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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백편지

 [사랑해왔어, 널.]

 몇 달 동안이나 비워져 있었던 우리 집 우편함에 오랜만에 우편물이 꽂혀져 있었다. 그 우편물에는 되도 않는 농담이 적혀 있었고 이 문장을 읽자마자 헛웃음이 나올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정식적인 우편물도 아니었고 집에 돌아다니는 종이로 아무렇게나 쓴 종이 편지였다.

 '심지어 이면지..'

 집에 가서 버리기 위해 편지를 주머니에 구겨넣었다. 그때 편지 사이에 끼워져 있던 작은 종이가 바닥에 떨어졌다. 엄마의 사진이었다. 그리고 엄마의 사진 위에 빨간 펜으로 경고의 메시지로 덧칠까지 해놓았다.

 [만약 편지를 받았다는 사실을 주변에 알린담면 네 엄마를 어떻게 해버릴지도 몰라.]

 순전히 누군가의 장난으로 치부했던 편지는 순식간에 두려움을 느끼게 했다. 당장이라도 핸드폰을 켜 엄마에게 전화를 해 알리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이런 내 기분을 모르는 사진 속의 엄마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집으로 힘 없이 들어가자 쇼파에 앉아 티비를 보고 있던 아저씨가 몸을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신발을 벗고 있는 나를 보며 아저씨가 말을 걸었다.

 "민이, 왔니."

 "네. 엄마는 아직 안 들어왔나요?"

 "응. 오늘 회식이 있다네. 우리끼리 저녁 먹으라고 했는데 차려줄까?"

 "죄송해요. 애들끼리 편의점에서 간단히 먹고 와서요."

 "괜찮아. 얼른 방에 들어가서 쉬어."

 아저씨는 나를 보며 씨익 웃었다. 나도 아저씨를 향해 어색하게 웃곤 방으로 들어갔다.

 사실 우리 엄마는 내 친아빠와 이혼을 했다. 친아빠는 언젠가부터 내게 성추행을 거듭했고 이를 안 엄마는 친아빠와 망설임 없이 이혼을 해버렸다. 그리고 2년 뒤에 엄마는 내게 아저씨를 소개해주었고 둘 사이를 고백했다. 이혼한지 2년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남자친구가 생긴 사실에 놀란건지 엄마가 이런 취향을 선호하는지 알아서인지 적잖이 놀란 탓에 아무 말도 잇지 못했다. 아저씨는 그런 내 반응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여 내게 잘 보이도록 엄청나게 노력했다. 아저씨를 만난지 3달이 지났을 때 난 아저씨에게 말했다.

 "저희 엄마가 좋으시다면 결혼하세요. 전 상관 없어요. 엄마가 좋다면 저도 좋으니까요."

 이 말을 했다는 것을 아저씨에게 전해들은 엄마는 그날 밤에 해가 뜰 때까지 나를 끌어안으며 울었다. 그리곤 계속 같은 말을 반복했다.

 "네게 해가 되는 일은 절대 하지 않을게. 내겐 네가 전부니까. 이런 중대한 일을 허락해줘서 고마워. 사랑해."

 엄마와 아저씨는 빠른 속도로 결혼을 진행했다. 결혼식에 온 하객들의 눈길과 말들은 그리 살갑지 않았지만 예쁜 드레스를 입은 엄마는 어느 때보다 행복해보였다. 물론 아저씨도 우리 엄마의 미소를 환하게 비춰주었다.

 그렇게 엄마와 아저씨가 결혼한지 1년 반이 지났다.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난 쉽게 아저씨를 아빠라 칭하지 못했다.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물론 아빠라 부른다면 좋겠지만 성급하지 않아도 되니까 네가 하고 싶은대로 하렴."

 아저씨는 생각보다 나를 배려해주고 생각해준다. 예전 엄마와 아저씨의 결혼을 허락했을 때도 알게 모르게 아저씨를 경계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아저씨가 나를 생각해준 탓이다. 하지만 아직 어색한 감이 없지 않아 있다. 남자를 심하게 경계하는 내 성격 때문이다.

 당연하겠지만 엄마는 친아빠와 이혼을 하고 난 뒤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었다. 그런 엄마가 웃기 시작한건 아저씨를 만난 후부터였다. 엄마와 아저씨의 결혼을 허락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아저씨는 엄마를 웃게 해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엄마도 이제 웃으며 살아가길 원했다.

