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5차 <창작 콘테스트> 단편소설 공모 - 집에 아무도 없나요

by 박소이 posted Jun 07,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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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아무도 없나요

 

1.

원래라면 그 자리에 바르게 놓여있어야 할 샌들이 조금 비딱하게 틀어져 있었다. 순간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도어락 소리가 얼마나 크게 띠릭띠릭 소리를 냈는지 잠시 생각해보았다. 도어락 소리, 원래 크지. 내가 들어오는 것쯤은 알아챌 수 있었을 거야.

집에 침입자가 있는 것 같다. 그 생각만으로 아찔해졌다. 온 몸의 근육이 간만에 긴장되는 것이 느껴졌다. 신발장 선반을 열었다. 공구함에는 작은 망치가 있다. 잘만 하면 사람을 죽일 수는 있지만, 확률상으로 치명상에 그칠 확률만이 높은 공구다. 정당방위 가능할까. 신고를 해야겠다는 생각보다 더 빠르게 머릿속에 스치는 생각.

우선 거실로 천천히 들어갔다. 신발을 벗지 않은 채였다. 뚜벅, 하고 장판에 발굽 닿는 소리가 났다. 거실은 마땅히 숨을만한 곳이 없었다. 베란다 쪽 커튼에 몸을 기대고 있더라도 들이치는 햇볕 때문에 금세 실루엣을 들키고 말 것이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어 햇볕은 옅었다. 베란다 창문 쪽을 바라보았지만 아침에 내놓고 나갔던 산세베리아 화분과 다육이, 선인장 화분이 그림자로 그늘진 모양새가 전부였다.

안방까지 가려면 적어도 다섯 걸음은 걸어야 하는 집의 구조 상, 한 걸음만 디디면 닿을 수 있는 작은 방부터 살펴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쥐새끼 같은 놈이 만약 작은 방에 숨어 있다가 나를 덮치면 어쩌지. 잠시 생각했다. 손에 있는 망치를 더 세게 쥐었다. 작은 방의 문을 열었다. 여기는 서재 용도로 쓰고 있는 곳이었다. 특별히 몸을 숨길만한 곳은 없었다. 책장과 몸을 기댈 수 있는 나른한 싱글 소파 하나, 발 받침대 하나, 컴퓨터 정도가 전부인 공간이었다. 역시나 개미새끼 한 마리도 없었다.

, 다음은 부엌이다. 부엌은 열린 구조니 식탁 아래 같은 곳이나 다용도실 따위만 잘 살펴보면 된다. 허리를 숙여 식탁 아래를 살폈다. 좁아터진 4인용 식탁 아래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휘파람을 휘이 불었다. 그것은 일종의 경고였다. 내 집에 무단으로 침입했을 자에 대한 자비의 경고 같은 것. 지금이라도 몸을 내놓는다면 어떻게든 정당방위 없이 목숨만은 깨끗하게 살려놓겠다는 신호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적막은 나의 심장을 더욱 조여 왔다. 아주, 오랜만의 긴장.

뚜벅, 뚜벅, 몇 걸음을 더 걸어 다용도실로 향했다. 다용도실에는 세탁기와 건조대와 쌀자루 정도가 전부다. 나는 천천히 문을 열었다. 있어야 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혹시나 싶은 마음에 세탁기 문도 열어보았다. 통돌이로 되어 있어서 숨으려고 마음먹으면 숨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세탁기 뒤쪽의 여백도 살펴보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조금은 실망한 마음으로 다용도실 밖으로 빠져나왔다.

 

2.

몸을 움직여보았다. 암막커튼이 쳐져 있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손끝의 감각으로 느끼기엔 속박당하고 있는 물체는 가늘고 질긴 밧줄 같았다. 나는 압박하고 있던 손발에 묶인 밧줄을 의미 없이 움직여보았다. 분명 퇴근을 하고 있었는데 말이지. 대체 어느 시점부터 이렇게 되어 있었던 거지? 뭐지 이 전개는?

