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부문 _ 바다의 발

by 김day posted Oct 10,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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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발

 

  

뭔가가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부터, 언제부터, 입으로 천천히 곱씹어도 생각나지 않았다. 기억에도 없는 걸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게 웃겼다. , 하고 의미 좀 만들려고 웃어보지만 여전히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래서 다시 언제부터, 언제부터, 사실은 알고 있다 습관처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알람 소리가 들렸다. 손을 뻗어 침대 바로 옆 책상 위에 놓여있는 휴대폰을 찾으려 더듬거렸다. 한참을 더듬다가 요란하게 소리 내고 있는 것을 들었다. 그러나 앞이 흐릿해서 몇 시인지 보이지 않았다. 눈을 비비면 비빌수록 점점 더 시야가 흐릿해져갔다. 문득 알람을 오전 643분에 맞춰놨다는 걸 깨닫고서 눈 비비는 걸 멈췄다. 침대에서 일어서자 머리가 아파왔다. 기립성 저혈압 때문이었다. 벽을 더듬거리며 화장실로 들어가 세수하자 그제야 앞이 제대로 보였다. 다시 침대 쪽으로 가 아직도 울려대는 알람을 껐다. 세수까지 했지만 침대를 보니 좀 더 자고 싶었다. 옷을 입으면 그나마 졸음이 사라질 것 같아 의자에 걸쳐있는 패딩에 몸을 구겨 넣었다.

현관문으로 향하기 전 책상 위에 있는 유골함을 바라봤다.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었다. 유골함에 찍혀있는 엄마의 이름을 바라봤다. 몇 십 년 째 엄마의 이름이 내 책상 위를 떠돌고 있었다. 왜 이름을 적어놨을까. 어차피 이걸 볼 사람은 나밖에 없는데. 멍하니 서있을 때 다시 그것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다. 알고 있다. 무시하고 현관문으로 향했다. 슬리퍼를 신을까 하다가 모래가 들어가는 게 싫어 운동화를 신었다. 문을 열자 아직 겨울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바람이 불었다.

집에서 바다까지 걸어서 1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나는 모래사장 위로 발을 디디기 전에 먼저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직 아무도 없었다. 한 발자국, 모래사장 위로 발을 올렸다. 두 발자국, 몸이 밑으로 살짝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세 발자국 때부터 모래사장 위에 발자국이 남기 시작했다. 나는 바다 가까이 다가갔다. 마치 낭떠러지 앞으로 다가가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자 또 다시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네 발자국. 더 이상 갈 길이 없었다. 그냥 죽어버려. 죽고 싶지 않았다. 그러자 이번에 그것은 코웃음까지 치며 내게 말했다. 맞아 그것 때문이다.

그것이 뭘까. 나는 그것, 그것 하고 중얼거리다가 이내 언제부터, 언제부터 라고 습관처럼 내뱉기 시작했다. 언제부터, 이 목소리가 들렸더라. 기억을 되새겼다. 다시 잡지에 글을 올리겠다고 할 때부터, 엄마를 담당하던 편집장에게 오랜만에 연락할 때부터. 그래. 그것이다. 좀 더 무언가가 있었다. 언제부터, 언제부터. 손톱을 물어뜯다가 손톱 밑 살점이 뜯겨졌다. 그래도 생각나지 않았다. 아니다. 넌 기억하고 있다. 침대를 혼자 쓰게 됐을 때부터, 바다 속에 약을 던져버렸을 때부터. 뒤 돌면 아무도 없다는 걸 알게 됐을 때부터, 아무리 악을 써도 병원 지상에서 지하까지 이어지는 향이 끊이지 않을 때부터. 아니다. 더 이상 씹을 손톱이 없을 때쯤에 뇌리에 바다가 스쳐지나갔다. 바다 위를 떠도는 엄마의 목소리. 주워 담지 못해 태평양 너머로 흘러간 목소리.

바다에 뿌려줘.

그거였다.

