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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제비 꽃



  인간의 미스터리는 장수를 바라면서도 늙기는 싫어한다는 데에 있다.


 나는 잠결에 어머니의 고함 소리를 듣고 안방에서 뛰어나왔다.

 “누가 박재순이를 나오라고 해.”

 어머니가 창밖을 내다보며 버럭버럭 소리를 질러댔다.

 창문 밖에 서 있는 목련이 새벽빛에 어렴풋이 실루엣을 드러내고 있었다. 어머니는 밖에 시커먼 옷을 입은 사람이 찾아와 당신 이름을 부른다며 무엇에 쫓기는 듯 창문을 응시했다 나는 얼른 구급상자에서 청심환을 꺼내드리고 밖에 아무도 없다며 어머니를 안심시켰다. 어머니는 자리에 누웠으나 환청이 들리는지 불편한 몸을 자꾸 일으키려고 했다.

 스치기만 해도 금방이라도 바스러져 버릴 것만 같은 핏기 없는 얼굴, 쑥대머리처럼 헝클어진 백발, 초점을 잃고 흔들거리는 눈동자…….

 형광등 불빛에 민낯으로 드러난 구순이 넘은 어머니의 모습은 혼백이 나가버린 영락없는 반송장이었다. 나는 어머니와의 약속을 더는 미룰 수 없다고 생각했다.

 곧바로 주방으로 가 양푼에다 밀가루를 붓고 물을 섞어가며 반죽을 시작했다. 손에 끈적끈적한 밀가루 반죽이 달라붙었다. 무른 반죽에다 밀가루 한 컵 분량을 더 끼얹었다. 되게 반죽을 개면 밀가루 덩이가 그대로 씹히는 맛이 나고, 반죽이 질면 풀을 쑨 것처럼 맛이 밋밋하다. 감칠맛 나는 수제비 요리를 위해서는 쫀득쫀득한 밀가루 반죽을 만들어 내야 한다. 수제비는 손맛이다. 그리고 손맛은 반죽에서 나온다. 자장면과 냉면이 면발에 따라 식감이 다르듯 수제비 또한 반죽에 따라 맛에 차이가 난다.

 반죽 한가운데 구멍을 내고 물을 반 컵 정도 부었다. 겉에다 물을 부으면 반죽이 질척거려 작업하기가 불편할 뿐만 아니라 수분이 골고루 스며들지 않아 좋은 반죽이 나오지 않는다. 수제비를 빚다 보면 옹이처럼 반죽 속에 밀가루 덩이가 박혀있는데 그건 실패작이다. 반죽할 때 찬물보다는 미지근한 물을 사용하면 흡수가 잘되어 옹이가 생기는 것을 막을 수가 있다.

 수온 13~15도의 물이 건강에 좋다고 한다. 이 상태에서 인체에 수분 흡수가 가장 빠르며 이보다 물이 너무 차갑거나 뜨거우면 수분이 세포로 스며드는 속도가 더뎌지고 몸에도 좋지 않다. 온도에 따라 물의 입자가 달라져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소매를 걷어붙인 채 양쪽 무릎을 꿇고 밀가루 덩어리를 뒤집으며 안간힘을 다해 반죽을 빚었다 무릎이 시큰거리며 이마에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혔다. 문득 중학교 1학년 때 은사인 김미나 선생님이 떠올랐다.


 오전 수업이 끝나자 담임인 김미나 선생님은 가정 방문할 마을을 칠판에다 적으며 해당 지역에 사는 학생들은 해찰을 부리지 말고 곧장 집에 가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했다. 가정 방문이 있는 날은 오후 수업이 없어 아이들은 기분이 들떠있었다.

 산 그림자가 앞마당까지 길게 내려오자 나는 들에 나간 어머니를 대신해 수제비를 만들었다.

 “옛날에 금잔디 동산에~ 매기~ 같이 앉아서 놀던 곳, 물레방아 소리 들린다~ 매기~ 내 사랑하는~.”

 음악 시간에 김미나 선생님이 가르쳐준 ‘매기의 추억’을 흥얼거리며 한창 수제비 반죽을 주물럭대는데 누군가 밖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방문을 열어보니 베이지색 원피스 차림의 김미나 선생님이 툇마루 앞에 서 있었다.

