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을 향하다

by 최유지 posted Jan 02,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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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을 향하다


최유지




 짙은 어둠이 내린 하늘은 스산했다.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작은 방 안에 민선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 그지 같은 년! 어디 있어? 문 밖에선 자신을 찾는 듯 한 목소리가 들렸다. 쿵쿵, 거리는 발소리가 코앞까지 느껴지고, 남자의 욕설은 더 심해져만 갔다. 민선은 두 손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턱 끝까지 차오른 두려움에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제발, 제발. 수십 번 되네이는 말엔 간절함이 가득했다.


 “여기 있었네, 이년.”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벌컥 문이 열렸다. 슬프게도, 민선의 간절한 바램은 통하지 않았다. 술에 취한 듯 보이는 남자가 비틀거리며, 민선을 향해 다가왔다. 민선은 한껏 몸을 움츠렸다. 아, 안돼. 머릿속엔 저항의 빛이 스쳤다. 머리 위로 그림자가 졌다. 고개를 들기도 전에 남자는 힘껏 민선의 몸을 밀어서 넘어트렸다. 힘없는 몸이 그대로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 쳤다.


 “아악!”


 민선은 비명을 질렀다. 두려움에 덜덜 떨리는 몸이 좀처럼 말을 듣지 않았다. 남자는 민선의 위로 올라타며 두 손을 결박했다. 술에 취했다고 보기 힘들 정도의 악력이었다. 민선은 몸을 버둥거렸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애를 썼다. 악! 소리를 지르는 사이 남자의 날이 선 손이 날아와 볼을 내리쳤다. 짝, 소리와 함께 고개가 돌아가며 눈앞에 번쩍 불이 일었다. 짝, 짝, 남자는 계속해서 민선의 양 볼을 내리쳤다. 가엽게 버둥되던 몸이 곧 힘없이 늘어졌다. 그지 같은 년, 욕을 뱉은 남자가 손을 내려 자신의 바지벨트를 풀었다.


“아아,”


 제발. 민선은 빌고 또 빌었다. 축 늘어진 몸엔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다. 겨우 참고 있던 울음이 터져 나왔다. 눈앞에 그림자가 지고, 머지않아 민선의 바지가 손쉽게 내려갔다.


 “제, 제발. 하지 마요.”


 손끝이 벌벌 떨렸다. 민선의 셔츠가 거칠게 풀어헤쳐지며, 단추가 사방으로 튀었다. 남자에게선 지독한 술 냄새가 났다. 비틀거리는 몸이 민선의 숨통을 조여왔다. 두 개의 인영이 겹쳐지고, 민선의 몸이 크게 경련했다.


 “아빠, 제발.”


 소름이 끼쳤다. 민선의 손톱이 장판을 긁으며 듣기 싫은 소음을 냈다. 피 비린내가 코끝을 자극했다. 민선에게서 새된 비명이 새어나왔다. 툭, 떨어진 눈물이 바닥을 적셨다.


 끔찍한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나는 이 지옥을 벗어날 수 있을까?







 모든 게 엉망이었다.


 학교에서 민선은 특이한 문제아로 통했다. 매일, 밥 먹듯이 빠지는 학교와 불량한 수업태도로 인해, 선생님들 모두 포기한 학생 중에 한명이었다. 이상하게도, 민선은 참으로 알 수 없는 행동들을 많이 했는데, 그게 민선을 특이한 문제아로 만들었다.


 민선은 그냥 이상 했다. 수업을 하고 있는 중에 갑자기 일어나 교실 문을 박차고 나가질 않나, 수업시간에 칼로 책상을 벅벅 긁으며 혼자 중얼거리질 않나, 남자라도 곁에 오는 날엔 화들짝 놀라며 책상 밑으로 숨지 않나. 딱히 큰 사고를 치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니라고 할 수도 없는 행동들을 많이 했다.


 민선이 학교에 나올 때면, 선생님 뿐 만 아니라 아이들 모두 못마땅한 시선을 보냈다. 요즘 들어 민선이 학교에 나와 하는 일이라곤 엎드려 자는 일 뿐이었지만, 그런 모습까지도 아이들 눈엔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도대체, 저럴 거면 왜 학교에 나오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오늘도 역시 아침부터 쭉 엎드려 잠을 자고 있는 민선을 향해, 싸늘한 시선들이 쏟아졌다. 쟤는 왜 저런데? 몰라, 할 일이 없나보지. 아이들의 수군거림은 갈수록 커져만 갔다.


 불행 중 다행이었던 건, 민선도 학교에서 하는 일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건 바로, 급식을 먹는 것. 학교에 자주 나오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올 때마다 민선은 빠지지 않고 급식을 먹었다. 딱히, 밥이 맛있거나 한건 아닌데, 그래도 점심시간이 되면 꼭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꼬박꼬박 밥을 챙겨먹고는 했다. 처음으로 본 정상적인 모습에 아이들은 급식충이라는 별명을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야, 밥 먹자.”


