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차 <창작콘테스트> 단편소설 공모 - 마약만두

by 몽치 posted Apr 1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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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만두

 

눈을 뜨면 11시다. 새벽에 잠들었기에 더 자고 싶어도 저절로 눈이 떠진다. 잠도 사치라고 할 수 있는 나는 속칭 백수다. 어머니는 부엌에서 뭔가를 끓이고 있다. 냄새로 봐서는 김치찌개로 보인다. 바로 일어나기에 눈이 침침하다는 핑계를 속으로 대며 1시간 정도 미적거리다 슬며시 기어나온다.

밥 먹어라” “어머니와의 짧은 대화가 하루종일 하는 말의 전부라고도 할 수 있다. 오후에도 TV를 보다가 뭔가 해가 지려는 창밖을 보며 등이 떠밀려지듯 밖으로 나온다. 목적지는 없다. 심부름으로 파를 사러 나왔다는 생각만이 굳이 만들어 낸 이유다. 야채를 파는 시장통은 도로를 건너 골목안으로 들어가야 했기에 건널목에서 기다린다. 파란불로 바뀌기까지의 시간은 바깥구경을 하는 찰나이다. 건너편을 바라보는 척 하며 주변을 보면 다양한 사람들이 옆에 서 있다. 폐지 줍다가 나온 것 같은 행색도 있고 알 수 없는 옷을 입은 사람, 목욕탕을 갔다 오는 사람 등 이 곳이 절대 부촌은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그 와중에 항상 등 뒤에서부터 업습해오는 하얀 연기와 향기가 있다. 익숙해질 때도 되었건만 항상 신경이 쓰인다. 그것은 건널목에 위치한 만두집이다. 사람들에게 어서 사가라는 듯 방금 연 찜통에서는 하얀 안개가 모락거리며 흩날린다. 가끔씩 누군가 사는 것을 보았으나 한번도 사 본 적은 없다. 왜냐고? 비싸다. 왕만두 12000, 35000. 돈 한푼 없는 나로선 그런 거금은 없다. 시장통의 국수다발을 들고는 어느 가게가 싼지 비교하고 1780원에 산 국수에 만족하는 입장에 무슨 그런 호강을 할 수 있나.

  불이 바뀌어 길 건너 시장통을 누비면서도 만두집에 대한 생각이 자꾸 난다. 처음에는 별로 신경 쓸 것도 없었고 신경 쓸 이유도 없었다. 그러나 1년이 지나도록 비슷한 생활속에서 계속 마주치는 만두집은 뭔가 수상했다. 우선 만두집의 위치가 아주 기묘하다. 큰 빌딩 사이의 좁은 틈새에 끼어 지붕만 겨우 받쳐놓고 난잡한 찜기류를 갖춘 채 모양새만 만두집이다. 더구나 빌딩 사이의 뒤쪽은 공터라서 뚫려 있다. 만두속을 채울 재료를 납품받으려면 차를 주차하기 편해서 그런가 하다가도 팔리는 만두 수를 보면 더욱 의문이다. 아무리 난전 장사라고 하지만 재료값이라고 뽑으려면 간간이 팔려야 하는데 적어도 내가 본 손님은 1~2명이었다.

