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차 <창작 콘테스트> 단편소설 공모 - 이유의 이유

by 유지 posted May 1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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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의 이유

 


 

<리즌>은 혼자 남겨진 아이들을 위한 지상 최대의 낙원이었다. 간단히 말해 가출 소년 소녀들을 받아 주는 곳.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하수구 썩는 냄새와 신발 타는 냄새, 그리고 프라이팬 맛이 나는 곳. 얼마 전 학교를 자퇴한 민서 역시 <리즌>에 살던 사람 중 한명이었다. 그녀는 가정 학대를 견디다 못해 가출을 했고, 갈 곳이 없어 이곳저곳을 전전하던 끝에 <리즌>을 찾았다. <리즌>의 선배였던 수호의 말에 따르면, 민서는 리즌에서 약 1년 정도 살다가 자살을 했다고 한다. 이렇게 사는 것보다는 죽는 게 훨씬 더 나을 것 같다고 했다나 뭐래나.

 

이유는 지상 최대의 낙원에 10번째로 들어온 미혼모였다. 그녀의 나이 18살에 맞지 않는 타이틀이었지만, 이유는 두려울 것이 없었다. 배 속에 자리 잡은 아이는 날이 다르게 커가고 있었고, 악마가 도사리고 있는 집에는 돌아갈 수가 없었다. 학교에 대한 미련도 없었기에 떠나는 것은 쉬웠다. 이유는 <리즌>에서 자고, 먹고, 싸며 배속을 제 집처럼 편히 드러누운 커다란 기생충을 먹여 살렸다.

 

<리즌>은 지상 최대의 낙원이었지만, 그에 반해 아주 크나 큰 단점 하나가 존재했다. 바로, 직접 돈을 벌어야한다는 것이었다. <리즌>에서는 잠자리만 제공할 분 그 이상의 무엇도 제공하지 않았다. 얼마 전까지 몸담고 있던 교회와는 전혀 딴판이었다. 서울 외곽에 위치한 교회는 숙식과 잠자리 그리고 정신까지 책임져주었다. 돈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토록 편안하고 안정된 그 곳을 벗어나게 된 건, 신의 탓이 컸다. 이유는 신을 믿지 않았다.

 

교회에서는 매일 아침마다 일어나 기도를 하고, 저녁마다 예배를 드리고, 주말에도 빠지지 않고 예배에 참가해야했다. 숱 많은 눈썹에 매부리코를 가진 목사님은 날마다 이유를 붙잡고는 불쌍한 중생을 구원해달라고 빌었다. 그때서야 이유는 자신이 목사님이 그토록 외치던 불쌍한 존재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그가 자신을 천국에 보내려 한다는 것도, 그들이 말하던 구원 받아야할 존재라는 것도.

 

이유는 천국에 가고 싶지 않았다. 현재가 지옥인데, 죽고 나서 천국에 가면 뭐하겠는가? 그건 다 쓸데없는 허상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교회를 나왔다. 모두가 잠든 밤, 남 몰래 가방을 싸서 얼마 되지 않은 돈을 들고 교회를 빠져나왔다.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어차피 혼자 들어왔으니 혼자 떠나는 것도 쉬웠다.

 

그 이후는 뻔했다. 이유는 길거리를 전전하던 끝에 지상 최대의 낙원인 <리즌>에 들어오게 되었다. 리즌에 들어오게 된 것은 수호의 탓이 컸다. 그는 19살 오빠로 <리즌>2번째로 들어왔던 고인돌 선배였다.

 

수호를 알게 된 건, 교회를 나와 길거리를 헤매고 있을 때쯤이었다. 배가 고파 납작 만두처럼 눌린 배를 붙잡고 있던 이유에게 수호가 먼저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갈 곳이 없다고 말하자, <리즌>으로 데려온 것이었다. 그는 이유의 구원이자 천국이었다. 그토록 신을 찾던 교회도 배속에 자리한 기생충도 이유를 구원하지 못했지만, 그는 그 것을 해냈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수호가 이유에게 가장 좋은 것을 선물한 셈이었다.

 

<리즌>은 방 2칸짜리 연립주택이었다. 전에 살던 주인이 좋은 마음으로 열어두었다고 했다. 수호는 <리즌>의 모든 것을 알려주었다. 매일 밤 10시에 잠자리에 들어야한다는 것도, 돈은 직접 벌어 와야 한다는 것도, 그리고 여기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관심을 갖지 말라는 것도.

 

기생충을 먹여 살리기 위해선 돈이 필요했지만, 돈을 벌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알바 구함, 직원 구함이라고 적혀있는 가게들은 모두 튼튼한 성인들을 선호했다. 배가 불룩하고, 18살이라는 애매한 나이를 받아주는 곳은 아무데도 없었다. 그래서 손을 뻗은 곳이 더러운 뒷골목에 위치한 <러브>라는 술집이었다. 미성년자 출입 금지라 적혀있는 그곳은 특이하게도 미성년자를 채용했다. 나이가 어릴수록,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다는 게 그 이유였다.

