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낭만의 인터벌
방금 들으신 곡은 존 레넌의 Imagine입니다. 이매진 올 더 피플, 피플, 리빙 라이프 인 피스, 유 후 우우우. 저는 어렸을 때부터 이 부분이 좋았어요. 오빠가 카세트테잎에 이 노래를 녹음해 새벽쯤에 듣곤 했어요. 라디오에서 나온 음악이었을까요. 무슨 음악캠프였겠죠. 그 노래가 꼭 우리 얘기 같았어요. 그러니까 이매진 올 더 피플, 이 부분 말이에요. 그래서 저는 항상 평화로운 교실에 대해 상상했어요. 욕설이 없고 소음이 없고 모두가 자리에 곱게 앉아 선생님을 기다리는 거예요. 선생님이 출석을 부르는데 처음 불리는 김씨 학생이 안 와서 우리 모두 아이의 집에 찾아가죠. 병환이 깊어진 아이의 곁에 둘러 앉아 옛이야기를 하면 어느새 밤이 지나고 아침이 와서 다 같이 학교에 가는 거예요. 사설이 좀 길었나요. 자, 그럼 광고 듣고 가겠습니다.
전주가 나올 때 창이 들어왔다. 창은 자리에 앉자마자 꾸벅 인사를 했다. 외자의 가명, 창이란 이름은 누가 지어준 것인지 괜스레 낯설었다. 창은 정장을 입었다. 새벽의 끝자락에 머리를 박고 온 피곤함은 혹 하나만큼 더 자라 있었다. 나는 말없이 눈을 감았다. 가슴골에 땀이 찼다. 속옷을 벗고 싶었다. 누가 귀에 대고 속삭였다.
“아까 광고했어요.”
번뜩 정신이 들었다.
아까 광고한 걸 제가 잊었나 봐요. 여름철이 되면 깜빡깜빡 하죠. 매년 기록적인 불볕더위란 말만 듣다 보면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늘어나는 것이라곤 당최 도움이 되지 않은 수치뿐이네요. 자, 어쨌든 오늘은 살아 있는 사람은 없다, 라는 전쟁영화로 돌아온 배우 송창 씨를 모셨습니다. 라디오 출연은 처음이시죠. 반갑습니다.
예, 배우 송창입니다.
존 레넌의 Imagine은 잘 들으셨나요?
예, 예전에 여자 친구가 즐겨 들었습니다.
예전이라면 얼마나?
한 오 년쯤 되었어요.
좋아요, 그럼 프로필을 얘기해볼까요.
좀 어색하네요, 이 자리.
주말 드라마를 통해 데뷔하셨죠. 동생처럼 지내던 철없는 부잣집 여자와 남편의 외도 때문에 이혼한 중년의 여성 사이에서 갈등하던 남자 주인공이셨어요. 연말 연기대상에서는 최우수 연기상 받으셨고. 돌연 영화를 연달아 두 편을 찍으셨어요. 한 편은 우리 은하 너머에 사는 토착 외계인을 몰아낸 현대 문명사회의 과학자를 연기하셨고 한 편은 가부장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살인자 얘기였지요, 아마. 어떠셨어요. 영화 찍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없으셨나요.
아무렇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었겠죠. 우리 은하 너머에 사는 토착 외계인은 당연하게도 없잖아요. 그냥 아무도 없는 허공에 대고 소리를 쳤죠. 당장 이곳에서 떠나지 않으면 쓴 맛을 보게 될 거야. 대사를 마치곤 여유가 있었어요. 외계인이 물끄러미 주머니를 뒤적일 차례였거든요. 그런데 울컥하더라고요. 그때처럼 펑펑 울어본 적이 없어요. 감독님이며 같이 연기하던 배우들까지 다가와서 왜 그러는지 물었죠. 차마 말할 수 없었어요. 개인적인 일이었으니까요.
조금 우울한 얘기인가요.
많이 우울한 얘기였을 거예요. 울음의 이유가 복합적인 데다가 나중에 깨달았을 땐 해명할 수 없었죠. 전 그냥 감정이 북받친 척 내내 울었어요. 개운하지는 않았어요.
유명 여배우가 울먹이는 송창씨 손을 잡아주던 사진은 촬영현장에서 찍은 거죠?
좀 억지라고 생각해요, 저흰 아무 사이가 아니거든요.
아무 사이 아닌 사람들이 곧 결혼하잖아요.
짓궂으시네요.
살인자 역할은 버겁지 않으셨나요?
