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3차 소설 부문 공모_초 세는 사람

by pmr1174 posted Feb 07,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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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 세는 사람

 


 

이른 시간이라 카페 안은 한산했다. 나를 포함해 누군가를 기다리는 여자 한 명 뿐이었다. 그 여자는 긴 생머리에 긴 원피스를 입은 꽤 예쁘게 생긴 여자였다. 여자의 테이블에는 아메리카노가 담긴 테이크 아웃 잔이 놓여 있었다. 여자의 아메리카노는 약 7초 마다 줄어들었다. 여자는 긴 생머리를 오른쪽으로 넘겨 살짝 고개를 숙이고 아메리카노를 빨아들였다. 그러고는 잠시 창밖을 멍하게 보다가, 핸드폰을 3초 쳐다보곤 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걸까? 여자의 표정에는 설렘이 묻어나지 않았다. 아마도 상대를 조급하게 기다리기는 하지만, 딱히 설렘을 느낄 수 있는 대상은 아닌 듯 했다.

카페 안에 있는 작은 모니터에서는 쉴 새 없이 영상이 흘러나왔다. 홈쇼핑 광고가 나왔다. 홈쇼핑 광고는 다른 영상들에 비해 화면이 빨리 바뀌었다. 한 화면이 길어봐야 3초였고, 거의 0.5초도 안 되서 바뀌었다. 내가 모니터 영상의 흐름에 집중하고 있을 때, 수영이 나의 맞은편에 앉았다.

홈쇼핑은 화면이 금방 금방 바뀌어서 어지럽지?”

수영은 냉랭하게 말을 걸었다. 수영은 하얀 스키니 바지에, 검은색 민소매를 입고 내 앞에 앉아 있었다. 나는 수영의 말에 살짝 웃어보였다. 하지만 수영은 웃지 않았다. 수영은 대화가 없는 어색한 상황을 싫어한다. 그래서 우리 사이에 조금이라도 대화가 멈추면 재빨리 아무 말이라도 하곤 했었지만, 그 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내 앞에 놓여 있던 아이스 헤이즐넛을 자기 앞으로 가져가 빨대로 마셨다. 수영은 빨대를 통해 헤이즐넛을 3초 동안 빨았다. 그것을 바로 삼키지도 않았고, 5초 동안 입 안에 담갔다 삼켰다.

수영은 무엇인가 나에게 어려운 이야기나, 불만을 이야기하기 전에는 꼭 그랬다. 입 속에 무엇인가를 넣어놓고 재빠르게 삼키지 못했다. 그 맛을 상기 시키려는 건지, 아니면 그 것이 입 안에 담긴 동안에 무엇인가를 결심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러고 나면 항상 난처한 이야기나, 불만을 이야기했다. 나는 속으로 내가 어떤 잘못을 했을까? 하고 고민해봤지만 딱히 떠오르지는 않았다.

우리 이제 그만하자.”

나는 멍하게 수영을 바라보며 초를 세고 있었다. 그때 수영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말이 나와서 나는 내가 얼마까지 초를 셌는지 까먹었다. 분명 30초가 넘었던 것은 확실했다. 그제야 수영의 침묵이 길었던 이유를 조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수영의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딱히, 무슨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수영에게 이유를 묻거나, 잡고 싶었지만 그것보다 30초가 넘는 시간 동안 말을 꺼내지 못했던 수영의 심리가 조금 이해가 가서 아무것도 묻고 싶지 않았다. 수영은 내가 잡아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또 초를 세고 있어? 이런 상황에도? 이제 지겹다. 오빠가 초를 세고 그것에 자기도 모르게 집중하는 것, 아무렴 어때. 그게 누구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 그런데 말이야. 오빠는 좀, 뭐랄까? 심해. 내가 어떤 말을 해도 내 말에 집중하기 보다는 이상한 강박증에 시달려서 딴 생각을 하잖아. 그게 한, 두 번 이여야지. 그냥 지겹다. 오빠 내 이상형 알지? 내 이야기 잘 들어주는 남자. 그런데 오빠는 내 이야기에 집중을 못하잖아. 그게 얼마나 답답 한 건지 모르지? 그냥 지쳐.”

수영은 저 말을 31초 동안 했다. 숨도 제대로 안 쉬고 말하는 것 보다 조금 늦지만, 어쨌든 빠르게 말했다.

