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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네여사와 노노아저씨

 


 

그날 네네여사는 완전한 판정승을 이루었다.

사실 네네여사가 누군가와 싸움을 한 것은 아니다. 역시 누군가 네네여사에게 싸움을 건 것도 아니다.

네네여사는 침대에 누워 승리에 대한 확신으로 한쪽 입술 꼬리를 쓰윽 올리며 왼쪽 뺨이 실룩이는 쾌감을 맛보았을 뿐이다.

문제의 발단은 어제 저녁에 시작되었다.

요리에 신물이 난 네네여사가 저녁밥을 시켜먹기로 결심한 것이다.

식성이 까다로운 아들의 눈치를 보느니 돈을 쓰는 게 낫겠다는 네네여사의 생각은 순식간에 행동으로 옮겨졌다.

처음엔 유도 질문부터 시작되었다.

저녁에 뭘 먹을까?, 생닭이 한 마리 있는데 백숙이나 할까? , 그렇지 어제 후라이드 치킨을 먹었지. 네가 좋아하는 반찬이 별로 없는데....”

그쯤 되면 아들은 눈치를 챈다.

네가 좋아하는 마시쪄 가게에서 김치찌개나 시켜먹을까?”

.”

냉장고에 붙어있는 스티커 메뉴판에 잠시 눈을 고정 시켰던 네네여사는 김치찌개와 갈비탕을 주문했다

갈비탕을 주문한건 네네 여사의 두 반려견 앨리스와 요나를 위한 배려였다.

이놈들이 요즘 주는 사료는 쳐먹질 않고 네네 여사의 밥그릇을 위협하는 일이 자주 생겼다.

앨리스는 아예 지 사료그릇은 개무시하고 식탁위에 있는 밥그릇으로 향한다.

이쁘다 이쁘다 했더니 사흘 사료도 안쳐먹고 죽자 사자 네네여사에게 매달리는 격이다.

어째든 네네 여사는 어젯밤 늦게 꼬꼬(이 꼬꼬는 후라이드 치킨을 말하는 것으로 앨리스와 요나에게만 통하는 말이다)를 배터지게 받아먹고 아침에 오바이트 까지 한 앨리스와 요나를 생각하며 갈비탕을 선택했다.

선택은 괜찮은 편이었다.

잠깐 마트를 다녀온 사이 아들은 음식을 펼쳐놓고 먼저 식사를 하고 있었다.

앨리스와 요나는 지들 밥그릇을 챙겨줄 네네여사의 귀환을 전적으로 환영하며 열렬한 점프로써 맞이해 주었다.

쇼핑한 물건들을 대충 정리한 뒤 네네 여사의 식사도 시작되었다.

갈비탕 국물은 진한 감동을 줄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럭저럭 먹을 만 했다.

고기의 양도 적당했고 조미료 맛이 그렇게 심한 편은 아니었다.

바닥에 깔려있는 당면도 그런대로 쫄깃쫄깃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아들도 티비에 시선을 고정한 채 연신 숟가락을 움직이더니 드물게 음식에 대한 불만 없이 식사를 마쳤다.

네네여사는 그릇들을 깨끗하게 씻고 차곡차곡 쌓아서 대문 앞 한쪽에 내려놓았다.

갈등과 시련은 거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마시쩌가게 아저씨의 장점은 절대로 초인종을 누르지 않는다에 있다.

이 점은 네네여사의 배려심 있는 행동과 일맥상통한다.

네네여사는 다른 집을 방문할 때 왠만해선 초인종을 누르지 않는다.

두 번의 노크로서 첫 방문을 알리고 다시 두 번 또다시 두 번.

그 정도면 배가 잔뜩 불러 잠이든 구렁이의 옆구리 같은 감각이 아닌 다음에야 대부분 인기척을 보내온다.

어떻게 네네여사의 방문으로 온 집안을 초인종의 공포 속으로 떨어지게 할 수 있단 말인가.

마시쩌가게 아저씨가 벨을 누르지 않고 노크를 하는 것은 계속 칭찬의 대상이 되어왔다

인격적이라든가 배려심 있는 사람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마시쩌가게를 자주 이용함으로써 그 마음을 심도 깊게 표시하곤 했다.

 

그런데 마시쩌가게 아저씨에겐 큰 단점이 하나 있었다.

빈 그릇을 빨리 수거해 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네네여사에겐 상당히 치명적인 불편함이었다.

