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2차 창작 콘테스트 - 지하철 파노라마

by 할아버지시계 posted Dec 10,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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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파노라마

 

 

 

 

 

 

 

 

 

 가라앉은 철로 위로 옻칠을 한 얼굴들이 떠올랐다. 그는 오른쪽 아래에 있는 여자의 머리통을 내려다보았다. 여자는 드라마에 푹 빠져있었다. 그의 앞에 있는 차창이 여자가 스마트폰으로 무슨 드라마를 시청하고 있는지 알려주는 것도 모른 채로 말이다. 점점 무서운 충동이 그도 모르게 샘솟기 시작했다. 그는 왼쪽 손바닥을 여자의 환하게 드러난 이마에 내던지고 싶었다.

 

 출근길 전철은 한 발자국의 자리도 아까워했다. 그래서 그는 좌석 칸 앞에 그어진 선을 밟으며 앞에 앉아 있는 여자와 최대한 바짝 붙어 있어야 했다. 한 손으로 스마트폰을 붙들고 다른 손으로 손잡이를 잡으며 자꾸만 쏠리는 몸을 붙잡았다. 몇 개 역을 지나는 동안 앞에 앉아있는 여자는 전혀 일어날 낌새를 보이지 않았다.

 불광역에서 전철문이 열릴 때였다. 메신저 앱으로 바쁘게 타이핑 하던 여자는 이어폰을 빼고 갑자기 좌우를 살폈다. 그리고 아무런 예고도 없이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 여자의 머리통이 그의 손목을 맹렬하게 치고 올라오면서 그는 손에 들고 있던 스마트폰을 놓쳤고, 떨어진 스마트폰은 공교롭게도 이제 막 발을 뻗은 여자의 구두에 찍혔다. 여자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상처 입은 스마트폰을 사람들의 빽빽한 발 사이로 밀어냈다.

 그는 그 광경을 멍하니 지켜보았다. 그와 같은 칸에 있는 승객들이 한 번씩 그쪽을 돌아보았고, 여자는 화들짝 놀라며 아래를 보다가 다시 그를 보았다. 사과를 하려나 싶었는데, 고개만 까딱 숙이고 마치 뺑소니를 치고 달아나는 범인처럼 어떻게든 사람들 틈바구니를 비집으며 문 앞까지 나아갔다.

 결국 스마트폰과 그 사이에는 대각선으로 두 사람이 서있는 만큼의 거리가 생겼다. 그러나 그곳까지 갈 수 있는 뚜렷한 길이 없었다. 그가 멀뚱멀뚱 서있는 사이에 수염이 지저분한 남자가 어느새 그의 자리를 가로챘다. 방금 전까지 그의 왼편에 서있던 남자였다.

 그는 무척 난감했다. 누군가 주워주길 기다리기에는 그를 향한 시선이 따가웠다. 분명 아무도 그를 쳐다보고 있지 않은데, 어쩐지 기다란 바늘 수십 개가 그를 콕콕 찌르는 것 같았다. 사람들을 조금씩 밀치며 스마트폰에게 가는 동안 꼽추처럼 숙인 등이 점점 더 무거워졌다. 얼마나 많은 시선이 화살처럼 한 무더기로 날아왔을지 그는 알 수 없었다.

 스마트폰의 화면은 음각한 무늬처럼 섬세하게 갈라졌다. 약정 기한이 1년 정도 남은 귀한 몸이 한 순간에 터치도 안 되는 고물이 되었다. 그는 고민했다. 이 고물을 바닥에 냅다 던지고 여자가 한 것보다 더하게 밟아대면 분풀이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흐릿하게 보이는 차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볼 게 그것뿐이기 때문이다.

 터널 벽면 위에 매달려 있는 조명이 창에 떠오른 얼굴들을 주기적으로 오려냈다. 간격은 전철의 속도에 따라 짧아졌다가 길어지거나 길어졌다가 짧아졌다. 조명이 자른 부분들은 철로를 따라 이어지다가 곧 역 이름을 주황색 테두리로 두른 승강장에서 잠깐 끊어졌다. 이후에도 비슷한 과정이 계속 반복될 것이다. 무료하고 기나긴 출근길이 될 터였다. 어쩐지 역에 머무는 시간이 평소보다 긴 것 같았다. 때마침 안내방송이 나왔다.

