다. 그럴 가능성은 낮지만 이게 정말 복실이가 계획한 것이라면 지능지수가 세 자리는 될 것만 같았다. 너무나 안쓰러웠다. 우린 그저 막연하게 복실이가 행복하게 잘 살 것이라고 생각했다. 좋겠다. 부대 밖으로 나가서 살 게 되다니. 우리도 군대에 묶인 몸이라 우린 우리 마음대로 이 곳을 벗어난 복실이가 자유를 찾아 더 좋은 곳으로 간 것으로 마음대로 생각하고 있었다. 때마침 행보관님이 출근하셨고, 복실이는 한 걸음에 달려가서 품에 안겼다


행보관님은 복실이에게 먹을 것을 주었고, 복실이는 아주 허겁지겁 게 눈 감추듯 순식간에 먹어 치웠다. 우리 부대 막내가 따루어 준 파란색 레쓰비 캔커피도 아주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행보관님은 복실이를 깨끗이 씻겼고, 얼마나 깨끗이 씻겼던지 샴푸 냄새가 진동을 할 정도였다. 그리고는 수송관님 손에 이끌려 목줄이 채워진 채로 부대 밖으로 아주 무거운 발걸음으로 끌려나갔다. 무언가 체념한 듯한 그러나 당당한 걸음이었다. 우린 당연히 허가 없이 영내를 벗어 날 수 없었고, 멀리서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복실이는 죽었다. 부대 밖에서 복실이를 기다리는 새 주인은 몽둥이가 아닌 전기 충격봉을 들고 있었고, 손에 무언가를 든 새 주인을 본 복실이는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 거리다가 새 주인이 내민 전기 충격봉을 본능적으로 물었고, 그렇게 감전되어 죽었다. 화 나는 건 그 수송관님이 아는 형님인 새 주인이 한 말이다


이거 뭐 방법이 없다. 본전 찾기는 글렀고, 복날 되려면 멀었지만 고기 맛이나 보고, 마을 사람들 몸보신이나 시켜야겠다. 개는 때려잡아야 맛있는데 내가 마음이 약해서 그냥 좋게 보내줬어


그렇게 복하사는 부대 밖에서 숨을 거두었다. 아무런 잘못도 없는 개 한 마리가 죽었다. 복실이가 죽은 이야기를 전해 듣고, 우린 아주 우울해졌다. 우리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있지만 복실이는 지켜주지 못했다. 그 날만큼은 다들 필요한 말만 하고, 그렇게 조용히 하루를 보냈다. 점호 시간이 되었다. 분대장인 P병장도 


잠 못 자게 밤에 짖고 그럴 때는 정말 미웠는데, 그래도 죽었다는 거 들으니까 안 됐다. 개가 무슨 잘못이라고. 그래도 고놈 참 똑똑했는데 아깝다라고 말하였다


P병장은 다소 예민한 성격이다. 내무실에서 누가 코만 골아도 잠을 못 자는데, 개 짖는 소리가 얼마나 듣기 싫었을까, 복실이가 싫은 이유가 그것 때문이었구나


이걸로 복실이 이야기는 끝이다. 난 그 후로 복실이 없이 7개월 군생활을 하였고, 제대하였다. 상병 말 호봉, 병장 기간이라 이등병 때처럼 복실이한테 위로 받거나 혼잣말인지 대화인지 모를 말을 하지 않아도 심심하진 않았겠지만 추운 겨울 사무실에 혼자 야간 불침번을 서고 있으면, 왠지 라디에이터 쪽에 복실이가 있을 것 같아서 자꾸만 쳐다보곤 하였다. 복실이 목줄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지만 밥그릇과 개 집은 계속 그 자리에 남아 있었고, 누구든 그걸 치우자고 말하지 않았다