 

엄마의 마지막 유언은 단지 바다로 뿌려 달라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애초에 아빠는 없었고 집에 들어오는 수입이라고는 엄마가 잡지에 글을 써서 벌어들이는 것뿐이었다. 그 또한 엄마의 병이 악화되어 변변찮았다. 아무리 어린나이였어도 주위 시선으로 집안 상태가 어떤지 쯤은 알 수 없었다. 병원비는 늘어나고 결국 감당하지 못할 것 같다고 판단한 엄마는 입원 도중 쫓겨나기 전에 먼저 나왔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가고 3개월 만에 다시 병원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이번엔 지상이 아닌 지하로. 장례식장에 온 몇 명밖에 안 되는 손님들은 육개장이 없다며 실망하기 다 꺼져버려 일쑤였다. 당연히 엄마가 원하는 건 들어줄 수 없었다. 바다에 뿌리려면 돈이 들기 때문이었다. 부조금으로 받은 것 또한 장례식장비로 들어갔기 때문에 엄마의 유골함은 그래서잖아 아직도 집안에 있었다.

진흙과 모래사장의 경계면을 조심스레 걸었다. 걷다 멈추고를 반복하자 어느새 사람들이 한두 명씩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바다에서 멀찍이 떨어져 인도로 올라가는 계단 앞에 앉았다. 그러자 이제 막 움직이기 시작한 사람들이 잘 보였다. 바다 앞에만 가면 한없이 작아지는 모습을 누군가 본다는 것이 싫었기에 사람이 다니기 시작하면 바다에서 멀리 떨어져 앉았다. 바다가 모든 사람들한테 평등하게 다가오는 것 또한 아니다 싫었다. 특별해지고 싶은 마음을 바다는 망설임 없이 쓸고 그게 아니다 뒤로 물러났다. 마치 그런 마음 갖지 말라는 듯이. 혹은 절대 그런 일 없을 거라는 듯이. 그러면서도 아무 일 없다는 듯 내가 다가서면 다시 다가오는 것도 그런 적 없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느 누구도 섣불리 모래사장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구두에 모래가 들어 갈까봐 멀찍이 떨어져 걷는 앳돼 보이는 청년과 그런 것조차 관심 없다는 듯 빠른 걸음으로 가는 중년 아저씨. 친구들과 장난치다가 샌들 안으로 모래알갱이가 들어가 짜증내며 터는 아이들. 떠돌이 개조차 모래 냄새만 맡을 뿐이었다.

조심해.

이제 막 걸음걸이를 뗀 듯 보이는 아이와 엄마로 보이는 젊은 여자가 내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여자는 혹여 아이가 뒤로 넘어질까봐 아이 뒤에서 두 손을 내뻗은 채 엉거주춤한 자세로 걸었다. 아이는 느리게 몇 걸음 걸어가다가 주저앉고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다가 지쳤는지 더 이상 일어나지 않고 모래를 집어 들어 입에 가져다댔다. 여자는 황급히 아이의 손을 잡고 이건 지지야라고 말했다. 아이가 고개를 돌려 여자를 바라봤다. 그리고 웃었다. 뒤로 돌아간 아이의 고개와 그 손을 잡고 있는 여자. 웃는 얼굴들. 그것을 보지마 보다, 뒤를 돌아봐도 되는구나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뒤를 보면 누군가 있다는 걸 그렇지 않다 확인할 수 있구나, 싶었다.

뒤를 돌아보고 싶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 있던 것이 없어지는 걸 깨닫고 싶지 않았다. 그냥 모르는 채로 있고만 싶었다. 그래서 뒤를 돌아야하는 상황 속에서도 고개만 돌리지 않고 몸 자체를 움직였다. 뒤 돌지 않고 앞으로 계속 걸어가는 방법을 연구했다. 왜냐면 엄마는 부끄럼쟁이였으니까. 그게 다였다.

