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넛 갤러리 - 제34차 창작 콘테스트

by 끔찍한나달 posted Apr 1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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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넛 갤러리

 


두 명의 불평꾼은 극장의 최상층에 자리한 좌석에 앉는다. 격식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도 없는 복장을 한 채 값싼 관람석에 앉는 우리를 보며 뭇 사람들은 비웃을지도 모르나, 이 의자로서는 대단한 영광을 맞이한 듯 끼이이익 소리를 내며 경의를 표한다.

새하얀 면상 가운데 두 눈이 뻥 뚫리고 야릇한 미소를 머금은 가면의 주인은 의자가 표하는 정중함에 보답이라도 하는 양, 의자에 앉은 채 자리를 옮긴다. 극장의 바닥과 좌석이 만들어 내는 아름다운 선율에 다른 관객들 역시 감동한 모양인지 눈살을 잔뜩 찌푸린 채 이곳을 올려다보고 있다. 필시 터져 나오려는 눈물을 애써 참아내는 과정에서 고양된 환희의 고통일 것이다. 아마 브이의 정신은 이렇게 생각하리라. 틀림없이.

이러한 상황을 연출해준 그에게, 나는 감사를 표한다.


제 좌석까지 마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과 함께 이런 연극을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말이죠.”


브이의 정신은 별일 아니라는 듯 무덤덤하게 말한다.


이 시답잖은 연극의 감독이 내 친구 놈이오. 이야기의 대본에 약간의 양념을 칠한 대가로 표를 공짜로 얻어 일전에 받은 신세를 갚을 겸 연락했을 뿐이오.”


신세라뇨, 저야 작가님을 좋아해서 드린 말씀일 뿐입니다. 그건 그렇고 여전히 이 자리를 고집하시는군요. 이제는 이런 좌석이 배치된 극장도 얼마 안 남았을 텐데요?”


안 그래도 다른 극장에서는 찾을 수가 없었소. 비록 싸구려 취급을 받는 구시대의 유물일지라도 작품과 실시간으로 대화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는 이 피넛 갤러리 뿐이오. 극장의 최상층에 위치해서 배우의 생김새를 자세히 관찰하기 힘든 한계 따위야 너끈히 뛰어넘는 가치가 자리한 곳이란 말이지. 극장 안에서 연극이 재미없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장소가 이곳 외에 또 있겠소?”


그의 말은 나름 타당하게 들린다. 세상의 어느 극장에서 자신의 공연을 모욕하는 관객을 놔둔단 말인가? 비록 지금의 시대에서는 구시대의 유물로 관짝 취급을 받을지도 모르나, 우리로서는 천상의 옥좌에 앉은 것과 같다.


본래 연극이란 관객들의 반응을 볼 수밖에 없는 구조를 취하고 있소. 영화감독과 배우는 인터넷을 비롯한 수많은 매체에서 눈을 돌림으로써 관객들의 평을 외면할 수 있고, 작가는 펜을 들고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들어 눈 가리고 아웅 할 수도 있지. 허나 이 같은 연극은 다르오. 연기가 형편없거나 이야기 자체가 쓰레기라면 관객들의 싸늘한 반응을 몸소 느끼는 것이지. 그래서 연극을 관람하는데 일부러 격식을 차리게끔 유도하는 것인지도 모르오. 시답잖은 권위로서 합당한 반응을 막으려 하는 건 눈을 뜨고 봐줄 수가 없소.”


, 오늘은 괜찮을 것 같습니다. 작가님께서 참여하신 연극이니 믿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만.”


기대를 무너뜨려 참으로 유감이오만, 오늘만큼은 억지로라도 깔 거리를 찾아서 부당한 모독이라도 하고 싶은 날이라서 말이지. 내 마음껏 씹고 뜯고 맛보고 즐겨도 신변의 위협이 생기지 않는 건 예술과 이 장소밖에 없잖소? 게다가 이번 연극은 형편없는 작가가 쓴 것이니만큼 정당하게 깔 수 있는 셈이오.”


그렇군요. 근데 오늘 연극은 소재가 무엇입니까? <1시간 전, 소돔과 고모라>, 인간의 타락과 관련된 것인가요?”


브이의 정신은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한다. 잠시라도 입을 다물지 않던 평소의 모습과는 다르게 침묵을 유지한다. 가면 때문에 그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으나 이번에는 그도 제법 긴장한 모양이다. 하기야. 언제나 다른 작품을 욕하던 그가 비평받는 입장에 놓였으니 그럴 만도 하리라.



극장의 모든 음향기에서 아득히 먼 곳의 목소리가 울리듯 퍼진다. 성별과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특이한 음색의 주인공은 따뜻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네 부름에 응하노라, 임마누엘. 편하게 말하렴, 내 아이야.


무대를 일부러 어둡게 한 건가요? 주인공에게만 비치는 빛은 구원인가 보죠?”


그렇소. 감독 놈 말로는 인간의 고독과 구원을 상징한다고 하오만, 글쎄 말이오. 내가 주인공이었다면 짜증을 냈을 것 같소. 간절한 기도 하나 못 들어 주는 게 신이랍시고 찬란한 빛을 뿜으니, .”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던 임마누엘은 놀란 듯이 일어서서 허공을 향해 소리친다. 신이시여, 제 부름에 응답하신 게 맞나요? 정말로 당신이라면 제 휴대폰에 전화를 걸어주세요. 010-25XX-6XX4.잠시 후, 그의 전화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흔들린다. 폰 화면에 비친 글자를 본 임마누엘은 미친 듯이 기뻐하며 무대 앞의 관객에게 뛰어가 폰을 들이밀며 소리친다. 맞죠? 봤어요? 신이에요! 신이 내게 응답했다고요!흥분한 임마누엘의 앞에 있던 여성 관객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손으로 얼굴을 가린다. 무대 앞줄의 관객들은 폰에 나오는 글자를 확인하고는 웃는다.


