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미정

by 김예빈 posted Nov 29,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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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미정


 임미정. 25. 비정규직 직장인. 입사 3년차다. 대학을 선택하지 않고 바고 취직을 했다. 고등학교 성적도 그리 좋지 않아 갈 수 있는 대학이라곤 2년제 전문대밖에 없었다. 서울이나 경기권도 아니고 흔히 지잡대‘. 그런 대학밖에 갈 수 없다고 고3 담임쌤이 말하셨었다. 1로 돌아가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마음은 없다. 돌아가도 어차피 똑같을 테니까. 지금까지 게으르게 살아왔는데 돌아간다고 해서 부지런해질 수 있을까? 참나, 그건 진짜 소원일 뿐이야. 이뤄지길 원하면서 이뤄질 수는 없는 거. 그건 그냥 소원이지. 지금도 똑같다. 똑같이 게으르다. 내 인생은 게을렀고, 되는 게 없었다. 남들만큼 재밌게 살지도 않았다. 항상 지루했다. 지루한 데 막상 해야할 일은 미루고. 이게 사람인가. 주변 친구들을 보면.. 아니 주변 사람들을 보면. 사실 친구들도 아니지. 학교에서 반친구들이라고 부르긴 하지만. 같이 노는 것도 아니고, 말 하는 것도 아니고. 이게 무슨 친구야. 같은 반이면 다 친구라고 부르는 거 진짜 이상하다. 오히려 더 불편한 데 말이야. 세 시간 동안 방에 갇힌다면 반 애들보다 모르는 사람이랑 갇히는 게 훨씬 낫지. 하여튼 그런 친구들. 아니 그런 애들. 걔네를 보면 공부도 안하고 쉬는 시간에 떠들기만 하고. 뭐 괴롭힌 건 없지만 시험기간에 떠들 땐 신경 많이 쓰였지. 나도 공부를 안하는 처지라 짜증나고 그러진 않았지만 공부 열심히 하는 애들한텐 일종의 괴롭힘이었을려나. 그렇게 떠들던 애들도 4년제 대학, 인서울 대학 가더라. 그런 데 나는 이게 뭐야. 되는 것도 없어. 짜증나. “!” 아 깜짝이야. 진짜 좀 조심스럽게 말 좀 하지! 지나가던 팀장이 또 일 안하냐며 꼽준다. 일 안하는 게 아니라 잠시 생각했던 거라구여. 말은 못꺼내겠고, 그냥 죄송하다고 일 하는 척이나 해야지. 돈도 많이 안주면서 더럽게 많이 부려먹는다. 아 진짜 다 짜증나. 그렇다고 그만둘 수도 없다. 2년 동안 직장을 구했는데 고졸이라 안뽑아주는 나를 그나마 입사시켜준 게 여기니까. 정말 급해서 사람 뽑는 티가 많이 나긴 했다. 