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김수연

by 초아 posted Dec 09,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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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김수연

 

이사 오면서 새로 장식한 유자색 레이스 커튼은 5월의 아침 햇살을 차단하기엔 무리수인가 보다. 며칠 내내 지끈거리는 두통에 밤새워 뒤척이던 인희는 커튼 사이 반사된 햇살에 코끝을 찡그려 본다.

 시계는 9시를 지나고 있었다.

매주 월요일에 있는 노인 복지관 배식 봉사가 생각이 난 인희는 애벌레 껍질 벗듯 하얀 면 이불 속에서 몸만 쏙 빠져나왔다.

 빼지 말고 복용하라고 시드니에 있는 딸이 사 온 갱년기에 효과 있다는 캡슐로 된 약 한 알과 보라색 아사이베리로 만든 보조 식품이라는 두 알을 입에 넣고 물을 마심으로 일과가 시작되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인희의 인생에서 딸 존재만큼 절대적인 건 아마도 없으리라.

 딸이 사 온 거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인희는 경건한 의식이라도 행하듯이 그렇게 약을 먹는다.

930분까지 복지관에 도착해야 하는데 시간이 촉박하다. 샤워하기엔 바쁠 것 같아 얼굴 세안만 하고 기초 화장품에 선크림을 바르는 것으로 단장을 마무리하면서 급히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늦은 새벽 장사 마치고 들어오면 지하 주차장은 늘 만원이라 아파트 입구 도로변에 주차하곤 한다.

좁은 소방로엔 이팝나무 가로수가 띄엄띄엄 키재기를 하며 자릴 지키고 있는데 요즘처럼 이팝나무 꽃이 만발할 즘엔 밤이슬 맞은 차는 떨어지는 쌀밥 꽃에 그대로 꽃차가 되어버린다.

  인희는 애마에 피어난 흰 꽃이 낙화 되지 않길 바라며 서서히 시동을 걸었다. 오디오에선 엔야의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오늘은 매주 있는 노인 복지관 배식 봉사가 있는 날이다.

입구에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항상 머금고 있는 김 씨가 인희를 반가이 맞아주셨다.

 허우대 큰 김 씨가 앉기는 터무니없이 작은 책걸상이지만 김 씨는 좁은 의자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서 배식명단을 꼼꼼히 점검하고 있었다.

인희는 보관함에서 봉사자 파란색 조끼로 갈아입고 서둘러 식당으로 들어서니 오늘 점심 메뉴에 부침개가 있나 보다 부침개 냄새가 온 복지관을 점령하고 있었다.

 

매주 월요일은 노인복지관 회원 어르신들께서 제과를 만드는 날이다 보니 주방은 늘 복잡하다.

 딱히 제빵 주방을 따로 마련할 공간이 없어서 주방 한쪽에 반죽 기계며 오븐을 세팅해 두고 주방을 함께 쓰다 보니 주방 여사님들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다.

 그런 탓으로 부침개나 전을 만들 적엔 항상 식당 테이블 위에서 부침개를 만들곤 한다.

인희는 조금 늦은 미안함에 애써 밝은 인사를 하며 다가섰다.

 

안녕하세요~”


위생 장갑을 끼면서 화자가 인사를 받는다.

고모 오셨어요?”

올해 연세가 환갑을 넘긴 화자는 나이 어린 인희에게 깍듯이 인사를 한다. 집안으로 따지면 나이 어린 인희가 고모 벌 되는지라 화자는 인희에게 항상 깍듯하다.


좀 늦었어요~ 부침개 홀에서 하는 거예요?”

주방 좁다고 여기서 하라고 하요, 고모가 이쪽으로 와서 뒤집을라요

인희는 화자의 반대편에 서서 스테인리스 바스켓에 가득 있는 부침개 반죽을 작은 양푼이로 옮겨 담으며 화자에게 물었다

어제 모임은 잘 다녀오셨어요? 많이 나오셨던가요?”