뭐라고 적힌 겁니까? 여기서는 볼 수가 없군요.”


, 친구 놈이 건네준 연극 대본이오. 참고하시오.”


브이의 정신이 건넨 대본에는 연기의 세세한 부분까지 서술되어 있다. 그는 여러 번 읽어본 듯 대본 전체에 자신만의 의견을 빼곡히 적어 놓았다. 이처럼 볼거리가 많은 종이였음에도 내 시선은 한 곳에만 꽂혀 있다.


허어, 거참. 세상에서 가장 쩌는 부모라고요. 쩌는이라요즘 젊은이들이 쓰는 언어 아닙니까? 연극이 참 특이하군요. 대사도 그렇고, 신이 응답하는 방법이 겨우 전화라니요. 뭔가 장엄한 장면으로 처리하는 게 극적이지 않겠습니까?”


신이 그토록 완벽하다면 맞춤형 응답도 가능하지 않겠소? 내가 만나게 될 신은 커피를 좋아했으면 좋겠군. 그리고 무한한 인내심을 가진 양반이기를 간절히 바라오. 그래야만 신과 함께 카페에 죽치고 않아 커피가 식어 빠질 때까지 논쟁을 벌일 수 있지 않겠소? 가령, 나 같은 경우에는 신과 함께 카페에 죽치고 앉아 커피를 두 잔 주문해놓고 식어버리다 못해 차가워질 때까지 서로 논쟁을 벌일 것이오. , 부디 신이 자비롭기를.”


임마누엘은 관객석 전체를 오가며 폰에 뜬 이름을 보여준다. 모든 관객이 발신자의 이름을 확인하자 그는 무대 위로 기어 올라가 숨을 헐떡거린다. 20초가 지났을까. 임마누엘은 숨을 고르고 난 뒤에, 다섯 번째로 울리는 전화를 받으며 수다를 떨기 시작한다. 브이의 정신도 함께.


배우뿐만 아니라 운동선수도 어울리는군. 저게 가능키나 하오?”


신이시여! 당신께서 바쁘시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은 정말로 많으나 당신을 위해 용건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의 세상은 너무나도 타락했습니다! 돈으로 사람을 사고파는 게 당연하게 여겨지며, 권력자들은 권좌의 진정한 주인을 기만하며 이 아름다운 세상을 위협합니다! 당신의 이름을 팔아 권세를 누리는 성직자도 있으며, 어떤 자들의 경우에는 입에 담지도 못할 흉악한 짓을 서슴지 않습니다! 저는 두렵습니다! 당신께서 옛날처럼 이곳을 벌하시면 어찌해야 할까요? 제가 사는 곳이 소돔과 고모라보다 낫다고 당신을 설득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롯과 같은 의인을 찾을 수 없을까 봐 두렵기만 합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짧은 시간에 이 모든 대사를 읊은 임마누엘은 또다시 헉헉거리며 숨을 돌린다. 폰 건너편의 목소리는 딱한 마음이 들었는지 …」를 연발하며 그가 진정될 때까지 기다린다. 임마누엘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씀하세요.한 마디를 내뱉고는 주저앉아버린다.


네 이야기를 들려줘서 고마워, 임마누엘. 네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 것 같아. 그런데 네가 무엇을 원하는지는 모르겠구나. 내가 너희를 벌할까봐 두려운 거니, 아니면 너의 형제자매들이 타락에 이끌릴까봐 걱정하는 거야? 내가 무엇을 해주면 좋겠어?


신의 말이 끝나자 임마누엘은 깊은 고민에 빠진다. 그는 도저히 답이 떠오르지 않는 듯, 또다시 관객들을 향해 걸어간다. 이번에도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여성에게 묻는다. 폰의 스피커를 손으로 가리고 소근거린다. 제가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요?그러나 여성은 말을 잇지 못하고, 답답해진 임마누엘은 극장에다 냅다 소리를 지른다. 제가 무엇을 빌어야 할까요?이 같은 불편한 상황에 폰 너머의 목소리는 헛기침을 하며 대답을 기다린다.


당신은 뭐라 답하겠소?”


글쎄요. 저는 신자가 아니라서 말이죠.”


저건 종교에 관한 문제가 아니오. 이 시대를 사는 모든 이가 해결해야 할 어려운 숙제이지.”


내가 답하려는 그 순간, 관객 한 명이 크게 소리친다. 둘 다요!임마누엘은 눈을 크게 뜨고는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며 폰에다 대고 말한다. 들으셨죠?

임마누엘과 관객의 답변에 신은 조심스럽게 대답한다.


, 이건 내 생각인데 말이야. 더는 내 도움은 필요 없을 것 같아. 내가 벌을 내릴 일도, 너희를 인도하는 일도 없을 거야. 너희는 소돔과 고모라 때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자랐거든. 어른이 같은 어른을 혼내는 건 보기에도 이상하잖아?


임마누엘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꾸한다.


우리가 자랐다고요? 우린 여전히 당신의 아이들이에요! 그것도 못된 장난만 골라서 치는 나쁜 아이들 속에서 힘들어하는 아이들 말이에요! 어떻게 걔들을 놔두고 도움을 안 주신다는 말씀을 하실 수 있죠?

그러니까, 얘들 말이지?