 나는 물건을 훔치다 들킨 사람처럼 밀가루가 묻은 손을 얼른 뒤로 감추고 멋쩍게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얼굴이 후끈거리며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우리 마을은 오늘 가정 방문 일정표에 빠져있었다. 선생님은 내 모습에 당황했는지 옆 마을에 왔다가 시간이 좀 남아서 들렀다며 뽀얀 이마를 만지작거렸다. 한참 침묵이 흐르고 나서야 선생님은 지금 무슨 요리를 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수제비 요리를 하려고 밀가루 반죽을 빚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토박이인 선생님은 신기했던지 어떻게 수제비 요리를 배웠냐고 물었다. 나는 어머니 일을 돕다가 저절로 배우게 됐다고 말하자 선생님은 나더러 효자라며 칭찬까지 해주었다. 선생님은 부엌에서 손을 씻고 오더니 자기도 한번 반죽을 해보겠다고 나섰다. 선생님이 야무지게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반죽을 주물러대자 긴 머릿결이 허리 위에서 미끄럼질쳤다. 몇 번을 반복하다가 선생님은 제풀에 꺾인 듯 주저앉더니 반죽하기가 이렇게 힘들 줄을 몰랐다며 숨을 할딱거렸다.

 나는 선생님과 나란히 아궁이 옆에 앉아 물이 끓어오르는 솥단지 속으로 수제비를 떨어뜨렸다. 선생님이 빚은 수제비는 반반한 얼굴과는 달리 모양이 뭉툭했다. 적당한 크기로 반죽 덩어리를 떼어내 손가락 끝으로 수제비를 빚어내야 하는데 선생님의 수제비는 모양이 들쭉날쭉했다.

 나는 수제비 빚는 방법에 대해 시범을 보였다. 손끝에서 순식간에 꽃잎처럼 예쁘게 빚어지는 수제비 솜씨에 선생님은 눈길을 빼앗겼다. 선생님은 내게 바짝 고개를 내밀며 긴 손가락 끝으로 반죽을 조심스럽게 매만져가며 어쩌다 수제비 모양이 잘 나오기라도 하면 소녀처럼 까르르 웃었다. 어느새 선생님의 분홍색 손톱은 하얀색으로 변해버렸다.

 수제비를 한 상 차렸다. 반찬이라야 깍두기와 김치뿐인데도 선생님은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오후 내내 이 마을 저 마을 걸어 다니느라 허기가 졌는지 이슬만 먹는 줄 알았던 선생님이 쩍쩍 입맛을 다시며 수제비를 삼키는 모습은 아주 색다른 느낌이었다.

 선생님은 당신이 만든 수제비와 내가 만든 수제비를 번갈아 가며 맛을 보더니 내 수제비가 훨씬 맛있다고 칭찬해 주었다. 나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면서도 어깨가 으쓱했다. 수제비 요리 하나로 단박에 우리 학교에서 오직 한 명뿐인 멋쟁이 여선생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우와! 목련꽃 예쁘게 피었네.”

 마당을 나서던 선생님이 뜰에 핀 목련꽃을 발견하고는 걸음을 멈췄다. 선생님 키를 훌쩍 넘긴 목련이 새하얀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었다. 갸름한 얼굴에다 쌍꺼풀진 눈, 우윳빛 나는 피부. 목련 앞에서 넋을 잃고 꽃송이를 바라보고 있는 김 선생님의 자태가 한그루 목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죽이 거의 다 되어 갔다. 솥에 물을 붓고 가스레인지를 켰다. 김 선생님을 깜짝 놀라게 한 그 명품 수제비를 얼른 어머니께 선보여야 한다. 내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도회지에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바람에 내 수제비 요리는 식탁에서 자취를 감췄다.

 멸치나 바지락을 넣어 수제비 국물 맛을 내기도 하는데 어머니는 맹물을 고수했다. 맹물에다 다진 마늘과 쪽파를 송송 썰어 넣고 간장으로 간을 맞추면 그게 곧 국물이었다. 쌀밥 대신 수제비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는 어머니로서는 멸치나 조개 국물은 사치나 다름없었다. 멸치 등을 우려낸 국물은 반죽이 조금 부실해도 수제비 맛을 잡아줄 수 있지만, 어머니의 맹물 수제비는 반죽이 받쳐주지 않으면 대번에 풀죽 맛이 나버린다.

 물이 끓기 시작하면 수제비를 뚝뚝 떼어 솥 안에 넣으면 될 것이다. 손등에 난 흉터가 눈에 띄었다. 왼손에 생긴 작은 수제비 모양의 흉터는 내가 중학교 때 수제비 요리를 하다가 뜨거운 물에 덴 상처다. 애당초에는 농사일에 바쁜 어머니를 도와주려고 손을 대기 시작했는데 숫제 내가 수제비 요리사가 돼버렸다.

