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선거
이장선거 D-14
햇빛이 쨍쨍한 여름날 마을 잔치가 벌어졌다. 3년간 이장으로 고생한 윤씨가 퇴임하는 날이다. 사람들은 그에게 막걸리를 권한다.
"퇴임 축하해, 윤씨. 고생많았어, 참말로."
손사래를 치며 윤씨가 대답한다.
"고생은 무슨, 이제 다음 이장 잘 뽑아서 마을 더 발전시켜야지. 다음 이장은 김씨가 했으면 좋겠어. 내 생각엔."
윤씨는 자신의 후임으로 버섯농장을 운영하는 김씨가 되길 원한다고 밝힌다. 김씨는 경원리에서 3대째 살아온 부농가문 출신이다. 그는 청년회 회장을 역임 중이다.
"아버지가 했던 일 저도 한번 해보면 좋죠. 제가 나서겠습니다. 마을을 위해"
김씨도 윤씨의 추천이 반가운 모양이다. 그는 그 자리에서 거침없이 출마를 선언한다. 이번 선거도 윤씨가 이장이 됐을 때처럼 단독출마가 예상되는 상황이다. 경원리는 늘 단독출마로 이장선거가 진행되었다. 형식적인 선거였다. 사람들은 격하게 환영하지는 않아도 대부분 그를 지지하는 모양새다. 김씨는 여성들에게 추저분한 발언을 자주 하고 더듬기도 했다. 또한 건방진 품성을 지녔다. 하지만 재력가인 그가 이장이 되는 것을 누구 하나 말리지는 않을 모양이다. 한편 윤씨와 김씨 테이블과 먼 곳에서 민씨가 오사장에게 말을 건다.
"오사장님이 이장 선거에 나가시면 어떨까요? 저희 부녀회 사람들은 오사장님이 출마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민씨는 부녀회에서 총무를 담당하고 있다. 일처리도 깔끔하고 평소 훌륭한 인품으로 좋은 평판을 받고 있는 여성이다. 이 마을에서 몇 안 되는 대학교육을 받은 사람이다. 남편이 갑자기 쓰러진 상황에 혼자 가족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
민씨의 권유에 오사장은 당황스러운 듯
“어휴, 제가 이장은 무슨 전 이 동네 출신도 아니고 아닙니다. 전 못합니다.”
최근 몇 년간 가뭄이 극심해 경원리는 침체되어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농사를 포기했고 빚에 허덕였다. 그런 마을에 구세주처럼 오사장이 등장했다. 그는 장갑공장을 차려 많은 사람들을 취직시켰다. 또한 후한 복지를 베풀었다. 오사장은 외지인임에도 불구하고 마을 사람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때 오사장 앞에 앉아있던 자광이 한마디 한다.
"아니 오사장이 사람이 좋긴 한데 이 마을에 산 지 얼마나 됐다고 이장은 무슨... 자기 사업하기도 바쁜 사람인데, 이번엔 김씨가 딱이지"
오사장은 그의 말이 맞다며 자신은 이장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겸손하게 거절한다. 그렇게 김씨의 단독출마가 유력한 이장선거가 되었다.
이장선거 D-12
민씨를 주축으로 부녀회 일동이 오사장의 공장을 방문했다. 오사장은 공손하게 인사를 하며 "아이고 무슨일이세요?"라며 사람들을 맞이한다. 민씨는 인사를 마치자마자 "오사장님 저희 이 마을 여성들이 부탁합니다. 제발 이장 선거에 출마해주세요. 간곡히 부탁드립니다."라고 말한다.
오사장은 난색을 표한다. 자기 사업만으로도 바쁘기 때문이다. 본인이 이장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재차 거절한다. 그리고 김씨가 훌륭하게 해낼 것이라고 말한다.
이에 어쩔 수 없다는 듯 민씨는 뜻밖의 사실을 오사장에게 전한다.
"김씨는 이장 윤씨와 같이 마을 비료비를 자기 주머니에 몰래 챙겼다는 소문이 있어요. 증인도 많아요. 그뿐만 아니라 비료비도 안낸 자기 친척들에게 비료를 배포했고요" 옆에 있던 정원슈퍼 아줌마도 거든다.