 “승객 여러분께 안내말씀 드립니다. 현재 저희 전동열차는 앞서 간 열차와 간격 유지를 위해 잠시 정차하고 있습니다. 많은 양해 부탁드립니다.”

 어디선가 시큼한 냄새가 났다. 그는 주위를 죽 돌아보았다. 그의 앞에 일렬로 늘어서 앉아있는 이들이 7명쯤 되었다. 억지로 조여진 나사마냥 서있는 사람들을 앞에 두고 그들은 쉬어 가는 특혜를 누렸다. 그의 자리를 훔친 남자는 목에 칼을 찬 듯 머리를 앞으로 숙이고 있었는데, 남자의 머리가 그의 배꼽 아래에 살짝 닿았다. 살집이 있는 몸을 자리가 온전히 다 담지 못한 탓이다. 옆에 앉아있는 사람이 팔을 안으로 당긴다면 남자가 들어갈 공간이 조금 생길 법도 하지만, 옆 사람은 불편함에 인상만 찌푸릴 뿐이었다. 남자의 정수리는 머리카락이 군데군데 뭉쳐있어서 두피를 휑하게 드러낸 부분이 많았다. 그는 속이 비어있는 정수리 부근을 그의 손에 들린 멍청한 스마트폰으로 두드리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상상했다.

 우선 목탁처럼 두텁고 맑은 소리가 울릴 것이다. 남자는 감고 있던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의 얼굴을 올려다본다. 1초에서 2초 사이로 과연 이 놈이 자기 머리를 친 것이 맞는지 저울질을 한다. 남자는 주위에서 그를 쳐다보는 시선에 확신의 근거를 찾는다. 혹시 실수로 친 것은 아닐까? 여기서 그는 빤히 남자와 눈을 마주친다. 눈을 피할수록 남자는 그를 의심할 것이다. r그리고 아마 한 번은 조용히 넘어갈 것이다. 만일 남자가 그저 욱 하는 마음으로 쌍욕을 내뱉고 위협한다면, 누가 보아도 재미없는 상황이 되고 만다. 그것은 남자의 거친 외모로 지어낼 수 있는 가장 쉬운 이야기다.

 독립문역에 다다르자 남자는 육중한 몸을 일으켜서 느릿느릿 출입구 쪽으로 다가갔다. 마침내 그는 또 한 번의 기회를 얻었다. 남자가 완전히 자리에서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데, 갑자기 뒤에 서있던 누군가가 슬쩍 몸을 집어넣을 낌새를 보였다.

 그는 끼어들려는 몸통을 밀치고 자리에 엉덩이를 깔았다. 이제 그의 앞에 서게 된 여자는 그를 빤히 쳐다보며 그의 눈을 어금니로 꽉 깨물려는 듯 껌을 거칠게 씹어댔다. 여자의 턱은 정말 그를 가볍게 으스러트리고도 남을 만큼 두꺼워 보였다. 비록 내릴 역까지 몇 정거장 남지 않았으며 골방에서 몇 년을 묵혀둔 가구의 썩은 내가 자리에서 났지만, 그 팔자 주름이 진하고 턱이 두꺼운 중년 여자의 날카롭고 노골적인 눈초리가 그의 호승심에 불을 지폈다. 그는 보란 듯이 좌석 등받이에 등을 기대어 눈을 감았다. 조금 뒤에 껌 씹는 소리는 차츰 멀어졌고, 그는 자신도 모르게 쪽잠에 빠졌다.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들어 그가 다시 눈을 떴을 때, 전철은 그가 내려야할 역을 막 떠나려 하고 있었다.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눈을 의심했다. 시간이 빠르게 간 것인지, 전철이 빠르게 도착한 것인지 그는 알 수 없었다. 결국 그는 서점에 20분정도 지각했다.

 그 날 저녁에 엄마는 계속 그에게 전화를 한 모양이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현관문을 열자마자 엄마는 왜 이렇게 전화가 안 되느냐고 소리를 질렀다. 그는 망가진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어쩌다가?”