우선 침착하게 생각해보기로 했다. 우선 손에 묶인 밧줄만이라도 풀 수 있다면 어느 정도 자유롭지 않을까. 나는 오른손과 왼손을 차례대로 움직여보았다. 둘 다 풀기 어려울 것 같았지만 오른손이 조금 더 헐겁게 묶인 것 같았다. 나는 필사적으로 오른손에 힘을 주어 움직였다. 매듭이 조금씩 헐렁해질 때까지. 팔의 피부가 거칠거칠한 얇은 밧줄의 표면에 쓸려 쓰라렸다. 조금 더 세게 움직이니 피가 나고 살점이 뜯기려고 했다. 대신 서서히 꾸무적거리며 매듭이 풀어지고 있었다. 조금만 더.

 

……!

 

결국 거의 오른쪽 손목과 팔뚝 전체에 축축한 느낌이 들고 나서야 오른손이 자유로워졌다. 아마 피겠지. 쓰라리다. 나는 풀어진 오른손으로 왼쪽 손에 묶인 매듭도 더듬더듬 풀어나갔다. 꽤 질기게 묶여 있어서 쉽게 풀어지진 않았지만 손톱을 다 긁을 기세로 발버둥을 치자 풀어졌다. 발에 묶인 매듭은 어찌나 세게 묶였던지 아무리 풀어보려고 애써도 풀어지지 않았다.

나는 주변에 쓸만한 도구가 있는지 찾아보려 애썼다. 어둠에 익숙해진 눈으로 주변 풍경을 더듬어보았다. 암막커튼 같은 게 창문에 쳐져 있는지 조금의 빛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창문에 있는 커튼부터 걷어내고 싶었지만 창문까지는 손이 닿질 않았다.

우선 침대 헤드 옆을 더듬어보았다. 탁자 같은 것이 만져졌다. 나는 탁자를 손으로 더듬으며 서랍 같은 걸 찾았다. , 다행이 있군. 서랍의 문을 열었다. 가위나 칼 같은 게 있을까? 손끝으로 끊임없이 더듬어보았다. 정체불명의 잡동사니 같은 것만 손끝에 만져졌다. 뭔가 날카로운 것이 필요한데.

손톱깎이.

 

같은 것이 만져졌다. 자세히 더듬어보니 진짜 손톱깎이 같았다. 나는 어둠 속에서 발에 묶인 밧줄을 풀기 위해 손톱깎이질을 했다. , , , . 다행히 밧줄이 그렇게 두껍거나 하진 않아서 몇 번의 손톱깎이질에 밧줄은 쉽게 뜯겨져 나갔다.

 

어떤 미친새끼의 짓일까.

어제 퇴근이 조금 늦어졌던 건 사실이다. 중소기업의 한 A부장이 꼬장을 부리는 바람이었다. 술을 쳐 먹어도 곱게 쳐 먹을 것이지 꼭 그런 것들이 하나씩 있다. 그는 내 가슴께에 만 원 짜리를 몇 장 집어넣으며 썅년, 썅년, 하면서 욕을 했다. 진짜 추태였다. 보아하니 접대 자리 같았는데. 하지만 몇은 그런 A부장의 태도에 조금 더 흥분한 것 같았고,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2차 까지는 되도록 안 가도록 실장에게 부탁해두어서 새벽 깨에나 빠져나올 수 있었는데 A부장이 너무 술을 많이 먹였다. 거절하지도 못하고 자꾸 마셔야 해서 곤혹했다.

새벽녘에 비틀비틀 집을 향해 걷고 있었다가 어느 시점부터 필름이 끊겼다. 편의점에 가서 숙취음료 하나를 사야겠다고 생각하며 CU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는데, 뒤통수에 둔탁한 무언가로 맞았고 기절했던 것 같다. 깨고 난 지금까지 얼얼한 걸 보니 거의 죽일 기세로 때린 것이 분명하다. 씨발 새끼. 나는 뒤통수를 어루만졌다.

일단 방 안을 훤하게 비추기 위해 암막 커튼을 걷어냈다. 그다지 밝지 않은 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거지? 해질 무렵인 걸 봐서는 거의 반나절 이상 기절해있었던 것 같다.

내가 묶여 있는 곳은 안방 같았다. 조그만 화장실도 딸려 있었고, 구석구석 체리색 몰딩으로 마감이 되어 있는 것을 보니 조금 오래된 아파트 같은 구조 같기도 했는데, 창밖 풍경으로 봐서는 한적한 곳에 지어진 주택 같았다. 주변에 보이는 거라곤 논두렁 밭두렁 나무 풀때기 같은 것이 전부였다.

