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차 <창작 콘테스트> 단편소설 공모-선악과

by 달나라꿈나라 posted Aug 10, 202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선악과




하늘이 눈을 감고, 미련하게 숨어있던 별이 발화하는 밤이었다. 나는 하루일과를 마감했다. 간단하게 기도를 드리고 방으로 들어가려던 순간, 문이 바다를 문지르는 파도처럼 열렸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눈을 게슴츠레 떴다. ‘타인은 달빛에 의해 온몸이 검은 그림자였다. 나는 타인의 얼굴을 확인할 수 없었다. 밤늦게 기도를 드리는 신자구나, 생각했다.

나는 까딱 고개를 숙이곤 내친걸음을 옮겼다. 그때, 가냘프면서 구슬픈 목소리가 들렸다.

-신부님?

나는 몸을 돌렸다. 신자는 여전히 검은 그림자였다.

-고해성사를 올리고 싶어요.

-죄송하지만, 시간이 지났습니다. 다음…….

나는 당장이라도 침대에 몸을 눕히고 싶었다. 오늘따라 유독 피곤했다.

-아뇨.

나는 말을 삼갔다.

-꼭 지금이어야 해요.

신자가 다가왔다.

-재차 말씀드리지만,

신자는 말을 빼앗아갔다. 심장에 풍선이 가득 찬 느낌이었다. 신자가 쓰윽쓰윽 다가왔다. 그녀에게서 여기(沴氣)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여기는 꿈틀꿈틀 바닥을 기어, 나의 발에 닿았다. 나는 뒷걸음질을 쳤다. 본능이었다.

-고해성사해야 해요.

시야를 아래로 내렸다. 그림자 끝자락에 대못이 들려있었다. 그렇다. 그녀는 신자가 아니라, 대못을 들고 감히 신부를 협박하는 자였다.

나는 묵묵히 그녀를 바라봤다. 건조해서 갈라진 손의 주름이 느껴졌다. 고심하다 결국, 그녀에게 따라오라는 손짓을 했다.

 

오후 1130분경. 고해성사가 시작되었다. 나는 좁은 고해실에 앉아, 가만가만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 잠이 양 떼처럼 몰려왔다. 나는 복슬복슬한 양털을 휘휘 몰아냈다. 손을 맞비볐다. 피곤해서 그런지, 지문이 예리하게 느껴졌다. 신부를 협박할 정도로 다급한 고해성사가 과연 무엇일까.

그녀를 몰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감히 대못을 든 그녀 또한 신의 종이기에, 나는 그녀의 오만함을 들어주기로 했다. 발설할 순 없지만, 상스러운 죄가 오가는 이곳에서 그녀는 어떤 대못을 박을까.

그녀는 우물쭈물하는가 싶더니, 포석을 툭툭 두들기는 비처럼 입을 열었다.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미라가 붕대를 풀고 환생하듯, 눈이 번쩍 뜨였다.

-?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그녀는 계속해서 말을 반복했다.

나는 당황하여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직, 제 말 끝나지 않았어요.

그녀가 침착하게 말했다. 마치, 아침에 홍차를 마시며 안부를 묻듯.

 

나는 다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다른 때와 같으면 장난질을 하지 말라며 혼을 낼 터였다. 그러나 그녀가 쥐고 있는 선악과는, 모든 것이 사실임을 증명했다. 맞은편에서 뱀이 구불구불 기어왔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뒷걸음질을 쳤다. 땅이 갈라진 듯 고해실이 흔들렸다. 몸이 벽에 부딪힌 탓이었다. 순간 긴 대못이 창문 살을 훅, 뚫었다.

-여기서 나가시면 신부님을 죽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지 말아 주세요.

그녀가 울먹였다. 그녀의 목소리는, 누가 보면 고해성사를 거부하는 신부에게 손가락질할 정도로 간절했다. 누가 죄인인가.

나는 멍하니 창문 살 틈으로 비치는 그림자를 부여잡았다.

-사실입니까?

-.......

-살인을,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저질렀습니까?

그녀가 뻔뻔스럽게 답했다.

-저는 살인을 저지르지만, 고해실에서 거짓을 고백하진 않습니다.

-용서를 비세요.

나는 바람에 흩날리는 썩은 이파리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자수하고 죄를 용서받으세요.

-?

그녀가 어리둥절한 목소리로 물었다.

-당장 자수하세요!