 

이유가 <러브>를 찾게 된 건, 수호의 탓이 컸다. 수호는 이유를 자신의 친동생처럼 아꼈다. 돈을 벌어다 주던 것은 물론 매일 밤마다 이유를 안고 잠이 들었다. 게다가 자신이 아이의 아빠가 되어주겠다며 쓸데없는 허세를 부리기까지 했다. 고작 1살 차이였음에도, 다 큰 어른처럼 구는 수호가 웃기긴 했지만 이유는 그의 호의를 순순히 받아들였다. 그를 안을 때마다, 따뜻한 사랑이 느껴진 이유였다. , 수호에게선 단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던 그리운 아빠의 품 냄새도 났다. 만약, 제게 남들 같은 아빠가 있었다면 그와 같지 않을까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수호는 이유의 아빠이자 친구였고, 남자친구이자 애인이었다. 바닥에 버려진 쓰레기처럼 이리저리로 놔 뒹굴던 이유에겐 절대 없어서 안 될 존재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유는 어떻게든 도움이 되고 싶었다. 그가 하루에 5만원씩 벌어오는 돈으로는 생계를 꾸려갈 수가 없었을 뿐더러 그에게 더 큰 짐만 쥐어주는 꼴 밖에는 되지 않았다. 배속의 기생충이 남다르게 커가고 있는 와중이니 그에 비례한 돈이 필요했다.

 

그래서 업소를 나갔다. 임산부인 미성년자를 받아주는 곳이 없어서 힘겹게 내린 결정이었다. 수호는 아직까지도 그 사실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 이유는 어떻게든 그에게 말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만약, 자신이 그런 곳에서 일한다는 걸 수호가 알게 된다면 분명 불같이 화를 낼게 뻔했다.

 

"이유의 이유야."

 

수호는 이유를 늘 그렇게 불렀다. 형태가 불분명한 사랑을 표현하는 자신만의 방식이라고 했다. 오늘도 어디선가 5만원을 벌어온 수호가 세상의 온갖 냄새가 나는 몸으로 이유를 품었다. 바깥에서 오래 있다가 온 건지 몸이 찼고, 그의 목덜미에선 정체를 알 수없는 기괴한 냄새가 났다. 축축한 그것은 땀 냄새 같기도 했고, 눈앞에 드리운 절망의 냄새 같기도 했다. 코끝까지 차오른 역한 냄새를 애써 모른 척 한 채 이유는 그를 더 힘껏 끌어안았다.

 

수호는 스킨십을 망설이지 않는 남자 중 하나였다. 지금으로부터 3달 전, 싸늘한 정적이 내려앉던 <리즌>에서 이유를 품고 난 뒤, 그는 꼭 이유의 남편이라도 되는 것처럼 굴었다. 매일 아침 마다 뽀뽀를 했고, 일이 끝나고 리즌에 돌아오면 당연하다는 듯이 그녀를 품었다. 키스와 그 이상의 것까지 스스럼이 없었지만, 이유는 거부하지 않았다. 수호는 구원자였다. 구원자를 거부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처음 임신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크게 놀라지 않았다. 이미 그럴거라는 걸 예상했던 이유였다. 생리는 진즉에 끊긴지 오래였고, 껍데기만 남은 등과 다를 바 없던 납작한 배는 서서히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얼마 전까지 불면증에 시달리던 제가 잠도 늘었고, 식욕 역시 폭발했다. 보통은 입덧 때문에 못 먹는 경우도 많던데, 오히려 이유는 그 반대에 속했다. 식욕이 폭발해도 너무 폭발해서 문제였다. 공업용 청소기처럼 무지막지하게 음식을 빨아들이던 이유는 그토록 싫어하던 귤을 집어 먹고 나서야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임신 6주차 입니다, 축하드려요."

 

배 속에 커다란 기생충이 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제 장기들을 다 빨아먹고, 배속을 갉아먹다 하다못해 영혼까지 집어 삼킬 것 같았다. 산부인과의 의사는 무척이나 자랑스럽다는 듯이 그 사실을 밝혔다. 그 말을 하면 이유가 기뻐할 것이라고 예상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 예상은 어긋났다. 이유는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오히려 기분이 더럽다 못해, 머리 뚜껑이 열려 죽을 것만 같았다.

 

이유는 뱃속에 자리한 이것을 기생충이라 칭했다. 온 몸의 양분을 빨아먹다 못해 인생까지 갉아먹을 기생충. 어떻게든 지워버리기 위해서 계단을 두 칸씩 뛰어올라보고, 차디찬 바닥에 앉아 주먹으로 배를 내리쳐 봤지만, 기생충은 여전히 이유의 뱃속에 남아 그녀의 모든 것을 갉아먹었다. 끔찍했다. 머지않아, 배가 남산만 하게 부풀어 올라 자신을 덮쳐버릴 것만 같았다. 이유는 배를 손바닥으로 힘껏 내리치다가, 꿈틀거리는 기생충을 느끼곤 결국 체념하고 말았다. 이 기생충은 자신이 어떤 짓을 해도, 절대 죽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았으니까.