휴대폰 너머로 손가락을 튕기는 소리가 난다. 곧이어 그곳에서 여러 사람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린다. 여기가 어디야?, 뭐야?, 넌 누구야!너머의 목소리가 나지막하게 이런을 중얼거리는 것과 함께 다시 손가락을 튕기는 소리가 난다. 그러자 무대 뒤편의 어두운 영역에서 세 사람이 데굴데굴 굴러 나온다.


첫 번째로 넘어진 사람의 가슴에는 <십자군 대영주>, 두 번째로 넘어진 사람의 가슴에는 <강철의 대원수>, 세 번째로 넘어진 사람의 가슴에는 <재벌의 대총수>가 적혀 있다. 임마누엘을 비롯한 나머지 세 사람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폰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안녕, 내 아이들아. 너희의 권리를 위해 익명은 유지해 줄게. 그래, 한 참 바쁠 텐데 불러내서 미안해. 저기 있는 임마누엘이란 아이가 너희의성격을 걱정하며 내가 벌을 내릴까봐 무서워하기에 좀 불러 봤어. 각자 할 말 없니?

너머의 목소리가 신이라는 걸 깨달았는지, 대영주는 쿵하고 육중한 소리가 나도록 무릎을 꿇고 폰을 향해 죄를 고백하기 시작한다. 꽤나 아플 텐데도 대영주 역의 배우는 신경조차 쓰지 않고 큰 목소리로 빠르게 말을 잇는다.


거룩한 분이시여! 저는 당신의 뜻을 충분히 이행하지 못하였습니다! 선량한 양들을 괴롭히는 이단자를 징벌하여 당신의 위대한 의지를 실현하려 했으나 역량이 부족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였나이다! 부디 이 무능한 자를 용서하소서!

, , 그래. 다음은 누가 할래? 대원수? 대총수?


대원수는 주위의 눈치를 보며 무릎을 꿇는다. 그러고는 더듬거리며 말을 잇는다.

, 그러니까 말이지요. 정치란 건 원래 한계가 있습니다. 정책을 시행하다 보면, 부득이하게 배제되는 사람도 생기는 법이고요. 저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물론, 부족한 건 사실이죠. 당신께서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신다면, 국민을 위한 더 나은 정치에 온 힘을 다하겠습니다.

그런 말을 하고 싶었구나. 마지막으로 너, 대총수야. 하고 싶은 말 없니?


대총수는 대영주와 대원수와 임마누엘과 관객들의 눈치를 살피며 서서히 무릎을 꿇는다. 그러고는 역시나 느릿느릿한 말투로 천천히 대답한다,

, 우선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그다음으론 당신을 믿지 않은 걸 고백하고 싶습니다. 기업이라는 게 철저하게 실용적이고 현실적이어야 해서 종교와는 거리를 뒀거든요. 그리고. 노동자분들께는 늘 유감스런 맘을 가지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더 공정하고 정의로운 경제사회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송구합니다.

날 믿든 말든 그건 각자의 자유긴 한데, 네 생각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꿈을 깬 이후에는 너희 말처럼 되도록 노력해봐. 마지막으로, 말하고 싶은 단어 하나만 만세삼창하고 일어나.


그들은 잠시 망설이더니 결심한 듯 말을 잇는다. 이번에도 대영주부터 시작한다. 그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우렁차게 외친다. 믿음, 믿음, 믿음. 그 다음에는 대원수다. 온몸을 떨면서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한다. 자유, 자유, 자유. 마지막으로 대총수의 차례가 되자 그는 망설임 없이 말한다. 공정, 공정, 공정. 처음보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말하는 속도도 빨라졌으나, 주위의 눈치를 보는 것은 여전하다.


세 사람은 이제 나란히 서서 손을 맞잡고 각자의 단어를 노래 부르듯이 소리 질러 댄다. 믿음, 자유, 공정. 믿음, 자유, 공정. 믿음, 자유, 공정. 세 명의 우두머리가 참회하듯 부르짖는 소리에 관객들 사이의 분위기가 고양되며, 이를 본 브이의 정신 역시 달아오른다. 그의 반응은 전기충격을 받은 듯 몸을 떨고 눈을 부릅뜬, 일종의 발작 같았지만.


, 이런 염병할! 돼지 멱따는 소리가 내 머릿속을 찍어대오! 이보시오! 얼른 내 머리를 후려쳐서 기절 시켜주시오! 지금 당장!”


때마침 터져 나오는 박수갈채에 그의 신경질적인 탄식도 조금씩 줄어든다. 브이의 정신은 마침내 안정을 되찾은 듯, 흐뭇한 표정으로 관객들을 바라본다.


과연! 극장의 주연은 관객이라더니, 저들도 쓰레기 같은 소리에 진절머리가 났나보오. 헛헛헛! 이렇게 기쁠 데가! 저 장면이 사자와 하이에나가 연합하여 사냥하는 것만큼 비현실적이라고 그렇게나 주의를 줬는데, 감독 놈의 표정을 한번 보고 싶군!”


박수갈채가 잦아들자 너머의 목소리는 손가락을 튕기고는 세 사람을 사라지게 한다. 대영주와 대원수와 대총수는 바닥에 드러누워 잠들고, 무대 밖에서는 검은 쫄쫄이를 입은 배우들이 세 명의 대장들에게 검은 천을 씌우고는 공을 굴리듯 퇴장시킨다.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임마누엘은 들릴 듯 말 듯 한숨을 쉰다.

네 기대에 못 미쳤나 보구나. 미안해.

, 솔직히 말씀드려도 될까요? 저 인간들은 고작 가르침 정도로 마음을 바꾸지 않을 거예요. 특히 대영주를 보세요. 당신의 뜻을 전쟁이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래, 어쩌면 그럴지도 몰라. 너희는 자신의 생각을 굳게 믿는 경향이 있거든. 근데 말이야, 대원수와 대총수를 봤니? 그 아이들은 나를 두려워하며 자신이 생각하는 죄를 고백했어. 변명도 곁들이긴 했는데 바뀌겠다는 약속까지 했지.

