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차 창작콘테스트 단편소설 응모-마카롱

by 로무씨 posted Dec 03,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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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롱

송배근

 

  수연이는 마카롱을 잘 만든다. 산책하는 것도 좋아하고 섣불리 돈을 쓰지도 않는다. 대학교 내에서 친구도 많이 사귀었고 남자애들한테 인기도 많다. 언제나 내 앞에서 웃는다. 공원으로 자주 놀러가서 얘기도 나눈다. 가장 최근에 먹은 마카롱은 딸기 맛이다. 정말 내 입에 맞으니까 그냥 맛있게 먹어주면 좋아할 거야. 수연이와 손을 잡으면 언제나 떨리고 땀이나니 주의하자. 내가 긴장하지 않아도 수연이는 제대로 날 봐준다. 최대한 그녀와 눈을 맞춰야 해. 그녀의 모든 말을 받아주고 공감해줘. 수연이는 나에게 전부인 사람이다. 내 진심을 숨기지 마. 수연이의 행동을 세심히 봐주고 그녀가 좋아할만한 분위기로 만들어야 해. 어제 우리는 놀이공원에 놀러갔어. 롤러코스터나 바이킹 같이 험한 걸 많이 타서 수연이의 속이 안 좋아 보여. 내일은 조금 조심히 행동해야 돼. 그래도 그녀는 내 앞에서 웃을 거야. 그 마음에 보답 하듯이 그녀에 대해서만 생각해. 수연이의 오른손 약지에 낀 반지는 내가 준 반지야. 확실히 알아둬야 할 건 난 수연이와 사귀고 있다는 거야. 내가 그녀에게 주고 싶은 마음을 숨기지 않아도 돼.


  대부분 똑같은 내용으로 메모 돼 있는 수첩을 몇 번이나 본다. 읽을 때마다 새로운 기분이다. 정말 여자 친구가 생겼구나. 수연이를 바라볼 때마다 느끼는 마음을 전했구나. 나에게 이런 배짱이 있었을 줄 몰랐다. 그러고 보니 오늘 수연이가 내 집에 잠시 오겠다는 연락이 왔었다. 갑자기 긴장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방 주위를 둘러보면서 어딜 어떻게 청소해야 할지 궁리한다. 일단 쌓아놓은 쓰레기를 밖에다가 내놓고 냄새를 없애기 위해 창문을 연다. 먼지가 쌓일만한 부분도 꼼꼼히 살펴본다. 아까까지만 해도 깨끗해 보였던 방이 지금은 돼지우리로 전락한 느낌이다. 여자 친구 한 명 생겼다고 이렇게 변할 수 있구나. 마음이 설레 온다. 어떤 옷차림으로 올까. 무슨 대화를 나눌지도 생각해야 한다. 내 마음을 숨기지 않아도 된다고 했으니 뭐든 말할 수 있을 거다. 벨이 울린다. 수연이가 온 모양이다. 그녀의 목소리를 확인한 후 문을 연다. 잠깐 동안 넋이 나갔다. 원래 이렇게 예뻤나. 이 사람이 내 뭐라고 했지. 그녀는 날 보고 당연한 듯 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여러 감정이 교차한다. 수연이의 아름다움을 칭찬하고 싶고 안아주고 싶고 날 만나러 이렇게 꾸며준 것에 대해 감사를 표현하고도 싶다. 울려고 하면 충분히 그럴 자신이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은 엄연히 현실이고 그녀에게 있어서는 일상이다. 이런 걸로 하나하나 반응하면 그녀에게 슬픈 마음을 안겨줄 수 있다. 최대한 그녀를 위한 마음만을 생각하며 어색하지 않게 행동하자. 수연이를 방안으로 들인다. 다행히 퀴퀴한 냄새는 많이 사라졌다. 집 안과 밖을 번갈아가면서 확인한 내가 보장한다. 그녀가 불쾌감을 느낄 일은 거의 없을 거다. 그리고 그 생각은 어느 정도 맞았나 보다. 수연이의 표정은 들어올 때부터 변함이 없다. 게다가 그녀의 향수냄새가 내 방을 더 화사하게 꾸민다. 신기한 기분이다.