  집에 와서도 할 일 없이 뒹굴거리다 보면 가끔씩 만두집 생각이 떠오른다. 별다른 오락거리가 없는 터에 잡생각을 일부러 하는 것일까. 그런 것치곤 만두집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날씨도 따뜻해진 참에 아파트 뒤 복지회관 근처의 직업전문학교를 알아보러 간다는 핑계를 되내이며 집을 나선다. 때마침 건널목 은행 앞 주차장에 의자가 있어 거기에 대충 앉았다. 밤이 되면 유흥업소로 손님을 데려가려는 속칭 삐끼들이 잠시 앉아 있는 의자다. 뭐 지금은 아직 해가 안 저물었으니까 내가 앉아도 상관 없을 터이다. 게다가 행색도 자다 일어난 꼴에 어정쩡한 나이대의 얼굴까지 남이 보면 삐끼가 웬일로 빨리 일어나서 담배피러 나온 것으로 볼 것이다. 의자에 앉으면 건널목을 포함해서 사거리가 한눈에 들어온다. 역시 삐끼가 선정한 자리답다. 그 프로의식에 약간의 존경심과 고마움이 느껴진다. 예의 그 만두집도 보인다. 30분정도 지났을까, 유흥업소에 출근하는 것 같은 아가씨가 만두를 산다. 만두가 팔리는 것은 아주 간혹 볼 수 있기에 이상하게 눈이 간다. 아가씨의 맨다리보다 만두봉지를 뚫어져라 보는 나도 미친놈이 분명하다. 두둑하게 봉지가 차 오른 것을 보면 1~2개 아니다. 저렇게 많이 사서 뭘하려는 걸까? 가게 사람들과 나눠 먹으려는 건가? 허나 갑자기 위화감이 든다. 만두봉지를 자세히 보면 수증기가 없다. , 방금 쪄낸 만두가 아니라 찌기 전의 생만두를 산 것이다. 더욱 이상하다. 유흥업소에서 만두를 쪄 먹을 조리기구가 있을리도 없고 몰려드는 손님에 과일안주를 깎기에 바쁜 것은 학창시절 돈을 벌겠답시고 나이트에서 알바를 해 보았기에 잘 알고 있다.

아무 할 일 없는 것이 장점인 나는 터덜터덜 아가씨의 뒤를 따라간다. 거리도 멀고 별 관심 없는 듯 걷고 있기에 누가 의심은 안 할 것이다. 아니, 애초에 그냥 동네사람이니까 의심을 받을 일은 없다. 아가씨는 불과 20미터도 안 떨어진 빌딩형 유흥업소로 들어갔다. 빌딩 전층이 룸이라 엘리베이터가 열리면 층마다 바로 가게 입구가 나오는지라 나같은 놈이 더 쫓아갈 수는 없다. 그냥 서성거리다 바보 같아져서 동네 한바퀴를 돈다. 중앙의 육거리가 거대하게 발달한 이 동네에서 내가 사는 사거리는 외곽이다. 사실 겉보기에는 네온사인이 번쩍이지만 대부분은 유흥업소인 여기는 나같은 놈이 숨기에 좋을지 모른다. 서로에게 관심도 없고 지나쳐가는 사람들의 무리가 오히려 기분을 좋게 한다. 의미 없는 산책을 마치고 다시 아가씨가 들어간 빌딩을 마주친다. 이미 어두워진 도로에는 빌딩 구석마다 쓰레기통이 있어 이 동네의 숨겨진 면을 슬쩍 드러내 주는 듯하다. 빌딩에 들어갈 수 없는지라 한참을 쳐다보다 쓰레기통에 눈이 간다. 보통은 행인들이 버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자물쇠가 있지만 오늘은 자물쇠가 없다. 누가 부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약간 열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제때에 안 비워서 넘치는 바람에 안 닫혀 있는 것 같다. 슬쩍 쓰레기통을 열어본다. 자연스럽게 열었으나 순간 드는 생각이 웬 미친 놈이 길거리에서 쓰레기통을 열어 보는 것을 누가 보지 않을까 주변을 쓱 본다. 마치 안심이라도 시키듯이 노래방에 가려는 한무리의 사람들만이 지나간다. 어째서인지 만족스런 얼굴이 된 나는 쓰레기통 안을 본다. 대부분 유흥업소 안주를 만들고 남은 음식물 쓰레기이지만 뭔가 이질적인 것이 보인다. 작고 찢어진 비닐봉투가 자신을 주장하듯 구석에 삐죽 나와 있다. 더러워 보여 손을 대지 않았지만 자세히 보니 소주컵만한 크기였을 그 비닐봉투에는 약간의 만두속이 묻어 있다. 그것이 만두속인 것을 알아보는 나 자신이 신기했다. 딴에는 추리의 결과물이다. 안주에 고기나 파를 간 것을 쓸 일은 없고 누가 토한 것이라면 쓰레기통에 얌전히 토하지는 않는다. 12000원인 왕만두를 먹기는커녕 마트 시식코너의 냉동만두 구운 것도 허겁지겁 달려가 측은하게 보는 아줌마의 눈길속에 입에 쑤셔넣던 나다. 만두속에 든 그 고기와 파의 질감은 눈으로도 똑똑히 구별할 수 있다. 그렇다. 이것은 분명히 만두속이다. 그런데 왜 작은 비닐봉투가? 더 이상 쓰레기통을 연 채로 남들 눈에 띌 수는 없으므로 일단 집에 왔다.