그러니 말이죠! 당신께서 조금만 더 무섭게 나오면 모든 사람들이 착하게 살 거라고요!

내가 두려워서 착하게 행동하는 거라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게다가 나는 아이들을 엄하게 키우고 싶지 않아. 단지 가능성을 부여했다고 해서 내 맘대로 다루는 건 좀 아닌 것 같지 않아?


임마누엘은 슬픈 눈길로 폰을 바라본다. 브이의 정신 역시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무대를 바라본다. 나는 의아한 맘으로 그를 향해 질문한다.


마음에 안 드시나 봅니다. 저 부분은 다른 작가가 담당했나 보군요?”


아니, 저건 전적으로 내 담당이었소. 처음에 썼던 대사와 설정은 저것이 아니었지. 세 놈의 윗대가리를 부드럽게 타이른 신을 보고서는 임마누엘이 분노하는 장면이었소. 헌데 감독 놈이 제멋대로 바꿔버렸지. 이해가 안 되잖소! 어찌 극의 백미인 신성모독을 제외할 수 있단 말이오?”


나는 전적으로 감독의 결정을 이해한다. 극의 흥행은 물론이거니와 감독과 배우들의 경력을 고려한다면 종교적으로 민감할 수 있는 설정은 약간 비트는 게 더 낫다는 걸 그를 제외하고는 누구나 이해할 것이다. 허나, 오랜 친구를 위해 내 혀는 거짓을 말한다.


그러게 말입니다. 그런데 왜 그런 이야기를 쓰신 겁니까?”


이 연극은 신에 관해 다루고 있소. 그것도 특정한 종교관에서 약간 달라진 신을 묘사하고 있지.

말하자면 신을 찬양하는 작품이라는 거요. 허나 신성모독만큼 신을 빛내는 일이 또 있겠소? 인간을 향해 무한한 애정을 품으신다는, 자비와 자애 그 자체인 거룩하신 분께 근거 없는 비난과 모욕을 함은 빛을 끌어내림이 아니오. 자신을 향해 의문을 품는 필멸의 존재에게조차도 자비하심을 역설하는 장치로서 작용할 수 있을 진대, 어찌하여 신성모독을 금한단 말이오?

우리는 모두를 이끌 지도자를 검증하여 선택하오. 그 지도자가 우리의 종을 자처함은 두 말할 것도 없이 함께 나아간다는 징표를 의미하지. 헌데, 우리의 숭배를 받는 신을 검증하지 아니함은 얼마나 불합리한 일이오? 신을 검증할 수 없다하여, 또는 신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하여 아무런 방법도 생각해내지 않는 것은 오직 개인적인 상상의 대상으로서의 신이 존재할 때뿐이지. 오늘날과 같이 신을 입 밖에 내어 믿으라고 전도하는 시대에서는 당연하게 검증을 해야만 하는 것이오. 이 연극이 신을 다루어 관객을 끌어 모은 것이라면 더더욱 그래야하지.

신성모독은 악마를 숭배하려함이 아니오. 이는 신성의 완전함에 관한 합리적인 의문이며, 온 세상에 신성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한 논의의 장이지. 나는 이 논의가 필연적으로 신성의 권위를 떨어뜨리는 결과로 이어진다고는 생각지 않소. 예술의 정신은 하나의 관점을 제공할 뿐, 선택은 전부 인간의 몫이니 말이오.”


브이의 정신이 열변을 토하는 사이, 임마누엘의 감정은 절정에 치달아 진정하지 못 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는 무대 위를 이리저리 걸어 다니면서 연신 고개를 젓는다. 얼굴을 감싸고 주저앉기까지 한다.


저는 당신을 믿었습니다. 당신만이 절망에 빠진 우리를 구원해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여겼는데……. 제가 터무니없는 생각을 했던 걸까요?

나도 너를 믿어, 임마누엘. 너희 모두를 믿지. 그래서 간섭을 안 하는 거야. 너희는 원하는 걸 이뤄낼 힘을 가지고 있으니까. 이 극장만 해도 그래. 신을 두려워하지 않고 조롱하는 작가가 앉아있는 것만 봐도 ㅡ 브이의 정신이 헛기침을 한다 ㅡ 너희들의 의지가 얼마나 대단한지 느껴질 거야. 물론 힘들 때도 있겠지. 이해해. 그럴 땐 내게 기대도 돼. 난 언제나 너의 말을 들어줄 테니까. 하지만 결국은 너희의 몫이야. 난 너희가 스스로 해낼 때 더 행복해질 거라고 믿어. 내가 없는 게 최선의 결과를 낼 거라고 굳게 믿는단다. 내가 항상 너희와 함께 한다는 네 이름의 뜻을 기억해줘. 언제까지고 너와 함께 기뻐하고, 너와 함께 슬퍼할 테니까. 이런 내 맘을 이해해줄래?


임마누엘은 신의 담담한 고백에 멍한 표정을 짓는다. 잠시나마 고개를 끄덕이나 싶더니, 이번에는 고개를 저으며 침울한 표정을 짓는다. 이해를 하면서도 실망한 것일까.

 


그렇게 1부는 막을 내린다. 검은색 커튼으로 가려지는 무대 앞으로 진행자가 나와 2부가 10분 뒤에 시작됨을 알린다. 관객들은 자리를 떠나 화장실을 가기 위해 극장 문을 연다. 차가운 공기가 피넛 갤러리 쪽으로 불어와서 잔뜩 흥분한 브이의 정신의 열기를 식힌다.