“31

난 나도 모르게 그 초를 입 밖으로 내 뱉었다. 이것은 내가 봐도 실수였다. 하지만 수영의 입장에서는 용납되지 않았고, 결국 수영은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나는 수영을 잡지 않았다. 물론 수영을 잡고 싶었지만, 수영이 언젠가 말한 적이 있었다. 자신은 절대 사람과의 인연에 대해서 쉽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자신의 입에서 헤어지자는 말이 나오면 정말 그걸로 끝이니까 우리 그 말이 나오지 않게 잘하자고. 그때 수영은 이 말을 45초 동안 했다.

나는 돌아와 달라는 말 대신, 수영에게 한 가지 오해가 있다고는 말해 주고 싶었다. 나는 초를 세면서도 수영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다. 나는 네가 말 할 때 너의 작고, 메마른 입술을 쉴 새 없이 보고 있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네가 말하는 동안 그 시간의 움직임도 다 셀 정도로 너에게 집중하고 있었고, 네가 한 이야기에 대해서도 항상 생각한다고. 그렇기 때문에 네가 지난날에 했던 말들을 내가 또렷이 기억하는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수영은 완벽한 오해를 하고 있었다. 오히려 나의 행동에 집중하지 않은 것은 수영이었다. 나는 수영이 길을 지나가다가 7초 이상 본 물건들을 모두 기억했다. 그리고 그것을 수영에게 선물해 주고는 했다. 그때마다 수영은 나에게 선물 고르는 센스가 탁월하다고, 너무 마음에 든다고 했다. 수영은 몰랐던 것일까? 자신이 그 물건을 7초가 넘는 시간동안 바라볼 때의 표정을. 나는 이렇게 수영에게 집중했다. 수영과 통화를 할 때, 수영이 한숨을 쉬는 시간에 까지 집중했다.

수영의 번호를 눌렀지만, 수영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어쩌면 수영은 내가 어떤 말을 해도 집중하지 않을 것이다.

수영이 떠나가고 430초가 넘는 시간동안 움직이지를 못했다. 430초를 세는 동안, 나는 몇 번이고 숫자를 까먹었다. 실제로 그 초를 센다면 아마 1000초를 훨씬 넘었을 것이다. 사실 초를 세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수영과의 추억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 추억의 끝에 430이라는 숫자가 자리 잡았다.

수영과 2개월 동안 연락만 하고 지내다가 처음 얼굴을 본 날, 수영은 부끄럽다며 아파트 일층으로 내려오지도 않았다. 그저 베란다에서 입을 가리며 수줍게 웃었다. 나는 그 모습만 봐도 행복했다. 그리고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수영에게 고백했다. 너와 사귀고 싶다고. 수영은 자신도 그러고 싶다고 3초 만에 대답했다. 사실 그 때 나에게 있어서 3초는 이제 막 오븐에 들어가 익고 있는 빵을 기다리는 시간보다 더 길게 느껴졌고, 파란불이 빨간불로 바뀌기 전에 깜빡 거리는 것 보다 더 조급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빠른 답이었다. 수영 역시 나를 마음에 품고 있었고, 내 말을 기다렸고, 대답할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끝을 맞이한 상황에 처음을 떠올리니 마음이 애석해졌다. 내가 처음으로 사랑을 느꼈던 대상은 아니었지만, 처음으로 짝사랑이 아닌 완벽한 사랑을 했던 대상이 수영이었다. 그런 수영이 나의 어떤 점으로 인해 상처를 받았고, 떠났다는 생각에 슬픔뿐이었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이런 나를 사랑해주는 여자도 수영뿐이었는데, 그런 여자가 나를 떠났다는 생각에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것들 보다 더 크게 나를 지배한 감정은 미안함이었다. 나를 진심으로 사랑해주던 사람을 나의 잘못으로 떠나보냈다는 사실은 나로 하여금 끊임없이 발버둥 치게 만들었다.

집으로 돌아와 수영의 번호를 수도 없이 눌렀다. 하지만 수영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던 적은 없었다. 대신 수영으로부터 긴 문자를 받았다. 나는 그 문자를 15초 만에 읽었다. 아마 수영이 나에게 이 문자를 보내는 동안에 흘러간 시간은 조금 더 길었을 것이다. 그 내용은 미안하다, 정말 사랑했다, 하지만 이제는 지친다, 이런 내용들이었다. 나에게 남겨진 글자는 미안, 사랑, 지친다 뿐이었다.