예, 전 오히려 그 역할이 더 쉬웠어요. 잠깐 한눈팔면 이렇게 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고 나니까 좀 무섭지만 사람을 죽인다는 건 무슨 느낌인지 궁금했죠. 물론 배우로서 궁금하단 얘기죠. 영화를 찍는다 한들 실제 사람을 죽이는 건 아니니까. 그날 이후엔 가끔 사람을 죽이는 꿈을 꿔요. 도구는 늘 달랐어요. 가위거나 손톱깎이거나 심지어 이빨이기도 해요. 꿈에서 이빨이 빠지는데 빠진 이빨을 남의 목에 쑤셔 박는 거죠. 그러면 사람이 죽어요. 참 이상한 생각일 테지요. 이빨에 찔리면 죽는 건가. 자기 몸이 아닌 것이 자기 안에 들어가면 죽는구나. 그런 생각을 해요. 낮에는 다행히 꿈을 안 꿔서요. 요즘 병원에 자주 들릅니다. 잠을 잘 못 자는 편이어서요. 수면제를 먹어요. 수면제를 먹으면 잠이 오거나 하진 않아요. 단지 수면제를 먹었으니 잠을 자야 한다고 생각해요. 수면제를 처방해주는 이유는 잠이 들기 위함이니까 의사가 부여한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럼 잠이 와요. 잠이 오는 건지, 잠을 자는 역할이 오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간신히 잠이 들 수 있습니다.
신기한 직업병이네요, 나머지는 잠깐 광고 듣고 다시 들어볼까요.
물을 마신다. 목이 아니라 몸이 타들어가는 기분이다. 창은 내내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다. 나는 눈을 감을 때 창의 시선을 더 또렷이 느낀다. 이른 아침, 잠에서 깨어나기 전이면 야윈 아기 표범이 옆에 누워있는 기분이 들었다. 잡아먹히지 않을까 싶다. 약간 무섭지만 일어나고 싶지 않다. 차라리 잡아먹히는 편이 낫다. 뼈를 아작아작 씹어주는 당신은 아마 내 어떤 것이라도 체내에 저장하고 싶은 모양이다. 침실에는 빛이 들어오지 않았다. 당신의 시선은 눈을 뜰 때 더 어두워졌다. 그리곤 당신은 날 여태 바라보지 않은 것처럼 눈을 감았다. 나는 당신의 어깨를 물었다. 움찔거리는 당신에게 말한다. 자는 척하는 거 짜증나. 당신은 내게 받아친다. 지금부터 잠이 들고 싶은 심정이라고. 나는 당신의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본다. 당신의 눈이 나를 본다. 당신은 창이다. 창이 되어 내 앞에 앉았다.
8772님, 송창씨 예전에 사인회에 갔었는데 너무 잘생기셨어요, 어쩜 그렇게 매력적일 수 있을까요. 예, 저도 제 라디오 방송에 나온 분 중에서 가장 잘 생긴 분과 함께 있어서 너무 좋습니다. 6473님, 송창씨 노래 한 곡 뽑아주시면 정말 좋을 거 같아요, 중저음의 목소리 너무 매력적이에요. 저도 듣고 싶네요. 어떠세요, 송창씨.
기회가 된다면 꼭.
여태 노래를 부를 기회는 없으셨죠?
네, 저는 방송에 출연하지 않는 편이고 배우 역할에 한해서는 아예 없었죠.
건의해보시지 그러셨어요, 예를 들면 살인자가 사람을 죽이고 유쾌한 노래를 부르는 거죠.
각본은 작가 고유의 역할이잖아요.
역할에 대해 많이 신경 쓰시는 편인가요?
예, 저는 사람들이 각자의 역할, 각자의 장소에서 세계를 위해 노력한다고 생각합니다.
무려 세계를 위해서요?
세계를 위한 일이 별거 있나요. 편의점에서 건전지를 파는 사람과 전쟁 속에서 탄창을 가는 사람의 절실함은 차이가 있겠죠. 어쨌든 그들은 더 나은 세계를 위해 살잖아요.
너무 딱딱한 얘기 말고, 새로 찍은 영화에 대해 얘기해주세요.
이번에 제가 찍은 영화는 이번 달 말에 개봉합니다. 살아 있는 사람은 없다라는 영화인데요. 전쟁 영화입니다. 사랑에 관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좀 더 자세히 들을 수 있을까요.
남녀가 강가에서 만나요. 영화 처음 장면이에요. 여인은 발가벗은 채 강가에 몸을 완전히 담그고 있고 남자는 지퍼를 내리고 강가에 오줌을 싸죠. 여인이 먼저 남자를 발견하고 도망가려다 걸려요. 물길이니까 걸리지 않을 수가 없죠. 남자는 여자에게 총구를 겨눠요. 그때 여자는 ‘잠깐만요, 당신 동정이죠.’ 라고 묻고 남자는 강가에 총을 한 발, 발사하죠. ‘한 번 해보고 싶지 않아요.’ 여자가 다시 물어요. 남자는 총을 쏴서 여자를 죽이는 것의 이윤과 한 번 자는 것의 이윤을 생각해요. 조금 야한가요.
심의와는 상관없는 일이죠.
