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5차 창작 콘테스트 단편소설 부문 공모 - 지나가는 길

by 박승현 posted Jun 0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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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는 길

 



 

백씨는 그날따라 늦게 출근길에 나섰다. 그는 그의 집에서 도보 10분 거리의 삼거리에 있는 은행에서 근무한다.

출근길 근처에는 흙으로 덮인 운동장이 딸린 학교가 있어, 놀이터나 앞에 오락기가 두세대 있는 문방구도 있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왜 그 자리에 자신과 연대가 비슷해 보이는 성인들이 정장 까지 차려입고 그곳에 있는 것인가. 백씨는 나라가 거꾸로 돌아가나 하며 코웃음 치고 삼거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가 회사에 도착했을 땐, 평소보다 좀 더 분주한 동료직원들이 보였다. 지점장은 공지할 게 있다며 직원들을 모두 자리에 앉혔다.

하지만 그 조차도 백씨는 흘려들었다. 그리고 급여가 밀릴 수도 있다는 지점장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해가 이미 지고 난 후의 그 날 저녁, 이젠 거의 고물이라 불리는 작은 TV로 확인한 뉴스에서는 외환위기라는 말을 막 뱉고 있었다.

오늘 따라 늦는 아내를 원망하며 집 밖으로 나와 담배를 하나 태우고 있을 즈음, 어렸을 때부터 동네에서 같이 지냈던 주씨를 만나게 되었다. 그리곤 자리를 옮겨 서로의 투명한 빈 잔에 소주를 가득 가득 채웠다.

요즘 어떻게 지내?” “아이 뭐, 그냥...좀 힘들기도 하지

반갑게 안부를 묻는 질문에 어두운 답이 돌아왔다. 주씨는 몇 년 전부터 사업을 시작한다고 했다. 안 본지 꽤 되었지만 그의 얼굴엔 근심과 걱정이 가득하다는 것 알 수 있었다.

그는 정부를 욕하기도 했고, 당장 내일 먹고 살 것도 없다고 한탄하기도 했다. 자식들은 친정으로 보내고, 매일 밤 아내의 눈물이 가득한 고작 몇 평 짜리 방에서 밤을 지새운다고도 했고, 미래가 어떻게 될지 이젠 모르겠다고 백씨의 앞에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런 주씨의 말에 조금 씩 맞장구 쳐주다 보니 벌써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늦은 시간에 빈 소주병들을 뒤로한 채 가게를 나섰다. 2차를 가자는 취한 주씨를 겨우 돌려보낸 백씨는 그의 소식을 바로 다음날 들을 수 있었다.

 

백씨는 아침부터 요즘은 그 힘들다는 반차를 내고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영정사진의 주씨는 웃고 있었다. 백씨는 많은 생각이 들었다. 주씨도 분명 그랬을 것이다. 마지막에 모든 생각과 근심, 걱정이 사라졌을 때는 그가 높은 빌딩에서 몸을 던지던 순간이지 않았을까, 백씨는 각박한 현실에서 친한 형을 위한 애도의 마음을 남들 보지 못하는 깊은 곳에 꾹꾹 눌러 담았을 것이다.

그로부터 며칠 후엔, 백씨 또한 그의 자리를 정리해야만 했다.

백씨는 집 근처 놀이터의 벤치에 엉덩이를 붙였다. 그리고 바로 앞에 보이는 수평선에 해가 걸치기를 기다렸다. 아내가 어제 갑자기 회사에서 잘리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혼자 밖에서 퇴근시간까지 시간을 떼우지 않아도 되는 것 이였다.

 

얼마나 숨을 들이쉬고 내쉬었을까. 백씨는 지는 해를 보며 계속 앉아있던 놀이터 벤치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백씨는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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