나는 호통을 쳤다. 예의 죄를 지으면 그에 마땅한 벌을 받아야 한다.

-고해실에서 참회하면 죄를 용서받는데, 굳이 경찰에게 고백할 필요가 있나요?

-살인은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왜죠?

나는 고해실 문을 벌컥 열었다. 문이 잠겼다. 나는 문고리를 대차게 흔들었다.

-문고리는 건드리지 마세요. 신부님을 해하고 싶지 않아요.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고해실 문은 일찍이 잠갔습니다. 신부님은 갇힌 겁니다.

나는 살에 낀 대못을 바라봤다. 대략 10cm 정도였는데, 끝이 날카로워 피부를 쉽게 관통할 수 있을 듯했다.

-원하는 게 뭡니까?

나는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제 말을 들어주세요.

나는 맞은편을 허망이 쳐다봤다.

-그게 신부가 할 일이잖아.

맞은편에 앉은 자의 얼굴은 볼 수 없지만, 나는 본능적으로 그녀가 비열하게 웃고 있음을 알았다.

그녀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꾸며낸 이야기인지 사실인지는 가 판단할 몫이었다. 어지러웠다. 겨울인데도, 고해실 안은 여름이 훌쩍 다가온 것처럼 더웠다. 이마에 땀이 방울방울 맺혔다. 나는 주름진 손으로 땀을 닦으며, 고해실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그녀를 어떻게 설득할지, 고해실에서 나가면 그녀를 고발해야 할지, 신부로서 방만하게 죄를 지은 그녀를 가엽게 여겨야 할지 고민했다.

머리에 이글거리는 태양이 들어있는 것 같았다. 지금이야말로 신이 를 시험하고 있다.

나는 시험에 빠진 나약한 인간이었다. 그러나 신이 있어, 나는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나는 손을 맞잡고 기도를 드리며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끔찍했다.

-제대로 들었나요?

-.

나는 코를 찌푸렸다. 그녀에게 악취가 났다. 그녀는 쓰레기통에 버려진 새끼 고양이 탈을 쓰곤 야옹, 야옹거리는 악마의 종 같았다.

-20대 되는 여성이었어요. 머리는 뱀처럼 구불구불하고 이목구비가 날카로운 게, 꼭 메두사가 되살아난 것처럼 생겼어요. 빨간색 꽃무늬 원피스를 입었는데 팔다리가 꽤 길더라고요. 몸집은 보통이었고요. 악이 만들어낸 생명이 분명했어요. 그래서 저는 그 여자를 뒤따라갔죠. 영통에 있는 H대 공대생이더군요. 복학했는지, 동기들하고 잘 어울리지 못하는 듯했어요. 강의실까지 따라 들어갈 순 없었지만 뭐, 빤하죠. 제가 낙오자는 잘 알아보거든요. 학생회관 식당에서 홀로 배를 채우고, 강의가 끝나자마자 제일 먼저 뛰쳐나오더군요. , 참고로 말할 게 있는데 저는 그렇게 편협한 사람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제 말은, 타인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다고요. 그런데 사람은 촉이라는 게 있잖아요. 그 여잔 한눈에 봐도 낙오자였어요. 그러니까 제 주제를 모르고 를 치고 다니지. 어깨를 치고도 죄송하다는 말도 없더군요. 그래서 그 여자를 죽였어요. 때는 여자가 거처로 돌아가는 길이었죠. 집은 원천동에 있는 허름한 아파트 근처였어요. 그녀가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저는 그녀를 덮쳤죠. 그녀의 입을 손수건으로 틀어막고 골목으로 끌고 갔어요. 발버둥 치더라고요. 죽을 때가 도래하니까, 그제야 그 가증스러운 입으로 용서를 빌었어요. 자신이 어떤 죄를 저지른 지도 모르면서! 하찮죠. 인간은 참 나약해요. 저는 분노했어요. 그녀의 머리칼을 부여잡고 뭘 잘못했는지 말하라고 했죠. 침묵이 흘렀어요. 밤이 미꾸라지처럼 미끄러져 낮이 되어가는 시간 동안,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어요. 저는 기다렸죠. 기다리고 또 기다렸어요. 그녀의 잇새로 뭐라도 나오길 바랐어요. 단언컨대 허접쓰레기 같은 변명이라도 했으면 그녀를 살려뒀을지도 몰라요. 그녀는 멍청하게 잘못했다고만 하더군요. 너의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빌고 또 빌어도 그녀는 제 말을 듣지 않았어요. 오만하게 를 무시한 거죠. 분노가 치미더군요. 발톱부터 정수리까지 찌릿찌릿한 전기가 흘렀어요. 눈이 뒤집히고 손발이 덜덜 떨렸어요. 저는 전율했죠. 마치 오르가슴에 오른 창녀처럼 말이에요. 저는 참지 못하고 이 대못으로 그녀의 목을 찌르고, 복부를 찌르고, 허벅다리를 찌르고, 발목을 찔렀어요. 그녀가 피를 토하며 허덕였죠. 마른 바닥에서 발버둥 치는 물고기 마냥……. 아가미를 뻐끔뻐끔 벌리며, 지느러미를 사르르 떨더군요. 그녀가 숨을 힘겹게 내뱉었어요. 제가 물었죠.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있어? 그녀가 입을 오므렸다 피기를 반복했어요. 마치 사시사철 푸릇푸릇한 상록수 같더군요. 그 주둥이는 죽을 때까지도 닫힐 생각을 안 했으니까.

