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도마뱀의 꼬리를 자를 때

by 무명 posted Nov 25, 2019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내가 도마뱀의 꼬리를 자를 때



  어두컴컴한 밤이었지만 감천 마을 정류장에서 보이는 마을 전경은 지상에 떨어진 별 무더기 같았다. 오밀조밀하게 붙어 있는 집들은 저마다 고유의 색을 지닌 채 하나의 덩어리를 이루고 있었고 창가에 번지는 전등 불빛들은 곧 철거될 대형 크리스마스트리의 깜빡이는 전구 같았다. 나는 목적지를 저장한 내비게이션처럼 들리지 않는 어떤 목소리를 따라 무작정 걷고 있다. 그녀는 비가 내리던 수요일 밤, 8차선 자동차 전용 도로를 가로질렀다. 차는 그녀를 치고 넘어갔다. 그녀는 이제 가방 안에 작은 도자기에 담겨 있었다. 목이 말랐다. 몇 분 전에 생수 한 병을 다 마셨지만 아무래도 그런 종류의 갈증은 아니었다.  장례를 마치고 그녀의 검은색 가방에서 다이어리를 발견했다.


 “왜 검은색이야?”

  그녀는 검은색 가방에 검은색 치마에 검은색 밤을 좋아했다.

 “검은색은 모든 빛을 흡수하잖아.”

  나는 그녀의 검은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곧이어 어깨를 덮은 긴 머리카락으로 시선을 옮겼고 다음으로 그녀의 이마에 집중했다. 중앙에는 머리 뿌리가 시작되는 부분부터 세로로 5센티미터 가량 흉터가 남아있었다. 예전보다는 옅어졌지만 그전과 똑같진 않았다. 흠집이 난 퍼런 사과나 찌그러진 옥수수캔 같았다. 그녀는 앞머리로 그 흉터를 가리고 있었지만, 바람 부는 날이나 헤어드라이어에서 뿜어내는 열기에는 속수무책이었다.

  출근 전에 나는 화장실에서 이를 닦다가 그녀가 머리를 말리는 모습을 무의식적으로 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서둘러 앞머리를 내리거나 다른 주제로 화제를 전환하지 않았다. 그녀는 내가 그 흉터가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액정이 깨진 휴대폰처럼 아무것도 못 본 척하길 바랐다. 우리는 씻고 나와 옷을 입고 각자의 직장에 출근했다. 그녀는 도서관 사서였고 나는 변호사 사무실에서 사무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우리는 2년째 동거 중이었다. 화요일과 금요일에 분리수거를 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는 것은 내 담당이었고, 그녀는 욕실 청소와 요리를 맡았다. 설거지와 세탁과 거실 청소는 둘이서 번갈아 했다. 비가 내리던 날이었다. 퇴근하고 집에 들어왔는데 그녀가 변기 앞에 쪼그려 앉아있었다. 변기 솔을 손에 든 채, 울고 있었다. 큰 소리를 내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소리가 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아무도 없는 집에서 누군가에게 들킬까봐 소리죽여 울고 있었다. 나는 발뒤축을 들고 마치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조용히 방으로 들어갔다. 얼마 뒤에 만난 그녀는 평상시로 돌아와 그 전처럼 미소 짓고 있었다. 그 미소는 미소가 아니었지만 분명 미소였다.

  아일랜드 식탁에 그녀와 마주보고 앉았다. 그녀는 저녁으로 닭볶음탕을 준비했다. 둥그런 감자와 당근이 들어 있었다. 나는 아이들이 갖고 노는 플라스틱 공을 떠올렸다. 당근을 집어 입에 넣었다. 이에 닿자 곧 반으로 쪼개졌다.

 “책을 찢어가는 경우가 꽤 많아.”

 “요즘에도?”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애들만 그러는 건 아냐. 나이 상관없이 찢어가. 복사기가 있고, 스캐너도 있는데.”

 “귀찮아서 그런가?”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참신한 대꾸를 하거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순간을 즐겼다. 최대한 뜸을 들이고 기대감을 증폭시키는 최소한의 시간을 요구했다. 그럴 때일수록 나는 그녀의 머리 가까이로 내 이마를 들이밀었다. 서로의 거리감을 좁히고 생각을 읽어내려는 제스처였다. 그녀는 그것을 ‘바코드 스캐너’라 불렀다.