  수연이가 가방에서 작은 상자를 꺼낸다. 뭐 준다는 말은 없었는데. 상자 뚜껑이 열리자 단숨에 기분이 좋아진다. 수연이가 초콜릿 마카롱을 하나 집어 들어 나에게 준다. 먹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울음을 어떻게 참을지에 대한 궁리가 시급하다. 마카롱을 먹는 내내 울컥한 기분이 멈추지 않는다. 내가 먹는 모습을 바라보는 수연이의 얼굴을 보는 것도 좋다. 누가 봐도 보람을 느끼는 얼굴이다. 심장 부근이 아프다. 저 얼굴을 더 보기 위해서도 훨씬 맛있게 먹어야 한다. 실제로도 맛있어서 솔직히 계속 씹고 싶은 기분이다. 마카롱의 개수가 줄어드는 게 아쉽다. 내가 평소에도 단 걸 좋아했나. 수연이의 수제 마카롱 10개가 단숨에 없어졌다. 수연이도 좀 더 먹었어야 하는데 나 먹으라고 사양했던 마음을 그대로 받아들이다니. 나도 모르게 이성을 잃었나보다. 약간 머쓱한 마음에 말이 길어진다. 수연이도 알아챈 듯 밝게 웃으며 놀린다. 놀림 당하는데도 행복할 수 있구나. 그녀와 대화를 나누다보면 행복이 밀려온다. 계속 내 곁에 있을 거라는 그녀의 말 하나하나가 마음에 깊게 새겨진다. 메모지에 있던 내용 중 절반 이상이 그녀를 챙기는 거였는데 왜 그런 건지 알 것 같다. 그녀가 웃는 모습을 더 보고 싶다. 나로 인해서 행복해 했으면 좋겠다. 그녀와 얘기를 나누고 있는 순간순간마다 똑같은 마음이 반복된다. 실수하지 말아야지. 불편한 마음이 들게 해서는 안 돼.

 “어제의 난 괜찮게 행동했어?”

  순간 수연이가 짓던 미소가 멈추더니 이내 표정이 굳어졌다. 아차, 큰일 났다. 장난 치고는 너무 무신경했다. 몇 번이나 사과의 말을 전한다. 그녀의 마음이 쉽게 풀릴 리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말한다. 눈물이 보인다. 순간 머리가 멍해진다. 자괴감이 몸을 감싼다. 수연이는 나와 다르게 지금까지 괴로운 마음을 가지면서도 날 만나주고 있는 거다. 알고 있었을 텐데 대체 왜. 눈물이 난다. 너무 미안해서, 수연이의 마음을 다 감쌀 수 없었던 내가 너무 미워서, 그녀가 슬퍼하고 있는 원인이 나란 것을 너무 잘 알 수 있어서 더 먹먹하다. 수연이는 내가 연신 뱉는 사과를 끊는다. 나도 알고 있다. 그녀 자신이 괴로워하고 있는 원인은 더 근본적인 무언가다. 그녀가 하는 말을 천천히 새긴다. 수첩에도 세세하게 새긴다. 평소부터도 메모를 깔끔하게 정리하는 편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써왔던 메모에도 수연이가 괴로워하는 부분은 최대한 집중하면서 쓴 흔적이 보인다.

  메모를 마무리하고 수연이를 부드럽게 감싸 안는다. 함부로 그녀의 괴로움에 간섭할 수는 없다. 내가 수연이를 안고 있고 수연이도 나를 안고 있다. 하지만 해결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그럼에도 이건 일종의 결말이다. 이 이상 감정을 터뜨려봤자 서로가 느끼는 마음은 같으니 기분만 상할 뿐이다. 더 이상 수연이를 괴롭게 하고 싶지 않다. 그녀를 데리고 우리가 즐겨 가던 공원으로 향한다. 걷는 내내 수첩 내용을 떠올린다. 내 행동에 대해서도 신중해질 필요가 있다. 이번에야말로 실수하면 안 된다. 다행히 이 공원이나 근처 식당에 대해서는 복습을 마친 상태다. 반드시 가야할 곳 중 몇 가지라고 쓰여 있었으니 더 유심히 봤다. 아마 수연이가 좋아하는 곳 중 하나겠지. 수연이의 얼굴도 조금씩 밝아진다. 공원에 도착하자마자 수연이의 행동이 조금 어린애 같아졌다. 계속 두리번거리면서 꽃을 보기도 하고 주변 풍경을 바라보면서 나에게도 보여주려고 한다. 그녀를 따라 풍경을 바라보니 정말로 멋지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가 느끼는 마음을 나누고 싶어 하는 그 모습이 예쁘면서도 고맙다. 게다가 날 보면 웃는다. 손에 낀 반지도 잘 보인다. 수연이의 미소는 아직 유지되고 있다. 고맙다는 말을 얼마나 전해도 전혀 충분하지 않다.