 첫 작품은 실패로 끝났다. 밀가루 반죽이 제대로 되지 않아 쫄깃쫄깃한 맛이 없었고, 수제비를 솥에 넣으면서 서로 엉겨 붙지 않도록 국자로 잘 저어야 하는데, 수제비 빚는 데만 정신이 팔려 수제비가 솥 밑바닥에 떡처럼 엉겨버렸다.

 손은 데었어도 수제비 솜씨는 날로 늘어갔다. 김을 매로 온 동네 아주머니들이 내가 쑨 수제비를 먹고 수제비가 꿀맛이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저절로 어깨가 우쭐거렸다.

 

 반죽이 완성됐다. 밀가루에서 이렇게 부드럽고 매끄러운 작품이 만들어지다니. 나는 반죽을 손으로 들어 올리며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반죽 빚기가 가장 힘들다. 반죽만 완성되면 수제비 요리는 거의 끝났다고 봐도 무리는 아니다.

 어머니가 담낭염으로 한 달 넘게 입원했을 때 어머니는 병원에서 나오는 음식보다는 수제비를 먹고 싶어 했다. 나보고 한번 수제비를 만들어보라고도 했다. 환자 상태에 맞춰 영양사가 만든 식단이라 수제비보다 더 영양가가 좋다고 말씀드려도 어머니는 듣는 둥 마는 둥 수제비 타령이었다.

 담석을 제거했는데도 복통만 완화됐을 뿐 헛소리를 하는 등 건강 상태가 회복되지 않자, 담당 의사는 어머니가 노환이라 특별한 처방이 없고  치매 증세가 보인다며 소견서를 써줄 테니 요양원에 모시는 것이 어떻겠냐며 의향을 물었다. 병원에 오기 전에도 어머니는 노환으로 거동이 불편했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도 집에서는 모시기 힘들다며 요양원을 권유했다. 긴 병에 효자가 없다면서 어떤 요양원이 시설이 좋다고 위치와 상호까지 알려주는 지인도 있었다.

 어머니는 평소에 요양원이란 ‘요’자만 들어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머니는 요양원은 자식들이 부모를 거두기 싫어 내다버리는 현대판 고려장으로 인식을 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병세가 악화되기 전에 경로당에 다녔는데, 경로당 친구인 흰머리 할머니-유난히 머리가 희어 경로당에서 그렇게 불렀다-를 자식들이 요양원에 보내버렸다며, 어떻게 자기를 낳고 기른 부모를 함부로 내다버릴 수가 있냐며 천하에 불효막심한 자식들이라고 핏발을 세웠다.


 친구 J의 이야기가 뇌리를 스쳤다. 장모님을 뵈려 요양원에 갔는데 노인들이 버려진 물건처럼 자리에 우두커니 앉아 자식들이 찾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더란다. 그 모습이 하도 안쓰러워 J는 부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전적으로 장모님 수발을 들겠다며 그날 바로 집에 모시고 왔는데, 며칠도 지나지 않아 J의 야심만만한 다짐은 점점 무너지기 시작했다. 극심한 스트레스는 술을 부르고 술은 부부싸움을 불렀다.

 J는 3개월도 채우지 못하고 부랴부랴 장모님을 다시 요양원에 보냈는데 딱 보름 만에 장모님이 돌아가셨다고 연락이 왔더란다. 조금만 더 참고 장모님을 보살펴드렸으면 좋았을 텐데 후회가 막심하다고 J는 눈시울을 붉혔다.

사실 나도 요양원에 대한 선입관이 별로 달갑지 않았다. 자식들에게 쏟은 사랑과 희생을 봐서라도 부모가 늙으면 당연히 자식이 모셔야 한다는 생각이었고  아내 또한 나와 뜻을 같이했다. 그러나 밤새워 어머니를 간병하는 횟수가 늘수록 내 마음은 점점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병원 가는 길에 칼국수 한 그릇을 샀다. 수제비를 사려고 이곳저곳 음식점을 기웃거렸으나 옹심이나 칼국수를 파는 곳은 있어도 수제비는 눈에 띄지 않았다. 병실에 도착하자 병간호를 하던 아내가 내 귀에다 대고 어머니가 방금 잠이 들었다고 말해 주었다.