바깥 풍경을 보니 조금 더 아찔해졌다. 여기서 여차저차 빠져나간다고 해도 주변이 휑하니 몸을 숨길 곳이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나를 여기까지 데려온 놈이 언제 돌아온다는 보장도 없었다. 머리를 잘 써야 될 것 같다. 아니면 진짜 죽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알고 싶다에 나오는 피해자가 되고 싶지 않다.

집안이 조용한 걸 보니 아무도 없는 것 같긴 했다. 하긴, 누가 있었으면 내가 밧줄을 푸는 동안 사부작거리는 소리를 듣고 달려왔을 테지. 나는 문을 향해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열려고 해보니 잠겨 있었다. 보니까 손잡이가 거꾸로 달려 있어서 밖에서 문을 잠그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계획된 거구나. 상대는 위험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스쳐갔다.

다음은 창문 쪽을 살펴보았다. 창문은 잠겨 있었지만 다행히 걸쇠를 풀면 열 수 있는 구조였는데, 한쪽 방향으로만 문이 열렸다. 오른쪽 문에는 방충망이 달려 있었는데 그게 문제였다. 방충망은 창문턱에 나사로 고정이 되어 있어서 열리지가 않았다. 젠장! 발로 한 번 걷어 차보았다. 뜯을 수 있을까? 발로 거듭 걷어차니 방충망이 찢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필사적으로 방충망을 뜯어 베란다로 나갔다.

베란다는 거실과 이어져 있었다. 나는 혹시 잠긴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살며시 문을 열어보았다. 다행히 잠겨있지는 않았다. 살금살금 거실로 나와 보았다. 집에는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현관문까지 잠겨있진 않겠지? 현관문에는 내가 어제 신고 왔던 샌들이 가지런하게 놓여 있었다. 나는 한 발을 샌들에 집어넣고 있었다.

그 때, 밖에서 차가 마당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화들짝 놀라 발을 샌들에서 빼고 다시 원래 있었던 베란다로 황급히 도망쳤다. 다행히 밖에서 베란다가 보이는 구조는 아니어서 몸을 숨길 수 있었다.

 

3.

혜영. 혜영은 눈부시게 아름답다. 고등학교 때부터 민속무용을 전공한 그녀는 아름답고, 그녀의 자질 또한 아름다웠다. 각종 콩쿠르를 휩쓸며 한국예대에 수석으로 입학한 그녀는 모든 미래가 출중한 여자였다.

그에 비해 나는 보잘 것 없는 사람이었다. 그녀가 눈부시게 아름다울 때 나는 가장 어두운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그녀는 누구나 다시 뒤돌아볼만한 사람이었지만 나는 아무도 봐주지 않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녀는 누구나 다시 기억할만한 사람이었지만 나는 누군가의 기억 속에도 각인되지 않을 사람이었다.

내가 혜영을 조금 더 가깝게 생각한 것은 그녀가 나와 같은 동네에서 살고 있다는 것에서였다. 나는, 아니 정확히 말하면 우리는 임대 아파트 단지에서 살고 있었는데 그녀는 104, 나는 107호였다. 평수가 조금 더 작은 107호에 사는 나는 조금 더 넓은 평수인 104호에 살 뿐인 그녀가 민속무용을 하는 데에 얼마나 많은 돈이 드는지 액수를 짐작해보며 잠에 들곤 했다.

그러면서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빛나는 자질과 어울리지 않는 임대아파트의 모양새를 생각했다. 온통 회갈색의, 도시 미관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아니 어쩌면 회색빛 도시와 아주 잘 맞아떨어지는 이 가난한 동네의 아파트인 이곳은 아름다운 혜영과 어울리지 않았다. 무용은 돈이 많이 들지 않나. 어떻게 그녀가 임대아파트에 살 정도로 가난하면서도 그렇게 빛이 날 수 있었나.