"그뿐인줄 아세요? 미용실 아줌마 엉덩이를 더듬은 적도 있고 아주 더러운 놈이에요. 술만 먹으면 추근덕대고 인간이 덜 됐어요."
이 발언에 오사장이 움찔하자 민씨는 김씨를 더 강하게 비난한다.
"김씨는 자신 농장에서 일하는 외국인노동자들 월급도 몇 개월째 안주고 있어요! 그들이 불법체류자라고 무시하는 거죠. 그런 사람이 마을 맡아서 되겠습니까? 오사장님같이 정의로운 분이 나서주세요. 부탁드려요."
민씨와 정원슈퍼 아줌마를 주축으로 부녀회 사람들이 그에게 간곡히 부탁하고 공장을 떠난다. 평소 정의롭고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오사장은 고민한다.
다음날 오후 2시 민씨 핸드폰에 카톡 한 통이 왔다. 오사장의 카톡이다. 그 카톡엔 그가 출마하겠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카톡을 보낸 오사장은 민씨와 함께 윤씨에게 찾아가 자신도 출마하겠다고 말한다. 경원리가 생긴 이후로 최초로 두 후보가 출마하는 경선이 되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김씨 측근 동배는 부랴부랴 김씨에게 이 사실을 알린다.
"김씨 큰일났어요 오사장이 출마한대요. 망할 부녀회 여편네들이 출마를 권유했는데 오사장이 결국 수락했대요."
불쾌한 김씨는 욕을 내뱉는다.
"에이 씨발 오사장 시발새끼 이거 원 씨발 그놈새끼 이미지도 좋은데 씨발 덤벼보라해 시팔놈 이 마을 이장은 나여"
그 날 저녁 두 후보는 긴급히 윤씨의 집에 모인다. 오사장은 연배가 높은 김씨에게 공손히 인사한다. 김씨는 재수 없다는 듯 쳐다보고 그냥 윤씨 집으로 들어간다. 윤씨는 두 후보에게 준비할 사항을 전한다.
"경선이 최초라 당황스럽네! 거 참.. 다른 마을 이장한테 물어보니 경선일 경우에는 출마선언문과 공약문을 발표했다구먼. 이틀 뒤 오후 6시에 마을회관 앞에서 발표할 예정이야"
김씨는 당황스러운 듯 "대체 그런 건 뭐에요? 참내.. 하 어이가 없네.."
윤씨는 진정하라는 듯 그의 등을 토닥인다. 그리고 전달사항을 마저 전한다.
"두 후보 모두 잘 준비해주게 모레 6시에 마을회관 앞에서 봅세. 동네사람들에게도 참석해달라고 방송하겠네."
D-10
약속한 시간이 됐다. 경선의 뜨거운 열기를 대변하듯 무더운 날씨다. 무더운 날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최초의 경선을 환영이라도 하듯 마을회관 앞에 모여 있다. 동네 아이들도 마이크가 설치되고 수많은 사람이 모인 풍경이 신기한지 구경 와있다. 윤씨가 마이크를 잡는다.
"아아 마이크 테스트 원투 마을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경원리 이장선거 최초로 두 후보가 출마했습니다. 여러분이 투표로 결정하셔야겠습니다. 여러분이 판단할 수 있게 두 후보가 출마선언문과 공약문을 준비했습니다. 잘 들어주시길 바랍니다. 기호 1번 김만석 후보부터 발표해주십시오."
무대 옆 의자에 앉아있던 김씨가 사람들을 보고 90도로 인사하고 무대로 올라간다. 그리고 종이를 꺼내든다.
"아아 마이크 테스트 헛둘서이너이 김만석입니다. 저는 이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저희 아버지도 이 마을 이장이셨습니다! 저희 할아버지는 이 마을에서 큰 버섯농장을 운영하며 마을 사람들의 생계를 책임지셨습니다!"
그는 큰소리를 내어 읽는다. 눈을 종이를 향하고 있다. 외우지는 못했다. 더욱 더 소리 높여 읽는다.
"여러분들 지붕은 다 저희 아버지가 새마을 운동 당시 공화당 활동하며 새로 해준 지붕 아닙니까? 여러분들 모두 저희 집안 덕을 본겁니다 여러분 저도 많은 것들을 베풀겠습니다!"
