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꽃

by 친절한아굴리 posted Oct 30,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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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꽃

 

감이 영글었다.

이빨 하나만 들어가더라도 온 입안을 떫음으로 가득 채울 것 같던 샛초록의 감이 어느덧 곱디고운 주황색으로 물이 들었다.

아직 며칠은 더 두어야 햇빛을 받고 더 곱고 맛있게 익을 텐데..

속마음은 애가 타 전전긍긍 하게 된다. 언제 까치가 와서 이 감을 탐할지 몰라..

 

열여덟의 나이에 얼굴도 모른 남자와 혼인을 했다.

그 시대에 자라난 여자답게 여자로서 순종적임을 배운 그녀는 살림을 사는 일 외에도 농사일,바다일을 마다않고 집을 위해 나서왔다.

하지만 누구보다 내 생활이 행복했다.

결혼한 그해 첫 아이가 생겼고 경상도 남자라 무뚝뚝했지만 애살맞은 눈빛을 주는 남편이 있었기 때문에 남부럽지 않을 그런 행복한 생활이었다.

 

그 이듬해 둘째가 태어났고, 꼭 하나는 있어야 한다는 아들이 아직 그녀에게는 들어서지 않았다. 자식이라고는 딸 둘이었다. 그래도 좋았던 여자였다. 남들은 아들이 없다며 있는 핀잔 없는 핀잔을 만들어 주었지만 그녀에게는 가정을 든든하게 지켜주던 남편이 있었고 기댈 곳이 있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남편은 점점 병약해져 갔다.

이유 없는 통증으로 고통이 점점 심해져 갔다. 변변찮은 진통제가 없던 시절이라 술에 의지해 잠이 들기도 했고 때로는 하루 종일 이불 밖을 나서지 못할 때가 점점 늘어갔다.

 

군에서 선임들에게 맞은 곳들이 몇 년이 지난 지금 점점 몸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었다. 특별한 병명은 없었다. 여자는 백방으로 약을 찾아다녔지만 고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렇기에 여자는 더 강해져야했고 집안의 살림과 바깥일을 도맡아 해야 했다.

 

둘째와 세살 터울의 셋째가 태어났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그 또한 딸이었다. 하늘을 원망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내게 주어진 소중한 자식이었고 무엇보다 하늘에 빌 수 있는 소원이 딱 하나라면 신랑의 건강이 가장 하늘에 빌고 싶은 소원이었으므로 낭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아장 아장 걸음마를 떼어가는 셋째를 이불속에서 바라보며 웃음을 짓던 남편은 그 아이가 다섯 살 되던 해에 이불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새하얗고 노란색이 섞인 감꽃이 똑똑 바닥으로 떨어져 있다.

때가 꼬질 하게 낀 손으로 하얀 감꽃을 주워 하나하나 새하얀 명주실에 꿰었다.

정성스럽게 고사리 손이 만든 목걸이를 아이들은 아버지의 관속에 고이 담아드렸다.

 

신랑 잡아먹은 여자, 팔자가 쎈 여자, 박복한 여자 이웃과 집안 어른들의 수군거림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했던 여자의 곱던 얼굴은 어느새 억척스러움으로 변해갔다.

들에 논에 바다에 할 것 없이 밖에 나가 늘 일을 해온 여자는 검게 그을리고 젊은 나이라 볼 수 없는 검버섯이 얼굴을 가득 채웠다. 누가 봐도 억척스러워 보였다.

 

하지만 내가 견뎌내지 않으면 이 아이들은.. 안 된다.그렇기 때문에 나는 다 받아들이고 이겨내야 한다.

 

오래도록 신랑은 병상에 누워있었으므로 모아놓은 돈도 없었다.

매일매일 벌어 매일매일 아이들에게 먹일 것을 구해야 했다.

돈을 벌지 못한 날은 바닷가에 나가 해루 질을 해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해 먹이고 나는 덜 먹어도 때론 먹지 않아도 괜찮았다.

 

옆 동네서 형님네가 찾아왔다.

문중에서 자손들에게 조금씩 돈이 나오는데 그 돈은 자기들이 가져간다는 말이었다.

우리 집에는 아들이 셋이라 키워야 하는데 돈이 너무 들고, 더군다나 동생은 죽었기에 그 명목은 형인 내가 받는 것이 마땅하다는 소리였다.