 “진짜가 아니라서 그래. 복사를 하는 순간 원본이 있다는 거고, 더는 중요하지 않게 돼버려, 카피약처럼. 성능도 같고 효능도 똑같고 값도 더 싸지만 카피약이라는 한계를 갖고 있는 거야. 갖고 싶지만 갖지 못할 때 약간의 죄책감만 남겨두고 찢어버리는 거지.”

 “그래봤자, 책의 일부분이잖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

  그녀는 또 뜸을 들였다. 나는 그녀의 머리에 또다시 이마를 들이 밀었다.

 “나는 책의 심장이라고 생각해. 모든 페이지가 책의 심장이야.”

   며칠 뒤, 그녀는 8차선 도로를 건넜다. 그날도 그 전과 다를 게 없는 날이었다. 밤에 비가 내렸고, 그녀가 무언가 홀린 사람처럼 자동차 전용 도로를 가로질렀다는 것만 제외한다면.


  그녀가 도로를 건넌 날, 점심으로 순댓국을 먹고 카페에 앉아 김 변호사와 장 씨 사건에 대해 논의하고 있었다. 장 씨는 제2금융권 채권 추심원이었는데, 5년 된 금전채권 문제로 연대 보증인에게 독촉 전화를 걸어 돈을 갚으라고 압박을 넣었다. 그러자 연대보증인은 채무자를 찾았고. 홧김에 채무자와 다투다가 머리를 맞아 의식불명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장 씨가 보증인에게 전화를 걸지 않았으면 병원 침대에 그가 누워 있을 이유는 없었다. 보증인의 처는 폭행 교사죄로 장 씨를 고소했다. 하지만 장씨는 채무자와 연락되지 않았기 때문에 보증인에게 책임을 고지했을 뿐이라며 억울해 했다. 의식불명이 된 보증인의 녹취파일에는 다소 격앙된 그의 목소리와 낮고 담담한 어투의 장 씨의 목소리가 뒤섞여 있었다. 한 사람은 절실했고, 한 사람은 덤덤했다. 그때 그녀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나는 김 변호사에게 양해를 구하고 카페 밖으로 나왔다. 그녀의 목소리도 장 씨의 목소리만큼 덤덤했다.

 “나 오늘 늦을 것 같아.”

 “왜 회식 있어?”

 “아니, 그건 아니고……, 아니야. 그냥 가야겠다.”

 “싱겁긴. 무슨 일 있어?”

 “없어……, 아무 일도 없어.”

  그녀는 꿈꾸듯이 말했다.

 “우리 이따가 오랜만에 와인 한잔할까?”

 “좋지. 집에 치즈 있나? 없으면 사 가고.”

  전화를 끊었다. 그녀는 훈제 치즈가 집에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장례를 치룬 뒤 집에 돌아와 냉장고를 뒤져봤지만 치즈 같은 건 없었다. 다행히 나는 치즈를 좋아하지 않았다. 와인 보다 소주를 선호했다.


***

  부산역에는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붉은 노을이 지더니 퍼런색 하늘이 되더니 곧 시커멓게 밤이 되었다. 나는 용산역에서 부산행 기차를 탔다. 덜거덕거리는 소리는 창밖을 지나치는 나무들의 잎사귀 소리 같았다. 곧 후드득 떨어져 겨울이 될 것만 같았다. 차가운 겨울, 냉랭한 기운, 김이 서린 창. 그러나 지금은 7월 초였고 기상청은 올해는 작년보다 더 덥다고 예보했다.

  나는 그녀의 가방을 무릎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 안에서 그녀의 다이어리를 꺼냈다. 하얀색 바탕에 익살스러운 표정의 캐릭터 패턴이 장식된 커버를 열자 그녀의 글씨가 보였다. 글자는 마치 워드 프로세서로 찍어낸 것 같이 정갈했다. 도서관에서의 일상이 담겨 있었고,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누구를 만났고, 하루의 일과와 후회되는 일, 인상적인 도서와 불편했던 영화에 대한 소감, 반복하지 말아야 할 실수가 기록되어 있었다. 다이어리는 그녀의 일기이자 소감문이자 무시할 과거와 다가올 미래에 대한 계획서였다. 나는 그것을 마치 곧 수능을 치룰 수험생처럼 읽고 또 읽었다. 그 안에는 작은 소설도 담겨 있었다. 대다수가 엽편 분량의 짧은 이야기였다. 그중에서도 마지막 장에 적혀 있었던 글의 제목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것은 그녀가 발견된 그날 오전에 작성된 것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카페 밖을 나와 그녀와 통화하기 바로 전까지 그녀는 그 글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7월 9일. 오전.