 드라마를 보는 어머니를 두고 골방에 누워서 생각한다. 이상하다. 뭔가 이상하다. 생각을 떠 올려 보면 봉지 조각에 묻은 만두속은 생것이었다. 만일 쪄서 먹다가 버린 것이라면 봉지 조각에도 번들거리는 기름기가 묻어 있어야 한다. 만두속도 미끌거려 그렇게 봉지 조각에 달라붙지 않는다. 생각 같아서는 다시 일어나 쓰레기통의 만두속을 만져보고 오고 싶었으나 노곤한 몸은 일어나지 않는다. 머리와 몸이 따로 노는 채 잠이 든다.


  8월이 되었다. 본격적으로 더워져서 전기세가 비싸 에어컨을 못 트는 골방을 나와 주차장 의자에 앉아 있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나마 햇볕이 드는 곳을 피해 의자를 조금씩 옮겨야 하는 수고가 있었지만 건물과 건물 사이에 위치한 덕인지 주차장은 시원하다. 여전히 만두집도 보인다. 계속 관찰 결과 몇 가지를 알게 되었다. 손님은 동네 아줌마에서 술취한 아저씨도 있었지만 특정한 사람들은 같은 행동을 했다. 주로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것 같은 젊은 사람들, 특히 신참내기로 보이는 이들이 내가 정한 특정그룹이다. 이들은 항상 사는 것이 같다. 35000원인 만두 번들을 3묶음 산다. 이 때 만두는 찐 것이 아닌 생만두였다. 가장 이상한 것은 만두값은 15000원일터인데 50000원 지폐를 내고는 거스름돈을 주지도 받지도 않는다. 처음에는 전에 산 것의 외상을 갚거나 가게로 배달을 시키는 건가 했지만 그런 낌새는 없다. 밤이 되어 좀 시원해져 집에 오면 저녁을 먹고는 어머니와 드라마를 본다. 어머니가 잠이 들면 나는 골방에서 오래된 노트북을 켜고는 인터넷을 검색한다. 마약의 가격이다. 만두집을 계속 보면서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잘 팔리지도 않는 만두집을 굳이 빌딩 사이에 만들고는 특정그룹에게만 생만두를, 그것도 거스름돈도 주지 않고 팔다니 분명히 뭔가 있다. 이 동네에 오래 산 것은 아니지만 별로 합법적인 분위기인 곳은 아님도 알고 있다. 오랜 추리 끝에 나는 거기에 마약이란 것을 끼워 넣었다. 그럼으로써 퍼즐이 맞춰지는 기분이 들었다. 쓰레기통에서 본 만두속이 묻은 작은 비닐봉지도, 50000원을 내고 생만두를 사가는 이들도 그렇다면 설명이 된다.

그러나 인터넷에서는 아무리 찾아도 마약의 가격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뉴스 사이트에 몇억대 마약을 압수했다고는 나와도 작은 봉지에 얼마인지는 알 수 없었다. 대충 생각한다. 만두 3개에 3번들을 샀으니 총 9개이다. 하지만 만두 1개당 마약봉지 1개씩 넣으면 50000원을 냈으니 1개당 얼마인가? 계산기 없이 암산을 하려니 안 쓰던 머리가 아파온다. 얼마든 간에 그렇게 싸게 팔리는 없다. 그럼 마약봉지는 3? 1? 아마 그 정도일 것이다.

