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회 창작콘테스트(단편소설) 역사 속의 아버지

by 아이작 posted Nov 25,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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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아버지

 

Prologue.

 

전하, 이 한심한 신하 전하와 함께 전장을 누비고 고려라는 나라를 위해 일해 왔던 것에 감사를 드립니다. 허나, 이 신, 이제 생을 다한 듯하옵니다. 떠나기 전, 저 백제인 들에게 고려인의 힘을 보여주겠습니다. 전하, 이 신 에게는 한 가지 처음이자 마지막 부탁이 있습니다. 저에게는 못난 어린 자식이 하나 있습니다. 전 나라를 위해 죽지만 그 자식만큼을 나라를 위해 살아서 전하를 모시는 자로 거듭날 수 있도록 큰 가르침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신 장군은 적장으로 뛰어들어 자신의 목숨을 왕건을 위해 받쳤다.

추운 겨울이다. 영하로 떨어지는 날씨 때문에 겨울에는 땅조차도 얼어버린다. 그런 얼어버린 땅 때문에 나무는 뿌리를 통한 충분한 수분 공급을 하는데 문제가 생긴다. 따라서 나무는 나뭇잎을 통해 증발되고 날아가 버리는 수분을 줄이고 줄기 부분에 있는 수분을 보존하기 위해 자신의 잎을 일부러 떨어뜨리는데 이것을 낙엽이라고 한다. 인간은 그런 나무의 깊은 뜻을 모르고 외관상 보기 안 좋다고 이 낙엽들을 쓸어버린다. 그로 인해 겨울을 더 혹독하게, 더 힘들게 보내는 나무들…….

역사도 겨울에 생존해가는 나무와 같다. 역사는 미래에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근거와 증거를 꼭 남기지만 우리는 그것을 대수롭게 생각하지 못하고 넘기고 버리고 자르고, 심지어 왜곡까지 한다. 그것이 나중에 역사의 뿌리를 죽이는 것인지도 모르고…….

역사라는 것은 때로 우리에게 감미로운 산들바람을 보내고 때론 따스한 햇살을 선사하며, 때로는 삶의 바다에서 불행이라는 파도를 불어넣고 일상을 뒤흔들기도 한다. 역사의 강이 거짓과 은폐의 탈을 벗고 유유히 흐르는 그날, 한국과 일본은 서로의 빛나는 문화를 전해주던 아름다운 시절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날까지 승리와 서영은 아버님들을 따라서 한국 역사의 맥을 하나하나 바로 잡아 갈 것이다.

 

※ ※ ※

1.

, 여러분. 흔히 심장에는 암이 생기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심장에도 종양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원발성 종양은 드물게 나타나며 대부분 전이성으로 발생합니다. 심장 종양이 심실 유입로나 유출로의 협착을 일으킬 수도 있고, 종양이 심실 근육 안으로 자라 들어와서 심실 기능 저하로 인한 심부전을 일으킵니다. 부정맥이 동반되어 상실성 빈맥을 일으키며 심장 종양 자체가 거대..”

수업을 하던 도중에 전화가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원래 수업 중에는 핸드폰도 꺼두는데 그것 자체를 잊은 것부터 뭔가 이상했다. 모르는 번호는 잘 안 받던 승리지만 이상하게 오늘은 오전에 수술을 하는데도 실수가 빈번했고, 받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여보세요?”

 

※ ※ ※

2.

936, 태조 왕건은 고려(高麗)를 설립하여 후삼국을 통일했다.

나는 건이고 삼국을 통일한 고려의 왕이다!”

왕건은 고려를 세움과 동시에 일성을 발하였다. 실로 우렁차고 위엄 있는 말투였다. 그 한마디로 지난날의 괴로움을 잊고 단군왕검이 세운 홍익인간의 이념과 북진정책을 건국이념으로 계승해 나간다는 다짐이었고, 자신의 시대가 열렸음을 만천하에 알리는 소리였다.

왕건은 먼저 자신을 이 자리에 있게 만들어준 개국공신인 신 숭겸 장군의 묘지에 가서 위로의 술 한 잔과 함께 제사를 드렸다. 신 장군, 그의 도움과 희생 없이는 고려라는 나라는 물론, 자신의 생사도 장담을 못했을 것이다. 왕건은 제사를 드리며 신숭겸 장군의 머리가 매장되어 있는 묘를 끌어안고는 양천통곡을 하며 옛 시절을 회상했다.