 

"나 임신했어."

 

그에게 임신 소식을 알린 건, 그로부터 꼬박 3일이 지난 후였다. 그동안 이유에게는 생각할 시간이라는 것이 필요했다. 아이의 아빠에게 진실을 말할 용기와 기생충을 지울 용기, 그리고 자살할 용기까지 필요했다. 그 모든 것들을 행하는데 꼬박 3일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결국, 마지막 자살시도가 실패로 돌아가면서 이유는 기생충을 만든 성충을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는 28살의 회사원이었다. 얼마 전, 회사에 취직했다며 연락이 끊겼던 걸 겨우겨우 찾아내서 만난 것이었다. 예전부터 교제를 이어왔던 그는 이유가 16살이던 시절, 채팅 앱에서 처음 만난 남자였다. 180cm키에 연예인 같은 얼굴 그리고 멋진 매너까지 갖추고 있다며 그는 자신을 그렇게 소개했다. 같이 있어줄 때마다 돈을 주겠다는 유혹도 함께였다. 설탕을 듬뿍 발라놓은 그의 유혹은 내내 굶주렸던 이유를 홀랑 넘어가게 만들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이유가 마주한 것은 잘생긴 남자도 키가 큰 매너남도 아니었다. 그저 길거리를 지나가다 볼 수 있는 한없이 평범하고 단순한 남자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만난 건, 돈이 필요해서였다. 그 당시만 해도 이유는 돈이 상태였다. 6살 터울 친 오빠가 빚을 진터라 급하게 수습할 돈을 마련해야만 했다. 모든 것이 어긋난 남자는 유일하게 돈을 주겠다는 약속만은 지켰다. 돈을 벌기 위해서 이유는 몸과 웃음을 팔았다. 그에게서 돈을 받다보니 어느 순간부터 정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에게서 다른 사람에게서는 받을 수 없던 사랑을 받았다. 그 것을 사랑이라 표현하기엔 뭐했지만, 사랑에 굶주린 이유에게는 정도 사랑이었다. 그와 사이가 어긋나기 시작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에게서 지나친 애정을 요구했으니까.

 

"지워, 돈 줄 테니까."

 

그래서 일까. 지금 상황은 이유의 예상과 다를 바 없이 흘러갔다. 돈을 줄 테니 아이를 지우라는 말과 자신은 감당할 수 없으니 알아서 해결하라는 말까지. 그의 말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이유의 예상에 맞아들었다. 나 혼자 만든 아이냐며 화를 낼 법도 했지만, 이유는 담담하게 그 모든 현실을 받아들였다. 어차피, 그가 책임질 거라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이유 역시 그를 사랑하지 않았고,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는 100만원이라는 돈다발과 함께 자리를 떠났다. 그게 이유가 본 아이 아빠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 날 밤, 아이를 지워야겠다는 생각으로 들어간 <리즌>에서 이유는 뜻밖의 광경을 목격했다. 리즌에서 2년째 살고 있던 수경이 남산만한 배를 내놓은 채 담배를 뻑뻑 피워대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 이유는 그녀에게서 담배를 빼앗아들었고, 그 대가로 수경에게 뺨을 맞았다. 배가 아파온 것도 그 때쯤이었다. 바닥에 드러누워 고통스러워하는 이유를 바라보며 수경은 무척이나 혐오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더러운 것들이 쌍으로 꼴값을 떤다고.

 

이유는 더럽지 않았다. 불쌍하지도 않았고, 목사님이 그토록 애원하던 천국에 가고 싶지도 않았다. 자신은 구원해야할 중생도, 그녀가 말한 더러운 것들도 아니었다. 그저 평범한 여자일 뿐이었다. 단지 임신을 한 미성년자라는 꼬리표가 붙을 뿐이었지만.

 

제가 그렇다면 제 배속에 있는 아이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키우고 싶어졌다. 더럽지 않다는 걸, 그 누구보다도 잘 살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딱딱하게 뭉친 배가 겨우겨우 잠잠해지고 나서야 이유는 그토록 혐오했던 커다란 기생충을 내려다보았다. 제가 보고 있는걸 알기라도 한 건지, 기생충이 뱃속에서 꿈틀거렸다.

 

새벽이 다 되어서야 일을 끝마친 수호는 품에 붕어빵을 한 아름 안은 채 돌아왔다. 언젠가 이유가 먹고 싶다고 말했던 사거리 붕어빵이었다. 이유는 자리에 앉아 붕어빵 8개를 단숨에 먹어치웠다. 모두 다 배속의 기생충을 위한 것이었다. 수호가 먹다 남긴 붕어빵 반개 역시 기생충의 입으로 들어갔다. 빵빵한 배를 붙잡고 나란히 누워 곰팡이가 쓴 천장을 올려다보는데, 수호가 대뜸 물었다.