그러면서 나는 나에게 무관심한 나의 부모들을 떠올렸다. 내가 무엇을 하든 관여하지 않겠다는 듯한 태도. 매일 새벽 615분에 집을 나가서 저녁 740분이 되어 들어오는 그들. 내가 방에 죽은 듯이 틀어박혀 있으면 생사 확인 차 문만 열었다가 닫곤 했던 그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따위에는 아무 관심도 없이 그냥 살아지니까 살게 두는 그들. 나는 그들을 증오했다. 왜 낳았지? 매일이 죽고 싶은 물음의 연속이었다. 그 즈음 나는 사랑과 관심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즈음 나는 혜영을 사랑했다. 마음을 둘 곳이 있으니 조금은 덜 답답했다.

나는 그녀를 사랑했다. 그녀도 나를 사랑했다. 우리는 꽤 행복한 한 때를 보냈다. 우리는 담배를 계기로 서로 친해지게 되었다. 106동 구석진 곳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나에게 아는 척을 하며 다가온 혜영을 보며 나도 모르게 멍했던 기억이 났다.

 

4반에 태주지? 불좀 빌려 줘. 라이터를 두고 와서.

 

그녀는 디스 플러스를 주머니에서 꺼내들며 말했다. 아마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여자가 있다면 나한테 담뱃불을 빌렸던 그 순간의 혜영이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나는 기어이 그녀의 담배에 불을 붙여주었다.

그 뒤로 나는 그녀를 기쁘게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사랑에 있어 서투르긴 했지만 내게는 소중한 첫사랑이었고 그만큼 놓칠 수 없었다. 그녀가 좋아하는 담배인 디스 플러스를 가방에 몰래 넣어두기도 했고, 가끔은 머리 아픈 상담을 해주기도 했다. 사연을 들어보니 혜영은 자살로 아버지를 잃고 우울증에 걸린 어머니를 모시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엄마는 이상해. 매일 손찌검하던 아빠가 없어져버렸는데, 아빠가 없으니까 우울증에 걸렸어. 이해할 수 없어. 죽고 싶다는 말만 반복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내가 모든 걸 책임져야 해. 차라리 혼자가 편할 것 같다는 나쁜 생각도 종종 해. ……변태 같은 생각이지?

 

그렇게 말하면서도 웃음기는 잃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래도 나 하나만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야? 동생 같은 거 있었으면 더 신물이 났을 거야. 불행은 나 하나로 족해. , 엄마까지 포함인가?

 

나는 웃어줘야 할지 울어줘야 할지 모를 이야기들을 들으며 혜영과 가까워졌다. 우리는 담배를 사이에 두고 고3까지 훌쩍 흘러갔다. 혜영은 발가락이 비틀어지고 손가락이 휘어지도록 춤을 추며 더 더 아름다워졌고, 나는 손가락이 부르트고 코피가 날 정도로 열심히 공부했다. 그녀는 가고 싶어 했던 한국예대, 나는 SKYK대에 최종합격했다. 우리 둘은, 조금은 행복한 미래를 상상하며 서로의 담배를 나눠 폈다.

 

네 담배는 왜 이리 맛이 달달하니?

 

그 즈음 나도 혜영이 피는 디스 플러스를 피기 시작했다.

 

서로 대학교가 떨어져 있는 만큼 그녀를 볼 일이 줄어들었다는 게 아쉬웠지만 우리는 주기적으로 연락을 하며 지냈다. 나는 그동안 장학금을 받으면서 학교를 다녔고, 아르바이트를 3개씩 뛰며 생계를 이었다. 집과는 연을 끊은 지 오래였다. 저축도 조금씩 하고, 졸업하기 전까지 전셋집을 구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 목표는 오직 혜영과 함께할 미래를 위해서였다. 그 즈음, 혜영은 서글픈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돈이 너무 많이 들어 여긴…….

 

가끔은 포기하고 싶어져, 무용 같은 거. 왜 내 재주는 이렇게 돈이 많이 드는 걸까? 혜영은 울적한 목소리로 투덜대곤 했다. 그토록 자질이 아름답던 혜영이 저렇게 울적해할 정도면 어느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 가늠이 가질 않았다. 나는 그녀 몰래 그녀가 사는 도시를 향해 갔던 적이 있다. 혜영이 어디에 살고 있는지 쯤은 꿰고 있었다. 골목길에서 내가 봤던 혜영은 늘 길게 담배를 피우고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거나, 길고양이들을 쓰다듬으며 한숨을 푹 쉬는 모습들이었다. 멋진 재능을 가지고 있는데 왜 이렇게 고민이 많아야 하는가. 왜 아무도 혜영일 도와주지 않는 걸까. 나라도 혜영이를 도와줘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런 생각을 하면 아르바이트 따위는 전혀 힘들지 않았다.