인희는 저녁엔 꼬치구이 점을 운영하다 보니 저녁 모임을 많이 참석지 못한다.

 어제도 졸업 후 결성된 동문 모임이었는데 나가지 못한 터라 화자에게 소식을 물었다.

 화자는 만학도로 성인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올해 대학 입학한 15학번 새내기 학생이다. 올 예순세 살 환갑을 넘긴 나이에도 늘 열정이 넘친다.

수년 동안 여성회 회장을 역임하면서 봉사의 달인이다. 어르신 목욕 봉사에서부터, 배식 봉사, 사랑의 밥차, 두루두루 섭렵하고 있기에, 어르신들과는 친한 친구 사이처럼 지낸다.

 

식당 청소와 상차림을 마치고, 어르신들 편히 않으시도록 의자까지 빼놓으면 준비는 완료된 것이다.

열한 시 반부터 어르신들이 밀려드실 것이다. 오늘 봉사자는 4명이다.

어르신들이 좌석에 착석하면, 일렬로 서서 릴레이식으로 점심 식판을 어르신들께 전달한다.

마지막에 있는 사람이 테이블에 놔드리기 때문에 비교적 젊은이나 남자들로 배치된다.

오늘은 남자 봉사자가 없어서 인희가 그 역을 해야 했다.

남자 봉사자는 사회봉사 명령을 받은 음주운전이나, 폭행으로 온 경우가 많다.


맛있게 드세요


한껏 밝은 미소로 인사를 전하며 식판을 어르신 자리에 사뿐히 내려놓는다.

그녀의 이마에 송글 송금 맺힌 땀 때문일까? 그녀의 피부는 형광등 불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며 윤이 났다.

복지관 벽시계는 한 시를 달려가고 있었다.

인희와 화자는 식당 뒷정리를 마치고, 급식 판에 점심을 퍼왔다.

화자는 활동력만큼이나 많은 밥과 반찬을 식판에 쌓아왔고 인희는 두어 수저면 없어질 정도의 밥을 가지고 와서 자리에 앉았다.


하루 한 끼의 식사로 오후 2시경 대충 때우던 인희는 노동 후 찾아온 허기에 만찬의 식사를 하였다.

오후 2시 전공수업 들어가려면 급히 먹고 학교로 이동해야 한다.

식사를 마치고 현관 입구에 있는 제빵 실에 들려 어르신들이 직접 만들어서 판매하시는 단팥빵을 사 갈 양으로 들어섰더니, 만원에 두 봉지의 빵을 건네신다.

한사코 사양하였지만, 꽃무늬 바지가 유달리 어울리시는 만복 이모는 인희의 두 손에 건너 주시면서 다른 사람 보기 전 얼른 가라시며 손짓을 보내신다.

인희는 가슴의 먹먹함을 안으며 만복이모의 배웅을 뒤로 복지관을 나섰다.

 

 

화장품 세일즈를 하는 인숙은 고객 집 방문 겸 죽교동에 왔다가 친정에 들렀다.

작은 옥상에 화분 고추 모종을 심던 손을 잠시 멈춘 윤 여사는 인숙을 향해 푸념처럼 읊조렸다.


그것도 자식이라고 요즘 인희가 보고 싶다야

그란게 엄마도 인희 오면 따뜻하게 좀 대해줘요. 사는 것도 요즘 힘든가 보든디, 친정이라고 오면 맘 편히 앉았다 갈 수 있게 엄마가 좀 다독여 줘요

아야 내가 지한테 뭐라고 한데 괜히 지 혼자 눈치 살살 보고 오해만 할라고 한 게 글제. 그라고 이번 어버이날도 그 꼬락서니 안 봤냐, 정서방이랑 같이 와서 있다가 가면 남 보기에도 좋을텐디 ,우리 집에 사위라고 하나 있는 게 그 모양이니 내가 정이 가것냐

그래도 인희가 이제껏 엄마한테나 동생들한테나 할 만큼 했지 않소 엄마가 말 한마디라도 좀 따뜻하게 하면 좋지 않것는가?”