 나는 아내와 교대하고 보조 소파에 누웠다가 깜박 잠이 들어버렸다. 뭔가 얼굴을 스치는 느낌이 들어 눈을 떴다. 어머니가 피 묻은 손으로 당신이 덮고 있던 이불을 안간힘을 다해 침대 난간 위로 넘기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머니 손목에 꽂힌 주삿바늘에서 링거 줄이 튕겨 나가 역류한 피가 침상을 뻘겋게 물들이고 있었다. 자식이 행여 감기라도 들까 봐 이불을 덮어주려고 불편한 몸을 억지로 움직이다 보니 일이 벌어진 것이다. 급히 간호사를 불러 응급조치를 끝내고 나는 어머니를 꽉 껴안았다. 요양원을 맘에 두고 있던 내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퇴원 후에도 어머니는 거동이 불편하여 화장실조차 갈 수 없었다. 기저귀를 채우면 금방 빼버렸다. 어머니의 기저귀에 대한 심한 기피증으로 아내는 꼬박 6개월 동안이나 대소변을 받아냈다. 어머니는 거동은 못해도 정신줄은 붙들고 있어서 아들인 내가 당신의 속옷을 벗기고 대소변 처리하는 것을 꺼리는 통에 이 일은 아내 몫이 돼버렸다. 아내는 대소변을 받아내며 그동안 고생한 일이 너무 억울해서라도 기어이 어머니가 당신 혼자서 화장실에 다닐 수 있게 만들 거라며 의지를 다졌다.

 드디어 아내의 지극한 병구완으로 어머니는 기어서나마 화장실에 갈 수 있게 되었다. 어머니가 두 손바닥을 거실 바닥에 짚고 화장실을 향해 엉금엉금 기어가자 아내는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를 지켜본 엄마처럼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

 대소변을 받아낼 때는 어머니가 화장실만 다니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될 줄 알았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반찬을 장만하여 식사를 챙기는 일은 물론 목욕과 세탁, 손발톱 깎기, 이발 등 할 일이 태산 같았다. 그리고 응급상황에 대비해 한 사람은 어머니 곁에 붙어 있어야 했다. 특히 어머니는 허기에는 인색하여 조금만 식사 때가 벗어나면 배를 움켜잡고 금방이라도 명줄을 놓아버릴 것처럼 끙끙 앓았다.

 밤에는 어머니가 요강에다 소변을 보았기 때문에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화장실 변기에다 요강을 비우고 물로 행구는 것이 일과의 시작이었다. 그럴 때마다 밤새 묵은 소변이 역한 암모니아 냄새를 풍겨 나도 모르게 숨을 참느라 얼굴이 일그러졌다. 

 

 더군다나 어머니는 그전에 없던 버릇이 생겨났다. 바로 잔소리다. 틈만 나면 주방에 나와 아내가 하는 일에 사사건건 간섭하며 잔소리를 했다. 그것도 모자라 친척들에게 전화를 걸어 며느리가 밥을 늦게 준다느니, 찬밥을 준다느니, 우리 먹을 것도 없는데 남에게 뭘 다 퍼준다느니 하며 아내의 흉을 봤다. 귀가 어두운 어머니는 인기척을 못 느껴 며느리가 집에 들어온 지도 모르고 전화로 흉을 보다가 아내에게 들킨 적도 있다.

 차라리 내 흉이라도 보면 괜찮겠는데 어머니는 줄곧 아내 이야기만 했다. 나는 어머니가 이모와 통화를 하면서 아내 흉을 보는 것을 우연히 엿듣게 되었는데 아내가 들으면 정말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시어머니 병수발 하느라 고생한다는 말은 빼먹고 완전히 못된 며느리로 몰아가고 있었다. 거동이 불편하여 늘 병석에 누워있어서인지 어머니는 당신이 상상한 일을 마치 현실인 것처럼 상대방에게 전달했다. 시쳇말로 완전히 가짜뉴스였다.

 아내의 마음이 돌아서 버리기 전에 뭔가 특별한 대책이 필요했다. 어머니를 모시느라 죽도록 고생만 한 아내가 친척들에게 못된 며느리로 낙인찍히는 것 같아 마음이 언짢았다. 나는 전화를 차단했다. 전화는 어머니가 바깥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속도 모르는 어머니는 그까짓 전화세가 얼마나 나온다고 전화를 끊었냐며 너무한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나는 어머니가 한번 더 잔소리를 퍼붓거나 며느리 흉을 보는 날엔 요양원에 보내버리겠다며 비장의 카드를 꺼냈다. 어머니의 고집도 만만치 않았다. 전에는 자식 말이라면 무조건 다 들어주었는데 이제는 아니었다.


 급기야 어머니는 냉장고 사건으로 아내의 속을 몽땅 뒤집어 놓았다. 아내가 자리를 비우면 어머니는 슬금슬금 주방으로 나와 냉장고에 들어있는 식재료들을 깡그리 끄집어내 내용물을 확인하고는 냉동 냉장실 구분 없이 뒤죽박죽 다시 처넣어버렸다. 시어머니 잔소리도 잘 참아 넘긴 아내가 냉장고 문을 열어보고는 안색이 싹 변해버렸다. 나는 혈압이 올라 목덜미가 당기더니 뻐근한 기운이 어깻죽지까지 뻗쳤다.