출근하다가 전철에서.”

이거 약정 1년 남았잖아.”

.”

 엄마는 눈살을 찌푸리고 넌 돈 벌러 갔으면서 돈 쓸 일만 만들고 왔느냐.’며 그를 나무랐다. 그가 수리비 좀 보태달라고 하자, 엄마는 콧방귀를 뀌었다.

곧 월급날이잖아. 그 때까지 책이라도 들고 다녀.”

연락을 못하잖아.”

네가 연락할 곳이 어디 있어? 점장한테 엄마 번호 알려주고 월급날 그 번호로 문자 보내라 그래.”

 그에게 연락이 안 된다고 화를 낸 이유는 단지 심부름을 시키지 못해서였을까. 그는 자기 전까지 갖은 떼를 썼다. ‘요즘 애들의 생활상을 엄마는 모른다.’라고 말하자 엄마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는 모르면 모른다고 인정할 줄 안다. 하지만 인정만 하고 모르는 걸 알려고 하지 않는다.

난 하루 종일 그거 붙잡고 있는 애들이 이해가 안 가더라. 눈도 안 아픈가?”

 결국 그는 반쯤 포기했다.

 다음날 늦은 새벽에 큼지막한 글씨로 휘갈겨진 A4 종이가 탁자 위에 덩그러니 놓였다.

[오늘이랑 내일 일해서 일당 받으면 바로 줄게. 부족하면 카드 줄 테니 그걸로 긁고. 월급 나오면 갚아. 느이 아빠는 다음 주쯤에나 온댄다.]

 

 그가 내일 모레 늦게 출근 하겠다.’고 슬며시 말을 꺼냈을 때, 점장은 알이 엄지손가락만한 안경을 연신 올렸다 내리며 발주서를 보고 있었다.

?”

핸드폰이 고장 나서 수리 받고 출근하려고요.”

여 근처에 수리점 없냐? 널려 있는 게 핸드폰 가게드만. 근처에 있으면 점심시간에 다녀와.”

공식 수리점은 여기서 조금 멀어요. 수리하는 데도 시간이 좀 걸려서······.”

 점장은 한숨을 쉬고 손을 휘휘 내저었다. 그리 하라는 뜻이다. 요새 들어 점장이 그를 볼 때마다 미간을 찌푸리고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그는 잘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어렴풋이 느꼈다. 나무늘보처럼 눈꼬리가 처진 점장이지만, 마냥 느긋하고 여유로운 사람이 아니다. 카운터 벽면에 점장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책을 든 사진과 꽤 긴 분량의 인터뷰를 실은 지역신문 기사가 붙어 있는데, 글씨가 희끗해질 정도로 색이 바랬다.

 다시 불광역이다. 갑자기 그의 눈꺼풀이 부르르 떨렸다. 그는 전철 칸 내부를 돌아보았다. 출근 시간대 전철과 비교하면 한결 여유로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사람이 서있었다. 앉아 있는 사람들 중에 금방이라도 내리려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그의 눈꺼풀이 계속 떨렸다. 전철은 불광역을 지나 다음역인 녹번역에 도착했고, 마침 감색 양복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배우가 살구색 원피스를 입은 배우에게 뺨을 맞는 장면이 차창에 비쳤다. 그는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그는 당장 스마트폰을 주머니에서 꺼내 여자에게 따지고 싶었다. 며칠 전 일을 기억하느냐, 왜 아무 말도 없이 그냥 갔느냐고 평수 넓은 그 이마에 손바닥을 있는 힘껏 휘두르고 싶었다. 그는 드라마 속 배우보다 더 잘 때릴 자신이 있었다.

 이마를 맞은 여자는 예기치 않게 닥친 불운에 눈썹을 가운데로 밀어 올릴 것이다. 이마에 진 주름은 끝으로 갈수록 아래로 내려간다. 그리고 목울대를 높이며 그에게 다짜고짜 소리를 지른다. 시선은 단번에 그와 여자에게로 몰려들 것이고, 그 시점에 그는 지난번에 이 여자가 내 스마트폰을 산산이 부수고 뺑소니를 했다.’고 주위에 알려야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는 사람의 얼굴을 잘 구별하지 못한다. ‘여자가 여자가 아니라면, 그는 낭패를 볼 게 뻔하다.