  결국 얼마 뒤 궁금증의 한계에 봉착한 나는 결단을 내렸다. 직접 사 보자. 몇 개월째 머리를 떠나지 않는 이 얼어죽을 만두에 대한 생각을 끝내기 위해서라도 필요했다. 어쩌면 여름해가 다 가도록 취직자리도 인생에 대한 계획도 세우지 않고 빈둥대는 스스로를 독려하기 위함이 아닐까 마음 속에서는 이상한 죄책감과 의지가 생긴다. 허나 무작정 살 수는 없다. 대부분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것 같은 차림의 사람들이 사 갔기에 나도 그렇게 보여야 한다. 양복... 양복이 있었던가. 요즘 사람들은 슈트라고 부르는 모양이지만 머릿속까지 구닥다리라 세상에 적응 못하는 나에겐 양복이라는 단어가 알맞다. 옷장을 뒤져 양복 비슷한 것을 찾아낸다. 직장에서 일할 때 신었던 구두도 꺼냈다. 어머니는 부스스 일어나서 옷을 입는 날 쳐다보고 묻는다.

아가, 어디 가니? 양복은 왜 꺼내 입었어?” 친구 장례식에 가, 오늘은 늦을지도 몰라

내 나이대가 되면 친구들의 부모님이 작고하시곤 했는지라 그럴싸한 거짓말이다. 어머니는 알겠다는 듯이 다시 누워서 잠이 든다. 저녁 8시의 어정쩡한 시간이지만 이 거리는 지금이 새벽이다. 네온사인 켜지고 각종 가게는 문을 연다. 만두집도 당연히 하고 있다. 엘리베이터를 내려오면서 주머니속의 50000원 지폐를 만지작거린다. 비상금으로 꽁쳐 둔 돈이지만 지금 안 쓰면 언제 쓰랴.

  만두집으로 가면서 자연스럽게 보이려 애를 쓴다. 머리도 올백으로 넘겨서 누가 보면 유흥업소 홀 관리인 정도로 봐 줄지도 모른다. 만두가게 아저씨는 여전히 무표정하다. 일부러 심드렁하게 말을 꺼낸다.

만두 좀 주세요아저씨는 내 말에 답한다. “안 찐 걸로 드릴까요?”

옳거니, 뭔가 잘 되어가는 기분이다. 날 보고 항상 마약만두를 사러 오던 이들로 생각하는 걸까나. 더 자연스럽게 말을 붙여본다.

, 1개 얼마죠? ” “12000원인데 35000원이요그럼 35000원으로 3묶음이요” “예에, 알겠습니다

일부러 담배를 찾는 척하며 윗주머니를 뒤적이며 먼곳을 본다. 아저씨는 하연 연기가 펄펄나는 찐 만두가 아닌 뒤쪽 채반에 있는 생만두를 담는다. 그런데 아저씨가 잠시 멈칫하더니 또 다른 채반에 있던 생만두도 섞어서 담는다. 약간 불안함을 느끼며 나는 50000원 지폐를 내밀었다.

여기요아저씨는 지폐를 받아들더니 날 멀뚱히 쳐다본다. 아차,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황급히 당황하지 않은 척 말을 다시 꺼낸다. 거스름돈은 됐어요아저씨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안으로 들어간다.

잘 통한걸까. 술취한 사람들이 팁을 주듯이 거스름돈을 안 받는 경우도 있었기에 익숙했을 수도 있다. 만두를 사서 태연히 빌딩을 지나 골목길로 들어선다. 봉지를 열어보았으나 겉으로 봐서는 그냥 만두다. 12000원이나 해서 감히 못 사먹던 만두가 9개나 있다. 골목에서 만두를 뜯어보기엔 누가 볼까봐 한바퀴 빙 돌아서 집에 왔다. 문 여는 소리에 어머니가 일어나서 물어본다.

상갓집 간다더니 빨리 왔어? 밤 샌다더니?”그냥 돈만 주고 왔어. 사람들 많아서 앉지도 못하겠던걸

그래...”

, 아들이 어느 상갓집을 갔다 왔던 빨리 왔던 뭐가 중요하겠는가.