, 신이 이렇다면 믿음을 가져볼 생각도 듭니다. 인간을 믿고 간섭을 하지 않는 신이라, 믿음을 가진 입장에서는 한편으론 뿌듯하겠군요. 물론 임마누엘처럼 슬퍼하는 사람도 있겠지만요.”


내 친구 놈은 신의 믿음을 통해서 인간의 자유를 논하려 했지. 신이 과연 이처럼 사려 깊고 부드러운 존재인가를 검증하지도 않고, 막연한 생각으로만 신을 묘사했소.”


굳이 신성모독을 하지 않고도 원하는 바를 전할 수 있다면 좋은 것 아닐까요? 작가님이나 감독님이나 인간의 자유를 논하는 것인 만큼 궁극적인 의도는 같지 않습니까? 게다가 신자들의 입장에서는 신성모독을 다루는 게 불쾌할 수도 있고, 한편으론 두려움을 느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요?”


신이 신성모독을 싫어한다는 증거라도 있소? , 물론 우리 같은 좀생이들이야 사소한 장난에도 발끈하는 종자들이니 당연하게 여길 법도하나, 우리가 다루는 대상은 신이오. 인격적으로 완벽하신 그 분께서 한낱 미물들이 내뱉는 상스런 말에 상처받을 리가 있겠소? 당신은 개미가 덤빈다고 해서 불 같이 화를 내오? 당신과 함께하는 멍멍이가 짖어댄다고 베개를 던지는 천벌을 내리오? 바로 그것이오! 우리는 그저 거룩하신 분의 심기를 거스를까봐 지레짐작할 뿐이지, 신의 실상은 어떠한지 알 수 없소. 오오, 빛나는 분이시여. 오오, 자비로운 분이시여. 부디 내게 천벌을 내리지 마소서.”


, 신의 성격이야 성서 같은 경전을 바탕으로 판단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아, 종파마다 달리 해석하는 그 거룩하신 말씀들 말이오. 실은 이러한 다름이 바람직한 것이지. 신과 같은 완벽한 존재의 가르침을 불완전한 인간이 받아 적고 해석한 것이 지금의 경전인데 완벽할 리가 있겠소? 종교의 불완전함이 신 또한 그러함을 뜻하는 건 아닐 것이니, 참으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할 수 있소.”


그리 생각하실 수도 있지요. 하지만 조금은 부드럽게 접근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솔직히 작가님도 신과 종교 그 자체를 싫어하시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는 지금 믿음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오. 그렇소. 난 신에 관해 유감이 없지. 허나 그럼에도 신을 모독하오. 생각해보시오. 세상의 정점인 신을 향해 욕을 할 수 있다면 그 누구를 두려워하겠소? 더 나아가 사람들이 전부 그리 할 수 있다면, 신을 욕할 정도로 용감한 사람들이 한낱 인간에 불과한 독재자 따위를 두려워할 리가 있겠소? 신의 이름을 파는 타락한 성직자들을 끌어냄은 물론이고, 생존을 볼모로 삼아 사람을 착취하는 부패한 기업 또한 감히 설치지 못하겠지!

나는 신을 모독하오. 사람을 옭아매는 권위를 모독하며, 그렇기에 인간 또한 모독하오. 나는 모독이 가능하다는 사실로부터 살아있는 자유를 느끼며, 모독으로써 자유를 온전히 움켜쥐고 있다고 생각하오. 이것이 내 믿음이오. 두려움을 희생하여 온전한 자유를 찾아가는 여정 그 자체 말이지.”


브이의 정신이 광기에 휩싸인 사이, 연극의 2부가 시작됨을 알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화장실을 다녀온 관객들은 서둘러 자신의 자리를 찾아간다. 관객들끼리 자리를 찾는 과정에서 서로 부딪히곤 하자, 브이의 정신은 이를 보며 껄껄거리고는 한 마디 한다.


과연, 번잡함의 측면에서 본다면 이곳과 저기 가운데 어느 곳이 천상이며, 어디가 지상이란 말이오?”

 

무대의 막이 오른다. 텅 빈 무대 위에서 홀로 서있는 임마누엘은 휴대폰에다 대고 자신의 의문을 말한다. 폰 너머의 목소리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듣고만 있다.


지상은 고통과 절망으로 가득합니다. 정의롭지 않고, 부정한 가치를 당연시하며, 누군가가 타락에 이끌려도 아무도 말리지 않죠. 정말로 우리가 성장했다고 믿으시나요? 세계를 끝장내 버릴 무기를 만들어 놓고는 인류의 번영과 존속을 외치는 우리를 믿으신다고요? 이렇게 잔혹한 세상을 두고 정말로, 정말로 자유로운 삶이 더 낫다고 하실 건가요? 차라리 처음부터 우리 전부를 천상에 데려다 놓으셨더라면 훨씬 더 좋지 않았을까요? 왜 선량한 사람들이 더 피해를 보며 살아야 한단 말입니까? ?


네 말이 맞아. 때로는 슬프겠지. 외롭고 괴로운 일도 많을 거야. 너희가 힘들어하는 걸 지켜보는 내 맘도 좋진 않아. 근데 있잖아? 너희는 음악을 발명했어. 사랑을 나누고, 이야기를 만들어 냈어. 언제나 문제점들을 해결하며 지금에 이르렀지. 전부 너희가 해낸 거야. 이제 내게 말해 보렴. 정말로 나쁘기만 했어?


