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나무는 목매달기에 좋은 나무였다.

by 황룡왕 posted Oct 10,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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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그 나무는 목매달기에 좋은 나무였다.




━━ 신태일. 35. 그는 자살하기 위해 산에 올랐다.

 

 그는 괴로웠다. 지인들에게 이용당하고, 배신당하고, 끝에 가선 버림까지 받은 그는 그야말로 상처덩어리였다. 배신에 대한 괴로움. 원망에 대한 괴로움, 그리고 그런 괴로움들에 대한 괴로움. 그것들을 모두 감당하며 하루하루 고통 속에 살았던 그는 결국 몸과 마음이 지쳐 자연스럽게 자살을 선택했다. 그런 이유로 그는 자살하기 위해 산을 오르고 있었다.

산을 오르니 숨이 차고 다리가 아파왔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튼튼하고 모양 좋은 멋있는 나무를 찾고 있었기 때문이다. 최소한 죽는 장소만큼은 좋은 곳을 원했던 그는 하루 종일 산을 돌아다니며 나무를 찾아다녔다. 하지만 마음에 드는 나무는 좀처럼 찾을 수 없었다. 하나같이 삐뚤고 힘없어 보이는 약해보이는 나무였다. 그는 적당히 선택할까 생각했지만 왠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꼭 좋은 나무를 찾아 그 나무에서 목을 매달자고 생각했다. 그러기에 그는 힘들고 지쳐도 걷고 또 걸었다. 그런 그가 드디어 한그루의 나무 앞에 멈춰 섰다.

 

 그 나무는 산 정상에 자리 잡은 커다란 나무였다. 신태일은 하늘로 쭉 뻗은 그 나무가 마음에 들었다. 왠지 모를 애착에 손바닥으로 가볍게 나무를 쓰다듬어 봤다. 나무껍질의 거친 감촉이 여지없이 느껴졌다. 신태일은 거칠기 짝이 없는 그 나무껍질이 꼭 자신의 인생 같았다.

 “그래. 죽기엔 좋은 나무다.”

 신태일은 텅 빈 웃음으로 그 나무를 바라보며 가방에 넣어 온 굵은 밧줄을 꺼내들었다. 또한 목을 매기 위해 밟고 올라갈 작은 접이식 의자도 준비했다. 그 의자를 밟고 나무에 밧줄을 묶으며 신태일은 차근차근 죽을 준비를 시작했다. 잠시 후. 모든 준비가 끝나자 신태일은 망설이지 않고 목에 밧줄을 둘렀다.

 ‘부디 다시 태어나면.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마음속으로 마지막 말을 남긴 신태일은 곧바로 밟고 있는 의자를 쓰러트리려했다그런데 그 순간.

 ‘? 저건 뭐지?’

 목을 매달기 직전. 신태일은 저만치 떨어진 곳에 절간 하나를 발견했다. 지금껏 몰랐지만 목을 매달고자 의자에 올라타니 시야가 넓어져 볼 수 있게 된 거다. 순간 신태일의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시신이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것을 원치 않았다. 산 속에서 자살을 결심한 것도 그 탓이었다. 결국 절간의 존재는 신태일로 하여금 목에 감은 밧줄을 풀게 만들었다. 신태일은 생각했다. 지금 보이는 저 절에 사람이 살고 있다면 다른 곳으로 가서 죽어야 한다. 그러니 확인해봐서 저곳에 사람이 없다면 그때 이곳으로 돌아와 준비한 대로 목을 매달자. 그렇게 생각하며 신태일은 의자에서 내려와 절을 향해 걸어갔다. 그는 만족스러운 자살을 위해 자살을 유예했다.

 

 절은 의외로 멀지 않았다. 그만큼 가까운 탓인지 절 근처에서도 목매달려고 선택한 나무가 곧 잘 보였다. 심지어 나무에 묶어 놓은 밧줄도 어렴풋이 보였다. 신태일은 절을 살펴보러 온 것이 올바른 선택이었다고 생각했다. 만약 이 절에 사람이 살고 있다면 분명 빠른 시간 내에 나무에 목을 맨 자신을 발견했을 거다신태일은 망설일 것 없이 닫혀있는 문을 두드렸다.

 “거기 사람 계십니까.”

