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속의 미궁
-도망자와 도망자의 기억
횃불이 길을 밝히고 있었지만 어둡고 끝없이 이어진 복도와 계단에서 오늘도 낯설면서도 익숙한 곳을 누군가한테 쫓긴다. 숨을 고르기위해 잠깐 서면 '누군가'도 멈추고 내가 달리면 '누군가'도 달린다. 마치 내 그림자처럼.
"지율아!! 한지율!!"
계단 밑으로 내려갈수록 나를 부르는 소리는 뚜렷해져만 갔다.
뜬금없이 계단 옆에 문이 있을 리는 없지만 누가봐도 문이었고 문은 나무로 만들어지고 세월이라는 시간이 스쳐지나간 자국이 있었다. 나무의 나이테가 묘하게 나를 끌어당겼다. 문을 넘어도 똑같은 복도와 계단이 있을 것 같았다.
타박 타박 타박
나는 가만히 있었지만 나를 쫓던 '누군가'는 천천히 나를 향해 걸어왔고 발걸음 소리가 움직이지 말라고 주문을 거는 것처럼 움짓이지 않았다. 총 장전소리에 더 움직일 수 없었고 소름이 돋았다. 결굴 문을 열고 들어가 시간을 벌기 위해 나무 막대기를 손잡이에 걸로 뒤를 돌아보는 순간 '헉' 소리밖에 안 나왔다.
수심을 알 수 없는 커다란 수영장 건너 벽이 있었다.
덜컹 덜컹
'누군가'를 피하기 위해서라면 모든 걸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물에 들어가서 헤엄치기 시작했다. 목표 지점은 깨진 장독대에 물을 채우는 일처럼 멀었다.
거의 다왔을 때 뒤를 보자 '누군가'는 이미 수영해서 여기로 오기 시작했다. 숨이 막히고 긴장하는 바람에 '누군가'의 얼굴을 확실하게 보지 못했고 벽을 그냥 기어오르자니 매끈했다.
이대로 잡히는 건가하고 생각하던 도중 하늘에서 밧줄이 내려왔고 얼른 줄을 타고 올라갔다. '누군가'도 내가 매달린 밧줄을 잡고 올라오는 순간 총성 소리와 동시에 떨어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래 보지 마!"
위에서 누군가 밧줄을 끌어당기면서 말했다. 겨우 올라왔을 때 가파른 숨소리를 가라 앉히려고 애썼다.
"괜찮아?"
"고마워. 진짜로 고마워."
"얼른 출발하자."
고개를 들었을 때 내 또래 남자애는 밧줄을 정리하면서 빠르게 숨을 쉬고 있었고 머리를 하로 묶은 내 또래 여자애가 못마땅하게 보고 있었다.
"보나마나 기억을 잃었겠지."
"기억이라고?"
남자애는 미간을 찌푸리며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또 올 수 있으니깐 빨리 움직이자."
"설마 한지율 데리고 다닐 건 아니지?"
"그래야지. 아직 모르잖아."
"너 마음대로 해라."
여자애는 내가 있는 게 못 마땅한 듯 먼저 가고 있었다. 나는 아직도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아니 설명을 해봤자 이해를 못하겠다. 또 기억을 잃었다는 건 저번에 만난 적이 있다는 건가?
"나는 윤시우고 까칠한 애는 김수아라고 해. 너하고 같은 또래고."
"기억을 잃었다는 게 무슨 뜻이야?"
"말 그대로 기억을 잃었다고 가족이 누군지, 친구들이 누군지 몰라."
그제야 아무 기억이 없다는 걸 알았다. 내 이름과 나이만 제외하면. 어떻게 여기에 오게 된 건지, 여기는 어딘지 아무것도 몰랐다. 두통이 밀려왔을 때 윤시우는 나한테 수건을 주면서 김수아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수건으로 최대한 몸을 빨리 말리고 애들하고 떨어질까 서둘러 따라갔다.