  공원을 벗어난 후 바로 보이는 식당으로 들어간다. 대학 신입생 때부터 단골이 돼서 그런지 여러 가지로 이득이 많다. 음식 맛도 꽤 좋은 편이라 기분 푸는 데도 도움이 된다. 밥 먹을 때는 분위기가 나름 어색해질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밝아서 놀랐다. 수연이가 기분 좋을 때마다 먹는 마라탕이 아름답게 보인다. 기어코 먹겠다고 고집 부리더니 맛있게 먹는 것 같아 다행이다. 자연스럽게 다시 대화를 나눈다. 메모에 써져 있는 내용을 최대한 되새기면서 내 앞에 앉아있는 그녀를 바라본다. 몇 번을 봐도 두근거린다. 매워서 발버둥 치면서도 맛있다며 먹는 모습은 나에게 포근한 쿠션 속에 파묻히는 편안함을 준다. 이런 사소한 행동조차 사랑스럽다. 이 사람이 나와 연인 사이라는 게 아직도 꿈 속 얘기인 것처럼 느껴진다. 분명 고백만 하고 반지를 넘겨준 게 전부인데 바로 받아줄 줄은 몰랐다. 솔직히 아직도 믿기지는 않는다. 하지만 수첩에서 모든 걸 말해준다. 지금 이 순간 하나하나가 현실이며 추억이다. 잊어선 안 되는 일이기도 하지만 잊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크다. 수첩으로는 다 담아낼 수 없는 수연이의 모습이 내 머릿속을 채우는 게 느껴진다.

  저녁만 먹고 헤어지기에는 조금 부족한 느낌이 든다. 더 있고 싶다. 수연이의 미소를 조금 더 많이 보고 싶다. 뭐가 됐든 함께 하고 싶다. 시간이 정말 짧게 느껴진다. 수연이가 이런 내 마음을 알아챘는지 시내 쪽 거리로 향한다. 여러 가지 옷이나 가방 등을 진열해 놓은 가게가 즐비해있다. 수연이는 그것들을 바라보면서 걸어 다니는 것만으로 만족해한다. 그런 수연이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도 좋다. 마음 같아서는 다 사주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현실이 너무 괴롭다. 그럼에도 그녀는 웃어준다. 진심으로 즐거워해준다. 이런 소소한 일상에서조차 계속해서 과분한 마음을 느끼는 게 이상한 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 하루는 그런 느낌의 연속이다. 될 수 있다면 날 위해 일부러 웃어주는 게 아니라 반 정도라도 날 보고 웃는 거였으면 좋겠다. 이런 나라도 좋아해주는 마음이 있다는 사실이 있으니까. 집으로 돌아가면 메모해야 할 일들이 많아질 것만 같다. 하지만 그게 힘들거나 귀찮지는 않다. 수연이와 길을 걷고 서로의 집으로 가는 그 순간까지의 모든 일을 적고 싶다. 추억하고 회상하고 더 나아진 모습으로 수연이를 만나고 싶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 지금 이대로 소소한 일상 속 미소를 띠게 해주는 것. 그것만이 내가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전부이다. 그녀가 이런 내 마음을 몰라도 좋다. 부족하다고 생각해도 좋다. 이미 수연이에게 큰 상처를 준 나로서는 날 계속 만나준다는 사실 자체가 크나큰 행복이자 벌이다. 아마 오늘 내 집에서 일어났던 일이 드문 일은 아니었을 거다.