 

 그는 안면인식장애가 정확한 용어인지 모르지만, 그러한 증상이 있다고 스스로 믿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을 알아보고 인사하는 것이 그에게 가장 힘든 일이다. 아주 어릴 때부터 아는 친구인 줄 알고 엄한 또래 아이에게 장난을 치다 곤욕을 치른 적이 여러 번이라,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그가 먼저 다른 사람을 아는 체 하는 일이 줄었다.

 그의 엄마는 그의 증상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네가 주변에 관심이 없어서 그렇다.’며 넘길 뿐이다. 그래서 엄마는 어쩌다 동네 사람들 중에 어린 자식이 무슨 문제가 있나 고민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가 아주 어렸을 때 시장바닥에서 다른 아줌마 손을 잡고 엄마라고 부른 일을 꺼냈다. 우리 아들놈은 엄마 얼굴도 못 알아보는 자식이었다, 이제야 엄마 얼굴 알아보는 거 같다고 깔깔 웃는데, 한 두 번이면 몰라도 심심할 때마다 새로운 얘기 하듯 꺼내니 여러 번 듣는 사람에게는 고된 일이다.

 그의 시력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그의 문제는 얼굴만으로 그가 아는 사람인지 모르는 사람인지 구분을 못한다는 것이다.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그의 눈으로 보기에 옷이나 머리만 다르다 할 뿐이지 생긴 꼴이 다 거기서 거기다. 한창 감수성이 풍부하며 그 자신에게 특별함을 부여했던 중학생 시절에 그는 이를 이종’(異種)의 시선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다른 종을 바라볼 때의 시선으로, 마치 같은 종의 바퀴벌레AB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처럼, ‘인간종을 바라본다는 뜻이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왠지 인간으로 함부로 묶이지 않고 멀찍이서 떨어진 초월적인 존재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몹시 부끄러운 기억이라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곧장 덮어놓고 잊으려 했지만, 모양은 둘째 치고 내용물만큼은 마음에 들어서 기억 저편에 쟁여놓고 있었다.

 대학생이 된 그는 1년 동안 조용히 대학생활을 하다가 휴학을 신청했다. 원래 조용히 대학생활을 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는 생각보다 사회성이 없었다. 동기들과 MT를 가고 동아리 활동을 해도 그저 겉돌기만 할 뿐, 친하게 어울리는 사람 하나 만들지 못했다. 아무래도 대학생활이 그에게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밖에 있다가 오면 뭔가 낫겠지 싶어 1학년을 마치자마자 호기롭게 휴학을 신청했다. 휴학하겠다는 말에 엄마는 다소 불만이 있는 표정이었지만,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휴학하고 첫 달 동안은 백수처럼 집에만 있다가 그따위로 할 거면 뭐 하러 휴학을 했냐.’는 엄마의 질타에 뭐라도 하려면 돈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아르바이트를 신청했다. 뭣 모르고 신청을 해댄 까닭에 서울 변두리에 있는 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는데, 면접 당시 미적지근한 반응이었던 점장이 왜 그를 뽑았는지 그도 모른다. 아마 여러 운이 겹쳤던 것 같다.

 ‘이종의 시선이 다시금 그의 뇌리에 스쳐지나갔을 때는 그가 슬슬 아르바이트에 적응하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어느 날, 서점에서 한 손님이 난데없이 비명을 질렀다. 비명 소리를 듣고 달려온 그는 하마터면 까무러칠 뻔했다. 책장 맨 밑층, 단행본이 미처 채우지 못한 좁은 구석에서 바퀴벌레 한 쌍이 더듬이를 은밀히 두드리며 꽁무니를 맞대고 있었다.

 더듬이 네 쌍에 머리는 한 쌍에 다리가 여섯 쌍인 바퀴벌레였다. 늘씬한 녀석이 책장 안쪽 벽에 머리를 맞대고 있고, 배가 통통한 놈이 그를 마주보고 있었다. 노트북에서 눈을 떼고 이쪽을 지켜보던 점장이 고함을 쳤다.

