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2차 창작콘테스트 단편소설 공모 - 리버

by 안혜원 posted Dec 10,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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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

 

  

    

   아부지, 내가 간 하나 못 떼어줄 것 같수?

   강 근처 무너져가는 기와집에서 큰 소리가 새어 나온다. 혈색이라곤 한 구석도 찾아볼 수 없는 얼굴을 한 남자가 잠자코 딸의 말을 듣고 있었다. 아버지와 반대로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달아오른 딸은 그 좁은 방에 자신의 마음을 모두 쏟아낸다. 열이 오른 온돌 바닥에 딸의 애타고 속끓는 마음들이 어떻게 받아낼 새도 없이 쏟아져내린다. 그것들은 곧 울렁이는 물이 되어 아버지의 턱 밑까지 올라차고, 아버지는 점점 숨 쉴 공기가 적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이게 딸이 내는 열 때문인지 진짜로 방에 물이 차오른 것인지 아버지는 분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남자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울컥, 울컥 평소보다 불규칙적으로 박동하는 심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가슴팍을 붙잡고 있는 것 뿐이었다. 간을 내놓네 마네 하는 현실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인 말들이 한동안 이어졌다.

   아버지는 강 건너편에 있는 유명한 절까지 작은 뗏목을 저어 관광객들을 데려다주는 일을 하고 있었다. 처음 뗏목 일을 시작할 때만해도 기어다녔던 어린 딸은 어느새 대학에 가고 독립을 하고 한 독실한 남자와 결혼을 했다. 중년과 노년 사이 어디쯤에 걸쳐있는 이 남자의 간암을 발견한 건 딸의 그 남편 덕이었다. 남편이 갑자기 쓰러진 후로 또 주위 사람이 갑자기 아프게 될 것이 두려워진 딸이, 아버지를 억지로 끌고가 건강검진을 받았다가 발견하게 된 병이었다. 남편의 암 발병이 없었더라면 아버지의 암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에 발견한 것이 정말 남편의 덕은 맞지만 이라는 말은 딸에게는 너무 잔인한 표현이었다. 아버지와 남편, 유일하게 언제나 자신의 울타리 안에 있는 두 남자가 암에 걸렸다. 딸은 아직 이 현실을 완전히 받아들이진 못했다.

   아버지는 그 날을 기억하고 있다. 건강검진을 받지 않아도 된다고, 자기는 건강하다고 외치는데도 기어코 제 손목을 붙잡고 병원으로 향했던 딸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아버지는 말도 참 안 들으신다고 씩씩거리지만 그 등에서 보이는 자신에 대한 걱정에 아버지는 내심 딸이 이만큼 컸구나 싶어 기분이 좋았다. 속마음만 그랬던 게 아니라 며칠 내내 얼굴에 웃음이 돌았더랬다. 아무도 몰랐지만 간암 증세로 조금씩 누래지고 건조해져가던 피부도 그 며칠동안은 생기를 되찾았었다. 건강검진 당일, 뗏목 일을 맡겨놓고 딸 손에 이끌려 들어간 병원은 엄청나게 거대하고 차가웠다. , , 불상, 풍경, , 스님, 동자승, 연꽃, 뗏목, 기와 이런 것은 아무데도 보이지 않고 오직 딱딱한 대리석과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로 꽉 찬 곳이었다. 딸은 온갖 건강검진을 신청해 아버지를 진료실로 들이밀었다.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검진까지 접수 넣느라 꽤 많은 돈을 썼으리라. 부녀는 집부터 병원까지 왔다갔다하느라 차 안에서만 반나절을 넘게 있었지만 결과만 좋다면야 이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사실 애초에 둘의 머릿속에 안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미래는 없었다.

   특히 아버지는 자신의 인생에는 더 이상 아무 변화가 없을거라고 생각했다. 노년기에 접어들고 있는 자신의 삶이 급변하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고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그런 믿음과 달리, 남자의 결과표를 받아든 의사는 끔찍한 것이라도 본 표정을 지었다. 표정으로 아버지의 인생에 큰 변화가 닥쳤다고 말하고 있었다. 컴퓨터 화면을 이리저리 들여다보던 의사는 남자에게 조건부 시한부를 선고했다. 전이가 어쩌고 경과가 어쩌고 생존률이 어쩌고 하는 무섭고도 복잡한 말들이 계속 이어졌다. 의사는 쉽게 풀어 얘기해드리는 것이라고 말했지만 간이라는 단어에 충격을 받은 부녀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고 이해하기도 싫었다. 어쨌든 뭐 결과 자체는 간단명료했다. 간 이식을 받지 않는다면 죽는다.