  수연이의 집 근처까지 바래다주고 인사하기까지의 시간이 오늘 하루 중 가장 아쉬우면서도 짧은 시간이다. 수연이가 손을 흔든다. 나도 웃으며 인사에 답한다. 나나 수연이나 마음속에 남은 찌꺼기가 있을 거다. 그 찌꺼기를 치우고 싶어도 치울 수 없는 현실에 답답함을 느낀다. 그럼에도 우리는 서로 웃을 수밖에 없다. 웃어야만 한다.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고 같이 있고 싶다는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래야만 한다. 수연이가 집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본 후에야 발걸음을 옮긴다. 길을 걷는 동안 여러 잡생각이 떠오른다. 선선한 밤바람을 맞으며 걸어서 그런가. 왠지 모르게 발걸음도 느려지면서 그 분위기를 즐기게 된다. 아직도 수연이의 미소가 아른거린다. 정말 예뻤지. 처음 해보는 연애이니만큼 이런 장면들이 특별하게 남는다. 수연이도 내 모습이 떠오를까.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이 기쁨을 똑같이 느껴줄까. 안 떠올라도 괜찮다는 마음과 동시에 같이 기뻐했으면 하는 마음이 밀려온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혼자서 뭘 그렇게 생각하는 건지. 어느새 집에 도착했다. 간단히 씻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후 침대로 달려든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이 순간이 정말 편하다. 가만히 누워있으면서 내일 모레에 기억해야할 일들을 쓰기 위해 오늘 있었던 일과를 생각한다. 메모 자체를 깔끔하게 정리하는 편은 아니니까 더 신중해진다. 그러나 수연이와 있는 시간 11초가 너무나도 귀하니까 이걸 하나하나 다 담고 싶다. 어떤 형태로든 지금 내 마음을 온전히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없다. 일기처럼 쓰면 감정을 절제하는 느낌이다. 마음가는대로 쓰면 나라도 못 알아본다. 이 둘을 적절히 섞어야 한다. 펜을 든다.

  밤 안부 인사를 위해 연락을 넣는다. 메모에는 그녀가 답장을 빨리 한다고 돼있는데 한동안 답이 오지 않는다. 씻고 있을 지도 모르고 자고 있을 수도 있다. 오늘은 많이 피곤할 수도 있는 날이다. 연락을 안 보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불안한 마음이 조금씩 강하게 올라온다. 수연이가 빨리 답장해줬으면 좋겠다. 전화를 걸까 생각까지 했지만 다행히 실천에 옮기기 전에 답장이 왔다. 아까 느꼈던 초조한 느낌이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휴대폰 너머로라도 그녀와 얘기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이 고맙다. 한동안 일상적인 주제가 오간다. 실제로 만났을 때도 잔뜩 나눴지만 또 새로운 기분이 든다. 손가락이 멈추지 않는다. 입이 미소를 짓는 횟수도 점점 늘어난다. 벌써 한 시간이 넘어갈 때까지 카톡으로 대화를 나눈다. 전화를 하고 싶었지만 수연이가 지내고 있는 기숙사의 규율이 엄격한 탓에 하지 못해서 아쉽다. 벌써부터 수연이의 목소리가 그립다.

  하지만 수연이의 답장에서 박제찬의 이름이 나온 순간 아까 느꼈던 아쉬움이 바로 약간의 당황이 되어 돌아왔다. 그녀가 어떻게 박제찬의 이름을 알고 있는 거지? 언제 연락 한 거야. 어떤 말을 들은 건지 알고 싶다. 실례가 될 거란 걸 알면서도 그에 대해 묻는다. 그녀 자신도 숨길 생각은 없었는지 하나하나 말해준다. 머리가 혼란스럽다. 박제찬이 우리랑 같은 학교인건 알았지만 수연이에게 따로 연락을 했었다니. 그냥 단순한 관심인지 뭔가 꿍꿍이가 더 있는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마음은 이미 답을 알고 있는 느낌이다. 나와 수연이의 관계나 나에 대한 것까지 알고 있다고 말하는 걸 보면 분명하다. 애초에 박제찬의 중학교 동창이 난데 수연이와도 같은 학교였다고? 짜증이 겉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만 같다. 아무리 메시지를 통한 연락이라도 둘이 얘기를 나누지 않았으면 좋겠다. 수연이가 가지고 있는 괴로움이나 말하기 힘든 고민이 있다면 나에게 얘기해줬으면 한다. 애초에 박제찬이라는 사람 자체가 싫다.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는 수연이에게 순수한 의도로 접근할만한 녀석이 아니다. 내가 그 사실을 가장 잘 알고 있다. 중학생 시절 이후로는 연락도 안 하던 놈이 이제 와서 굳이 수연이에게 연락을 한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절대 좋은 게 아니다. 그녀에게 전부를 얘기해 줄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박제찬과의 연락은 되도록 자제해줬으면 좋겠다고 전한다. 아직 그렇게까지 친하게 지내고 있는 건 아니라는 말을 들어도 불안한 마음과 기분 나쁜 마음이 가시지 않는다. 수연이도 나름대로의 대처를 하고 있을 텐데 내가 너무 과민반응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박제찬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수연이에게 접근한 건가 생각하다 보면, 몇 번이나 조언해도 부족한 느낌이 든다. 나에게 있어서 무엇보다도 소중한 사람이다. 더 이상 작은 어려움도 겪게 하고 싶지 않다. 조금 강압적일지라도 내 마음을 밀어붙인다. 수연이는 이런 내 모습을 보고 당황한 것 같다. 하지만 적어도 의도가 뭔지는 알아준 모양이다. 되도록 자제하겠다는 답장이 온다. 아직 불안하지만 일단 한시름 놓아도 될 것 같다. 일단 푹 쉬라고 말한 후에 카톡을 닫는다.

