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소설 제2장

by 낭중지추 posted Dec 10,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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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소설 제2장




 벽이 와르르 무너지고 있었다. 그 앞에는 아버지와 내가 서 있었고 아버지는 모든 것을 내려 놓으셨다. 그래 이놈아 네가 이겼다. 이렇게 되뇌는 것처럼 말이다. 눈물바다가 된 듯싶었다. 나의 오장육부가 천둥을 일으켜 발생된 그 어둠의 밤 파도처럼 넘실넘실되고 있었다. 눈물이 와르르 쏟아진다. 운동장에 광활하게 펼쳐져 있는 모래자갈 위로 또 한 번 나의 눈물은 넘실넘실되고 있었다. 동네 사람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집 밖으로 헐레벌떡 뛰어나온다. 모두들 해방을 맞이하여 너 나 할 것 없이 한 손 또는 두 손에 태극기를 휘날리며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이렇게 되뇌고 있었다. 아버지는 무릎을 꿇고 계셨다. 이러지 마세요, 아버지. 나는 아버지를 일으켜 세우려 하였지만 아버지는 또 한 번 나에게 미안하다며 울부짖으셨다.

 

 그 순간 허물어진 벽 사이로 경찰차가 괴상한 웃음소리를 내며 달려오고 있었다. 아버지는 모든 것을 내려 놓으셨다. 태극기가 그려진 깔끔한 모자를 쓴 경찰관 아저씨가 차에서 내리더니 태극기를 휘날리며 수갑을 나에게 던지는 것이었다. 네가 체포해라. 나에게 하는 소리였다. 내가 체포하라니? 뭘 체포하라는 것인가 싶어 그게 뭔 말입니까? 라고 소리치니, 너희 아버지 네 두 손으로 직접 수갑을 채워서 체포하란 말이다. 나는 지금 양손에 태극기를 휘날리고 있으니 수갑을 채울 수 없지 않느냐? 딱 보면 아는데 뭐 그리 말이 많으냐? 네가 수갑을 채우는 게 더 통쾌하지 않겠느냐? 나는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대꾸해봤자 돌아오는 건 꽉 막힘뿐이기 때문이다. 갑자기 휴대폰이 쩌렁쩌렁 울리기 시작했다. 발신자의 이름은 갑숙 씨라고 적혀 있었다. 통화 버튼을 누르니 변기가 막혔으니 지금 즉시 집으로 오라고 한다. 나는 수갑을 주머니에 넣은 뒤 뛰어가기 시작했다. 죽도록 뛰어 갔다. 사활을 다해서 뛰어 갔다. 꽉 막힌 집으로 말이다.

    

 집에 도착하니 갑숙 씨가 나에게 이런 말은 한다. 내가 방금 집에 왔는데 변기가 꽉 막혀 있어서 네한테 전화한 것이다. 기분 나쁘진 않지? 도대체 무슨 말인가 싶었지만, 다음엔 무슨 말을 하실지 궁금하여 대꾸를 하지 않고 잠자코 가만히 있으니, 네가 했느냐? 아니면 너희 아버지가 했느냐? 그니깐 누가 변기를 꽉 막아둔 채로 도망갔느냐 말이다. 제가 안했어요. 안했다고요. 아버지가 그러셨겠죠. 제가 설마 그러겠어요? 저는요 꽉 막힌 인간이 아니에요. 대단한 걸 변기에 내뱉은 뒤에 뒤처리는 제가 알아서 한다고요. 누구처럼 도망가진 않겠죠. 갑숙 씨가 그런 말 하실 처지는 아니지 않나요? 나는 끓어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 했다.