딸자식은 아무 소용이 없지.

 

그럼 우리 아이들은 무엇이란 말인가..하지만 여자가 큰소리 낼 수 없는 시절이었으리라.

속으로 화를 삭이며 분통을 주먹으로 가슴을 쳐댔다.

이래야만 내가 이겨낼 수 있겠구먼..

 

밤늦은 시간까지 삯바느질에 엄지와 검지는 불어 트고 굳은살로 딱딱해지지만 이불에 나란히 누워있는 세 딸내미들은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내게 보물 같은 아이들이었다.

그래 난 지금 잘하고 있다. 잘하고 있는겨..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구먼.

 

여유롭지 못했던 형편은 언제나 똑같았다. 먼저 자라난 두 딸아이들은 일찍이 돈을 벌기 위해 중학교까지 밖에 학업을 마치지 못했다. 끝내 내 한이 되어 남겠지만 때론 어쩔 수가 없는 선택이 될 때가 있다. 여자는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나마 나아진 살림으로 남은 막내를 고등교육까지 시켰다.

 

어느 유복한 집안의 아이들보다 잘 키운 아이들이었다.

성격은 제각기 달라 첫째는 온순했으며 둘째는 유순했으며 강했고 셋째는 똑 부러졌다.

첫째는 직물회사에 들어가 돈을 벌어 매달 엄마의 통장으로 돈을 보냈다. 살림살이에 보탬이 되라며 겨우 한달 살 용돈을 빼고는 모두 보내주었다.

첫째는 23살 되던 해에 둘째 딸아이의 친구 소개로 한 남자를 만나 결혼을 했다.

첫째 사위가 되던 사내는 손가락이 하나 없는 사내였다. 사내는 성격도 서글해 보였고 인상도 좋아보였다. 하지만 아홉 개의 손가락으로 세상을 잘 살아나갈 수 있을까 걱정이 되던 여자였다. 딸아이는 손가락 하나 없는게 뭐가 흠이야라며 그 시대 그 나이대가 거쳐야 하는 결혼으로 들어섰다. 엄마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주어야 했다는 마음으로 결혼을 서두른 건 아닌지 하는 미안한 마음이 앞섰지만 정말로 다행인 것이 그 아이는 잘 살아주었다. 서로 의지하며 두 아이를 낳고 잘 살아갔다.

하지만 어미의 박복함이 첫째라 옮겨 간건지 그 아이에게도 아들은 들어서지 않았다. 내 죄인 것만 같았던 여자는 한 번씩 잠들기 전 누워 가슴을 주먹으로 쳐댔다. 내가 받았던 괄시를 그 아이 또한 받을 것을 생각하니 도통 근심이 가시지 않았다.

첫째가 결혼을 하고 여자의 근처에 살았지만 사위가 이전에 살던 고향으로 내려가길 원해 그 가족이 여자의 곁을 멀리 떠났다.

홀로 남겨진 장모가 안쓰러웠는지 사위는 매주 아내와 아이들을 고속버스에 실려 주말을 보내게 했다. 정이 넘치는 사람. 손가락 하나 없는 게 뭐 큰 대수라고 내가 처음 그 걱정을 했는지 여자는 나도 못난 것이 남을 흉보는 속물이란 생각을 했다.

 

유순했던 둘째는 썩 공부를 잘했었다. 하지만 첫째와 마찬가지로 중학교 공부까지 마치고 직물공장에 들어갔다. 형편이 좋지 않았던 대부분의 아이들은 중학교 공부도 대부분 마치지 못하고 일을 하는 게 대부분이었지만 여자는 그렇지 않았다. 딸로 태어나 받는 괄시를 3년이라는 중학교 학력이 조금이나마 가려주길 바랬다.

중매였으나 눈썹이 짙은 이상형의 남자를 만나 친정 근처에 가정을 이루었다.

열심히 일했던 것만큼 큰 성과로 돌아오지 않아 내내 형편은 어려웠지만 누가 보기에도 화목한 가정을 이루었다. 여자의 소원이고 소원이던 아들이 둘째의 첫 아이로 들어섰다.

이것이 무엇이라고 하늘을 가진듯한 벅참이 떠올랐다.

 

그래 늬들이 괄시하던 우리도 아들이 있다. 이것들아.