다른 직원들이 못마땅해 하긴 했지만, 뭐 어떡해. 사람 급하면 뽑아야지. 안그래? 입사하고도 계속 못마땅해 하는 저 시선들이 마음에 안들긴 한다. 다른 직원들하고 딱히 트러블 있는 건 아니지만, 사이가 좋지도 않다. 그렇지만 내가 언제부터 사람들하고 사이 좋게 지냈냐. 내가 다가가지도 않지만 먼저 다가오는 사람도 없었다. 딱 한 번, 중학교 입학하고 어떤 애 한테 다가갔는 데 걔가 날 피하는 게 너무 느껴져서 그 뒤로는 그냥 없었다. 예쁘지도 않고 재밌지도 않고 누가 다가오겠냐. 나 같아도 나 같은 애한텐 안다가가겠다. 예전에는 밤마다 많이 울었다. 난 왜 친구가 없을까. 애들이 왜 다 날 피하는 걸까. 지금은 그러려니 한다. 친구가 없는 것도 익숙하다. 요샌 핸드폰이 있어서 진짜 다행이다. 핸드폰이 없었을 때 태어났으면..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카톡, 진짜 오랜만에 폰이 울린다. 얼마 전 새로 나온 RPG 게임을 하다가 만난 사람이다. 저기 멀리 팀장이 눈치 주긴 하지만 그래도 알림을 끌 수는 없지. 나한테 오는 카톡이 얼마나 있다고. 알림이 울리자마자 파블로프의 개처럼 바로 답장을 한다. 그럴 때면 이 사람은 나처럼 답장 빠른 애는 처음 본다고 말한다. 좋은 건가. 내가 제일 빠르다는 거니까 좋은 거겠지. 나와 반대로 이 사람은 한 번 연락하고 나면 적어도 6시간은 답장을 안한다. 답답하게 정말. 많이 바쁘면 내가 이해해야지. 나도 성격 진짜 좋다니까. 사실 답장을 기다리는 것도 이 사람이 남자라 그렇다. 25년 인생에서 처음으로 연락한 남자다. 연락할 때마다 뭐라고 해야될 지도 잘 모르겠고, 설레서 마비되는 것 같다. 가뜩이나 재미없는 데 더 재미없어진 느낌. 그래도 꼬박꼬박 답장해 주는 거에 감사하다. 사진을 보면 친구도 많은 거 같다. 맨날 프사가 친구들이랑 찍은 사진들이다. 나도 대학 갔으면 친구 좀 사귈 수 있었으려나. 얘는 21살이란다. 4년제 대학이고, 인서울은 아니지만 경기권에 있다고 한다. 학교 이름은 끝까지 안알려줘서 모르지만 그렇다고 믿는다. 이 애 말이라면 난 항상 믿는다. 내가 얘 좋아하는 것 같다. 아 어떡해. 얘도 알려나 내가 좋아한다는 거. 고백은 안할꺼지만 사귀고는 싶다. 얘가 빨리 고백해 줬으면 좋겠다. 이렇게 연락하는 것도 벌써 한달이다. 처음엔 만나기 꺼렸지만 좋아하는 만큼 용기가 생겼다. 어디서 나온 용기인 지 모르겠지만, 걔를 만날 수 있을 만큼 생겼다. 그리고 내일 2시에 만나기로 했다. 빨리 퇴근해서 팩 해야지. 또 팀장이 눈치 준다. 이젠 답장도 안오고 진짜 일을 좀 해야겠다.