 다음 타깃은 누구로 정할까? 갑숙 씨로 정할까? 그러는 사이 갑숙 씨는 더운 여름에 문을 꽉 닫은 채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변기를 뚫고 있었다. 꽉 막힌 변기를 뚫자. 꽉 막힌 변기를 뚫자. 이번 타깃은 변기가 되겠다. 주머니에 넣어둔 수갑을 꺼내 변기 머리 위에 올려뒀다. 변기는 손이 없어 수갑을 채울 수 없으니 변기 머리 위에 올려 두자. 역시 생각한 대로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그런데 누가 응원해줄 사람은 없나? 옆에서 누가 응원을 해주면 힘이 나서 더 잘 뚫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팔이 저리다. 팔이 너무 저리다. 팔을 주물러줄 사람은 없나? 잠시만, 1시간 정도 뚫은 것 같은데? 잠시 고무장갑을 벗고 거실로 가서 시계를 보니 꽤 많은 시간이 흘러 있었다. 일단 조금 눈을 붙인 뒤에 시작할까? 아니다. 옆에서 도와줄 사람도 없고 혼자서 하려면 이렇게 머뭇거릴 시간이 없으니, 뜨거운 커피 한 잔 들이켜고 다시 시작해야겠다. 일회용 커피 믹스 한 봉을 날카로운 손가락으로 쫙쫙 뜯은 뒤에 뜨거운 물과 함께 손가락으로 회오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회오리를 만든 손가락을 입술로 쪽쪽 입맛을 다시는 것이다. 나는 고무장갑을 벗고 손을 씻지 않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기 때문에, 입김을 후후 불며 커피 한 모금 쭉쭉 들이킨 것이다.


 아버지는 뭐하고 계실까 궁금하여 경찰관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어 보았다. 뚝뚝 여보세요? , 경찰관 아저씨, 저 아까 전에 운동장에서 만났던 그 청년인데요, 아버지 뭐하고 계신가요? , 그래. 아까 전에 그 놈이구나. 너희 아버지 아직도 무릎 꿇고 계신다. 네가 빨리 와야 아버지가 일어설 수 있을 것이다. 알겠느냐? 아직도 무릎 꿇고 계신다고요? 그냥 일으켜 세우세요. 왜 아직도 그렇게 내버려 두는 거예요 도대체. 아저씨는 아버지 편이잖아요. 차라리 수갑을 채우세요. 이놈아 수갑은 네가 가져가 버렸는데 어쩌자는 것이냐? 네가 빨리 수갑을 갖다 주면 내가 어떻게 수갑을 채우든 말든 해서 너희 아버지 무릎을 되살릴 수 있을 것인데, 이제는 뭐 어쩔 도리가 없는 거 같구나. 아직도 이해를 못 하겠느냐? 너희 아버지는 이제 무릎을 사용할 수가 없다는 말이다. 방금 의사가 와서 진찰을 하더니 무릎이 완전히 망가져서 일어설 수 없으니 포기하라고 하더구나. 나는 무슨 말인지 몰라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 그러면 또 이렇게 말  하겠지. 버릇없는 놈. 분명히 경찰관 아저씨는 욕 한 바가지를 하고 있을 것이다. 온 세상 떠나가도록.

 

 안되겠다. 빨리 변기를 뚫어야겠다. 꽉 막힘을 뚫어야겠다. 전화를 하다 보니 커피가 다 식어 있었다. 아까 그 손가락으로 회오리를 한 번 더 만든 뒤, 쑥쑥 원 샷을 하고 고무장갑을 다시 착용한 다음 변기를 뚫기 시작한다. 여간 쉬운 게 아니다. 너무 힘들다. 혼자서 하려니 너무 힘들단 말이다. 커피로는 어림없어 보인다. 그 순간 따르릉 따르릉 소리가 울렸다. 반가운 소리다. 알람 소리다. 아까 전에 내가 맞춰 놓은 알람 소리다. 이제 잘 시간이다. 고무장갑을 벗고 수갑을 잠시 주머니에 넣은 뒤에 화장실에서 뛰쳐나왔다. 내일 보자 변기야. 그리곤 그대로 털썩 주저 누워 버렸다. 잠을 자려고 하는데, 갑자기 갑숙 씨가 방문을 쾅쾅거리며 나오더니 아버지는 어디 갔느냐고 묻는다. , 아버지 지금 운동장에서 무릎 꿇고 계세요. 아까 전에 제가 일으켜 세우려 했는데 제 손을 뿌리치면서 계속 고집을 피우시더라고요. 뭐 어쩔 수 없었죠. 그냥 내버려둔 채 그렇게 집으로 온 거죠. , 어차피 아버지 옆에 경찰관 아저씨가 계시니깐 별 걱정 안 하셔도 될 거예요.