 

하지만 좀처럼 형편이 나아지지 않았던 둘째네는 사글세방을 빼고 친정이었던 여자의 집 한켠에 짐을 들였다. 마음이 아팠지만 이 또한 뭐 어떤가 생각한다.

딸자식과 사위 데리고 사는 복 많은 이가 어디 많단 말인가?

 

바닷가에서 살던 이는 바다를 생업으로 삼듯 신랑과 함께 살던 바다를 떠나 도시로 나왔어도 여자는 시장에서 생선 장사를 했다.

 

이미 딸 둘은 가정을 이뤘을 만큼 자랐고 막내 또한 자기 밥벌이를 하고 있지만 여자는 여전히 억척스럽게 돈을 벌었다.

자식을 위함이었다.

나는 늬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줄 것이다.

아비 없이도 기댈 수 있는 커다란 울타리가 되어 줄 것이다.

 

첫째와 둘째가 먼저 생업으로 나가고 남은 막내는 원하던 고등학교까지 다녔다. 운동을 하고 싶어 했기에 태권도를 배우게 했고 언니 둘보다 여유롭게 키워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랬던지 막내는 고집이 약하지 않았다.

그 고집이 최고였던 날은 12살 많던 사내를 남편 삼겠다며 인사를 시키러 온 날이었다.

 

늬 형부보다도 나이가 많은 남자를 데리고 오면 어쩌자는 것이냐?

 

막내딸은 아랑곳하지 않고 고집도 절대 꺾지 않았다.

사내도 운동을 하던 사람이었다.

딸이 운동을 해서 회사 실업팀으로 취직을 하게 되었는데 사내 또한 근처 회사의 실업팀 축구선수였다. 두 언니 불러 뜯어 말리고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세워도 그 고집은 절대 꺾이지 않았다.

 

그래, 엄마가 너한테는 결국 질 수밖에 없겠다.

 

결국 여자는 막내딸의 결혼을 허락했고 그해 가을 그 사내와 결혼해 여자의 막내 사위가 되었다.

 

그래. 되었다. 되었어. 내 이제 여한이 없네. 우리 자식들 내가 이렇게 다 출가 시키고 든든한 사위들 맞이하고 나니 내 이제 여한이 없네.

여보 당신 하늘에서 보고 있는가?

나 억척스럽게 살아와 당신과 처음 만났을 때 새색시 얼굴을 이제 손톱의 때만큼도 못 찾겠지만, 당신 닮은 아이들 이렇게나 잘 키워 든든한 어미 노릇하고 있다네.

당신 몫 내가 남아 좀 더 채우고 갈 테니 좀 더 하늘에서 기다리고 계시게.

 

시장 난전에서 생선을 팔다 보니 자릿세 내고 하는 상인과는 늘 마찰이 있었다.

서슬 퍼런 욕지거리를 서로 해대며 싸우고 속에서부터 끌어 모은 가래침을 뱉어 바닥에 내뱉었다.

 

서방 일찍이 잡아먹은 년이 성질머리 더럽기는 하늘같고만.

 

그래서 네년이 날 위해 뭘 도와줬는가? 지 자식새끼 결혼도 못해 집구석에 놀고먹는데 뭐가 어째.

 

무허가로 장사를 하는 난전에서 늘 있는 일이었지만, 싸움은 늘 익숙지 않았고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방문을 닫고 누가 들을세라 가슴을 퍽퍽 쳐댔다.

 

괜찮다.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녀. 더한 시간도 여태껏 보내왔는데 이까지 것은 암 것도 아니여.

 

밭일을 억세게 한 사내들에게서 보이는 굵은 주름이 여자의 이마에 내려앉았고, 일찍이 부터 생긴 검버섯은 여자의 얼굴을 좀더 억센 사람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여자는 엄마이었기에 억세었다. 엄마를 벗어 버린다면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여리디 여린 소녀 였으리라.

세상은 너무도 일찍이 여자에게서 큰 그늘을 빼앗아 갔다.

아이들이 있었기에 여자는 그 그늘을 자신이 대신해야 했었다.

 

고향으로 돌아가며 살던 아파트를 처분한 첫째 사위에게 돈을 빌려 시장에 자리를 얻었다. 첫째 네도 형편은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고향집이 있고 사돈네가 농사를 짓기에 먹을거리는 큰 걱정이 없었다. 그래서 염치불구하고 사위에게 도움을 받았다.