 힘차게 문을 두드리며 큰소리로 외쳤다. 하지만 안에선 아무런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혹시 몰라 몇 번을 더 두드렸다. 그래도 사람목소린 들리지 않았다. 신태일은 고민했다. 자던 사람도 깰 정도로 문을 두드렸다. 슬슬 그만두고도 싶었다. 하지만 차마 그럴 수 없는 이유는 닫혀있는 절간의 문이 밖이 아닌 안에서 잠겨있었기 때문이었다. 즉 누군가가 절 안에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결국 조금만 더 확인해보자는 마음에 신태일은 한참을 큰소리로 외치며 문을 두드렸다


 결국 그가 문을 두드린 것을 멈춘 건 목이 따갑고, 손바닥이 시뻘겋게 변한 뒤였다. 이 이상의 행동은 바보 같다는 생각에 신태일은 포기하듯 그만두기로 했다. 스스로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죽으러 온 사람이 산 사람을 걱정하다니. 보통 반대 아냐?’

 얼얼한 손을 쓰다듬으며 그는 문에서 뒤돌아섰다. 그리곤 밧줄을 걸어놓은 나무로 발을 옮겼다. 그는 이번에야 말로 죽자고 생각했다. 그렇게 되돌아 가려는 순간. 불현 듯 신태일을 잡아끄는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이 늦은 밤중에 어딜 가려는 거요.”

 목소리에 놀라 뒤돌아서니 굳게 다쳐있던 문이 열리며 그 안에서 노승이 걸어 나오고 있었다. 노승의 모습에 신태일은 자기도 모르게 사과하고 말았다.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근처에 조사를 좀 할 게 있었는데 이제 막 해결돼서 돌아가는 중이었습니다. 폐를 끼쳐 죄송합니다.”

 그 자리가 불편했던 신태일은 고개 숙여 사과하고는 서둘러 자리를 뜨려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노승의 말이 떨어졌다.

 “기다리게. 이제 곧 날이 저무니 오늘은 이 절간에서 자고 가는 게 어떻겠나.”

 그 목소리에 신태일은 자신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춰버렸다. 그리곤 속으로 후회했다. 못들은 척 무시하고 걸어갈 수도 있었건만 무슨 생각인지 멈춰 섰다. 신태일은 그냥 갈까 생각했지만 이미 멈춘 거 노승에 대한 예의라 생각하며 뒤돌아섰다.

 “감사합니다만 가볼 곳이 있어서요. 늦은 밤에 정말 죄송합니다.”

 노승의 말에 예의를 갖춰 거절한 신태일은 서둘러 발을 옮겼다. 속으론 또 다시 말을 걸면 이번엔 절대로 멈추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그 다짐은 너무나 쉽게 무너졌다.

 “한밤중에 산을 타려하다니. 자살이라도 하러 가는 겐가.”

 노승의 말에 신태일은 가던 길을 멈춰 선 것도 모자라 놀란 표정도 감추지 못했다. 그 의미를 아는지 모르는지 노승은 신태일에게 말했다.

 “하룻밤 정도는 괜찮으니 들어오게나. 극진한 대접은 못해줘도 잠잘 곳은 챙겨 줄 테니.”

 그렇게 말하며 노승은 신태일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먼저 절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대신 절간의 대문은 닫지 않고 반쯤 열어뒀다. 신태일은 그것이 들어오라는 노승의 뜻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는 망설였다. 자살하러 왔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어처구니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 정상에 있는 나무로 돌아간다고 해도 이곳에 사람이 사는 이상 그곳에선 자살할 수 없다. 즉 지금부터라도 다른 곳을 알아봐야 한다는 거다. 하지만 노승의 말대로 이미 날은 저물어 숲속은 어두워지고 있었다. 신태일은 한숨을 쉬었다. 자살조차 마음대로 안 된다는 것이 못내 답답했다. 결국 어찌할까 고민한 그는 노승의 말을 따르기로 결정 했다.

 

 신태일이 절 안으로 들어갔을 땐 노승은 이미 대문 정면에 있는 커다란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아 가장 크고 그나마 화려한 건물로 신태일은 그 건물이 불당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따라가세요.”

 어린 아이의 목소리. 신태일은 옆에서 들린 목소리에 그곳을 바라봤다. 거기엔 10살이 조금 넘은 동자승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되나?”