나는 기도했다. 무참히 죽은 피해자의 이름은 모르지만, 부디 천국으로 가길. 신의 가호가 함께 하길.

-신부님. 그 여자가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글쎄요.

나는 애써 덤덤히 말했다. 속으로는 미꾸라지 한 마리, 아니 천 마리가 발버둥을 쳤다. 피해자의 실루엣이 눈앞에 선연하게 그려졌다. 나는 그녀를 붙잡고 싶었다. 악마의 유혹에 끌려가지 말라고. 악마에게서 도망치라고!

-지옥에나 가버려.

침묵이 흘렀다. 그녀의 손목시계가 똑. . . . 흘렀다. 시침이 칼이 되어 나의 목을 자르는 듯했다.

-그래서, 여기에 왔어요. 제가 지옥에 갈지 궁금했거든요. 천국에 갈 생각은 없지만 흠……. 뭔가 찜찜하더라고요.

그녀가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천국에 가고 싶은가요?

나는 그녀를 비꼬았다.

-아뇨. 저는 사후세계를 믿지 않아요.

-그럼 왜 저를 찾아왔나요.

-송구스럽게도, 저는 신부님 뒤를 캤어요. 듣기로는 마을 사람들에게 촉망받고 있더군요. 그래서 그 대단하고 위대하신 신부님께선 제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무슨 말을 할지 궁금했어요. 저는 마지막 말을 꽤나, 퍽 좋아하거든요.

 

만물은 기승전결을 품는다. 인간, 가축, 상록수, 연필, 심지어 잡초까지도 기승전결을 따른다. 씨앗이 움트고, 컴컴한 흙속에서 신의 따스한 가호를 간구하며, 뿌리를 내리고 싹이 트며 줄기를 뻗는 과정....... 모든 과정에는 예의, 처음과 끝이 있는 법이다. 그러나 그녀의 이야기는 예외다. ‘기승전결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다. 시작 다음에 바로 끝이 도래한다. 이야기의 핵심은 이렇다. 피해자가 마귀의 어깨를 쳤다. 마귀는 피해자를 죽였다.

 

동남아에 온 것처럼 땀이 방울방울 맺혔다. 등이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좁은 고해실 바닥이 뜨거운 사막 같았다. 발바닥이 벌겋게, 퉁퉁 부어올랐다.

이야기의 진실 여부를 떠나, 그녀를 당장 정신병원에 처넣고 싶었다. 가엾은 양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게 신부의 도리다. 나는 그녀를 설득했다. 그러나 그녀는 내 말은 한사코 듣지 않았다. 그녀는 되도 않는 아망을 부리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래서 당신은 살인을 정당화하는 건가요?

나는 물었다.

- ‘정당화는 다분히 주관적이잖아요. 죄질은 신부님께서 직접판단해주길 바라요.

-왜 저인가요?

-이유가 중요한가요? 지금 상황에서?

나는 발을 꼼지락거렸다. 발이 신발 틈을 비집고, 점점 부풀었다. 발에 종기가 하나, 둘 생기는 듯했다. 그녀의 이야기는 계속 되었다.

-저는 천애고아에요. 배꼽에 탯줄을 달고 버려졌죠. 추운 한겨울에.