 

"여기가 좋아?"

"아니, 근데 집보다는 나으니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아무리 더럽고 추악한 곳이라도 집보다는 나았다. 만약, 지금까지도 집에서 살고 있었다면 진즉에 맞아죽었을지도 몰랐다. 아마 고등학생은 되지도 못했겠지.

 

이유의 엄마는 술과 폭행이 일상인 사람이었다. 술에 취한 날에는 밥을 먹으면서도 때렸고, 자고 있을 때면 머리채를 잡아 뜯었다. 조금이라도 힘든 일이 있다면 다 네 탓이라면서 이유를 폭행했다. 15살이 될 때까지 이유와 친 오빠는 이를 악물고 버텨냈다. 하루 종일 폭행에 시달리고 난 뒤 돌아온 것은 정체 모를 음식들이 마구잡이로 뒤섞인 비빔밥이었다. 꼭 토사물 같았던 그것은 엄마의 유일한 정이자, 마지막 남은 모성애였다.

 

비빔밥이 던져질 때마다 오빠와 이유는 그것을 허겁지겁 먹어치웠다. 하루 종일 굶은 탓에 무엇을 먹어도 맛있었다. 엄마는 그 모습을 보며 깔깔대며 웃었다. 하는 짓이 지 아비랑 똑같다는 말을 던지는 것도 잊지 않았다. 푹 푹 터지던 숨에선 짙은 알코올 냄새가 났다. 이유는 자신들의 모습이 꼭 근처 횟집에 묶여있던 동이 같다고 생각했다. 하루 종일 굶다가, 남은 음식을 던져주면 그것마저 좋다고 먹은 진돗개 동이.

 

"그러게, 집보다는 낫겠다. 나도 집보다는 여기가 나으니까."

 

수호가 피식 웃었다. 그 역시 이유와 다를 바 없었다. 아마 대부분의 아이들이 <리즌>을 찾은 이유도 그 때문이었을 것이었다. 매일 같이 불기둥이 치솟는 지옥보다는 쥐가 우글우글한 시궁창 같은 곳이 나을 테니까. 사람은 시궁창에 빠져도 살 수 있었다. 조금 더럽기만 할뿐 해가 되는 것은 없었다. 하지만, 지옥에 빠져서 살아남을 수는 없었다.

 

몇 년 전, 이유는 뉴스에서 가출을 했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간 아이가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온 것을 본적이 있었다. 아버지가 말을 안 들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이를 목 졸라 살해한 것이었다.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이 사건은 아이의 얼굴을 뉴스에 대문짝만하게 실리게 만들었고, 아이의 아빠를 언론의 물매를 맞게 만들었다.

 

그때 용의자는 모자와 마스크에 둘러 쌓여 얼굴을 알아볼 수 없었다. 수호는 그 사람이 자신의 아빠라고 소개했다. 아빠가 동생을 죽였고, 그 다음 타겟은 자신이 될까 무서워 도망쳐 나왔다고. 수호의 아빠는 12년형을 선고 받았다. 사람을 죽인 것치고는 터무니없는 대가였다. 우발적인 살인이며, 술에 만취한 상태라서 그렇게 되었다며 수호는 씁쓸하게 웃어보였다. 아빠가 나올 때 쯤 이면 수호는 고작 27살이었다. 수호는 그때까지는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겠다면서 웃음을 터트렸다.

 

눈을 떴을 땐, 늦은 오후였다. 아래가 빠진 것처럼 뻐근했고,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배는 덥수룩했다. 밤새 깊은 잠에 들지 못하고 뒤척이던 수호에게선 쓰레기 냄새가 났다. 아침이 되어도 마찬가지였다. 둘은 나란히 누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천장에 쓴 거뭇한 곰팡이가 꼭 사람의 눈 코 입처럼 보였다. 눈 사이는 멀었고 코는 짧았으며 입은 무지막지하게 컸다. 오른쪽으로 삐 뚫어진 입이 이유와 수호를 실컷 비웃고 있었다. 너희들이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아? 너희들은 더러운 잡종일 뿐이야.

 

"배고프다, 밥 먹을래?"

 

한참의 정적을 깨고 수호가 물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이유가 꼬르륵 거리는 배를 느끼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벌써 몇 시간 째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혼자가 아닌 몸으로 <리즌> 밖에 있는 화장실을 왔다 갔다 하느라, 진을 다 뺀 이유였다. 수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다. 지글지글한 소리와 시큼한 냄새가 풍기는 걸 보니 요리라도 하는 모양이었다. 잠시 뒤, 수호가 먹자며 내놓은 것은 요리라도 하기에 뭐한 이상한 모양의 볶음밥이었다. 붉은 색으로 뒤 덮인 밥에선 쉰 냄새가 훅 끼쳤다. 수호는 그것을 김치볶음밥이라 칭했다.

 

"어때 괜찮아?"