 신태일은 어찌해야 할지 몰라 들은 말을 되물어봤다. 신태일의 말에 동자승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곧바로 쪼르르 달려가 신태일이 넘어온 절간의 문을 닫아 잠갔다.

 “. 따라오세요.”

 문이 잘 잠겼나 확인한 동자승은 방금 전 노승이 들어갔던 건물로 신태일을 이끌 듯 걸어갔다. 선택의 여지가 없던 신태일로서는 그 뒤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동자승을 따라 안으로 들어간 그곳엔 천장까지 닿을 정도로 커다란 불상이 떡하니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 노승이 신태일을 기다리고 있었다.

 “와서 앉으게나. 자기 전에 사정이나 한번 듣고자 하네.”

 노승은 자신의 맞은편에 놓여있는 빈 방석을 가리키며 신태일에게 말했다. 그 모습에 신태일은 잠자코 자리에 앉았다.

 

 신태일이 착석하자 노승은 곧바로 묻고자 하는 것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래. 무슨 일로 이 깊은 산속까지 발을 들인 것이오.”

 “산을 타다가 길을 좀 잃었습니다.”

 신태일은 거짓말했다. 아무리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되었지만 자살이란 것을 당당히 말할 순 없었다.

 “길이라곤 이 절까지 오는 길 하나 밖에 없는데 길을 잃었다 그 말이오?”

 노승은 속으로 무언가를 정리하는 듯 천천히 눈을 감았다 떴다. 그리곤 신태일을 똑바로 바라봤다.

 “왜 이 곳에 발을 들인 건지 말해 보시지요.”

 노승은 신태일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신태일도 물러서진 않았다.

 “산을 오르고 싶었을 뿐입니다.”

 “왜 이곳에 온 것이오.”

 “우연입니다.”

 “왜 절간의 문을 두드린 것이오.”

 “길을 물어볼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찌 소승을 보고 뒤돌아 도망치듯 사라지려 했던 거요!”

 노승은 호통 쳤다.

 “말하시지요. 무엇을 망설였기에 이곳에 온 것이오.”

 노승의 말은 불같이 타올라 신태일을 집어삼켰다. 노승의 기백에 신태일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무슨 사연을 안고 이 산에 오른 자요. 이 늙은 중에게 말해보시오.”

 노승은 다시 한 번 신태일의 사정을 물었다. 그 탓에 신태일도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말한다고 바뀌는 게 있겠습니까.”

 “있다면 어쩔 것이고, 없다면 어쩔 것이오. 그저 마음속에 담고만 있으면 바뀌는 게 있는 거요?”

 노승의 말에 신태일은 무언으로 대답했다. 그 모습에 노승은 또다시 불당 안이 흔들릴 정도로 소리 쳤다.

 “이 깊은 산속에 사람을 피해 떠돌아다니는 자는 열에 하나는 귀신이고, 또 하나는 죄인이고, 나머지는 죽으려는 자요. 말해보시오. 당신은 무슨 목적으로 이 산속을 해매며 절간의 문을 두드렸는지. 귀신이든, 죄인이든, 하물며 죽으려는 자라도 내 득이 될 조언을 해 줄 터이니 말하도록 하시오.”

 목소리가 어찌나 쩌렁쩌렁한지 노승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신태일의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들었다. 그것은 신태일의 망설였던 마음을 한순간에 잡아줬다. 신태일은 여전히 떳떳치 못한 마음을 안고 있었지만 듣기를 원하는 노승에게 사실대로 말하기로 했다.

 “알겠습니다. 말하도록 하지요.”

 신태일은 이 모든 것이 죽기 전 마지막 여정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신태일은 노승의 뒤에 자리를 잡은 동자승을 바라봤다.

 “대신. 저 뒤에 앉아 있는 아이는 자리를 비켜주도록 해주시죠.”

 지금부터 자신이 하게 될 이야기를 어린아이에게 들려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것이 인간의 더러운 면이든, 자신의 나약한 면이든. 어린 아이에게 어른으로써 부정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에 심히 거부감이 들었다. 하지만 노승은 의외로 별거 아니라는 듯 이를 흘려 받았다.