일단 대문 앞 미관이 문제였다. 빈 박스하나 놔두지 않고 대문 앞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것은 앞집 뚱보 부부와의 무언의 약속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 말은 아마 별 설득력이 없을 줄 안다.

사실 네네여사 보다도 뚱보네 부부는 더 자주 빈 그릇을 내놓기 때문이다.

주로 메뉴는 짜짱면인데 항상 또또면 가게를 이용하는 것 같다.

아마도 다른 집들보다 500원이 싸다는 게 뚱보 부부를 매료시킨 것 같다.

그들은 짜장면을 시켜 먹을 때마다 500원을 번다는 착각 속에서 시커먼 짜장면 소스 속에 미소를 담은 채 가위로 자르지도 않은 면발을 단 몇 번에 허겁지겁 삼킬게 뻔했다.

미관보다는 대외적인 이미지가 더 중요함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네네여사는 부지런히 살고 상냥하며, 나이에 비해 젊음을 유지하는 것으로 자신을 평가받기를 바랬고 그런 스스로의 평가에 대한 자부심을 은연중에 내뿜곤 했다.

실제로 뚱보 부인은 네네여사를 볼 때마다

어머, 아직 아가씨 같아. 부럽다, 자기야

네네여사는 이 말에 대해 한 번도 말로써 응답을 한 적이 없다.

그냥 조용히 웃으며 고개를 살짝 숙여주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했다.

뒤뚱 뒤뚱 걸으며 난 먹는 게 없는데 살이 빠지질 않는다고 말하는 뚱보 부인에겐 네네 여사가 부러움의 대상이 될게 뻔했기에 말을 아끼는 게 뚱보 부인을 위한 배려라고 여겼다.

그렇지만 대외적인 이미지가 치명적인 불편함이 될 수는 없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네네여사의 남편 노노씨 때문이었다.

남편은 네네여사가 배달음식을 먹을 때마다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절약이라는 말이 열 몇 번 쯤은 등장해야 일장의 막이 내려가곤 했다.

직업상 바깥음식에 익숙해진 노노씨는 집밥을 원했다. 역시 직업상 집밥에 질린 네네여사는 익숙하지 않은 배달음식을 원했다

전문가들이 만든 맛있는 음식들이 있는 바깥세상이 자유롭게 느껴졌다.

대문만 나서면 갖가지 음식들이 즐비한데 왜 맨날 똑같은 반찬통을 쳐다보며 지루함을 느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네네여사의 배달음식 몰래 시켜 먹기는 이유 있는 반항이었다. 아니 혓바닥의 자유를 갈구하는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마침 배달음식을 좋아하는 아들의 협조는 네네여사의 자유에 날개를 달아주었고, 반가운 동지와의 의로운 혈맹으로 이어져왔다.

배려아저씨가 그릇을 안 가져갔어.”

아들의 말에 네네여사는 계산된 행동을 개시했다.

우선 그릇을 갖고 들어와 책상 밑에 숨겼다.

이곳이 지난번 숨겼던 베란다보다 안전하다는 것은 그릇을 내놓기 전에 판단한 결과였다. 그릇들은 편안한 안식처를 찾아 자리를 잡았고, 의자다리가 방패막이가 되어 자세히 보지 않는 한은 알아채기 힘든 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이것들도 빨리 배려아저씨의 품으로 돌아가고 싶겠지.

지들을 싫어하는 노노아저씨의 눈에 띄면 찬밥신세가 될게 뻔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밤새 책상밑 의자 다리 사이에 숨어 있다가 밤늦게 들어온 노노씨가 잠이 든 순간 네네여사의 손에 의해 다시 바깥세상을 구경하게 되겠지. 네네 여사는 세밀한 타이밍을 계산해 보았다.

일단 작전명 1010.

1010일에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앞으로 일어날 무수한 작전명들의 예고편이기도 했다.

책상 밑에서 안식을 취하고 있는 배려아저씨의 그릇들이 들킬 걱정은 거의 없었다.

네네여사의 세밀한 계산에 의하면 실수가 일어날 수 있는 두 가지 상황이 예견되었다.

첫째는 행동이 매우 느리고 잘 놀라는 네네여사가 그릇을 내놓다가 새벽에 담배를 피거나 화장실에 가기위해 자주 깨는 노노씨에게 들킬 가능성이었다.

이것에 대한 해결책은 자신감의 회복이 관건이었다

네네여사가 재빠른 행동으로 1010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노노씨보다 재빠르고 민첩한 행동이 필요했다.