 옆 반에 있던 선아가 찾아왔는데도, 민선은 묵묵부답이었다. 선아는 항상 민선과 같이 밥을 먹는 친구였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쭉 같이 나왔기에 민선을 가장 잘 아는 친구이기도 했다. 선아는 학교에 민선이 나오는 날이면, 이렇게 빠지지 않고 민선을 챙겼다.


 “야, 일어나봐.”


 오늘따라 민선에게서 반응이 없었다. 이럴 애가 아닌데? 선아는 민선을 계속해서 툭툭, 쳤다. 힘을 주어 세게 몸을 흔들어도, 민선은 죽은 듯이 잠잠했다. 얘가 왜이래 진짜. 선아의 얼굴엔 걱정이 가득이었다.


 “야, 놔둬.”


 다른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교실문을 벌컥 연 아리가 급히 선아의 곁으로 다가왔다. 아리는 선아의 행동을 저지하며, 인상을 잔뜩 구겼다.


 “쟤 아침부터 저 상태야.”


 아리가 손을 휘휘 저었다.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선아는 아, 하는 탄성을 냈다. 어떻게 해야 하지? 고민이 가득이었다. 잠시 그런 선아를 바라보던 아리가 급히 선아의 손을 붙잡았다.


 “오늘은 우리끼리 먹자.”


 아리의 얼굴이 맑았다. 사실, 아리는 민선이 맘에 들지 않았다. 게으르고, 제 멋대로에 말도 안듣는 문제아. 그런 아이와 왜 선아가 친하게 지내는지 알 수가 없었다. 기대가 가득한 눈빛이 연신 선아를 향했다. 아아, 진짜. 선아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민선에게선 여전히 아무런 기척도 보이질 않았다. 둘은 교실 밖으로 향했다. 머지않아, 교실 문이 닫혔다.


 교실은 금세 조용해졌다. 침묵만이 가득한 교실에서 민선의 한숨 소리가 울려 퍼졌다. 잠시 머뭇거리던 민선이 곁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저절로, 한숨이 샜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울렸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창문에 힐끔 비친 얼굴이 꽤나 흉측했다. 바보 같아 진짜. 상처가 가득한 얼굴을 매만지던 민선이 결국 또 다시 책상 위로 쓰려졌다.



난 왜,

이 지옥 속에 갇혀버린 걸까?







 처음부터 이렇게 엉망은 아니었다.


 하교 후, 민선은 곧바로 엄마를 찾아갔다. 엄마는 학교 근처에 있는 김밥 집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바쁜 와중에도 민선이 찾아갈 때마다 항상 반겨주었다. 한 번도 겪지 못했던 따뜻함에 민선은 매일 학교가 끝나면 엄마를 찾았다. 일이 방해된다는 걸 알아도,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야 조금이나마 숨을 쉴 수가 있었으니까.


 딸랑,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어서 오세요, 엄마의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엄마! 큰 소리로 외치자마자 엄마의 고개가 퍼뜩 들렸다. 순식간에 마주친 눈엔 경악이 가득했다.


 “어, 얼굴이 이게 뭐야?”


 엄마는 재빨리 다가와 민선의 얼굴을 부여잡았다. 입술이며, 볼이며, 눈두덩이며 온 얼굴에 생채기가 가득했다.


 “또 애들이랑 싸운 거야?”


 엄마의 목소리가 잘게 떨렸다. 민선은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슬며시 웃어보였다. 아이구, 진짜 내가 못살아. 병원 가봐야 하는 거 아니야? 한숨 같은 말을 뱉은 엄마가 익숙하게 연고를 꺼내들었다. 엄마의 얼굴엔 걱정이 가득했다.


 “엄마아….


 민선은 급히 뒤에서 엄마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연고를 든 엄마의 손이 공중에 그대로 떠있었다. 얘가 징그럽게 왜이래, 엄마는 툴툴 거렸지만 민선의 행동을 말리진 않았다.


 “나 엄마랑 같이 살면 안돼?”


 엄마는 잠시 멈칫거렸다. 무거운 정적이 흐르고, 한숨과도 같은 숨이 트였다.


 “안된다는 거 알잖아.”


 엄마의 얼굴에 어둠이 스쳤다. 사실, 엄마는 아빠와 이혼한 뒤, 재혼을 한 상태였다. 매일 술에 취해 사는 아빠를 견디지 못해 결국 엄마는 도망을 쳤다. 어떻게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다닌 공장에서 지금의 새 아빠를 만났다. 새 아빠는 아빠와 달리 다정했고, 따뜻 했다.처음으로 엄마에게 사랑을 주었고, 가난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았다.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따뜻함에 엄마는 결국 또 다시 결혼을 결심했다.