 

그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말이다.

 

4.

태주는 조금 이상한 구석이 있었지만 애는 착했다. 그런데 가끔은 나에게 집착하는 성향도 있었다. 나는 처음에는 돈 때문에 원조교제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숨겼었다. 그런데 그 애는 항상 이야기 할 때마다 모든 걸 꿰뚫고 있다는 듯이 말하곤 했다.

 

사는 게 힘들어. 돈이 너무 많이 들어.

 

아르바이트를 좀 해보는 건 어때?

 

다 하고 있지, 임마. 돈 버는 게 어디 쉽냐?

 

……세상에 남의 돈 버는 건 쉽지 않아. 그 일이 뭐든지.

 

그렇게 말하니까 꼭 내가 돈을 쉽게 번다는 뜻 같네. 나도 존나 힘들어 야.

 

존나 힘들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지만, 사실은 나보다 태주가 더 고생하는 건 사실이었다. 태주는 아르바이트를 3개 정도를 동시에 시간별로 했다. 왜 그렇게 돈 버는 것에 집착하는지 알 수는 없었다. 태주는 말이 없는 편이었지만 딱 보아도 그렇게 못 사는 애 같지는 않았다. 비록 임대 아파트에 살고 있고, 아빠 엄마가 모두 일을 해야만 하루 벌어먹고 사는 집이었지만 말이다.

엄마는 내가 대학교 2학년 1학기에 돌아가셨다.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이었다. 장례식장은 휑했다. 평소에 아빠가 엄마의 인간관계를 철저하게 막아선 덕분에 엄마는 그 누구와도 소통하며 지내지 못했다. 우울증에 걸려 집안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누워 있을 때에도 엄마는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그런 엄마가 조금 한심하다고 생각했었다. 살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각오가 되어 있는 나와 엄마는 정 반대였다. 나는 엄마까지 먹여 살려야 했다. 쉽고 빠르게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몸을 파는 게 가장 적당했다. 적당했다고 표현하는 것은 조금 웃기는 일이지만……. 정상적인 아르바이트를 할 순 없었느냐고? 그걸로도 충분히 살아지지 않느냐고?

내가 하는 행위에 대해서 정당화할 생각은 별로 없다. 내가 가진 것을 이용해 쉽고 빠르게 돈을 벌기 위한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했었고, 각오는 했다. 내 몸은 무용으로 다져져 아름답다. 젊고 아름다운 육체를 원하는 사람들은 많았다. 나는 들키지만 않으면 상관없다고 자기합리화를 하면서 버텨왔다. 그게 벌써 1년째다. 이제는 이 일도 익숙해졌다. 더러운 꼬라지 보면서 인생무상 느끼는 것도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다. 가끔은 엄마처럼 속편하게 죽고 싶다는 생각도 했지만, 디스 플러스와 조금 멍청한 표정의 태주가 나름대로 정신적 지주가 되어 주었다. 후회는 없는 삶이고 싶었다.

태주는 독립하는 게 꿈이라고 누누이 말했다. 아무의 도움도 필요 없이 자립하는 순간이 오면 자기를 사랑해줄 누군가와 함께 살 것이라고 했다. 자기를 갉아먹는 것은 지독한 외로움 이라고 했다. 생각해보면 태주는 칭찬받는 걸 좋아하는 것 같기도 했다. 가끔 디스 플러스를 내 가방 속에 하나씩 챙겨주곤 했는데, 그 때마다 나는 태주에게 고맙다고 괜히 유별나게 칭찬해주곤 했다. 그럴 때마다 태주의 얼굴이 그렇게 환하게 밝아지곤 했다. 마치 한 번도 웃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 생전 처음으로 환하게 웃는 것처럼…….