 아내는 인천에 사는 친구가 지난번에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셨는데 말동무가 생겨서 집에 있을 때 보다 오히려 건강이 더 좋아졌다 하더라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나는 아내가 밖에 나가 조금만 늦어도 불안감에 사로잡혀 아내의 옷가지들과 여행용 가방이 그대로 있는지를 확인하는 버릇까지 생겼다.

 냉장고 문에다 자물쇠를 채울 수도 없고 없애버릴 수도 없는 일이었다. 나는 어머니 귀에 대고 만약 냉장고에 한 번 더 손을 대면 이번에는 진짜로 요양원에 보낼 거라며 으름장을 놓았다. 그리고 어머니가 이렇게 자꾸 말썽을 부리면 며느리가 아들하고 못살고 집을 나가버릴 수도 있다고 겁을 주었다. 어머니는 표정이 굳어지더니 내 말을 알아들었다는 듯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외출했다 돌아와 현관문을 열자 생선가게에 들어선 것처럼 비린내가 확 풍겼다. 어머니가 냉동실에 들어있는 식품들을 주방 여기저기에다 꺼내놓고 봉지를 풀어헤치며 뭔가를 찾고 있었다. 생선이 녹아 바닥에는 물기가 흥건했다.

 “어머니, 지금 뭘 해요?”

 내가 퉁명스럽게 묻자 어머니는 깜짝 놀라며 말문을 열었다.

 “밀가루가 없네.”

 “밀가루는 왜요?”

 “니가 수제비를 안 해 준께 그런다. 죽기 전에 니가 만든 수제비 한번 원 없이 묵고 싶었는디…….”

 어머니는 말꼬리를 흐리며 입맛을 다셨다.

 나는 어머니가 잔소리를 안 하고 냉장고에 손대지 않으면 수제비를 꼭 만들어드리겠다고 어머니와 손가락을 걸었다.


 “누가 박재순이를 나오라고 그래.”

 다시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치매 증세가 점점 심해진 모양이다. 얼마 전부터 어머니는 도깨비 같은 헛것과 싸움을 하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헛것을 저것들이라고 불렀다. 어머니는 날마다 헛것들과 전쟁을 벌였는데 내용은 이러했다.

 창밖에 저것들이 살고 있는데 하루는 어미가 자식 한 명을 잡아먹더니 날마다 자식들을 죽여 창가에 묻어서 공동묘지를 만들어 놓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당신에게도 어서 죽으라며 뱅이와 해코지를 하는 바람에 무서워서 못 살겠다고 어머니는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공동묘지에서 썩은 냄새가 진동한다며 창문도 열지 못하게 막았다.


 친부(親父)이자 천신인 우라노스를 낫으로 거세하고 세력을 잡은 크로노스는 자신도 자식들에게 축출당할까 두려워 부인인 레아가 아이를 낳으면 곧바로 삼켜버렸다. 졸지에 다섯 아이를 잃은 레아는 막내아들 제우스를 지켜내기 위해 시어머니인 대지의 여신 가이아와 계략을 꾸민다. 레아는 남편 몰래 크레타섬에서 제우스를 낳아 크레타 왕 멜리세우스의 딸 아말테미아에게 아이를 돌보도록 맡긴다. 남편에게는 제우스로 위장한 강보에 싼 돌멩이를 삼키게 하여 작전에 성공한다.

 어른이 된 제우스는 어머니로 하여금 크로노스에게 구토제를 먹이게 하여 형제들을 모두 토해내게 만든다. 결국 제우스는 자신이 구출한 형제들과 힘을 합쳐 아버지인 크로노스와 그를 따르는 티탄족을 물리치고 신들의 제왕 자리에 오른다.

 그리스신화는 들어본 적도 없고 오직 자식밖에 모르는 어머니가 신화처럼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연출한 것은, 자식이 당신을 요양원으로 내쫓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과 불안감에 무의식적으로 방어기제가 작동한 것이 아닐까.


어머니는 헛것들과 전깃불을 켜네 마네 하고 며칠을 싸우더니 온 집안의 불이라는 불은 모두 꺼버렸다. 이유는 저것들이 불을 켜지 말라고 했다는 거였다. 졸지에 가족들은 암흑 속에서 밤을 보내야 했다. 아내가 주방에서 요리하면 어느새 어머니가 다가와 불을 탁 꺼버렸다. 더군다나 어머니는 밤늦게까지 회사 일을 처리하느라 신경이 곤두선 딸아이의 방문을 두드리며 불을 끄라고 소란을 피우는 통에 나는 딸아이 눈치를 살펴야 했다.