 

한 숟갈을 떠 입에 밀어 넣자마자 수호가 대뜸 물었다. 딱딱하게 굳은 밥알들이 이사이에 꼈다. 꼭 생쌀을 씹어 먹고 있는 것만 같았다. 기대감이 역력한 눈빛이라, 이유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맛있어."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실은 프라이팬의 맛이 났다. 녹이 슨 팬이 긁히며 만들어 낸 맛이었다. 언젠가 이유는 이런 맛을 느껴본 적이 있었다. 어린 시절 엄마가 일을 나가고 오빠와 단 둘이 보내는 시간이 많았을 때, 이유는 늘 냉장고에 있던 재료들을 털어 볶음밥을 만들곤 했다. 먹을 게 없어서 김치며, 콩나물이며 가릴 것 없이 털어놓고는 망설임 없이 섞은 것이었다. 그럴 때마다, 밥숟가락으로 벅벅 긁어먹던 볶음밥에선 프라이팬의 맛이 났다. 씁쓸하면서도, 피를 먹는 듯 한 비린 맛이.

 

"많이 먹어."

 

수호가 제 몫을 이유의 접시 위에 덜어주며 말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엄청난 양이었다. 수북하게 쌓인 밥이 꼭 해변가의 모래성 같았다. 숟가락으로 조금씩 파다보면 금세 와르르 무너질 모래성. 혹시라도 남기면 싫어하지 않을까 싶어 이유는 모래 같은 밥을 숟가락으로 퍽퍽 퍼먹었다. 먹다 보니 맛은 나쁘지 않았다. 맛을 느끼기도 전에 삼켜버리면 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꽤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데도, 수호는 '아유, 잘 먹는다' 하며 이유를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던 아빠와도 같은 모습이었다.

 

밥을 다 먹고 나자, 수호가 곧 태어날 아기 용품을 가져오자며 이유를 이끌었다. 이제 좀 제대로 된 아빠 노릇이라도 하려는 모양이었다. 배도 불렀고 졸음이 쏟아지고 있던 터라 이유는 나가기 싫었지만, 수호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에 억지로 그를 따라나섰다. 중국집 배달 일을 하던 수호는 배달용 오토바이에 이유를 태우고는 동네 뒷산에 위치한 폐기장으로 이유를 이끌었다.

 

폐기장은 양아치들의 아지트라 불리는 곳이었다. 사람의 발길과 눈길이 모두 사라진 곳. 예전의 쓰레기 장이였다는 그곳에는 아직까지도 그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넓은 공터에는 낡은 신발과 때가 탄 아기 용품, 그리고 사람들이 몰래 갖다 버린 쓰레기들이 발밑을 뒹굴었다. 조용하고 더럽다 보니 양아치들의 아지트가 되기에도 적합했다.

 

수호는 신이 나서 뛰어다녔다. 쓰레기 더미에 섞여 있다 보니 꼭 쓰레기가 된 느낌이라 이유는 공터 한 가운데 선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바닥은 찐득찐득했고, 숨을 쉴 때마다 역한 냄새가 풍겼다. 어디서 왔는지 모를 쓰레기들이 시야를 가득 메우고 있던 탓에 눈앞이 다 아찔했다.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쓰레기를 뒤지던 수호는 이내 딸랑이 찾아내고는 이유 앞에서 그것을 툭툭 흔들어보였다.

 

"어때?"

"더러워."

"? 더럽긴, 이거 씻으면 깨끗해."

 

수호가 단호하게 말했다. 갈색의 끈적끈적한 액체가 묻은 딸랑이는 흔들 때마다 역한 냄새가 났다. 이유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지만, 더럽다는 생각을 바꾸지는 않았다. 곧 태어난 아이에게 이런 물건들을 주고 싶지는 않았다. 물론, 태생 자체가 불행한 아이라 이런 걸 준다고 해도 다를 바 없겠지만 그래도 자신과 같은 생활을 물려주고 싶지는 않았다.

 

"이것도 새 것 인거 같은데? 엄청 괜찮지?"

 

수호는 또 다시 폐기장을 뛰어다녔다. 이유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수호는 갈색 액체가 묻은 딸랑이와 족히 3살은 되야 신을 것 같은 신발, 그리고 연탄에서 구른 듯한 시커먼 곰 인형까지 가져와 이유의 품에 안겨주었다. 이슬에 젖은 인형에서는 꼬릿꼬릿한 냄새가 났지만, 이유는 차마 버릴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의 말대로 씻으면 깨끗할지도 몰랐다. 곧 태어날 아이에게 아무것도 못주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한참동안 쓰레기를 집어오던 수호가 저 멀리서 들려온 바글바글한 소리에 급히 이유를 밖으로 떠밀었다.