 하지만 이런 편지를 받은 오늘 난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누가 편지를 보냈는지조차 예상할 수 없었다. 의도인지도 모를 정도로 심각한 악필에 엄마의 모습을 뒤에서 몰래 찍은 듯한 사진은 내 심장을 더 빠르게 뛰도록 했다. 편지에 적힌 문장을 곱씹을 수록 손이 덜덜 떨렸다.

 '어쩔 수 없어. 비밀로 간직해야해.'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화장실로 가 씻은 뒤 아저씨에게 인사를 하고 침대에 누웠다.

 '괜찮을 거야. 아무 일도 없을 거야.'

 그렇게 일주일 동안 내가 바란대로 내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사실에 안도한 다음엔 아예 편지가 왔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편지를 받은 날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시점인 오늘 또다른 편지가 우편함에 꽂혀있었다.

 '말도 안돼.'

 보고 싶지 않았지만 보지 않는다면 불행한 일이 닥칠 것만 같아 편지를 집어 펼쳤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네. 역시 너도 날 사랑하는 거지?]

 이번에도 편지 뒤에 엄마 사진이 있었고 빨간 펜으로 알리지 말라는 경고의 메시지가 적혀 있었다.

 너무 무서운 마음에 난 그 자리에서 편지를 잘게 찢어버렸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도망치듯 집으로 올라갔다.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집으로 들어가자 아저씨가 나를 걱정스럽게 쳐다봤다.

 "무슨 일 있었니? 왜 이렇게 식은 땀을 흘려?"

 아저씨를 쳐다보자 예상치 못한 눈물이 흘렀다. 아저씨는 깜짝 놀라며 내게 달려와 눈물을 닦아주었다. 나를 식탁에 앉힌 아저씨는 무슨 일이 있었냐며 물었다.

 "사실.. 일주일 전에 누군가에게 편지를 받았어요."

 "무슨 편지?"

 "저를 사랑한다는 내용이었어요. 이 편지만 있었다면 당장 경찰에 신고했을 거예요. 근데 바로 그 편지 뒤에 엄마의 사진과 협박 메시지가 있었어요. 주변 사람에게 알리면 엄마에게 해코지를 한대요. 그래서 혼자 삭히고 있다가 오늘 동일한 편지를 받아서 무서웠던 것 뿐이에요."

 그동안의 일을 전하며 내 눈에선 눈물이 쉬지도 않고 잘도 흘렀다. 아저씨는 조심스럽게 내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런 일이 있었음 바로 알리지 그랬니. 아무리 그런 협박을 해도 경찰에 알린다면 누구든지 나쁜 행동은 하지 못한 거야. 신고하자, 민아."

 말을 마친 아저씨는 정말 신고라도 하려는 듯이 핸드폰을 들었다. 난 그런 아저씨의 행동에 놀라 재빨리 아저씨의 손을 붙잡았다.

 "안돼요. 정말 엄마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ㅇ기면 어떡해요. 그리고 이젠 엄마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요. 이제야 엄마가 웃기 시작했는데 또 걱정거리가 생기면 힘들어할 거예요. 그건 싫어요."

 나는 고개를 푹 숙일 수밖에 없었다. 아저씨는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민이 네가 그러고 싶다면 따를게. 하지만 엄마나 민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바로 경찰에 알려야해. 알겠지?"

 "그럼요."

 이렇게 아저씨와의 대화는 끝났다. 그 뒤로 일주일의 시간이 더 흘렀다. 하지만 편지는 오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에 계속 우편함을 확인했지만 역시 편지는 오지 않았다.

 시험 기간이 시작되고 집에 들어가는 시간이 늦어질 때쯤 학교 친구에게서 고백을 받았다.

 "예전부터 널 좋아했어. 시험 기간에 고백해서 미안해. 내 마음을 빨리 전하고 싶었어. 너도 같은 마음이라면 우리 사귀지 않을래?"

 머뭇거렸지만 난 불행하게도 그 아이에게 마음이 없었기에 거절할 수 밖에 없었다. 인사를 하고 헤어지려던 참에 잊고 있었던 편지가 생각이 났다. 편지가 불현 듯 스치자 혹시나하는 마음에 그 아이를 붙잡아 물었다.

 "혹시 고백 편지 네가 보낸 거야?"

 그 아이는 어리둥절해했다.