"여기서 빠져 나갈 수 있는 거야?"
"글쎄."
확실하지 않는 답에 절망했지만 여기서 빠져나갈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더 이상의 오고 가는 말이 없어서인지 미세한 발걸음 소리과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여기에 우리 말고 더 있는 거야?"
"어쩌면."
"우리도 여기에 정확히 아는 게 없으니깐 그만 물어봐. 알았어?"
김수아는 윤시우하고 내가 하는 대화에 끼어들어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까칠 하게 말했다.
5시간 동안 계속 걷다가 이번에는 복도 끝에 문이 있었다.
세월이라는 시간이 스쳐지나간 자국. 아까 봤던 문하고 비슷했지만 뭔가를 지키려고 하는 듯이 장승이 좌우에 있었고 문에는 도깨비 얼굴이 그려져 있었으며 절대로 이 문을 통과하지 못하게 만든 것처럼 으스스하고 소름끼쳤다. 나는 멈춰서 뭔가에 홀린 듯 문을 보고 있었을 때 누군가 나를 건드리는 바람에 흠칫했다.
"괜찮아?"
"어? 응."
김수아는 자신만만하게 문을 열어 들어갔고 윤시우도 따라 들어갔다. 이제 나를 따라오던 누군가는 더 이상 오지 않았지만 혹시 몰라서 주변을 둘러보고 문을 넘었다.
*****
"지율!! 한지율!! 일어나!"
누군가 나를 부른다. 누군가 내 방에 들어오자마 커튼을 치고 이불을 뺏어갔다.
햇빛이 들어오는 바람에 더 잘 수가 없어 눈을 뜬다. 책상, 의자, 가방, 책, 인형. 누가 봐도 그냥 평범한 여학생의 방이 었다.
"엄마?"
"빨리 안 일어나?!"
엄마한테 등짝을 맞으면서 까지 엄마를 끌어안았다. 이토록 엄마를 그리워했던 적이 없었다. 단지 꿈을 꾼 것 같은데 모두를 그리워하는 내가 이상한 건가?
"애가 아침부터 왜 이래? 빨리 등교 준비해."
"언제 또 딸이 안아 주겠어?"
아빠까지. 모든 게 굉장히 오랜만에 느껴졌다. 그 탓일까 10분 아니 1시간 동안 부모님을 안아 주고 싶었지만 등교하기 위해 준비했다. 등굣길이 이렇게 즐겁고 가벼웠다.
적어도 20분 전까는.
"지율아. 숙제대신 해주라."
"하는 김에 내 것도."
애들은 나한테 숙제를 떠넘기고 어디론가 가버렸다. 한 가지 어쩌면 여러 가지를 잊고 있었지만 기억이 났다. 나는 학교에서 패배자고 가족들하고 있을 때나 어디 나왔을 때 패배자처럼 보이지 않게 더 활발하게 웃었다.
"앗, 미안. 손이 미끄러졌다."
누군가 보온병에서 꺼낸 뜨거운 물이 손에 떨어졌다.
그 애는 미안한 얼굴이 아닌 웃고 있는 얼굴이었다.
다행이 다른 애들의 교과서에 물이 쏟아지지 않았고 보온병에 있던 물이여도 그렇게 많이 뜨겁지 않았다. 얼른 화장실로 가서 차가운 물로 씻고 다시 교실로 와서 숙제를 대신했다. 조례를 알리는 종이 울리고 마침 숙제를 다 한참이라 교과서를 애들한테 돌려줬다. 선생님께 여태 있었던 일을 말해봤자 그냥 넘어갔다.
'친구끼리의 가벼운 장난인데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인 게 아닐까?' 라고.
조례가 끝나고 거의 교과활동은 모둠으로 이루어지는 바람에 눈치를 보면서 어디에 들어가야 할지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무리를 지어서 나를 공격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이럴 때가 제일 싫었다.
"지율아, 여기에 앉아."
김수아····.
"어? 응."