내가 도마뱀의 꼬리를 자를 때


  성우는 삼형제 중 막내로 태어나 남중에 남고를 다녔으며 ROTC 지원을 한 대학생으로, 무뚝뚝하다 못해 하루에 목소리 한 번 들을까 말까 한 경상도 출신 홀아버지 밑에서 남성다움을 강요받고 자랐다. 감정은 사치고 말은 부족하게, 부러지더라도 꼿꼿이, 때로는 주먹을 꽉 쥐고 휘두르거나 이를 악물고 참아야만했다. 그런 그가 음대 여학생을 짝사랑하게 된 것이다.

  친구의 소개로 지수를 만났지만 그녀는 소개팅 대타로 누군가를 만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그녀는 허리까지 머리를 기르고 있었고 작은 손이지만 엄청나게 긴 손가락을 늘어뜨리고 있었다. 지수는 여러모로 성우와 대척점에 있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부드러웠다. 물렁하고 따뜻했다. 아무리 날카로운 칼이 그녀를 찔러대도 흠하나 없이 튕겨낼 것만 같았다. 공격적이지도 않고 방어적이지도 않았다. 내면은 단단했다. 그녀는 성숙한 와인이 변질되지 않도록 유리병 입구를 막은 코르크 마개 같았다. 부서져 깨질지언정 절대 뽑히지 않는 자신만의 어떤 방어체계를 갖고 있었다. 그녀가 사실상 성우와의 만남을 거부했다고 해도 그의 감정은 쉽게 휘발하지 않았다. 처음 느끼는 감정이었다. 이전에 만났던 사람들과 애정의 감정이 전혀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지수는 그의 마음을 끄는 또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그는 사귀지 못하더라도 지수 곁에 머무르고 싶었다. 그녀는 피아노를 전공했고, 방학 동안 시흥에서 어린이 피아노 교실 선생님으로 일하고 있었다. 성우가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것도 그 즈음이었다. 표면적으로 음악이라는 그가 성장하면서 접할 수 없었던 악기를 배우기 위함이었지만 실제로는 그녀와 함께할 시간을 갖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공유하는 시간이 또 다른 가능성을 만들어낼 여지도 있었다.