김씨는 손가락으로 오사장을 가리키며 "오사장은 출마하지 않겠다고 말하더니 갑자기 출마했습니다. 거짓말쟁이입니다. 비겁합니다. 서울에서 왔다고 좋게 봤더니 겉과 속이 다릅니다. 아버지가 전라도 출신이랍니다! 이 마을에 전라도 출신 자식이 이장이 되는 게 말이 됩니까? 이 마을을 지켜냅시다. 저를 이 동네 참일꾼으로 뽑아주십쇼. 감사합니다! "
김씨는 작심한 듯 오사장을 비난하고 자신을 지지해달라고 부탁한다. 일부 노인들은 환호한다. 평소 그와 친한 버섯 농장주들도 김만석을 크게 외친다. 부녀회 일동은 그의 연설에 싸늘한 눈빛을 보낸다. 뒤이어 김씨가 공약문을 읽는다.
"저는 70대 이상 노인들에게 한 달에 한 번씩 관광버스로 여행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여행자금을 지원받기로 군수와 약속했습니다. 제가 군수와 고등학교 동창 아닙니까? 이거 다 제가 할 수 있습니다. 뽑아주십쇼."
70대 이상 노인들은 지팡이를 들지 않은 손을 번쩍 들며 환호하며 ‘김만석 만세!’를 외친다. 김씨는 여름철 농약값 내야하는 것도 절반의 가격에 제공하겠다고 선심성 공약을 마구 쏟아낸다. 사람들은 환호한다. 일부 사람들은 믿지 못하는 눈빛이다.
김씨가 오사장을 한 번 째려보면서 내려온다. 윤씨가 오사장에게 출마선언문과 공약문을 발표해달라고 말한다. 오사장은 윤씨와 김씨에게 공손하게 인사한 후 동네 사람들에게도 공손히 인사하고 무대로 올라간다. 잘생긴 외모 덕에 아줌마들의 수줍은 환호성이 들린다.
어색한 표정의 오사장이 마이크를 잡는다. 김씨는 거의 똥을 씹은 듯 그를 바라본다.
"안녕하십니까? 기호 2번 오원영입니다. 김만수 후보님 발언대로 제가 제 생각을 번복해서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사실 이장이 될 마음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마을 분들 몇 분이 간곡하게 요청하여 제가 출마해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조금 부족하더라도 저처럼 정직한 사람이 이장이 돼야 합니다. 서울에서 이곳 경원리로 와서 장갑공장을 차리고 성공을 맛봤습니다. 제 성공은 모두 여러분 덕입니다. 저희 가족 모두 여러분들에게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 감사한 마음을 담아 이제 제가 여러분에게 봉사하겠습니다. 장갑 공장 직원들을 위해 봉사했던 마음으로 경원리를 위해 힘쓰겠습니다."
그의 젠틀한 연설에 사람들이 박수를 보낸다. 일부 남자들을 제외하고 다들 환호하는 눈치다. 뒤이어 오사장이 공약문을 발표한다.
"저는 이 곳 토박이도 아니고 군수님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김 후보님처럼 저런 공약들을 들어줄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 마을을 건강하게 만들고 싶습니다. 먼저 마을에 운동시설 하나 없습니다! 지자체에 도움을 요청해 운동시설을 만들겠습니다. 또한 마을에 형편이 어려운 분들이 많습니다. 이 분들이 농약 값으로 고생하고 계십니다. 이 마을에서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저 그리고 버섯 농장주들의 돈을 더 걷어 여러분에게 보다 저렴한 농약을 제공하겠습니다."
일부 농장주들이 어이없다는 듯 쳐다보고 어떤 이들은 쌍욕을 한다. 오사장은 개의치 않고 이어간다.
"마을 노인정이 너무 낙후돼있습니다. 제 사비를 털어서 노인정을 새로 짓겠습니다. 리모델링비에 농장주들의 돈도 보태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김씨와 달리 출마 선언문과 공약문을 완벽히 숙지한 듯 보인다. 종이 한번 보지 않고 완벽하게 발표했다. 그의 멋진 발표 스킬에 사람들의 마음이 흔들린다.
뒤이어 곧 바로 토론회가 시작되었다. 김씨는 오사장을 무너뜨리기 위해 네거티브 전략을 펼친다.