자꾸만 지쳤다고 말하는 수영을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 내가 수영에게 못해 준 것도 많다. 하지만 내가 그녀를 지치게 할 만큼 큰 죄를 저질렀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문득 원래 사람들은 이런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들 만의 한계를 자기 속으로만 만들어 놓고, 상대방이 그 한계점에 도착할 때 미련 없이 지쳤다.’ 혹은 힘들었다.’ 한마디로 돌아서는 것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모든 사람들 이라기보다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사람들의 공통점 같다.

사람을 떠나보내는 사람들은 버림받는 사람들의 느낌을 알지 못한다. 버림받는 사람들은 자신이 버림받았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왜?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물론 그 이유에 대해서 알게 될 날은 온다. 다만, 그 이유를 알아도 충격은 가시지 않는다. 오히려 상대방에 대해서 화가 날 때도 있다. 나에게 말해주었다면, 나의 이런 행동에 지쳐가고 있다는 사실이라도 말해주었다면 좋았을 텐데 라는 생각에 더 아쉬워하고 더 안타까워하는 것이 버림당한 사람들의 공통점이다.

나는 수영에게 화가 났다. 화가 났다고 해도 그것은 분노가 아니었다. 만약 수영이 나에게 조금이라도 말해주었다면, 아마 우리의 끝은 나 때문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화가 났다. 물론 수영의 생각은 달랐을 것이다. 나에게 직접 말하지는 못했어도 충분히 티를 냈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며, 만약 나의 이런 행동을 나에게 말한다고 해도 내가 고치지 않고 싸우기만 했을 것이라고 자기 혼자 단정 지었을 것이다. 정말이지 그것은 수영의 단정이었다. 나는 그것에 대해 화가 나는 것이다.

수영이 떠나고 일주일 내내 나는 시름시름 앓았다. 그 동안에 나에게는 온통 이상한 숫자들만 지나갔다. 내가 알고 싶지는 않지만 알아가고 있는 숫자들이었다. 첫사랑의 실연은 정말이지 독하다. 특히나 버림받은 입장에서 그 실연은 말도 안 되게, 정말 말도 안 된다는 표현이 딱 맞을 정도로 독하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독한 것은 전혀 동요하지 않는 상대방이다.

수영이 내 강박증을 알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수영과 연인으로서 데이트를 했던 기간이 1년이 넘었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 수영은 내 강박증에 대한 존재를 알지 못했다. 이따금 나에게 멍을 자주 때린다는 말만 했을 뿐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1년이 지나 함께 TV를 보다가 내 입에서 나온 말 때문에 수영은 내 강박증을 알게 되었다. 수영은 자신이 어디서 들은 것이 있다며 나에게 드라마나 예능프로그램에서는 몇 초에 한 번씩 화면이이 바뀌는지 물었던 적이 있다. 나는 항상 내가 새던 것이었기 때문에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장르마다 좀 차이는 있기는 하지만 보통 5초에 한 번씩 바뀌는 편이야.”

에이, 뭐야. 오빠 알고 있었어? 나는 이거 처음 듣고 놀랬는데 오빠는 어떻게 안거야?”

수영은 나의 대답에 실망했었다. 나는 원래 무언가의 변화를 세는 버릇이 있다고 했다. 내 대답에 수영은 무슨 그런 버릇이 있냐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나 역시 그것이 내가 누군가에게 버림받을 이유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버림받았을 때, 생긴 버릇으로 인해서 나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버림받았다.

어쩌면 수영이 나를 떠난 이유가 내 강박증은 아닐 수도 있다. 단지 수영은 내가 싫어진 것뿐이고, 그 이유를 만드는데 내 강박증이 도움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사실 나에게 이런 강박증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 내 스스로는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수영의 말 한마디에 사소한 강박증은 죽일 놈의 강박증이 되었다.

일주일 만에 수영에게 카카오 톡 메시지를 보냈다.

잘 지내? 나는 사실 잘 못 지낸다. 너는 아니라고 하지만 나는 너랑 만나는 순간, 만나지 않는 순간에도 언제나 너에게 집중했다. 내가 너에게 집중하지 않았다는 것은 너의 착각이다. 그러니까 이러지 말고, 만나서 이야기 하자.’

핸드폰 화면에서 ‘1’이라는 숫자는 811초가 지나도 사라지지 않았다. 아마 수영은 나와 헤어진 날 바로 내 번호를 지웠거나. 나의 어떤 연락도 받지 않기 위해서 차단까지 눌렀을 것이다. 나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전에 무슨 일로 알게 된 수영의 메일을 입력했다. 그리고 메일을 보냈다. 그 메일이 수신확인 되는 것을 세는 것은 포기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수영이 언젠가는 읽을 테니까.