  지수도 피아노를 매개체로 하는 만남은 거절하지 않았다. 그녀는 성심껏 성우를 가르쳤다.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성우의 손가락을 잡고 건반 위에 하나하나 놓아주면서 지도했다.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성우의 손가락’은 그가 야구선수를 그만둔 이유이기도 했다. 사고로 뼈가 부러졌고, 잘못 붙었고, 신경이 무디어져서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나는 다이어리를 덮었다. 목구멍에서 무언가 치솟아 오른다. 그것은 뜨끈했고 미지근했고 차가웠다. 나는 한동안 창밖을 바라보았다. 나무가 지나친다. 어둠 속에 비틀거린다. 진정되지 않았다. 손으로 두 눈을 지그시 눌렀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부터 야구를 했었다. 고1 때는 우수투수상을, 2학년 때에는 최우수선수상을, 3학년에는 드래프트로 프로구단에 입사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 그러나 어느 날 아침, 침대에서 일어났는데, 팔이 어깨 위로 올라가지 않았다. 손가락은 공을 움켜쥐고 있었지만 곧 바닥으로 떨어졌다. 회전근개 파열도 아니었고, 팔꿈치 내측 측부 인대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물론 반복되는 던지기로 인해 어깨나 팔꿈치 부상이 있었기는 했으나 수술이나 재활을 받을 정도는 아니었다. 병원에서는 원인을 찾아내지 못했다. 정신과에서는‘입스(yips)’일지 모른다고 말했다. 그러나 불안 증세는 운동선수라면 누구나 한 번은 겪는 문제였다. 상대를 이겨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뒤섞였다. 마운드에 서면 식은땀이 흐르고 심장은 터질듯 펌프질 해댔다. 결국 몇 번의 졸도 끝에 야구를 그만두게 되었다. 그러자 팔은 어깨 위로 올라갔고 의식적으로 공을 던질 일은 없었지만 무언가를 마음먹고 던져야 한다면 얼마든지 던질 수 있었다. 그러니까. 소설의 속의‘성우’는 온전히 ‘나’는 아니었다. 물론 ‘그녀’도 피아노를 치는‘지수’가 아니었다. 그렇지만‘나’는 어느 정도는‘성우’였다. 그녀는 자신의 소설에 나를 주인공으로 설정했던 것이 분명했다. 성우는 그녀에게 동정 받고 있었고 도움이 필요한 상대이자 망가진 야구선수였다. 최소한 그녀는 나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나름대로 새 삶에 잘 적응하고 있었다. 법학과를 나와 변호사 사무실에 취업했고 다양한 사람의 사연을 들었다. 그것은 직구나 변화구처럼 변화무쌍했고 때론 아웃이 되기도 했지만 통쾌한 만루 홈런이 터지기도 했다. 사람은 누구나 공을 던지고 있었고 그것이 꼭 공일 필요는 없다는 것을 꽤 오래전부터 체감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저 내 과거를 듣고 마음대로 예단해 작은 다이어리 몇 페이지의 주인공으로 소비하고 있었다. 기차가 터널을 통과했다. 덜거덕거리는 소리가 더 크게 울렸다.

  그녀는 스물아홉 살이었고 춘천에서 대학을 나와 도서관 사서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부모나 형제에 대한 이야기는 일절 하지 않았다. 어떤 이유인지는 몰라도 가족에 대한 얘기가 나올 때면 서둘러 다른 화제로 전환됐다. 그녀에게 있어 가족이라는 단어는 불편하고 생경한 것이었다. 내가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때면 그녀는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자유와 해방감, 어딘가에 구속되고 목매는 그런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만은 아니야. 복잡하고 번거롭고 얽히고설킨 관계가 싫은 것도 아니고.”

 “그럼?”

  그녀는 내 눈동자를 2초간 쳐다봤다.

“아무것도 남기기 싫어. 혹시 우리가 서로 상대를 떠날 때, 작은 가방 하나만 어깨에 메고 집을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

  그러나 그녀는 그 가방조차 들고 가지 않았다.

  나는 창밖으로 지나치는 나무들이 너무나 똑같은 그림같이 느껴지자 그녀의 다이어리를 다시 펼쳐들었다.


 『몇 달이 지나자 성우는 좁고 방음 스펀지가 부착된 피아노 방이 익숙해졌다. 하지만 지수는 성우를 처음 봤을 때만큼이나 그를 경계하고 있었다. 그녀는 변하지 않는 피아노 방에서 보이지 않는 투명한 유리벽을 세워, 차갑고 서늘하게 약속된 시간과 장소만 그저 빌려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불가해한 거리감은 오히려 성우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게다가 그녀는 늘 발목까지 내려오는 길이의 치마나 바지를 고수하고 있었다. 시폰 꽃문양에서 라미 문양의 긴 주름치마나 도트 원피스, 혹은 스키니 진 까지 종류는 매번 달랐지만 그 길이만은 늘 발목 위나 복사뼈 아래로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그는 그녀의 치마를 벗기는 상상을 한다. 단추를 구멍에서 밀어낸다. 바닥에 치마가 툭 떨어진다. 그녀는 천천히 무릎을 붙인다. 갑자기 피아노 페달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성우는 무의식적으로 그의 발을 내려다보았다. 그녀가 손바닥으로 박자를 세다가 멈춘다. 그녀는 긴 머리를 대충 묶고, 롱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긴 손가락을 오므린다. 그는 그녀가 꽉 막힌 화려한 벽 같았다. 그곳에 클로드 모네의‘아르장퇴유의 양귀비 들판’이 그려진다 해도 그건 그저 벽일 뿐이다. 그보다 그녀의 긴 치마에 대한 온갖 상상력이 곧 폭발해 산산조각 날 것만 같았다. 소나티네 D 장조 꾸밈음을 반복적으로 실수하던 날이었다.