"아니 오사장 경원리에서 서울놈이 이장이 되는 게 가당키나 합니까? 농사는 져보셧수? 이마을은 농경사회입니다. 뭣도 모르고 나서지 마십쇼. 전라도 출신 아버지에 서울 출신 아들이 이 마을 이장하는 게 맞냐고 대답해보슈 에이 제길"
오사장은 침착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저희 아버지가 전라도 나주 출신 맞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제가 이 마을 사람이라는 겁니다. 저는 김후보님을 비판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부분은 꼭 지적해야겠습니다. 김후보님 농장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몇 달째 임금을 받지 못했다는 증거가 있습니다. 물론 증인도 있고요! 이러한 도덕성으로 어떻게 이 마을을 이끌어갈지 의문입니다 왜 외국인 노동자들의 임금을 주지 않으십니까?"
민씨가 증거와 증인을 제공했다. 오사장이 이 사실을 토론 중 밝히고 싶어 하지 않았다. 김씨를 비판하고 싶지 않다고 계속 주장했다. 하지만 오사장의 승리를 위해 꼭 이 사실을 밝혀야 한다고 민씨가 오사장을 설득했다. 결국 오사장은 수긍하고 토론 중 외국인노동자 임금 미지불 사건을 이용해 김씨를 공격했다.
김씨는 매우 당황한 듯한 표정이다. 김씨 측 사람들은 민망한 모양새다. 김씨는 괜히 소리를 버럭 지른다. 그리고 임금을 자신이 적금 들어주고 있었다고 변명한다. 사실은 다 주려고 했다고 하면서 변명을 덧붙인다. 그 후에도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하지만 서울에서 대학을 나온 오사장에게 학창 시절 공부도 안 했던 양아치 김씨가 매우 밀린다. 1시간의 열띤 토론은 그렇게 끝난다. 김씨는 열 받은 듯 바로 집으로 떠났고 오사장은 사람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전한다.
그 와중에 김씨와 절친한 동배는 두 후보의 토론 후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누구를 지지하는지 캐묻는다.
동배는 열 받은 김씨 집에 찾아가 충격적인 사실을 말한다.
"아제, 대부분의 사람이 오사장을 지지하는 눈치에요 몇몇 노인네들 말고는 이거참" 김씨는 어이없다는 듯 "시팔 여편네들 때문에 그새키가 나와서 내가 떨어지게 생겼구만"
둘은 고민한다.
D-8
한참을 고민한 김씨 측근들은 마을 사람들을 봉고차로 모셔 마을에서 가장 큰 비어뱅크로 데려간다. 그리고 치킨과 맥주를 대접한다. 공짜 술과 치킨에 사람들도 신나는 눈치다.
김씨는 낮은 자세로 사람들에게 지지를 부탁한다.
"어이 윤식이 우리가 일이년 아는 사이여? 나 좀 지지해줘. 이번에 내가 당선되면 청년회 회장은 당신 몫이여. 지지 좀 부탁하네." 동배는 사람들의 주목을 이끈다. 그리고 김씨에게 숟가락을 건네며 한마디 하라고 한다. 김씨는 기다렸다는 듯 목을 가다듬고 "아 여러분 제가 이장되면 이 주에 한 번씩 비어뱅크에서 치킨이랑 맥주 쏘겠습니다. 전라도 놈 자식한테 이 마을을 맡겨서 되겠습니까? 저를 뽑아주십쇼."
술 한잔에 유쾌해진 사람들은 박수를 보낸다.
이 소식을 들은 민씨는 급히 오사장을 찾아간다. 그리고 오사장에게 접대를 권유한다. 오사장은 그런 식으로 승리하고 싶지 않다고 끝끝내 거절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민씨는 오사장이 답답하고 융통성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후에도 선거운동은 계속 되었다. 여전히 마을에서는 오사장이 될 것 같다는 사람들의 추측이 파다했다. 김씨는 접대로도 안 되고 오사장을 전라도 놈이라고 깎아내리는 것도 안 되자 답답할 뿐이다. 김씨는 자신들과 친한 농장주들을 자기 집으로 부른다.
"아니 씨발 그 전라도놈 자식한테 이 마을을 뺏겨야겠냐고 그리고 그놈이 되면 우리가 농약값을 일부 내야돼 내 돈 아까워서 이거 씨팔" 그때 약삭빠른 자광이 한마디 건넨다.