  자세한 얘기는 내일 만나서 하면 된다. 아마 중학생 때의 일에 대해서 말할 필요가 있겠지.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그녀에게 조금이라도 폐를 끼치는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한다. 슬슬 졸린 건지 눈이 감긴다. 아까보다는 생각도 정리 됐고 불안함도 어느 정도 가라앉았으니 당연하다. 내일 중요하다면 중요할 수 있는 얘기를 잘 하기 위해서도 자야한다. 휴대폰에서 알람이 울린다. 약간 기대하는 마음으로 휴대폰 화면을 켠다. 단숨에 잠이 깬다. 박제찬이다. 얘가 왜 나한테 연락을 넣은 거지. 안 좋은 예감 밖에 안 든다. 게다가 어울리지도 않게 인사까지 해대는 걸 보면 분명 뭔가 있는데. 짜증난다. 속에서 뭔가가 끓어오른다. 일단 무슨 일인지 묻는다. 당장이라도 무시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참아야한다. 무슨 일이 터지고 나서는 늦으니까. 박제찬이 말하는 내용을 유심히 읽어본다. 표정이 굳어져간다. 그가 하는 말은 실없는 소리가 아니다. 반박할 변명조차 떠오르지 않는다.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하면 안 될 것 같기도 하다. 지금 느껴지는 건 이 소리를 박제찬이라는 사람한테 들으면서 분하다는 마음을 거부하지도 못하는 괴로움이다. 나에게 병만 없었다면, 수연이에 대한 마음을 더 보듬어줬다면. 눈물이 날 정도로 후회된다. 박제찬은 수연이의 힘듦을 정확히 알고 있다. 내가 멋대로 생각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그것과 일치한다. 얘하고 계속 말하기 싫은데 그가 하는 말을 계속 보게 된다. 분하다. 중학생 시절에 날 배신했던 녀석이 이제 와서 소중한 사람이 겪고 있는 고통에 대해 말하다니.

  수연이에게 직접 고백한 걸 알고 있다. 그녀에게 반지를 건네준 것도 알고 있다. 수연이가 그 반지를 받아준 것도 전부. 만약 그녀를 좋아하는 마음을 가지고 고백하지 않았다면 지금 이런 고민을 가지지 않아도 될 텐데. 이젠 별 생각이 다 든다. 수연이를 좋아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는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박제찬의 일방적인 공격을 다 받고 멍해져있으면서도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다. 그의 말에 휘둘리기만 할 수는 없다. 그리고 이미 수연이가 느끼는 괴로움이 무엇인지는 대부분 알고 있다. 원인이 나니까. 그만큼 어떤 행동이 그녀를 위한 일인지도 잘 알고 있다. 그저 망설였을 뿐이다. 이런 방법 말고도 그녀와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거라고 멋대로 믿으며 행동한 내 잘못이다. 그동안 수연이는 내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괴로워하고 있었을 거다. 이제는 두려워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 수연이를 위해서라면 내가 얼마나 상처 입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녀에게도 상처를 줄 수 있다. 하지만 그것 자체가 수연이를 위한 길이다. 더 이상 멋대로 망설이며 두려워하면 안 된다. 이틀 중 하루는 이미 지났다. 마지막 하루에 끝내야 한다. 슬며시 수첩을 바라본다. 수연이와의 추억이 담긴 소중한 종이다. 수연이를 바라보며 웃고 싶다고 생각할 때나 그녀를 위한 일을 메모하며 다음날에 대한 기대를 그릴 때 언제나 적어두던 특별한 종이다. 여기에는 진심만이 담겨있다. 그 어떤 것보다도 진실된 마음만을 옮겼다. 언젠가 수연이에게 보여주고 싶은 수첩이기도 하다. 이걸 보면 날 어떻게 생각할까. 바보 같다면 바보 같겠지만 만약 조금이라도 고마운 마음을 가져준다면 그것만으로도 행복할 것 같다. 여러 가지 의미로 이 마지막 하루는 특별하다. 적어도 미련을 남기는 짓은 하지 않기를 바란다.