니는 꼭 무슨 말만 하면 니 동생 편만 들더라 내가 얼른 죽어야지 이 꼴 저 꼴 안보지

아이고, 나도 모르것소 술빵 사 왔은게 잡숴보쇼,나는 수금 땜에 바쁘니 그만 갈라요

열무 비벼논 거 있은 게 밥 묵고 가라


인숙은 윤 여사의 푸념 뒤에 또 어떤 스토리가 전개될지 뻔히 아는 터라 서둘러 집을 나왔다.


몸서리 치도록 벗어나고 싶었던 달동네, 지워버릴 수 있다면 지워버리고 싶은 유년시절.

 다행히 배운 것은 없으나 성실한 남편 만나, 두 아들 낳고 꾸임 받지 않고 조금이나마 저축하며 살아올 수 있었던 게 정말 감사하다.


무정한 양반 뭐가 그리 바빠서 남같이 한번 세상다운 세상 한번 살아보지도 못하고 그리 가셨소


인숙은 겨울이면 물동이 어깨에 지고 물 길어 먹던 공동수도가 있었던 대선네 집 앞을 지나며 털어내고 싶은 아픔들을 상기하며 골목을 벗어났다.

 

인희야 엄마한테 한번 찾아가 보거라 노인네 이제 늙었는가 한풀 껶였더라, 니 보고 싶다고 요즘 그러셔 엄마 돌아가시면 후회하지 말고 우리 서운한 맘 접자인희는 윤 여사가 본인을 찾으셨다는 인숙의 전화에 인숙에게 되물었다

언니, 진짜로 엄마가 날 찾으셨다고? 진짜로?”

내가 뭐하려고 거짓말하것냐, 시간 내서 한번 찾아가거라

알겠어요, 오늘 수업 있어 학교 가고 있어요. 금요일 수업 없으니, 정서방이랑 함께 갈게요. 언니도 같이 가자

그러든가 하자. 그라고 인희야 이달 식품 영매 걸렸는디 키토산 기획 나왔어야, 니도 몸 좀 챙겨가면서 일해라, 우리 나이엔 건강보조 식품도 먹어야 해야!”

언니 그건 알지만 내가 아직은 그럴 여유가 없어 은혜 유학자금 빛 정리도 안 됐는데, 들어갈 돈들이 줄 서서 기다리고 있어 죽어라 일해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네, 빈민근로자층이란 신조어가 나를 두고 나온 말인가 봐

아이고 그란게 말이다, 그래 오늘 수금 마치고 니 가게 갈게, 썪을 놈의 시상 술이나 한잔 하자

 

 

 

생명 없이 움직이는 건, 반복되는 조합 속에서 늘 상 똑같은 모습이지..

신호대기 중, 반복적 움직이는 전광판을 해독하기까진 1분이 걸렸어.

 

대학 캠퍼스는 봄빛이 완연하다. 벚꽃 향기 바람에 흩날리고, 튤립 활짝 핀 봄의 캠퍼스에는 봄나들이 나온 어린이집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봄이 무르익어 가고 있는 오후 한나절

A6 사회관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방석과 전공 서적을 확인하고 차에서 내린 인희는 한껏 어깨를 곧추세웠다 언젠가 어깨가 굽었다는 세신 언니의 지적에 의식적으로 어깨를 펴고 걷기를 생활화하고 있다

안녕하세요

밝게 인사 건네며 다가온 지선은 인회와 같은 과 학생이다

어 지선

가볍게 한 손을 들어주며 반가움을 표한 인희는 강의실로 들어선다

과대표 지아는 언제나처럼 강의실에서 양치하고 있었다. 양치를 하면서도 친구들과 수다를 떨 수 있음에 인희는 적잖이 놀라웠다.

양치를 집에서 하고 오든가 화장실로 가든가 강의실에서 양치하는 건 습관일까? 아니면 관심 끌기? 대학생활의 새내기들의 강의실은 항상 활기로 가득하다.