 이토록 나는 냉정했다. 아니 참았던 불씨가 밖으로 터져버린 것일 수도 있다. 이토록 무정했다. 마음을 단단히 먹은 결과일 것이다. 나의 타깃에 걸리는 순간, 나의 주머니에 숨어 있는 수갑은 당신의 몫이 될 것이다. 갑숙 씨가 나에게 뭐라고 한 마디 툭툭 던지더니 그러곤 밖으로 나가버렸다. 아마도 아버지에게 갈 것이다. 운동장으로 말이다. 나의 해방이 이루어진 공간 말이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뛰쳐나와 한 손 또는 두 손에 태극기를 휘날리며 환호성을 지르던 그 공간 말이다. 전투에서 이긴 공간 말이다. 꽉 막힘을 뚫어 버린 공간 말이다.

 

 아아, 일단 너무 생각을 많이 하니 입이 너무 아프다. 아 근데 왜 이렇게 잠이 오지 않는 걸까? , 맞다. 아까 전에 회오리 커피를 마셔서 그런가? 오장육부가 회오리치듯 벌컥벌컥 움찔움찔 거린다. 그래도 내일 아침에 변기와 전투를 하려면 체력을 회복해야 하니 잠이 오지 않더라도 눈을 꼭꼭 감고 있자. 하루가 이토록 길고 긴 것이다. 마치 일 년이 흐른 것처럼 말이다. 꽉 막힘을 뚫으려면 도대체 몇 년이 필요하단 말인가? 100년 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 협동하여 꽉 막힘을 뚫었는데, 21세기에 살아가는 나 자신은 오로지 혼자서 그 난관을 해결해야 하니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그래도 마음을 단단히 먹자. 이렇게 나약해져서는 안 된다. 그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다. 자자, 이제 그만하고 눈을 감고 오장육부를 편안히 한 뒤에 체력을 회복하자.

    

 마음이 너무 답답했다. 너무너무 답답했다. 누가 나의 마음을 뚫어줬으면 좋겠다. 방 안에 스탠드만 켜져 있다. 형광등도 꺼버렸다. 도대체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단 말인가? 그나마 이 고요한 방 안에 분위기가 나를 위로해줄 뿐이다. 그 이상 그 이하는 나에겐 없다. 밤 파도가 너무 보고 싶다. 넘실넘실되는 밤 파도에 나의 몸을 자로 뻗은 뒤 그냥 어디론가 휩쓸려 가고 싶다. 나의 몸을 맡기고 싶다. 밤 파도에. 넘실넘실, 넘실넘실, 너무나도 좋지 않은가? 나는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나 자신이 가는 것이 아니라 누가 나를 운반하고 있었다. 밤 파도다. 밤 파도가 나에게로 온 것이다. 너무 고맙다. 나를 저 바다 한 가운데로 옮겨다 줬으면 좋겠다. 네가 너무 힘들겠지만, 나의 마지막 소원이니 꼭 들어줬으면 좋겠다. 나는 넘실넘실되고 있었다. 그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다만 스탠드의 달빛이 나를 밝혀줄 뿐, 아무도 없었다. 나의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밤 파도와 스탠드의 달빛만 있을 뿐이다. 너무 고맙다. 고맙다. 이렇게 되뇌고 있었다. 마치 내가 노인과 바다의 그 노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노인은 자연과 전투를 한다고 힘들었겠지만, 나는 잠시 자연과 한 몸이 되어 자유와 해방을 맛보고 싶을 뿐이었다. 다만 자유와 해방을 맛보고 싶으면 전투에서 승리해야한다는 불변의 진리가 있을 뿐이지만 말이다. 그래도 좋다. 치열한 전투를 하기 전에 자유와 해방을 미리 맛본다는 게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그 노인은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여보게 청년, 어디를 보는 겐가? 당신 말이야. 여기 당신하고 나 말고 누가 있겠는가? 너무 힘들이지 말게. 그렇다고 젊은 청년이 너무 목표 없이 비실비실되면 절대로 안 되네. 잠시 나를 보게. 이렇게 늙은 노인도 치열한 전투에서 이기든 지든 간에 포기하지 않고 결국엔 목표를 이루었네. 내가 옆에서 계속 지켜보니 많이 힘들어 보이는 것 같은데, 자신의 뚜렷한 목표가 있으면 한 번 밀어붙여 보게. 그렇다고 무작정 덤비면 안 되네. 나 자신의 확신과 뚜렷한 목표가 기본적으로 있어야 된단 말일세. 그런 다음 그 목표를 밀어 붙여 보게. 그러나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을 걸세. 많은 시련과 더불어 장애물도 있기 때문이지. 그 장애물이 당신 가까이 있을 수도 있네. 그만큼 힘들다는 것이지. 당신과 가까이 있을수록 그만큼 냉정하게 대하지 못한다는 말일세. 당신의 부모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네. 너무 말이 길었나? 꼭 명심하게. 당신의 부모가 장애물이 되더라도 그것이 당신이 꼭 넘어야할 장애물이 된다면 싸워 이기세. 냉정해져야 한다는 말이네. 꽉 막힌 것을 뚫으려면 그만한 시간이 걸리고 노력이 필요한 건 불변의 진리지. 전투에서 싸워 이기세. 그럼 자유와 해방이 당신 앞에 보일 것이네.