 “이 아이라면 걱정 마시지요. 아무리 어리다 하더라도 불가(佛家)에 몸을 담고 있는 아이. 사연이라 한다면 이 아이 또한 백전노병과 다를 바 없습니다.”

 하지만 신태일은 이 부분 만큼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럴 순 없습니다. 저 아이는 자리를 피하게 해주십시오.”

 그 말에 노승은 조용히 신태일을 바라봤다. 그리곤 그의 눈에서 의지가 있음을 발견했다. 노승은 속으로 신태일이 그런 눈으로도 있을 수 있는 남자라는 것에 감복했다. 하지만 그것을 겉으로 드러낼 순 없는 상황이기에 그 의지만 받아들이기로 했다.

 노승은 살짝 몸을 돌려 뒤편에 앉아있는 동자승을 바라봤다. 이미 모든 상황을 노승의 뒤에서 듣고 있던 터라 동자승은 이해가 빨랐다. 동자승은 자신을 바라보는 노승을 향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곤 신태일을 향해 인사를 건네고는 조용히 불당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 모습을 신태일은 끝까지 바라봤다.

동자승이 밖으로 나가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게 되서야 신태일은 고개를 돌려 노승을 바라봤다. 그는 곧바로 감사의 말을 건넸다.

 “제 부탁을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이를 위한 일에 부탁이 어디 있고 감사할게 어디 있겠습니까.”

 노승은 껄껄 웃으며 별일이냐는 듯이 넘겼다.

 “그럼 이제 들어 보도록 합시다. 말해주겠소?”

 노승의 말에 신태일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하였다.

 “……. 자살하기 위해 이 산에 올랐습니다.”

 알고 있는 듯, 사실은 몰랐다는 듯. 노승은 신태일의 말을 조용히 받아들였다.

 “그럼 왜 이곳의 문을 두드린 것이오. 절간에서 자살이라도 하려는 생각이었소?”

 “아닙니다. 그저 이곳에 사람이 사는가 확인하고 싶었던 것뿐입니다.”

 “무슨 이유이기에?”

 “저는 산 정상에 있는 커다란 나무에서 자살 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대 막상 목을 매달려고 하니 이 절이 보이더군요. 만약 이곳에 누군가가 살고 있다면 제 모습이 보일 거라 생각했습니다. 저는 목매달아 죽은 내 모습을 다른 누군가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죽는 것이 무서운 게 아니라 죽은 자신의 모습을 보이는 게 무서웠다 이 말이오?”

 무섭다. 그 단어가 묘하게 신태일의 마음을 씁쓸하게 만들었다.

 “글쎄요. 무섭다는 단어가 옳은 건진 모르겠습니다. 그저 원치 않았습니다.”

 “왜 원치 않았던 건요?” 

 그 물음에 신태일의 심장이 떨리기 시작했다. 누구든 자기 자신에게만큼은 솔직하듯 신태일 역시 원치 않았던 이유쯤이야 곧바로 알 수 있었다. 다만 그것을 타인에게 말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그 질문은 신태일의 마음 깊숙한 곳을 찌르는 말이었고, 그 만큼 자기 자신을 고스란히 보여줘야 하는 질문이었다. 잠시 생각던 신태일은 말할 수 있는 만큼 말하기로 했다.

 “목매달아 죽은 내가 구경거리가 되는 게 싫었습니다. 전 누군가에게 조롱당하는 게 싫습니다.”

그 말은 신태일이란 남자를 보여주는 거울과도 같았다. 노승은 신태일에게 연민을 느꼈다. 그러기에 말을 아끼며 에둘러 피했던 말을 꺼내들었다.

 “자네. 어찌 자살하려 했는가.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노승의 말에 신태일은 묵묵부답으로 고개만 숙였다. 이를 보며 노승은 신태일이 스스로 말해 주기를 기다렸다. 잠시 뒤. 신태일은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봤다. 답답한 마음을 달래려는 듯 크게 숨을 들이 쉬었다. 신태일은 마음속 깊이 쌓인 한을 날숨과 함께 내쉬며 노승을 바라봤다.

 “…….”

 그는 자신이 자살하려고 한 이유를 노승에게 말 했다.

 “이용당하고, 배신당하고, 버림받아 버려진 뒤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잃은 사람입니다.”

신태일의 고백은 그가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노승에게 여실이 보여줬다.