발이 없는 바다는 자꾸만 내 발자국을 지웠고, 그것이 심통 나서 어린 나는 계속해서 발자국을 만들었다. 발이 없어도 슬금슬금 다가올 수 있는 바다가 답답하기도 했고, 다가가면 뒤로 확 멀어지는 것에 억울하기도 했다. 그래서 항상 바다가 다가오면 그에 맞춰 애꿎게 발로 찼다. 누군가 보면 물장구치는 걸로 보이겠지만 그게 아니라는 걸 뒤에 있던 엄마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엄마는 항상 내가 뒤로 넘어지지 않을까 혹은 바다에 휩쓸리지 않을까 싶어 두 팔을 내뻗고 있었다. 뒤로 돌아 확인하지 않아도 그런 것쯤은 쉽게 느껴졌다. 만든 발자국을 없애고 나면 눈치 보듯 말없이 뒤로 물러나는 바다가 이번엔 새로 산 신발을 탐낼 때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신발이 아닌 신발을 신고 있는 발을 탐낸 걸 수도 있었다. 바다가 새로 산 신발을 덮었고 그 안으로 모래알들이 들어왔다. 찝찝해서 털어내려 했으나 그럴수록 모래알은 다닥다닥 붙어댔다. 하는 수 없이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하지만 나는 쉽사리 뒤를 돌아볼 수 없었다.

엄마는 아무 말도 없었다. 그저 내 뒤에 서있을 뿐이었다. 엄마의 인기척이 바다 때문에 느껴지지 않았지만, 인기척이 없어도 엄마가 있었다. 언제나처럼, 내 뒤에서 말없이 손을 내뻗고 있을 것이다. 아니다. 그렇지 않다. 그렇게 생각했다. 왜냐면 엄마는 바다에 있을 땐 한 번도 내 앞으로 온 적이 없었으니까. 늘 내 뒤에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손 따위. 그 자리에 가만히 서있는 틈을 타서 바다가 또 다시 내 발을 덮쳤다. 핥고 간 신발 안으로 물과 모래알들이 침범했다. 새 신발은 금세 더러워졌다.

내 신발 탐내지마, 바보야. 아까 만든 모래성만으로 만족하란 말이야.

내 불만에도 엄마는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언제부터 대답이 없었더라. 너무 까마득해서 이제 엄마의 목소리가 기억나지 않았다. 엄마는 부끄럼쟁이였다. 내가 뒤를 돌아보면 항상 어딘가로 숨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막다른 곳에서 뒤를 돌 상황이 오면 항상 두 눈을 가리고 뒤를 돌아 몇 걸음 앞으로 걸었다. 그렇지 않으면 엄마는 부끄러워서 다른 곳으로 숨어버릴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도 나는 두 손으로 눈을 가렸다. 바다를 등져 앞으로 몇 걸음 걸었다. 모래가 제멋대로 춤추고 있어 자칫하다 넘어질 것만 같았다. 그러나 여기서 넘어지면 엄마는 또 어딘가로 숨을 게 분명했다. 나는 최대한 조심히 걸었다. 바다가 울어대는 소리만이 들렸다.

 

전화가 왔다. 바지 주머니 속에서 진동하는 휴대폰을 들어 확인하니 편집장이었다. 받지 말까 하다가 통화 버튼을 눌렀다.

작가님, 작품은 쓰고 있으신가요?

아니요.

그럼 아이디어는요?

아니요.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침묵 속에서 한숨소리가 조용히 피어올랐다. 나는 모르는 척 했다.

이제 얼마 안 남으셨어요. 이번 잡지에는 글 올리셔야죠.

그렇죠.

변덕으로 갑자기 하시겠다고 한 거 아니잖아요. 그러니 책임감 있게 일 진행해주세요, 제발.

제발이라는 말에 힘이 실려 있었다. 힘이 실려서 무거운건지, 무거운 단어여서 힘이 실리는 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다만 그것이 아무런 말도 할 수 없게 만든 것에 효과적이었다는 것만 알 수 있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다시 연재를 하겠다는 건 단순한 변덕이 아니었다. 돈이 부족해서, 필요해서 그랬다. 글을 쓰는 건 단순히 유흥거리가 아니라, 생계가 달려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평범한 일상에서 평범하지 않은 찰나를 포착해 적어야 하는 것은 과연 쉽지 않았다. 그것은 변덕이 아니다. 변덕일 수가 없다. 변덕이 되면 안 된다. 돈이 필요한 건 변덕이 아니잖아요. 늘 그런 거지. 한 번 더 말을 삼켰다. 목구멍이 따가웠다.

