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7차 창작 콘테스트 단편소설 공모 -서울의 꿈-

by 달월 posted Aug 2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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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서울의 꿈

 

1975

 

민수는 배가 고팠다.

부엌 구석에 매달린 선반 위로 삶은 감자가 놓여 있는 것이 보였다. 발돋음을 해서 손 끝으로 잡으려 해 보았으나 키가 작아 될 턱이 없었다. 그때, 마당 한가운데 읍내에 내다 팔려고 모아둔 가마니 더미가 보였다. 민수는 재빨리 달려가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선반 밑에 쌓았다. 감자를 먹기 위한 민수의 욕망은 대단했다.

감자는 너무도 달콤했다. 하지만 그것을 다 먹어서는 안 되었다. 형수님의 화난 얼굴이 눈에 선했다.

"선반 위의 감자 누가 먹었당까?"

형수는 새빨간 볼을 더욱 쌜죽거리며, 말을 이었다.

"진우, 니냐? 아니면 신우 니냐?"

꼬마 자식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고개를 흔든다.

민수는 논두렁 샛길진 곳에서 혼자 물장난을 하고 있었다. 서울에 계신 엄마 생각이 났다.외가집에 사는 형도 보고 싶었다. 세 식구가 떨어져 사는 것이 민수는 슬펐다.

어린 민수로서는 감당하지 못할 만큼 괴로움의 나날이었다. 아빠가 돌아가시자 당장 생계가 곤란한 처지에 놓여 엄마는 서울로 상경하고 형은 외갓집에 민수는 사촌 형 집에 따로 맡겨져 살고 있는 것이다.

"민수얏 !"

째지는 듯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소년은 흠칫 놀라와 논두렁 속으로 빠질 뻔했다. 민수 앞에 화난 얼굴로 팔을 꼬고 서 있는 형수의 모습이 보였다.

"잠깐, 따라와 보랑께."

형수는 민수의 팔을 낚아채듯 집으로 끌고 들어갔다. 억센 손이 압박해와 소년은 통증을 느꼈다.

"삶은 감자 니가 먹었제?"

"....... ."

기어드는 목소리로 민수는 대답했다.

"그걸 와먹노 ,이것아 !"

가녀린 소년의 뺨이 크게 흔들렸다. 이 정도 서러움이야 형수에게 늘 받아왔던 민수지만 꼬마에겐 힘이 없었다.

해가 질 무렵 사촌 형님이 일터에서 돌아왔다. 정님이 상식에게 다가갔다.

"-민수 말이여 서울 엄마한테 보내야 겠어라 !"

정님이 말했다.

"글씨, 생각 쫌 해 봐야 겄어. 내게 맡겨둔 논도 좀 있고 한디...... ."

"아따, 생각할 거 뭐 있다요? 내일 쯤 해서 보내부쇼."

"그라도 어째...... ."

그는 뭔가 탐탁지 않은지 망설였다.

다음날 아침 상은 유난히 푸짐했다.

"오메 !이거 머여? 엄니 오늘 무슨 날이라요?"

막내 신우가 법석을 떨었다. 명절이나 잔칫날이 아니면 맛보기 힘든 생선이 올라와 있었다.

"아제, 이거 먹어봐 ,맛있당께 !"

신우가 큼직한 생선을 민수의 밥 위에 놓았다.

"아녀 ! 니나 많이 먹어."

민수는 대답했다.

식구 중에서 민수는 신우와 유일하게 친한 사이였다. 형님도 민수를 조금 위해주었으나 그럴 때는 아내의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 했다.

아침 햇살이 가난한 초가집 지붕을 비추고 있었다 하늘 높이 먹이를 찾기에 분주한 매들이 공중을 돌고 있었다. 마당에 한가롭게 뛰노는 병아리를 보호하려고 암탉은 재빨리 새끼를 날개 품에 감아 들였다.

"다 됐다냐?"

사촌 형의 목소리다.

"조금만 하면 되지라."

"아따, 싸게싸게 하랑께. 뭐 그리 느리다냐."

정님의 콩 볶는 듯한 말투는 소년을 초조하게 만들었다.

"시방 나가지라"

"성님 어딜 간당까요?"

"알 것 없다. 잠자코 따라 오기나 혀라."

소년의 이마에서 땀이 흘렀다. 상식이도 더운지 손등으로 이마를 닦았다. 신작로를 따라 좌우에 길게 뻗은 느티나무 잎들이 바람에 한들거렸다. 잠시 후 버스 한 대가 흙 쌓인 시골길에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와 멈췄다. 둘은 재빨리 올라탔다. 창가에 자리를 잡은 민수는 시종 신기한 눈으로 바깥을 내다보고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 타 보는 버스는 새로운 세상을 보여 주었다.나무가 움직이는지, 버스가 질주하는지 분간 할 수 없었고 산과 논들이 온통 뒷전에 쳐져 순식간에 지나는 것이 마냥 신기했다.