나는 맞은편 그림자를 주시했다.

-어머니는 절 버렸어요. 자식을 사랑할 수 없는 저주에 걸리기라도 했나 봐요. 안타깝죠.

그녀는 제 과거를 마치 타인의 이야기 마냥 늘어놓았다.

-아버지는 어디에 계신지 모르겠어요. 어머니가 동정녀라도 되나 봐요.

신성모독적인 발언이 가시 박힌 덩굴이 되어 를 칭칭 감쌌다. 역시, 나는 신의 시험을 받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용서할 수 없었다. 그녀가 신의 종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나는 처음으로 모든 인간을 사랑하기로 한, 나의 신념을 의심했다. 그녀의 악취만큼, 이야기에는 구린내가 진동했다.

-어머니가 동정녀면 저는 예수인가요? 웃기네요. 그래서 사람을 판가름하고 죽였나 봐요.

-또 다른 살인을 저질렀나요?

-당연하죠. 첫 살인은 의도되지 않아요. 처음은 우발적이죠. 저는 양아버지를 죽였어요.

-왜죠?

-죽어야 마땅했으니까요.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양아버지는 저를 고아원에서 거두었어요. 제 나이 7살이었죠. 저는 선택받은 아이었어요. 아버지는 안양에 커다란 농장을 소유했고, 가축도 풍부했죠. 돼지, , 양 등 없는 게 없었어요. 저는 양아버지의 손을 잡고 농장으로 향했죠. 커다란 밭이 끝도 모르게 펼쳐있었고, 한쪽에는 가축우리가 줄지어 있었어요. 밭 한 쪽에 농부를 위한 간의 화장실이 있었고, 우리 뒤쪽에는 이층으로 된 커다란 저택이 있었죠. 아직도 기억이 나요. 빨간 지붕에 빨간 벽돌로 된 집....... 저는 그때당시 너무 기뻐서, 아버지의 품에 안기며 폴짝폴짝 뛰었어요. 드디어 가족이 생겼다는 게 믿기지 않았죠. 세상에서 홀로 버려진 느낌은 정말로, 더럽거든요. 세상 누군가 제 손을 잡아줬다는 게, 신의 보상 같았어요. 어머니가 저를 버린 대신, 새아버지를 선물해주신 거죠. 저는 아버지에게 물었죠. 제 방은 어디에요? 아버지는 저를 뚫어져라보더니 제겐 줄 방이 없다고 하셨어요. 단호하고 가시 박힌 목소리로요. 고아원에서 저의 머리칼을 다정히 쓰다듬던 사람과는 딴판이었죠. 왜 그땐 몰랐을까요. 신이 저를 더 가혹한 지옥으로 끌어들였다는 걸요. 저는 돼지우리에서 살았어요. 돼지가 아무리 깨끗한 동물이라고 한들, 배설물도 치우지 않은 우리에서 돼지와 사는 건 역겨운 일이에요. 배설물과 함께 잤어요. 저는 인간이기를 포기했죠. 돼지와 하루 종일 있다 보면, 제가 돼지인지 인간인지 헷갈릴 때가 있어요. 양아버지는 돼지에게는 사료를 충분히 줬어요. 그러나 제게는 아무것도 주지 않았죠. 저는 점점 말라갔어요. 피골이 상접했죠. 배가 고파서 미칠 것 같았어요. 잠도 오지 않았어요. 그래서 돼지 사료를 먹었죠. ‘라는 존재가 아버지에게 잊힌 듯 했어요. 그렇게 한 보름이 지났을 거예요. 저는 갈증을 참지 못하고 우리 밖을 뛰쳐나갔어요. 다리가 후들거려서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어요. 한발자국 내딛을 때마다 넘어질 것 같았죠. 몸이 앞뒤로 계속 흔들렸거든요. 저는 밭 근처에 있는 화장실로 갔어요. 세면대가 없었죠. 목이 말랐어요. 그래서 남자화장실로 가서, 소변기 물을 핥아먹었어요. 저는 인간이 아니었죠.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신은 가혹해요. 저는 목만 축이고 우리로 돌아갔는데, 하필 그때 양아버지가 우리 앞에 서있었죠. 아버지는 제게, 도망치려고 했냐며 호통을 쳤어요. 아니라며 극구 부인했죠. 