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차 <창작콘테스트> 공모_ 기억 속의 너

by 정서영 posted Sep 28,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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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학생 때 부터 친구였다. 처음 종인이와 친구가 되었을 때는 '이런게 진정한 친구였지' 싶었다. 가끔 티격태격하기는 해도 이렇게 마음 잘 맞는 친구가 없었다. 초등학생 때는 반이 달라지면 인사만 하는 사이로 변해가는 게 친구였는데 중학교 와서 종인이랑 친구가 된 후에는 반이 바뀌었어도 점심시간마다 급식을 같이 먹거나 축구를 함께 하거나 멀어질 틈이 없었다. 정말로 이런 게 진정한 친구였다.

"야, 패스, 패스!"

특히 종인이는 운동을 잘 했다. 땀을 흘리며 뛰는 모습은 남자가 봐도 멋있었다. 친한 다른 애들이 있었어도 그 안에서도 종인이랑 제일 친했다.

그리고 멀어졌다. 고등학생이 되기 전 일이었다. 종인이에게 더 친한 친구가 생겼다. 처음에는 다 같이 친해지려고 했으나 그 친구와 종인이 사이의 틈이 없다는 걸 깨닫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심지어 그 친구와 종인이는 같은 반 이었고 나는 다른 반 이었다. 하긴 종인이한테 더 친한 친구가 생기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그런데도 내 쪽에서 일부러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야, 왜 먼저 가?"

종인이가 쫒아오며 물었다.

"어 그냥, 너 쟤랑 안 가?"

덩그러니 남겨진 그 친구를 보며 종인이에게 퉁명스럽게 던졌다.

"이 쪽으로 와."

종인이가 내 팔목을 잡고 그 친구 쪽으로 당겼다.

"아냐, 괜찮아."

짐짓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며 나는 멀어져갔다.

"야, 왜 먼저 가냐니까!"

종인이가 내 뒤에 대고 외쳤다. 나의 유치한 질투였다. 질투난다고, 나랑 좀 멀어진 것 같다고 말하기에는 내 자존심이 허락치 않았다. 나는 그저 잡아주기를 바랬다. 내가 멀어지면 나에게 다시 가까이 왔으면 하고 바랬다. 그래서 예전처럼 친해지기를.

그러나 멀어질수록 내가 둔 악수에 우린 멀어져갔고 고등학교가 갈린 후 몇 번 연락하다가 어느 순간 전화를 하면 종인이 번호가 없는 번호로 나왔다. 내심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이제 이 피곤한 우정을 접어야지 싶었다. 허무했다.

더 허무한 건 고등학교에는 종인이 같은 애가 없었다는 점 이다. 물론 착하고 좋은 애들은 많았지만 종인이 같은 애는 없었다. 고등학교에서 그저 그런 애들과 친구가 되면서 아이러니 하게도 '이게 진정한 친구였지' 싶었다. 원래 친구란 딱 이만큼의 웃음을 나누고 딱 이만큼의 의지가 되는 거였지 싶었으니까. 그럼 종인이는 뭐란 말인가. 웃겼다. 내 생에 이런 친구가 하나 있었다는 것 만으로도 감사해야 하나 싶다가도 갑자기 번호 바꾼 애한테 무슨 의미를 더 둘까 싶어 의식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려 애썼다.

'종인이라면 이러지 않을텐데.'

가끔 학교 생활하면서 자꾸 친구들과 기억 속 종인이를 비교하게 되는 습관만 빼면 말이다.

고 3 끝날 무렵이었다. 친하지도 않던 애가 갑자기 나한테 말을 걸었다.

"태민아 너 종인이 알아?"

종인이라는 이름에 반가웠다.

"어. 알아. 왜?"

그 애가 말을 이었다.

"나랑 종인이랑 같은 학원 다니거든. 내가 00고 다닌다고 하니까 그럼 혹시 너 아냐는거야. 그래서 우리반이라고 하니까 자기가 너랑 엄청 친하다는 거야.

"너 걔 번호 있어?"

나는 놀라 물었다.

"응. 아 종인이가 옛날에 휴대폰 잃어버려서 번호 한 번 날라간 적 있댔나? 암튼 그 이후로 너랑 연락이 끊겼다더라."

"번호 알려줘."

그렇게 3년만에 연락을 하게 되었다. 그 동안의 서운함은 연락 몇 번에 눈 녹듯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연락을 주고 받던 어느 날 이었다.

-김종인, 이제 곧 20살이다. 20살 되면 뭐 할래?

내가 보낸 문자에 종인이가 바로 답장이 왔다.

-술 마시지 뭐.

-너 나랑 20살 되자마자 영화관 가서 19금 영화 볼래?

-ㅋㅋㅋ 그래

종인의 답장에 나는 얼른 약속을 잡고 영화표를 예매했다. 종인이랑 옆 자리에 앉아 19금 영화를 보는데 마음이 간질간질하면서 웃기기도 하면서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야한 장면 나올 때 마다 서로 장난으로 눈 가려주기도 하면서 킥킥대다가 나왔다. 영화관을 나와서 둘이 술을 마셨다. 의외로 종인이는 술을 잘 안 마셨다. 나는 종인이와 한번 취해보고 싶었다. 술 마시고 혹시 내가 말실수를 할까 봐 정신을 똑바로 차리려고 애쓰면서도 친구끼리의 어리광을 부리며 흐트러진 분위기로 서로 장난을 주고받는 게 좋았다.