   아버지에겐 그래도 아무 일 없겠지, 남편 일 이후로 아버지도 혹시 병이 있을까 걱정되어서 모시고 온 것이긴 하지만 딸은 당연히 아버지는 건강할 거라고 생각했다. 있어봤자 뭐 슬슬 조심해야할 노인병 정도겠지 했었다. 순리대로 살아오신 분이다. 건강에 안 좋다는 것은 하나도 하지 않으셨다. 건강에 안 좋으니까 안 했다기보다는 그런 것 자체를 일절 좋아하지 않는 분이었다. 정말로, 일이 끝난 후에 반주를 한 잔씩 하시는 것 빼고는 별다른 습관도 없으신 분이었다. 누구보다 점잖은 노인이었다. 그런 아버지가 간 이식을 받지 않으면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니. 지금까지 자신이 어떠한 징후도 눈치 채지 못했다니. 딸은 모든 게 믿기지 않았지만 남편의 암 투병으로 이미 어느 정도 해탈을 한 상태였기에, 재빨리 결정한다. 하루라도 빨리 간 이식을 해서 아버지를 살리자고.

   믿기지 않는 결과 앞에서 갈팡질팡하는 아버지를 위해 의사는 간 이식 결정까지 시간을 주었다. 그래봤자 일이주 정도의 시간이었다. 어차피 답안은 하나뿐이었다. 딸의 간을 이식받아서 사는 것. 이식받지 않겠다함은 그저 죽는 날을 기다리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딸은 고민할 것이 어디 있느냐고 말했다. 자신이 간을 내놓겠다는데, 몸 밖으로 내놓겠다는데, 그걸 아버지에게 주겠다는데. 그렇게 아버지를 살리겠다는데 무얼 고민하는 것이냐고 열을 냈다.

   아부지는 고민할 필요도 없어요. 돈도 내가 대고 간도 내가 준다니깐. 간도 맞대잖어.

   의사의 진료를 들은 후부터 딸은 고민할 것도 없이 간을 내놓겠다 했다. 아버지는 용납할 수 없었다. 인생을 살면서 자신이 이룬 것은 딸을 번듯하게 키워놓은 것 그거 하나뿐인데, 노년기가 다 되어서 그 딸의 몸을 째 간을 받는다고? 아버지는 딸에게 간 이식을 받는다는 것은 자신의 유일한 뿌듯함이었던 잘 큰 딸이 수술대 위에서 부셔지는 것이라 생각했다. 자신의 인생이, 그 뿌듯함과 소중함이 깨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섣불리 결정할 수 없었다. 차라리 아버지의 간과 딸의 간이 맞지 않았다면 딸을 강제로라도 포기시킬 수 있었겠는데 하필이면 또 간이 맞았다. 간 이식 조건이 되니 당장 입원하자고 말하는 딸을 말려 겨우 집으로 돌아온 참이었다. 딸은 쉬겠다는 아버지의 꽁무니를 기어코 쫓아 방에 들어와서는 내내 자신이 아버지에게 간을 얼마나 주고 싶은지에 대해 토로했다.

   끝끝내 아버지를 설득하지 못한 딸이 내일을 기약하며 사위가 있는 병원으로 돌아가고 난 후, 아버지는 착잡한 마음으로 강으로 나왔다. 폭은 그리 넓지 않지만 나름 길이가 길고 깊이도 꽤 되는 명강(名江)이었다. 이 주변 마을을 크게 휘감아 돌고 있는 강은 남자의 오랜 일터였다. 자신이 나고 자라고 일한 곳이 댐 밑에 잠기면서 처음 구한 일자리이자, 그의 마지막 일자리가 될 곳이었다. 이제는 밑에 잠겨버린 일터보다 더 오래 일한 곳이 되었다. 모든 것이 변해서 마음 줄 곳 없던 남자에게 유일한 위로가 되어주던 곳이었다. 고향이 잠기고 아내와 사별하고, 흘러간 것 같아도 흘러가지 않고 아버지의 마음에 고인 상처들이 속에서 썩고 있었다. 생계를 유지하고 가정을 지키기 위해 겉으론 티를 내지도 않고 상처를 묵혀만 두던 때에 만난 강에서의 뗏목 일은 아버지를 치유해주었다. 매일 변함없이 흐르는 강이, 뗏목 위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고요한 절의 풍경이 그를 치유했다.