죄송합니다. 빨리 써서 보내드릴게요.

전화를 끊자 곧바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엄마를 따라 잡지에 글을 실을 수 있게 된 것까진 좋았는데, 가끔 그게 섣부른 판단이 아니었는지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해봤자 이미 늦었다. 돌이킬 수도 없고, 돌이키고 싶지도 않다. 물론 그만둘 수도 없다. 돈이 없으니까. 나는 돈이 필요하니까. 돌아갈까 하다가 조금만 더 있기로 했다. 어차피 지금 가봤자 글이 써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멀리서 급하게 엑셀을 밟고 달려오는 차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점점 커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타이어가 터질 것 같은 소리와 함께 급정거를 했다. 바로 뒤에 있는 길 쪽에 누군가 차를 세운 게 느껴졌다. 굳이 뒤돌아 누구인지 확인하지 않았다. 확인해봤자 모르는 사람일 뿐이었다.

차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급하게 모래사장 쪽으로 남자가 뛰어왔다. 그는 모래사장 위에 가만히 앉아있는 나를 지나쳐 바다 앞까지 달려 나갔다. 그리고 소리 지르기 시작했다.

. 아악. 아아악.

남자가 소리 지르는 동안 나는 미간 하나 찌푸리지 않았다. 찌푸릴 수 없었다. 소음이라 생각되지 않았다. 오히려 눈을 감고 마치 음악을 감상하듯 소리에 귀 기울였다. 바다 위로 남자의 애처로운 목소리가 돌아다녔다. 그것은 꼭 바다 위를 걸어 저 멀리 나아갈 것만 같았다. 그것과 같다. 아니다. 달랐다. 이렇게 애처롭지 않았다. 좀 더 덤덤했고, 담담했고, 건조했다. 아니다. 그것이 아니다. 너는 아직 모른다.

안다는 게 과연 뭘까. 나는 엄마에 대해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 애처롭지 않고 무미건조했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 그렇다면 건조한 부분이 과연 바다에 라고 말할 때인지, 뿌려줘 라고 말할 때인지. 그것도 아니면 바, 아니면 다, 아니야 에일 거야. 그러면 나머지 뿌, , 줘 에는? 그것도 아니면 문장 전체인지 아니다 애초에 문장에 깃들여있지 않았는지 그것이다 나는 어느 것 하나에 안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나는 엄마에 대해 어디까지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엄마는 나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있을까. 어디까지. 내가 당신을 따라 잡지에 글 올리는 일을 하는 것, 아직까지도 당신의 유골함을 가지고 있다는 것. 아니다. 어느 날에는 유골함을 그냥 바다에 던지려 했던 것, 겸사겸사 나도 함께 던지려 했던 것, 전부다다 그 모든 것이다 아니면 그 전에 중학교 때 죽으려 했던 것까지. 엄마가 날 알아? 한순간 방안에서 느꼈던 서늘함이 집밖으로 나와 여기까지 온 듯 몸이 무거워졌다. 누군가 나를 안다고 생각하는 말만큼 공포스러운 말이 있을까 싶었다. 한껏 추워져 두 팔로 몸을 끌어안을 때 이번엔 엄마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말을 걸어왔다. 돈이 없는 것까지 알아 거지새끼야.

남자의 소리가 들리지 않은지 한참이 지나서야 다시 눈을 떴다. 지쳤는지 그는 모래사장 위에 주저앉아 있었다. 남자는 당장이라도 바다로 뛰어들 것처럼 행동했지만 막상 투명한 절벽 앞에서니 망설이는 것 같았다. 마치 약을 잃어버려 그 앞에 앉아있는 나 같았다.