TV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어느새 숫자를 세고 있었다. 화면에 나온 예쁜 여배우의 모습이 몇 초에 한번 바뀌는지 계속 세고 있었다. 그 모습에 화가나 TV를 끄고 아무 생각 없이 누웠다. 그러다가 또 초를 세는 나를 발견하고 수영을 생각했다.

수영은 내가 전화를 걸면 대부분 26초 안에 여보세요.’라는 목소리를 내뱉었다. 그리고 4초에 한 번씩은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수영이 14초 정도 자기 할 말을 하면, 나는 3초정도 수영의 말에 맞장구를 쳐줬다. 우리가 통화할 때 대부분이 그랬다. 나는 그렇게 항상 내 말을 하기 보다는 수영이 원하는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남자로서 수영의 말을 들었다. 초를 센다고 해서 수영의 이야기를 듣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수영의 말처럼 내가 초를 세기 때문에 수영의 모든 말을 제대로 못 들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내가 수영이 했던 말을 다 기억하는 것을 보면, 그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수영만의 단정이었다.

 

내가 초를 세기 시작한 것은 7살 때 부터였다. 어릴 적부터 나에게는 부모님이 없었다. 아니, 사실 있었지만 내 옆에는 없었다는 것이 맞겠다. 내 기억 속에는 태어날 때부터 엄마라는 존재 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엄마는 나를 버리지는 않았다. 그 날 전까지는.

엄마는 언제나 나에게 시간이 없으니, 우리는 다른 가족들과 다르니, 언제나 혼자가 될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어린 나이에 그 뜻을 제대로 헤아릴 수 있는 능력은 없었다. 다만 엄마가 언제나 나에게 혼자 밥을 먹으라고 했고, 언제나 혼자서 무엇이든 해보라 했기 때문에 언제나 혼자인 채로 무엇인가를 해야 했다. 처음에 엄마는 그런 나를 불안하게 쳐다보는 듯 했지만, 어느 순간 내가 혼자 하지 못하면 화를 냈다. 그때 나에게 혼자라는 의미는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어린이 집을 다니지 않던 나에게 혼자라는 의미는 혼자 일어나 혼자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 마시는 것부터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그것이 낯설었지만, 딱히 그것에 대해 불만을 품지 않았다. 엄마는 나에게 언제나 혼자라는 것을 심어 주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일어나 우유를 꺼내 마시고 의자를 이용해 밥그릇을 꺼내고, 밥을 담고, 반찬을 꺼내 식사를 했다. 그리고 혼자서 세수를 하고, 혼자서 TV를 봤다.

엄마가 나와 무엇인가를 했던 날은 그 날 뿐이었다. 엄마는 그날 평소와 다르게 나를 깨웠다. 항상 혼자 일어나던 내가 엄마의 소리로 일어난 것은 나에게 기억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처음이었다. 나는 그때 불안해했다. 엄마는 나를 깨우고 함께 씻어 주었고, 밥을 차려 먹여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어느 집안에서나 일어나는 평범한 일상이었지만, 나는 그 날 아침에 일어난 모든 상황이 낯설게 느껴졌다.

엄마의 손을 잡고 처음으로 함께 어딘가를 나갔다. 물론 나에게 기억이라는 존재한 이후 처음으로. 엄마는 나의 손을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꽤 오래 바라보는 것은 무엇이든지 해주었다. 그러니까 내가 아이스크림 가게를 쳐다보면 엄마는 나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주었다. 엄마랑 도착했던 곳은 사람들이 많은 공원이었다. 그리고 그 근처에는 허름한 옷을 입고 비둘기만을 바라보는 사람들도 많았다.

저 사람들에게는 절대 가까이 가서는 안돼. 알았지?”

내가 그 사람들을 오래 바라보자 엄마는 가까이 가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나를 그들에게서 최대한 떨어진 의자에 앉혔다. 엄마는 나를 꼬옥 안아주었다. 엄마는 주위를 둘러보고는 갑자기 바쁜 사람처럼 굴었다.

엄마가 지금 많이 바빠. 그래서 엄마가 지금 가야해. 그래도 아들은 뭐든지 혼자서 잘 하는 사람이니까 엄마가 없어도 괜찮지?”