오다가 만두 떨이로 팔길래 샀어엄마 고기 먹으면 소화 잘 안 되는 것 알면서 왜 샀노...냉장고 넣어 놔라

...알았어

좁아터진 식탁에 만두를 내려놓고 양복을 벗고는 대충 씻는다. 씻는 동안에 만두가 도망가지는 않겠지. 이제 진실을 알아볼 시간이다. 약간 냉동한 것처럼 딱딱함도 있는 만두를 1개씩 손으로 갈라본다. 안에 봉지가 있다면 나올 것이다. 3개째 갈라도 안에는 팥만 있다. 4개째를 가르니 고기와 파를 다진 소가 보인다. 약간 흥분되었다. 쓰레기통에서 본 만두속과 비슷하다. 그러나 6개째에도 봉지는 보이지 않는다. 나머지 3개를 쳐다보다가 7개째를 갈라본다.

뭐야 이거...” 7,8,9개째의 만두는 고기와 파를 다진 소가 아닌 야채를 갈아넣은 소이다. 봉지도 안 보인다. 생각한다. 생각만이 몰아친다. 만두집 아저씨가 준 3묶음은 각기 다른 종류의 만두였다. 3, 고기와 파 3, 야채 3개다. 정상적인 만두 구입이었으면 당연했겠지. 그러나 만두를 살 때 아저씨가 잠시 멈칫하고는 다른 채반의 만두도 담은 것을 떠올리면 마약봉지가 들어있었어야 할 고기와 파 만두 3개를 보통 만두로 담은 걸까. 갑자기 배가 급격히 고프다. 너무 머리를 쓴 걸까, 저녁도 안 먹고 나갔다 와서일까. 기운이 빠진 나는 반으로 갈라진 만두들을 봉지에 대충 넣고 냉동고에 쑤셔 박는다.

  다음날 얼려둔 반쪽짜리 만두로 이상한 만둣국을 끓여먹으면서도 생각이 끊이질 않는다. 내가 쓸데없는 말을 안 꺼냈다면? 아니, 그 이전에 이미 만두집 아저씨는 내 얼굴을 알고 있지 않나? 뭔가의 다른 사인이 있는 건가?

어머니는 반쪽 난 팥 만두를 전자렌지에 데워 먹으면서 묻는다.

왜 이걸 다 갈라놓았노? ...” 안에 뭐 들었는지 구분이 안되서 그랬어, 그냥 드세요

대충 대답하는 나는 또 사러 가야 하는지 고민에 싸인다.


그러나 장마가 시작되었다. 보름 내내 그치다 오다 하던 비는 도로를 적셨고 발이 젖는 것을 싫어하는 나로선 더 이상 비상금도 없다는 이유까지 겹쳐 나가질 않았다. 9월이 되어버린 날 햇빛은 여전히 안 났지만 바깥이 마른 것 같아 천천히 나가보았다. 오랜만에 나간 건널목 사거리는 그대로였지만 만두집은 얄궂은 판자로 덮힌 채였다. 낮에 나와서 가끔 과일을 파는 난전의 아줌마에게 물었다.

저 만두집 망했나요?” 며칠전부터 장사 안하던데...? 더운데 비까지 오면 만두 누가 사먹어

...”

9월도 중순에 들 무렵, 도로는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 조금씩 추워지는 날씨 속에 빌딩 1층에는 대형 등산복 매장이 줄지어 들어섰다. 여전히 2층부터는 유흥업소였지만 1층의 가게들이 바뀜에 따라 도로 분위기도 조금 달라진 듯 하다. 어머니와 장을 보러 가다가 지하철역 앞 난전에서 싸구려 옷을 팔고 있길래 멈춰 선다. 어머니는 난전에서 좋은 옷을 잘 가려내는 재주가 있다. 어머니는 옷 파는 아줌마와 수다를 떨면서 말한다. 그런데 멀뚱멀뚱 기다리던 나의 귀에 어떤 말이 순간 솔깃하게 파고든다.