 아내는 어머니가 헛것을 핑계 삼아 전기세를 절약하기 위한 작전이라고 입을 삐죽거렸다. 평생을 휴지 한 쪼가리라도 허투루 사용한 적이 없는 어머니였기에 아내 말도 수긍이 갔다.

 어머니는 아내가 집을 비운 사이에 귀신을 쫓는다며 막소금을 뿌려 집안을 온통 염전으로 만들어 놓더니, 급기야 방안 곳곳에 고춧가루를 뿌려놓았다. 거실에 있는 소파 위에까지 고춧가루가 묻어있어 나는 아내가 돌아오기 전에 몰래 청소하느라 진땀을 뺐다. 부랴부랴 창문을 열어 매운 냄새를 내쫓았는데 집안에 들어선 아내는 코끝을 만지더니 고춧가루 단지를 열어보고는 머리를 움켜쥔 채 한참을 서 있었다.

 핏기 없이 환자처럼 야위어가는 아내를 바라보며 이러다가는 우리 내외가 스트레스로 쓰러져 어머니보다 먼저 죽을 수도 있겠다는 불길한 예감에 휩싸였다. 어머니는 지금 100세를 바라보는 나이다. 죽음이 목전에 있는 사람을 어머니라는 이유만으로 앞길이 창창한 우리 내외가 꺼져가는 생명줄을 붙잡고 몸을 망가뜨리며 희생을 치러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어머니는 텔레비전도 켜지 못하게 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들이 당신을 빤히 쳐다보며 흉을 본다는 거였다. 그 사람들이 우리를 들여다보고 있다며 텔레비전 앞에서는 옷도 갈아입지 못하게 했다. 화면에 나온 사람이 진짜 사람이 아니라 영상이라고 아무리 설명을 해도 곧이듣지 않았다.

 아내가 낙으로 삼는 드라마를 볼 때마다 아내는 어머니와 한바탕 입씨름을 해야 했다. 사람이 TV를 시청한 것이 아니라 TV가 사람을 시청한다는 어머니의 기가 막힌 발상에 어안이 벙벙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집 안에 있는 물건들이 자꾸 없어졌다. 아내의 립스틱이 없어졌고 내다 버리려고 현관에 내놓은 옷가지들과 종이박스, 생선을 담았던 비닐봉지까지 감쪽같이 종적을 감췄다. 이 물건들은 나중에 어머니 방에 있는 반닫이와 베란다 구석에서 발견됐는데, 어머니는 서울 막둥이를 주려고 챙겨놓았다고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립스틱은 찾지 못해 나는 아내에게 립스틱을 사라고 돈을 손에 쥐어주었다.

아내가 밖에 나가자 어느 틈에 어머니가 다가와서는 화장이 잘 됐냐며 히죽히죽 웃으면서 입술을 내밀었다. 덕지덕지 칠한 새빨간 색조가 입술을 벗어나 쭈글쭈글한 볼까지 번지고 있었다.

 차라리 대소변을 받아내던 때가 더 나았다 싶었다. 그때는 어머니가 움직이지 못하고 누워만 있으니까 냉장고를 뒤진다거나 불을 끄는 이런 속상한 일은 없었다. 어머니는 정말 미운 짓만 골라서 했다.

 아내의 얼굴에 점점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한바탕 소나기가 퍼부을 것만 같았다. 아내와 30년을 함께하면서 줄곧 아내에 대한 기상 상태를 관측해 왔는지라 이번에 분석한 기상 전망은 아직까지 겪어보지 못한 최악의 상황이었다. 아내의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길게 장마전선이 걸쳐있어 단발성 폭우가 아니라 태풍을 동반한 지루한 장마가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절체절명의 위기와 맞부닥뜨리고 있었다. 장맛비가 쏟아지기 전에 하루빨리 가족을 위해 가장으로서 비장한 결정을 내려야 했다. 

 

 아내 손을 잡고 노래방으로 향했다. 아내를 무장해제 시킬 방법은 노래밖에 없었다. 나는 재빠르게 리모컨으로 김용임의 ‘사랑의 밧줄’을 입력했다. 반주가 경쾌하게 울려 퍼지자 마이크를 잡은 아내의 얼굴에 금세 화색이 감돌았다. 이참에 아예 아내를 사랑의 밧줄로 꽁꽁 묶어버리겠다고 마음먹고 나는 패티김의 ‘초우’를 비롯하여 아내의 애창곡을 연달아 예약했다.