비장하고 슬픈 분위기가 극장을 에워싼다. 관객들은 침묵을 유지하며 연극을 바라보고, 임마누엘은 울먹이면서 하늘을 바라본다. 꽤나 감동적인 장면이었을 것이다. 브이의 정신이 혓바닥을 놀리지만 않았다면.


말랑말랑하군! 납득할 수 없는 게 바로 저 부분이오! 내가 쓴 극본은 어땠는지 아시오? 정반대였소! 왜 비참한 세상에서 한 줄기의 빛 만을 바라보고 버텨야 한다는 것이오? 빛이 한 줄기밖에 없다면 우리가 싸워서 만들어내면 되지 않겠소? 삶을 찬양하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지!”


우리는 삶의 영역에 발을 딛고 있습니다. 삶을 찬양하는 건 당연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동시에 죽음의 영역에도 발을 걸치고 있지! 삶을 찬양하는 연유가 무엇이오? 인간이 자신의 본능을 이겨내고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존재라는 걸 증명하는 사례로서 가치가 있기 때문이 아니겠소? 죽음을 찬양함도 같은 뜻을 품고 있소. 타인을 괴롭히고도 반성의 여지가 없는 자를 먼지로 만들어, 그 어떤 강대한 악도 죽음 앞에서 영원하지 못함을 천명하는 선언이기 때문이지.

그렇기에 나는 죽음의 의지를 믿소. 타락한 종교가 인간을 옭아매고, 잔혹한 독재자가 인간을 탄압하며, 탐욕스런 기업이 인간을 착취해도 이는 영원하지 못함을 알고 있지.

한 때의 나는 겁쟁이였소. 세 명의 우두머리가 두려워서 하고 싶은 말을 목구멍으로 다시 삼킨 적이 얼마나 많았는지 아시오? 허나 신을 모독하고 죽음을 경배하는 지금의 나는 더 이상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소. 이것이 내가 쓴 믿음의 가면이오. 공포와 절망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나아갈 수 있는 힘 말이지.”


브이의 정신이 자신의 믿음을 고백하는 사이, 임마누엘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폰을 향해 말을 건넨다. 절박함이 느껴지는 목소리가 극장 안을 울린다.


신이시여, 당신께서 우리에게 바라는 게 무엇인가요? 그것만 알려주신다면 더는 당신의 뜻을 의심하지 않겠습니다. 맹세해요.


좋아. 내가 바라는 걸 말해 줄게. 네가 원하는 걸 하렴, 임마누엘. 날 의심하는 게 원하는 바라면 그리해도 좋아.


관객들 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깔린다. 믿음의 여부와는 관계없이 꽤나 장엄한 장면이라고 생각하려는 찰나, 또 다시 브이의 정신이 떠들기 시작한다. 한 가지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 그의 표정도 어느 정도는 고조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만큼은 나와 내 친구의 생각이 같았소. 그래서 지금의 피넛 갤러리에 나와 당신이 앉아 있는 것이고. 정면으로 배치되는 게 단 하나 있었다면, 바로 임마누엘의 캐릭터였지.”


얼마만큼 달랐기에 그러십니까? 그게 말이죠, 결론이 같다면 어느 정도는 비슷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꿈꾸는 세상이 같다면 더더욱 그렇지 않나요?”


내 친구는 임마누엘이 구도자였으면 했소. 투쟁 없이도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여긴 셈이지. 허나, 나는 임마누엘이 투사였으면 했소. 그가 신을 믿는다 하더라도, 불의에 맞서는 방법은 기도가 아니라 투쟁이라는 걸 말하는 인간이길 바랐지. 신의 존재는 마음속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양심과 믿음을 뒷받침하는 위안으로 삼은 채 말이오.”


구도자인 임마누엘은 아직까진 길을 찾지 못한 것 같다. 그는 여전히 신을 향해 답을 요구한다.

그럼, 그럼 말이죠. 저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제 삶이 올바른 길을 따라 가고 있나요? 저 나쁜 녀석들이 두려워서 핍박 받는 사람들을 도와주지도 못하는 지금의 저라도 괜찮다는 말씀인가요?

네 마음이 가는 대로 하렴.


참으로 뻔하디 뻔한 대답 아니오? 내가 이 부분은 식상하다고 그리 말했건만, 감독 놈은 내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들었지! 나쁜 자식!”


마침내 감정이 격해진 임마누엘을 바라보며 나는 그저 고개만 끄덕인다. 이야기에 빠져들 만하면 떠들어대는 브이의 정신이 제발 좀 그 입을 닫기를 바라면서.


우리가 당신처럼 원하는 걸 뚝딱 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사는 것만으로도 벅찰 때가 많다고요! 당신의 눈에는 자유를 누리며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낭만적으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정말정말 주저앉고 싶을 때가 얼마나 많은지 아세요? ? 아시냐고요! 당신이 멀쩡하게 되돌려 보낸 것들은 꿈에서 깨자 마자 또 다시 우리를 억압하고 착취할 거예요! 아니, 최소한 사람답게 살 수는 있게 해줘야당신은 그럴 힘이 있잖아.

임마누엘은 울먹이며 말끝을 흐린다. 이어지는 신의 설득에도 슬픈 얼굴을 한 채 땅만 바라보다가, 마침내는 신과 논쟁을 벌이려고 까지 한다.


이 부분은 내가 억지를 부려 살려 놓은 대사라오. 친구 놈의 머릿속에서는 신과 논쟁하는 장면 없이 임마누엘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끝이 났지. 내가 사망 직전의 연극에 호흡기를 달아 놓은 것이지. 10분 정도 살려 놓은 것이오.”


브이의 정신은 껄껄거리며 기분 좋게 웃어재낀다. 그러다가 신을 향해 격앙된 목소리로 자신의 걱정을 이야기하는 임마누엘을 보며 말을 잇는다.