아유~ 이 앞에 매장들 가면 전부 비싼데다가 100만원은 사야 한다던데~”

 이게 무슨 소리일까. 순간 머릿속에 휘몰아치듯 생각의 폭풍이 날 멍하게 한다. 난전 옷을 산 어머니와 집으로 오는 도로에 줄지어 선 등산복 매장들을 보면서 점점 의아하다. 그러고 보니 문을 연 지 한 달이 다 되어가건만 대형 등산복 매장에는 손님이 보이지 않는다. 개중에는 고급 여성복을 같이 파는 곳도 있지만 들락거리는 사람은 없다. 빌딩 1층이면 가게세도 비쌀 텐데 어떻게 유지하는 것인지 의문이다. 옷장사가 마진이 많이 남는다고 해도 고급 등산복을 사는 사람도 적고 게다가 요즘엔 아무도 등산복을 찾지 않는다. 이미 유행이 지난 것이다. 그런데 안 팔릴 것을 알고도 새로 매장을 열었다니? 그것도 도로에 줄지어서? 보통 도시 외곽에서 볼 수 있는 특정 브랜드 상설할인매장도 아니다. 장사가 잘 되려면 대형 고깃집을 하던가 사람이 항상 가득 찬 브랜드 커피숍 등 다른 가게도 있을 텐데 어째서?

옷 파는 아줌마의 말이 자꾸 거슬린다. 100만원치를 사야 한다니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나는 만두집이 망한 이후에 가라 앉았던 흥분이 다시 올라옴을 느꼈다. 이후로 새로운 일과가 시작되었다. 산책 하듯이 주차장 의자에 앉아서 대형 등산복 매장을 바라본다. 만두집은 1개였지만 지금 관찰해야 할 매장은 10개 정도이다. 그래도 삐끼의 의자 위치 선정은 혀를 내두를 정도로 훌륭하였기에 양쪽 도로의 매장이 전부 보였다. 밤에는 그 의자의 원래 주인인 삐끼가 왔기에 그 전에 일어나야 했지만 낮 동안 관찰해서 얻은 결과는 있었다. 일단 모든 매장에 손님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망해버린 만두집과 같은 방향에 있는 등산복 매장들은 세일도 안하고 손님도 없는데 아주 가끔씩 젊은 사람 몇 명이 양손에 구입한 등산복을 잔뜩 들고 나온다. 옷 입은 것으로 보아서는 전혀 등산복을 입을 일도 없고 그렇게 많이 살 필요도 없을텐데 무슨 이유일까. 반대로 길 건너의 등산복 매장들은 세일도 하고 동네 사람들도 드나드는 것을 이따금씩 볼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수상함을 느끼고 있어도 나 같은 백수가 100만원이 어디 있겠나. 만두집에서 50000원을 쓰는 것도 결단을 했어야 하는 신세인데 100만원치 옷을 사기엔 무리다. 하지만 미련을 떨치지 못한 나는 매장 옆 쓰레기통을 오밤중에 둘러보았다. 주로 옷을 납품하고 나온 종이박스와 비닐, 탭 등이다. 뒤져보면서도 내가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일 나 자신이 매장 주인이라도 옷 안에 꿰매 넣었지 쓰레기통에 흔적을 남길 리는 없다. 그렇다면 옷을 사 간 사람이 마약봉지를 꺼내고 남은 옷은 어디에 버렸을까.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골목 구석마다 있는 헌옷 수거함이었다. 중심 육거리 뒤쪽으로는 난잡하게 지어진 주택들이 많아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와 함께 마치 포인트를 주듯이 헌옷 수거함들이 페인트가 벗겨진 채 서 있다. 거기에 넣지 말라고 써 붙여 놓아도 동네사람들은 베개에서 신발까지 필요 없는 것들을 쑤셔 넣는다. 골목마다 몇 군데 둘러보니 헌옷 수거함은 모두 가득 차 있었으나 비어져 나오는 함 입구에는 등산복이 아닌 옷의 끄뜨머리만 보인다. 팔을 넣어 안에 있는 것을 끄집어 내가며 확인하고 싶어도 얼마 전에 읽은 인터넷 뉴스에는 헌옷 수거함을 뒤지다 경찰에 잡혀간 이야기가 있어 그만 두었다. 집에 와서 곰곰이 생각하니 애초에 등산복에 마약 봉지를 넣었다면 만두에 비해 가격도 50000원에서 100만원이니 크기도 클 것이다. 봉지를 꺼내고 찢어진 봉지조각들을 등산복에 다시 넣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 따로 버렸을 것이다. 매장에 들러 옷을 사가는 이들이 몇 명씩인 것을 보면 조직적으로 움직일지도 모른다. 봉지를 버리는 이가 따로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들이 자꾸 머릿속을 채우면서 이상한 고양감이 들었다. 그러나 그게 다였다.