   어쩐지 달이 보이지 않는 밤, 별도 떠 있지 않은 하늘 밑 강에서 아버지는 생각한다. 생각하고, 고민하고, 고뇌한다. 남자는 제가 꼭 용왕이 된 것 같았다. 장생을 위해 약한 토끼의 간을 빼다가 삶을 이어가려는 용왕 말이다. 다 죽어가는 몸뚱아리에 딸의 팔팔한 간을 받아 연명하는 것이 뭔 의미가 있는가. 자신이 뭐라고 아직 젊은 자식의 간을 받아먹는가. 어떤 풍파에도 끄떡없이 자리를 지키던 아버지는 딸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 앞에서 처참히 무너졌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사실에서 무력함이 찾아왔다. 그리고 또 남자는 원초적으로 자신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인지 알고 싶었다. 사위에게 처음 병이 생겼다고 했을 때 제 딸이 뭔 잘못을 했기에 저런 슬픔을 겪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던 아버지였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이제는 자신에게까지 암이 찾아오다니, 아버지는 어이가 없었다. 자신이 겪을 아픔보다는 딸이 앞으로 겪을 마음고생이 더 신경 쓰였다.

   아버지는 강에게 한탄한다. 나는 절대 하늘의 뜻을 거스른 적 없는데, 왜 평범하게 잘 살아가나 싶을 때마다 이런 시련을 주는 것이냐고. 고향이 잠기고 아내를 잃었을 때도 하늘을 원망하지 않았었는데 왜, 왜 끝없이 고통을 주는 것이냐고. 딸내미의 간을 받아 목숨을 이어가는 꼴을 꼭 봐야겠냐고. 화가 꾹꾹 눌려 담긴 아버지의 말은 계속되었다. 울컥울컥 쏟아져 나오는 마음을 달래줄 것은, 없다. 차가운 밤공기만이 오롯이 그 분통을 다 받아낸다. 강은 항상 그랬듯이 아무 말이 없다. 요동치는 남자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잔잔하게 흐르는 강물은 그저 달도 별도 아닌 아버지의 주름진 슬픈 얼굴만을 비출 뿐이다. 아버지의 마음에 작은 구멍이 난 밤이었다. 강도 위로하지 못한 슬픔이었다. 아버지의 마음에 길고 가는 생채기가 생겼다.

 

   딸에게 아버지란 마음이 넓지는 않지만 제 울타리 안의 사람에게는 확실히 친절과 호의를 베푸는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무뚝뚝한 척 투박한 척 해왔지만 사실 누구보다 세심하고 자상한 사람이었다. 자신이 결혼한 이후로 아버지를 자주 들여다보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언제나 자신의 마음 깊숙한 곳에 든든한 나무처럼 버티고 있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아버지였다. 어른이 된 이후로는 아버지에게 무심하게 대했지만 딸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 또한 아버지였다. 그런 아버지가 죽음을 준비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정확히 하자면 죽음을 준비한다기보다는 현재를 받아들이지 못해 갈피를 못 잡고 계신 것이었지만. 어쨌든 잔잔하게 살고 싶어 하는 아버지 인생의 홍수가 들이닥치는 걸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간을 떼어주는 수술을 한 후에 어떤 고통이 찾아오든 어떤 후유증이 발병하든 생활이 힘들어지든 말든 간에 딸에게 중요한 것은 그저 아버지의 건강, 아버지의 지지, 아버지의 사랑, 무엇보다 아버지의 존재 그 자체였다. 딸에게는 아직 아버지가 필요했다.

   아버지를 설득하지 못하고 무거운 맘으로 집을 나선 딸은 남편이 있는 병원으로 차를 몰았다. 거기에는 달랑 문자 한 통 보내놓고 소식이 없는 아내를 하루종일 기다리는 메마른 남편이 있었다. 남편이 죽어도 포기하지 않겠다던 볼륨파마 머리는 어느새 민머리가 되었고 다부졌던 몸은 근육과 지방이 모두 빠져 빼빼 말라버렸다. 심지어 그 짙던 눈썹도 숱이 다 빠져 희미해졌다. 입술은 자꾸 터서 아내가 항상 립밤을 발라줬지만 그래도, 그래도 입술은 텄다. 그런 것이었다, 암이라는 것은. 남편의 모습을 보자 딸은 또 슬퍼졌다. 이미 마른 아버지다. 이미 충분히 고달플대로 고달팠던 아버지다. 그런 아버지에게 웬 항암이란 말인가.