남자는 여인과 한 번 하게 돼요, 강가에서. 그런데 남자에게 여인의 몸이 너무 꼭 맞는 거예요. 살면서 몸이 맞는 사람 만나는 게 어려운 일이잖아요. 마치 우리 집 문 열쇠로 다른 집 문이 열리는 것처럼요. 너무 아쉬운 거예요. 그래서 여인의 집을 묻죠. 여인의 집을 알게 된 남자는 제안해요. 자신이 정찰병인데 근처에 개미 한 마리 얼씬하지 않게 해준다고요. 남자는 돌아가서 상관에게 보고합니다. 그런데 남자는 거기에 돌아오는 데 삼 년이 걸려요. 중간 과정이 있으니까요. 마침내 전쟁이 끝나자 남자는 한걸음에 여인의 집에 다시 돌아와요. 그런데 거기에는 집이 없어요. 여인 역시 없어요. 흥미롭지 않나요.
좋아요, 전쟁 영화를 찍는 도중에 불편한 점은 없으셨어요?
역할이 참 좋았어요. 무엇보다 남자가 다시 여인의 집에 찾아가기까지 고난이 있어요. 저 역시 그런 사랑을 한 적이 있었고요. 감정 이입이 손쉬웠어요. 무엇보다 죽음에 가까운 얘기였고요. 저는 죽음을 지나치면 거기에 적고 싶은 글귀가 딱 하나 있어요. 유언도 없고 재산도 없지만 꼭 그것만은 묘비에 새겨 넣고 싶어요. 남겨진 세계를 위해서요.
혹시 기부 같은 거 하세요?
만일 제가 한다면 라디오에서 말하진 않을 거 같네요.
기부가 가장 세계를 위한 직접적인 일 아닌가요?
돈이 전부가 아니에요. 역할이라고요.
그럼 저는 제 역할에 충실해 보죠, 짧은 광고 하나 듣겠습니다.
기침이 쏟아졌다. 의사는 유행성 독감이라고 했다. 창의 출연 소식을 들었을 때 건강상의 문제를 들어 피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을 내 자리에 앉혀 애써 병색이 짙어지지 않길 기원하는 문장을 들었다면. 그러나 나는 창의 앞에 앉았다. 창은 나를 보러 온 것, 무어라 말하기 위해 온 것이다. 몰려오는 아침을 밟고 몰래 창을 떠난 내게는 몇 마디 들어 줄 의무가 있으리라. 창을 떠난 날이 오 년 전이라고 했던가. 벌써 시간이 그리 지났나 싶었다. 창 몰래 방에서 빠져나올 때, 나는 도둑이 된 것만 같았다. 창이 누운 집은 내가 꼬박꼬박 월세를 내던 반 지하 방이었다. 작은 가방 하나를 손에 쥔 채 나왔지만 훔친 물건은 전혀 없었다. 전부 내 돈을 준 물건들이었다. 창은 백수였다. 단지 침대에서 나를 품을 때만 난폭해졌다. 엉덩이를 때리고 목을 졸랐다. 월세 대신 몸을 내는 거야. 창은 가끔 뜻 모를 억지를 부렸다. 버스를 기다리던 어느 새벽에 나는 문득 무언가를 훔쳤다는 느낌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게 되었다. 나는 창의 젊음을 훔친 셈이다. 창은 젊었다. 나는 어쩌면 반 지하 방에 창을 가두고 창이 좋은 배우가 되지 않길 기원한 것일 수도 있었다. 왜냐면 나는 창이 첫 드라마 출연이 확정된 날 밤 그곳을 떠났으니까.
“소연아.”
창이 내게 말을 걸었다. 옛 언어가 낯선 문장이 되어 넘길 수 없는 책장처럼 다가온다. 나는 대답할 수가 없었고 창은 다시 이름을 부른다.
“소연아, 얘기 좀 해.”
“싫어.”
“그럼 넌 듣기만 해.”
“아냐, 싫다고 했어, 분명히.”
“그럼 귀 막던가 해, 난 말할 거니까.”
“방송 들어갈 거야, 준비해.”
갸르릉거리며 목을 푼다. 낯익은 음성이다. 그럴 때마다 이 음성이 그 음성은 절대 아니지, 그렇게 생각한다. 어릴 적 침대 맡을 지킨, 때 묻었지만 무엇 하나 부족하지 않은 것처럼 드센 음성. 누군가의 연애 소식, 낯선 팝송들, 온전히 우리는 아닌 세계의 일화들이 내 근처에서 세게는 이리 괜찮은 곳이라 속삭였다. 법대를 강권하던 어머니와 여자가 무슨 공부냐며 집안일이나 도우라던 아빠의 음성, 미처 하지 못한 숙제를 핑계로 치마 속에 손을 넣으며 익숙해지면 너도 좋을 거야, 하고 중얼거리던 선생님의 음성 속, 시계가 열 시를 가리키면 딱 한 시간만 재잘거리던 그 언니의 음성은 내겐 중단할 수 없는 음성이었다. 나 역시 누군가의 음성이 되고 싶었다. 어린 시절이란, 길거리에서 찬 돌처럼 순식간에 지나갔다. 뭔가 나아진 것은 없는데 건물 몇 번 옮기고 교복을 벗자 빚이 수북이 쌓였다. 빚은 갖가지 모임의 사진 속에서 날 꺼내어 갔다. 해를 지우면 말하지 않는 날이 말한 날보다 길어졌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기어이 개 짖는 음성, 물 끓는 음성, 계단을 밟는 발의 음성만 고집스레 곁에 남았다. 하여튼 음성 따윈 까맣게 잊고 지냈다. 음성이 기억날 때쯤엔 작은 회사에 다녔다.