“뭐 하나 물어봐도 돼?”

 지수는 성우를 바라본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 말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난 좀 솔직한 편이라서. 그래서 오해도 많이 받고 그래.”

 그녀는 악보를 만지작거렸다.

“내가 공을 쥐지 못했다는 얘기를 고백한 것처럼……, 알고 싶어. 그냥 듣고 있을 게.”

 지수는 무릎에 두 손을 내렸다. 성우의 시선이 그녀의 손을 따라가고 있었다. 그녀는 덤덤했다. 이미 수백 번 보고 또 본 영화의 절정 장면을 떠올리고 있었다. 결국 벌어질 일은 벌어져야만 한다. 지수가 천천히 치마를 걷어 올린다. 60프레임의 초고화질 영화를 보는 것만 같았다. 종아리와 허벅지에는 온통 멍투성이였다. 푸르스름하고 붉은 자국들이 마치 도마뱀의 무늬처럼 번져 있었다.

“징그럽지?”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클레이 모어가 터지고 700개의 쇠구슬이 퍼진다. 그는 방탄모를 찾고 있다. 수류탄을 엉덩이 깔고 앉아있다.

 그녀는 9살에 이모에게 발견될 때까지 수많은 학대를 당했다. 붉은 매니큐어를 칠한 새엄마는 어린 지수가 식탁에 물을 쏟을 때마다, 벌거벗겨 욕실에 가뒀고 그녀의 아버지는 그런 지수를 안타깝게 쳐다보았다. 물을 쏟지 않았으면 겪지 않아도 될 일이다 합리화시키면서. 실직을 한 아버지는 쪼그라들었고, 남의 손톱을 다듬고 칠하면서 돈을 벌어오던 새엄마는 복어처럼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울퉁불퉁 날카로운 가시를 세워 수지를 찔러댔다. 그녀는 화장실 욕실에 벌거벗은 채 쪼그려 앉아 추위에 떨면서, 작은 쪽창에 들어오는 달빛을 바라보며 자신이 허물을 벗는 도마뱀이라고 생각했다. 축축한 습지에, 비닐 같은 껍질을 벗고 더 큰 도마뱀이 돼서 쪽창을 나가 벽을 타고 가로등이 줄지어 늘어선 세상 어딘가로 도망치는 상상을 했다. 어린 지수가 욕조에 홀로 버려진 이유, 부모가 그녀를 그곳에 두어야만 하는 이유 등은 변별력을 위해 일부러 복잡하게 꼰 수능 문제처럼 뒤틀려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답을 찾고 있었다. 그녀는 곧 탈피를 앞둔 도마뱀이었고. 이모에 의해 욕실을 나온 이후 꼬리가 잘린 도마뱀이 되었다.

  지수는 성인이 돼서도 계속 넘어졌고. 다쳤고. 다치지 않으면 자신을 가해했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다시 재생된 꼬리를 달고 욕실 벽면을 기어 다니고 있었다. 지수가 마음을 닫은 이유도 사람에게 이유 없이 두려움을 갖게 된 이유도. 다 그것 때문이었다. 그녀는 한참을 단조로이 얘기하더니 건반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내 꼬리를 잘라 줄래?”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앉아있었다. 지수와 성우는 둘 다 같은 벽면을 쳐다보고 있었다. 벽지의 기하학적인 무늬가 마치 소용돌이처럼 돌아가고 있는 것 같았다. 지수가 말을 잇는다.

 “주로 집 근처에 있는 감천 마을 꼭대기로 도망쳤어. 돌길을 맨발로 뛰면서. 발바닥이 까지고 피가 나는대도 아픈지도 모르고 무작정 달렸어. 달빛이 쏟아지는데……”

  지수는 마른 침을 삼켰다. 잠시 말을 잊었다.

 “거기서 기다릴게. 보여주고 싶어. 내가 본 풍경.”