아버지는 제 말을 믿지 않았어요. 아버지는 감히 거짓말을 하는 거냐며, 저를 채찍질했어요. 가축에게 휘두르는 채찍으로 저를 무자비하게 때렸어요. 의문이 생겼죠. 아버지는 저를 사랑하지 않을 거면서, 왜 입양을 했을까. 나중에 되어서야 알게 되었죠. 그때당시 정부가 추진하던 기획안이 있었어요. 고아원 수가 늘어나서 세금이 많이 드니, 입양절차를 진행하면 양부모가 정부보조금을 받았어요. 그래요. 양아버지는 단순히 돈 때문에 저를 입양한 거였어요. 그래도 전 아버지를 사랑했어요. 제 유일한 가족이니까요. 까마득한 과거라 날짜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제가 10살이 되던 해 양아버지가 저를 집으로 부르더군요. 웬일인지 돼지사료가 아니라 사람음식을 주셨어요. 저는 삼겹살을 허겁지겁 먹어치웠죠. 그때 그 삼겹살은 정말이지, 정말로 맛있어요. 노릇노릇하게 구워졌는데 기름도 적당하고 두께도 적당한 게 맛이 최상급이었죠. 아버지는 저를 씻겨주신다며 화장실로 데려갔어요. 그리고 저를 강간했죠. 저는 나이가 어려, 앵혈을 뺏기는 줄도 몰랐어요. 그저 아버지가 저를 혼내는 줄 알았죠. 집을 들락날락거리는 횟수가 쌓이고 나이가 들어 월경을 시작했을 때 처음 깨달았어요. 아버지가 제게 무슨 짓을 했는지! 저는 배설물과 함께 살았고, 돼지 사료를 먹었으며 화장실에서 목을 축이고 열흘마다 한 번씩 아버지 집으로 가 몹쓸 짓을 당했어요. 가르침도 받지 못했죠. 아직도 글을 익히지 못했어요. 저는 바보천지가 되어서, 아버지가 기라면 기고 누우라면 눕는 돼지새끼가 되었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아버지가 제 뺨을 무자비하게 때리고 제 등을 발로 차실 때, 울컥 화가 치미더군요. 아버지는 왜 나를 한 번도 안아주지 않을까. 왜 나의 머리칼을 다정히 쓰다듬지 않을까. 이렇게 굴려면 애초에 희망을 주지 말지....... 아예 희망의 싹을 뽑아버리지! 그래도 아버지를 죽이진 않았어요. 대신 원망은 했죠. 아버지를 죽이기로 마음먹은 건, 수치감이 들었을 때에요. 술에 취한 아버지는 열일곱이 된 저를 길거리로 질질 끌고 나갔죠. 그러곤, 옷을 벗겼어요. 이상한 성적취향이라도 있는 건지, 한낮에 구불구불한 길에서 네발로 기라고 하더군요. 동네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요. 저는 네발로 기었어요. 아버지의 명령이니까요. 이런 사람을 과연 아버지라고 부를 가치가 있을까요. 손과 발에 유리조각이 박혔어요. 그래도 기었어요. 기고 기다보니까 유리파편이 점점 살 속으로 파고들더군요. 발자국에 피가 흥건했어요. 아버지는 저를 보고 낄낄 웃었죠. 수치스러웠어요. 엉덩이를 치켜들고 남들 다 보는 앞에서, 그곳을 드러내고 네발로 기는 심정이란....... 그날 밤, 아버지를 죽였어요.

-세상에.......

-집 창문을 깨고 부서진 유리조각으로 아버지의 멱을 따버렸죠. 아버지는 제게 용서를 구했지만 오, 사람은 바뀌지 않아요. 아버지는 회생 불가능한 인간이었어요. 저는 아버지의 목에 유리조각을 박아버렸어요. 집에 불을 질러 증거인멸을 했고, 저는 나이가 어려, 용의자선상엔 들어갔지만 법망은 쉽게 피할 수 있었어요. 아버지에겐 적이 많았거든요.

침묵이 흘렀다. 땀이 마르면서 체온이 내려가, 손발이 떨리기 시작했다. 나는 손을 맞비비며 열을 내려고 노력했다. 고해실에 떠있던 해는 지고, 싸늘한 달만이 얼음처럼 동동 떠있었다. 나는 고해실 천장을 바라봤다. 꽉 막힌 천장이 답답했다. 나는 기도했다. 제발 이 어린 양을 구원해주소서.

-두 번째 살인은.......