라디오는 일반인의 자리가 아니었다. 성대의 건강을 대부분 소진하고 난 뒤에야 심야 라디오라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방송국 인맥 덕에 간신히 한 자리를 꿰찬 것은 요행이었으나 일주일의 단 하루뿐이었다. 심야 라디오 방송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 그날 방송한 라디오의 음성을 듣다가 짧은 샤워를 마치면 다시 회사에 나갔다. 그날 듣지 않으면 영영 듣지 않았으므로. 하루씩 회사에 지각할 수밖에 없었다. 회사에서는 나를 수요일의 그녀라고 불렀다. 내가 라디오에서 방송한다는 걸 동기인 송이 떠들었기 때문이다. 예전의 낭만 가득한 사람들의 음성을 도저히 낼 수 없었다. 나를 키운 낭만들은 어디로 갔을까. 나는 과거의 낭만을 찾아다니는 도굴꾼에 불과했다. 정류장 앞에서 각자의 가방을 멘 채 서 있는 사람들의 가방에는 라디오를 넣을 여유가 없겠지. 그러나 나는 그만둘 수 없었다. 어쩌면 진한 커피를 마시며 버스에 시동을 거는 기사에게 내 음성이 필요할지 모를 일이니. 나는 어쩔 수 없이 지친 목소리로 별로 대단치 않은 얘기들을 소개했다.
그럼 오늘 사연은 송창 씨와 함께 나눠보겠습니다. 송창 씨, 저희 사연 읽어주는 코너에 대해 아시는 게 있으신가요?
아뇨, 전 처음 들어요.
그러신가요, 송창 씨와 오늘 같이 나눌 사연은 서울에 사시는 S군이 보내준 사연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지금 대학교에 다니는 학생입니다. 제게는 아주 오래전부터 친하게 지낸 이성 친구가 있습니다. 저는 걔를 호두라고 부릅니다. 단단한 껍질을 뒤집어 쓴 아이 같았어요. 군대에 가기 전에 저는 호두에게 고백했어요. 호두가 그러더라고요. 네가 군대에 갔다 와서도 똑같은 마음이라면 생각해볼게. 거절은 아니잖아요. 이 년만 지나면 사십 년 살 여자를 구할 가능성이 있잖아요. 전 태생이 좀 낙관적인 사람이거든요. 군대에 가서 육 개월쯤 지났을까요. 이유 없이 조금 조급해진 상태였어요. 군대에 가니 더욱 여자를 볼 수 없고 삶은 지치고 그러니 누군가에게 위로 받고 싶었어요. 친구거나 그냥 얼굴만 아는 같은 과 후배거나 우리는 여자가 쓴 예쁜 글씨의 편지에 열광했어요. 호두에게 편지가 받고 싶었어요. 저는 호두에게 편지를 썼어요. 지금 생각하면 아주 낯부끄러운 문장이었어요. 예전부터 좋아했다, 지금은 더 좋다, 앞으로는 더 좋아질 것이다, 같은 문장들이 끊임없이 나오는 편지였어요. 호두는 절대 답장해주지 않더라고요. 답장이 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어요. 전역하게 된 뒤에 저는 인터넷에서 하나의 글을 봤어요. 영국 소년이 나사에 이렇게 물었다는 거예요. 화성까지 편지를 보내는 데 돈이 얼마나 드나요. 나사에서는 소년에게 대답해줬어요. 1만 1,602파운드 25펜스, 즉 2,035만 원이었죠. 당연히 소년이 보낼 수 없는 금액이었어요. 그 소년의 꿈은 아마 우주비행사라고 했던 거 같아요. 왜 갑자기 딴 얘기냐면, 나사에서는 그 편지 1장을 보낼 때 무려 1만 8,416장분의 우표를 붙여야 한다고 했어요. 그 말이 제 뒤통수를 탁 쳤어요. 그러니까 누군가에게 보내는 편지의 겉봉에 1만장 이상의 우표를 붙인단 말을 이해하시겠어요. 그렇게까지 해서 편지를 보내고 싶은 사람이 있고 그래서 한 통에 2,035만 원 하는 편지를 보낸다는 게 뭘까요. 그 편지를 보낼 수 있는 사람은 엄청난 부자가 아니라 가난에 허덕여 전 재산을 겨우 털어서 보낼 수 있는 사람일 것 같았어요. 그럼 거기에 뭐라고 썼을까요. 저는 그게 궁금했어요. 호두에게 보낼 편지에 그 말을 적고 싶었어요. 마지막으로 편지를 보낼 계획이거든요. 어떻게 써야 좋을까 여쭙고 싶어 사연 보냈습니다. 아주 감동적인 얘기군요. 그런데 송창 씨는 아직 미필이신가요.