  여전히 머리가 복잡한 상태에서 아침을 맞이했다. 하지만 마음은 편하다. 해야 할 일을 정확히 정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루의 시작으로 수첩에 담긴 메모를 읽는다. 다행히 어제 있었던 일들을 나름대로 잘 정리했다. 평소보다 더 긴 시간을 수첩과 함께 한다. 수연이에게 연락하자. 조금은 긴장하며 카톡을 보낸다. 오늘은 수연이가 일찍 답장을 했다. 우선 머리를 감고 옷을 갈아입는다. 수연이를 생각하니 꾸미는 것에 힘이 들어간다. 조금이라도 멋져 보이고 싶은 마음은 어쩔 수 없나보다. 그러나 이런 마음을 갖는 것도 오늘로 끝이다. 마지막 정도는 이런 내 어리광을 받아주는 게 나쁘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첫 번째로 가야 할 곳은 수연이와 만날 공원이 아니라 건강검진을 받기 위한 병원이다. 병원에 도착해서 생각해보니 난 병원에 가기 위해 이렇게 꾸민 꼴이 된 것 같다. 너무 성급하게 행동한 듯하다. 여러 검사를 받은 후에 휴식도 겸해서 하루 정도 입원하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건강검진을 받은 게 언제인지 모르겠지만 병원 자체가 너무 어색하다. 병원 특유의 냄새도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잘 쉴 수는 있을지 모르겠다. 앞으로 중요한 일이 있는데 여기서 컨디션을 망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일단 다시 한 번 수첩 안에 있는 내용을 확인한다. 이제는 든든한 버팀목과도 같은 물건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제는 그만 놔줘야 할 때이다. 수연이의 추억을 적어 놓은 페이지만을 수첩에서 분리한다. 종이가 찢기면서 내 안의 무언가도 찢기는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더 독한 마음을 먹어야 한다. 수연이와의 추억이 담긴 종이가 점점 쌓여간다.

 “호성아.”

  익숙하다 못해 감미로운 목소리다. 이건 수연이의 목소리다. 그녀가 이곳에 웬일이지? 분명 공원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어리둥절한 마음을 최대한 정리한다. 수연이의 장난기어린 미소가 보인다. 내가 건강검진 받는다는 건 어디서 알아가지고 온 건지 모르겠다. 병원 위치도 말한 적이 없는데 잘도 찾아왔네. 그녀의 미소를 볼 때마다 드는 마음이 또다시 느껴진다. 하지만 또 이 마음에 의지해서 망설이면 안 된다. 내가 좋아하는 수연이를 위해서라도 최대한 자연스럽게 행동해야 한다. 그녀를 향한 마음을 죽이자. 왠지 모르게 긴장이 된다. 마음을 굳게 먹었어도 힘든 건 힘든 일인가보다. 일단 표정부터 웃음기를 싹 없앴는데도 불구하고 수연이는 환한 미소로 날 걱정해주고 있다. 금방이라도 웃음이 나올 것 같다. 이런 여자가 내 애인이라는 사실에 다시 한 번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래도 버텨야한다. 어제 다짐한 것들을 계속해서 마음속에 되새긴다. 그녀에게 헤어지자고 말한다.

  수연이 네가 나 때문에 괴로운 게 너무 많으니까 헤어지는 게 맞는 거겠지. 그녀는 내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진심이 느껴져서 더 힘들고 고맙다. 그렇기 때문에 맞서야 한다. 나도 너와 헤어지는 게 싫어. 정말로 싫어.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 내가 여기 있는 이유도 네가 이곳을 찾아온 이유도 아마 하나의 원인으로 이어져 있을 텐데. 네가 우는 모습을 볼 때마다 죄 짓는 기분이야. 실제로도 그럴 거고. 그게 잘못됐다는 게 아니야. 그런 마음을 가질 필요가 없는 사람이 나 하나로 인해서 짊어지고 있다는 게 너무 괴로워. 너도 알다시피 난 이틀 전에 써놓은 메모로 너를 바라보고 있어. 없는 기억 가지고 널 바라보는 일도 이제는 힘들다. 내 말 알겠지. 서로 힘들어할 바에는 그냥 우리 여기서 끝내는 편이 훨씬 나아. 네가 나한테 해주는 위로의 말들도 이제는 동정에서 우러나오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그동안 진심으로 나를 좋아해줘서 고마워. 우리 이제 그만 하자.