 

 노승은 신태일의 말을 귀담아 들었다. 그것은 비단 승려이기 이전에 죽기 전 그 사람의 유언을 들어주는 평범한 인의(人義)였다. 하지만 신태일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전 평범한 회사원이었습니다. 소중한 친구와 사랑하는 여자가 있고. 꿈도 있었습니다. 정말로 행복했었습니다.”

 과거를 더듬듯 천천히 말을 읊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그것들이 하나 둘씩 무너지기 시작하더군요. 제일먼저 무너진 건 친구와의 우정이었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이십년 가까이 알고 지낸 녀석이었죠. 그래서 보증을 부탁받았을 땐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금액도 감당 못할 정도는 아니었고요.”

 거기까지 말했을 때. 노승은 문득 신태일의 목소리가 떨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연락을 끊고 사라져버린 친구란 녀석이 원망스럽더군요. 한동안 속이 상했습니다. 당한 것도 당한거지만 친구라 생각한 사람에게 이용당했다는 사실이 속이 쓰렸습니다. 하지만 당장 갚아야 하는 빚도 있고 지켜야할 것들도 있었기에 당시엔 어떻게든 이겨내자고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살았습니다.”

 거기까지 말하자 신태일은 갑자기 실소(失笑)를 했다.

 “그런데 이번엔 직장동료가 절 회사 내에서 모함하더군요. 정말 웃긴 건 아직도 뭐가 문제였는지 듣지도 못했다는 겁니다. 그저 문제가 있었다는 것과 그 잘못이 내 탓이라는 소리만 들었죠. 결국 막무가내 식으로 회사에서 쫓겨나듯 나와야만 했습니다. 아직 친구의 보증도 다 갚지 못했는데 졸지에 백수가 되어버린겁니다.”

그 말을 마치자 신태일은 억울함을 달래려는 듯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러더니 이번엔 결혼을 약속했던 여자가 연락을 끊었습니다. 그녀는 제게 말했었습니다. 지금의 내 사정을 이해한다고요, 믿어준다고요, 기다려주겠다고요. 하지만 그 말을 한 다음날부터 연락이 없었습니다. 며칠을 기다리고 몇 번이나 전화를 해봤지만 그녀의 목소린 듣지 못했습니다. 결국 그녀의 집으로 직접 찾아가보니 이미 다른 곳으로 떠났다는 말만 이웃에게 들었습니다.”

 거기까지 말하자 신태일의 표정은 여러 감정이 섞여 엉망이 되었다. 그는 너무나 허무한 눈빛으로 노승을 바라봤다.

 “스님. 며칠 전에 몸이 아파 병원에 갔었답니다. 거기서 뭐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암이라고 합니다. 이미 치료는 힘들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살을 결심한 거요?”

 “. 어차피 죽는다면 고통스럽기 전에 죽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고통스럽기 전에 말이오?”

 “. 그렇습니다.”

 그 말을 듣자 노승은 신태일이 왜 죽고자 했는지 알 수 있었다. 가진 것은 하나 없고 이제 곧 고통 속에 죽으니깐. 그런 생각이 씨가 된 것이다. 모든 것을 말한 신태일은 어느새 노승의 앞에서 빈껍데기 같은 인간이 되어있었다. 노승은 그를 보며 그를 위해 해줄 말을 정리했다. 진실로 모든 것을 고백한 사람을 위해 자신역시 최대한 그를 돕고 싶었다. 그러기에 노승은 자신에게 사정을 솔직하게 말해준 신태일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이 어리석은 것!”

 그를 진정 꾸짖었다.

 

 신태일은 노승의 호통에 처음으로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지금까지 자신을 어르고 달래던 말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꾸짖고 혼을 내는 말이었다. 신태일은 그것이 자신을 위한 것임을 바로 이해했다. 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신태일은 반발심에 노승을 향해 대꾸했다.

 “스님. 제가 무엇이 어리석다는 말입니까.”

 “스스로를 포기하려는데 그것이 어리석다 하지 뭐라 하겠느냐.”

 “포기하지 말라는 말인가요. 포기하지 않는다고 바뀌는 게 있다면 저 역시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말하지 않았습니까. 전 이제 살날이 얼마 남지도 않았단 말입니다.”

 “그것을 아는 놈이 포기하는 것이냐.”