 

폐기장에 다녀온 뒤로, 이유의 관심은 아기 용품에 맞춰져있었다. 수호가 주워온 용품들을 깨끗이 씻어주긴 했지만, 정체 모를 역한 냄새와 끈적끈적한 오물들은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다. 꼭 커다란 곰 인형에게 지워지지 않는 문신이라도 새겨놓은 것 같았다. 그지 같은 것들이 더 따진다며 뭐라 할 수도 있겠지만, 이유는 곧 태어날 아이에게만큼은 새 것을 사주고 싶었다. 자신과 달리 거친 풍파를 겪고도 꿋꿋이 살아난 아이니까 그런 욕심쯤은 부려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제일 큰 문제는 돈이 없다는 것이었다. 수호가 벌어오는 돈은 두 사람이 살기에도 빠듯했다. 출산일은 가까워져 오고, 돈은 떨어져가는 데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했다. 더 이상 이렇게 살아갈 수는 없었다. 한참을 고민하고 있을 때 쯤, 이유의 눈에 들어온 것이 다름 아닌 <러브>였다.

 

시장 구경을 갔다가 알게 된 곳이었다. 더러운 뒷골목 구석에 자리한 <러브>는 헐벗은 여자들과 술에 취한 남자들로 복작거리고 있었다. 입구 바로 앞에 위치한 카운터에는 빨간 립스틱을 바른 여자가 앉아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나이가 들어 보이는 얼굴이었고, 노란 매니큐어를 바른 손끝을 움직일 때마다 짙은 향수 냄새가 났다. 머뭇거리던 이유가 아가씨 구함이라는 전단지를 들고 쭈뼛거리며 다가가자, 돈을 세고 있던 여자가 턱 끝을 치켜들며 물었다.

 

"몇 살?"

", 스무 살이요."

 

거짓말을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일하려면 어쩔 수 없이 나이를 속여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이유의 얼굴 가슴 다리 등을 훑어 내렸다. 매서운 뱀 같은 눈초리가 가슴과 얼굴을 보며 꿈틀거리다가, 이내 볼록하게 솟은 배에 꽂혔다. 따가운 시선을 느낀 이유가 깜짝 놀라 배를 감싸 안았다. 커다란 옷으로 가린 배는 눈에 띄게 부풀어있었다.

 

"몇 주?"

"?"

"임신 몇 주냐고."

", 10주요."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어딘가로 전화를 걸더니,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을 늘어놓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동안 이유는 멍청하게 서서 그녀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잠시 뒤, 키를 챙긴 여자가 이유를 가게 깊숙한 곳으로 이끌었다. 정육점처럼 붉은 불빛이 줄줄이 걸린 끝에 방에는 주황색불빛이 어른거리고 있었다. 여자는 아무 말없이 이유를 방 안으로 밀어 넣었다.

 

"어리고 초짜인 듯 하니까 두 시간에 10만원씩 떼 줄게."

"?"

"임신한 애들을 좋아하는 몇몇 놈들이 있거든. 그래서 더 쳐주는 거니까 열심히 해."

 

미처 반응할 새도 없이, 여자는 홱 돌아서 가버렸다. 이유는 한참동안 넋을 놓고 있다가, 방안으로 들어온 다른 여자를 보고는 정신을 차렸다. 여자는 손님을 맡이 할 준비를 하라고 말하고는 이유에게 뭔가를 던져주었다. 딱 보기에도 노출이 심한 옷이었다. 이유는 뭐에 홀린 것처럼 그 옷으로 갈아입었다. 화려한 색감으로 이뤄진 원피스를 입자 가슴과 다리가 훤히 드러났다. 이유는 방구석에 위치한 소파에 앉아, 복잡한 시간을 셌다.

 

이렇게 쉽게 일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적어도 면접이나, 말이라도 나눌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또한 임신한 여자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놀라웠다. 다른 곳에서는 기피하기 바쁜 자신이 쓸모가 있다는 것도 의외의 일이었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이라 두려움이 엄습했지만,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이유는 돈이 필요했다. 아이와 함께 떵떵 거리며 살 수 있는 돈이 있어야만했다.

 

그제야 이유는 방을 살펴보았다. 4평정도 되어 보이는 방 안에 소파와 탁자 그리고 재떨이가 놓여있었다. 주황색 불빛이 어른거리는 방안에선 가죽의 냄새가 났다. 볼록하게 부른 배가 딱딱하게 뭉쳐왔지만, 억지로 참아냈다. 싫든 좋든 해야만 했다. 2시간에 10만원을 준다는 건 자체만으로도 어마어마한 곳이었다. 제가 어딜 가서 그렇게 벌 수 있나 싶기도 했다.

 

첫 날은 어렵지 않았다. 이유를 찾는 남자들도 없었고, 여자의 다른 지시도 없었다. 그저 방 안에 앉아 멍하니 시간을 세고 있으면 되는 일이었다. 물론 아주 가끔씩 찾아오는 남자들에게 웃음을 팔고, 훤히 드러난 다리를 만지게 해주면 되는 일이였기에 복잡할 것도 없었다. 별 것 같지도 않은 일에 이유는 10만원이라는 큰돈을 벌었다. 남들이라면 며칠씩 일해야 받을 돈을 몸과 웃음으로 산 것이었다.