중학생이 되었을 무렵 죽으려 했다. 병원이 집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지 5년이 되던 때였다. 하지만 막상 죽으려하니 뛰어내리는 건 무섭고 손목을 긋는 건 아플 것 같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게 수면제였다. 그러나 그것도 한 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의사의 처방전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병원에 갈 돈이 없어 처방전을 구하지 못했다. 그러다 예전에 엄마의 처방전으로 받아온 수면제가 생각났다. 있을까 싶어 집안을 뒤졌지만 끝내 나오지 않았다. 하긴 5년이나 지났으니까. 약국에서 수면유도제를 사서 바다로 갔다. 그때가 아마 바다를 두 번째 보던 때였을 것이다.

두 번째로 본 바다는 어땠더라. 여전히 멀리서 볼 때와 가까이서 볼 때의 괴리감에 무서워했던 것 같다. 아직도 내가 만든 모래성을 가져갈 것만 같기도 했다. 그때 결국 바다 앞으로 갈 수 없었던 나는 하루 종일 모래사장 위에 앉아 바다를 바라봤다. 모래사장 위에 있어도 바다는 푸르게 보였다. 분명 사람들은 저 겉모습에 속아 바다한테 다가갈 것이라는 생각이 온몸을 내리눌렀다. 그리고 접촉한 비로소 모래사장처럼 휩쓸려가겠지. 한 줄기 빛 아래에서 아름다운 목소리로 난파된 사람들을 유혹하던 세이렌은 바다 그 자체였다.

문득 손가락에 모래감촉이 느껴졌다. 나는 모래를 한 움큼 쥐다가 놓고를 반복했다. 뼛가루를 만져 본 적은 없지만 만진다면 이런 느낌일까 싶었다. 나는 모래를 한 움큼 쥐고서 바다 쪽으로 던졌다. 모래는 바다 안에 들어가지도 못한 채 허공에 휘뿌려지다 다시금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달라진 게 없었다.

손을 모래사장 위에 비볐다. 겨울바람에 식은 모래사장은 꼭 싸늘한 방 안 같았다. 서늘한 여름이 깔려 있는 방 안. 몇 십 년 째 깔려있어서 물로 씻겨도 지워지지 않고 수건으로 닦아도 사라지지 않는 곰팡이 같았다. 벽에 들러붙은 곰팡이가 점점 커지고 이윽고 나까지 집어 삼킬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처음 본 수면유도제는 바다를 닮아있었다. 겉은 푸르지만 속이 훤히 보였다. 약을 한 알씩 뜯어서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바다가 쪼개져 손바닥 위를 돌아다니는 것만 같았다. 약들을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모래성을 쌓고 싶어.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 뒤에 아무도 없는데도, 손을 내뻗고 있는 사람이 없는데도 혼자서 모래성을 쌓을 만큼 아직도 뒤를 쉽게 돌지 못할 만큼 나는 자라 있었다.

엉성하게 쌓은 모래성이 완성되어갈 때쯤 바다는 어느새 내 주위를 맴돌며 혀로 모래성을 핥았다. 그렇게 맛을 보다가 냉큼, 집어 삼켰다. 모래성은 또 다시 사라졌다. 나는 그저 그것을 바라볼 뿐이었다.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모래성이 꼭 나 같았다. 물에 닿으면 좀 더 단단해지면서, 너무 많이 닿으면 금방 무너지는 게 그랬다. 물과 친하다고 과시하던지, 아니면 물이 무섭다고 말하던지. 지조 없게 뭐하는 짓이냐며 나도 모르게 코웃음을 쳤던 기억이 생생했다.

코웃음 치며 발 가까이 다가오는 바다를 바라보다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이제 약을 먹을 차례였다. 그러나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로 울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약이 사라지고 한 알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나밖에 없어 더 푸르고 투명해 보이는 알약이 한순간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하나 남은 약도 바다한테 던졌다. 약에 취해서 그런지 바다가 잔잔했다. 내가 뭘 준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삼켜버리는 바다를 보다 조용히 집으로 돌아갔다.