두 번째는 더 아슬아슬한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

새벽에 그릇을 내놓고 들어온 뒤 노노씨가 대문 밖을 나가는 일이었다.

간혹 담배가 떨어져 새벽이나 이른 아침에 담배를 사러가는 노노씨의 모습을 본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다면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노노씨는 귀가할 때 없었던 그릇들의 등장에 대한 사실을 집요하게 추궁할 게 뻔했다.

네네여사는 완전범죄(이 계획을 세울 때 네네여사는 완전범죄를 꿈꿨다)의 꿈이 물거품이 됨과 동시에 품위에 상당한 손실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이랄까.

어려운 상황은 연속되었다.

그날 유난히 늦게 귀가하던 노노씨가 집에서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덕분에 네네여사는 거의 새벽이 되어서야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혹시라도 노노씨가 일어나기 전에 잠이 깨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하면서 네네여사는 잠에 빠져들었다.

무슨 꿈을 꾸었던가.

어째든 잠들기전 보았던 판타지 영화 덕분인지 꿈은 꽤 시끌시끌했다.

얻어맞은 것도 같고 누군가를 때린 것 같기도 했다.

네네여사가 잠에서 깬 것은 알람시계를 맞춰놓은 8시 보다도 30분 정도 앞선 시간이었다.

소변이 나오질 않아 쩔쩔매다가 꿈에서 깨어났다.

맥주를 마시고 잠이 들었던 것이 이유였다.

네네여사는 급한 일을 해결한 뒤 남편이 자는 방문을 살짝 열어 보았다. 잠에서 깰 기색은 전혀 보이질 않았다.

네네여사는 속으로 자신감을 외친 뒤 책상 밑에 놓여있는 그릇들을 꺼내어 조용히 대문을 열고 한쪽에 내려놓았다.

현관문을 들어설 땐 한쪽 입술을 치켜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테이블위의 남은 술안주와 그릇들을 치운 뒤 네네여사는 아직 따뜻한 온기가 남아있는 침대로 파고들었다

아직 노노씨의 알람시계가 울리려면 30분 정도의 시간이 남아있었다.

살짝 잠이 들려는 순간이었다.

벌컥 안방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노노씨가 일어난 것이다.

화장실문을 여는 소리는 나지 않았다.

잠시 뒤 대문을 여는 소리가 났다.

아뿔싸!”

걱정했던 작전명 1010의 두 번째 오류 상황이 발생하고 있었다.

 

보통 때보다 담배피우는 시간이 길었다.

왜 안 들어오는 거야, 이 인간

네네여사는 쏟아질 잔소리를 어떻게 받아칠지 생각하며 현관과 주방 사이를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현관문을 밀고 들어온 노노씨는 긴장된 얼굴을 하며 뜻밖의 소리를 했다.

밖에 경찰이 있어

뭐라구, 경찰이 왜?”

그릇에 대한 걱정은 이미 싹 사라져 버렸다.

서구에서 절도범이 버스를 타고 이 근처에 내려서 우리 아파트 이라인으로 들어왔다는 거야

어제 저녁 늦은 시간에 CCTV로 확인이 됐나봐. 이 근처를 탐색하고 다니는 것 같아

근데 경찰이 보여준 사진이 아무래도 낯이 익단 말이야. 내 핸드폰으로 전송해달라고 했어

혹시 아는 사람이면 신고해 달라고 하고는 가버렸어

어디 봐봐, 나도 볼래.”

노노씨는 휴대폰을 익숙한 패턴으로 열어 네네여사에게 절도범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까맣게 그을린 얼굴에 하얀색 모자를 눌러쓰고 진한 선글래스를 끼고 있어 얼굴을 가늠하기 힘들었다

체구는 외소하고 작업복인 듯 청색바지와 청색 조끼를 맞춰 입고 있었다. 빨간 팔찌가 눈에 띄었다

사진이 흐려서 팔찌인지 시계인지 정확이 구분이 되지는 않았다

마스크를 입언저리까지 쓰고 한쪽 손에는 검은색 비닐 봉투를 들었으며 낡아보이는 메이커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저 검은 봉투 속에 훔친 물건이 들어있는 걸까. 도대체 무엇을 훔쳤기에 형사가 이아침부터 돌아다니며 찾고 있는걸까.’ 

네네여사는 사진을 보며 혼자 생각했다.

어디가 낯이 익다는 거야?, 우리 라인에 비슷한 사람이 살고있어?”