길가는 사람들이 저마다 동경의 손을 흔들고 있었다. 소년도 그들에게 조그만 손을 저어 주었다.

무더운 대낮에 버스는 쉬지 않고 달려 느지막이 역에 도착했다 .역은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황혼이 깃들기 시작할 무렵 기차가 무거운 쇳소리를 내며 질주해왔다. 상식이 소년의 손목을 꽉잡고 말했다.

"내 손을 잡어라 ."

둘은 많은 사람들 틈 사이에 애써 올라탔다. 서울행이라 쓰여져 혹시 엄마한테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들었으나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열차 안은 발붙일 틈도 없었다. 민수는 간신히 좁다란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기차는 어두운 철로를 긴 기적 소리를 내며 쉬지 않고 달렸다. 민수는 몸이 고단해 의자 난간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 잠이 깨었을 때는 새벽녘이었고 서울역에 도착해 있었다. 역 대합실을 가로질러 천천히 걸어 나오는 민수에게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수많은 빌딩들, 그리고 자동차들......많은 사람들과 휘황찬란한 간판들......소년은 경이와 흥분에 찼다. 사진으로만 보아왔고 귀로 듣기만 했던 서울의 풍경을 직접 마주 대하게 됐다는 것이 꿈처럼 느껴졌다. 민수는 두리번거리며 넓은 광장을 걷기 시작했다. 광장에 솟은 시계탑이 여섯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 밑으로 민수에게 낯익은 여인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여인은 누구를 기다리는 모양이었다. 머리를 돌려 지나치는 행인들을 살피고 있었다. 순간, 소년은 북받치는 반가움에 어쩔 줄 모르고 상식과 잡았던 손을 뿌리치고 달려갔다.

"엄마아~"

근 삼년 여 동안 친척 집에서 핍박과 욕짓거리를 들어온 것이 한마디로 폭발하는 듯 했다.

"엄마, 보고 싶었지라우. 참말로 보고 싶었지라우."

떨리는 말과 함께 뺨으로 눈물이 떨어졌다.

"그래, 그래 민수야 ,차타고 오다 멀미 안했어 ?"

"난 그땅거 안했어라. 밤새 잠만 잤당께!"

뒷전에 서서 모자의 상봉을 지켜보던 상식이 영심과 인사를 나누었다.

안개낀 서울의 새벽 거리를 세 사람은 걷기 시작했다.

"민수, ,배고프지?"

", 먹고 싶어?"

영심이 아들에게 물었다.

"나라, 우유 먹고 싶지라."

농도 짙은 사투리를 내뱉는 소년에겐 더할 수 없는 천진스러움이 엿보였다. 일찍 문을 연 음식점으로 세 사람은 들어갔다. 자리를 잡고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던 상식이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질 낮은 담배 연기가 식탁 주위를 맴돌았다. 우유를 들이키는 아들을 바라보던 영심이 짧은 침묵 끝에 입을 열었다.

""약속이 틀리잖아요. 분명히 내년까지...... ."

영심이 말끝을 흐렸다.

"",시방 고걸 말 할순 없지라. 말은 이따가 드리지라."

두 사람의 대화를 민수는 듣고 있었다. 어린 소년도 두 사람 사이에 감도는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었다.그러나 다시는 엄마와 헤어지기 싫었다. 그것을 확인하고 싶었다.

"엄니, 나 이제 엄니랑 사는거제?"

민수는 병 우유를 탁자에 놓으며 물었다.

"그래, 이젠 엄마랑 사는거야. 민수 학교도 보내주고 옷도 새것으로 갈아 입혀줄게."

여인의 얼굴에 어두운 그늘이 비쳤다. 상식이 그걸 보고 있었다.

"성도 엄마랑 사는 거재? 그라믄 얼매나 조으까 !"

소년은 제멋에 겨워 떠들었다. 그녀가 남편을 잃고 떠나온 지 3. 아직 세 식구가 살기엔 돈이 부족했다. 남편이 남기고간 논 몇을 그녀는 상식에게 맡겼으나 그는 참을성 있게 관리하지 못했다. 사업을 한답시고 거덜을 냈다. 그로 인한 죄책감에 상식은 그녀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으나 영심은 그를 미워하지는 않았다. 다만, 어린 자식을 잘 보살펴 줬으면 하는 바램 뿐 이었다. 식사가 끝나고 상식은 투숙할 여관으로 갔다.

민수는 엄마를 따라 넓은 주택가를 걸어 들어갔다. 그녀는 주은 상선 회장의 가정부로 일 하고 있었다.

"민수야, 지금 들어가는 집에선 얌전해야 돼. 우리집이 아니야. 명심해 ,알겠니?"

그녀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

소년은 대답하고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엄마의 얼굴이 굳어 있었다. 엄마와 맞잡은 손이 거칠게 느껴졌다. 집은 굉장히 호화로웠다. 육중한 대문의 빗장 여느 소리가 들리고 한 남자가 문을 열어주곤 아무 말 없이 들어갔다.