태조가 왕위에 오른 지 10년차, 고려는 신라와 연합하여 용주부터 운주 등을 함락하고는 적극적인 공세를 펼쳐서 강주 근처의 섬들을 침략해 나갔다. 이때 백제의 견훤은 근품성을 공격하여 불태우며 신라 영울부를 넘어서 수도 외곽지역이며 경주까지 진격하여 나아갔다. 그 해, 927, 고려의 도움에도 불구하고 견훤의 공격에 당황한 신라왕은 협박에 못 이겨 자살을 하였다. 견훤은 왕이 없는 신라에 김부를 왕으로 임명하였고, 이러한 천인공노할 경주 만행 사건을 뒤늦게야 접한 왕건은 직접 정예 병사들을 거느리고는 경주로 향하였다. 낙동강과 만나는 금호강을 사이에 두고 남쪽에는 앞산으로 대표되는 비슬산, 북쪽에는 팔공산 줄기가 대지의 고요함을 감추고 있었다. 해발 1192m의 팔공산의 봉우리에 왕건이 도달하자, 견훤은 팔공산 줄기에 매복되어 있는 병사들을 향해 왕건을 유인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매복 계에 빠진 왕건을 구하기 위해 심복 신 숭겸 장군이 왕건의 갑옷으로 갈아입고 나타났다. 견훤은 그렇게 매복으로 사로잡힌 신 장군이 왕건인 줄 착각하여 단칼에 목을 내리쳐 머리만 둔 채 몸뚱이를 고려 터로 넘겨주었다. 젊은 날의 신 장군이 했던 도원결의주군(主君)을 위해서라면 물 끓는 가마솥에라도 서슴없이 뛰어들겠다는 말처럼 결국 그는 약속을 지켰던 것이다. 태조는 이렇게 자신을 위해 죽은 심복 신 장군의 머리를 순금으로 만들어 묘에 같이 묻었고, 그 묘가 도굴당할 것을 염려해 동일 묘역에 세 개의 봉분을 같이 만들었다.

신 숭겸 장군에 대한 제사를 마친 왕건은 고려의 새로운 민생의 안정과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조정의 관리들을 정비했다. 신 숭겸의 어린 자(), 신 장절은 재정에 밝았었기에 전곡(錢穀)의 출납 및 회계 업무를 맡던 삼사 장으로 임명하여 나라의 회계를 보살피게 하였고, 최 금(催金)을 최고관서인 중서문하성의 문하시중으로 임명하여 국정을 총괄하게 하였다.

 

※ ※ ※

3.

현재 일본 나가사키현 쓰시마섬 간논박물관(觀音寺)에 전시되어 있는 세계 문화유산인 고려시대 불상, 관세음보살좌상이 다가오는 101308시에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으로 옮겨질 것이라고 일본문화협회는 발표하였습니다.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은 일본 문화의 섬세함을 간직하여 아사쿠사 신사에서의 일본의 역사와 전통성을 보여주는 곳인데, 한국의 문화재인 관세음보살좌상을 옮긴다는 의미는 한국의 역사를 왜곡하여 중국의 동북공정 프로젝트에 동조…….”

최 교장은 한국뉴스에서 일본이 우리의 문화재를 이제 자신들의 문화재로 바꾸려고 한다는 의도를 들음과 동시에 리모컨을 집어 던졌다. 현재는 2012410, 앞으로 6개월 후에는 한국의 역사가 완전히 왜곡되어 고려시대의 불상 문화재를 잃어버리는 것 외에도 한국에 있는 삼국시대 문화재까지 뺏길 위험에 쳐했다. 자신보다 나라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여 반평생을 해외에서 한국 역사를 알리고자 노력했던 최 교장에게는 청천병력 같은 소식이었다.

일본은 우리의 문화재를 처음에는 도둑질을 했고 이제는 그 문화재를 자신들의 것인 마냥 역사까지 왜곡할 계획인 것이다. 그들은 예고 없이 은밀하고 교활하게 움직인다. 우리는 숨어있는 그들의 의지를 읽어내야 한다.

최 교장은 핸드폰을 꺼내서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냈다.

앞으로 10일 뒤인, 20일부터 만나서 준비한다.’

후드득. 최 교장은 창문 밖을 바라봤다. 비가 떨어진다. 잿빛하늘에 샛바람 불더니만, 햇빛이 쨍쨍했던 하늘에서 웬 비란 말인가? 회색 아스팔트는 검정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타닥타닥. 무거워진 빗방울들이 추락하며 나무 잎사귀를 때리는 소리가 제법 묵직하다. 이 비, 척보니 소나기였다. 공기도 좀 으스스 한데다 구름도 꽤 높이 피고 굵게 퍼져있었다.

 

※ ※ ※

4.

최 금, 거문고 금(). 예전에, 궁중에서 사용했던 현악기의 하나로 나라를 대표하는 아름다운 목소리가 되라고 지어진 이름. 태조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고 새 사람들로 조정을 정비할 때 당시 최고관리인 문하시중으로 임명되어 고려 국정을 총괄하면서 나라의 정세를 완벽히 꿰뚫어 보았던 인재 중 한명. 그의 자손은 자신의 자식이 선조 중에 이러한 대단한 이가 있었다는 것에 감사하라는 의미와 그를 닮아 나라의 인재로 성장하기를 바라며 그와 같은 이름을 지어주었다.

최 금, 그는 현재 미국에서 정식학교로 인정받아 정부에서 지원받고 있는 한국사 학교를 운영하는 학교장이며 일본에 있는 호국보훈단체 연합회의 지사장을 맡고 있다. 그가 미국에 와서 한국사 학교를 운영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미국이라는 선진국의 시민들에게 한국이 그 동안 받아왔던 뼈아픈 역사 사실을 알림으로서 일본으로부터 진정한 사과를 받으며 해외에 빼앗긴 문화재를 일본, 독일, 프랑스, 영국, 등으로부터 돌려받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그의 자식, 최 승리, 은 한국역사는 물론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것조차 부끄러워한다. 그러한 승리를 두고 미국인들에게 한국의 역사를 알리고 한국을 위해 발로 뛰어 다니는 것에 대해 창피했었다. 그런 아들이 변해서 자신을 도와 한국의 정체성을 간직한 채, 대한민국을 모르는 이들에게 한반도의 뿌리를 알리면 얼마나 좋을까 라고 많이도 생각했었다, 그것을 위해 자신은 목숨을 내려놓아야 한다 할지라도…….