네네여사는 덜컥 겁이 났다. 범죄자와 같은 아파트 같은 라인에 살고 있다는 생각은 네네여사의 심장을 뛰게 만들고 간을 졸아들게 만드는데 충분했다.

, 낯이 익어. 3층에 사는 아저씨 있잖아... 얼굴 새카맣고 맨날 소주병 들고 다니는 아저씨. 그 아저씨랑 비슷하단 말이야.”

“3층 아저씨? 난 몰라. 난 모르겠는데.”

이미 네네 여사의 목소리는 긴장할 대로 긴장해서 보통때보다 한 옥타브 올라가 있었다.

넌 잘 모르지. 내가 맨날 밤늦게 다니니까. 늦게 오는 날 엘리베이터에서 가끔 만나. 이 아파트에 이사온지 얼마 되지 않았나봐. 나도 그 사람을 본지는 그렇게 오래되지는 않은 것 같아.”

... 어떻게 해. 이제 겁이 나서 아파트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겠어. 분명한 거래? 우리 아파트 라인으로 들어온게 확실하대?

아파트 입구로 꺾어져 들어오는 거 까지 보였나봐. 이 안쪽은 우리라인밖에 없으니까. 상식적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거겠지.”

돌아나갔을 수도 있고, 놀이터에 가서 볼일보고 나갔을 수도 있잖아.”

그럴 수도 있지. 에이 모르겠다. 뭐 어쩌겠어? 우리가 정확한 증거도 없고. 이런 옷을 입고 다니는지 하루 종일 쳐다보고 있을 수도 없고. 그냥 형사가 알아서 하겠지.

신경쓰지 마!”

노노씨는 만사가 그런 식이었다.

무엇이든 호기심에 끌려 일은 벌려 놓고 오래 고민하는 일이 없었다.

겁이 많은 네네여사에게 할소리는 다해놓고 이제 와서 신경 쓰지 말라니.

네네여사는 절도범보다 노노씨가 더 미웠다. 하필이면 그 시간에 형사를 만나서 절도범 얘기를 듣고 올게 뭐란 말인가

모르는 게 약인데.

아닌가. 진짜로 절도범이 이 라인에 살고 있다면 어쩌지. 아니 절도범이라는 형사의 말은 우리를 안심시키기 위한 위장이고 사실은 강도나 더 큰 범죄를 저지른 사람일지도 몰라.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 아침부터 형사가 돌아다니고 있단 말인가

네네여사의 머릿속은 이제 강도나 살인죄를 저질렀을지도 모르는 사진속의 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다.

노노씨가 출근한 뒤 네네여사는 수수부꾸미를 몇 조각 구워들고 경비실로 내려가기 위해 대문을 열었다.

어라

아침에 내놓은 그릇들이 우리 집 앞이 아닌 앞집 뚱보부부 대문 앞에 놓여있었다.

이놈들이 왜 여기에 있지?”

노노씨가 앞집으로 밀어 놓았을 리는 없었다. 형사가 그럴 리도 없다. 네네여사는 순간 등줄기로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누군가 우리집 앞을 서성거렸다는 건데. 누굴까. 이런 장난을 하다니.

네네여사는 엘리베이터가 열리자 숨을 곳을 찾는 사람처럼 얼른 안으로 몸을 들여놓고 닫힘 버튼을 눌렀다.

아저씨, 얘기 들으셨죠?”

무슨얘기?”

아침에 아파트에 왔던 형사얘기 말이에요.”

. 들었지. 그런데 정확히 우리아파트에 들어온 것인지 확실하지가 않아서 그 시간대에 들어가는 사람이 있는지만 보고 가버렸어.”

아니죠. 그 사람이 바로 들어오지 않았을 수도 있어요. 놀이터에서 자기가 훔친 물건들을 정리하고 들어 왔을 수도 있구요. 어째든 CCTV로 좀 봐야겠어요. 같이 좀 봐주세요.”

네네여사가 왜?”

아니 우리라인에 범죄자가 있을 수도 있다는데 겁이 나서 살수가 있어야죠? 아무것도 못하겠어요

아저씨 바쁘시면 저 혼자 볼께요. 그냥 보여주세요. 그 옷이랑 똑같은 옷을 입은 사람이 있는지만 좀 봐야겠어요.”

허허 참. 알았어. 난 재활용품도 정리해야하고 택배도 챙겨야 하니 같이 보지는 못하겠네.”