가끔 나는 괜히 그 사랑해줄 누군가가 설마 나를 지칭하는 건 아닐까 의심을 했었지만 태주는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도끼병으로 의심받고 싶지 않았던 나는 침묵했다. 설마. 하지만 가끔 디스 플러스를 내 가방 속에 하나씩 챙겨주곤 할 때마다, 어느 날엔가는 죽고 싶어 비오는 날 담배를 태우면서 울적한 표정으로 어딘가에 서 있으면, 그게 어디든지 짠하고 나타나곤 해서 나를 놀래키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도끼병이 자꾸 올라오려고 했다. 얘는 나를 좋아하나? 태주의 행동은 가만 보면 좋아하는 걸 알아달라는 것 같기도 했고, 때로는 모르는 척 해줬으면 하는 듯 소심하게 굴기도 했다. 그래서 태주를 보면 어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뭔가 잘못되었다고 느꼈던 건 내가 일하는 곳에서 태주는 마주쳤을 때였다.

 

이런 곳에 올 애가 아니었는데, 핼쑥한 잿빛 얼굴을 하고선 좁은 복도에서 나를 뚫어져라 노려보고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태주를 보고 소름이 돋았다. 금방이라도 나를 힐난할 것 같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조금 찔리는 구석이 있어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꺼내지 말았어야 할 이야기를 하고 말았다.

 

너 이런데 다녀?

 

그렇게 말은 하면서도 속으로 찔려 나는 가슴께가 민망하게 파인 민소매 티와 팬티가 보일 것 같이 짧은 치마를 양 손으로 잡아 끄잡아 내리며 가리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5.

누가 누구한테 하는 말인지 모를 대사는 그녀의 입에서 먼저 나왔다. 그녀는 오른손으로는 가슴께를 가리고 왼손으로는 짧은 치마를 무릎 쪽으로 끌어당기며 말했다. 나는 그녀에게 그건 내가 할 말이라고 대답했다. 너 이런 데 다녀? 그녀는 수치심 때문인지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리고 나를 스쳐지나가려고 했었다. 나는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어디 가.

 

씨발, 니가 무슨 상관이야!

 

혜영은 앙칼지게 손을 뿌리치고는 밖으로 나가버렸다.

나는 다 알고 있었다. 그녀가 고등학교 때부터 원조교제를 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그리고 대학교에 들어간 후 그녀의 걸음을 몰래 따라 밟을 때, 그녀가 향하는 곳이 어디인지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결국 혜영의 종착지가 여기여야 한단 말이야? 나는 화가 났다. 용납할 수 없었다. 그녀의 삶을 구제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그때부터였다. 내 머릿속에는 혜영의 삶을 구제해주고 싶다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그래서 그녀가 일하는 곳으로 직접 찾아갔던 것이다. 그런데 내 마음도 몰라주고 혜영은 매몰차게 굴기만 했다. 그 사건 이후로 혜영은 일하는 곳도, 연락처도 바꿔버리고 집도 옮겨버렸다. 나는 혜영을 찾기 위해서 학교를 수소문했지만 혜영의 행방을 휴학으로만 단정지어 알아내기 힘들었다.

 

하지만 사람 하나 찾는 것이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혜영의 새벽 퇴근길에 나는 취해 비틀거리는 그녀의 머리를 후려쳤다. 차 뒷자석에 기절한 혜영을 태우고 우리 집으로 향했다. 내가 힘들게 벌어 마련한, 나의 전셋집. 인적이 드문 곳에 있는 것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혜영과 함께할 미래를 생각하며 꿋꿋하게 버텨 만들어낸 성지. 조용하고 한적한 곳에서 복잡한 일 없이 살아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혜영이 더 이상 좆같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같이 살아갈 생각을 하니 설렜다.

 

혜영이도 좋아하겠지?

 

6.

띠릭 띠릭. 띠리릭.

 

……누군가 집으로 들어온 것 같다. 누구지?

 

저벅거리며 장판에 신발이 닿는 소리가 났다. 아주 천천히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다. 뭔가 이상함을 감지했다. 누구지? 집주인이라면 그냥 들어왔을 텐데, 이렇게 조심스럽게 들어오는 이유를 알지 못하겠다.

그는 아주 천천히 움직였다. 방문 여는 소리가 났다. 아까 현관문 쪽에 있던 작은 방문 쪽이 제일 가까우니까 그쪽일 것이다. 저벅 저벅. 내부를 확인한 듯 조금 더 걸어가는 소리. 어쩌면 식탁 밑이나 부엌 쪽을 살펴보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나라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빈집털이범인가? 이런 상황에서는 빈집털이범한테 살려달라고 애원해야 하는 건지 뭔지 모르겠다. 속이 울렁거릴 정도로 복잡해졌다. 베란다 중간 즈음에 어정쩡한 자세로 서 있는 팔다리가 후들거렸다.