그때 죽어야 했다 했을까.

그렇게 생각하자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모래사장 위에 주저앉아 있던 남자가 엉엉 울기 시작했다. 거리를 지나다니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이 모래사장 안으로 들어오지도 않은 채 그를 보며 수군거렸다. 고개를 하늘로 치켜 올리며 마치 목청을 자랑하는 듯 우는 남자 앞에서 일렁이는 바다를 보니, 위로하고 있구나 싶었다. 피할 겨를도 없이 파도처럼, 그가 부러워졌다.

나한테는 그러지 않았잖아.

그 모습을 보고 있기 힘들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신발 안에 있는 모래를 털어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해가 저물고 있었다.

 

집 문을 열자 가장 먼저 보이는 건 엄마의 유골함이었다. 책상 위에 반듯하게 놓여있는 유골함은 꼭 집에 들어온 나를 반기는 것만 같았다. 나는 책상 앞으로 가 유골함을 쓰다듬었다.

엄마는 언제나 누워있네.

할 말은 그게 다였다.

병원이 집이 아니란 걸 깨달았을 때, 엄마는 이미 힘없이 침대 위에 누워있었다. 그러고 있으면 나는 침대 위로 올라와 옆에 누웠다. 침대는 차가웠다. 병원에 있는 것과 같아 이상하게 안정되기도 했다. 안정되면서도 몰려오는 차가운 떨림에 더욱 엄마 옆에 붙었다. 침대 밑으로 떨어지면 더 차가워질 까봐, 그래서 엄마가 추울 까봐 고개조차 엄마 쪽으로 오므리고 있었다. 엄마는 여전히 아무런 미동이 없었다. 간간이 오르락내리락 거리는 옆구리를 보지 않으면 아무도 없는 것만 같았다.

한 번은 그런 적이 있었다. 단순히 칭찬을 받고 싶었다. 엄마 힘드니까 밖으로 안 나가도 되게 하려고 처방전을 들고 약국으로 갔다. 나는 땀을 닦지도 않고 약사 아저씨에게 처방전을 내밀었고 그는 나와 처방전을 번갈아 보다 말했다.

처방전 네 거니?

그렇게 묻는 아저씨의 눈빛이 아직도 가슴에 살아 움직였다. 처방전에 이름 써있지 않느냐고, 왜 그렇게 보냐고 묻지도 못한 채 묻는 말에 대답했다.

아니요, 엄마 거예요. 엄마가 아파서 제가 대신 왔어요.

아저씨는 알았다며 약을 주고 말했다.

수면제와 진통제는 자기 1시간 전에 먹으라고 어머니께 전해주렴.

무엇이 그리 급했는지 뛸 때마다 약통에 담긴 약들이 살려달라며 소리를 냈다. 집에 가봤자 엄마는 여전히 힘없이 침대에 누워있고 그래서 반겨주지도 못할 거라는 걸 알면서도 힘을 다해 집으로 뛰어갔다. 그렇게 뛰면 무언가 달라질 줄 알았다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다음 어떻게 했더라. 아마 가져온 약을 바닥에 던졌던 걸로 기억한다. 그래도 엄마는 아무런 반응조차 없었다. 뭘 기대했어. 아니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다.

원래 약을 먹으면 아무 반응도 하지 않게 되는 건가. 기척조차 없는 엄마 옆에 누웠다. 엄마한테서 낯선 향이 났다. 낯선, 이라고 낮게 읊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었다. 낯설지 않았다. 병원 1층에서도 많이 맡아본 향이었다. 향을 1층 로비에서부터 지하 1층에 있는 장례식장으로 이어져있었고, 보이지 않아도 그게 느껴졌다. 그래서 엄마가 어디에 가도, 더 이상 뒷모습조차 볼 수 없어도 어디로 갔느냐 묻지 않았다. 당연히 물어볼 사람조차 없었다.