노래를 좋아한 아내는 20여 곡을 지치지도 않고 엉덩이까지 흔들어대며 척척 불러댔다. 부쩍 늘어난 아내의 흰머리가 조명 빛에 언뜻언뜻 모습을 드러냈다. 어쩌다 점수가 100점이 나오면 아내는 노래자랑에서 대상이라도 수상한 듯 펄쩍 뛰며 기뻐했다. 아내는 노래 앞에서는 아무 근심도 걱정도 없는 철부지였다.

 노래방을 나서면서 아내는 내 손목을 꼭 붙잡았다. 아내의 온기가 온몸으로 느껴졌다.


 물이 보글보글 끓기 시작했다. 이제 조금만 지나면 어머니가 그토록 기다리던 아들의 수제비 요리를 맛볼 수가 있다. 반죽을 조금씩 떼어내 검지와 중지 위에 올려놓고 엄지로 쭉쭉 늘려가며 수제비를 빚어 물속으로 떨어뜨렸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국물과 함께 수제비들이 서로 어우러지며 피어올랐다. 그것은 생의 한가운데에서 모진 풍파와 싸워가며 어머니가 눈물로 피워낸 수제비 꽃이었다.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서 수제비가 되곤 했다. 펄펄 끓는 세파 속으로 수제비처럼 뛰어들고, 자식의 허기를 채울 수만 있다면 기꺼이 수제비가 되기를 자처했다. 뜨거운 물기둥과 함께 솟구쳤다가 곤두박질치는 수제비가 주름투성이인 어머니 얼굴과 뒤섞이자 나도 모르게 온몸이 달아올랐다.

칼자루 끝으로 마늘을 다지고 쪽파도 엇비슷하게 썰어 간장과 함께 국물에 넣었다. 국자로 휘휘 저으며 간을 보니 맛이 너무 심심했다. 간장을 반 숟갈 더 넣자 삼삼한 맛이 났다. 어머니가 좋아한 짠맛을 내기 위해 간장을 한 숟갈 더 부었다.

언제부턴가 어머니는 입맛이 변했다. 짜고 단 음식만을 고집했다. 아내는 어머니용 음식을 따로 조리해야 했다.


 수제비를 한 상 차려 들고 어머니 방으로 갔다. 간장도 한 종지 따로 챙겨서 밥상에 올려놓았다. 서두르다 보니 설탕이 빠졌다. 어머니의 입맛에 맞추려면 설탕이 필요했다. 양념통이 진열된 곳에 설탕은 없었다. 아내에게 물어보려고 휴대폰을 들었다가 그냥 탁자 위에 놓았다. 장모님 이장 때문에 친정에 내려간 아내와 통화하기엔 아직 이른 시간이었다. 싱크대와 찬장 구석구석을 뒤져 어렵사리 설탕 단지를 찾아냈다.

 설탕 단지를 들고  어머니 방에 들어갔다. 어머니가 엉거주춤한 자세로 수족관 안의 에인절피시에게 숟가락으로 뭔가를 먹여 주고 있었다. 수제비였다. 에인절피시가 수제비 냄새를 맡고 몰려들자 어머니는 마치 배고픈 아이에게 밥이라도 먹이는 양 고개를 끄덕이며 무척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어머니의 모습이 너무너무 행복해 보여서 나는 그저 멍하니 바라다보고만 있었다. 어머니는 당신은 한 입도 안 잡숫고 수제비 한 그릇을 물고기들에게 죄다 먹여버릴 요량이었다.

밥은 어머니에게 신이자 종교였다. 일제강점기와 육이오사변을 거치며 남편마저 잃은 어머니는 자식들의 끼니 해결이 최우선 과제였다. 밭뙈기 몇 마지기를 부치는 것으로는 일곱 식구의 주린 배를 채우기엔 역부족이었다. 허리띠를 동여매고 힘겹게 넘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 험한 보릿고개 앞에서 만신창이가 된 어머니는 온몸으로 바닥을 치며 밥을 달라고 절규했다. 이 집 저 집 품팔이에다 나물을 뜯어 시장에 내다 팔며 어머니는 자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몸을 아끼지 않았다.

밥은 어머니에게 믿음과 희망을 주기도 하고 어머니를 나락으로 빠뜨리기도 하는 존재였다. 밥을 위해서는 영혼까지 흥정할 수도 있었다. 어쩌다 자식이 밥 한 톨만 흘려도 어머니는 천벌 받는다며 야단을 쳤다. 어머니는 배고픈 설움이 제일 크다며 마른 논에 물이 들어가는 것과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보기가 좋다고 했다. 내 자식이든 남의 자식이든 배고픈 꼴을 보지 못하는 어머니는 이웃집 아이에게도 젖을 물렸다.