-도대체 몇 명을 살해한 거요?

나는 버럭 화를 냈다. 기실, 그녀의 이야기를 더는 들을 수 없었다. 구역질이 났다. 배에 열 시간은 탄 것처럼 속이 울렁거렸다. 당장이라도 바다에 토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다.

-제가 불쌍하지도 않으세요?

-어떠한 상황에서도 살인은 정당화되지 않아요.

-당신 얘기 아니라고 섣불리 판단하지 마. 당신은 평소에 가증스러운 동정심을 발휘해서, 이 고해실 안에서 수많은 죄를 용서했잖아. 어디, 그 작은 뇌를 한번 굴려보라고. 상상해봐. 돼지처럼 살아가는 인생이 어떤 건지!

-, 하느님!

머리카락이 온탕 다 빠질 것 같았다. 한 인간으로서, 나는 그녀에게 같잖은 동정심이 들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천국에 갔을까 지옥에 갔을까. 신은 그녀의 양아버지에게 어떤 판정을 내렸을까. 그녀의 첫 번째 살인은 정당화될까.

기실, 그녀가 최근에 저지른 살인은 용서할 수 없었다. 감히 가 그녀의 죄를 판단할 수 있다면 말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차마 내가 함부로 말할 수 없었다. 인간은 인간으로서 마땅히 대우받아야한다. 인간은 숭고하다. 누추하더라도 의식주가 보장된 상태에서야 비로소 인간은 빛을 발휘할 수 있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곤, 자수하라고 설득하고 싶었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는 신부지, 신이 아니며 악귀도 아니다. 그녀의 죄를 과연 가 판단할 수 있을까. 만일 내가 판단할 수 있다면, 나는 그녀의 불우한 과거를 참조하여, 죄인은 용서할 수 있을까.

피해자의 억울함은 누가 보상해줄 것인가. 그녀가 죽인 수많은 피해자는!

-두 번째 살인은, 제가 가축우리에서 도망치고 나서 일어났어요. 글을 모르니 취업을 할 수 있을 리 만무하죠. 그래서 몸을 팔았어요. 그러다 제 첫 번째 애인을 만나게 되었죠. 인계동 뒷골목에 있는 성인 술집에서 일을 했는데, 돈을 많이 줬어요.

-......

-처음 돈을 만져봤죠. 당시 저는 돈의 개념이 없었기에 버는 족족 쓰기 바빴어요. 그래서 지금도 통장에 잔고가 얼마 남아있지 않아요. 술집 인식이 나쁘다는 건 알지만, 찬밥 더운밥 가릴 신세는 아니죠. 그런 인식을 신경 쓸 성격도 아니고요. 어찌되었건 제가 술집에서 막내였어요. 그래서 마담언니가 꽤나 잘해줬죠. 술집가보신적 있으세요? 술집에는 룸이 여러 개 있는데, 저는 그곳 호스티스였어요. 술집이름은 말하지 않을게요. 마담언니와의 의리가 있으니까요. 재차 말하지만 마담언니가 갈 곳 없는 저를 거둬줬어요. 술집에서 의식주를 모두 해결했죠. 주방에서 과일을 깎아서 룸에 넣어주고, 가끔씩 룸에 들어가 술을 따라주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돈을 달라며 아양을 부리는 게 제 역할이었어요. 저는 술집에서 꽤나 잘 버텼어요. 선수들이 세대교체가 되어도, 저는 끝까지 남아있었죠. 룸에 자주 들리는 손님들 중 김한별이라는 남자가 있었어요. 키가 꽤나 훤칠하고 얼굴도 반반하게 생겼죠. 술집을 많이 다니는 손님들은 선수들을 다룰 줄 알아요. 한마디로 뽕을 뽑을 줄 알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술값으로 돈만 내고, 지루하게 시간을 보내고요. 김한별은 후자였어요. 어수룩하니 술만 홀짝홀짝 마시면서, 선수들한테 스킨십도 못하고 손만 비비는, 신부님 같은 스타일이었죠. , 신부님 욕하는 건 아니니까 기분 나빠하진 말아요.

그녀가 낄낄거렸다.

-김한별이 술집에 5번 왔을 때였나? 저를 룸으로 부르더라고요. 저는 그의 옆에 초코파이처럼 뚱하게 앉아있었죠. 지루했어요. 그와의 첫 만남은.