다시 엄마를 병원에 돌려보낸 사람은 담당 편집장이었다. 그녀는 병원으로 엄마를 보내 장례 절차를 밟게 하는 것도, 장례식에서 사람을 맞이하는 것도 도와줬다. 왜 도와줬는지 아직까지 모른다. 물어보고 싶지 않았다. 물어보지 않아도 안다. 장례식 내내 그녀의 눈은 시계를 향하고 있었으니까. 그러기에 내 식대로 생각하기로 했다. 편집장은 원래 이런 일까지 하는 거라고. 그러면 참 고된 일이네 하며 남몰래 웃었던 기억이 났다. 그럼 만약 내가 죽으면, 내 편집장도 날 위해 장례식을 도와줄까. 별 시답잖은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불을 켜지도 않은 채 침대 위에 누웠다. 퍼석 소리를 내며 패딩에 점점 공기가 빠지기 시작했다. 눈을 감았다. 눈을 감고 습관처럼 또 언제부터, 언제부터를 내뱉었다. 딱히 멈추고 싶지 않았다. 입안이 마르면 자동으로 멈출 걸 알았으니까. 별로 궁금하지도 않은 걸 궁금한 척 해서 습관으로 남은 것이 왠지 모르게 씁쓸했다.

 

머릿속 어느 구석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가끔 내 목소리보다 한 옥타브 높은 소리를 내기도했고, 낮은 소리를 내기도 했으며 엄마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래서 가끔 나와 반대되는 말을 내뱉으면 그것을 믿어야 할지 걸러야 할지 고민됐다. 믿는 게 아니라 이해해야 하는 것인가. 이해했다. 이해한다. 이해할 것이다. 각기 다른 목소리로 다른 형태를 내뱉던 목소리에, 무엇을? 이라 묻자 이번에는 평소의 내 목소리가 코웃음 치며 말했다. 무엇이든. 그리고 눈을 떴다. 또 다시 알람 소리가 울렸고 식은땀이 흘렀다.

이번에는 앞이 흐릿하지 않아 시간이 제대로 보였다. 새벽 327. 책상 위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유골함을 바라보다 손을 뻗었다. 오늘이다. 무엇을? 생각하는 것보다 몸이 더 빨랐다. 나는 품속에 유골함을 넣고 현관문을 나섰다. 그래 오늘이다. 무엇을? 달리기 시작했다. 유골함 속에 들어있는 재는 생각보다 더 가벼워 아무것도 없는 것만 같았다. 약통을 들고 뛸 때와 다른 느낌이었다. 그래서 간간이 품 안을 확인해야만 했다. 무사히 없어졌으면 잘 있기를. 오늘이야말로, 오늘이야말로.

바다가 보였다. 새벽 바다는 모든 어둠을 흡수한 것 같아 끝이 보이지 않았다. 마치 지구의 절반 이상이 사라진 것 같았다. 꼭 처음 봤던 바다 같았다. 낭떠러지 안으로 들어갔다. 발목이 잘리는 것만 같았다. 춥다. 서럽다. 차갑다. 바다는 여전히 내 발을 원하고 있었다. 어쩌면 처음 날 봤을 때부터 지금까지일지도 몰랐다.

바다를 처음 본 건 아직 병원에 있을 때였다. 엄마는 병원 침대에 누워있고, 왼팔에 수액을 맞고, 가끔 죽은 듯 자고 그리고 나는 그것을 보는 나날들이 반복되고 있었다. 심심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것밖에 하지 않아서 다른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걸 생각한 적이 없었다. 바다를 가게 된 건 심심하지 않은 평범한 날이었다. 바다가 뭔지도 몰랐다. 그저 엄마가 가자고 해서 따라간 것뿐이었다. 바다를 처음 봤을 때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멀리서 보면 푸르고 가까이서 보면 투명한 것이 신기하면서도 무서웠다. 왜 내가 다가가면 푸른색이 사라지냐고 엄마한테 말했던 적도 있었다. 그때 나는 바다가 무서워 들어가지도 못하고 엄마와 같이 모래성을 쌓으며 놀았다. 깃발대신 부러진 나뭇가지를 성 위에 꽂고 완성했다며 엄마에게 안기기도 했다. 하지만 완성된 모래성이 유지되는 건 찰나였다. 바다가 모래성을 삼켜버렸기에.