신태일의 말을 노승은 자르듯 받아쳤다.

 “이미 엎질러진 물은 담을 수 없지만 쓰러진 물 잔은 세울 수 있는 법. 이미 과거에 잃어버린 것들은 되찾을 수 없어도 남은 인생 속에서 또 다른 무언가를 얻을 수 있었을 터인데 이를 생각지 못하고 모두 포기했으니 이는 무지(無知)하기에 저지른 잘못이더냐, 아니면 그저 괴로움에서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더냐.”

 “, 저는…….”

신태일은 노승의 말에 대꾸하려 했지만 도망이란 단어에 목이 멨다. 노승은 신태일의 변명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지금껏 살면서 많은 것을 배신당하고, 모함당하고, 버려졌을 수도 있을 것이다. 마지막에 가서는 살 날 조차 얼마 남지 않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남은 인생을 버려야 할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을 것이야.”

 “......”

 “그런대 왜 너는 남은 목숨을 버리려고 하는 것이냐. 그것은 네가 괴로움 속에서 도망치려고만 했기 때문이지 않느냐. 도대체 무엇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이냐. 남은 인생을 버리고 자살하여 죽는 것 또한 네가 스스로 선택해 바꾼 너의 인생이 아니더냐.”

 노승은 촛불처럼 흔들리는 생명을 부여잡기위해 소리쳤다.

 “너는 마지막의 마지막에 가서 피하고 도망쳐 자살이란 선택을 스스로 내렸다. 말해보거라. 이 자살도 다른 누군가에 의해 어쩔 수 없이 결정한 것이냐?”

 노승의 물음에 신태일은 그저 고개만 숙였다. 신태일은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만 했다고 말했다. 자살 역시 남은 시간 고통스럽기만 하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노승의 말처럼 자살은 남은 인생을 스스로 포기하고 선택했던 신태일의 선택이었다.

 노승은 신태일을 보며 혀를 찼다.

 “어리석은 것. 가엽은 것. 본인은 이미 바라는 대로 인생을 바꾸어 가고 있건만 그 안에서 희망은 찾지 못할망정 절망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었구나.”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는 노승의 태도는 신태일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이미 제 뜻대로 인생을 바꿔가고 있었다는 겁니까.”

 신태일은 작게 중얼거렸다. 그것은 보는 사람으로도 씁쓸한 무언가가 느껴졌다노승은 고개를 들지 못하는 신태일을 향해 말했다.

 “아직은 늦지 않았다. 그러니 내일 날이 밝으면 산을 내려가는 것이야. 그리한다면 자네는 오늘 하루 동안 그저 산을 올랐을 뿐이니깐. 알겠나?” 

 노승의 말에 신태일도 마음으론 동의했다. 하지만 여전히 그는 망설였다.

 “그걸로 괜찮은 겁니까?”

 “괜찮으면 어떻고, 안 괜찮으면 어쩔 건가?”

 “전 남은 인생을 평안히 살아갈 자신이 없습니다.”

 그 말에 노승은 콧방귀를 뀌었다

 “누군 자신 있어서 인생을 사나. 죽기 싫어 사는 거지.”

 “만약 죽고 싶다면요.”

 “그런 인간은 없어.”

 노승은 확답했다.

 “이 세상에 죽고 싶은 사람은 없어. 모두 살고 싶어 하지. 다만 행복하게 살길 바라는 것뿐이야. 당신 또한 그러지 않았나?”

 그 말에 신태일은 생각했다. 맞는 말이다. 행복하게만 있을 수 있다면 죽을 이유 또한 없을 것이다. 친구와의 우정. 직장동료와의 신뢰. 연인과의 미래. 그리고 건강한 몸. 만약 이것들이 무너지지 않았다면 신태일은 절대 죽는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을 거다.

 “……. 그렇습니다. 맞는 말이에요.”

 모든 것을 인정하는 그 말에 노승은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포기하지 말게나. 자네에게 살 수 있는 시간이 남아 있는 만큼 희망이 있어. 그것을 찾도록 노력하게나.”

 “. 알겠습니다.”

 신태일은 그 말을 새겨들었다. 그 모습을 보며 노승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늘은 늦었으니 이곳에서 자고 내일 날이 밝으면 같이 아침이나 드세.”