 "무슨 편지? 난 편지를 쓴 적 없는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이 아이가 아니라면 누구란 말인가. 한동안 잊고 있었던 편지를 갑자기 생각을 하니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아픈 머리로 독서실에 11시까지 있으니 어지러워졌다. 옆에 있던 친구에게 먼저 간다는 말을 남긴 뒤 집으로 향했다. 내일 일과에 대해 생각하면서 집으로 가다가 아파트 앞에 누군가ㅏ 음침하게 서 있는 것을 봤다.

 '무섭게 왜 우리 아파트 앞에 있는 거야.'

 그 남자의 얼굴이 보일 정도로 서서히 가까워지자 난 몸이 떨려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그 남자는 내 친아빠였다. 게다가 제정신도 아닌 듯 보였다. 친아빠도 나를 알아봤는지 내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민아, 드디어 왔구나. 몇 시간 전부터 계속 기다렸어."

 나는 본능적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친아빠는 내 행동을 알아차리곤 말했다.

 "왜 나를 피하는 거야. 아빠잖아, 아빠. 못 알아보는 거야? 서운하게 왜 이래?"

 친아빠는 딸꾹거리며 휘청거렸다. 난 떨리는 입술을 간신히 떼며 작게 소리쳤다.

 "소리지르기 전에 꺼져."

 험한 말을 들어서인지 친아빠는 더욱 흥분했다. 그런 모습이 너무나도 무서워 다리에 힘이 풀리기 시작했다. 그때 아저씨가 내 어깨를 잡았다.

 "괜찮니?"

 그제서야 참고 있던 눈물이 안도와 함께 흘렀다. 아저씨는 친아빠를 향해 소리쳤다.

 "당신이 여긴 왜 온 거야. 경찰에 신고는 안 할테니까 빨리 가."

 친아빠는 작게 무언가를 중얼거리고는 침을 여러 번 뱉으며 자리를 떴다.

 "민아, 괜찮아?"

 아저씨는 내 앞으로 와 무릎을 꿇고는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런 아저씨를 보자 난 소리를 내며 울었다. 아저씨는 아무 말도 없이 날 끌어안으며 내 울음이 그치길 기다렸다.

 몇 십분 뒤 내 울음이 완전히 그치자 아저씨는 내 가방을 들어줬다.

 "오늘도 엄마 늦게 들어온다니까 더 울어도 돼."

 난 고개를 저었다.

 "아뇨. 집에 들어가서 쉬고 싶어요."

 아저씨는 끄덕이며 나를 집까지 부축해줬다. 집에 도착할 때까지 내 다리가 계속 후들거렸다. 아직 내게 후유증이 남아있는 것이다.

 "아저씨, 오늘 와줘서 감사해요."

 "당연한걸. 네가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지."

 오늘 있었던 일을 엄마에게 비밀로 할 것을 약속한 뒤 각자 방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난 쉽게 잠에 들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예전 생각이 떠올라 밤을 새울 수밖에 없었다.

 친아빠가 나를 찾아온지 3주가 지났다. 그 후론 내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시험이 전보다 더 가까워졌다는 사실밖엥 바뀐 일이 없었다. 그렇게 평범한 일들만이 이뤄질 뿐이었다.

 어김없이 독서실에 12시까지 있었던 난 왠지 다른 날보다 피곤한 탓에 집으로 일찍 귀가할 예정이었다. 집으로 가던 길에 내 핸드폰에 알림이 떴다.

 '민아, 아빠다. 저번엔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찾아가서 정말 미안해. 민이가 너무 보고 싶어서 충동적으로 갔던 것 같다. 만나서 용서를 구하고 싶은데 만날 수 있을까?'

 메시지를 읽은 후에도 내 손은 여전히 떨렸다. 이젠 친아빠를 향한 무서움보단 증오만이 내 감정을 채웠다. 당연히 답장은 보내지 않았다. 누구라도 그랬을 것처럼 메시지를 무시했다.

 집에 도착할 때까지 친아빠에게서 여러 개의 메시지가 추가로 더 왔지만 무시를 한 채 옷을 갈아입었다. 씻은 후 침대에 누워 잘 준비를 하니 문득 예전에 왔던 편지가 생각이 났다.

 '그러고보니 요즘엔 편지가 안 왔었지?'

 편지에 대해 더 생각을 해보니 친아빠를 만난 후로 규칙적으로 오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난 편지를 친아빠의 소행으로 단정을 지었다. 그 단정 후엔 친아빠에 대한 증오는 더욱 깊어져 갔다.