  성우는 그 뒤 지수를 보러 가지 않았다. 그는 손가락이 잘 움직이지 않는 전직 야구선수이자 남자형제에 둘러싸인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였고 이제 곧 군 입대를 앞두고 있었다. 도마뱀을 키울 여유는 없었다.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

 

  거짓말이었다. 감천 마을은 내가 어릴 때 살아왔던 동네였고, 6.25피난민으로 정착한 외할머니가 늦둥이로 낳은 아버지의 고향이자 도시재생 프로젝트로 성공적으로 변모한 관광지였다. 그녀는 지수가 도망친 장소로 내가 말한 유년시절의 추억을 도용했고, 나는 그만 망가진 야구선수에서 무책임한 경상도 남자로 묘사되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녀는 나를 원망하고 있었다.


***

  기차가 멈췄다. 감천문화마을 행 일반버스를 타고 10여 곳의 정류장을 지나 환승한 뒤 ‘마을 정류장’에서 하차했다. 나는 갈색 워커 안에서 발가락을 움직여보았다. 답답했다.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다. 발목 아래는 발이 있고 워커 안에서 움직이는 것은 발가락이다. 나는 목적지를 저장한 내비게이션처럼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따라 무작정 걷고 있다. 가방에는 그녀가 담겨 있었다. 목이 말랐다. 몇 분 전에 생수 한 병을 마셨지만 아무래도 그런 종류의 갈증은 아니었다.

  정류장 초입에는 기념품 가게, 카페들이 늘어서 있었다. 여름밤의 열기를 식히러 나온 연인들은 팔짱을 끼고 있었고, 아기를 안은 외국인 부부는 은은한 전등 아래서 행복한 순간을 기록할 사진을 찍고 있었다. 공방과 영업을 끝낸 한복대여점은 불이 꺼져 있었고 멀리 산 아래에 위치한 감정초등학교는 그전처럼 가장 높은 곳에서 마을을 지키는 파수꾼처럼 우뚝 솟아있었다. 거리 곳곳에는 골목을 유영하는 물고기를 형상한 장식이 비치되어있었고 148개의 별 보러 가는 계단도 그 모습 그대로였다.

   3년 전 그녀는 부산여행을 계획했다. 휴가 계획에는 다대포 해수욕장과 감천 마을이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부산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곳곳이 익숙한 장소였지만 그녀의 결정을 굳이 반대하지 않았다. 익숙한 것이 새로워지기 시작했고, 새로운 것보다는 익숙한 것이 좋아졌다. 서울에서 만나 절친하게 지냈던 친구 H는 이 천 만원을 빌린 뒤 연락두절이 되었고 친구의 아버지는 그의 말과 달리 여전히 건강하셨다. 막 이직을 했고, 전세금이 올라 당장 이사도 가야할 상황이었다. 그녀는 모두 알고 있었지만 아무것도 모른 척했다. 적금을 해약해 모자란 돈을 보탰다.

  다대포 해수욕장에서 하루를 보내고 서울로 올라오기 전에 감천 마을을 들릴 예정이었다. 그러나 제주도를 지나 일본으로 향하던 태풍이 경로를 바꿨고 부산은 폭풍의 중심에 놓였다. 예정된 일정은 취소됐고 숙소에 발이 묶였다. 최소한 그때 그녀는 감천마을에 갈 수 없었다. 돌아오는 열차 안에서 그녀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비는 여전히 쏟아지고 있었고 나는 다음번을 기약하자는 지루한 말로 그녀를 달랠 뿐이었다.

  계단을 오르다 멈췄다. 온갖 감정이 들끓었다. 날카로운 송곳이 온 몸을 찌르는 듯 했다. 어쩌면 성우는 그녀를 만나러 이곳에 왔어야만 했다. 그는 군 입대를 미루고, 그녀의 도마뱀 같은 피부를 긴 치마로 가려줬어야만 했다. 그렇게 할 수 없었더라도 그 순간만큼은 그렇게 했어야만 했다.


  사고 전날 밤, 우리는 서울 명동 거리를 걷고 있었다. 그녀는 조용한 와인 바를 찾아냈다. 싸구려 와인을 놓고 서로를 바라본다. 그녀가 웃는다. 그 미소는 매일 마주하던 그 미소와 다름없었다.

 “우리 고양이 한 마리 키울까?”

 “알레르기 있잖아?”

 “상관없어. 약 먹으면 되지.”

  나는 알레르기 약을 먹으면서까지 고양이를 키울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약이 손에 닿지 않거나 필요할 때 없는 상황은 늘 벌어지는 법이다. 그녀는 그런 나를 한번 보더니 와인 잔을 들고 조금 흔들었다.