 

<러브>에서 일을 한지 4일 정도가 되자, 얼굴을 알아 볼 수 있는 손님들이 생겼다. 어린 여자를 유독 좋아하는 남자들이었다. 배가 부른 건 신경도 안 쓰이는 모양인지 그들은 이유의 임신사실에 대해서도 묻지 않았다. 매일 같이 찾아오던 손님 중 한명은 이유를 유달리 예뻐했다. 이유가 일하던 3일 내내 그녀를 찾았고, 매일 같이 그녀와 함께 2차를 나갔다. 딸 같은 여자와 모텔 침대에서 뒹굴면서도 부끄럽지 않은 모양이었다.

 

자신을 유명 대기업의 회사원이라 소개한 남자는 자신에게 딸이 한명 있다고 했다. 지금 17살인데, 딱 너 만한 것 같다며 남자는 우스갯소리를 했다. 얼핏 본 남자의 핸드폰 화면에는 딸로 보이는 여자 사진이 담겨있었다. 여자는 얼굴도 하얬고, 눈도 무지막지하게 컸다. 어딜 가나 인기가 많을 것 같았다. 침대에 벌러덩 드러누워 이유의 맨다리를 지분거리던 남자가 부드러운 살결을 느끼며 중얼거렸다. 어린 게 좋기는 좋네.

 

아저씨 딸이 이런 짓한다고 하면 어쩔 거예요?”

 

분위기에 취해 별 생각 없이 한 질문이었다. 딸이 제 또래라고 하기도 했고,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 궁금해서 물어본 게 다였다. 또 이유에게는 아빠가 없었다. 이유가 돌이 지나던 무렵, 엄마와 이혼한 아빠는 단 한 번도 이유를 찾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딸이라는 게 아빠들에게는 어떤 존재인지 알고 싶었다.

 

?”

 

하지만, 그 말에 남자는 불같이 화를 냈다.

 

내 딸이 너랑 같은 줄 알아? 감히 어디서 누구랑 비교를 해?”

 

남자는 버럭 소리를 치더니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무슨 생각을 한 건지는 몰라도, 목부터 얼굴까지 터질 듯 붉게 달아올라있었다. 옷을 껴입는 내내 구시렁구시렁 거리던 남자는 모텔을 벗어난 이후 더 이상 이유를 찾지 않았다. 예상 밖의 일이었다. 여자는 손님과 싸웠냐며 물어왔지만, 이유는 대답하지 못했다. 이유를 알 수가 없던 것이었다. 이유는 오히려, 그 남자에게 묻고 싶어졌다. 뭐 나는 똥칠, 아저씨 딸은 온 몸에 금칠이라도 했어요?

 

본격적인 남자를 상대하게 된 건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후였다. 자신을 사업가라 소개한 남자는 40대 중반이 넘어 보이는 중년의 아저씨였다. 그는 처음으로 이유에게 관심을 가진 남자였다. 이유의 남산만한 배를 쓰다듬으며 몇 주냐고 물어온 것이었다. 이유는 11주가 되었다고 답했고, 그 남자는 아기가 널 닮아 예쁘겠다고 말했다. 바보처럼 킥킥 웃는 사이 아저씨가 먼저 입을 맞추었다. 그 다음으로 넘어갔을 땐 배가 불러 아파오고 있었다. 하지만, 이유는 꾸역꾸역 참아 넘겼다.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자글자글한 얼굴이 하나의 돈 다발처럼 보였던 이유 때문이었다.

 

"어딜 갔다 와?"

"? 그냥."

"너 혹시 이상한 짓 하는 거 아니지?"

 

수호가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린 건, 그 날 저녁이었다. 핑계를 대기 위해 장을 봐서 돌아온 사이, 일을 끝마치고 돌아온 수호가 그녀를 현관 앞에 세워두고 물었다. 이상한 짓 하는거 아니냐고. 너 혹시 다른 생각하고 있는 거 아니냐고. 이유는 아무것도 아닌 네가 아빠 노릇을 하는 것보다 이상한 게 뭐냐고 물어볼 뻔했지만, 억지로 참아 넘겼다. 굳이 상처를 줄 필요는 없었다. 그러기엔 무척이나 피곤했다. 그를 스쳐지나 방 안으로 들어가는 내내 수호는 이유를 잡지 않았다.

 

<리즌>은 조용했다. 2개의 방문이 모두 다 굳게 잠겨 있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돈을 벌러 나간 듯 보였다. 그 이후 수호는 더 이상 이유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이유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지내다보면 언젠간 풀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차디찬 바닥에 같이 드러누워 잠기운에 취하는 동안, 수호의 한숨소리가 들린 것 같기도 했다.