 친아빠에 대한 증오도 점점 잊혀져 갈 때쯤 시험이 끝이 났다. 시험에 얽매여 있었던 난 모처럼 친구들과 시내에 나가 그간 있었던 일들이 없었던 것처럼 놀았다. 덕분에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을 정말이지 오랜만에 느꼈다.

 밤늦게까지 놀던 난 엄마에게 꾸중을 들어며 아파트 비밀번호를 쳤다.

 "미안해, 엄마. 이제 엘리베이터야. 곧 도착해. 끊어."

 엘리베이터에 타기 전에 문득 시선이 우편함 쪽으로 갔다. 불길한 예감이 들던 난 우리 집 호수가 적힌 우편함을 눈으로 좇았다. 그리고 그곳엔 한동안 보이지 않았던 편지가 꽂혀져 있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편지를 집어 펼쳤다. 편지에는 당연스럽게도 사랑한다는 말이 있었고 엄마의 사진 위에는 경고의 메시지까지 담겨있는 등 예전에 왔던 편지와 동일한 방법으로 나를 두렵게 만들었다.

 더 이상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편지가 또다시 내게 오자 난 현실을 믿고 싶지 않았다. 빠르게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들어갔다. 엄마와 아저씨는 아무 것도 모르는 표정으로 나를 반겼다. 그런 엄마가 괜시리 미워지기 시작했다. 나를 반기는 엄마를 자연스레 무시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이젠 어떡해야 할까. 정말 경찰에 신고라도 해야하는 걸까. 아니, 그러다 엄마가 다치기라도 하면 어떡해. 그럼 난 여기서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이렇게 가만히 있어도 되는 건가? 계속 잠자코 있다가 친아빠가 내게 무슨 일이라도 하면 어쩌지? 더 이상은 힘들다. 견디기 버거워.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어.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그 많은 생각을 머리에 담으려니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그때 아저씨가 순간 떠올랐다.

 '만약 아저씨한테 말한다면 도움을 주시지 않을까?'

 핸드폰을 켜 아저씨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아저씨, 혹시 고민이 있는데 들어주실 수 있으세요? 엄마에게는 비밀로 하고요.'

 아저씨에게는 생각보다 빨리 답장이 왔다.

 '그럼. 시간 되는 날 있음 말해봐. 내가 맞춰볼게.'

 아저씨가 내 고민을 들어주기로 약속한 날이 밝았다. 오늘은 평소보다 독서실에 늦게 들어가 엄마 몰래 둘이 공원에서 잠깐 얘기를 하기로 했다. 학교가 끝나고 친구와 같이 의미 없는 얘기를 하며 학원을 향해 걸어갔다. 그때 메시지가 한 개 왔다. 당연히 아저씨일 것이라 생각한 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하지만 내 예상과 달리 메시지는 친아빠에게서 온 것이었다.

 '민아, 네가 내 메시지를 읽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읽었더라면 좋겠구나. 저번에 찾아갔었던 이유는 용서를 구하기 위해서였어. 너를 해치기 위함이 아니었단다. 아빠는 아직 너를 많이 사랑하는데 민이는 그러지 않을 것 같아서 섭섭하구나. 우리 서로 쌓인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만나서 얘기를 좀 해봤으면 좋겠어. 답장 기다릴게.'

 만약 누군가가 이 메시지를 읽었더라면 딸에게 용서를 구하는 착한 아빠가 보낸 메시지라 여길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사랑한다는 말은 역겨울 뿐이다. 더 이상 이런 고통을 겪고 싶지 않았다.

 '당신이 나를 만나봤자 무슨 말을 지껄일지 알아. 계속 똑같은 말만 늘어뜨리겠지. 법정에서도 그랬잖아. 기억이 안 난다면 유감이지만. 그리고 나에게 이런 말을 할 자격도 없다는 것 또한 알아. 그니까 한 번만 더 보내면 지금 이 메시지 내용 경찰서로 가져갈거야.'

 메시지를 보냄과 동시에 답장이 바로 왔다.

 '그렇게 냉정하게 말할 필욘 없잖니. 정말로 한 번만 만나준다면 이제 더 이상 만나자는 얘긴 꺼내지 않을게. 난 너에게 용서를 구하고 싶어.'

 이 사람과는 문자로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같은 곳을 계속 도는 느낌이야.

 '그래요. 오늘 만나요. 8시까지 집 근처 공원으로 와요.'