그녀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그가 먼저 말을 걸더군요. 저를 눈 여겨 봤었다고. 제가 좋다고요. 저는 그를 사랑하지 않았어요. 당연 좋아하지도 않았죠. 언제 봤다고 그를 좋아하겠어요. 그런데 그가 주는 돈은 좋아서, 혀를 내밀며 입발림을 했죠. 그렇게 그와 만나게 되었어요. 그와의 첫 만남은 다분히 의도적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생겼어요. 그래서 술집 밖에서 그를 만나기도 했죠. 그는 인천에 있는 인공지능 회사에 다니는데 아, 이런 얘기는 하면 안 되겠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홀어미를 모시느라 가정형편이 좋지 않았어요. 그래서 제가 데이트 비용을 다 냈죠. 그는 아버지와 다르게, 저를 쓰다듬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안아줬어요. 제가 어떤 행동을 하든, 다 받아주었죠. 그는 저를 만나기 시작하면서, 술집에 드나들지 않았어요. 반면 저는 술집에서 일하는 덕에 수많은 남자들의 품에 안기고 엉덩이를 흔들어댔죠. 그래도 그는 저를 좋아하더군요. 운명인가 싶었어요. 저처럼 볼품없고 쓰레기 같은 사람을 좋아하는 남자가 있다니. 신기하죠. 자연스레 그와 결혼을 약속했어요. 결혼을 하면 마음먹고 제대로 살 작정이었죠. 술집은 끊고 그의 홀어미를 모시면서 남은 인생을 보내기로 했어요. 결혼식은 약소하게 올리기로 했죠. 돈이 없었으니까요. 마담언니한테 결혼 소식을 알렸는데, 정색을 하더군요. 당연한 반응이라고 생각했어요. 몇 년을 같이 일한 직원이 나간다니까 기분이 나쁠 만하잖아요.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요. 마담언니가 그러길, 그가 성폭행 범이라더군요. 저보고 조심하라고 신신당부를 했어요. 저도 제 아비를 죽인 전적이 있기에, 그러려니 했어요. 그런데 결혼 직전에 일이 터지고 말았죠. 인터넷 성인사이트에 제 사진이 올라왔어요. 사진뿐만 아니라 동영상까지 올라갔죠. 저는 몰랐어요. 마담언니가 알려줬는데, 그런 사진과 동영상이 올라온 지 한 1년 되었더라고요. 작성자는 모두 퇴색한 별빛이었어요. 그이 닉네임이었죠.

-그래서, 그를 죽였나요?

-아뇨.

나는 놀라 고개를 돌렸다.

-둘 다 죽였어요.

-마음 같아서는, 제 알몸을 본 남자들을 모두 죽이고 싶었죠. 그런데 인터넷이 무서운 게 익명이라는 블라인드 뒤에 숨을 수 있잖아요. 숨은 사람을 제가 어떻게 찾아요. 그래서 김한별을 죽이고, 그의 어머니까지 죽였죠.

-어머니는 왜 죽였습니까?

-악마의 씨앗을 품은 죄.

그녀가 또 킬킬 웃었다. 그러더니 깔깔 웃었다. 그러더니 호탕하게 껄껄 웃었다.

-된통 당하고 나니까 믿을 만한 사람이 없더군요. 마담언니한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곤, 술집에서 나왔어요. 그러곤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돈을 훔쳤죠. 처음에는 살기 위해서 죄질이 있는 사람들만 죽였어요. 주로 성폭행 범이었죠.

-죄책감은 들지 않던가요?

-전혀요. 피해자 대신 정의를 구현했다고 생각해요.

온몸의 피가 불끈불끈 거꾸로 솟구쳤고, 다리가 저릿저릿했다. 피해자를 범한, 피해자를 죽였다는 사실이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이야기를 들을수록, 그녀가 악마라는 사실이 흐릿해져갔다. 끔찍하게도. 이야기가 진행 될수록, ‘는 그녀에게 동화되고 있었다.

-세 번째 살인은, 성폭행 범이었어요. 얼굴은, 기억이 잘 안나요. 어둠속에서 대못으로 살인을 한 거라....... 살인을 저지르다 보니까 무뎌지더라고요. 이때부터 자그마한 꼬투리라도 보이면 사람들을 죽이고 다녔어요. , 무작정 죽이진 않았어요. 이유가 있어야 죽였죠. 제가 악의 심판자가 된 거에요. 담배피우는 아저씨를 폭행한 중학생을 죽이고, 술 먹고 차를 운전했다가 교통사고를 낸 고등학생을 찾아가 죽이고, 지하철에서 제 엉덩이를 주무른 여자를 죽이고, 바닥에 껌을 뱉는 직장인을 죽이고, 제 어깨를 친 여자를 죽였어요.