예, 계획 없습니다.
아쉽네요, 송창 씨가 군대에 갔다 오셨으면 사연자분의 사연을 이해하기 쉬웠을 텐데.
이 얘기가 감동적이지 않다는 진실은 알겠네요.
그런가요?
그럼요, 왜냐면 마지막 편지를 보내기 전에 받아줬다거나 아니면 답장이 와서 너 같은 놈이랑 사귀고 싶지 않다, 라고 보내줬으면 끝이잖아요.
송창 씨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매정한 편이신가요?
아뇨, 전 잊는 게 쥐약입니다.
송창 씨는 어떤 문구가 어울린다고 생각하세요?
전 말이 문제가 아닌 거 같아요. 정말 사연자분을 좋아했다면 이미 스스로 껍질을 벗었겠죠. 속이 텅 빈 호두는 아무 짝에 쓸모가 없지만 누군가에게 좋은 피신처가 될 수 있잖아요.
사랑이 피신처는 아니잖아요.
피신처라고 하지 않았어요. 호두 안이 안전한가요. 세계에 안전한 곳은 없어요. 우리가 연인이 되는 이유는 위험해지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위험해졌을 때 혼자 보기 싫어서겠죠. 그러니까 더 큰 위험 앞에서 혼자 서 있기 애매해서. 더 큰 위험에 대한 예의가 아니기에. 그러니 팔짱을 끼고 남의 주머니에 내 손을 넣고 걷는 거겠죠.
정말 좋은 말이네요, 역시 연기하시는 분이라 달라요.
아뇨, 전혀요.
자, 저희 생각할 시간 좀 주세요, 광고 듣고 오겠습니다.
자리에서 잠깐 일어서자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다. 창이 덩달아 일어섰다. 창은 내게 다가왔다. 나는 뒤로 물러나다 의자에 앉았다. 창은 내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소연아.”
“유치한 짓 그만해.”
“대체 왜 그러는 거야?”
“오 년이나 떨어져 지냈으면서 짐작 가는 게 없단 말이야?”
“없어, 전혀.”
“그게 우리가 헤어진 이유야.”
“아냐, 나한테는 너뿐이야. 내가 보기에 너는 내 아내가 될 역할이야.”
“대체 나한테 왜 이래, 너 잘나가잖아, 다른 예쁜 여자 만나, 귀찮게 굴지 말고.”
“그럼 하다못해 이유라도 알려줘.”
“이유가 없는 게 이유야.”
창이 갑자기 울었다. 나는 바깥의 사람들에게 손짓했다. 그들은 서둘러 안에 들어왔다. 들어온 사람이 창에게 휴지를 내밀었다. 나는 창의 눈물을 처음 봤다. 개미의 똥만큼도 슬프지 않았다. 사랑은 사시사철 내리는 비를 막는 우산이야, 너무 젖지 않도록 막아야하거든. 창이 처음 찍은 영화의 대사였다. 그래, 젖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젖는지가 관건이었다. 나는 뽀송뽀송한 몸 속 깊숙이 손을 집어넣었다. 목 뒤에 생긴 작은 두드러기를 긁었다. 피가 났다. 등은 젖었을까. 아마 맞을 것이다. 흰 티 위엔 자국이 남을 것이다. 그럼 세제를 듬뿍 넣어 빨았다. 창에 대한 내 사랑은 이미 지난한 건조 과정을 거쳐 햇볕에 의해 날아간 뒤였다.
우리는 그날 포도주를 마셨다. 안주 없이 포도주만 마시며 침대에 누워 영화를 봤다. 먼 곳에 떨어진 군인 하나를 데리러 가는 많은 군인의 얘기였다. 구출은 이미 뒷전이었다. 구출하기 전에 많은 사람이 죽었다. 건물이 무너지고 구조대는 하나 둘 죽고 당최 구해야 한다는 놈은 나타나질 않았다. 나는 군인들이 몹시 답답했다. 구해야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잊은 것만 같았다. 창은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그날 창에게 물었다.
“너는 무슨 역할이 좋아?”
“지금 저기 저격병한테 죽는 군인.”
“왜?”
“죽음 뒤에는 역할이 없으니까.”
“넌 배우가 싫니?”
“싫어, 그냥 덜 싫을 뿐이야.”
“덜 싫어?”
“그래, 아주 많은 싫은 것 중에서 조금 덜 싫을 뿐이라고.”
“그럼 우리는 괜히 축하한 척 한 거야?”
“난 축하한 게 아니야, 들뜬 너한테 맞춰준 거지.”