  겨울이 오면서 더 이상 백수로 있을 수 없는 나로서는 다시 취직자리를 알아보아야 했고 여기저기 알아 보았지만 그럴싸한 것이 없었다. 다행히 전에 일하던 직장에서 복직을 할 수 있게 해주어서 새해부터는 일을 나가게 되었다. 직장에 딸린 기숙사로 가기 위해 짐을 싸느라 바쁜 나로선 등산복 매장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멀리 강원도의 지사로 가게 된 입장이라 추위를 대비해서 따뜻한 겨울 잠바 하나 살까 했어도 등산복 매장에 가서 100만원짜리 잠바를 살 돈은 당연히 없다. 결국 산 것은 3만원짜리 시장통 잠바였다.

  그로부터 일년이 지났다.

강원도 지사에서의 일도 바쁘고 집까지 오려면 시간도 많이 걸리는 탓에 일년동안 어머니를 보지도 못했다. 그러던 중 어머니에게서 안부전화가 왔다. 항상 하는 잘 지내냐는 말 외에 뭔가 알 수 없는 말이 있었다.

그래, 밥은 잘 먹고? 그 이번에 외가 초상에 갔더니 우리 동네에 5촌 조카가 와 있었는데 마약을 해서 잡혀갔다더라... 아유 무서워라...” 뭔 말이고? 5촌 조카라니?”

아니, 전에 누나 결혼식 할 때 봤을 텐데, 니는 모를라나... 그 하여튼 외증조할아버지 닮아서 깡패도 했다던데 듣기로 여기 왔던 모양이더라”  .....”

 생각해 보면 외갓집이 키도 크고 골격이 좋은 것은 사실이나 그런 일이 있었다니, 그런데 마약이라니?

1년을 잊고 지냈던 기억이 다시 휘몰아쳤다. 역시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던 건가? 아니면 다른 뭔가가 있는 건가? 지쳐있던 나에게 다시 이상한 고양감이 든다. 하지만 집에 올 수 있었던 것은 연말이 지나서 다음 봄을 넘긴 뒤였다. 1년반 만에 집에 온 나를 어머니는 더 늙어진 얼굴로 맞았다.

  오랜만에 아들이 왔다고 싸구려 갈비살이라도 구워낸 밥상을 물리고는 편의점을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도로 양쪽에 늘어섰던 등산복 매장은 절반이 망했는지 가게 내부수리가 한창이다. 편의점에서 담배를 사고는 길을 건너려는데 항상 멍하니 앉아있던 주차장의 의자가 보였다. 그래도 그 의자는 그대로였던 건가. 일부러 주차장으로 돌아서 그 의자로 가 보았다. 방금 산 담배를 꺼내어 입에 물고는 의자에 앉아 피우려고 하는데 의자가 반대로 돌아가 있다. 항상 지하철 역이 바라보이는 방향으로 사거리를 감시하듯 놓여져 있었는데 지금은 사거리 반대쪽 외곽쪽을 보고 놓여져 있다. 뭐 어떤가, 아무래도 좋으니 앉아서 담배를 피며 느긋하게 주변을 본다. 문득 앞에 보이는 길 중간에 건물이 철거되고 알 수 없는 고급 주택처럼 생긴 것이 새로 지어져 있다. 게다가 넓은 뜰에는 부처님 오신 날을 기념하는 커다란 등이 줄지어 매달려 있다.

무슨 절을 도로 한복판에 지어 놓은 거야...”

집에 돌아간 나는 어머니와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서 내일 다시 돌아갈 짐을 정리했다. 그런데 어머니와 대화중 아까 본 절 이야기가 나왔다.

오래만에 와서 보니까 가게도 좀 바뀌고 무슨 절도 있던데요?”

? ...그 병원 가는 길 옆에 있는 거? 그거 나도 절인줄 몰랐는데 무슨 가정집도 아닌 것이 벽을 높게 지어 놓고 등도 달았더라

언제 지은거야? 전에 없었는데?”