   침대 머리맡에는 십자가가 걸려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남편이 다니던 교회의 담당 목사가 주고 간 성경 구절이 붙어있었다. 이 놈의 종교가 다 무슨 소용이야. 한 집안에 둘이나 암에 걸리게 만들어 놓고선 뭐가 어쩌고 저째? 아내는 엄한 곳에 화풀이를 한다. 믿음, 소망, 사랑. 그런 것이 교리라면서. , 이런 고통 속에서 사랑을 다지라고? 아니. 우리 가족은 고통 없이도 충분히 사랑하던 가정인데. 가족애 가족의 소중함 이런 교훈은 필요 없다. 정작 가족이 죽으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아내는 누군가에게 가슴팍을 손톱으로 쥐어뜯기고 있는 것 같이 고통스럽다. 마음 같아서는 성경 구절이고 십자가고 뭐고 다 뜯어버리고 싶지만 이게 남편에게 위로가 되고 있는 것 같으니까, 종교가 조금이라도 남편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있는 것 같으니까 아내는 참는다.

   시시각각 변하는 아내의 표정을 본 남편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저 때문에 이미 충분히 고생하고 있는 아내가 또 아픔을 겪는다. 마음이 쓰라렸다. 점심을 먹고 나서 아버지 간암 말기래. 간 이식 받아야 한대.’ 라는 문자를 받은 남편은 하루 종일 그 생각만 했다. 남편은 독한 항암 치료 중이었다.

   당신은 어떻게 하고 싶은데?
   한참 고민하던 남편이 입을 떼었다. 대답은 알고 있었다. 아내는. 간 이식 내가 할 거야, 라고 말했다. 침묵이 흘렀다. 병실 안의 은은한 노란 조명이 남편의 걱정스러운 표정을 비췄다.

   나 아버지 없으면 안 돼.

   그 후 남편은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아직 젊은 당신의 미래도 생각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아내의 건강이 제일 중요했지만 아내의 행복도 정말 중요했기 때문에. 아버지를 태양처럼, 그러니까 군주가 아니라 꼭 필요한 존재로 여기는 아내를 알고 있기 때문에. 해 없이 아내는 살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아내를 사랑하기 때문에. 입 밖으로 내지 않은 말이 목을 간지럽혔다.

모두에게 심란한 밤이 지나간 뒤 아침, 아내는 남편에게 죽을 먹여주며 말했다.

   우리 아버지는 왜 내 간을 안 받으려고 할까.
   미안해서겠지. 당신을 사랑하시니까.

   나를 사랑한다면 더 간을 받으셔야지.
   …… 죽은 토해도 힘들지 않아서 좋아.

   남편은 한동안 잠자코 있다가 아내가 건네는 죽을 열심히 받아먹으며 대답했다. 토하는 걸 당연히 생각하게 된 남편을 보자 아내는 더 답답해졌다. 아버지, 나는 직접 아파줄 수 없어요. 아버지가 나한테 해준 것처럼 병수발을 들어줄 수도 없고요, 이미 항암 중인 남편이 있어서 아버지만 매일 같이 들여다볼 수 없단 말예요. 몇 십 년 살아오면서 아버지께 받은 게 얼만데, 계산할 수도 없을 만큼 사랑을 받았는데. 왜 간도 줄 수 없게 하는 건가요. 나는 간이라도 주고 짐을 덜고 싶은데. 현실을 생각하면 할수록 아내는 더 괴로워졌다.

아내는 간호사들에게 남편을 잘 부탁한다는 말을 해놓고 남편이 있는 병동을 빠져나왔다. 차를 끌고 지하 주차장에서 나오자마자 강한 햇빛이 눈을 찔렀다. 날씨는 사람 맘도 모르고 너무나 화창했다. 아버지가 뗏목 일을 하기에 딱 좋은 날이었다.