김수아 옆에 앉자마자 1교시인 과학이 시작됐다. 오늘처럼 눈치를 보면서 끼어 앉는 일이 자주 있었다.
과학 실험이 시작됐고 모든 걸 조심히 다루고 있을 때 쯤 내 앞에 황산을 들고 있던 애가 손을 놓치면서 김수아한테로 황산이 조금 튀었고 비명을 질렀다.
그 애는 나한테 누명을 씌우고 아무것도 모르는 애들은 나를 째려봤으며 혼나는 일은 순식간이었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5교시 시작시간에 전학생이 왔다.
"나는 윤시우라고 하고 앞으로 잘 부탁해."
윤시우····.
시간은 빠르게 흘러 종례가 끝났고 청소시간 때 애들은 나한테 몰렸다.
"지율아, 오늘만 청소대신 해주면 안 될까? 선생님께 잘 말씀드릴게."
"알았어."
오늘만이 아니다. 일주일 내내, 한 달 내내 김수아하고 다른 애들은 나한테 청소를 떠맡긴다.
"시우야, 동네 구경시켜줄게."
"아, 미안. 나도 청소여서."
"지율한테 맡기면 되는데."
나를 향해 웃으면서 말하는 김수아의 얼굴을 밟아버리고 싶었다. 내 망상이지만 판타지 속에나 있는 구미호처럼 생겨서 마음대로 조종하고 유혹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청소는 혼자서 할 수 있으니깐 먼저 가."
"들었지? 가자."
김수아는 내 말을 듣고 웃으면서 전학생을 봤지만 전학생은 관심 없다는 듯 청소도구함으로 다가갔다. 김수아는 포기한 듯 나를 째려보면서 갔다. 전학생은 보온병을 꺼냈다. 아까 일에 트라우마가 생겨서 흠칫했다.
전학생은 수건 위에 보온병에 있던 얼음을 꺼내서 내 손에 쥐어줬다.
"늦었지만 쥐고 있어."
"괜찮아. 너야 말로 그냥 집에 가. 청소는 거의 내가 해서 빠른 편이야."
"남 걱정은."
빗자루를 잡는 순간 전학생은 내 손에 있던 빗자루를 뺏고 내 가방을 줬다.
"가만히 있거나 집에 가."
집에 가기에는 미안해서 얌전히 있었다. 어째서 나를 도와주는 걸까? 내가 도움을 받을 자격이 있을까? 그냥 가만히 있는 데 도와주는 걸까? 온갖 질문을 머릿속을 채웠고 해결하기 위해 멍하니 있었다. 몇 분이 지났을까 전학생이 나를 흔들어 정신을 차리게 했다.
"어디가지 말고 잠시만 기다려."
전학생은 얼음이 다 녹아 수건에 흡수 된 물을 짜러 화장실로 갔다. 나의 답을 듣지 않고. 가방을 메고 나가려는 순간 전학생이 왔다.
"기다리라니깐. 시간 있지?"
"응."
학원을 다니지 않는 애들 중 한 명에 속하는 편이라 시간은 충분했다.
"동네 구경하러 가자."
"아까 김수아하고 같이 가지."
아까 김수아가 했던 말을 전학생이 그대로 해서 깜짝 놀랐다. 설마, 기다려달라는 말이 이것 때문에 그런 거였나? 나야 동네 구경을 시켜주고 싶었지만 반 애들을 만날까봐 두려웠다.
"너무 활발한 애들은 싫어. 싫으면 혼자가서 미아 되지 뭐."
전학생은 아무쪽이나 길을 잡고 걸어가는 걸 막았다.
"그쪽은 아파트 단지 밖에 안 나와. 그 나이 먹고 미아가 되겠냐?"
결굴 전학생을 데리고 동네 구경을 시켜줬다.
"오늘은 고마웠어. 내일 학교에 가면 무시하지 마."
"상황 보고."
"그리고 좀 웃어. 밖에 나왔을 때 하고 학교에 있었을 때 완전 하늘과 땅 차이었어."