 

 그 노인은 가버렸다. 상어 무리에 쫓기는 듯했다. 마실 물과 먹을 음식이 없는 것 같아서 뭐라도 드리고 싶었으나, 나 자신도 아무 것도 가진 게 없었기에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나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나의 갈림길이었다. 내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이 자리를 계속 맴돈다면 나는 아버지가 말한 바로 오발탄이 될 것이다. 나는 오발탄이 두렵진 않다. 명중탄만 되라는 것이 더 두려운 것이지, 오발탄은 두렵지 않다. 나는 오발탄이다. 누가 오발탄이 패배자라고 했던가? 왜 계속 내 귀에다가 명중탄만 갈겨 되는 것인가? 치가 떨린다. 치가 떨린단 말이다. 그놈의 명중탄. 방아쇠를 날려버리든지 해야지. 아니다. 그 방아쇠를 가지고 꽉 막힘을 뚫어야겠다. 꽉 막힘을 뚫자. 꽉 막힘을 뚫자. 원래 있던 것을 밖으로 끄집어내자. 그 자리에 새로운 뿌리를 심자. 기존의 것을 파괴하자. 새로운 도전을 심어놓자. 입이 아프다.

 

 그 순간, 아버지가 내 방문을 지나가면서 뭐라고 중얼거리신다. 이놈은 허구한 날에 집에 틀어박혀서 뭐하는지 몰라. 또 쓸데없는 글을 휘갈기고 있겠지. 어리석은 놈. 내가 그렇게 공무원 공부해라. 대기업, 공기업 준비하라고 몇 날 며칠을 귓구멍에 소리쳐도 무시를 하질 않나. 이 애비를 얼마나 무시하는지, 언제 한 번 혼꾸멍날줄 알어라.


 마음이 너무 아프다. 지금 21세기 아닌가? 21세기 아니냔 말이다. 난 지금 조선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근데 왜 아버지가 하라는 대로 해야 되느냔 말입니다. 그 시대도 얼마나 꽉 막힘이 싫었던 것인지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서 기존의 것을 끄집어 내고 새로운 뿌리를 심으려고 많은 노력을 하지 않았습니까? 고집 좀 그만 부리세요. 저보고 계속 고집 부린다고 하지 마시란 말입니다. 꽉 막힘을 뚫자. 꽉 막힘을 뚫자. 저어기 보이는 꽉 막힘을 뚫자.


 나는 바로 오발탄을 꺼내 읽었다. 참나, 너무 어이가 없는 거 아닌가? 왜 오발탄이 패배자로 인식되느냔 말이다. 왜 슬픈 결말로 끝나야 하냔 말이다. 이빨을 2개를 뽑은 뒤 피를 줄줄 흘리며 목적지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택시를 타고 보조기사에게 무시발언을 들으면서까지 그렇게 소설을 끝내야 하냔 말이다. 오발탄이 그렇게 싫습니까? 오발탄이 되면 생을 끝마쳐야 되는 거 아니지 않습니까? 그만큼 사회 인식이 무섭다. 아니, 기존의 인식이 무서운 것이다. 기존의 것을 끄집어 내지 않으면 나는 이 자리에 안주할 수밖에 없다. 난 오발탄이 무섭지 않다. 오발탄이 옳지 않다는 기존의 인식이 무서울 뿐이다. 그것을 타깃으로 잡을 것이다. 내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든 상관없다. 해체할 것이다. 뿌리를 뽑을 것이다. 꽉 막힘을 뚫을 것이다. 꽉 막힘을 뚫자. 꽉 막힘을 뚫자. 저어기 보이는 꽉 막힘을 뚫자. 첫 번째 타깃은 정해졌다. 죄송하지만 잠시만 냉정해져야겠습니다. 은 잠시 내려놓겠습니다.