나는 들고 있던 아이스크림이 녹아내리는 것을 보며 대답했다.

저기, 저기에 앉아서 비둘기 쳐다보는 아저씨 있지? 그 아저씨를 잘보고 있어. 혹시라도 다가오면 아무 말도 하지마. 그냥 저 아저씨를 보면서, 음 그래. 숫자를 세고 있는게 좋겠다. 만약 엄마랑 닮은 사람이나, 경찰아저씨가 오면 그 사람을 따라가도록 해. 알았지?”

엄마의 마지막 말이었다. 엄마는 그렇게 뒤를 두, 세 번 쳐다보고는 어디론가 바쁘게 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도망갔다.

나는 그런 엄마의 뒷모습을 쳐다보다, 비둘기를 바라보는 아저씨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때 나는 혼자서 숫자 공부를 하고 있었을 때다. 내가 알고 있는 숫자라고는 겨우 1부터 15까지에 불과했다. 냉장고 앞에 붙여진 그림에서는 15 다음에 어떤 숫자들이 굉장히 많았지만, 그것까지는 외우지 못했었다.

‘1,2,3,4,5,6,7,8,9,10,11,12,13,14,15’

나는 그 아저씨를 바라보며 1부터 15까지 말했다. 그 다음에도 숫자를 세야 했지만, 나는 아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다시 1부터 15까지를 계속 반복했다. 15를 말한 다음에는 아는 것이 1이었기 때문에 다시 1부터 시작했다. 내가 그렇게 숫자를 세는 동안 아저씨는 이따금 비둘기를 바라보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다 나와 눈이 마주치기도 했다. 그때 혹시라도 그 아저씨가 나에게 다가 올까봐서 시선을 돌려 흘러내린 아이스크림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나면 숫자를 어디까지 셌는지 까먹어서 다시 1부터 시작하고는 했다.

그러다가 아저씨가 나에게로 다가왔었다.

, 너는 거기서 무얼 하니? 왜 자꾸 나를 쳐다보는 거니?”

아저씨가 나에게 말을 걸었지만,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꾸 내가 셌던 수를 까먹게 만드는 아저씨가 미워서 숫자를 좀 더 큰소리로 셌다. 아저씨는 그런 나를 한참이나 바라봤다. 내가 15까지만 세고 다시 1을 말하는 것이 우스웠는지, 아니면 안타까웠는지 아저씨는 다시 말을 걸었다.

“15 다음에는 16이란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다시 17이지. 1부터 10까지는 알고 있지? 똑같은 것이란다. 숫자가 높아질수록 앞자리만 바뀌고 뒷자리는 반복, 아니 그러니까 음 똑같아지는 거란다. , 나를 따라해 볼래?”

나는 어느새 숫자 세는 것을 멈추고 아저씨를 똑바로 쳐다봤다.

“1,2,3,4,5,6,7,8,9,10,11,12,13,14,15,16,17,18,19,20,21,22,23,24,25,26,27,28,29,30,31,32,33,34,35,36,37,38,39,40.”

내가 15 다음에 오는 모든 숫자를 알게 된 것은 그 날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혼자 안 것이 아니라 어떤 아저씨로부터 배운 것이었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아저씨, 다시 아저씨 자리로 가주세요. 저는 이 자리에서 아저씨를 보며 숫자를 세야 해요. 그런데 아저씨가 자꾸 제 옆에서 말을 걸면 저는 숫자를 못 세요.”

아저씨는 씁쓸하게 웃으며 제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나는 이번에는 15 다음 숫자까지 세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99에서 멈췄다. 그 다음 숫자는 알지 못했다. 결국 다시 1부터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아저씨가 잠시 사라졌고, 나는 비둘기들을 보며 숫자를 셌다. 비둘기들은 자주 움직였다. 그 바람에 나는 자꾸 숫자를 비둘기들의 움직임에 따라 다시 세야 했다.

얘야, 엄마는 어디 갔니?”

아저씨와 함께 특별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 나에게 다가와 물었다. 엄마가 따라가라고 말했던 경찰이었다.

엄마가 엄마를 닮은 사람이나, 경찰 아저씨를 따라가라고 했어요.”