"그럴 수 밖에."
중얼거리면서 윤시우한테 대꾸했다. 모든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
"한지율!!"
누군가 나를 흔들고 있었다. 모든게 뿌옇게 보이더니 초점이 맞춰지기 시작했고 나를 흔들고 있는 사람이 윤시우라는 걸 알아차리기 위해서라면 1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괜찮아?"
"갑자기 쓰러지면 어떻게 하자는 거야? 잡힐 뻔 했잖아."
김수아는 나를 향해 화를 냈지만 윤시우는 걱정하는 얼굴로 나를 봤다. 확실히 꿈을 꿨지만 기억이 나질 않았다.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오늘은 출발해야 해. 2일 동안 이러고 있었으니깐."
2일 동안 이러고 있었다니 놀라웠다.
"미안해, 나 때문에."
"이제 부터 너는 네가 지켜 알았어?"
"응."
김수아가 나한테 총과칼을 쥐어주고 어디론가로 출발했다.
10시간이 지났을까 김수아는 벽에 기대서 숨을 고르고 있었다. 나는 김수아 보다 조금 앞으로 가서 숨을 고르고 있었다.
타박 타박 타박
그때와 같이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렸다. 온 몸의 감각이 위험하다는 걸 알려주고 있었고 얼른 뒤를 돌았을 때 김수아인 걸 보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 안도의 한숨은 뭐야?"
"나를 쫓던 사람인 줄 알았어. 미안."
오해가 큰 문제로 번지기 전에 사과했다.
"잠시만 저기에 있는 문을 넘어서 뭐가 있는 지 봐줄래?"
"알았어."
더 이상 움직일 힘은 없었지만 내 셩명을 구해준 빚을 갚기 위해서 김수아가 말한 5m 앞에 있는 문을 향해 다가갔다. 그 문도 역시 세월이라는 시간이 스쳐 지나간 자국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장승과 도깨비의 얼굴이 없다는 것만 제외하면 그리 안 무러웠다. 문을 열고 주변을 살피던 도중 문은 스스로 닫혔고 열리지 않았다. 마치 밖에서 문을 걸어둔 듯.
"이런 기회가 올 줄은 몰랐네."
"김수아?"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어둠에 적이 되면서 김수아는 뭔가 들고 나하고 멀리 떨어져 있었다.
"다시 깨어나면 우리 만나지 말자."
"그게 무슨 소리야?"
김수아는 오른쪽에 있었지만 반대편에서 총성소리가 들렸다.
똑 똑 똑
물방울 소리가 울려퍼졌다. 시선이 김수아에서 내 심잘을 봤을 때 붉은 피가 떨어지고 있었다.
'내 피가 떨어지는 소리였구나.'
쓸데 없는 사실을 알게 되고 고통이 밀려오면서 그 자리에 쓰러졌다.
-다시 시작하는
횃불이 길을 밝히고 있었지만 어둡고 끝없이 이어진 복도과 계단에서 오늗로 낯설지만 익숙한 곳을 누군가한테 쫓긴다. 숨을 고르기 위해 잠깐 서면 '누군가'도 멈추고 내가 달리면 '누군가'도 달린다. 마치 내 그림자처럼.
"지율아!! 한지율!!"
계단 밑으로 내려갈수록 나를 부르는 소리는 뚜렷해져만 갔다.
뜬금없이 계단 옆에 문이 있을 리는 없었지만 누가봐도 문이었고 문은 나무로 만들어 세월이라는 시간이 스쳐 지나간 자국이 있었다. 나무의 나이테가 뵤하게 나를 끌어당겼고 문을 넘어도 똑같은 복도와 계단이 있을 것 같았다.
타박 타박 타박
나는 가만히 있었지만 나를 쫓던 '누군가'는 천천히 나를 향해 걸어왔고 발걸음 소리가 나를 움직이지 말라고 주문을 거는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총 장전 소리에 더 움직일 수 없었고 소름이 돋았다. '또 다른 누군가'가 문을 열고 내 입을 막았다.