CCTV 조작법을 가르쳐준 경비아저씨는 네네여사가 자세를 잡고 보기 시작하자 잠시 들여다 보는 척 하더니 허허참소리를 하고는 경비실 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네네여사는 CCTV를 돌려보기 시작했다. 어젯밤 잠을 설쳐서인지 중간에 잠시 졸기도 했다. 형사가 보내준 사진속의 시간으로부터 네시간 가량을 돌려 보았지만 그런 차림의 사람이 라인 안으로 들어오는 것은 보이지 않았다

잠깐씩 시선을 놓칠 때도 있었다. 경비아저씨가 잠깐씩 들어와 헛기침을 하고는 다시 나가기도 했고 택배기사가 들어와 박스를 챙기며 말을 시키기도 했고 아파트 주민이 창문으로 노크를 하기도 했다. 그럴때마다 네네여사는 카메라를 잠깐씩 멈추고 그들과 대화를 하거나 손짓으로 대신하기도 했다. 네 시간이 지나자 네네여사는 피로감으로 지쳐있었다. 허리도 아프고 어깨도 아팠다. ‘이놈의 절도범이 왜 이쪽으로 들어와서 나의 하루를 말아먹고 있어!‘

네네여사는 평화롭던 생활이 깨어진 것이 억울했다. 범인을 잡아야 평화로움이 지속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 불안한 마음으로는 그 전의 평화가 돌아올 것 같지가 않았다. 창밖을 보니 아파트는 평소처럼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보였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아이, 유모차를 끌고 가는 젊은 여자의 모습, 지팡이를 짚고 노인정으로 향하는 할머니의 모습까지 네네여사의 걱정과는 무관하게 모두들 자신의 생활패턴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이런 된장

네네 여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피곤함과 짜증이 섞여 더 이상은 계속할 수 가 없었다. 앨리스와 요나가 네네여사를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그놈들의 밥도 챙겨주질 않고 나왔다.

경비아저씨가 보이지 않아 문을 살짝 닫아놓고 나왔다. 오랜만에 맑은 공기를 쐬는 느낌이었다.

내가 나를 감옥에 가뒀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빈 접시를 들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거울을 보니 얼굴도 엉망이었다. 양치질이나 겨우 하고 나왔던 것 같다

네 시간이나 어깨에 힘을 가득 넣고 희미한 화면을 지켜보느라 눈도 아팠다. ‘얼른 가서 좀 쉬어야지엘리베이터를 타고 

닫힘 버튼을 누르는 순간이었다. 입구에서 누가 급하게 뛰어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잠깐만요라는 외침과 함께.

눈에 익은 모습이었다.

그놈이다

 

까만 얼굴에 마른 체형. 방금 소주를 세병은 마신 것처럼 중심이 흔들리는 걸음걸이에 손에는 늘 들고 다니던 검정색 비닐봉투가 매달려 있었다. 선글래스는 없었고 모자도 흰색에서 검정색으로 바뀌었지만 청색조끼와 청색 바지는 사진에서 본 것과 동일했다. 운동화도 같은 것이었다. 의심의 여지가 없는 그였다.

네네 여사는 목이 조여 오는 느낌이었다. 뒷목이 당기는 듯 하면서 숨쉬기가 불편하게 느껴졌다. 그는 미처 엘리베이터 문을 닫지 못한 틈새로 흔들리는 걸음걸이와는 다르게 잽싸게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3층을 눌렀다

노노씨가 말한 3층 아저씨. 순간 네네여사는 매일 술에 취해 들어오는 노노씨가 그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음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특이하고 눈에 띄니까.’

1층에서 3층 까지 올라가는 시간이 마치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만큼이나 길게 느껴졌다. 문이 열렸다

그는 네네여사를 힐끔 쳐다보더니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네네여사는 간식을 낚아채는 앨리스와 요나의 빠른 동작으로 닫힘 버튼을 눌렸다.

긴 한숨이 나왔다.

그날부터 네네여사의 생활에는 큰 변화가 왔다.

낮에는 그런대로 평정심을 유지하는 듯 했지만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불안감이 찾아왔다.

혼자 있는 날이면 초저녁부터 창문과 베란다 문까지 다 걸어 잠갔다.

오래된 5층 아파트. 네네 여사의 집은 꼭대기 층인 5층이었고 절도범의 집과는 겨우 두층의 간격을 두고 있을 뿐이었다

거기다 얼굴까지 마주쳤다. 불안해하는 네네여사의 얼굴을 보고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심장이 그렇게 큰소리로 쿵쿵 거렸으니 그에게도 들렸을 게 틀림없다. 엘리베이터를 내리면서 네네여사의 얼굴을 훔쳐보는 느낌을 받았으니 이젠 그에게 익숙한 얼굴이 되었다.