 

 오늘은 계몽소설을 읽었다. 100년 전의 소설이다. 그 작가가 누구든 관심 없고 단지 소설로서의 묘미를 읽은 것이다. 조금 슬프긴 했다. 2천년 가까이 지켜온 기존의 인습을 해체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 자발적이든 그 누군가의 강제가 섞이든 간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긴 했지만, 나로서는 나의 입장을 대변한 글을 읽어서 그런지 너무나도 통쾌한 기분이 들었다. 꽉 막힌 것을 뚫어버리니 이보다 더 통쾌한 것이 어디 있겠느냐 말이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다. 감회가 새롭다. 나도 더 이상 눈 뜨고만 있을 수 없다. 기존의 인습을 타파하는 것이다. 나도 소설을 한 번 써보자. 계몽소설을 쓰는 것이다. 일단 내가 21세기에 살고 있으니 이때에 발맞춰 써야 되는데, 그러면 해체해야할 대상이 있어야 된다는 말과 일맥상통하니 그 타깃을 잘 생각해보자. 그렇다. 알면서 모른 척한 것이다. 나의 타깃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나는 전에도 말했다. 그리고 그 노인도 나에게 말했다. 가까운 대상일지라도 자신의 목표의 장애물이 된다면 주저하지 말라는 것. 됐다. 이제 글을 써보자. 잠시만 알레고리법? 알레고리법이 뭔지 궁금하여 검색해 보니, 그래 내가 찾던 게 바로 이거였다. 시작해보자.


 그 찰나에 아버지가 문을 쾅쾅 발로 차며 들어오셨다. 뭐하고 있느냐? 또 쓰잘데기 없는 거 휘갈기고 있느냐? 내가 백 번 천 번 말하지 않았느냐? 그런 건 아무 필요 없다고, 네가 그 누구냐 갑자기 이름이 기억이 안 난다. 암튼 그 사람처럼 글을 잘 휘갈기면 몰라, 글도 잘 휘갈기지 못하면서 무슨 글타령이냐? 내 말이 틀렸느냐 맞았느냐? 대꾸하기 싫었다. 대꾸해봤자 명중탄만 날라올 것을 알고 있기에 그냥 글만 쓰고 있었다. 타깃이 앞에 있으니 글이 너무나도 잘 써지는 모양이다. 한 문장을 쓱쓱 써내려갔다. 벽이 와르르 무너지고 있었다. 그 앞에는 아버지와 내가 서 있었고, 아버지는 모든 것을 내려 놓으셨다. 아버지는 버릇없는 놈이라며 가까이 다가오더니 내가 쓴 글을 낚아채셨다. 그러더니 입 밖으로 소리 내어 읽으셨다. 벽이 와르르 무너지고 있었다. 그 앞에는 아버지와 내가 서 있었고, 아버지는 모든 것을 내려 놓으셨다. 이게 뭔 말이냐? 지금 네가 휘갈긴 글이 뭔 뜻인지 어여 말해봐라. 빨리 어서. 알레고리법이에요. 뭐 알레고리? , 알레고리법이라고 있어요. 시간이 있으시면 변신이란 소설을 읽어 보세요. 사람이 벌레로 변하는 내용인데, 그걸 읽으면 알레고리가 뭔지 바로 아실 거예요. 뭐 벌레? 그건 그렇다 치고, 암튼 이 문장에 아버지는 누구를 말하는 것이냐? , 뭐 그게 아버지가 생각하는 분일 수도 있고, 아니면 다른 대상일 수도 있는 거죠.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아무 잘못 없으시면서 뭐 그렇게 하나하나 물어보세요.