"엄마, 무서워라."

새퍼트 들이 소년을 보고 사납게 짖어댔다. 현관문으로 향해있는 곱게 깔린 타일위를 걷던 민수는 어떤 압박감을 느꼈다.

"그 아인 누구냐?"

현관문을 막 들어서려 할 때 낮게 갈라진 음성이 들렸다. 소리 나는 쪽을 보니 귀부인 같은 중년 여인이 서 있었다.

"? , 제 아들이에요."

영심은 당황한 듯 더듬거렸다.

"한 이삼년 굴렀으니 아들 하나 끌고 와도 괜찮다는 거지?"

"아니, 저 그......그게 아니라......"

민수는 엄마가 쩔쩔매는 것이 안쓰러웠다.

"빨리 안으로 들어가 새퍼트 밥을 주고 잔디풀을 뽑아라."

여자는 차게 내뱉고 사라졌다.

"민수야, 이리와라."

엄마가 인도하는 방으로 민수는 따라 들어갔다. 조그마한 방에 밤색 장농이 하나 있고 화장대와 몇몇의 옷가지가 포개져 있었다. 엄마가 나가자 소년은 일어나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창을 통해 비친 사각 모양의 버스가 더 이상 신기하지 않았다. 수 많은 빌딩들도 거리감이 느껴졌다. 가만히 시간이 갔다. 어둠이 깔릴 무렵 엄마가 초췌한 모습으로 들어왔다.

"민수야, 밥 먹자."

식당에 들어가자 가족들이 모여 식사를 하고 있었다. 소년은 엄마 곁에 앉아 수저를 들었다. 맞은편엔 좀 전에 대문을 열어준 남자가 아무 말 없이 밥을 먹고 있었다. 그는 식사가 끝날 때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중년 여인은 쉬지 않고 지껄였다. 밥이 왜 탔느냐. 꽃에 물은 줬느냐. 냉수 좀 가져와라 등등..... .숨 돌릴 틈도 없이 영심에게 심부름을 시켰다.민수는 형수를 생각했다. 때릴 땐 심했어도 저렇게 냉정하진 않았지... 민수는 식당 밖으로 보이는 철망으로 둘러싸인 높다란 담과 어제 까지만 해도 살던 맑은 하늘이 내다뵈던 초가집을 비교해 보았다. 크진 않으나 여닫기 쉽던 싸리나무 문과 육중한 철문을 또 비교해 보았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식사를 마치고 방에 돌아온 소년은 천장위에 매달린 형광등을 바라보았다. 문득 늘 성냥불을 켜서 신우와 도란도란 얘기하던 때가 그리워졌다 민수는 다시 시골 로 내려가고 싶은 마음이 생겨났다. 늘 야단을 치고 핍박하던 형수도 ,자신에게 늘 장난만 치던 진우도 보고 싶어졌다. 밖에서 새퍼트의 짖는 소리가 들렸다.

"저 개는 하루종일 사슬에 묶여 혹시 낯선 손님이 들어올까 집을 지켜야 해. 먹는 건 내 바둑이 보단 낫지만, 마음껏 뛰놀지도 못하고 높은 담만 보며 괴로워하고 있어. 하지만 내 바둑인 나와 함께 뜀박질도 하고 방죽에 가 수영도 해. 저 개는 우리 바둑이보다 불행해."

엄마가 피곤한 몸짓으로 뒤늦게 들어왔다

"아들, 많이 기다렸지? 엄마가 내일은 서울 구경 시켜줄까?"

그녀는 민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안가도 되지라."

"엄니, 난 벌써 서울이 싫구 마니라. 넓은 집안과 잔디 깔린 정원보다 내가 늘 갔던 뒷산이 더 좋구 마니라. 엄니는 저 여자에게 잘 보여야 돈을 벌지라? 시골로 내려가 좀 참으께라.얼마든지 참을 수 있어라. 글구 옆방에서 들려오는 이상한 외국노래도 싫구마니라. 엄니,쪼금 참으면 되지라? 성하고 살라믄 이라."

민수가 울먹거렸다. 영심이 아들을 조용히 껴안았다.

"시골로 내려가 있을께라. 글고 나는 서울 싫구마니라. 시골이 더 좋아라."

민수가 엄마품에 더 바짝 안겼다.

"그래, 아들 ,아들이 대견스럽다. 엄마는 민수가 자랑스럽구나."

그녀는 소년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 영심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그날 밤은 유난히 짧았다. 열린 커튼 사이로 별 하나가 흐리게 빛나고 있었다. 넓은 집안이 고요로 잠들고 어디선가 풀벌레가 울고 있었다. 곤히 잠든 아들의 얼굴을 바라보던 여인도 밝은 아침을 맞기 위해 살며시 잠을 청했다.--

 

남 상봉

nambong51@naver,com

010-9224-3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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