창은 영화가 끝날 무렵에 잠이 들었다. 나는 잠이 오지 않았다. 월세가 두 달쯤 밀려 있었다. 퇴근길에 마주친 집주인은 월세의 지불과 상관없이 당장 집을 빼라며 윽박질렀다.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아쉬울 것 없는 공간이었다. 창의 잠든 얼굴을 바라봤다. 창이 곧 멀어질 것만 같았다. 스크린 너머에서 다른 여배우와 키스하는 걸 본다면 어떤 기분일까. 나는 덜컥 겁이 났다. 혼기는 이미 진작 지났다. 창의 소속사에서는 아무 것도 아닌 나를 창의 부인으로 인정해주지 않겠지. 창은 아름다운 여인들이 즐비한 곳에서 나만을 사랑해주지 않겠지. 다 마신 포도주의 병이 바닥에서 뒹굴었다. 두려움은 점점 쌓이며 어떤 행동을 해도 죄는 아니라는 여권이 되었다. 나는 여권을 손에 쥔 채 떠날 시간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시계도 없고 분침도 시침도 없고 더욱이 어떤 종소리도 없이. 가방을 쌌다. 아주 작은, 거의 손가방 크기의 가방이었다. 낡은 텔레비전과 더 낡은 침대를 빼면 집은 비어 있었다.
창과의 만남은 우연이었다. 지인의 소개였다. 진실한 사랑이었냐고 물으면 고개를 끄덕이며 손사래를 치는 그런 관계였던 것 같다. 사랑이 원래 그렇잖은가. 아무것도 아닌 이유에 헤어지게 되는 건 아무것도 아니지 않은 이유를 지나오느라 지쳤기 때문이었으니까. 나는 창에게 실망하지 않았다. 사귄 지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 창이 내 집에 들어왔을 때 그저 창을 위한 여분의 서랍장을 마련했을 뿐이다. 그런 일들은 소위 아무렴 괜찮은 일이었다. 사랑이 원래 그렇잖은가. 어떤 서랍을 영영 못 쓰게 만들었던 건 딱 하나였다. 창은 나를 소개하지 않았다. 창의 친구들은 가끔 집에 찾아왔다. 나는 사정이 생긴 척하며 집을 비워줬다. 그때마다 창은 누구냐 묻는 친구들에게 그냥 아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창은 몇 장면 안의 내가 그냥 아는 사람일 수 있었다. 오직 나만이 그 역할이 도무지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창에게 말하고 싶었다. 그냥 아는 사람은 내 집에서 살 수 없다고. 그냥 아는 사람은 나와 섹스 할 수 없다고. 그런 것은 보통 국민에게도 그러나 아무렴 괜찮은 것은 아닐 것이다.
뭐라도 좀 해. 백수인 주제에 창은 그렇게 말했다. 창뿐만이 아니라 주변의 지인들, 부모님, 동생까지 따라하던 대사였다. 하지만 나는 엄청 많은 일을 하고 있지 않은가. 그들의 뭐라도 좀 해, 는 필시 회사원들이 퇴근 뒤에 하는 스페인어 공부, 배우자를 위한 요리 강좌 수강, 전통적 꽃꽂이와 어색한 상사와의 골프나 낚시일 것이다. 물론 나는 그렇게 살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일을 했고 건강을 위해 몇 가지 알약을 챙겨 먹었고 일주일에 네 번쯤 운동했고 청소와 빨래를 하고 간간이 새 그릇을 사고 밤이 되면 얼굴에 덕지덕지 팩을 붙였다. 그들의 말처럼 무엇을 더 해야 했을까. 창문을 열고 찬 공기를 마실 때면 바라던 내 모습은 저기, 우주선에 들어가 머나먼 은하를 헤매고 있을 것만 같았다. 그들의 뭐라도 좀 해, 말상대도 없이 적적하기만 한 우주선 속 걔가 이루고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온전히 나이면서 내가 아닌, 나이도 얼굴도 신원도 모르는 걔 말이다. 나는 좀처럼 나아질 수 없었다. 당장 주린 배를 움켜쥐고 생선 가게에 들어가 예쁜 리본을 머리에 걸고 나오는 고양이 꼴일 것만 같았다.
무슨 말이라도 남기고 싶었다. 창이 코를 고는 방 안에서 나는 바닥에 누웠다. 편지를 쓰기 위해 연필을 들었다. 막상 무언가 적으려니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지금 떠나는 것이 맞는 일인가, 창은 어쩌면 주머니에 내게 줄 반지를 잃고 까무룩 잠에 든 것이 아닐까. 그 의문들은 좋긴 했다. 의문들은 신발 안에 꾸깃꾸깃 들어있었다. 나는 그 의문들을 밟을 수밖에 없었다. 신발을 손에 쥔 채 살 순 없었으니까. 만일 우리가 손이 없고 발이 네 개라면 어떨까, 그땐 더욱 신어야 할 게 많겠지, 그런 생각이 내내 들었다. 나는 가방 안에서 수첩을 꺼냈다. 수첩의 맨 뒷장에 적었던 문구가 문득 떠올랐다. 적었다는 사실 외에는 기억나지 않는 문구였다. 종이 위에 그 문구를 적었다. 영화감독 쿠엔틴 타란티노의 말이었다. 중요한 건 진실성이에요. 세상에 좋거나 나쁜 인물은 없어요. 인물은 진실하거나 진실하지 못할 뿐이에요. 나는 편지를 텔레비전 화면 위에 붙였다. 편지는 볼품없었다. 흰 종이에 덩그러니 써진 문장은 멀리서 보면 아예 보이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창이 그 편지를 읽지 않기를 바랐다. 아버지의 집에 돌아가 욕조 안에 입욕제를 푼 뒤 몸을 담글 때쯤에는 더더욱. 한동안 아버지의 말은 없었다. 나는 두 달 뒤 다시 아버지의 집에서 나갔다. 현관에서 뒷짐을 진 채 선 아버지는 그제야 다신 돌아올 생각 마라, 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어디로든 돌아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
자, 여러분 몇 가지 사정이 생겨서 잠깐 노래 한 곡 듣겠습니다. 존 레넌의 Imagine. 아까 들으셨다고요? 아까 들으신 분들은 제가 한 말을 생각하면서 다시 들어보시면 분명 다른 노래일 겁니다. 아까 안 들으신 분은, 그냥 들으세요.