 나는 문학적인 언어를 좋아한다. 돌려서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함축적으로 말하는 것인데, 그 문학적인 언어는 직접적보다 더 큰 영향을 발휘한다. 그 대상이 누구든 간에 말이다. 그래 뭐, 알레르기든 알고리든 간에 오늘 결판을 내자. 이래가지고는 내가 얼굴을 들고 밖을 돌아다닐 수가 없다. 네가 잘 되어야 내가 밖에 나가서 누구를 만나든 자랑을 하고 다닐 게 아니냐? 뭐 건덕지가 있어야 입을 열든지 말든지 하지. 다른 사람들 모두 자기 자식자랑하고 있을 때, 나는 뭐 하고 있는지 몰라. 벙어리도 아니고 먼 산만 바라보고 있으니, 다들 날 벙어리로 알더라 이놈아.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대꾸하면 나 또한 기존의 인습으로 빠져 들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도구가 아니다. 나를 이용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당신의 이름에 먹칠하는 게 다 내 잘못만은 아닐 것이다. 그래 그래, 계속 그렇게 아버지 말을 귀똥으로 듣고 대답 안 한다 이거지. 내가 이런 말 다시는 안하려고 했는데 또 한 번 말해야겠다. 네가 이 시기에 공무원, 대기업, 공기업 준비 안 하고 쓰잘데기 없는 글만 휘갈기고 있으면 누가 알아준다냐?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요즘 같은 세상에 글 휘갈기고 있으면 욕한단 말이다 이놈아. 결국엔 저 밑바닥에 처박힌 오발탄이 되는 것이지. , 그래 책꽂이에 꽂혀 있네. ... 저 꼴 나는 거야 이놈아.


 아버지와의 골은 더욱 깊어 졌다. 누구의 인생인가? 나의 인생인가 아버지의 인생인가? 아니면 인생이란 존재는 없는 것인가? 나는 아버지의 인생을 위해 살아가야 되는 것인가? 아니면 나의 인생을 위해 살아가야 되는 것인가? 오발탄이 되기가 무서워 도전하지 않는다면 이 세상에 명중탄은 없을 것이다. 그 명중탄이 되기 위해서 이 모든 인간들은 오발탄이 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쉽지 않은 현실이다. 기존의 인습이 그만큼 무서운 것이기 때문이다. 기존의 해체, 기존의 타파, 그럼으로 인한 새로운 뿌리, 새로운 도전, 새로운 시대. 해방과 자유. 그것을 찾기 위한 도전과 전투, 성공과 실패, 환호와 야유, 삶과 죽음, 역사의 인식. 그래서 나는 해방을 찾아 떠난다. 아버지는 열띤 연설을 하시고는 방문을 쾅쾅 닫어버리고 나가버리셨다. 나는 냉정해져야 된다. 을 버려야 된다. 해방과 자유를 위해서는 말이다. 꽉 막힘을 뚫자. 꽉 막힘을 뚫자. 저어기 보이는 꽉 막힘을 뚫자. 냉정을 되찾아야 된다. 그러지 않으면 해방을 이룰 수 없을 것이다. 태극기를 휘날릴 수 없을 것이다. 온 동네 사람들이 뛰쳐나와 태극기를 휘날릴 수 없을 것이다. 끔찍한 상상이 아닐 수 없다.

 

 계몽소설이 2/3를 치닫고 있었다. 잠시 머리를 식힐 겸, 축구공을 가지고 운동장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어두운 밤이었기에 동네에는 사람도 없었고, 툭툭 되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공차는 소리 말이다. 그렇게 운동장에 들어선 뒤, 나는 타깃을 찾고 있었다. 그 타깃이 뭐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눈에 들어오는 건 커다란 벽밖에 보이지 않았기에 그놈을 조준하기 시작했다. 발목을 이리저리 스트레칭한 다음, 날카로운 발목 스냅으로 바나나킥을 날려버리니 쌩쌩 거리는 소리와 함께 포물선을 그리며 벽을 내리치는데 그 모습이 마치 천둥을 일으켜 발생된 밤 파도가 넘실넘실되는 것 같았다. 밤 파도의 밀물에 의해 공은 다시 내 앞으로 되돌아왔다. 여간 쉽지 않은 놈이다. 다시 한 번 발목을 풀었다. 이번에는 바나나킥이 아니고 발등으로 강하게 때릴 것인데, 이번에는 충격이 상당할 듯하다. 그렇게 발등으로 차는 순간 나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버렸다. 운동장 바닥을 차버린 것이다. 여간 쉽지 않은 놈이다. 기존의 벽을 허물어버린다는 것이 이토록 어려울 줄은 몰랐다. 쉽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말이다. 파스를 가져오지 않았다. 스프레이 파스를 가져왔어야 하는데 미처 준비를 하지 못 했다. 이렇게 준비성이 없어서 무슨 꽉 막힘을 뚫어버린단 말인가? 그 노인이 그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무턱대고 도전하지 말라는 말. 철저한 준비와 마음가짐이 있어야 된다는 말. 나는 방심한 것이다. 다시 한 번 되뇌었다. 꽉 막힘을 뚫자. 꽉 막힘을 뚫자. 저어기 보이는 꽉 막힘을 뚫자.