모래성이 삼켜진 게 충격이었는지 엄마는 쓰러졌다. 엄마는 마음이 약했다. 모래성은 다시 쌓으면 됐는데, 엄마는 그 생각을 하지 못한 듯 싶었다. 몇 분 후 거센 엑셀 소리가 들려왔다. 119 사람들이 응급차에서 내려 엄마를 태웠다. 지나가는 행인 중 한 명이 신고했나 싶었다. 엄마가 응급차 안으로 들어가고, 나도 뒤를 따랐다. 차안에 올라타 창문 너머로 바다를 봤다. 창문 너머로 본 바다는 잿빛이었고, 바다의 또 다른 색에 나는 몸을 움츠렸다.

멀리서 보면 한없이 푸르기만 한데 가까이서 보면 공허하리만치 투명하다는 것이 믿기지 믿고 싶지 않았다. 그 괴리감을 이해하기에 그때의 나는 무척 어렸을 뿐더러, 세상에 이해해야할 것도 많은데 굳이 바다까지 이해하고 싶지는 않았다. 바다를 싫어한 건 그 괴리감 때문만이 아니었다. 기껏 쌓아올린 모래성을 욕심내며 휩쓸어갔던 것, 그것도 엄마랑 같이 만든 것을 빼앗아 간 것도 한몫했다. 엄마와 쌓아올린 처음이자 마지막 모래성을 바다는 다음에도 기회가 있을 제까짓 게 어떻게 알아 거라는 마냥 휩쓸고 갔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바다가 허리를 감싸고 있었다. 나는 홀린 듯 유골함 뚜껑을 열어 저 멀리 던졌다. 작아서 그런지 무언가 빠졌다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그럼 나도, 생각하다 고개를 내저었다. 그 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유골함 안에 손을 넣었다. 부드러운 가루들이 만져졌다. 누가 여기에 모래를 채워 논 걸까. 사실 이건 뼛가루가 아니라 그냥 평범한 모래인 거야. 지금이다. 그러니까 그냥 뿌려버려도 괜찮았다. 지금은 아무도 없으니 괜찮다. 그래 지금이다. 재를 움켜잡은 손이 어느새 머리 위로 올라갔다. 던지자. 뿌리자. 지금 뿌리면 돈을 안 내도 된다. 머릿속에서 각기 다른 세 목소리가 어서 뿌리라고 말하고 있었다. 다들 그것을 원하고 있었다.

머리 위로 올린 팔이 저렸다. 피가 안 통하는 것 같았다. 얼마나 이 자세로 있었더라, 기억나지 않았다. 수면 위가 주황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이제 곧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할 시간이었다. 나는 들어 올린 손을 도로 내렸다. 던지지 못했다. 못하겠다. 할 수 없다. 던지는 행위 자체를 어떻게 해야 할지 조차 까먹었다. 뒤로 돌아볼 수 없어 앞으로 걸어가는 듯하며 모래 사장 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아직도 뒤조차 마음대로 돌아볼 수 없었다.

걷다가 바다 밑에 깔린 바위에 발이 걸렸다. 한순간 휘청이다 자세를 곧 잡았지만 들고 있던 유골함에 바다가 맞닿았다. 나는 물속에 들어간 유골함을 보다 모래사장 쪽을 바라봤다. 아침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아무것도 모르는 채 지나가고 있었다. 유골함의 뚜껑을 열었다. 그 안으로 바닷물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뼛가루들이 유골함 밖으로 빠져나가 주위로 퍼졌다. 별 생각이 들지 않았다. 못했다는 말이 더 알맞을 것이다. 나는 유골함을 바다에 빠뜨리는 척 밑으로 가라앉혔다. 몸에 뼛가루들이 달라붙었다.

눈을 감았다.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모래사장 위에 누웠다. 바다가 다리를 덮었다. 여전히 차갑고, 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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