 

퇴근하고 나서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 지 모르겠다. 씻고 팩 붙이고 옷도 골랐다. 예전에 사갖고 온 치마를 드디어 입을 꺼다. 엄마가 안입을꺼면 버리라고 그랬는데. 아 이런 날에 한 번씩 입을 꺼라구여. 어젯밤에 팩을 했긴 했지만 잠을 설친 탓에 얼굴이 그리 좋아보이진 않는다. 설레서 잠이 안오는 걸 어떡해. 설레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했다. 무슨 말을 할까. 나 보고 실망하면 어쩌지. 그래도 걔는 착하니까 말 걸어주겠지. 아 너무 떨린다. 약속은 2시지만 혹시나 늦을 수도 있으니까 빨리 가야겠다.

 

재빨리 준비를 마치고 12시반쯤 집을 나섰다. 40분 거리긴 하지만 일찍 가서 기다리는 게 낫겠지. 지하철을 탔다. 오늘따라 사람들이 다 행복해보이네. 저 사람들도 이런 기분일까. 아닐 거야. 나는 오랜만에 이런 기분을 느끼는 건데. 저 사람들은 어제도 저 표정이지 않았을까. 사람들을 관찰하다 보니 어느새 도착했다. 광화문에 내려 세종대왕 동상 아래에서 보기로 했다. 우리 세종대왕님. 한글을 만들어 주신 덕분에 이렇게 제가 연애도 하게 되네요. 아직 연애는 아니지만 계속 연락하는 거 보면 비슷한 거 아닌가. 생각보다 일찍 도착했지만 기다리는 게 지루하진 않다. 왜냐면 오늘은 즐거운 날이니까. 그 뒤로 50분을 내리 기다렸다. 약속 시간인 2시가 됐고, 언제오나 사람들을 구석구석 살펴봤다. 210분쯤에 어떤 고딩무리들이 몰려 와서 누군가를 찾는 듯 했지만, 내 얼굴을 보고는 그냥 지나쳤다. 분명 21살 이랬으니깐 쟤네는 아니겠지. 착한 애니깐 거짓말 했을리도 없어. 약간 불안하긴 했지만 어디냐고 카톡을 보냈다. 답장이 없었다. 1도 안사라지네. 차가 많이 막히나보다. 저 놈의 시위. 지겨워. 이렇게 즐거운 날 차나 막히게 해서 내 기분이나 망치고. 짜증나. 좀만 더 기다려야지. 그렇게 4시간을 더 기다렸다. 6시가 되도 안오고 답장도 안보고. 아 진짜 짜증나. 나도 모르게 울음이 터져 나왔다. 주위 사람들이 날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그래도 눈물이 자꾸 흘렀다. 집까지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다. 집에 도착해서는 엄마가 무슨 일이냐며 걱정해 주긴 했지만 말하기도 쪽팔린다. 차였다고 어떻게 말해. 생전 처음으로 저녁을 굶고 잠을 잤다. 한 세 시간 자가다 옷이 불편해서 깼다. 옷을 갈아입으니 잠도 깨버렸다. 세 시간동안 정말 숙면했다. 계속 서 있어서 피곤했긴 했나보다. 구두 신고 가서 다리도 붓고 발도 다 까졌다. 이 와중에 아직까지도 답장이 없다. 아 진짜 또 눈물이 흐른다. 다행히 오늘이 토요일이고 내일이 일요일이라 정말 다행이다. 이 기분으로 회사에 갔으면 다 때려쳤을지도 모른다. 내 인생은 왜이럴까. 되는 것도 없고, 놀림 받기만 한 인생 너무 지겹다. 나도 재밌게 살고 싶다. 어떤 사람들은 클럽 가서 모르는 남자랑 놀고 오기도 한다던데. 클럽에 가봤다는 건 인터넷에서만 봤다. 나도 가보고 싶은데 혼자 가기도 무섭고 입벤? 그거 당할 것 같다. 기분 꿀꿀하다고 글이나 올려야겠다. 답글 달리면 그나마 기분이 풀어진다. 처음 차여본 썰이라고 글 써야지. 엄마가 밥 안먹냐며 화를 낸다. 밥 안먹고 살이나 뺄까 했지만 너무 배고파서 안되겠다. 밥을 먹고 나니 답글이 많이 달렸다. 걱정해주면 위로해 주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혼자 썸탄거 아니냐며 비웃는 사람도 있었다. 아 진짜 이런 사람들이 문제라니까. 나는 아니라고 같이 썸 탄 거라는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해줬다. 걔가 꼬박꼬박 답장 해줬으며 거의 매일 연락 했고, 한달이나 연락 했다고 말했다. 이렇게까지 답글을 남겼는 데도 그건 혼자 썸 탄거라고 악플을 남긴다. 안되겠다 싶어 카톡을 캡쳐해서 올렸다. 올린지 얼마 안됐는 데 답글이 우수수 쏟아졌다. 반 이상이 웃는 댓글이었고 불쌍해서 어쩌냐는 얘기가 정말 많았다. 얼굴이 붉어지고 화가 나서 글을 지워버렸다. 이렇게 답장 많이 달린 건 처음이라 지우기 좀 아까웠지만 그래도 카톡 내용이랑 글 내용이 있으니까 혹시나 걔가 알아볼까 해서 다 지워버렸다. 닉네임도 바꿔야겠다. 기분 풀려고 올렸는 데 쪽 팔리기만 하고. 되는 게 하나 없다. 내 인생은 왜 이럴까. 나도 재밌게 좀 살고 싶다.



김예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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