 아저씨와 만나기로 한 시간은 8시 반. 30분 안에 친아바와 얘기를 끝내야한다. 할 수 있어. 떨지 않고 잘 해낼 수 있어. 엄마를 위해서라면 이 정돈 참을 수 있어.

 친아빠와의 만남 덕분에 학원 수업에 집중을 하지 못해 선생님에게 꾸중을 듣고 말았다. 평소라면 약간 짜증이 났겠지만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굳이 있었다고 한다면 긴장 정도. 그저 친아빠와의 만남이 걱정될 뿐이었다.

 그렇게 시간은 7시 40분이 되었고 학원에서의 수업은 끝이 났다. 서둘러 가방을 싸고 만나기로 한 공원으로 빠르게 갔다.

 공원에 가보니 친아빠는 이미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가가는 나를 알아본 친아빠는 반갑게 웃으며 내게 다가왔다. 그 행동에 새삼 놀란 난 살짝 뒷걸음질을 치며 말했다.

 "더 이상 내게 다가오지 마요. 아님 소리지를 수도 있으니까. 이렇게 거리를 좀 둔 상태에서 얘기해요."

어두운 나머지 친아빠의 표정을 자세히 보지 못했지만 친아빠는 웃고 있는 듯 밝은 목소리로 내게 말을 건넸다.

 "그럼. 우리 딸을 위해서라면 그 정돈 할 수 있지."

 "무슨 말이든 해도 되는데 내가 당신 딸이라는 말은 하지마요. 역겨우니까."

 친아빠의 얼굴이 살짝 굳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이에 나는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내가 살다살다 피눈물 흘리며 키운 딸한테 역겹다는 애길 듣는다곤 생각도 안 해봤는데. 서운하다, 민아."

 "말 질질 끌지 말고 본혼이나 말해요. 있다 만날 사람 있으니까."

 "이 늦은 시간에 누굴 만나다는 거야? 겁도 없이." 

 친아빠는 내게 조심스레 한 발자국 다가왔다.

 "다가오지마요. 나도 모르게 소리지를 수도 있으니까. 빨리 한다는 얘기나 하라고요."

 난 손을 뻗어 친아빠와 내 사이에 공간을 더 만들었다.

 "그래. 우선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미안하다는 것이다. 너는 내가 했던 행동이 성추행일지 몰라도 난 애정 표현이었어. 서로 생각하는 차이가 있어서 생긴 오해일 뿐인데 내가 너와 왜 떨어져 지내야하는지 모르겠다. 일단 그렇게 생각했다면 내 잘못이 있는 것이니 사과는 할게. 민아, 내 행동이 불쾌했다면 미안해. 용서해주겠니?"

 나는 잠시 머뭇거렸다. 난 이 사람 때문에 족히 몇 년을 괴로워했다. 지금도 잠깐씩 그때의 악몽이 떠오르기도 했고 그 당시에는 일상 생활도 어려울 정도였다. 이랬던 내가 이 사람을 용서할 수 있을까? 그리고 만약 내가 용서를 한다면 이 사람과 지금처럼 만나지 않아도 되는 건가?

 "그래요. 용서할게요. 대신 이제부터 만나잔 말은 하지마요."

 친아빠는 헛웃음을 하는 동시에 고개를 숙여 뒷목을 문질렀다.

 "음.... 그건 어려울 것 같은데. 난 사랑하는 우리 딸을 하루라도 안 보면 병에 걸렸거든. 그니까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만나면 안될까?"

 "안돼요. 내가 만나지 말자는 이유 알잖아요."

 "민아, 아직도 내가 무섭니? 도대체 내가 어떻게 해야 안 무서운 거야? 이리와. 포옹이라도 하면 생각이 바뀔지 몰라."

 친아빠는 팔을 벌리며 내게 다가왔다. 그가 웃는 얼굴로 천천히 다가오는 모습이 흡사 악마와 같아서 난 움직이지 못했다. 친아빠는 내가 수용한줄 알았는지 계속 가까이 다가왔다. 이러면 안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빠르게 스쳤다. 그리곤 안간힘을 내어 소리를 질렀다. 깜짝 놀란 친아빠는 내 입을 막으려 달려들었고 난 그 손을 피해 사람이 많은 곳으로 달려갔다. 다행이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친아빠에게서 나를 지켜주었다. 누군가가 신고를 했는지 경찰차도 달려왔다. 그렇게 나와 친아빠는 각자 차에 타 경찰서로 갔다.