 

※ ※ ※

5.

공항을 나섰을 때 최 교장을 처음 반긴 것은 바람이었다. 바람이 많은 섬, 일본의 첫 공기는 그의 생각과는 다르게 선선했다. 바람을 타고 온 바다의 공기가 쓰시마 섬을 뒤덮고는 최 교장의 코를 간질였고, 가을치고는 코끝이 찡할 정도로 간질였다. 나뭇잎이 지고, 여름의 꽃들이 남기고 간 잔향이 말라붙은 대지 위로 찾아와 감기는 가을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향긋한 내음에 최 교장은 자신이 있는 곳이 지금까지 적대했던 일본이라는 것도 잊고 코를 벌름거렸다.

최 교장은 일본어와 영어로 적혀있는 간판을 들고 쓰시마 섬의 나가사키현 시내 한 복판에 서서 혼자서 외쳤다.

하와이는 미국 땅, 시칠리아는 이탈리아 땅, 발리는 인도네시아 땅, 독도는 한국 땅. 이것들은 아주 분명한 사실입니다.”

최 교장은 현재 한국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237명 중 64명만이 생존되어있다는 내용을 강조하면서 하루빨리 일본군에 의해 강제로 전선에 끌려가 온갖 고초를 겪었던 위안부 할머니들께 일본 정부가 진정한 사과를 드리길 요구하였다. 뿐만 아니라 한국으로부터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일본을 향해 우리 영토주권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자 파렴치한 도발행위라며 이어 국권을 찬탈하고 강제징용, 성노예, 한국의 문화재를 가져가는 등 온갖 야만스러운 짓을 저지른 과거사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가 진정으로 사죄하고 보상하라고 요구했다. 이러한 국가적 과업을 이루기 위해 뒷받침되어야 하는 그의 애국심과 사명감은 실로 대단했다.

 

※ ※ ※

6.

나는 최승리, 아니, 내 이름은 Isaac이다. 한국계 미국인? 아니, 그냥 미국인이다. 어릴 적부터 자란 나의 고향은 미국 North Carolina이다. 미국에서 산지 벌써 20년이 지났는데, 나의 아버지는 매일 한국이라는 나라를 위해 살아간다. 도대체 그 한국이라는 나라가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해주었다고? 20년이라는 세월을 미국에서 지내는 동안, 동양인이라고 천시당할 때, 작은 나라라고 무시당할 때, 그 나라가 나에게 해준 게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런 나라를 위해 왜 아버지는 자신의 시간과 돈을 낭비하는 걸까? 난 내 자신의 발전을 위해 시간을 사용했다. 난 아버지처럼 한심하게 살지는 않을 거라고 어릴 때부터 결심했다. 한국을 알리고 인정받자고? 그건 실력 없는 한심한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자신이 실력을 키우면 무슨 말을 하던 사람들이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난 현재 흉부외과 전문의와 교수를 겸하고 있어서 아버지처럼 지난 과거에 치중하는 것보다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살리고 그 생명을 다루는 의사들을 양성하는 세상을 위해 아버지보다 훨씬 뜻 깊은 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과거를 바꾸면 무얼 하나, 그래봤자 현재는 그대론데. 일본으로부터 사과 받으면 무얼 하나, 그래봤자 지난 일인데…….

 

※ ※ ※

7.

하늘은 어느덧 검은 벨벳이었다. 이지러진 조각달이 뜨고, 회색 거리엔 길을 따라 가로등이 점등된다. 가로등은 달보다 더 밝았다. 가로등 덕분에, 칠흑같이 어두웠던 주위가 이제는 나무의 윤곽이 어렴풋이 보일 정도로 밝아져 있었다. 거센 파도를 다독이는 섬인 쓰시마 섬은 먼 바다 항해에 지친 바람이 쉴 수 있는 섬이다. 황량한 돌섬일 뿐이지만, 일본 여러 문화재가 보관되어 있는 간논박물관(觀音寺) 덕분인지, 천하를 주유하던 모든 만물이 역사 이야기를 듣고자 가만히 귀 기울이며 쉬어 가는 곳이다.

눈앞에 바다가 펼쳐지고 그 바다 위로 노을 지는 언덕에 한 남자가 바람을 맞으며 서있다. 뭔가 고민에 빠진 듯 심각한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보다 이윽고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 잘들 있었나?”