나는 신이 존재하는가에 관한 사실 여부엔 관심이 없소. 신을 모독하는 것 역시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지. 그저 이 세상이 조금이라도 더 나아질 수 있다면 누구와도 손잡을 수 있다는 게 중요할 뿐이오. 지금처럼 절망적이고 비참한 세계를 바꿀 수만 있다면 믿음과 신념, 사상 따위가 다르다는 것쯤은 아무래도 좋소. 양심을 따르는 무신론자와 신의 계율을 따르는 유신론자는 절친한 친구가 될 수 있다는 말이오. 나와 감독처럼 말이지.”


그래서 이런 이야기가 나온 것이잖습니까. 작가님의 종교관과는 전혀 다른 데도 말이죠! 딱 이 만큼만 날을 세운다면 누가 싫어하겠습니까? 저를 비롯하여 당신을 잘 아는 사람이야 진심을 이해하기에 상관없으나, 모르는 사람의 눈으로 보면 오해를 사기 딱입니다. 저번의 일만 해도 그렇죠. 오해를 풀지 않았다면 큰일 날 뻔했잖습니까.”


그 일은 당신 덕분에 깔끔하게 풀렸잖소. 늘 나를 믿어주는 당신의 우정에 감사할 뿐이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보시오. 나는 누군가를 속인 적이 없소. 내 믿음이 옳은지 그른지는 확신할 수는 없으나, 어쨌든 난 내 생각을 있는 그대로 말하오. 누군가가 나를 비난하고 모욕해도 상관없소. 내 믿음 역시 검증되어야 하니 말이오. 신이 화를 내며 날 욕하고, 신자들이 나를 비난한다면 그야말로 자유가 실현되는 순간이 아니겠소?

그런 점에서 본다면 나는 콜로세움의 검투사라오. 진정한 승리를 거두지 못하며, 언제나 죽음이 기다리는 야만적인 격전지에서 단 하나의 목표만을 위해 나아가는 검투사 말이지. 먼 옛날, 경기장 속에서 처절하게 죽어간 그들이 단지 조금이라도 더 삶을 연장하기 위한 이유로만 몸부림쳤다고 생각하시오? 아니, 그들과 나는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삶을 위해 싸워온 것이오! 그리하여 언젠가는 쓰러지더라도 후회하지 않소.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목숨을 바쳐 싸워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지.”


, , 감동적이긴 하군요. 하지만 이 시대에서 자유를 위해 목숨까지 바쳐야 할 필요는 없는 것 같은데요. 적어도 이 나라에서만큼은 언론과 시민들의 감시활동도 활발하고, 의회 내부와 정부 부처 간에도 서로에 대한 견제가 이루어지지 않습니까? 기업의 불법적인 활동에 대한 규탄이나 불매 운동을 보십시오. 종교도 마찬가지죠. 이단 종파를 규명하고 배척하려는 시도도 많은 것으로 압니다.”


당신 말이 맞소. 우리 위에 군림하려는 왕에게 대항하여 죽음을 맞고 책까지 전부 태워지는 시대는 아니지. 마녀로 몰려 불타 죽는 일은 더더욱 없소. 허나 억압은 더더욱 교묘하고 체계적으로 우릴 무력화시키오. 과거에는 자유를 위해 투쟁한다고 해서 이해받지 못하는 건 아니었지. 허나 오늘날에 자유를 위해 칼날을 겨누면 정신병자로 취급 받기밖에 더 하겠소? 위정자들이 예술가의 밥줄을 끊어버리면 우리는 사실상 굶어 죽을 위기에 처하거나, 권력 앞에 개처럼 납작 엎드릴 수밖에 없지. 우리는 더는 혁명가가 될 수 없소. 그저 글 나부랭이를 쓰며 예술을 팔아먹고 살뿐이란 말이오. , 이제 말씀해보시오. 이런 상황이 로마의 검투사보다 낫다고 할 수 있소? 정말로?”


꼭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 같은 말씀이로군요. 너무 과장하십니다. 비현실적이기까지 하잖습니까?”


어허, 비장한 분위기를 망치지 마시오. 알고 보면 이 세계도 꽤나 비현실적이니까. 예술가의 밥줄을 끊어서 탄압한 일이 불과 1년도 채 지나지 않았지. 학자들의 연구비를 끊거나, 세무조사로 털어버렸던 방법은 어떻소? 야만적인 고문을 쓰지 않고도 원하는 바를 충족시키니 이 얼마나 마법 같은 일이오? 비폭력의 위대함은 악의 축에서도 증명하고 있는 셈이지.”


우리가 대화를 나누는 사이, 임마누엘의 감정은 격정적으로 치달아 폰 너머로 거친 말을 쏟아낸다.


바라는 모든 걸 하라는 말씀이죠? 당신의 가르침을 버리고 타락해도 괜찮다는 거죠? 사랑을 하찮은 호르몬 장난으로 여겨도 되겠네요? 부정과 부패를 몸소 실현해도요? 무고한 이들이 핍박받는 시대여도 눈과 귀를 가린 채 나 몰라라 해도 아무런 상관없죠? 당신을 욕하고 저주해도 두고 보실 건가요?


그래. 괜찮아. 그러다가 네가 지옥에 떨어진다면 꽤나 마음 아프겠지만, 난 정말로 확신한단다. 임마누엘, 네가 따르던 가치가 날 위한 것이었니? 네가 선한 삶을 산 건 내게 기대기 이전이었잖아?


협박 아닙니까? 지옥에 떨어질 수 있다는 건 아무리 봐도 경고하는 것 같은데요.”