얼른 잡지 않고 뭐해!”

 점장이 계산대 밑 서랍에서 살충제를 꺼내 힘껏 흔들었다. 그리고 더듬이 네 쌍, 머리는 한 쌍에 다리가 여섯 쌍인 바퀴벌레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와서 살충제를 정확히 조준하고 뿌렸다. 죽음을 코앞에 두고서 통통한 놈이 작은 놈을 뒤에 매단 채 책장 바깥쪽으로 두 뼘 가량 움직였다. 자기 몸만큼이나 무거운 것을 꽁무니에 매단 바퀴벌레가 점장 반대편으로 도망가려 하자 점장은 에이 씨팔!’ 욕을 했고, 아까부터 상황을 지켜보던 손님은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그것들은 금방 축 늘어졌다. 허무한 결말이었다. 그는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들고 와서 그것들을 쓸어 담았다. 점장이 그거 버리고 여기 책들 싹 다 닦아서 다시 넣으라고 지시하고서 자리로 돌아갔다. 손님은 불쾌한 표정으로 서점을 나가 계단을 쿵쿵대며 올라갔다. 그가 빗자루로 그것들을 건들자 통통한 놈의 다리가 꿈틀거렸다. 그의 손등에 식은땀이 났다. 그는 쓰레받기를 조심스럽게 들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변기에 버리기 직전에 통통한 놈의 더듬이 한 쌍이 갑자기 양 옆으로 확 벌어졌다.

 깜짝 놀란 그는 그것을 변기에 내던졌다. 통통한 놈은 꽁무니에 늘어진 시체를 매달고서 필사적으로 허우적거렸다. 자꾸만 뒤집어지려는 몸을 앞으로 세우며, 물 위에서 더듬이를 쉴 새 없이 퉁탕거렸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 변기 레버를 눌렀다. 크기가 보통이 아니라 변기가 막히면 어떡하나 걱정 했지만 다행히 스르르 내려갔다. 빨려 들어가는 순간까지도 통통한 놈은 마치 그를 정확히 조준하듯 물 위로 더듬이를 나란히 세웠다.

 그리고 며칠 뒤에 또 다시 바퀴벌레가 서점에 나타났다. 그는 지난번 바퀴벌레가 살아 돌아온 것이라 생각했다. 둘이 아주 비슷하게 생겼기 때문이다. 그것들이 다 비슷비슷하게 보이는 이유는 중학생 시절 그의 말마따나 이종적인 시선으로 그것들을 바라보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어느 바퀴벌레가 그를 노려보았던 바퀴벌레인지 아닌지 분간할 수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그의 스마트폰을 부순 여자와 드라마를 보고 있는 여자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유다. 그가 보기에 둘은 너무나도 비슷했다.

 그는 여자의 이마와 차창에 비치는 드라마를 번갈아 힐끔거리면서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눈꺼풀이 진정될 때까지 눈을 감았다. 그대로 눈을 붙일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는 서서 쪽잠을 자는 재주가 없다. 그가 깜빡 졸아 그의 앞에 마주 앉아있는 남자의 서류가방을 건들자, 남자는 불편한 기색으로 가방을 꼭 끌어안았다. 그는 생판 모르는 남에게 짜증거리가 되기 싫었다. 때마침 자리 맨 왼쪽에서 머리 까진 대머리 남자가 엉덩이를 들었다 내렸다 하며 부스럭 거렸다. 엉거주춤 일어나려는 모양새였다. 그는 슬쩍 대머리 남자 근처로 갔다. 대머리 남자는 얼마간 계속 부스럭 대더니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리고 아까보다 더 진득하게 엉덩이를 등받이에 바싹 붙였다.