자박자박, 바닷물을 찍는 구둣발소리가 들렸다. 안개를 뚫고 지나가며 오랜 세월 맡지 못했지만 익숙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짠 냄새, 바다냄새, 그리고 비린 냄새. 냄새는 기억의 방아쇠를 당겼다. 달빛을 받아 핏빛으로 일렁이는 수수벌판. 수숫대 위로 불어오는 바닷바람, 벌판 끝 바위산 너머에서 희끗거리는 등대불빛. 어두워진 하늘 위로 별들이 하나씩 떠오르고 언덕 위에 서있던 남자의 그림자는 다른 두 명의 그림자와 함께 사라졌다.

 

※ ※ ※

8.

“101308시에 쓰시마섬 간논박물관에서 도쿄국립박물관으로 옮겨질 예정이었던 관세음보살좌상이 도난을 당하는 황당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오늘 아침 물건을 옮기기 위해 보다 일찍 출근한 도청 직원으로부터 문화재가 사라졌다는 연락을 받고는 경찰이 출동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동조여래입상까지 같이 없어진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현재 범인은 수사 중에 있으며, 환풍구를 통해 들어간 것으로 보아 보안을 유지하는 레이저가 작동을 안 한 것으로 판단되어 현재 정부는 이러한 소행이 단순한 도난사건일지 역사적인 문제로 생긴 일인지 판단하며 추적을 하는 중 입니다. 이 사건 이후로 간논박물관을 설계한 이 모씨도 사라진 것으로 보아 범행에 같이 공조한 것으로 추측이 난무한 가운데…….”

일본 JBS 아침 9시 뉴스에서 아나운서가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 ※ ※

9.

1012일에 밤 11, 이제 앞으로 9시간 후면, 보도 자료에서 말한 것과 같이 나가사키현 쓰시마섬 간논박물관에 있는 고려시대 불상 관세음보살좌상 이 도쿄국립박물관으로 옮겨질 것이다. 알아본 바에 의하면, 간논박물관은 24시간 보안절도 대비태세를 유지하고 있기에 개점시간 이외에는 철저하게 국가로부터 보호되고 있는 장소이다. 문화재 사이에 보이지 않는 레이저가 모양 없이 아무렇게나 그어져있다. 레이저는 주파수와 위상을 각각 다르게 하였다. 그 레이저를 물체가 통과하게 되면 자동으로 모든 문은 철장으로 막아지고 경보음이 울리면서 차로 3분 거리에 있는 경찰들이 들이 닥치게 된다.

최 교장은 두 명의 일행과 함께 방법은 전혀 없을 거라 걱정하며 간논박물관을 지은 설계사로부터 암암리에 거액을 주고받은 건물 내외부의 설계도를 보았다. 섬에 지어져있고 건물이 30년이 넘은 오래된 건물인데도 불구하고 빈틈없이 잘 지어졌다. 문화재들을 입구에 있는 세 개의 문들에 의해 지켜지고 있었고, 각 문마다 필요한 인식 기능이 달랐다. 첫 번째 문은 비밀번호, 두 번째는 지문인식이다. 두 번째까지는 어떠한 방법을 동원해 통과했다고 할지라도 마지막 관문인 세 번째 문은 다르다. 바로, 보법(步法) 일치 테스트이다. 세 번째 문은 따로 존재하지 않고, 그냥 20m 정도의 복도를 걸어가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20m의 복도 좌우측에는 진보한 현대 기술시스템이 도입되어 걸어가는 사람의 보법을 테스트한다. 등록되어 있지 않은 사람일 경우에는 감지기가 바로 잡아내어 경보음이 울리며 주위 문들이 자동으로 잠귀며 경찰이 올 때까지 가두어둔다. 가히 일본에서 도쿄국립박물관 다음으로 국가문화재를 가장 많이 보유한 박물관의 완벽한 보안적인 면모를 과시했다.

최 교장은 환풍구를 통하여 진입을 하는 방법을 고려해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이미 보안 측에서는 간과했던 방법 이었다. 들어가는 것까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들어가서 유네스코에까지 세계국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관세음보살좌상이 있는 곳까지 도달하고 가져오는데 거리에 있는 레이저다. 007영화처럼 레이저를 투시할 수 있는 액체를 뿌리고 그 사이를 통과하여 가져온다는 것은 위의 설명과 같이 주파수와 위상을 각각 다르게 설정해 두어서 곡선을 이루거나 원형을 이루는 레이저가 있기에 최 교장뿐만 아니라 일행들에게도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냥 전기를 차단시키면 되잖아.”

이제 남은 시간이 얼마 없는데 아직까지도 방법을 찾고 있는 자신들의 모습에 한숨을 쉬며 김 종보 교수가 말했다.

일정한 양의 전기가 일정한 시간동안 박물관으로 흘러 들어가지 않으면 경찰들이 오게 됩니다.” 이 병현이 답했다.

하지만,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방금 교수님이 말한 것처럼 전기를 차단시키면 됩니다.”

김 교수는 양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병현을 쳐다봤다.

다른 전기와 연결하는 겁니다.” 이어서 병현이 말했다.

지금 박물관으로 전해지는 전류는 시간당 190 megawatt입니다. 그럼 분당 3 megawatt를 사용하면 문제가 없습니다. 연결되어 있는 발전기를 제 차에 있는 대형 전지 충전기에 잠깐 꽂아 놓는 다면 박물관 속에는 전기가 멈추어 버리기에 레이저와 경보음은 자동으로 꺼지게 됩니다.