우주가 뱅뱅 돌기 시작했다. 숲의 껍데기가 허물어지고, 하늘의 지문이 깎이고, 땅의 발자국이 흐트러졌다. 나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할 수 없었다. 그녀의 살인에는 이유가 있었다. 물론 가벼운 살인은 정당화 될 수 없지만, 그렇지만, 그녀가 살인을 저지르게 만든 사회에게도 책임이 있었다. 그렇다면, 그녀의 죄는 정당한가?

이유가 있는 살인은 정당한가? 그녀의 어깨를 친 피해자는 무슨 죄인가? 살인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그러나!

-복역한 적이 없나요?

-없어요.

-어떻게? 어떻게 들키지 않았죠?

-신부님 전 지문이 없어요. 어렸을 적부터 수시로 땅을 기는 덕분에 지문이 남아나질 않았죠. 지인도 없어요. 마담언니가 있긴 한데, 최근 자살했더라고요. 물론 저만의 비법도 있죠. 그러나 그걸 알려드리기엔 시간이 부족하네요.

-......

-신부님?

-.

-, 지옥에 갈까요?

그녀가 킬킬거리며 물었다. 나는 답을 하지 못했다. 모든 사람을 사랑하기로 한 의 신념이 무너져 내렸다. 모든 인간을 존중하기로 나의 믿음이 뭉개졌다. 나는 를 잃었다. 그래서 답을 할 수 없었다.

그녀가 한동안 웃더니, 대못을 창문 살에 쑤시기 시작했다.

-이봐, 신부.

-. 말씀하시죠.

-제가 당신을 죽여야 할까요? 제 모든 과거를 알고 있는 당신을 죽여야 할까요?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글쎄요.

-시시하게.

-신이 판단하시겠죠.

-그 잘난 신은, 저를 왜 만들었을까요. 사회의 심판자가 되라고?

-신의 뜻이겠죠.

-.......

-.......

-.......

-자매님?

-......

-자매님?

나는 문고리에 손을 갖다 댔다. 문이 벌컥 열렸다. 휘청거렸다. 넘어질 뻔했다. 나는 재빨리 제정신을 차리곤, 옆문을 열었다. 텅텅 비어있었다. 나는 살며시 의자에 손을 대었다. 온기로 따뜻했다. 금방 나간 게 분명했다. 나는 헛것을 들은 게 아니다.

 

주변을 둘러보며, 누가 있나 살펴보았다. 그녀의 얼굴을 봐야했다. 적어도 그녀의 이름만이라도 알아야했다.

아무도 없었다. 나는 허망이 열린 성당 문을 바라봤다. 나는 뛰쳐나가 주변을 살폈다. 그때, 누군가가 이쪽으로 걸어왔다.

-자매님!

나는 헐레벌떡 뛰어갔다.

-신부님! 한밤중에 어디가세요?

수녀님이었다.

-혹시, 방금 전 성당에서 나간 자매님 못 보셨습니까?

-전혀요.

-정말입니까?

나는 다급히 물었다.

-아무것도 못 봤어요.

수녀가 당황하며 말했다. 나는 제자리에서 주저앉았다. 수녀님이 나를 일으켜 세우며, 괜찮으냐며 여러 번 물었다. 황망했다. 헛것을 보았나? 헛것을 들었나? 아니다. 그녀는 분명 존재했다. 나는 그녀를 알아야만 했다.

나는 성당 주변을 구석구석 뒤졌다. 분명 멀리가지 않았을 거다.

 

새벽 5. 동이 텄다. 지평선 위로 태양이 점점 위로 올라왔다. 길가로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를 찾아 헤맸다. 1시간 정도 지나자 길가에는 사람들로 가득 찼고, 나는 그녀를 찾을 수 없었다.

 

그녀의 이야기는 진실이었을까. 그녀의 죄는 정당화되었을까. 죄는 고해실에서 용서받았을까? 나는 그녀를 용서했을까.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아무도 그녀를 보지 못했기에


Articles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