  수연이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몇 번이고 내 말을 거부하면서도 흘러넘치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한다. 정말 좋아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행동은 상상 이상으로 힘들다. 더 이상 말을 하고 싶지 않을 정도다. 솔직히 조금만 있으면 내 눈물도 바로 터져 나올 것만 같다. 하지만 말해야 한다. 어떤 말을 할까 생각하던 순간 갑자기 수연이의 뒤에서 박제찬이 따라 들어온다. 이 녀석이 왜. 의문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수연이에게 박제찬도 이곳에 오게 된 이유를 물으면서도 답을 알아가는 기분이다. 아마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게 맞겠지. 죽어도 날 생각하는 녀석이 아니라는 건 이미 뼈저리게 알고 있다. 그때도 날 위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나에게서 뺏은 친구들과 함께 따돌리진 않았을 것이다. 오늘 새벽에 느꼈던 짜증이 다시 올라온다. 본의 아니게 내 목적을 조금은 수월하게 이룰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수연이에게 조금씩 짜증을 낸다. 눈에 보일 만큼 티를 내면서.

  박제찬이 반박한다. 그가 하는 말은 겉으로 들어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럼에도 어이없다. 그 얘기를 왜 이런 사람한테 들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애초에 그가 하는 말은 어젯밤에 카톡으로 말한 것과 다를 게 없다. 멍한 표정으로 박제찬을 바라본다. 지금 이 분위기에서 가장 녹아들지 못한 사람이 박제찬 같다. 수연이를 바라본다. 아직 울고 있다. 하지만 박제찬의 반박에 그녀 스스로 뭔가를 느끼고 있지는 않아 보인다. 그의 말은 대부분 무시하는 게 정신 건강에 좋다. 다시 수연이에게 집중한다. 이런 놈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을 정도로 괴로웠으면 놓아주는 게 맞다. 네가 박제찬을 어떻게 생각하든지 상관없어. 우리 둘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 자체가 힘들잖아. 내 고백을 왜 받아줬는지 넌 아직도 말해주지 않고 있어.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받아줬을 수도 있겠지. 넌 인기가 많으니까. 하지만 내가 이런 상태가 되고나서부터는 헤어지기도 불편하게 돼서 지금껏 연인 사이로 지내왔던 게 아닌가 싶네. 너만 힘든 거 아니야. 나도 힘들고 미치겠어. 날 보는 너도 힘들겠지만 난 이틀에 한 번 꼴로 너와의 추억을 잊어버린단 말이야. 수연이의 눈물이 멈췄다. 큰 충격을 받았나보다. 자신이 듣고 싶었던 말은 이런 게 아닐 텐데. 지금 내가 말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도는 알고 있다. 다시 한 번 가슴이 찢어지는 느낌을 받는다. 수연이가 앞에 미리 찢어놓은 메모장들을 보여준다. 이거 보이지? 지금까지 내가 적어놓은 것들이야. 너 하나만을 위해서 지금까지 적어놓은 것들이라고. 이제는 필요 없게 될 종이이기도 해. 나 정말 괴롭다. 다 잊고 싶어.

  수연이와의 추억을 찢는다. 분간할 수 없게끔 잘게 찢는다. 동시에 수연이의 표정이 점점 굳어간다. 그래, 이거면 된 거야. 이제 다 끝났어. 넌 더 이상 못난 남자 때문에 괴로워하지 않아도 돼. 날 잊어도 돼. 곧 있으면 널 잊을 남자 따위 기억해서 뭐하겠어. 괜히 나 같은 사람에게 시간 낭비 하지 말고 더 좋은 남자 찾아서 정말로 행복한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 이런 내 마음을 알아준 건지 그냥 평범하게 마음이 상한 건지 수연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병실을 나갔다. 중요한 일을 끝냈다. 적어도 박제찬과의 얘기 정도는 하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그 얘기까지는 하지 못했네. 박제찬과 눈이 마주쳤다. 언제 봐도 기분 나쁜 위선의 눈빛이 보인다. 할 말 없으면 당장 여기서 나가줬으면 좋겠다. 아마 박제찬도 할 말은 없을 거다. 예상대로 몸을 돌려 발걸음을 옮긴다. 하지만 가기 전에 딱 한 가지. 이 녀석에게 말해두지 않으면 안 되는 마음이 남아있다. 정말 이기적이긴 하지만 꼭 말해야 할 몇 마디.