 “그거 알아? 검은 고양이에 대해 사람들이 갖고 있는 그 막연한 불안감.”

 “검은 고양이에 노란색 눈?”

 “응. 잉글랜드에는 검은 고양이가 살고 있으면 행운이 찾아온다는 미신이 있데. 어부의 집에서 검은 고양이를 기르면 행운이 오고.”

  그녀는 분명 검은 고양이를 기르고 싶어 했다.

 “검은 고양이보다는 흰색이 낫지 않아? 스코티시폴드? 그 고양이가 귀엽던데.”

  그녀는 핸드폰으로 무언가를 검색하더니 내밀었다.

 “누군가와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에 흰 고양이가 보이면 그날은 반드시 문제가 일어난데. 그리고 나는 그냥 고양이가 좋아. 어떤 고양이가 아니라.”

  나는 갑작스러운 그녀의 요구보다도 그녀가 뭔가 열망하는 대상이 생겼다는 데에서 호기심이 생겼다. 그리고 동시에 불안해졌다.

 “이상하다는 거 알아. 갑작스럽다는 것도 알고.”

  그녀가 주저했다.

 “결혼하는 신부에게 검은 고양이를 선물하면 신부에게 행복이 찾아온데……”


***

  나는 노란색 페인트로 칠한 펜스 위에 앉았다. 어린왕자와 사막 여우 조형물 사이의 자리였다. 어린왕자와 사막 여우는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들과 나란히 앉아 아래를 보았다. 지붕이 보였다. 주황색, 파란색, 검은색 지붕은 불빛 때문에 엇비슷한 채도로 묶여져있었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골목길이 보였고, 그 너머에는 드문드문 불이 켜진 창이 보였다.

  그녀는 나와 결혼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녀가 마침내 내린 선택이 나는 무척이나 낯설었다. 어쩌면 내 마음속에는 우리 두 사람이 만나 공유했던 시간이 깜빡거리는 낡은 전등의 필라멘트처럼 언젠가 수명을 다할 것이라고 믿고 있었던 것 같다. 그녀는 이마의 흉터가 신경 쓰이는 듯 손으로 앞머리를 자꾸 내리고 있었다. 그날 밤, 그 와인 바에서 우리는 행복한 미소를 띠며 두려운 속내를 감추고 있었다.

  나는 알고 있었다. 그녀는 9살 때 욕실에서 방치되어 있었다. 작은 창문으로 달빛을 보기 위해 플라스틱 의자를 놓고 올라가다가 굴러 떨어져 욕조에 머리를 부딪쳤다. 이모는 그녀를 보기 위해 집을 찾았다가 아무도 없는 줄 알고 돌아가려고 했다. 때마침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고 사람을 불러 문을 따고 욕실에서 이마가 찢어진 그녀를 발견했다. 이모는 그녀를 업고 달빛 속을 달렸다. 구급차를 부를 생각조차 못 했다. 그녀를 살리기 위해 그냥 앞으로 뛰고 달릴 뿐이었다. 수술은 했지만 이마에는 흉터가 남았다. 붕대를 감고 누워있던 그녀 앞에 아버지가 찾아왔다. 아버지는 그녀의 손을 잡더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나지막이 얘기한다. 온화한 미소는 곧 사그라들 장작불처럼 온기가 없었다. 그는 붉은 매니큐어를 칠한 새엄마의 뒤를 쫓아 병원 복도로 사라졌다. 그 모든 이야기는 그녀가 집을 비운 사이 찾아온 이모에게 들을 수 있었다. 이모는 그녀를 조카가 아닌 자신의 딸이라고 말했다. 마음으로 낳은 딸. 그러나 이모가 떠난 뒤, 나는 그녀가 갖고 온 과일 바구니를 곧바로 해체해 냉장고 야채 칸에 아무렇게나 쑤셔 넣었다. 그녀는 아버지를 빼앗아간 이모를 미워하고 있었다. 증오하고 원망했다. 그러나 사실 그녀는 자신이 검은 털에 노란 눈을 가진 고양이처럼 가까이하는 모두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녀는 그 누구에게도 피해주고 싶지 않았다. 이모에 대한 원망도 어쩌면 그녀가 표면적으로 관계를 차단할 최소한의 방어기재였을지도 모른다. 그런 그녀가 비로소 내게 손을 내밀었을 때 나는 그만 주저하고 말았다. 그 불길한 기운이 내 온몸을 뒤덮고 음침한 어둠 속으로 끌고 들어갈 것만 같았다. 어쩌면 그녀 말대로 우리는 조그만 가방을 마련해두고 언제든지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앉은 자리에서 보이는 풍경은 별 하나 보이지 않는 까만 하늘에 불빛으로 가득한 집들뿐이었다. 그녀는 상상 속에서 폭력을 피해 감천 마을 꼭대기를 올랐고 마침내 보았다. 그리고 이런 익숙한 풍경을 보여주기 위해 형편없는 엽편 소설을 남겼다. 나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우리에게는 많은 시간이 남아있었고 그에 비하면, 말 못 할 사정이야 아주 소소하고 가치 없는 문제에 지나지 않을 지도 모른다. 고양이까지 키우기로 해놓고, 그녀는 그렇게 혼자 사라진 것이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바닥만 쳐다봤다. 발이 욱신거렸다. 고통이 엄습한다. 찢어진 수소 풍선처럼 하늘을 거세게 질주하다 땅바닥에 곤두박질친다. 모두 내 잘못이다. 그때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다면, 그녀가 용기를 냈을 때 조용히 끌어안아주었다면 말없이 그녀를 지지해주었다면, 애초에 이런 비극은 존재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지독하게 외로운 밤이었다. 너무나도 긴 밤이었다.