 

※ ※ ※

10.

최 교수는 자신의 뒤의 창문 밖의 배경에 시선을 두었다. 시야가 뿌옇다. 현기증이 일어나 세상이 빙빙 도는 느낌이 들었다. 속도 너무 울렁거린다. 하지만 그 보다 더 괴로운 건 쿵, , . 베토벤 바이러스가 광음을 내치며 심장이 흉곽의 외벽을 뚫고 터져 나올 것 같은 두려운 기분이었다. 온몸이 떨리며 일순간에 크레셴도로 치달았다.

최 교수 일행은 간노박물관에 있던 관세음보살좌상 뿐만 아니라 동조여래입상까지도 훔쳐 나오는데 성공하고는 준비해 두었던 밀항선을 타고 한국으로 복귀하는 중이었다.

1013, 가을이라지만 바다위의 날씨는 차가운 해양성 고기압의 영향을 받아 한기가 내려온 가운데 일본에서는 맑은 날씨로 인한 복사냉각 효과가 더해져 기온이 크게 떨어졌다. 하지만 최 일행은 이대로 한국으로 무사히 도착하기만 하면 650년 동안 일본에 불법 유출 되었던 고려 문화재가 다시 한반도를 밟을 수 있게 된다는 희망 때문에 그런 추위 따위는 전혀 두렵지 않았다.

 

※ ※ ※

11.

안녕하세요. 재정 경제부 소속의 관세청에서 밀수 단속을 맡고 있는 김 서영 대리입니다. 현재 최 승리 씨의 아버지, 최 금 씨가 일본으로부터 문화재를 도난 하여 한국으로 불법 입국 시킨 혐의로 불구속 입건 되어있는 상태입니다. 미국 시민권 자이신 아버님이 한국과 일본에 역사적으로 대립이 될 만한 민감한 물건을 도난 했다는 문제를 어떻게 할까 논의하다가 아드님께도 알려드려야 할 것 같아서 전화 드립니다.”

... 아버지가요?” 오랜만에, 아니 처음으로 승리는 다른 사람 앞에서 한국어를 구사하였다. 교실에 있던 의과학생들은 한국인이라는 것 자체를 역겨워했던 승리가 한국어를 썼던 것에 놀랐다. 아니, 썼던 것에 놀란 게 아니라 한국어를 알아듣고 말할 줄 아는 것에 놀랐다.

전화를 받고 난 승리는 교실에서 급하게 나왔다.

 

※ ※ ※

12.

급하게 한국으로 입국했지만 아버지를 만날 수는 없었던 승리는 일단 아까 통화했던 관세청의 김 서영 씨와 대화를 나누고자 약속을 잡았다. 애국심이 투철한 아버지이지만 행여나 누군가를 만나서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판단한 외교부 쪽에서 최 교장을 독방에 가둬둔 것이다.

안녕하세요?” 뒤에서 야릇하지만 은은한 향수 냄새가 승리의 코를 찔렀다. 작은 체구지만, 동그스름한 어깨, 차가워 보이는 그녀를 약간이나마 귀엽게 만들어주는 긴 생머리.

, 최 승리 입니다.”승리는 인사하며 자신의 명함을 건네주었다. 그녀에게 왠지 자신에 대해 알리고 싶었던 것 같았다.

김 서영이에요. 전 명함이 없어서..” 승리의 명함을 건네받은 서영은 수줍게 말했다. 승리는 그런 수줍은 표정을 지은 서영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다시 한 번 그녀의 얼굴을 오목조목 살펴보았다. 상냥하고 예쁜 얼굴, 뽀얀 피부에 작은 체구지만 비율이 좋아 의외로 커 보이는 체구, 내 주먹보다 약간 크다 싶은 얼굴에 오밀조밀하게, 하지만 각자 필요한 자리에 올바르게 찾아들어간 이목구비, 언뜻 보기에 차가워 보이는 용모를 조금이라도 누그러뜨리려는 듯 부드럽게 쳐진 눈꼬리, 마트에서 쉽게 그리고 값싸게 볼 수 있는 머리핀으로 아무렇게나 말아 올렸지만 고상하고 아름답게 드러난 목선이 마치 누군가가 일부러 그녀를 예쁘게 만들려고 꾸민 것처럼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갈게요. 외교부의 김 경임 문화외교국장님의 말에 의하면 일단 아버님께서 행하신 도난 자체는 국제간의 큰 범죄이지만, ‘유네스코 불법문화재 반환협약에 따라 본래 소장 처에 소유권이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훔친 문화재를 살펴보셨어요. 하지만 이 규정은 협약이 체결된 1970년 이후 발생한 사건에만 적용이 되고 있었고, 관세음보살좌상은 충남 서산 부석사에 봉안돼 있다가 고려시대 후반 왜구가 약탈한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협약으로만 따지면 일본이 한국에 돌려줘야 할 의무는 없는 셈이기에 둘 다 반납을 해야 할 것 같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일단 일본에 불법으로 유출되었다는 증거가 전혀 없는 동조여래입상은 최 금 씨의 처벌 수위를 낮춘다는 조건으로 오전에 반납을 해서 아마 지금쯤이면 일본 당국에 도착했을 거예요. 하지만 관세음보살좌상은 복잡하고 나라 적으로 민감한 문제가 남아 있어서 아직 반환 여부가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최 금 씨는 지금 현재 큰 문제에 직면하고 있어요. 일단 훔쳐 오신 한국 문화재가 일본으로 반환이 되는 경우에는 최 금 씨는 도난뿐만 아니라 나라 망신을 주었다는 죄목 하에 징역을 면치 못하실 거예요. 그걸 막기 위해서는, 또 우리나라의 문화재를 되찾기 위해서는 법적으로 우리의 문화재이고 고려시대 후반에 일본이 약탈한 것임을 증명해야 되요.”