좋은 지적이오. 실은 그게 이 극의 한계였소. 감독 놈이야 신의 유머 정도로 생각한 모양인데, 애초에 깡통로봇 같이 한결같은 목소리로 그런 말을 한다면 누가 장난이라고 이해하겠소? 그보다는 임마누엘의 대사가 참으로 맘에 드는군. 내 말 안 들어주면 삐뚤어지겠다며 대놓고 앙탈을 부리는 거잖소. 신을 협박하는 인간이라. 아주 좋소.”


하지만, 하지만 누가 이들을 이긴다는 말입니까? 어떤 전사가 압제에 맞서고, 어떤 월급쟁이가 탐욕을 멀리하며, 어떤 성자가 타락을 씻어낸단 말이죠? 그 누가 이런 일을 할 수 있냐고요!


나는 아니야. 나는 그럴 능력이 없단다. 너희의 발끝만큼도 미치지 못해. 네가 원하는 건 복수와 굴복이 아니잖아. 안 그래? 내 힘은 진정한 참회를 이끌어내지 못하니까. 그렇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던 임마누엘은 결심을 굳힌 듯 폰을 바라보며 입을 연다.


결국 자유라는 말씀이군요. 당신과는 상관없이 착하게 사는 사람들처럼 말이죠.


맞아. 그것 보렴. 너희는 내가 없어도 언제나 잘 해낼 거야.


임마누엘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신에게 작별을 고한다. 통화를 종료한 그는 관객석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굳게 입을 다문다. 임마누엘의 얼굴에는 여전히 슬픔과 원망이 어려 있으나 억지로 웃음을 짓기 시작한다. 또렷하고 단호한 눈동자와 슬퍼 보이는 미소로. 결국은 인간의 몫이라는, 자신을 짓눌러오는 중압감을 견뎌내려는 것처럼 말이다.


괜찮군요. 그러니까, 제 종교관을 고려해도 좋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 아직 끝나지 않았소.”


연극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내키는 대로 떠들던 그가 주의를 준다. 나는 다소 어처구니없는 느낌을 받으며 무대를 바라본다. 지휘자는 무대 위로 올라와서 살짝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할 뿐, 석상이라도 된 양 손끝 하나 움직이지 않는다. 오케스트라 단원들도 제 자리에 앉은 이후로는 그 어떤 행동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다. 나를 포함한 관객들이 이 희귀한 광경을 멍하게 바라보는 가운데, 브이의 정신은 나를 쿡쿡 찌르며 대본의 한 부분을 가리킨다. 마무리 - 존 케이지의 433


극장에는 작은 소요가 일어난다. 지휘자를 비롯한 오케스트라 단원 전부가 침묵을 지키며 가만히 있자 곳곳에서 다양한 반응이 일어난다. 눈을 감고 서있는 지휘자를 따라 명상에 빠진 관객이 있는가 하면, 이제 끝난 건가?, 뭐 하자는 거지?, 좀 조용히 해!등의 웅성거림도 들린다. 관객들이 펼치는 혼돈의 연극을 감상하느라 이리저리 둘러보는 아이가 보이고, 이러한 소란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무언가를 열심히 적는 브이의 정신도 보인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220초밖에 남지 않은 시간 동안 무엇을 해야 할까? 시시각각 사라지는 자유의 시간 동안, 그저 사람들을 지켜보는 게 전부란 말인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이토록 없었던가?


너무나도 길었던 433초가 끝난다. 지휘자가 관객들을 향해 멋들어지게 인사하고 무대에서 퇴장하려는 찰나, 브이의 정신은 환호성을 지르며 종이를 들어 보인다. 그는 퇴장을 준비하는 관객들을 향해 소리친다.


위대한 관객들이여! 우리를 꼬나보는 저 빌어먹을 꼰대들을 엿 먹일 방법이 여기에 있소! 우리가 함께하면 그 어떤 것도 감히 나서지 못할 것이오! 잠깐만 시간을 내어 여길 봐주시오! 당신들의 귀중한 시간을 헛되이 낭비하지 않을 터이니 단 433초만 허락해주시길 간청하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이걸

그 순간, 첫 번째로 퇴장하는 관객이 열어버린 문 사이로 거센 바람이 불어온다. 브이의 정신이 관객들을 향해 집중하는 사이, 엄지와 검지 사이의 압력보다 약간 강했던 바람은 종이를 훔쳐서 극장의 계단 한가운데 떨어뜨린다. 극장에서 퇴장을 서두르는 관객들의 구두에 짓밟힌 종이는 흙과 먼지가 묻고 너덜너덜해지는 가운데 서서히 찢어진다. 마침내 마지막 관객이 퇴장을 시도하는 찰나, 종이는 갈기갈기 찢어진 채 본래 적힌 글씨의 형체마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한다. 브이의 정신은 멍하니 서서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더니, 가면을 벗으며 입을 연다.


저기 위대한 힘이 있소. 타락한 루시퍼와 압제적인 리바이어던과 탐욕스런 마몬을 찢어발길 수 있는 유일하고도 위대한 힘 말이오. 그야말로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힘이로군. 그 누구도 제어할 수 없는, 어쩌면 그들 자신까지도 통제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힘이 우리 눈앞에 있었소.”


극은 완전하게 막을 내린다. 오직 적막이 가득한 이곳에서 들리는 것이라곤 지정석을 떠나 계단 밑을 내려가는 발자국 소리뿐이다. 아무도 없는 극장 안에서는 적막만이 감돈다. 브이의 정신은 극장 바닥에 흩어진 갈기갈기 찢어진 종이를 가면에 쓸어 담는다. 그러고는 다시 가면을 착용하며 극장을 나선다.

 

피넛 갤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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