  정적을 깨고 전화벨이 울렸다. 김 변호사였다. 장 씨 사건이라면 이 시간 전화할리 없었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를 사무적으로 바꾸기 위해 기침을 두어 번 했다.

 “네 변호사님.”

 “밤늦게 미안한데……, 그래도 알려야 할 것 같아서.”

  그의 목소리는 조심스러웠다. 나는 그가 말을 끝마칠 때까지 기다리고 싶었다.

 “강 형사에게 전화가 왔어. 자네가 연락을 받지 않는다고.”

  나는 전화가 온 지도 모르고 있었다. 강 형사는 그녀의 죽음을 담당했던 사람이었다. 그녀는 명백한 사고사였으나 타살로 비칠 여지는 있었다. 여지가 있다면 의혹을 남기면 안 된다.

 “그날, 도로 CCTV를 찾아봤는데, 고양이를 안고 있었데. 길고양이가 자동차 도로로 뛰어들었나봐.”

  한동안 김 변호사와 별거 아닌 이야기를 나누다 감사하는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는 검은 새끼 고양이를 끌어안고 있는 그녀를 떠올렸다. 그녀는 그러니까 가냘프게 울어대는 버려진 고양이를 따라 자동차 도로에 들어가서는 도로 한복판에서 떨고 있는 고양이를 끄집어냈다. 그녀를 비켜간 차들이 있었지만 그러한 행운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그녀는 사라졌고 고양이는 목숨을 구했다.

  나는 도로 한복판에 서 있는 그녀를 본다. 그녀가 고양이를 품 안에서 꺼내 손바닥에 올린다. 작고 새까맣고 노란 눈을 가진 새끼 고양이이다. 그녀가 안아주자 고양이는 긴 하품을 한다. 그러더니 등에서 작고 축축한 날개를 꺼냈다. 몇 번 펄럭이더니 오르다 내리다 하면서 하늘로 날아오른다. 그녀는 웃고 있다. 고양이가 아기처럼 울어댄다.

  나는 가방에서 그녀를 꺼내 그 풍경을 보여주었다. 까만 밤이지만 집 곳곳에 켜진 붉고 노랗고 하얀 전등의 불빛이 마치 다양한 색의 별빛 같았다. 그녀가 과거로부터 작별을 고하고 마주친 풍경은 그랬다. 나는 한동안 그 광경을 쳐다보다 천천히 고개를 옆으로 돌린다. 노란색 펜스 위에는 검고 노란 눈을 가진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긴 하품을 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따라 하품이 나왔다. 나른하고 졸린 밤이었다. 나른하고도 졸린 밤이었다.



<끝>


Articles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