 “. 감사합니다.”

 고개를 들지 못하는 신태일의 모습에 노승은 마지막으로 입을 열었다.

 “줄곧 소승이 말은 하였지만 항상 선택은 본인이 하는 법. 어느 선택이 당신에게 절망이 될지, 희망이 될지 오늘 밤 잘 생각해 보시게나.”

 “. 명심 하겠습니다.”

 노승의 말을 신태일은 받아들였다. 그 모습에 노승은 여기까지라는 생각과 함께 불당 안에 신태일은 남겨두고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 그 후 신태일은 동자승이 가져온 침구류를 불당 안에 깔고 많은 생각 속에 조용히 잠을 청했다. 그날은 신태일도, 노승도 쉬이 잠들지 못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난 동자승과 노승은 침구류를 정리하고 하루일과를 시작했다. 평소라면 노승은 동자승과 함께 아침준비를 했겠지만 오늘은 다른 심부름을 먼저 시켰다.

 “불당으로 가서 아침이 되었다 말씀들이고 깨워 들이도록 해라.”

 동자승은 노승의 명령을 받아들여 곧바로 불당으로 걸어갔다.

 불당 앞에 도착한 동자승은 고사리 같은 손으로 문을 콩콩 두드렸다.

 “아침입니다. 일어나셨습니까?”

 신태일을 부른 동자승은 가만히 자리에 서서 대답을 기다렸다하지만 안에선 별다른 말이 들리지 않았다. 또 몇 번을 두드려봐다. 이번에도 대답은 없었다. 동자승은 혹시나 아직도 자는걸까 생각했다. 결국 흔들어 깨워야 한다는 생각에 동자승은 조용히 문을 열고 불당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동자승의 눈은 휘둥그레졌다. 신태일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던 거다. 다만 정리된 침구류 위에 쪽지 한 장이 놓여 있었다. 동자승은 서둘러 그것을 펼쳐봤다.

 [가야할 곳으로 가도록 하겠습니다.]

 그것은 신태일이 노승에게 남긴 쪽지였다.

 

 동자승은 서둘러 노승에게 쪽지를 건네줬다. 그것을 받아들인 노승은 말없이 글을 읽어 내렸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며 동자승은 노승이 신태일을 찾아보라고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노승은 신태일을 쫒지 않았다. 대신 다른 부탁을 했다

 “서랍에서 라이터를 가져오너라.”

 노승의 말에 동자승은 서랍 속에 넣어둔 라이터를 가져왔다. 그것을 건네받은 노승은 들고 있던 쪽지와 함께 마당으로 걸어갔다. 그리곤 마당 한 가운데서 신태일이 남긴 쪽지를 불에 태워 재는 바닥에 뿌리고 연기는 하늘로 날렸다.

 

 쪽지 한 장이 재가 되고 연기가 되어 사라지자 노승은 동자승과 함께 절 밖으로 걸어 나갔다. 물론 그곳에선 신태일의 모습을 찾아볼 순 없었다. 그저 안에서 잠군 절간의 문이 풀려있는 것에 그가 나간 것만을 세삼 확인할 뿐이었다.

동자승은 신태일을 걱정하며 노승에게 물었다.

 “큰스님. 그분은 어디로 가셨을까요.”

 “모르지. 죽으러갔을지. 살러갔을지.”

 노승은 신태일이 떠나버린 것을 덤덤히 받아들였다.

 노승은 저만치 떨어진 산 정상을 바라봤다. 그곳엔 유독 하늘높이 뻗은 커다란 나무가 한 구루 있었다. 노승은 그 나무를 멀찍이 바라 봤다. 그런 노승의 모습을 보며 동자승도 노승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아직 키가 작은 동자승의 눈엔 노승이 보는 나무는 보이지 않았다. 결국 노승과 함께 같은 것을 볼 수 없었던 동자승은 이를 포기하곤 어젯밤 신태일을 향해 노승이 말하던 것을 떠올려봤다.

 “큰스님. 그분에게 희망을 찾으라고 말씀하셨는데 어떻게 해야 희망이란 것을 찾을 수 있나요?”

 희망. 그것은 노승이 신태일에게 몇 번이고 말했던 단어였다.

 “희망을 찾고자 한다면 희망이 무엇인지 깨닫는 것부터 시작해야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깨달을 수 있는 건데요?”