내가 말을 하자, 내 앞에 있던 두 사람은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리고는 경찰이 자신을 따라 오라 했고, 나는 따라갔다. 그곳에서도 나는 숫자 세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엄마가 시킨 것은 거기까지 였지만, 나는 그냥 숫자를 세는 것이 재미있어서 계속 숫자를 셌던 것이다. 경찰이 TV를 보면서 기다리라고 해서 TV화면을 보며 숫자를 셌다. 하지만 TV를 보는 동안 나는 10이 넘어가는 숫자를 세지 못했다. 자꾸만 화면이 바뀌었다. 나는 그때 TV화면이 몇 초에 한 번씩 바뀌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 뒤로 나는 영세 고아원에서 살았다. 엄마가 없는 새로운 곳이 낯설지는 않았다. 그저 거기에서도 묵묵히 언제나 그렇듯 나 혼자서 했다. 오히려 나를 도와주는 사람들이 낯설어서 재빠르게 혼자서 할 일을 하고는 구석에 앉아있는 일이 많았다. 그때마다 나는 숫자를 셌다. 그 숫자가 어느새 나에게 단위로 바뀌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가 나를 버렸던 날 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엄마가 나를 버렸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것을 깨닫게 된 것은, 고아원에 있던 아이들이 버림받은 아이들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다. 그리고 나 역시 그들과 같은 취급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였다. 나는 그때 엄마가 밉지는 않았다. 다만 내가 버림받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언제나 혼자 잘 했던 아이였고, 엄마가 없어도 칭얼대지 않는 아이였다. 다른 아이들은 혼자서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많이 칭얼거렸다. 그 아이들을 보면서 그 아이들은 버림받을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버림받을 이유가 없었다. 나는 그것을 생각할 때도 끊임없이 초를 셌다.

시간이 흐른 후, 엄마가 날 버린 이유를 스스로 깨달았다. 엄마는 내가 버거웠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이유에 대해 동의한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나는 버림받을 이유가 없는 아이였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나에게 단 한번도, 나의 잘못된 점을 말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나를 혼자로 만들었다. 자기 스스로 속에서는 끊임없이 나의 존재를 부정했을 테다. 그래놓고 정작 나에게는 어떠한 신호도 주지 않았다. 수영 역시 그랬다.

밥이 생각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배고픔이 안 느껴진 것은 아니었다. 그냥 오로지 내 머릿속에는 숫자들과 수영만이 떠올랐다. 수영을 잡고 싶었지만, 내가 엄마를 잡을 생각 조차 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냥 가만히 있었다. 버리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기회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이미 버리기 전에 수많은 생각을 했을 테고, 그것을 실행했을 때는 이미 타자에 대한 배려 따위는 없는 상태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할 만큼 했으며, 상대방에게 무수한 기회를 좋다고 생각하면 그만일 것이다.

가만히 누워있으면 눈물이 났다. 그러면서도 나를 미치게 하는 것은, 나도 모르게 세고 있는 숫자였다. 어느 순간부터 세고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느 순간 머리에는 숫자들이 담겨있었다. 수영은 나의 이런 무의식 적 태도 때문에 나를 버린 것일까? 하지만 나는 초를 세는 동안 끊임없이 수영의 말에 집중했었는데, 수영은 왜 나를 떠난 것일까?

핸드폰에서 벨이 울렸다. 수영이 아닐 거라는 사실은 알았지만, 수영이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핸드폰을 드는 손길에 묻었다. 발신인은 같은 수업을 듣는 동기였다. 나는 핸드폰 벨소리를 무시하고 다시 누웠다. 그 벨소리는 45초 동안 이어졌다. 평소 동기는 30초 정도 컬러링을 듣다가 상대방이 전화를 받지 않으면 그냥 끊었다. 그것보다 15초나 더 길게 내 컬러링을 듣고 있었다면, 조금 급한 일이 생긴 건 아닌가 싶었다. 그렇다 해도 전화를 받고 싶지는 않았다. 지금 상태로는 수영이 아닌 누군가와 말하는 것이 힘겨웠다. 사실은 그냥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수영이 나에게 다시 올 것이라는 미련은 점점 사라졌다. 만약 수영이 돌아왔을 거라면 엄마도 나에게 돌아왔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만, 엄마와 수영에게 나는 버림받을 이유도 없으며, 만약 정말로 내가 숫자를 세는 것 때문에 나를 버린 것이라면 수영에게 엄마를 탓하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만큼 그것은 이유가 될 수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더 이상 그 누구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눈을 감고 잠을 자고 싶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1,2,3,4,5,6,7,8,9,10,11,12,13,14,15……750,751,752……

내 머릿속에는 원치 않는 숫자들이 계속 나열되었다. 그리고 그 숫자들은 끝없이 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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