 

여지껏 이리 너를 키웠으면 엄마 이정도 도움은 좀 받아도 되겠지?

 

이리 생각 할수도 있지만 여자는 그렇지 않았다. 그저 미안함 뿐이었다.

 

갚을것이여. 엄마가 금세 갚을 것이여. 그냥 달라는거 절대 아니여.

엄마가 금세 자리 잡아 두배 세배로 갚아주마. 조금만 기다리라.

 

여자는 장사수환이 꽤나 좋았다. 뒤에서 욕을 하건 말건 지나가는 손님들에게 알랑방귀를 껴가면서 여자는 장사를 잘했다. 시기와 질투는 늘 도 맡아놓은 대상인 듯 손님 뺏긴 옆 상인들과 싸움 없이 조용한 날 없었지만 아랑곳 하지 않았다. 그저 돈을 벌면 되는 것이다. 힘든 건 아무렇지도 않다. 저녁 방문 닫고 그저 가슴 몇 번 퍽퍽 쳐주면 끝날일이다.

그럼 그 다음날도 다음날도 또 지낼 수 있지. 그렇고말고.

 

억세 보이던 여자와 주위 상인들과 마음을 트기 까지 아주 긴 시간이 필요했다. 식사시간도 잊고 생선을 팔아대던 여자에게 맞은편 여자가 검은 비닐에 쌓인 주먹밥을 집어 던진다.

 

밥은 쳐먹고 일해야 욕도 치고 싸우지 원.

 

비닐을 집어 들고 여자는 물끄러미 앞집 여자를 한참이나 쳐다봤다.

오랜 기간 친구라는 말도 잊었고 이웃도 없었다.

이전의 이웃은 서방 잡아먹는 년이라 수군거리고 다녔고 지금의 이웃은 딸 셋밖에 없는 박복한 할머니라고 나를 말하고 다니는 통해 어느 하나 정줄 곳 없었다.

그저 여자는 자식이면 되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따뜻함이었다.

 

석이어멈이라는 이 여자는 아들만 넷 낳은 우리말로 복 터진 여자였다.

하지만 첫째 아들은 번번이 사업실패에 돈을 다 끌어다 쓰고, 둘째는 술 먹고 집으로 들어오다 차에 치였다고 했다. 그렇게 병원에 한 달을 살다 세상을 등졌다고 했다. 셋째 아들은 외국여자를 데리고 왔는데 몇 달 못살고 이혼을 했고 넷째 아들은 아직 대학공부를 한다고 했다.

 

그래도 우리 막내가 젤 이뻐야. 즤이 형들은 우찌되었든 이제 내 희망이여.

신랑 놈은 바람나서 우짜다 한 번씩 집에 들어오는데 돈만 되면 어서 다른 데로 이사하고 치아뿔겨. 더는 보고 싶지도 않여.

 

억척스럽게 사는 사람에게 억척스럽게 대들고 싸우는 이 또한 같은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었다. 잘사는 사람들이 들으면 비웃을 그런 친구가 여자에게 생겼다.

 

나 말고 불쌍한 사람은 자네가 또 처음이네 그려.

 

여자는 석이어멈에게 연민의 정을 느꼈다. 시장에 불이 꺼지면 함께 막걸리 따뤄 잔을 기울이고 밤새 떨어대는 궁상이야기에 시간가는 줄 몰랐다.

 

건너편에서 장사하던 분이 할매는 치매에 걸렸다지. 요 앞에 농협 일층 병원에 가면 치매 예방하는 약 지어준다니 우리도 지어먹어야 하지 않겠는가. 믿고 의지할건 우리 몸뚱아리뿐인데 치매 걸리면 쓰겄어?

 

아니여. 난 당뇨는 있어도 내 정신은 멀쩡 혀. 여지껏 어떻게 잡아온 정신인데. 허허허

 

석이어멈과 헤어져 집으로 들어와 여자는 닳아 오르는 취기에 옷도 갈아입지 않고 비린내 나는 몸으로 방바닥에 들어 누웠다.

 

난 멀쩡한디 무슨 치매약이여. 생전 당뇨약 말고는 먹어본 적이 없어.