 “어머니!”

내가 부르는 소리에 어머니는 깜짝 놀라 숟가락을 수족관에 떨어뜨리며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이구, 영감, 여길 어떻게 왔소. 내가 잘못했소. 얼른 자리에 앉짔소. 내가 오징어 사다 줄게.”

 어머니는 와락 달려들어 나를 부둥켜안고 얼굴을 비벼대며 엉엉 울음을 터뜨렸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사별하고 나서 살아생전에 오징어 하나 사주지 못한 게 한이 된다며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아버지가 장날에 오징어가 먹고 싶다며 하자 어머니는 자식들을 위해 돈을 아껴야지 무슨 오징어 타령이냐며 면박을 줬는데, 가슴에 응어리가 생길 줄 몰랐다며 소매로 눈물을 훔치던 어머니의 모습이 눈가에 어른거렸다.

“여보, 내가 잘못했소. 그까짓 돈이 뭣이라고. 거기서 밥은 묵었소?”

어머니는 잠시 울음을 그치더니 눈물로 뒤범벅이 된 얼굴을 손등으로 문지르며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어머니는  내게 얼굴을 맞대고 마구 흔들어대며 오열하기 시작했다.

 “아이구, 영감, 미안하요. 오징어가 얼마나 묵고 싶었소. 정말 미안하요!”

나는 어머니를 부둥켜안았다. 뜨거운 눈물이 솟구치며 어머니의 눈물과 뒤섞여 뺨을 타고 뚝뚝 떨어졌다.

주방에 가서 다시 수제비 한 그릇을 가져와 한 숟갈 떠서 먹여 드렸다. 어머니는 맛이 없는지 어린아이가 쓴 약을 혀로 밀어내듯 그냥 뱉어냈다. 간장과 설탕을 더 넣어 간을 맞춘 다음 수제비 한 덩어리를 떠서 천천히 입안에 넣어드렸으나 어머니는 인상을 찡그리며 재차 혀로 밀어내 버렸다.


 나는 어머니를 등에 업었다. 물기가 빠져나간 어머니는 헛것이었다. 어머니는 어린애처럼 목을 꽉 껴안았다. 앞뜰에 서 있는 커다란 목련이 잔디밭에 하얗게 수제비를 뿌려놓았다.

나는 목련꽃을 가리키며 저 꽃 이름이 뭐냐고 물었다. 어머니는 내가 손가락질한 데는 눈길을 주지 않고 자꾸 애먼 곳만 바라다보았다. 나는 꽃잎 한 개를 주워 어머니 손에 쥐여 주었다. 어머니는 꽃잎을 손으로 만지작거리더니 입안에 넣고 입을 옴질거렸다.

어머니는 꽃 중에서 목련꽃을 최고로 좋아했다. 어린 자식들을 데리고 긴긴 겨울을 견뎌내야 하는 어머니는 들에 나가 푸성귀라도 뜯어 먹을 수 있는 봄을 기다렸고, 봄을 알리는 목련꽃은 희망의 상징이었다. 어머니는 목련 꽃잎이 수제비 같다고도 했다.


 목련꽃 하나가 쿵하고 떨어졌다. 갑자기 등이 따뜻해지며 그 기운이 허리 아래까지 뻗쳤다.

어머니를 침상에 뉘고 바지를 벗겼다. 속옷을 벗기려고 하자 어머니가 자꾸 발을 꼬았다. 실랑이 끝에 속옷을 벗겨 내렸다. 지린내가 코를 찔렀다.

 생전 처음, 나는 어머니가 감추고 있는 고향을 보았다. 어릴 적에 뛰놀던 수풀이 무성한 들녘과는 달리 눈에 비친 내 고향은 풀 한 포기도 나지 않은 메마르고 비탈진 불모지였다. 여섯 마리 흑염소가 드세게 풀뿌리까지 파먹고 떠나버린 고향은 온통 상처투성이였고 황량한 기운이 뒤덮고 있었다.

 별은 생성하고 소멸한다. 지금 바라보고 있는 별 중에는 별빛이 무한한 우주 공간을 달려오는 동안 이미 소멸하여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별도 있다.

 어머니의 잠든 얼굴을 들여다보다가 어쩌면 벌써 소멸해 버린 별 하나가 내 곁에 누워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성 명 이상길

연락처 010-6346-3092 이메일 lsk3092@hanmail.net

  • profile
    korean 2020.11.01 03:24
    수고 많으셨습니다.
    더욱 분발하시면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늘 건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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