서영이 말하는 것을 듣고는 승리는 이내 정신을 차렸다. 맞아, 아버지를 구해야 한다. 한국이라는 나라는 아버지가 희생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를 위해서 어떠한 도움을 주려고 노력조차 하고 있지 않다는 것에 큰 분노를 느낀 승리지만, 자신이 꼭 아버지를 도울 법적인 근거를 찾겠다고 다짐했다.

 

※ ※ ※

13.

관세음보살좌상을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대부분 아버지와 관련된 기사 때문에 역사적인 사실을 찾기는 너무 어려웠던 승리는 일단 서영에게 법적인 근거를 찾을 수 있는 관련서적을 서점에서 골라달라고 부탁하였다. 승리는 그녀가 골라 준 고려에 관한 도서 2권을 서점에서 샀다. 그녀도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찾아보겠다고 하여 그 중 한권을 가져갔고, 승리는 몸도 쉴 수 있을 만한 호텔로 들어가 책을 읽기 시작하였다.

※ ※ ※

14.

왕건은 자리에 오르고 난 뒤에는 가장 중요한 민심을 수습하고 호족세력을 회유, 포섭하는 대책을 강구했다. 왕건은 수도를 송악으로 옮기면서 융화·북진·숭불정책을 건국이념으로 삼아 정책을 펴나갔다. , 지방 호족들을 기인제도로 견제하면서도 정략결혼과 같은 제도로 우대를 하는 한편, 서경을 개척하여 청천강에서 영흥만까지 영토를 확장하고 여진을 공격했으며 불교를 신앙으로 삼아 각처에 절을 세웠다.

승리는 긴 시간을 투자해 한 권의 책에서 필요한 정보를 요약하였다. 익숙지 않은 한국어를 사전과 함께 읽은 승리는 갑자기 서영이가 보고 싶었다. 그녀는 왜 아버지를 도우려고 하는 것일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고, 그런 그녀에게 호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약간 잠긴 목소리로 서영은 전화를 받았다.

서영씨, 저 승리예요.”살짝 긴장한 목소리로 승리는 말했다. 승리는 시간을 보았다. 새벽 2... 혹시라도 그녀가 자고 있었나 싶어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 안녕하세요.”

, 혹시 찾으신 것 좀 있으세요?”

……. 아니요, 아직도 읽고 있어요.”

그럼 같이 하실래요?”

, 그렇게 해요. 제가 갈게요, 어디서 만날까요?”

여기 한국호텔이에요. 104호로 오시면 되요.”

?!” 서영은 놀란 목소리로 되물었다. 승리는 서영이 왜 놀랐는지 의아해 하면서 다시 호수를 말하려는 순간, 자신이 그녀를 호텔로 오라고 한 것이 잘못이라고 여겨 다시 말을 바꿔 말했다.

, 여기 한국호텔 바로 맞은편에 24시간 운영하는 한국 카페가 있어요. 거기서 만날까요?”

, 30분 정도 걸릴 것 같아요.”

 

※ ※ ※

15.

그녀는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시켰고, 나는 캐러멜 마끼아또를 주문했다. 적막이 흐르는 카페 안, 손님은 딱 그 둘 밖에 없었다. 아무리 평일 새벽 3시라고는 하지만 서울 강남구에 이렇게 사람이 없을 수가 있을까. 승리는 커피가 나올 때까지 그녀에게 물었다.

근데, 서영씨는 왜 저희 아버지를 도우려고 하는 거예요?”

…….”그녀는 아무 대답 없이 손톱을 만지작거렸다.

, 대답하기 곤란하신 거면 말씀 안하셔도 괜찮아요. , 혹시나 우리 아버지랑 관련된 건가 해서 물어본 거예요. 신경쓰지..”

서영이가 말을 끊으며 말했다.

사실은 제 아빠도 최 선생님의 일행이에요.”

무슨 일행이요?”

문화재를 훔쳐온...” 그때 커피를 가져다준다.

제 아빠는 서울대에서 역사학을 가르치시는 김 종보 교수님이에요. 저도 뒤늦게야 알게 되었지만 승리씨 아버지와 저희 아버지가 함께 일본에서 한국의 문화재를 훔쳐서 밀입국 하는 일을 도모했었어요. 법적으로 당당하게 가져오려고 준비를 하셨지만, 최근 일본에서 관세음보살좌상을 도쿄국립박물관으로 옮기면서 한국의 역사를 왜곡하려고 해서 급한 마음에 그러셨던 것 같아요.” 서영은 이어서 말을 끝내고는 따뜻한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탁자 위에 서류 봉투를 올려놓았다.