 일단 집으로 다시 돌아가야겠다. 파스도 가지고 갈 겸해서 내가 가지고 오지 않은 게 하나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절뚝절뚝 거리며 집에 도착한 뒤에, 스프레이 파스를 거하게 뿌린 다음 주무시고 계시는 아버지를 들쳐 엎고 다시 운동장으로 향했다. 아버지는 쥐도 새도 모른 채 내 등에서 주무시고 계셨다. 아버지, 저를 너무 원망하지 마세요. 꽉 막힘을 뚫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습니다. 제 자신이 하지 않으면 저는 여기서 안주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그렇게 나는 아버지를 등에서 내린 뒤, 벽에다 꽉 묶어 두었다. 그리곤 제자리로 돌아가서 괜찮아진 발목을 다시 한 번 스트레칭을 한 다음,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명중탄을 날려버렸다. 이번엔 제대로 발목 스냅에 맞았는지 쥐도 새도 없이 날아가더니 아버지를 가격해버렸다.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명중탄이다. 아버지, 아버지 좋아하시는 명중탄이에요. 저를 원망하시는 거 아니시죠? 아버지는 주저앉지도 못하셨다. 나는 다시 한 번 제자리로 돌아와 UFO슛을 준비했다. 이번엔 조금 더 스냅을 줘서 회전을 강하게 감을 것이기에, 로베르토 카를로스가 한 것처럼 타깃을 멍하게 만들 것이다. 왠지 마지막이 될 것 같았다. 내가 좋아하는 축구화도 신었기 때문에 더욱 자신감이 생긴 것이다. 나는 휘갈겼다. UFO슛을 날려 버렸다. 타깃을 향해, 꽉 막힘을 뚫어버리기 위해서 나는 전투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아버지는 주저 앉아버렸다. 벽도 함께 무너져 내렸기 때문이다.

     

 따르릉 따르릉 소리가 들린다. 내가 어제 맞춰 놓은 알람 소리다. 어제 일회용 커피 믹스 때문인지 아니면 회오리 때문인지 손가락을 쪽쪽 빨아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체력 회복이 100%되진 않은 것 같다. 나는 아침을 먹어야겠다. 갑숙 씨의 방문을 열어보니 아직 집에 들어오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럼 운동장에서 밤을 샌 것인가? 냉정을 되찾자. 을 내려놓자. 국 한 그릇을 거하게 담고 밥 두 주걱을 국에 풍덩 담으니 이보다 맛있는 식사는 없는 것 같았다. 나는 체력 회복을 한다. 남은 전투를 위해서 말이다. 아버지가 거하게 내뱉은 변기를 마저 뚫어야하기 때문이다. 밥맛이 일품이다. 깨끗하게 한 그릇 비워내고는 커피 물이 끓을 때까지 팔 열 번, 다리 열 번, 목 열 번, 그렇게 휘둘렀다. 허공을 향해. 커피 물이 자글자글 끓어 오른다. 오늘도 회오리를 만들어봐야겠다. 일회용 커피 믹스를 날카로운 스냅으로 뜯은 뒤, 뜨거운 물에 부으니 너무 맛있는 커피가 되어 버렸다. 그리곤 손가락 하나를 날카롭게 쏟은 다음, 휘휘 휘둘러 회오리를 만들고는 쑥쑥 입으로 넣어버렸다. 뜨겁긴 했다. 그러나 내 몸에는 냉정이 들어있었다. 냉정에는 어떤 것도 가차 없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나는 다시 시작한다.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수갑을 꺼내 변기 머리 위에 놓아두었다. 오늘 내로 끝내야한다. 끝내지 않으면 기존의 인습이 다시 치고 들어올 것이기 때문이다. 변기를 한 번, 두 번, 세 번을 콱콱 쥐어박고 물 한 바가지 때려 부으니 조금 진전이 있어 보인다. 다시 한 번 네 번, 다섯 번, 여섯 번을 흔들었더니 그때서야 꽉 막혔던 변기가 쑥쑥 내려가 버린 것이다. 그대로 나는 주저 않았다. 진이 다 빠진 것이다. 이제는 타깃이 없었으면 한다. 이대로 인습은 끝난 것이다. 내가 그토록 바랐던 것이다.