그가 마지막으로 확인한 곳은 역시 안방인 것 같았다. 잠긴 문을 열고 그가 들어왔다. 나는 다리에 긴장을 주었다. 제발 얌전히 집만 털고 가라. 속으로 빌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미친 새끼가 무언가로 쿵쾅거리며 옷장을 때려 부수고 있다. ……?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걸 직감했다. 잘못되면 정말 뒤지겠구나. 나는 베란다 틈에 끼여 굳어버렸다. 저 정체 모를 둔기에 맞아 죽기라도 한다면. 저 무력에 나는 저항할 수 있을까? 두렵다. 저항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밖에 머릿속에 들지 않았다. 빈집털이범이 아니라 살인범인가보다.

……어떻게든 도망가려면 저놈이 안방 가장 구석진 곳까지 들어와야 한다. 그래야 현관문까지 달아날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이다. , 침착하게. 조금만 더 버텨보자.

 

저벅 저벅

 

쾅 쾅

 

혜영아. 어딨어?

 

……태주?

 

7.

저 문을 열면 혜영이 있다.

잠겨있던 문을 열었다. 혹여 갑자기 날아들까 두려울 무언가에 대비해 머리를 팔로 가린 채였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아무도……없었다. 아무도 없다는 것은 얌전히 침대에 누워있어야 할 혜영조차도 없다는 것. 하지만 안방은 숨을 곳이 많았다. 나는 일부러 위협하기 위해 망치를 벽에 쿵, 하고 소리 내어 쳤다. 벽에 쩡 하고 금이 갔다. 일종의 가벼운 경고였다. 숨바꼭질 놀이를 하자는 거라면 재미없으니 지금이라도 벽장에서 기어 나오라는 뜻이었다. 물론 죽일 생각은 없었다. 사랑하는 나의 혜영을 죽일 수는 없다. 나의 경고에도 안방은 묵묵부답으로 답했다.

나는 벽장문 하나를 열 때마다 망치로 쿵, 때렸다. 맨 먼저 연 곳은 숨어있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이불벽장이었다. 이불을 제끼면 쭈그리고 앉아 있을 정도의 공간은 되기 때문에 쉽게 숨을 수 있다. 하지만 아무도 없었다. 다음 옷장은 코트를 보관하는 행거가 있는 옷장이었다. .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문을 열어젖히자 해묵은 먼지가 쌓인 겨울 코트들이 드라이클리닝의 약품 냄새를 내며 걸려 있었다. 쾅 쾅 쾅. 점점 화가 났다. 나는 마지막으로 자잘한 옷들을 보관하는, 숨어 있을 가능성이 가장 낮은 벽장의 문을 열었다. 지긋지긋한 옷더미들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손발을 묶어놓았던 밧줄은 무언가에 의해 잘려진 흔적이 보였다. 손톱깎이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걸 보니 서랍 속에 있던 손톱깎이를 찾아 끈을 끊은 것 같았다. 손 부분을 묶어두었던 밧줄에는 피와 살점이 붙어 있었다. 그 연약한 몸으로 얼마나 뜯고 뜯었을까. 닫혀 있어야 할 암막커튼과 창문이 열려 있었다. 뜯겨진 채였다. 그녀가 얼마나 절박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아마 그 작고 고운 손톱으로 뜯었거나 맨발로 위험하게 발로 차면서 쥐어뜯거나 했겠지. 그러면 다치는데. 나는 베란다 창문 쪽으로 다가섰다.

 

8.

그 때, 안방과 이어진 베란다 창문이 우지끈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현관문이 쾅 닫히며 삐리릭, 하는 도어락의 신음소리가 났다. 나는 서둘러 거실로 나갔다. 방금 전까지 저기에 서 있었어……혜영이가.

 

……원래라면 그 자리에 바르게 놓여있어야 할 샌들이 완전히 이그러진 채 널브러져 있었다. 나는 망치를 잡은 손을 조금 더 세게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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