 그는 손목을 단단히 손잡이에 걸쳐놓고 차창을 보았다. 갑자기 반대편으로 향하는 전철이 그의 눈앞을 지나갔다. 전철은 아딘가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저곳은 이곳과 달리 빈자리가 많았다. 그는 다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무악재역을 지나면서 승객들이 더 많아졌다. 그는 눈을 감고 계속 떨리는 눈가를 손으로 문질렀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그의 왼편에 서 있던 남자가 그의 왼쪽 앞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 자리는 그에게 더 가까웠다. 눈 뜨고 코 베인 것도 아니다. 그는 분명 눈을 감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철은 계속 움직이고 있으므로 아주 찰나의 변화가 끊임없이 일어난다. 그가 눈을 뜨고 감는 데 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몇 분 정도에 지나지 않지만, 눈을 떴을 때 그는 목적지에 더 가까이 다가선 자신과 그의 앞자리를 가로챈 남자와 그의 뒤에서부터 날아오는 시선을 발견했다.

 시선의 주인은 아까 그가 노렸던 여자가 아닌, 다른 여자였다. 그 여자가 왜 그를 보는지 그는 모른다. 그가 아는 사람인지 아닌지도 모른다. 그는 머리를 매만지는 척 그쪽을 힐끔거렸고, 다시 한 번 여자가 그를 보고 있는 모습을 목격했다. 잠시 뒤에 목을 푸는 척 얼굴을 돌리다가 다시 그쪽을 보았을 때, 여자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럼 그렇지하며 다시 앞을 보는데, 어쩐지 계속 등 뒤에서 시선이 그를 툭툭 건드리는 것 같았다. 언제부터 여자가 그를 보고 있었는지 그는 알 수 없었다. 그는 허리를 바로 세우고 턱을 안으로 당겼다. 적나라하게 그 눈길을 비추는 차창을 통해 누군가 그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 그의 몸은 서서히 굳어가기 시작했다. 그는 뒤를 돌아서 여자와 눈을 정면으로 마주치면 정말 돌이 되어버릴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이후에도 그는 여러 번 차창에 비친 여자의 얼굴을 힐끔거렸다. 그가 볼 때마다 여자는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 그가 눈길을 돌리면, 그를 꽁꽁 묶고 있는 가느다란 시선이 끊어지지 않고 한 겹 한 겹 쌓여갔다. 그는 끊임없이 더듬이질을 당하고 있는 셈이다. 한 쌍의 더듬이가 연신 그를 건드리고 있음에도, 그는 일방적인 시선에 무력했다.

 언제나 그렇듯 그는 여자의 얼굴을 분명 어디서 본 것 같았다. 매번 그러므로 믿을 수 없는 감각이지만, 여자가 그를 보는 이유가 달리 없다. 여자는 그가 어디서 만난 사람이 틀림없다. 그러므로 여자는 그를 알고 있는 사람이다. 여자가 그에게 다가와서 인사를 한다면, 그는 여자의 목소리를 듣고 여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여자는 그에게 다가오려 하지 없었다. 그의 뒤에서 시선을 몰래 꽂기만 했다. 이쯤 되자 그는 여자가 무례한 사람이라고 여길 수밖에 없었다.

 그는 도둑처럼 몰래 훔쳐보기만 하는데, 여자는 그의 뒤에서 편하게 그를 보고 있다. 이 불공평한 위치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자리를 옮기는 것뿐이다. 곧장 그는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기려 했다. 그 순간 차창에서 여자와 눈을 또 마주쳤다. 시선의 방향이 분명 그를 향하고 있었다. 거짓말처럼 그는 발을 움직일 수 없었다.

 전철이 홍제역에 도차하자 다시 눈이 떨려왔다. 여자의 옆에 앉아있던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를 포함해서 자리 주위로 세 사람이 서 있었다. 아주 잠깐 세 사람 사이에 눈치게임이 오갔다. 물론 서로를 보고 있지 않지만, 눈치게임은 단지 눈으로만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금방 그 게임에서 벗어났다. 하필 그 여자의 옆자리라는 점이 그에게 좋지 않았다. 딱딱한 돌덩이로 불편하게 앉아있느니 멀찍이 떨어진 다른 자리를 기다리는 것이 더 나았다.