"조용히 따라와."
문을 넘어서 '또 다른 누군가'가 나무 막대기를 손잡이에 걸고 내 팔을 잡으며 골목으로 숨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아니 설명을 해봤자 이해를 못할 정도였다.
덜컹 덜컹
'누군가'는 문을 몇 번 흔들더니 그냥 가버렸다.
"너 뭐야?"
"네가 다시 시작하고 기억을 잃기 전에 친구였어.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그게 무슨 말이야? 기억을 잃다니?"
"설명은 나중에. 날 믿으면 따라와."
내 또래 남자 아이는 숨을 고르며 골목길로 가기 시작했다. 믿을 수 없었지만 속는 셈 치고 따라갔다.
여기는 어딜까? 라는 질문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5시간이 됐을까 남자애는 갑자기 멈추면서 바람에 얼굴을 막을 뻔했다. 내 앞에 아까 그 문처럼 세월이라는 시간에 스쳐지나간 자국이 있었다.
"놀라지 마. 무서워하지도 말고."
남자애가 문을 열었을 때 뭔가 썩은 냄새가 진동했고 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먹은 게 없데 뭔가 올라왔다.
"괜찮아?"
"도대체 뭐야?"
진정이 됐고 주변을 둘러봤을 때 다리의 힘이 풀려서 그대로 주저 앉았다. 심장에 총을 맞은 나. 그리고 내 또래 여자애.
"이게 뭐야? 뭐가 어떻게 흐르고 있는 거야?"
남자 애는 내 어깨를 잡고 나를 빤히 봤다.
"잘 들어. 나는 윤시우고 너는 1시간 전에 김수아한테 죽었고 김수아는 또 다른 너한테 죽었어."
"뭐?"
"너를 쫓아오는 사람은 바로 너. 한지율 너야. 김수아 말로는 또 다른 자신을 죽여야만 여기서 나갈 수 있다고 했어. 또 다른 자신한테 죽음을 당하면 시체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지만 또 다른 자신이 아닌 상대방이 나를 죽이면 이렇게 시체가 남아서 가루가 될 때까지 남아."
두통이 밀려오면서 뭔가 알듯 말듯했다. 윤시우, 김수아, 죽음, 도망 그리고 학교.
다른 사람이라면 이해가 되지 않았을 텐데 나는 금방 이해가 됐다.
"그럼 너는 김수아 말대로 움직일 거야?"
"그럴 수 밖에."
윤시우는 나를 일으켜 세웠고 나한테 칼과 총을 줬다.
이렇게 또 다른 자신을 죽일 수 밖에 없는 걸까? 아니면 이렇게 헤매야하는 걸까?
윤시우하고 멀어지기 전에 안았다.
"왜 그래?"
"고마워····. 학교에 있었던 일들 다 고마워."
몇 초가 흘렀을까 윤시우는 내 어깨에 다시 손을 올리고 나를 봤다.
"기억 돌아 온 거야?"
"대충은. 가자."
윤시우 앞에 울기 싫어서 웃음 속에 눈물을 감췄다. 총을 주머니에 넣고 칼을 들고 다짐했다.
더 이상의 죽음은 없으리라.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서 나가리라.
갈림길이 나왔고 어디로 가야할지 막막했다.
"여기서 그냥 나눠지자."
"왜?"
"서로를 구하다가 죽을 수 있으니깐."
정말로 설득력이 없는 말이었지만 그러길 빌었다. 윤시우가 답하기 전에 누군가 우리를 향해 달려왔다.
"그럼 내가 시우하고 같이 갈게."
"어떻게 기억을."
"누구처럼 대책없는 아이가 아니어서."
김수아의 바지 주머니에 직사각형 뭔가가 있었다.
"녹음기···."
녹음기라는 걸 알아차리고 실성했다. 나도 은근 이기적인 면이 있었다.