 새 아빠에게는 2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엄마를 잘 따랐다. 어렸을 때 친엄마를 잃은 탓인지, 엄마에 대한 애착이 큰 것 같았다. 겨우 얻은 작은 빌라엔 4명의 식구가 바글되며 살았다. 한명을 빼면 모를 까, 한명을 더하는 건 집안 형편에 꽤나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같이 살고 싶어도 어쩔 수가 없었다.


 엄마에게 갈 수 없다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존재가 엄마에게 걸림돌이 된 다는 것도, 엄마의 행복을 망칠 수 있다는 것도 잘 알았다. 그래서, 민선은 욕심을 내지 않으려 했다. 지옥에 있는 건, 그저 자신만으로도 충분했다. 겨우 행복을 알게 된 엄마까지 무너지는걸 보고 싶진 않았다.


 “나 가야겠다.”


 그래서, 오늘도 말하지 못했다. 잠시 망설이던 민선이 힘겹게 엄마의 품을 벗어났다.


 “벌써 가려고?”


 엄마의 눈엔 섭섭함이 가득했다. 연고라도 바르고 가지, 목소리가 잘게 떨렸다. 민선은 고개를 절래 절래 저으며, 문으로 향했다.


 “또 올게.”


 휘휘, 흔드는 손을 마지막으로 민선은 밖으로 향했다. 문이 열리고 곧장 문이 닫혔다. 엄마와 있었던 곳과 달리, 밖은 몹시도 춥고 서늘했다.



 지옥에 있는 날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어디로 가야하는 걸까?


 민선은 거리를 방황했다. 끔찍한 집과 엄마가 아니면, 자신에겐 갈 곳이 없었다. 길을 걷는 내내, 사람들의 시선과 수군거림이 쏟아졌다. 퉁퉁 부은 얼굴과 두 뺨, 그리고 시퍼런 멍이 가득한 몸까지. 사람들의 시선을 받기엔 충분했다. 싸늘하게 쏟아지는 시선에 민선은 결국 고개를 숙였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갈 곳이 없었다. 아빠가 있는 끔찍한 집에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마음 같아선 엄마에게 달려가고 싶었지만, 그 집 형편을 알기에 금세 마음을 접었다. 갈수록 민선의 걸음이 느려졌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먹은 탓에 몸엔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어쩔 방법이 없었다. 주머니를 탈탈 털어 봐도, 있는 돈이라곤 10원짜리 몇 개뿐이었다. 배는 너무 고팠고, 잠은 자꾸만 쏟아졌다. 그래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다.


 더러운 오물들이 가득한 골목길 끝에 남자 애들이 모여 있었다. 담배를 피는 건지, 뿌연 연기가 골목에 가득했다. 빨강, 노랑, 파랑 신기하게도 남자들의 머리색이 모두 제 각각이었다. 민선은 망설였다. 남자라는 존재는 몹시도 무서웠지만, 살기 위해선 방법이 없었다. 한참의 고민 끝에 민선은 결국 그 무리로 천천히 다가갔다.


 “나 좀 재워줘.”


 뜬금없지만, 할 말은 그것 밖에 없었다. 지칠 대로 지친 민선에게는 쉴 곳이 필요했다. 남자들은 금세 고개를 퍼뜩 들었다. 잠시 위아래로 민선을 훑어보더니 오오, 하는 탄성을 냈다. 서로 눈짓이 오고 간지 얼마 되지 않아, 그 중 빨간 머리를 한 한명의 남학생이 민선에게로 다가왔다.


 “그래, 내가 재워줄게.”


 코앞까지 다가온 얼굴에서 푹, 담배냄새가 풍겼다. 남자는 손을 내밀며 말했다. 투박한 손에서도 왠지 모를 오물 냄새가 나는 것만 같았다. 괜찮겠지? 머릿속엔 답을 알 수 없는 질문이 떠다녔다. 민선은 조심스레 그 손을 부여잡았다. 코앞까지 다가온 남자들의 눈이 짐승처럼 반짝였다.




 지옥을 벗어나려 했던

 나는,

 오히려 지옥을 향하고 있었다.








 왜 나만 이런 걸까?


 낡은 여관방에선 곰팡이 냄새가 났다. 바닥엔 몇 십 개의 술병이 놔뒹굴었다. 천장이 빙빙 돌고, 숨을 쉴 때마다 지독한 술 냄새가 났다. 민선의 몸이 바닥으로 힘없이 쓰러졌다. 아아, 어지러워. 비틀거리는 몸이 내 맘대로 움직이질 않았다. 귓가로 낄낄되는 남자들의 목소리가 울렸다. 코 앞 까지 다가온 핸드폰 카메라가 민선의 몸을 쭉 훑어내렸다. 남자 아이들의 눈빛이 번쩍였다.