정신 약한 사람들이나 하는 소리지.

 

중얼중얼 대던 여자는 이내 코를 골며 잠이 들었다.

 

까치까치 거리는 까치소리에 잠에서 깼다. 취기에 머리는 아파왔지만 여자는 오늘 달력을 보고 일어섰다.

오늘이 벌써 또 월요일이구먼.

 

한 달에 한번 시장이 문 닫는 날 빼고는 쉬는 날 없이 일을 하다 보니 공일이고 반공일이고 날짜 개념이 없어진지 오래되었다. 하지만 달력에 표시 해놓은 검정 동그라미만큼은 잊지 않는다.

여자가 첫째네에서 빌린 돈을 갚아 내는 날이다.

일주일동안 바짝 일해 모은 돈을 조금의 생활비 빼고는 몽땅 갚아내고 있었다.

돈이 급하지 않으니 천천히 하시라 들었어도 여자의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어미 빌려준 돈 덕에 우리 딸 시댁서 싫은 소리 듣고 사는 건 안될 일이지.

 

농협에 들어섰다.

까막눈의 할머니라 늘 도와주는 창구 직원의 도움으로 사위 이름으로 돈을 보냈다.

앉아있는데 바로 옆 병원에서 나오는 사람들이 보인다.

 

저 병원이 그 병원이랬지? 치매예방약 그런게 있기나 한거여?

 

갑자기 지난 주 한참이나 찾았던 집 열쇠를 신장 속에 넣어둔 일이 생각났다.

그래 그럴 수 있지 않겠어? 그러다 다시 또 지난번 손님에게 돈을 받아놓고는 받지 않았다고 생떼를 썼던 일도 생각이 났다.

 

한참 생각에 빠진 여자가 병원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치매예방약이라고 있는 겁니꺼? 나도 좀 먹을 수 있겠습니꺼?

 

의사는 치매 예방약이라고는 하지 않았지만 적극적으로 여자의 당뇨와 여러 가지 간단한 검사 후 약을 처방해 줬다.

특별히 아프지 않은 몸이었지만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서 여자는 매일매일 꼬박꼬박 약을 챙겨 먹었다.

 

그렇게 몇 년 동안 약을 먹었다.

그러다 하루는 손이 부어왔고, 그리고 어떤 날은 팔뚝이 부어왔다.

 

요즘 걸음걸이가 왜 그랴?

몰러 발이 부어서 신발이 제대로 안 들어가니.

병원은 가 본겨?

 

한 번씩 그랬다 하루 이틀 지나면 가라앉으니 별거는 아니여.

손쓸 수 없을 만큼 배가 불러왔을 때 근처에 살던 둘째딸의 손을 잡고 병원을 갔더니 이미 여자의 신장은 망가져 있었다.

당뇨합병증이었다.

 

할머니, 무슨 약을 이렇게나 많이 드신거예요?

.........치매 예방약이여.

야유,, 할머니 치매 예방약은 없어요. 할머니 당뇨가 있으셔서 이렇게 신장에 무리가 가면 안 되시는 건데 신장이 제 기능을 못합니다.

 

눈물을 글썽이는 둘째딸이 눈에 들어왔다.

 

엄마는 괜찮다. 아프지 않아. 나이 들어 딸자식들한테 짐 되면 안 되니 엄마가 걱정이 돼서 그랬어.

 

급속도로 몸은 더욱 부어가고 다리는 제 기능을 할 수 없을 만큼 부었다.

가만히 뉘여 놓으면 통증이 너무 심해져 줄을 매달아 다리를 올려두었다.

이미 혈액순환도 되지 않았고, 여러모로 좋지 않았다.

 

병원에 딸 셋이 나란히 앉아있다.

갑자기 웃음이 났다.

 

어릴 때 늬들이 이렇게 이불을 덥고 방에 누워 자고 있으면 엄마가 얼마나 행복했는지. 내가 늬들 보면서 세상 남부럽지 않게 키워줄라고 맘먹었구만. 애비 없는 소리 안 듣게 하려고 엄마 많이 노력했었다.

 

또박또박 말하고 있음에도 어눌해지는 발음에 세 딸은 심장을 움켜쥐었다.

 

며칠을 넘기지 못하실 겁니다. 이미 신장이 제 기능을 멈췄고 물이 폐까지차서 좋지 못합니다. 많이 답답해 하실 겁니다. 정신도 때때로 잃으실 거예요.