   그 와중에 사이렌을 울리며 다급하게 병원으로 미끄러져 들어온 앰뷸런스가 응급실 앞에 멈춰 섰다. 허겁지겁 응급구조사가 내리고, 미리 나와 있던 간호사와 의사들이 한데 엉켜 환자를 바퀴 달린 침대로 옮겼다. 환자는 온 몸에 붕대를 칭칭 감고 있었다. 한 눈에 봐도 생사의 기로에 서 있는 사람이었다. 응급실로 빨려 들어가는 환자와 의료진을 보며 딸은 생각한다. 나의 아버지와 남편이 저렇게 갑작스럽게 죽지 않은 것에 감사해야 하는 건지 고민한다. 수많은 성공한 사람들이 말하기를 매사에 감사하라는데, 그럼 아버지와 남편이 교통사고로 즉사한 것이 아니라 암에 걸려 죽음을 준비할 시간이라도 있다는 것에 감사하면 되는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닌 것 같은데. 그냥 이런 고통 없이 행복하게 살아가면 안 되냔 말이야.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이 그저 원망스럽다. 평생 일만 하고 살아온 우리 아부지, 독실한 집안에서 태어나 한평생 교회 봉사만 하고 살아온 남편, 나름 죄 없다면 죄 없이 살아온 나. 나는 무슨 큰 죄를 졌다고 말기 암 환자 두 명의 고통을 지켜봐야 하는 운명을 얻은 건지. 아버지와 남편은 전생에 어떤 잘못을 했기에 고통 받다 죽어야하는 건지. 아버지에게 가는 길이 이렇게 심란한 적은, 딸 평생에 없었다.

   빨간 티코가 국도를 내달린다. 초록색 잔상들이 티코 속에 몸을 우겨넣은 딸을 따라왔다. 사이드 미러에 차창 밖의 푸른 잎들이 끊임없이 담겼다 사라지고 있었다. 이 땅의 모든 것은 너희를 빼고 만개했다는 걸 보여주며 약올리는 것 같았다. 네 손엔 이제 다신 잡히지 않을 행복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모든 것들은 만개했다. 우린 죽어가고 있는데. 딸은 그렇게 생각했다.

   아버지의 일터로 가는 32번 국도는 언제나 한가로웠다. 그래서 딸에게 아버지의 집으로 가는 길은 때때론 평화로웠고 때때론 지루했다. 어느 날은 행복했고 어느 날은 짐처럼 느껴졌다. 아버지를 만나고 오는 일이 빨간 줄로 지워야 할 체크리스트 중 하나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어떤 날엔 또 딸의 숨을 탁 틔워주었다. 도시가 좁은 어항이라면 32번 국도는 넓은 강으로 헤엄쳐 가는 길목 같았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딸은 지난날들이 죄스러워졌다. 진작 아버지를 모셔 와야 했다는 생각이 딸을 숨 쉴 수 없게 했다. 같이 도시로 가자고 아버지를 여러 번 설득해본 적은 있지만, 기어이 그곳에 남아 살겠다는 아버지에게 져주는 척 해왔던 그 날들로 돌아가고 싶었다. 아버지를 이길 수 없다는 핑계로 아버지를 두고 와서, 그곳에 혼자 오래 둬서 그런 것은 아닐까. 부정적인 생각은 사람을 좀먹는다는 말에 긍정적으로 살아오려고 노력한 지난 십 년이 무너져가고 있었다. 강이 잠긴 후 살아내려고 악바리같이 애쓰던 아버지의 모습을 기억하며, 딸은 몇 년간 죽어라 발버둥 쳤었다. 그 시절을 지나 직장에서 남편을 만나고 행복한 생활을 한 지 몇 년이 되지도 않았다. 인생엔 행복의 총량이 정해져있는 것일까? 세상은 자꾸만 그런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자꾸만 끔찍한 생각을 하도록 만드는 곳이었다.

   내 운명은 내가 선택하는 것이라고들 하지만 내 삶은 선택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었다. 살던 곳이 댐이 된다는 얘기를 듣곤 어처구니없다며 무시했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금세 댐이 되어버린 그 곳을 보고 세상에는 말이 안 되는 것은 없구나.’ 라는 생각을 처음 했더랬다. 세상은 무서운 곳이었다. 이미 그곳에 나의 삶의 흔적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세상은 그런 곳이었다. 어떤 존재를 금방이라도 원래 없었다는 듯이 지우곤 했다. 많은 것들이 흔적도 없이 사그라지고 새로운 것들이 태어나는 곳이었다. 딸은 자신의 아버지가 그렇게 될까봐 두려워졌다. 딸은 아버지가 세상의 순리에 집어삼켜지는, 저항할 힘도 없는 작디작은 무력한 한 생명이 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티비에 나오는 슬픈 사연을 갖고 싶지 않았다. 딸은 사연있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오래오래 아버지가 곁에 있으면 했다. 남들은 다 가진 어머니를 초등학교 때 잃고도 딸이 잘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 때문이었다. 많은 것을 선택할 수 없었지만 대신에 이런 아버지와 이런 남편이 있으니 되었다고 생각했다. 운명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운명론마저 현실이 짓밟으려 하고 있었다.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것들이 또 자신을 슬프게 하고 있었다.