2001 510일 목요일 드디어 내가 전역하는 날이다. 살면서 어떤 날은 정말 그 날 날씨가 어떠했는지, 아침, 점심, 저녁은 뭘 먹었는지 다 기억이 날 정도로 생생한 날이 있는데 나 또한 그런 날이 있다. 그 중 하나가 1999 3 11일 목요일 입대한 날이고, 또 하나가 2001 5 10일 전역일이다. 전역하는 날 아침 난 대충 아침밥을 먹고, 텅 빈 내무실 침상에 누워서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한 번도 이 시간에 침상에 누워있지 못했다. 그랬다간 연병장을 돌거나 원산폭격이나 하게 되었겠지. 짐 정리도 다 하였고, 내가 빠져나간 관물대에는 벌써 내 바로 아래 후임이 세면 백을 떡 하니 올려놓았다. 이제 내 관물대는 없다. 문 입구부터 일렬로 늘어선 관물대는 입구 쪽이 막내 관물대이고, 맨 마지막 창가 쪽이 제일 고참 것이었다. 나는 언제 창가 저기까지 가보나 이렇게 생각하다가 막상 그 자리에 가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을 알게 된다. 그저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시선이 좋을 뿐이지 실상은 아무것도 다를 게 없는 똑 같은 관물대이다


오전 9시 대장님이 출근했을 텐데 전역 신고하러 오라는 연락이 없다. 괜시리 사무실로 가서 커피 한 잔을 타 먹었다. 행정병들은 분주한 가운데서도 씩 웃으며 눈인사를 한다. , 처음 전입 올 땐 쟤 내들 나랑 눈도 못 마주쳤는데. 오전에 급한 용무가 끝났는지 전역자 신고를 하라고 전달 받았다. 945분 지루하게 기다리던 전역 신고를 한다


충성! 병장 xxx 2001 510일부로 전역을 명 받았습니다. 이에 신고합니다.” 


대장님도 거수경례를 하고, 차분히 신고를 받는다. 악수를 건네고, 마주앉아서 차 한잔을 마셨다. 처음이다. 둘이서 마주 앉은 것이. 어색하지만 어차피 이번이 마지막, 긴장되거나 하지 않는다. 제대하고 뭐 할건지 물어봐서 여행도 하고, 복학 준비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마지막으로 건의할 것이 있느냐고 하셔서 아직도 수리되지 않은 세탁기와 오래된 샤워시설에 대해 말씀 드렸다. 아마 또 안 고쳐질 거다. 몇 번이나 건의한 내용인데.


차를 다 마시고, 또 한번 악수를 하고 나왔다. 이제 끝이다. 이 날을 무진장 기다려 온 것 같은데 나는 왜 하나도 기쁘지 않을까. 딱 하루만 더 여기 있었으면 좋겠다. 절대로 정이 들지 않을 것 같던 이 곳도 알게 모르게 많은 정이 들었다. 시간이 너무나 빨리 지나가 버린 것 같다. 항상 앞에서 보는 시간과 지나고 나서 돌아보는 시간은 다르다. 지나고 나서 다시 보는 시간이 훨씬 짧다. 그렇다고 군대가 좋은 것은 아니다. 말뚝 박고 싶은 생각도 없다. 하지만 갑자기 뒤 돌아서서 가 버리려고 하니까 마음이 복잡하다. 이 복잡한 실타래를 풀고 홀가분하게 가고 싶다. 복잡한 감정의 소용돌이.


전역하고 나서 부대 앞 가로수 길을 걸어서 또는 수송차를 타고 나가야 하는데 예전 P병장은 굳이 걸어서 나갔다. 30분은 족히 걸어야 하는 길인데 한 겨울에 걸어나가면서 내가 군대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을 추억하며 나가겠다고 했는데 뒷모습이 너무 쓸쓸해 보였다. 28살에 전역하는 P병장은 대학원도 졸업했고, 바로 이제 세상과 맞닥뜨려야 된다. 취업, 결혼, 완전히 어른이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앞날이 걱정되었을 것이다. 총 한 자루 없이 혼자서 세상과 싸우러 나가는 예비역 병장의 모습. 너무나 쓸쓸하게 보였다. P병장은 하지만 그 먼 길을 단 한번도 뒤돌아보지 않고 걸어갔다


물론 아주 기쁘게 날아갈듯한 기분으로 떠나는 사람도 있다. 그 사람들을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 사람들의 가벼운 발걸음만큼 그들의 삶의 무게도 가볍게만 보였다. 그들의 뒷모습은 왜인지는 모르나 얄밉게 보였다. 같은 기간 군생활을 하였지만 짊어지고 떠나는 보이지 않는 짐의 무게는 각자 달랐다