이게 저희 아버지와 승리씨 아버지가 법적으로 고소를 하려고 준비하셨던 자료예요.”

승리는 그것을 꺼내어 읽어보았다.

 

※ ※ ※

16.

신숭겸 장군은 성도 없이 능산이라는 이름만 있던 궁벽한 시골의 천민 출신이다. 그런 그가 자신의 나라는 지키겠다는 투철한 신념 하나로 왕건의 목숨을 구하는 대신에 자신의 목숨을 잃게 되었다.

그의 묘는 전국에 10여 군데가 있다. 그 까닭은 공산전투에서 전사한 신 장군의 시신을 나중에 수습했는데, 목이 없어졌기에 왕건이 황금으로 두상을 만들어 장사를 지내게 했다. 그리고 도굴을 염려해 가묘를 나라 안 곳곳에 여러 개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태조는 죽은 신 장군에게 어떻게 하면 자신의 감사함을 표할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하다가 국가의 재산을 자신의 목숨을 구했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사용을 하게 되면 지방 호족들로부터 큰 질타를 받게 될까 걱정한 왕건은 숭불정책을 건국이념으로 하여 새로이 정비된 조정 신하들에게 불상을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그 중에 가장 크고 순수 금으로 만든 불상을 삼사장으로 임명되어 나라의 회계를 보살피던 신장절에게 하사하였다. 그 불상이 지금 현재 일본의 나가사키현 쓰시마섬 간논박물관에 있는 관세음보살좌상이다.

관세음보살좌상을 하나하나 짚어보면 그것이 왜 고려시대의 것인지 알 수 있다. 처음으로 관세음보살좌상의 눈이다. 눈은 감고 있다. 그 이유는 태조가 공산전투에서 전사한 신 장군의 시신을 찾았지만 그의 목은 없어서 황금으로 그의 두상을 만들었다.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불상 또한 눈을 감겨놓았다. 두 번째로는 착용하고 있는 목걸이다. 그 목걸이는 조정의 신하들 중, 공음전과 과전의 혜택을 받는 이들을 구별하기 위하여 착용케 한 목걸이 이다. 공음전이란, 공신과 오품 이상의 벼슬아치에게 공을 따져 지급하던 토지로서 신 장군의 공을 인정하고 오품 이상의 벼슬인 삼사에서 일을 하고 있는 신장절을 의미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걸치고 있는 정계옷이다. 이 옷은 정계, 계백유서인 신하의 도리를 의미하고 있다. 누가보아도 신 장군은 자신의 목숨을 다하여 왕을 구한 신하의 도리에서 한 치의 문제도 없었던 장군이다. 그런 의미를 표하기 위하여 정계옷을 입힌 것이다.

 

※ ※ ※

17.

봉투 안에 있던 서류를 읽은 승리가 말했다.

서영 씨, 이 정도 근거라면 법적으로도 온전히 저희 것이라고 우길 수 있지 않나요?”

서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 충분한 근거죠.”

근데, 왜 굳이 더 찾아보자고 한 거죠? 혹시 몰라서?”

서영은 고개를 살짝 숙인 채 말을 하였다.

최 선생님께서 저한테 부탁하셨어요. 자신이 구속 되었다는 것을 승리가 들으면 자신을 위해 어떤 일도 할 거라고. 근데 조사했던 서류들을 보여주며 이걸 가지고 법정에서 싸우며 아버지는 풀려날 거라고 말하면 우리 대한민국의 소원이자 목표는 이루는 것이지만 개인적인 소원은 이루지 못한 거라고…….”

말을 끊으며 승리가 말했다.

그래서 저를 속이고 한국의 역사를 공부하게 만든 다음 책에서 찾은 척 이 봉투를 보여주려고 했던 건가요?”

절대 그런 거…….”

승리는 부들부들 떨면서 서영의 말을 끊고 이어서 말했다.

서영씨도 역시 한국인이군요. 잠시라도 서영 씨라는 여성한테 설렜던 제 자신이 역겹네요.”일어나려는 승리의 팔을 서영이 붙잡았다.

승리 씨, 제가 드린 책의 마지막 부분을 읽어보았나요?”

그렇게 말하고는 서영이 승리가 가지고 있던 책을 빼앗아 마지막 부분을 보여주었다.

왕건을 위해 죽었던 신숭겸 장군. 모든 이들이 그를 단순히 나라를 위해 그리고 자신이 섬기는 왕을 위해서만 죽은 걸로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신 장군은 공산전투에서 매복 계에 갇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던 왕건을 구하기 위해 달려갔었다. 그의 옆에서 보좌를 하던 신 장군은 둘 중 한명은 죽어야 다른 한 사람이 빠져나갈 수 있을 거라고 판단하였고, 그 죽어야 하는 사람이 자신이 돼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는 왕건에게 다가가 말했다.

전하, 귀하신 전하의 옥체를 제대로 지켜내지 못한 이 못난 신하 백번 죽어도 그 죄 용서받지 못함을 아옵니다. 하지만 지금은 전하의 옥체가 우선입니다. 송구스럽지만 전하의 갑옷을 벗어 저의 갑옷과 바꿔 입으시기 바랍니다.”