 “무언가를 깨닫기 위해서는 부재(不在)만큼 좋은 것이 없단다.”

 “부재……. 말인가요?”

 “음식의 소중함을 알려면 굶어보면 안다. 집의 소중함을 알려면 밖에서 자보면 안다. 돈의 소중함을 알려면 돈 한 푼 없이 살면 알게 되고. 사람의 소중함을 알려면 외톨이가 되어 보면 알게 되는 법이야.”

 그 말을 듣자 동자승의 표정이 뾰로통해졌다.

 “큰스님의 선문답(禪問答)은 항상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소중함을 안다는 건 그 소중함을 느낀 대상이 가지는 의미와 가치를 이해했다는 뜻이다. 그것을 말하는 것이야.”

노승의 말은 동자승에겐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동자승은 머릿속엔 무언가가 조금씩 그려져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면 희망역시 같은 겁니까? 희망을 잃고 희망의 소중함을 알아야. 희망을 알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까?”

동자승은 연신 되물었다.

 “그건 아니다.”

 노승의 말은 부정적이었다.

 “희망만큼은 다르단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잃어버리고 사라진 후엔 후회 속에서 그 본질과 가치를 뒤늦게 깨달을 수 있지만 희망만큼은 다르단다.”

 노승은 동자승에게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너는 희망의 반대가 무엇이라 생각하느냐.”

 “절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말에 노승은 고개를 끄덕였다. 만족스러운 대답이었다.

 “맞다. 희망의 반대는 절망이지.”

 “그럼 사람은 절망에 빠지면 희망을 깨닫게 된다는 건가요?”

 그 말에 노승은 아주 가볍게 동자승의 머리를 콩 하고 쥐어박았다.

 “이놈아. 지금까지 무엇을 들은 것이냐.”

 노승이 꾸짖음에 동자승은 맞은 곳을 손바닥으로 비비며 울상으로 되물었다.

 “그럼 무엇이란 말입니까.”

 “네가 말한 대로 희망의 반대는 절망이다. 하지만 절망한다고 무조건 사람들이 희망을 깨닫는 건 아니야. 희망이란 절망을 타계할 마음, 그것을 이룰 수 있는 힘, 또한 이에 필요한 용기. 그런 많은 것들이 필요로 하지. 정말이지 찾기 힘들고 어려운 것이야. 그러니 안타깝게도 어젯밤 그 사람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절망에 빠지면 희망을 버린단다.”

 “희망을 버려요?”

 “그래.”

 노승은 신태일을 떠올렸다. 모든 것을 다 잃어 절망에 빠진 그는 희망을 버리고 죽기위해 산에 올라왔다.

 “희망을 버려 절망에 빠지는 건지, 절망에 빠져 희망을 버리는 건지. 그거야 부처님 속마음 마냥 헤아리기 어렵다지만 결국 인간은 둘 중 하나만 껴안아 버린단다.”

 그렇게 말한 노승은 다시금 정상위의 나무를 바라봤다. 그 나무엔 신태일이 목을 매기 위해 걸어놓은 밧줄이 보였다.

 “다만 절망을 선택하고 희망을 버리는 게 너무 쉬워서 사람들은 희망보다 절망에 빠져버리는 거란다.”

 “그럼 그 분은 어떻게 될까요. 계속 절망에 빠져있을까요? 아니면 희망을 찾을까요?”

 “글쎄다. 절망을 택한다면 목을 맬 것이고. 희망을 선택한다면 자신이 도망쳐 왔던 지옥으로 되돌아갔겠지.”

 “어느 쪽을 선택하든 고통스러운 건 변함이 없네요.”

 “그것 또한 인생이다. 그리 생각하거라.”

 “. 큰스님.” 

 동자승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며 노승은 인자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노승은 다시 한 번 정상위의 나무를 바라봤다. 어리고 작은 동자승에겐 여전히 산 정상에 있는 나무는 보이지 않았지만 이미 나이를 먹은 노승의 눈엔 그것이 뚜렷하게 보였다. 그 순간.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그리곤 누군가 목을 맨 건지, 아니면 단순히 바람에 흔들린 건지. 자살하기 위해 나무에 매단 밧줄은 앞뒤로 세차게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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