"아무래도 오사장이 연설도 잘하고 이미지도 좋고 반대로 김씨아재는 여자들 더듬은 사건도 있고 이기기 쉽지 않을 것 같아요."
반성하는 눈치가 전혀 없는 듯 김씨는 오히려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말한다.
"아니 시발 그 엉덩이 조금 만진 거 가지고... 씨발 조선시대였음 내가 벌리라면 걍 벌려야 될 년들이 어휴 씨발"
그때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듯 자광이 말한다.
"김씨 아재 좋은 생각이 났어요! 오사장도 더러운 놈으로 만듭시다."
김씨는 솔깃한 듯 그를 바라보며 더 얘기해보라고 한다.
자광은 읍내에 오사장이 자주 다니는 원미용실 원장과 오사장이 불륜관계라고 소문을 내자고 한다. 원미용실 원장은 예쁘장한 외모로 눈웃음을 치고 애교도 많다. 그 탓에 남자 단골이 많다. 안 좋은 소문도 많다. 경원리 사람들뿐만 아니라 읍내 사람들도 그녀를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 자광과 동배 그리고 정씨는 마을 이곳저곳 여자들이 모인 곳에 소문을 낸다. 놀랍게도 많은 여자들은 믿는 눈치다. 아줌마들은 모여 오사장을 욕한다.
"오사장도 남자구만, 다 똑같아 그 여우같은 년에 넘어갔구만. 역시 믿을만한 놈이 어딨어"
"남자는 다 똑같여. 차라리 더럽지만 우리한테 치킨도 사주겠다고 약속하고 농약값 준다는 김씨를 뽑는 게 낫겠어!"
자광은 김씨에게 돈을 받아 그 돈을 원미용실 원장에게 준다. 그리고 누가 혹시 불륜 사실이 사실이냐고 물으면 긍정도 부정도 하지 말라고 지시한다. 돈을 받은 원장은 그 지시를 따른다. 그 탓에 소문은 급물살을 탄다. 소문이 파다하게 퍼진 이후로 오사장은 여간 피곤한 게 아니다. 선거운동 때마다 사람들에게 사실이 아니라며 자신을 믿어 달라 부탁한다. 몇몇 할머니들이나 사람들은 오사장에게 대놓고 욕을 하고 깎아내린다. 확인도 않은 채... 오사장의 아내도 소문에 분노해 친정으로 내려갔다. 남은 선거운동 기간 동안 오사장은 민씨 및 부녀회의 제대로 된 지원도 받지 못한 채 자신의 공장 직원 몇몇과 함께 선거운동을 마친다. 승리를 확신하지 못하는 눈치다. 오히려 낙선을 예상한 듯 얼굴이 어둡다. 그의 포스터에 어떤 사람들이 불륜남이라고 써놓기도 했다.
선거 당일이 됐다. 마을 사람 대부분이 투표에 참여했다. 대학 방학 중이지만 20대 청년들은 선거에 관심이 없는 듯 아침 일찍 읍내로 놀러나갔다. 경원리에 20대는 총 7명이다. 그 중 1명만이 투표에 참석했다. 투표해 참가할 수 있는 사람 126명 중 98명이 투표에 참여했다. 투표가 끝나고 개표가 시작되었다. 개표에는 전 이장윤씨 그리고 김씨 측 자광 그리고 오사장 측 민씨가 참여했다.
두 후보는 마을 회관 밖에서 사람들과 결과를 기다린다. 김씨는 자신만만한 표정이고 오사장은 억울하고 초조한 표정으로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30분 정도 2번의 검토를 통해 결과가 나왔다. 개표결과 김씨 47표 오사장 50표 무효표 1로 오사장이 당선되었다. 불륜 루머에도 불구하고 그의 훌륭한 토론과 잘생긴 외모 탓에 그가 이장으로 뽑혔다. 여성들의 지지세가 높았다. 사실 불륜이라고 하면 김씨도 할 말이 없다. 그래서인지 막판 루머에도 불구하고 오사장이 이겼다. 김씨를 지지하는 마을 농장주인 윤씨와 자광은 표정이 영 좋지 않다. 기쁜 소식을 오사장에게 알리려 민씨가 일어나려하자 자광이 그녀의 팔목을 잡는다.