나는 담배가 피우고 싶었다. 물론 나는 담배를 피워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매캐한 연기가 몸 안에 깊숙이 들어오면 조금 나아질 것만 같았다. 현기증이 일고, 지금 순간이 현실이 아닌 것 같은, 그런 것이 간절했다. 창은 딸꾹질을 몇 번 하다 내게 물었다.
“네가 남긴 마지막 말, 그건 무슨 말이야.”
“적힌 그대로야.”
“진실하지 않았다는 거야?”
“맘대로 생각해.”
“씨발, 넌 맨날 그랬어, 지만 아는 척, 잘난 척이지. 니가 대체 뭘 알아. 뭘 안다고 대체 이 지랄이야.”
“다 몰라, 아무 것도. 아무도.”
자, 송창 씨와 함께 하는 저희 방송, 이제 끝날 시간입니다. 여러분 조금 아쉬우시죠. 아까 편지를 보내신다는 사연자분은 송창씨가 추천하는 문구를 적어보시면 어떨까요? 떠나갈 사랑은 떠나고 붙잡을 수 있는 사랑은 붙잡을 수 있어요. 단지 구분하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요. 이게 내 사랑인지, 아니면 내가 잃어버린 사랑인지. 송창씨는 오늘 방송 어떠셨나요?
재밌는 방송이었습니다.
이번 영화 잘 되길 기원하겠습니다.
잠깐만요.
예?
제가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좋아요, 그럼 들어볼까요?
송창이라는 이름이 제 가명이란 거 아시죠?
예, 그럼요.
이건 오 년 전의 연인에게 전달하는 편지입니다.
말씀해보세요.
나는 아직 거기 있어, 영화와는 달라, 나는 현실에 존재하는 사람이야. 영화 속에서 여인이 있던 곳에 간 남자는 여인의 집이 없어진 걸, 여인이 없어진 걸 알고선 강가를 따라 걸어가, 그 끝에는 바다가 있어, 바다에는 집이 한 채 있어, 남자는 그곳에 들어가, 그리고 울지. 나는 네가 나를 이끈 그곳에서 기다릴 거야, 창이라는 이름을 단 채 기다릴 거야, 돌아오지 않아도.
정말 부럽네요, 송창씨가 기다린다는 그 사람이 누군지. 자, 여러분 송창씨와 함께 한 오늘, 송창씨에게 감사 인사드립니다. 다음에 다시 찾아주시면 정말 고맙겠습니다. 여러분, 그럼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평소처럼 사람이 아예 없는 정류장에 앉아 콜택시를 부른다. 노인이 할증이 붙은 가격을 부른다. 나는 몇 번 망설이나 택시에 오른다. 방법이 그뿐이었기 때문에. 망설임은 보잘 것 없는 삶의 유일한 눈곱이다. 편의점에서 전복죽과 땅콩 오징어를 샀다. 달달한 주전부리를 사는 것은 오래된 습관이었다. 나는 전복죽을 레인지에 돌리며 노트북을 켰다. 매주 라디오 방송을 녹음한 파일을 동생이 보내줬다. 동생과는 나이 차이가 제법 많이 났다. 무려 열 살이다. 동생이 존 레넌의 Imagine을 들으면 어떤 상념이던 찾아오긴 할까. 애초에 그런 음악이 있는지조차 모를 것이다. 전화를 받자마자 동생이 대뜸 물었다.
“존 레넌이 누구야?”
“가수, 파일은 보냈어?”
“응, 아까.”
나는 메일을 확인한다. 메일이 몇 통 와 있다. 메일은 광고 메일의 전부였다. 여러 가지 광고 사이에 동생의 메일을 연다. 음성 파일을 받는다. 그새를 못 참고 동생이 말한다.
“송창이란 그 사람, 괜찮은 사람이더라.”
“본 적도 없으면서.”
“멋지잖아, 말하는 게.”