 그가 먼저 여자에게 다가가 왜 쳐다보느냐고 말하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복잡하게 얽힌 고리를 끊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괜한 창피를 사는 일이 싫었다. 특히 여자가 그쪽을 쳐다보지 않았다.’고 말해서 그를 시선에 과민한 사람으로 만들까봐 두려웠다. 여자는 분명 뒤에서 그를 보고 있겠지만, 전철 전등과 지하 터널의 조명 아래로 여자는 차창 한 가운데에 두둥실 떠올라 그의 앞에서 더듬이질을 했다.

 사실 여자는 비밀 요원이고, 그는 요원의 감시를 받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그도 모르고 있던 특별한 능력을 눈독 들이는 한 비밀 단체가 그에게 사람을 붙인 것은 아닐까? 사람은 맞나? 여자가 귀신이라면, 그는 영안이 트인 것일까? 별의 별 상상을 다 거치고 나서 그는 알고 있는 사람들 중에 누가 여자를 닮았는지 떠올려보기로 했다.

 처진 눈꼬리 하면 그의 점장이 가장 먼저 떠오르지만, 점장에게 바닐라색 원피스를 입고 웨이브 진 머리를 길게 늘어트리는 취미가 있다고 들은 적이 없다. 물론 그것이 점장의 은밀한 취미일 수 있겠지만, 우선 서점에서 노트북으로 예능 프로 재방송을 보고 있을 점장이 그가 타고 있는 전철에 있을 리가 없었다. 그는 사람 얼굴을 구분하지 못할 뿐이지 멍청이가 아니다.

 그는 좀 더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처진 눈꼬리에 둥그스름한 콧볼, 뭉툭한 입술이 엄마와 닮았다. 갑자기 왜 엄마가 생각나는지 모르겠지만, 여자는 엄마와 많이 닮았다. 덩치나 풍기는 인상도 그러했다. 물론 다른 점도 있다. 이마가 납작한 엄마와 달리 여자의 이마는 볼록하게 튀어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의 얼굴은 젊은 시절의 엄마라면 그렇게 생길 것 같은 얼굴이었다. 단순하고 진부한 논리과정의 연장이지만, 그는 다소 확신을 품고 단계를 밟아나갔다. 여자는 어쩌면 그의 이부누나일지도 모른다. 누나는 그를 알고, 그도 누나를 안다.

 그가 중학생일 때였다. 엄마는 그동안 그에게 감춰뒀던 비밀을 갑작스럽게 터트렸다.

곧 누나 오니까 집에서 기다리고 있어.”

 새삼스럽지만 그는 자신을 외동으로 알고 있다.

아빠도 알아?”

그럼.”

 그러니까 가족 중에서 그만 몰랐던 셈이다. 그는 그 때 처음으로 가족의 비밀을 알았다. 사실 늦둥이로 태어난 그가 들추기에 그가 아직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있었던 일이 많은 게 당연했다.

 누나는 그를 만났을 때부터 이미 성인이었다. 누나와 그는 여섯 살 나이차이가 난다. 키도 굉장히 커서 중학생 때는 물론이고 그의 지금 키를 비교해보아도 누나는 그보다 훨씬 키가 클 것이다. 누나가 왜 엄마를 찾아왔는지 그는 모르지만, 몇 년 전부터 계속 엄마와 연락을 주고받았던 모양이다. 어쨌든 그는 누나가 있다는 사실이 무척 신선했다.

 그러나 그는 여러 가지 제약을 받아야 했다. 집에 있는 컴퓨터 한 대를 누나와 같이 쓰면서, 그는 컴퓨터를 끄기 전에 항상 인터넷 검색 내역과 은밀한 동영상 파일을 정리했다. 그의 부모는 컴퓨터를 다룰 줄 몰라서 누나가 오기 전까지 컴퓨터가 온전히 그의 영역이자 소유물이었다. 방문을 열고 벌거벗고 자던 습관도 적당한 잠옷을 입고 자는 것으로 바꿨다. 면이 닿는 살갗이 근질근질해서 적응하기 쉽지 않았다. 샤워하고 나면 알몸으로 방에 들어가는 것이 당연했는데, 누나와 함께 살면서 물기가 다 마르지 않은 채로 속옷을 입어야 했다.