"왜····그래?"
"누가 가지고 있는 게 진짜 일까?"
나는 주머니에서 녹음기를 꺼냈다. 김수아하고 같은 녹음기지만 원래의 김수아의 녹음기에는 흠집이 있어야했다.
김수아는 나한테 쫓기고 있었다. 김수아는 도망가다가 넘어졌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시간을 주려고 숨어서 지켜보고 있었고 1분 동안 녹음을 하고 있던 도중 김수아는 자기 자신한테서 죽었고 시체는 사라졌다. 물건만 남기고.
김수아의 물건 중 녹음기를 주웠고 내 녹음기에 거짓정보를 녹음을 하고 있던 도중 나도 나자신한테 죽었다. 마찬가지로 나는 사라졌다. 정신을 차렸을 때 달리고 있었고 김수아는 여러 번 칼에 찔린 상태에서 나를 죽였고 녹음기 2대를 중 내 녹음기를 가져가는 바람에 거짓 정보를 김수아가 그대로 믿었다.
"사람들한테는 욕심이 있어. 예를 들면 '덜 좋은 걸 남한테 주고 더 좋은 걸 내가 사용하지' 라는 걸. 이게 너의 물건이야. 욕심으로 인해 거짓 정보를 받아들인 셈이지."
모든 걸 설명했을 때 둘 다 정신을 못 차리고 멍 때리고 있었다. 김수아가 들고 있던 녹음기를 가져갔고 내가 들고 있던녹음기를 돌려줬다. 어쩌면 서로가 서로에게 골탕을 먹인 거나 같았다.
"그럼 살아서 보자고."
갈림길 중 왼쪽 길로 걸어갔다.
"지율아!! 한지율!!"
또 다시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고 내 이름은 울려 퍼졌다.
생일날은 항상 기쁜 일만 있는 게 아니다. 윤시우의 생일은 가장 슬픈 날이었다.
학교를 끝낸 후 윤시우를 데리고 할머니를 뵐 겸 윤시우의 동생인 윤정화를 보기 위해 납골당에 갔다.
윤정화는 나처럼 괴롭힘을 당했을 때 아무도 눈치를 못 차리고 도움을 요청하지 않아 결국 화를 일으켰다. 내 생각이지만 그 이후로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들을 보면 못 참는 것 같았다.
하지만 윤시우가 왔을 때 나는 겉으로 만 달라졌다.
-도망자와 수래의 마지막 기억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계속 걷고 있었다.
투명하고 따뜻한 액체가 시야를 뿌옇게 만들면서 뺨을 타고 내려왔다. 무엇 때문에 눈물이 나는지 이유를 알고 싶었다. 결국 벽에 기대서 주저 앉았다.
"벌서 지친 거야?"
얄미운 목소리에 일어났다. 언제 또 내 뒤를 밟은 건지.
"싸우려고 온 게 아니야. 죽이려고 온 거지."
김수아는 나를 향해 총을 쐈지만 다 빗나갔다. 골목은 미로처럼 복잡하게 돼 있었고 빠져나가는 길을 찾으려고 달리기 시작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나를 죽이려고 하는 걸까? 손에 있는 칼을 놓치지 않으려고 붙잡고 달렸다.
총성소리와 쓰러지는 소리가 내 발검음을 멈추게 했다.
타박 타박 타박
나는 알 수 있었다. '또 다른 나'가 망설이지 않고 아주 빠르게 나를 향해 다가온다는 걸. 그 소리는 다시 내 발걸음을 움직이게 했다.
미로에서 길을 찾는 것처럼 오른 손으로 벽을 스치며 빠져 나가는 길을 찾아 나가려고 애썼다. 총을 장전하면서.
사람이 사람에게 공포의 대상이다.