파일을 튼다. 그 안에는 안전한 음성이 들어 있다. 죽이 돌아가는 시간을 준수하면 알맞은 온기의 죽이 나오는 것처럼. 나는 내 역할에 충실할 뿐이다. 일주일에 하루면 족하다. 가끔, 수요일을 제외한 새벽에 꿈에서 깨어나면 나는 내내 무언가 말하고 있었다는 걸 깨닫는다. 지루한 얘기였겠지. 들어줄 사람이 없는 말이 내 안에 너무 많이 쌓인 탓일 거야. 잠에서 깬 뒤 한참이나 남은 새벽이 종종 무서웠다. 꿈의 내용은 기억이 났다. 완전히 무표정인 사람 앞에서 더듬거리며 무언가를 열심히 말하던 나는 언제고 그곳을 먼저 떠난다. 혼자 나가면서도 말을 멈추지 못한다. 이게 왜 지루하지, 그런 생각을 한다. 그걸 몰라서 지루한 거겠지, 그런 생각도 한다. 그새 파일이 삼 분 이상 지나갔는데 음성이 들리지 않았다. 나는 노트북이 문제인가 싶어 누를 수 있는 버튼들을 차례차례 눌러봤다. 왈칵 짜증이 난 뒤엔 동생을 다그쳤다.
“야, 이거 안 나오잖아.”
“뭔 헛소리야.”
“아니, 소리가 안 나온다고.”
수화기 너머에서 동생이 뭔가 찾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노트북 안에서 무언가 소리가 날 만한 파일을 찾았다. 내가 존 레넌의 Imagine 파일을 찾아낸 것과 동생이 말한 것은 거의 동시였다.
“안 나오긴 뭘, 존나 잘 나오잖아.”
나는 존 레넌의 Imagine을 들었다. 이매진 올 더 피플, 피플, 리빙 라이프 인 피스, 유 후 우우우. 나는 평화롭게 살 수밖에 없어서 그곳에서 벗어날 수 없는 엄정한 국민일까. 돌연 그곳을 상상한다. 노래 속 거기. 리빙 라이프 인 피스, 그런 세계를. 세계에서 국민의 역할이 오직 유 후 우우우, 하고 사는 일뿐 세계를. 죽이 다 돌아갔다. 죽을 꺼내어 먹는다. 온기가 떨어지지 않은 외투를 걸친다.
쿠키
눈이 왔다. 언덕은 높은 편이었다. 봉분에 쌓이는 눈은 마치 소금 같았다. 언젠가 먹었던 녹차 빙수가 떠올랐다. 나는 창의 차가운 시체를 떠올린다. 무슨 맛이었는지 잊어버렸다. 창의 알몸에 소금을 뿌린다. 절여진 시체가 썩지 않는다. 금세 뼈 깊은 곳까지 짠 맛이다. 나는 창의 봉분이 맨 위에 있다는 걸 안다. 창의 부인은 별 중요하지 않은 일이라는 듯 음성을 쇠뿔처럼 게워냈다. 누구인지 묻고 싶지 않을 수 있어. 유명한 여배우인 그녀는 창의 생전 내내 불화설이 끊이지 않았다. 창을 닮은 소녀와 함께 공항에서 찍은 사진에서 그녀는 얼굴을 찌푸린 채 담배를 빨고 있었다. 연기는 마치 옷을 되찾은 선녀처럼 날아갈 뿐이었다. 그날 이후로 얼마나 지났는지 창의 봉분 앞에서 헤아린다. 제법 지났거나 오래 지나지 않았거나 무슨 말이든 가능할 것이다. 창은 정말 잡초 안의 관에 누워있을까, 그렇다면 지금쯤 창의 역할이란 그저 가만히 누워있는 것일까, 아니면 죽음이란 역할이 고까워 관에서 빠져나와 흙을 파먹고 소화하며 조금씩 나오고 있을까, 물음들, 물음들은 뭣도 없는 죽음의 포장이다.
창의 묘비를 본다. 나는 몇 번이고 묘비의 겉면을 만진다. 파진 홈들이 좀처럼 익숙하지 않다. 눈이 점점 더 내렸다. 머리가 하얗게 물들었다. 길 위에 쌓인 눈을 녹이는 발바닥의 체온은 그리 따뜻한 편은 아닐 것이다. 언덕의 중간에서 나는 기어이 넘어졌다. 무심결에 바닥을 짚은 손바닥에선 옅은 피가 흘렀다. 눈이 약간씩 녹았다. 고인의 뼈에 눈을 올리고 싶다. 흙을 조금씩 파냈다. 여기에 창은 없지, 창은 어디에도 없었다. 한 줌의 흙을 먹는다. 흙은 넘어가지 않는다. 내 말 역시 창에게 그랬을까. 목이 막힌다. 목이 막힌 채 넘어진다. 넘어진 시야 너머에 창의 묘비명이 보인다. 중요한 건 진실성이에요. 세상에 좋거나 나쁜 인물은 없어요. 인물은 진실하거나 진실하지 못할 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