둘 다 대학 진학은 안 했다. 종인이는 인테리어 쪽으로 취직하고 나도 작은 회사에 취직했다. 종인이 말 들어보면 말만 인테리어지 자재 옯기는 노가다 일이 많다고 했다. 종인이는 현장 근무로 지방으로 가서 일 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고 그럴 때 빼고는 자주 만나서 놀았다. 나는 그저 이 우정이 오래가기만을 바랬다.

"너 그거 알아? 내 친구가 00대 문예창작학과 갔단 말이야. 거기 기말고사가 그거였대. 좋아한다는 말이나 사귀자는 말이 들어가지 않게 고백 편지를 써 보시오."

"오~ 별론데?"

내 말에 종인이 장난스럽게 대꾸했다.

"너라면 어떻게 적을 것 같아?"

궁금했다. 그리고 답이 듣고싶었다.

"나라면 고백 편지를 안 쓰고 그냥 도시락 싸 준다고 할 것 같아. 근데 나 얼마 전에 도시락 받았다."

"도시락 받았다고?"

종인의 말에 놀라서 물었다.

"어떤 여자애한테. 같이 일하는 앤데, 갑자기 전부터 도시락을 싸 주는거야."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한달 쯤 지나서인가 나랑 간 카페에서 한참 웃고 떠들다가 무슨 날씨 얘기하듯이 그 여자애한테 고백 받은 얘기를 꺼냈다.

"태민아, 나 걔한테 고객 받았어."

나는 부러운 표정을 숨기려 애썼다. 나는 종인이와 오래 전부터 알았는데. 부러웠다.

"뭐라고 고백 받았는데? 종인아, 사랑해?"

"아니, 들어봐."

"종인아, 사랑해?"

"아니라니까, 들어봐."

"종인아... 사랑해?"

"응?"

"종인아... 사랑해...?"

나는 조금 울먹였다. 나는 지금 뭘 묻고 있는건가. 얘는 지금 뭘 모르는 척 하는 거지? 순간 침묵이 흘렀다.

야, 있잖아... 내가 얼마전에 피씨방을 갔는데..."

종인이는 익숙하게 일상대화로 주제를 넘겼다. 받아들여야 했다.

오늘은 이틀 연차를 내고 종인이한테 놀러가기로 했다. 종인이 지방 근무가 길어져서 요즘 얼굴 한 번 보기 힘들었다. 주말 말고 평일에 가장 지쳐있을 때 가서 고기나 사 주고 실었다. 그냥... 그런 게 친구 아니던가. 종인이 기숙사에서는 2인 1실로 지낸다기에 나는 묵을 수 없어 둘이 숙박할 모텔도 예약했다. 여행가는 기분이었다. 중학생 때의 수련회도 떠올랐다. 그 때 종인이랑 즐거웠는데 말이다. 퇴근한 종인이를 기다렸다가 만나서 고기를 사 줬다. 잘 먹는 모습을 보니 온 보람이 있었다. 그리고 모텔을 갔다.

"내가 여친을 빨리 사귀어서 여친이랑 와야지. 내 첫 모텔이 너랑 오는 거라니."

내 말에 종인이 웃었다.

"뭐야, 하하하. 이거 받아. 너가 열어봐."

종인이 나에게 카드 키를 건냈다. 나는 문으로 가서 카드 키를 여기저기 대 봤다. 열리지 않았다.  고개를 숙이고 열심히 열려고 노력하다가 종인을 봤는데 종인이 귀엽다는 표정을 애써 숨기며 보고 있었다.

"그냥 너가 열래?"

자존심이 상해서 말했다. 카드키를 받아든 종인은 바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너가 먼저 씻어."

종인의 말에 먼저 씻고 나왔다. 침대에 앉아있으니 욕실에 들어간 종인이 씻는 소리가 들렸다. 샤워소리가 신경쓰여 괜히 티비를 켰다 껐다 했다. 젖은 머리를 털고 침대에 누웠다. 2인용 침대 하나였다. 모텔 이불은 무겁고 푹신했다. 종인이가 씻고 머리를 털며 나왔다. 종인이는 머리를 말리고 침대에 들어와서 누웠다. 불을 끄고 둘이 누워 있다가 종인이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 말을 건냈다.

"요즘 여자친구랑은 잘 만나?"

"지겨워 죽겠지 뭐. 뭐만 하면 '나한테 할 말 없어?' 그러고. '무슨 말?' 하고 물으면 '나 사랑해?'하고 묻고. 지겨워."

"하하하. 왜 지겨워."

지겹다는 말에 괜히 웃음이 났다. 잠시 있다가 다시 내 쪽에서 말을 꺼냈다.

"넌 나한테 뭐 할 말 없어?"

"무슨 말?"

"너는 나 여자친구 사귀면 어떨 것 같아?"

내 물음에 종인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글쎄, 완전 질투나는 거 아니야?"

"왜 질투가 나. 하하하"

나는 금새 기분이 좋아져서 웃다가 말했다.

"됐어, 잘 자!"

"뭐가 됐어. 더 듣고 싶은 말 없어?"

"...무슨 말?"

"아냐, 잘 자. 와 줘서 고맙고."

"응. 잘 자."

그렇게 짧은 대화를 끝으로 둘 다 잠에 들었고 종인은 아침 일찍 출근하러 나갔다.

그렇게 친하게 지내고 그렇게 싸우고 아무렇지 않은 이유로 그렇게 절교했다.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았다. 나를 위해. 그렇게 끝이 났다. 문득 생각이 날 때면 마음이 조금 저리다. 내가 조금 자랐듯이 종인이도 나로 인해 조금 자랐으면 서로 그걸로 된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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