 

 나는 다시 일어나서 운동장으로 향했다.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동네 늙은 노인들이 한데 모여 벽을 쌓고 있었다. 내가 얼마나 힘들게 벽을 무너뜨렸는데, 그들은 다시 벽을 쌓고 있었던 것이다. 갑숙 씨도 동참하고 있었다. 그러나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그 옆에서 무릎을 사용하지 못 하는 아버지가 무릎을 꿇은 채 동네 늙은 노인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벽을 쌓아라는 지시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아버지는 나에게 항복하지 않았던 것이다. 앞에서 항복한 것처럼 연기를 한 다음, 내가 집으로 돌아가자 또다시 본모습을 드러낸 것이고, 그렇게 다시 기존의 인습으로 바꾸려는 시도를 한 것이었다.


 나는 달려갔다. 이렇게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얼마나 공을 들여서 기존의 인습을 무너뜨렸는데, 이렇게 다시 치고 들어오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는 주머니에 숨겨두었던 수갑을 꺼내 아버지의 두 손을 꽉꽉 채워버리고 입을 막아버렸다. 아버지의 지시가 없자 그 늙은 노인들은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왜냐면 그들은 순응적인 인물이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 스스로 행동으로 옮기지 않고, 누가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시키면 그때서야 행동으로 옮기는 순한 양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우리 세대처럼 자발적으로 도전하는 인물이 아니란 걸 알고 있었단 말이다. 나는 냉정하다. 을 내려놓은 인물이다. 나는 다시 벽을 허물었다. 다시는 벽을 쌓을 순 없을 것이다. 절대로 치고 들어올 순 없을 것이다.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곤 온 몸을 빠득빠득 씻었다. 인습과의 전투에서 때 묻은 것을 벗겨내기 위해서였다. 벗겨내 보니 구정물이 뚝뚝 흘러내리는 것이었다. , 드디어 내가 해냈구나. 꽉 막힌 것을 뚫으려고 얼마나 큰 고난이 있었는지 모른다. 온 몸을 다 닦고 나는 밥을 거하게 먹었다. 책상에 앉아 계몽소설을 마무리하려고 앉았더니, 휴대폰이 쩌렁쩌렁 울리기 시작했다. 발신자의 이름을 보니 인습 타파라고 적혀있는 것이었다. 지금 아버지는 갑숙 씨와 함께 병원에 가고 있을 것이다. 잠시 까먹고 있었다. 전화를 받을까 말까 고민하던 차에, 그래도 전화를 받아야 할 것 같아 통화버튼을 누르니, 아버지는 미안하다고만 연신 내뱉고 있었고 반대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듣고만 있을 뿐이었다. 그래 아들아, 뭐 너와 틀어진 골을 다시 합치기는 여간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너를 낳아준 네 애비 아니냐,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느냐. 이제부터 이 애비가 다시는 동네 노인들을 시켜서 허물어진 벽을 쌓는 일은 없을 것이니, 일단 이 수갑 좀 어떻게 풀어주면 안되겠느냐? 나는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어버렸다. 수갑을 풀어줄 일은 앞으로 없을 것이다. 꽁꽁 묶어둘 심산이기 때문이다. 나는 냉정하다. ()을 버린 지 오래다.


 그리곤 재빨리 마지막 문장의 마침표를 찍어 버렸다.



이름: 현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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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s 낭중지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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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에서 문학도에 길을 걷고 있는 현영민이라고 합니다.


저의 실력은 비록 부족하지만, 낭중지추의 송곳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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