자신의 머리보다 더 큰 거울을 들고 한껏 멋을 부리는 아이 저 거울을 소지하고 다니려면 아마도 저 아이는 큰 가방을 가지고 다녀야 할 듯싶다는 생각에 웃음이 나왔다

아 풋풋해 언제 나에게도 이런 세월이 있었을까?,

지아의 양치질 흰 거품이 입안에 가득 찰 즈음 최정수 교수님이 들어오셨다

수업을 알리는 교수님의 출석체크에 자세를 바로잡은 인희는 핸드폰을 무음으로 바꿨다

오늘 수업은 나의 20년을 슬로건으로 프레젠테이션을 발표하는 시간이다.


여러분 ppt 준비해 왔죠. 1번부터 발표 들어갑니다


교수님은 1번 강지민을 호명하며 시작을 알렸다. 인희는 9번인지라 긴장감을 추스르며 순서를 기다리며 어린 친구들의 프리젠터이션을 경청하였다.

이윽고 인희의 순서가 왔다 딸보다도 더 어린 스무 살 어린 친구들 앞에서 나의 50년을 발표하였다.

반갑습니다. 저는 15학번 김인희입니다. 교수님께서 내주신 과제는 나의 20년이었는데 저는 나의 50년으로 발표하겠습니다


10대부터 50대까지 분류해서 발표하는 인희의 양 볼이 붉어졌다.

어려서부터 천형 같은 결핵으로 공부를 커녕 제 몸 하나 못 가누고, 밖에서 뛰어놀던 아이들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아침이면 반듯한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가는 친구들이 또 얼마나 부러웠던가.


 혹여나 친구들과 마주칠세라 죄인처럼 나서지도 못하고 작은방 창문 너머로 훔쳐보며 시들어 갔던 약 냄새에 찌든 10대에서 결핵 완치 판정으로 결혼 생활을 시작한 20, 그리고 전쟁 같은 삶을 치른 304050대를 이야기하자니 할당된 10분을 훨씬 넘기고서야 발표를 마쳤다.

이 아이들이 이해할 순 없지만, 이 또한 자신에게 주어진 몫이라 여겼지만 이러한 자신의 모습이 인희는 낯설기만 하다. 저만치 20대의 인희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웃고 있었다.


너무나도 가고 싶었던 대학이었는데 고마워요. 꿈을 이루게 해주어서요


두 번째 25살을 지나 찾아온 소중한 대학 시절, 살아있음에 진정 감사하다고 인희의 눈가가 촉촉이 젖어 들었다

 

대학 캠퍼스가 아름다운 이유는 청춘이 있기 때문이다.

청춘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 안에 꿈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꿈이 있는 한 나도 청춘이다.

 

마지막 강의가 끝나자 인희는 서둘러 나와서 운영하는 카페로 차를 몰았다.

인희에겐 유일한 수입원이 되는 곳이기도 하지만 그녀의 유일한 안식처이기도 하다.

하루를 포식한 태양이 그려놓은 엷은 수채화로 물들어 가고 있는 지산재, 그녀의 애마도 그 노을 속으로 미끄러지듯 빠져들어 간다.


부주산 자락에 자리 잡은섬 카페

그 뒤론 삼향천이 흐르고 그 곳에 자리 잡은 개망초와 삐비꽃 무리가 흐드러지게 피고 지고 청둥오리 가족들의 이야기가 있는 곳, 인희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이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간 인희는 섬을 찾아 올 모든 인연들을 기다린다.

그들이 풀어놓은 오늘은 어떠했을지, 설레는 마음으로 상을 차려 본다.

스피커에선 나나 무스꾸리의 only love 가 흘러나오고 열어둔 문으로 이팝 꽃 두어 송이 바람에 실려 들어온다.

 

So Ive learned a lot of things in the past year or twoLike theres different types of love that I should know ab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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