 그렇다고 누나를 미워하지는 않았다. 남을 못되게 굴만한 성격도 안 될뿐더러, 당시 청소년기 남학생이었던 그가 가족 문제로 머리 아프게 고민할 여유도 없었다. 그가 당시에 누나를 완전히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였는지 확신할 수 없지만, 그래도 그와 누나 사이에 별다른 마찰은 없었다. 적절하게 서로 양보를 하며 서로 미워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엄마와 누나의 관계는 조금 달랐다. 누나는 오랫동안 받지 못한 보살핌을 한꺼번에 돌려받길 원했고, 엄마는 성인이 다 된 딸에게 쏟을 여유가 없었다. 거의 매일 밤마다 고성이 오갔다. 집이 좁았으므로, 그는 모녀가 서로 주고받은 실망을 의도치 않게 옆에서 주워 담았다. 엄마와 누나는 싸움과 화해를 반복하더니, 누나는 결국 가족이 모두 밖에 나가있는 사이에 짐을 챙겨서 집을 떠났다. 누나가 들어와 산지 반년 만이었다.

 누나가 떠난 것을 안 엄마는 누나가 돌아올 때까지 밤새 부엌 식탁에 앉아 기다리다가, 동이 틀 무렵에 잠자리에 누웠다. 스마트폰을 단지 전화와 문자하는 데 쓰던 엄마는 나중에 그에게 메신저앱을 어떻게 쓰는지 물었다. 그에게 대신 내용을 보내달라고 하면 되겠지만, 엄마는 그것까지 아들에게 보여주길 원하지 않았다.

 곧 그가 내려야 하는 역이었다. 그는 고민했다. 지금 아니면 누나를 다시 볼 날이 없을 것 같았다. 아직 여자가 그의 누나일 것이라는 근거가 아무것도 없었지만, 어쩌면 누나 역시 계속 고민하느라 그를 보기만 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와 누나가 서로 반가워하며 이야기를 나눌만한 사이는 아니므로, 서로 시선을 느낄 뿐 다가서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는 고민을 마무리 짓지 못한 채 역을 지나쳤다. 그는 천천히 고민을 다지기로 했다. 누나도 갈 길이 멀 것이라 멋대로 생각하면서.

 다음역이 가까워지자 여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나가 먼저 마음을 굳힌 걸까? 그는 곧 닥칠 상황을 예상하고, 그 상황에서 누나에게 무슨 말을 할지 속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여자는 그의 뒤통수를 슥 흩어보더니 다른 사람들 틈에 섞여 그대로 전철에서 내렸다. 내리는 문이 그가 서있는 방향 반대쪽에 있어서 그는 여자의 실오라기도 잡을 수 없었다. 썰물처럼 사람들이 빠져나가자 빈자리가 넘쳐났다.

 

 그는 넋을 잃은 사람처럼 서 있다가 여자가 앉던 자리로 가서 앉았다. 그리고 그가 서 있던 곳을 보았다. 어쩌면 여자는 단지 차창을 마주 보려고 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 길목에 그가 서 있고, 그는 여자의 목적을 방해하는 장애물이다. 그렇다면 여자의 시선은 우연히 그가 서 있는 곳에 닿은 것뿐이다. 우연이 쌓이고 겹쳐지면서 그는 그 시선에 무슨 의도가 있다고 의심하게 되었다.

 여자는 그의 누나가 아닐 수도 있다. 그가 그것을 알지 못한 까닭은 그도 여자도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여자는 그의 누나일 수도 있다. 누나가 그에게 친근하게 다가가 인사하기엔 의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눈 깜짝할 사이에 그는 목적을 잃어버렸다. 이제 그는 어디로 가야할까? 깨진 스마트폰도 그대로고, 아직 출근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그대로다. 얼른 반대방향으로 가는 전철을 타면 본래 그가 내리려 했던 곳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지만, 그는 종점에 도착할 때 까지 일어나지 않기로 했다. 그동안 전철을 수없이 탔음에도 종점까지 가는 전철은 처음이었다. 전철은 한낮의 햇볕을 잠깐 쬐고 나서 다시 땅속으로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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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모자 성명: 김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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