나는 어떠한가? 이제 대학교 2학년 복학하여야 하고, 그 동안 놓았던 공부를 시작하려니 벌써 걱정이 된다. IMF 이후로 아직까지 경기가 안 좋고, 취업률도 계속 안 좋다. 복학할 때까지 뭐라도 준비해야 될 것만 같은 강박관념이 자꾸 든다. 몸이 안 좋아서 군대 면제 받은 학교동기는 올해 졸업을 한다. 나는 3년이나 더 공부를 해야 하고, 그저 몸 건강해서 군대에 왔을 뿐인데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여기에 있는 사이 세상은 많이 변했다. 학교에 돌아간다고 해도, 예전에 알던 친구들도 많이 없어지고, 선배들은 거의 다 졸업했다. 군대보다 바뀐 세상이 더 생소하고, 두렵다. 마음이 복잡한데 후임병들은 모여와서 축하한다고 부럽다고 한다. 심란하다


기념사진을 몇 장 찍고 나는 가로수 길을 수송차를 타고 나왔다. 걸어 나오지는 않았지만 내 군생활을 돌아보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P병장과 같이 나 또한 부대 쪽을 뒤돌아보지 않았다. 앞만 바라보는데도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기쁨도 아닌, 슬픔도 아닌, 가슴속에서 우러나오는 알 수 없는 깊은 감정 때문에 멍청히 하늘만 바라보았다. 부대 앞을 나와서 차가 지나가자 저쪽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복실이 새 주인집 쪽이다. 멍청한 개, 부대에서 차 나오는 거 처음 보나. 이유도 없이 힘 빼고 있어. 저런 멍청한 개는 아직 살아 있는데 복실이는 된장 발리고, 세상은 사람에게만 불공평한 것이 아니라 개에게도 불공평한 것 같다


기차역에 도착하여 이것저것 기차시간을 기다리다 점심시간이 되어 식당에 들어갔다. 우동 한 그릇을 시켰는데 주인 아주머니가 말을 건다


휴가 나오셨나 봐요.” 


아줌마 쫌, 여기 전투모에 그리고, 가슴에 예비군 마크 붙어있는 거 안 보입니까? 안 그래도 기분 별로인데. 나는 생각만 그리하고 


오늘 제대했습니다라고 짧게 말했다.


그래요? 좋으시겠다. 부모님 기다리시겠네요.” 


그 아주머니는 옆 테이블 식기를 바쁘게 달그락 거리며 치우면서 미리 준비한 듯한 투로 내 말에 대꾸하였다.


좋은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죠. 군대는 정들면 하나씩 떠나가고 마지막엔 정든 사람들 남겨 놓고 내가 떠나는 그런 곳 입니다. 저도 부모님이 빨리 보고 싶기는 한데 정들었던 전우들과 이별하기도 싫습니다. 물론 제가 설명해도 모르시겠죠. 아주머닌 군대 안 갔다 오셨으니까요. 언젠가 이런 기분 복실이도 느꼈는지 모르겠다


기차를 타고 집에 오는 길은 멀게만 느껴졌다. 자꾸 기차가 부대가 있는 경기도 쪽으로 또 집이 있는 부산 쪽으로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앞으로 뒤로 가는 것만 같았다. 기차 안에서 산 파란색 레쓰비 캔커피도 먹기 귀찮아져서 계속 손에 들고 있었다. 집에 도착해서 부모님께 큰 절하고, 내 방문을 열었다. 익숙한 냄새, 그리고 내가 십 년 넘게 사용하던 책상, 옷장, 옷걸이 등, 휴가 때와는 또 다른 기분이다. 이 방안의 시간은 마치 그 동안 멈춰있었던 것 같다. 나는 내가 자꾸만 이방인처럼 느껴진다. 전투복을 벗고, 내 옷으로 갈아입는다. 햇빛에 잘 말린 옷 냄새가 너무나 좋다. 벗은 전투복을 나도 모르게 집어 들어 잘 개다가 주위를 둘러보고 멋쩍게 혼자 씩 웃었다. 이제 전투복을 칼 같이 안 개어도 된다. 방 바닥에 잠시 누워서 천장을 쳐다 본다. 내무실에서 봐오던 하얀색 베니아판이 아닌 옅은 아이보리색 벽지가 발린 천장, 익숙해야 하는데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어색하다. 내 방에서 조차. 스물 셋, 예비역 병장, 힘내자.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꿈이여.


김석원

dadaemb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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