얼마 안 됐어, 도로 끝에 아파트 지을 때 같이 짓기 시작했으니까 몇 달 안 되었지 아마...”

 그런가 보다 하면서 일찍 잔 나는 아침에 역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나왔다. 버스를 타려면 중심 육거리와 반대 방향인 외곽으로 걸어야 한다. 걷다가 어제 본 이상한 절을 지나친다. 문득 살펴보니 무슨 절이 간판도 없고 안은 불이 꺼진 것처럼 조용하다. 분명히 부처님 오신 날 등은 달려 있으나 이맘때면 신도들이 들락거리며 모여있어야 할 터인데 알 수가 없다. 새로 심은 잔디만이 넓은 뜰을 채우고 있다.

뭐야...”

  기차시간을 맞추기 위해 다급히 버스를 탄다. 강원도로 가는 기차속에서 자다가 깨다가 하다가 의자가 불편해서 뒤척거린다. 이 놈의 의자는 불편하기도 하거니와 담배 생각도 간절하다. 기차 안에서 담배를 필 곳은 없으니 창밖을 보다가 주차장 의자에 앉아 피던 담배 생각이 갑자기 난다. 간만에 느긋하게 핀 담배였다. 약간 미소를 띄우다가 갑자기 나는 뒤통수를 맞은 듯 흥분했다. 그거였다! 이럴수가! 생각할수록 내가 바보였다.


  주차장 의자가 돌려져 있던 것을 보았을 때부터 눈치 챘어야 했다. 2년전부터 날 괴롭히던 퍼즐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퍼즐을 관통하는 열쇠는 마약봉지. 생각해 보면 마약만두를 팔던 만두집도 100만원짜리 등산복 매장도 주차장 의자에서 잘 보이는 곳에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새로 지은 신도 없는 절이 있고 주차장 의자가 그 방향을 보고 있다니!

  나는 흥분하여 기차 의자에서 앉아 있질 못할 정도였다. 추리의 퍼즐이 맞추어졌다. 만두집은 주차장 의자에 앉은 삐끼가 감시하는 상태에서 작은 마약봉지를 만두에 넣어 50000원에 팔았을 것이다. 100만원짜리 등산복 매장들은 역시 주차장 의자에 앉은 삐끼가 감시하고 있었지만 거리가 멀어서 한번에 다 안 보이므로 길 건너의 정상적 등산복 매장들에 위치한 패거리가 보내는 신호에 따라 입장을 시켰을 것이다. 사들고 나온 대량의 등산복은 마약봉지들은 빼내고 길 건너 정상적 등산복 매장에서 세일품으로 팔았겠지.

  게다가 지금은 절 같이 보이는 것까지 세워서 이젠 그 안에서 마약을 만들고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만두 속에 넣을 정도로 작은 규모였지만 점점 확장되어 등산복 매장 10개를 동원해가며 세력을 키우고 급기야 생산 아지트까지...

안절부절하며 다리를 연신 떨다가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경찰에 신고해야 하나? 신고한다고 해서 증거를 찾을 수 있을까? 이미 그 동네 사람들은 거의 연관되어 있는건가? 불안감에 오히려 피로는 느껴지지 않는다.

쉽게 생각을 정리하지 못한 채 회사 숙소로 돌아와 누웠다. 내일도 출근해야 한다는 것에 양복을 옷걸이에 걸쳐 놓으며 문득 떠올랐다. 만일 내가 그 때 마약만두를 사는 것에 성공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백수였던 내가 신고했을까? 마약봉지를 꺼내 먹고 가담했을까? 이미 지나간 일임에도 씁슬한 기분이 든다. 혹시 어머니의 외가 5촌 조카는 모르고 마약만두를 사먹은 것일까? 아니면 주차장 의자의 삐끼중 한사람이었을까? 경찰 추적을 피하기 위해 내세운 바지사장일까? 이제는 생각해 보았자 의미는 없다. 허나 한가지는 분명하다.


그 날 마약만두를 먹었다면 지금의 평범한 나는 없을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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