   막 오전 일을 끝내고 돌아오는 아버지를 태우고 딸은 다시 말없이 운전대를 잡았다. 어디 가고 싶은 데 없냐는 딸의 물음에 아버지는 한참 대답이 없다가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곧 재건축한다더라, 그 유원지.

 

   도착한 곳은 무너져가는 유원지였다. 흘러간 세월만큼 녹슨 철문이 끼릭대며 부녀를 맞이하고 있었다. 폐장한 지 오래였지만 곧 시작될 재건축 때문인지 철문이 열려있었다.

   네 엄마랑 자주 왔는데.

   딸도 기억하고 있었다. 마을이 잠기기 전 아주 어릴 적에 즐겨 찾던 곳이었다. 아버지는 유원지에 갈 때마다 등산을 가는 척 딸을 놀리곤 했었다. 오르막길 오르는 것을 제일 싫어했던 딸의 얼굴에 마른 눈물 자국이 눌러 붙을 때쯤 유원지가 눈앞에 나타났었다. 운동복까지 갖춰 입고 오늘은 산에 가자던 아버지의 바지자락을 붙잡고 늘어졌던 기억에 딸은 미소 지었다. 그리고 그 운동복을 입으면 유원지에 가는 걸 알아챌 쯤에, 더 이상 아버지에게 속아 넘어가지 않을 때쯤에,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다. 영원히 떠날 것 같지 않던 어머니가 떠난 후에야 딸은 세상에게 속았다는 것을, 자신에게 속았다는 것을 알고 말았다.

   안으로 들어가자 회전목마가 보였다. 기억 속의 회전목마와는 다르게 먼지가 잔뜩 쌓인 채 방치되어 있었다. 손님을 태우지 않는 말은 자유롭겠지만.

   너는 어릴 때 회전목마를 참 좋아했는데.

   지금도 좋아해요. 근데 정작 정신차려보면 나는 항상 롤러코스터 위에 있더라고요.

   왜 인생은 이토록 자신을 롤러코스터에 태우는 건지, 딸은 궁금해졌다. 딸은 어릴 때부터 롤러코스터를 좋아하지 않았다. 떨어지는 그 기분이 아찔해서. 몇 초 후에 다시 상승하곤 했지만 바닥에 곤두박질치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 한 번 떨어지면 다시는 올라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기분이 들곤 했다. 안전바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 추락이 자신을 죽이진 않겠지만 지하 어딘가에 쳐박을 순 있겠다는 생각에 불안해했었다. 딸은 평탄한 회전목마를 좋아했다. 끊임없이 그 자리를 뱅글뱅글 도는 회전목마. 그 중에서도 마차에 타서 편안하게 밖을 구경하는 것을 제일 좋아했다. 딸이 인생에 바라는 것은 그 뿐이었다.

   추억들이 하나씩 없어지네. 네 엄마도, 그 마을도 여기도.

   ……아부지, 아버지는 사라지지 마.

     

  유원지에서 돌아와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수술을 받겠노라고, 아버지는 말했다. 딸은 무엇이 아버지의 마음을 변하게 한 것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일은 순식간에 진행되었다. 아버지의 상태가 심각했고 딸은 건강했기에 수술 날짜는 빠르게 잡혔다. 공여자와 수혜자로서 위아래 층에 나란히 입원한 후에야 딸은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수술이 잘 끝나고 나면 아버지를 자신의 집으로 모셔올 생각이었다. 당장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기와집에서 아파트로. 뗏목 일을 그만두는 것은 아버지에게 꽤 치명적인 일이겠지만 아버지의 세상은 어떻게든 굴러갈 것이었다. 딸은 원하는 대로 되었다고 제 맘대로 속편하게 생각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먼저 살아있어야 다음 행복을 맛볼 것이 아닌가

  아버지는 수술방에 들어가면서 말했다. 

  나는 그저 흘러가고 싶었는데, 점점 잠기는 기분이구나

  떠오르는 중인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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