세탁이 끝난 빨래를 날마다 옥상에 갖다 널던 일들도 이젠 할 수 없었다. 거실 여기저기에 젖은 세탁물들이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널리기 시작했다. 꿉꿉한 냄새 만큼이나 네네여사의 가슴도 불안으로 젖어 들었다

거기다 언제 절도범이 옥상에서 끈을 묶고 내려와 열린 창문으로 침투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네네여사는 더 이상 집이 안전하다는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입맛도 잃어갔다.

엘리베이터를 탈수도 없었다.

배달음식은 절대 생각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인생은 한 순간에 변하는 거야

이제 나에게 평화로운 휴식 따위는 없어

남편이 받은 형사의 전화번호로 신고했다. 똑같은 사람이 있으니 얼른 잡아가는 말과 함께.

무슨 죄를 지었냐는 물음에 형사는 대충 얼버무렸다. 그것이 네네여사에게는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사흘이나 집안에서 갇힌 듯이 있던 네네 여사가 식료품을 사기 위해 용기를 내고 외출을 하던 날이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낮은 계단을 내려가 막 경비실 문앞을 지나가던 순간이었다.

또 그가 보였다.

마치 네네 여사를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그는 그날과 거의 비슷한 차림으로 검은 비닐 봉투를 든 채 네네 여사를 마주보며 걸어오고 있었다

처음 마주쳤던 날보다 1시간이나 앞선 시간이었다. 우연치고는 너무나 놀라운 일이었다. 얼굴을 외면한 채 

몇 걸음을 빠르게 옮긴 뒤 뒤를 돌아보았다. 그도 함께 돌아볼까봐 겁이 났지만 다행히 그는 앞을 보며 라인 입구를 향해 느린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울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울 수는 없었다. 식료품을 사야 되나 말아야 되나 한참을 망설이다가 간단히 꼭 필요한 것만 구입했다. 집으로 들어갈 용기를 내지 못하고 서성거리다가 마침 같은 라인에 사는 젊은 아가씨의 뒤를 따라 엘리베이터를 탔다.

가슴 중앙에서 나오는 떨림이 온몸을 감싸고 있었다. 두통도 찾아왔다.

이제 아파트에 있는 도어락만으로는 안심할 수 없었다. 네네여사는 일주일을 졸라 노노씨가 안전장치를 하나 더 달 수 있도록 설득했다.

안정장치를 달던 날 노노씨의 혼잣말이 기억난다.

이래서 남자는 장가를 잘 가야지 겁이 많아도 너무 많아. 대체 뭐가 무섭다는 거야?”

아들의 말도 생각난다.

엄마는 혼자 지어내는 상상이 너무 많아. 옆에 있는 사람들이 피곤해

이제 남편과 아들에게 내색을 할 수도 없었다. 그들은 네네여사를 이해하지 못했고 정상이 아닌 것처럼 얘기했다

네네여사도 다 잊은 것처럼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

재미있던 드라마가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고 코믹 프로그램이 웃기지 않았다. 그 다음에 찾아온 감정은 분노였다

네네여사는 화가 나기 시작했다.

두려움이 분노로 변하자 조금은 용기가 생겼지만 잠시뿐이었다. 네네여사는 하루 종일 그가 집으로 침투할 수 있는 여가가지 가능성을 생각하며 거기에 맞서기 위한 방법들을 생각했다. 그리고 분주히 움직였다.

 

일주일간의 출장에서 돌아왔을 때 노노씨는 네네여사가 잠을 자듯이 누워있는 모습을 보았다. 이 시간에 왜 잠을 자느냐며 네네여사를 흔들어 보았지만 네네여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숨을 쉬지도 않았다

앨리스와 요나가 네네여사 곁에 앉아 그녀의 손바닥을 핥아주고 있었다. 네네여사의 곁에서 노노씨는 쪽지 한 장을 발견했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그 놈이 배달 그릇을 옯겨 놓았어, 바로 그 놈이.”




한시이_010-9471-4133_dcjek0309@hanmail.net

 

  • profile
    korean 2020.10.31 20:36
    수고 많으셨습니다.
    더욱 분발하시면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늘 건필하세요^^
  • profile
    뻘건눈의토끼 2022.06.13 18:04
    슬픈 결말이 마음을 울리지만 너무 웃겨서 읽다가 배꼽잡았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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