왕건은 그렇게 말하는 신 장군에게 자신의 갑옷과 갈아입고는 신 장군이 길을 뚫어주는 곳을 따라가서 매복 계에서 달아나기 시작했다. 거의 끝에 도달했을 때 신 장군은 왕건에게 말하였다.

전하, 이 한심한 신하 전하와 함께 전장을 누비고 고려라는 나라를 위해 일해 왔던 것에 감사를 드립니다. 허나, 이 신, 이제 생을 다한 듯하옵니다. 떠나기 전, 저 백제인 들에게 고려인의 힘을 보여주겠습니다. 전하, 이 신 에게는 한 가지 처음이자 마지막 부탁이 있습니다. 저에게는 못난 어린 자식이 하나 있습니다. 전 나라를 위해 죽지만 그 자식만큼을 나라를 위해 살아서 전하를 모시는 자로 거듭날 수 있도록 큰 가르침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신 장군은 적장으로 뛰어들어 자신의 목숨을 왕건을 위해 받쳤다.

 

※ ※ ※

18.

승리는 그 마지막 부분의 책을 읽고서는 눈물을 흘렸다. 신 장군이 멋있다고 생각해서 눈물이 나온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아버지한테 죄송하다고 해서 눈물이 나온 것도 아니었다. 자신은 남들이 효도라고 생각하는 부분보다 더 했으면 더 했지, 부족했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가 눈물을 흘린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자신이 한국이라는 나라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음과 동시에 그의 아버지는 나라를 사랑하는 것만큼 자식을 사랑한다는 것을 깨달은 이유에서였다. 자신이 한국이라는 나라를 싫어했다고 믿었던 것은 아버지가 자신의 나라를 위해 희생하는 것만큼 자신을 위해 희생하지 않는다고 믿었기에 자동적으로 아버지가 사랑하는 나라를 미워하고 싫어했던 것이었다. 승리는 이러한 훌륭한 장군이 있었던 나라의 남아(男兒)로 태어난 것에 감사했다.

 

※ ※ ※

19.

대한민국 대통령은 최 교장을 좌에, 관세음보살좌상 우에 두고는 전 국민 앞에서 공포하였다.

정부도 앞으로는 최선을 다해 우리 문화재를 찾는 데 힘을 모을 것입니다. 과거에는 우리 모두가 가난 속에서 살기 위해, 단지 목숨을,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힘써 왔습니다. 이제, 선진국인 우리 대한민국은 우리 고유문화와 문화재를 돌봐야 할 그런 시기를 맞이하였습니다. 650년 전인 1360년 우리는 힘에 의해 빼앗겼던 국가의 소중한 문화재, 세계적인 문화재가 오늘 평화스럽게 협상에 의해 돌아온 것은 매우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 국력과 대한민국 국민, 최 금 교장님의 열정에 의해 돌아오게 됐음을 깨닫고 국민 모두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의 많은 문화재가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습니다. 한 점이라도 더 찾는 데 소홀함이 없어야겠습니다.”

 

※ ※ ※

20.

승리와 서영은 한국 카페에 앉아있다. 그녀는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시켰고, 나는 캐러멜 마끼아또를 주문했다. 적막이 흐르는 카페 안, 또 손님은 우리 둘 밖에 없었다. 오늘은 주말에다가 크리스마스다. 그런데 왜 손님이 아무도 없을까? 서영은 나를 보며 물었다.

오빠, 오늘도 여기 카페는 아무도 없네...”

그러게 말이야. 네가 너무 못생겨서 사람들이 기피하나보다.”

승리는 웃으면서 말했고 서영은 그런 그를 째려본다.

째려보는 서영을 향해 승리는 키스를 했다. 서로의 입 속에는 달콤한 캐러멜 맛과 쓴 아메리카노의 향과 맛이 느껴졌다.

속삭이면서 승리는 말했다.

사실, 내가 여기 카페 빌렸어. 너에게 할 말이 있었거든…….”

사랑한다, 서영아.” 승리는 반지를 꺼내며 말했다.

 

추운 겨울이다. 영하로 떨어지는 날씨 때문에 겨울에는 땅조차도 얼어버린다. 그런 얼어버린 땅 때문에 나무는 뿌리를 통한 충분한 수분 공급을 하는데 문제가 생긴다. 따라서 나무는 나뭇잎을 통해 증발되고 날아가 버리는 수분을 줄이고 줄기 부분에 있는 수분을 보존하기 위해 자신의 잎을 일부러 떨어뜨리는데 이것을 낙엽이라고 한다. 인간은 그런 나무의 깊은 뜻을 모르고 외관상 보기 안 좋다고 이 낙엽들을 쓸어버린다. 그로 인해 겨울을 더 혹독하게, 더 힘들게 보내는 나무들…….

역사도 겨울에 생존해가는 나무와 같다. 역사는 미래에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근거와 증거를 꼭 남기지만 우리는 그것을 대수롭게 생각하지 못하고 넘기고 버리고 자르고, 심지어 왜곡까지 한다. 그것이 나중에 역사의 뿌리를 죽이는 것인지도 모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