'이건 꿈이야. 나를 쫓아오는 또 다른 나는 꿈이라고. 나를 영원히 여기에 가두려고 해. 그게 원하는 거야. 그러니깐 절대로 잡히면 안 돼. 잡히면 깊숙하게 잠들고 그 동시에 깨어나는 시간이 오래 걸려서 진짜로 못 깨어나게 될 거야. 잡히지 마. 도망쳐, 무조건.'
골목에서 거의 빠져 나왔을때 녹음된 일부가 실행이 됐다.
'또 다른 나'는 계속 총을 쏘면서 다가왔지만 다 빗겨나갔다. 숨을 여러 번 고르고 심장을 향해 칼을 던졌지만 피했고 그 칼을 들고 나를 향해 빠르게 돌진했다.
"이번에는 피할 수 없어."
주먹이 나를 향해 오자 고개를 숙이고 총의 손잡이를 쥔 상태로 명치를 때리고 총구를 '또 다른 나'를 향해 겨누었다.
"쏘지 못하잖아."
"아니. 쏴. 설령 후회한다고 해도 꿈인 네가 나를 죽이는 건 옳지 않아."
"절대로 나를 죽이지 않을 거야."
세뇌당하는 기분이 들었지만 내 의지는 변함이 없었다.
"여기가 어디고 왜 여기에 오게 된 거야?"
"뭐, 죽을 테니 말해주지. 여기는 꿈이야. 아직 완성되지 않은 초기의 꿈. 너는 의식을 잃은 채 익사하고 있어."
"네가 죽으면?"
"여기에서의 주인은 나야. 내가 죽으면 꿈은 붕괴 되."
내가 원하는 솔직한 답을 들었기에 방아쇠를 당겼고 그대로 머리에 맞고 쓰러졌다. 물은 빠르게 차오르기 시작했다. 도망쳐 봤자 물이 차오르는 건 똑같았다.
10분이 지났을까 발이 땅에 닿지 않았고 2m 깊이었다. 윤시우하고 김수아는 괜찮을까? 몸이 뜨다가 옷 때문에 갈아 앉기 시작했고 물속으로 점점 갈아 앉을수록 고요했고 뭔가 허무했다. 겨우 일을 해결한 것도 아닌데 이대로가 끝이라니.
'도대체 며칠을 굶은 거야. 할머니, 맛있는 거 많이 하고 있어. 나하고 정화가 다 먹을게. 설령 내가 못 간다고 해도 슬퍼하지 마.'
천천히 갈아 앉고 있었던 나는 갑자기 빠르게 가라앉았고 뭔가에 쓸려서 아픔을 느꼈다.
나는 다시 혼자가 되어야만 하는 걸까?
이럴 줄 알았으면 가족한테 사랑한다고 말할 걸. 윤시우하고 오랫동안 같이 있을 걸.
깊은 바다 속에 홀로 잠기기 싫은데 이대로 잠기게 되면 어떻게 되는 거지?
바닷물이 이렇게 차가웠나? 내가 생각한 바다보다 더 깊고 더 넓었다.
바다····?!
폭풍, 배, 제주도, 수학여행.
여기가 어딘인지 대충은 알았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누군가 내 양팔을 잡고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나를 구하다가 다칠 수 있는데.
몇 분이 지났을까 달콤한 공기가 나를 깨우려고 했지만 그리 쉽게 안 됐다. 누군가 흉부압박을 했을 때 물을 토해내며 눈을 떴다.
"괜찮아?!"
"지율아!"
오랫동안 갗이 있고 싶은 사람들, 잊고 싶이 않은 사람들이 내 옆에 있었고 구조대원들과 수많은 사람들이 바다에 빠진 생명을 구조하고 구조되길 빌고 있었다.
햇빛은 모든 걸 잊으라고 말하는 듯이 내리쬐고 있었고 바람은 아직 일어나지 말라고 하는 듯이 불고 있었다.
'아직 일어나면 안 돼. 이제 너와 나의 꿈이 시작이거든 그러니깐 일어나지 말고 더 자.'
누군가의 속삭임에 눈은 저절로 감긴다.
이름: 이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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