 

이유는 아침부터 밤까지 손님들을 상대했다. 연령대는 다양했다. 20대부터 50대까지, 하나같이 돈이 많은 남자들이었다. 남자들은 거리낌 없이 이유를 만났다. 그 중에는 아빠뻘의 남자도 있었다. 허나, 그는 조금도 부끄러워하는 기색 없이 이유를 품었다. 다 내 딸 같아서 그래, 라는 말을 덧붙이는 것 까지 잊지 않았다. 마치 딸을 대하는 듯한 다정한 손길로 남자는 이유의 몸을 지분거렸다. 몸을 간지 럽히는 손길에 이유는 담배냄새가 나는 품에 안겨 큭큭대며 웃었다.

 

나름대로 버틸만했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이유의 배는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남산만하 게 불러있었다. <러브>의 사장은 아이를 낳을 때까지는 나오지 말라고 했다. 혹시, 위험한 일이라도 벌어진다면 피곤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여자의 마음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유는 돈이 필요했다. 남자에게 받은 돈은 옷과 머리, 화장품등을 사느라 금세 탕진해버렸다. 식욕 역시 한몫했다. 결국, 이유는 여자 몰래 <러브> 밖에서 손님을 만나며 돈을 벌었다. 대부분이 업소에서 만난 적 있던 남자들이었다.

 

남자들은 이유를 딸처럼 대했다. 그 따뜻함과 다정함이 좋아서 이유는 손님들을 찾았다. 어느새 배는 건드릴 수 없을 정도로 부풀어 올랐다. 더 이상의 스킨십이 힘들어지자, 남자들은 다른 것을 요구했다. 손님을 상대할 수 있는 방법은 많았다. 이유는 그 누구보다도 열심이었다. 탐욕을 대가로 돈을 받았고, 그 돈으로 사치를 부렸다.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던 일이었다. 옷과 화장품을 사고, 맛있는 것을 먹었다. 돈을 다쓰면 또 남자를 만나면 되는 일이였기에 두려울 것은 없었다. 그렇게 손님들과의 만남이 잦아지던 중, 이유는 그만 여자 사장에게 들키고 말았다.

 

"너 나 몰래 손님 상대하니?"

 

여자는 화가 난 듯 보였다. 이유가 밖에서 손님을 만나느라, <러브>의 매출이 떨어진 모양이었다. 이유는 죄송하다며 무릎을 꿇고 싹싹 빌었다. 여기서 잘린다면 더 이상 갈 데가 없었다. 어이없다는 눈길로 이유를 바라보던 여자가 이내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룸에 들어갈 것을 명령했다.

 

"네 잘못한 거 몸으로 다 때워."

 

그 날 밤은 무척이나 고통스러웠다. 평소와 달리 10명의 남자들을 상대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이유가 임신을 했던 미성년자이던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나는 돈을 냈으니 너는 그 대가를 지불하라는 입장이었다. 이유는 고통스러웠다. 손님들이 하도 제멋대로 다루는 바람에 몇 번이나 배가 뭉쳤지만 이유는 이를 악물고 버텨냈다. 이렇게 버티고 버티다 보면, 그토록 바라던 평범한 일상이 손에 잡힐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불행은 너무도 쉽게 이유를 덮쳤다. 여자에게 들 킨지 꼬박 이틀이 지난 후의 일이었다. 모든 것을 알아챈 수호가 이유를 찾아 업소까지 쳐들어온 그 날, 사건이 터졌다. 누군가가 <러브>를 경찰에 신고한 모양이었다. 이유는 늘 그랬듯 주황색 불빛 아래 앉아있었고, 온 방문을 열고 난리법석을 치던 수호가 그녀를 마주쳤을 때는 저 멀리서 경찰들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왜 이렇게까지 해?"

 

수호가 물었다. 이유는 대답하지 못했다. 글쎄, 왜 이렇게까지 한 걸까? 머리를 쥐어짜내 생각해봤으나, 명확히 떨어지는 답은 없었다. 이유는 문득 서글퍼졌다. 당당하지 못한 것도, 삶에 대한 이유가 없다는 점도 그랬다. 사이렌 소리와 함께 여자 사장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나는 잘못한 게 없다는 남자들의 외침까지 울려 퍼졌다. 이유는 한참 끝에서야 대답했다.

 

"그냥, 살고 싶어서."

 

이유는 살고 싶었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아니 그냥 예전처럼이라도 살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녀를 그렇게 놔두지 않았다. 돈을 버는 것도 아이를 키우는 것도 쉽지 않았다. 배속의 기생충은 날이 다르게 커져 가는데,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꼼짝 마!"

 

경찰들이 문을 박차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멍하니 서있던 수호의 몸이 뒤로 꺾이더니, 은색 수갑이 채워졌다. 바깥에선 여자들의 비명소리와 남자들의 고함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몸을 비틀며 반항하던 수호가 경찰의 발에 채여 바닥을 놔 뒹굴었다. 이유는 넋을 놓은 채 멍하니 앉아 있다가, 금세 다가온 경찰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끌려 나갔다. 배속에 있던 기생충이 크게 꿈틀거리며 말했다. 나 아직 여기 살아있다고.




이름 : 최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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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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