 경찰서에서 그간 있었던 일들을 경찰에게 말하던 도중 아저씨와 엄마가 경찰서로 달려들어왔다. 엄마는 이미 오는 길에 울었던 건지 눈물 범벅이었다. 엄마는 엉망인 얼굴을 한 채 나를 끌어안았다. 그리곤 왜 말을 하지 않았냐는 말과 엄마가 못 미덥냐는 말을 반복했다. 엄마의 그런 모습을 보자 나도 흐르지 않을 것 같았던 눈물이 쏟아져 나왔고 긴장은 서서히 풀려갔다.

 "엄마를 믿지 않았던게 아니야. 엄마를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어."

 사건은 이렇게 마무리가 되었고 친아빠는 내 주변에 접근 금지를 선고받았다. 경찰서에서 집으로 들어온 우리 셋은 거실에 앉아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서로 했다. 그럼으로써 엄마는 더욱 웃는 일이 더 많아진 것 같았다. 그렇게 내겐 위협이 될 만한 일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고 편지도 오지 않았다.




 "엄마는 지금 잠들었어."

 아저씨는 내 앞에 앉았다.

 "네."

 아저씨는 조심스레 내 손을 잡았다.

 "아저씨는 저에게 왜 이리 잘해주세요?"

 "..그야 널 사랑하니까."

 "절 사랑하신다고요?"

 아저씨는 내 손을 잡고 있는 손으로 내 손을 문질렀다.

 "그래. 어쩌면 네 엄마보다 더."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하시는 이유가 뭐예요?"

 "그냥 말하고 싶었어. 내가 널 아주 많이 사랑한다는 것을."

 나도 아저씨를 따라 아저씨의 손을 문질렀다.

 "저희 엄마는 어쩌고요?"

 "....."

 "비밀로 해드릴게요."

 난 아저씨와 깍지를 낀 상태로 손을 잡았다.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아저씨는 나를 향해 웃었다.

 "저도요."

 나도 아저씨를 향해 웃었다.

 "아저씨, 그럼 이제 저한테 편지 보내지 마세요. 이제 서로 알았으니까요."

  • profile
    korean 2020.03.01 19:48
    수고 많으셨습니다.
    더욱 분발하시면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늘 건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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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제 32차 창작콘테스트 단편소설 공모 - 리버 1 안혜원 2019.12.10 71
62 ▬▬▬▬▬ <창작콘테스트> 제32차 공모전을 마감하고, 이후 제33차 공모전을 접수합니다 ▬▬▬▬▬ korean 2019.12.11 97
61 제 33차 공모전 -착한 아들 file 노수 2020.01.05 61
60 제 33차 공모전_코드명0042 1 삽살이 2020.01.10 38
59 제 33차 소설 부문 공모_우주 먼지 여관 2 제리강 2020.01.28 51
58 제 33차 소설 부문 공모_꺠진 가면은 뜨지 않는다. 1 제리강 2020.01.28 27
57 여객기의 추락(수정중) 1 뻘건눈의토끼 2020.01.31 30
56 제 33차 소설 부문 공모_주인(作人) 1 pmr1174 2020.02.07 23
55 제 33차 소설 부문 공모_초 세는 사람 1 pmr1174 2020.02.07 30
54 제33차 창작콘테스트 단편소설 - 열세 번째 겨울에서 백이십 번째 겨울로 1 다이무리 2020.02.08 25
53 제 33차 월간문학 한국인 공모전-사실은 괜찮지 않았다. 3 없습니다 2020.02.09 55
52 제33차 창작콘테스트 단편소설 - 면역 1 예이제 2020.02.09 38
51 내가 사랑한 만큼 너도 날 사량해? 1 깜씨 2020.02.10 24
50 제33차 창작콘테스트 소설 부문 공모 - 동백의 춤 1 정어리 2020.02.10 62
49 제33차 창작콘테스트 단편소설 - 다가가다 비타민씨 2020.02.10 40
48 제 33차 창작콘테스트 단편소설 공모 - 신지옥도 1 펭하 2020.02.10 35
» 오래 전부터 널 사랑해왔어. 1 산타양말 2020.02.10 33
46 ▬▬▬▬▬ <창작콘테스트> 제33차 공모전을 마감하고, 이후 제34차 공모전을 접수합니다 ▬▬▬▬▬ korean 2020.02.11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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