 “수연이의 마음을 보듬어줄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 이해하려고도 하지 마.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넌 수연이를 볼 자격도 없어.”

박제찬이 코웃음을 치면서 나를 바라본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마음속으로 무슨 말을 했는지는 나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말하고 싶었다. 분명 나중에 상처 받는 사람은 수연이일 테니까. 아직도 박제찬이 한 일은 잊을 수 없다. 그의 얼굴에는 아직 중학생 시절의 흔적이 남아있다. 날 버렸을 때와 같은 눈이다. 중학생 때 내가 좋아했던 여자애를 한 일진도 좋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박제찬은 그 날로 내가 있어야 할 자리를 빼앗았다. 그럼에도 친구라고 생각했다.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나보다도 더 친구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내가 다시 다가가려 했을 때 날 버린 게 이 녀석이다. 따돌림을 주도하면서 자신의 친구들과 웃었다. 내 친구라고 생각했던 녀석들도 그의 말 몇 마디에 나를 쓰레기로 봤다. 처음으로 외로웠고 어이없었다. 이런 녀석들을 위해서 광대 짓을 한 건가 싶었다. 그리고 그 자리를 뺏어서 만족해했던 박제찬에게 화내야 할 가치조차 느끼지 못했다. 그때 우습게 날 바라보던 시선을 지금도 보고 있다. 가장 잊고 싶었던 기억이 끝없이 반복된다. 그가 병실을 나간다. 이제 혼자 남았다. 아직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다. 일단 수연이의 눈앞에서 찢어버린 메모지들을 줍고 쓰레기통에다가 넣는다. 그 둘이 연인 사이가 될지 안 될지는 모른다. 수연이에게 달린 문제겠지. 종잇조각이 더 없나 바닥을 훑어본다. 핑크색의 작은 상자가 보인다. 가슴이 먹먹해진다. 조심스럽게 상자를 집어 든다. 약간의 무게감이 느껴진다. 당장이라도 내용물을 확인하고 싶다. 하지만 미련을 가지면 안 된다. 상자를 쓰레기통에 넣는다. 병원 침대에 누워 조용히 눈을 감는다. 이제 눈을 떴을 때는 완전히 새로운 일상이 시작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수연이의 얼굴을 상상한다. 아직까지 예쁜 모습으로 기억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아침이 올 때마다 메모지를 확인한다. 어제는 건강검진을 받았나보다.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갈아입고 병실을 나간다. 다행히 오늘은 오후 수업밖에 없는 날이니까 근처에서 밥을 먹고 가도 될 것 같다. 학교 근처의 돈가스 식당으로 간다. 옆 건물이 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마라탕 집이지만 매운 건 별로다. 밥을 다 먹고 학교로 향한다. 약간 입이 심심한데. 달달한 게 당긴다. 가는 길에 디저트를 파는 가게가 있을 거다. 그곳으로 향한다. 내 반대편 신호등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중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박제찬이다. 저 녀석이 같은 학교인 건 알았지만 그 근처에서 얼굴을 보게 되면 기분이 나쁘다. 누굴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데. 박제찬과 마주쳐도 서로 무시하면서 지나치겠지. 신호가 바뀐다. 꽤 많은 사람들끼리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는 상황에서 어떤 여자가 박제찬에게 다가가는 모습이 보인다. 우리 학교에서 인기가 많은 사람으로 유명한 수연이다. 웃는 모습이 인상적이라 기억에 남는다. 처음 만난 게 1년 전이었나. 꽤 호감 가는 사람이었는데 박제찬이 곁으로 가는 수연이의 모습을 보니 조금 씁쓸한 기분이다. 나중에 상처만 받지 않기를 바라야지 뭐. 오늘은 정말로 달달한 걸 먹어야겠다. 마침 마카롱 가게가 눈에 띈다. 망설이지 않고 가게에 들어가 주문한다.

 “딸기 마카롱 하나 초코 마카롱 하나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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