 

정신을 잃은 상태의 여자는 끙끙 거리는 소리만 간간히 내 뱉으면 주먹으로 가슴을 툭툭 쳐 댔다. 의식으로 해대는 행동이 아닌 무의식중에 해대는 행동이었다.

그만큼 답답한 가슴을 무의식중에서라도 이겨내 보려 가슴을 쳐댄 것이다.

 

여자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세 딸은 번갈라가며 여자를 간호했다.

형편이 좋지 않아 일을 해야 했던 셋째를 제외하고는 첫째와 둘째는 이틀에 한 번씩 번갈라가면서 엄마를 간호하고 간이침대에서 잠을 잤다.

일이 없는 주말이면 막내딸이 엄마 곁을 지켰다.

 

간호하던 세 딸은 이제 정말 엄마의 심장이 오래지 않아 멈출 것 같았다.

간혹 작게라도 중얼거리는 엄마의 음성이 사라졌고, 며칠째 눈도 뜨지 않고 있다.

 

일해서 바쁘지만 할머니를 위한 애살많은 막내딸의 둘째가 왔다. 그리고 일한다고 바빠서 얼굴 보기 힘들었던 막내딸의 첫째도 왔다.

 

그래. 우리 손주들 왔구나 왔어. 할미가 보고 싶었다. 기다렸어.

 

저녁쯤 근처에 살아 자주 봐오던 둘째 딸이 사위와 아이들과 함께 다녀갔다.

 

그래. 할미가 고맙다. 고마워. 건강하게 자라라.

 

어릴 때부터 약하게 태어났던 둘째딸의 둘째를 마음으로 쓰다듬었다.

 

그날 저녁은 첫째 딸과 첫째 사위가 함께 병실을 지켜주었다.

가슴이 답답해 무의식중으로 가슴을 쳐댄체 밤이 지나갔다.

첫째딸의 둘째딸이 새벽 고속버스를 타고 손자사위에게 아이들을 맡겨 두고 여자에게 달려왔다. 문을 들어서자마자 눈물을 흘려대는 손녀에 마음이 아파왔다.

 

하지만 이 할미가 지금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구나.

내내 가슴을 쳐대며 의식을 잃어갔다.

여자 생의 첫째 손주는 큰딸의 첫딸이었다. 늦은 결혼으로 만삭이 되어 이번 달이 산달이라고 한다. 함부로 몸을 움직일 수 없는걸 알기에 아쉬워도 여자는 생각했다.

 

할미가 보러 가면 되지. 뭐가 걱정이여.

 

아 나는 참 박복한 여자인줄 알았더니 사실 그게 아니 더만. 나 세상 떠나는 날 내 큰 딸네 내 둘째 딸네 내 막내 딸네까정 모두 만나고 간다니 말이다.

여보. 남편, 당신 지금 내가 올라가면 만날 수 있는가?

나 사실 많이 고생했소. 많이 울었구먼. 내 무쇠 같은 손으로 가슴 쳐댄 날이 하루 이틀이겠는가. 서방 잡아먹었다고 재수 없는 년 소리 들어도 당신과 산 짧은 세월 내 생에 가장 행복했네. 다만 외로웠구먼. 당신 나 이제 올라가면 내 손잡고 여기저기 데리고 놀러다녀 줄랑가? 나 넘들 다가는 꽃놀이도 못가보고 좋은 구경 많이 못해봤구만. 일찍이 가서 길도 잘 알테니 나 올라가면 많이 데리고 놀려다녀주오.

 

여자는 그날 저녁 짧게 행복했고 길게 고생했던 그 고생스런 생을 마감했다.

 

아부지 이꽃은 무슨 꽃이예요?

아비가 누워있는 이불 머리맡에 앉은 첫째 딸이 고사리 손을 펴서 물었다.

감꽃이었다.

 

감꽃이다. 감이 나기 전에 이 꽃이 먼저 핀단다. 구기지 말고 엄마 손바닥에 올려드리렴.

 

감꽃의 꽃말은 좋은 곳으로 보내주세요. 존경합니다. 자애 그리고 소박함.

 

여자가 가는날은 6월의 마지막날.

감꽃이 져가는 계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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