"민씨 우리 선거 조작합시다."
민씨는 어이없다는 듯 그를 보며 벌레를 보는 듯한 표정으로 "미쳤어요? 전 그런 더러운 짓에 동참 안합니다. 이거 놓으세요!"
자광은 살짝 웃는 얼굴로 "민씨, 김씨 아재가 되면 민씨 부녀회 회장 시켜드릴게요. 그뿐만 아니라 농약값 특별히 민씨는 공짜로 해드릴게요. 아 진짜라니깐요." 윤씨도 옆에서 살짝 거든다. 좋은 제안이라는 듯 민씨에게 받아들이라 한다. 그 역시 농장 주인이기에 오사장이 되는 게 탐탁지 않기 때문이다. 평소 정의로운 민씨는 반신반의하지만 일단은 거절한다. "됐어요 그런걸로 안 넘어갑니다" 자광은 더욱더 그녀를 설득한다. "민씨 남편도 쓰러졌잖아요! 병원비에 애들 교육비에 이 거참 돈 나갈 때가 한두 군데도 아니고 만약 한번만 우리 도와주면 외국노동자들 줄 임금으로 입원비 절반도 드릴게요. 더는 안 돼요. 만족 못하시면 그냥 오사장이 이겼다고 발표하시고 이것들 다 포기하십쇼." 민씨는 문득 아침에 본 각종 고지서가 떠오른다. 막막하다. 그녀는 1분 정도 말없이 고민하더니 "제가 어떻게 하면 되죠?"라고 물었다. 자광과 윤씨는 기다린 듯 자신들에게 맡기고 조용히만 있으라고 말한다. 윤씨와 자광은 잠시 대화한 뒤 민씨를 데리고 마을회관 밖으로 나간다. 윤씨는 발표한다.
“경원리 마을 여러분 오래 기다리셨죠? 드디어 결과가 나왔습니다.”
두 후보 모두 긴장한 듯 보인다. 입이 바짝 마른다. 윤씨가 진지한 표정으로 결과를 발표한다.
“투표결과 기호 1번 김만석 후보가 당선되었습니다. 여러분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수고한 오원영 후보에게도 박수 부탁드립니다. 오사장은 평소답지 않게 의자를 발로 차고 집으로 향한다. 공장 사람들도 난감해하며 그를 따른다. 마을 사람들은 김만석을 연호한다. 민씨는 오사장에게 미안한듯 그의 얼굴을 보지 못한다. 김씨는 밝은 얼굴로 당선소감을 밝힌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더러운 오사장을 제가 이겼습니다. 이 마을의 승리입니다. 제가 이 마을의 참일꾼으로 경원리를 발전시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뜨거웠던 선거가 끝이 났다.
선거 후 김씨는 두가지 공약을 지켰을까? 지키지 않았다. 사람들의 질타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 또는 군수가 말을 바꿨다고 오히려 억울해했다. 김씨를 주축으로 농장주들의 비료 나눠먹기는 계속 됐다. 김씨는 자신의 치부를 밝힌 외국인 노동자들을 모두 해고했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불법체류자기 때문에 경찰에 신고하지도 못하고 그렇게 마을을 떠났다. 헛소문으로 명예가 실추된 오사장은 공장을 헐값에 팔고 마을을 떠났다. 누구에게도 이별인사를 전하지 않고 떠났다. 미안한 민씨는 그가 떠나는 날 그에게 인사조차 전하지 못했다. 민씨는 어떻게 됐을까? 자광의 말대로 부녀회장이 됐을까? 자광이 민씨에게 했던 약속조차 지켜지지 않았다. 하지만 민씨는 이 선거가 조작됐다는 사실을 밝히지 못했다. 자신 역시 공범이니까... 그저 속이 부글거릴 뿐...
그렇게 경원리는 예전처럼 흘러갔다.
누군가는 참여하고 누군가는 속았다. 누군가는 무관심했다.
누군가에겐 거짓말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진심이었다. 그리고 결국 승자만의 것이 되어버린 선거는 이렇게 끝났다.
경원리는 평소와 다를 바 없다. 더 나아지지 않았을 뿐.
이름: 박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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