 아,


 민선은 짧게 탄성을 냈다. 핑핑 도는 머리가 위험을 감지했지만, 좀처럼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불쑥, 튀어나온 여러 개의 손들이 쉴 새 없이 민선의 몸을 더듬었다. 코끝엔 담배향이 스치고, 온 몸엔 소름이 돋았다. 금방이라도 토할 듯, 속이 울렁거렸다.


 “야 잘 좀 찍어봐.”


 빨간 머리의 남자아이가 짜증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가슴팍까지 다가온 카메라가 금세 민선의 맨살을 비추었다. 낄낄 거리는 목소리가 귓가를 울리고, 수없이 기절했다가 깨어나는 것을 반복했다. 민선은 결국 정신을 잃었다.



 지옥에서 죽어도,

 난 또 지옥으로 가는 걸까?









 바보 같게도, 학교를 가야한다고 생각했다.


 민선이 깨어난 건, 정확히 2틀이 지난 후였다. 몸을 제대로 일으킬 수 없을 정도로, 온 몸 곳곳엔 끔찍한 상처들로 가득했다. 토할 것 같은 속을 부여잡고 겨우 몸을 일으켰다. 학교로 가야해,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그것뿐이었다.


 분명, 도움을 청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놈들의 얼굴, 말투, 교복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다 기억을 하고 있었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했지만, 그 남자애들을 잡을 수만 있다면 어떻게 되든 상관이 없었다. 민선은 한껏 구겨진 교복을 주워 입으며, 그 남자 무리들과 끔찍한 아빠의 얼굴을 계속해서 떠올리고 또 떠올렸다.


 하지만, 머지않아 그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 민선아. 할 말이 뭐니?”


 교무실에 도착했을 때, 선생님들의 시선이 좋지 않은 걸 느꼈다. 무작정 상담을 하겠다는 민선을 향해, 담임선생님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잠시 주변을 둘러보던 선생님이 구석에 있던 의자를 끌고 와서 민선을 향해 손짓했다.


 “여기 앉으렴.”

 “저 좀 도와주세요!”


 민선은 앉으면서 소리쳤다. 선생님은 화들짝 몸을 떨었다. 꽤나 큰 목소리에 주변의 시선이 다 민선을 향했다. 잠시 눈치를 보던 선생님이 흠흠 하고 헛기침을 하며, 작은 목소리로 수근거렸다.


 “그래, 다 알아 선생님은,”


 무엇을 아는 건지, 알 수 없었으나 선생님은 그렇게 말했다. 문뜩 바라본 얼굴엔 귀찮음이 가득했다. 이 상황을 빨리 끝내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였다. 민선은 크게 심호흡을 한 후에 급히 다시 입을 열었다.


 “제가 끔찍한 일을 당했어요, 그래서.”

 “민선아.”


 선생님은 급히 말을 끊었다. 코앞에서 마주친 시선이 꽤나 차가웠다.


 “일단 부모님 오시라고 해, 응?”


 아, 하는 탄성이 샜다. 민선은 울컥하는 마음을 겨우 참아 넘겼다.


 “전 부모님 없어요.”

 “아버지 있잖아, 이러지 말고 전화를 드리자.”


 선생님의 말은 그것뿐이었다. 입술을 달싹이던 민선이 주먹을 꽉 쥐었다. 그때서야 모든 걸 깨달았다. 선생님은 절대로 민선을 도와줄 수도, 도와주지도 않을 것이라는 걸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민선은 벌떡 몸을 일으켰다. 금방이라도, 울음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가볼게요.”


 급히 교무실 밖으로 향했다. 겨우 참았던 울음이 쏟아졌다. 밖으로 달려가는 내내, 민선을 붙잡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무리 울고, 불고, 소리를 쳐도

 그 소리를 들어주는 사람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었다.







 경찰서는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 그러니까. 네 말은 아버지가 널 성폭행했다는 거니?”


 경찰서도,


 “그리고, 또 남학생들이 널 성폭행 했고?”


 …크게 다르진 않았다.


 민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경찰은 잠시 한숨을 내쉬더니, 급히 주변을 살폈다. 몇 명의 경찰관들이 서로 눈치를 보며 우물쭈물 되기 바빴다. 민선의 얘기를 듣는 대로, 타자를 치던 경찰관이 종이를 뽑아 어딘가로 팩스를 전송했다. 얼마 되지 않아, 전화가 울리고 한 경찰이 재빠른 움직임으로 그 전화를 받았다. 그의 목소리엔 조심스러움이 가득했다. 여보세요-. 아 네, 네. 사무적으로 대답만 하던 경찰관이 전화를 내리고는 다른 경찰관을 향해 손을 휘휘 저었다.


 “잠시 일로 올래?”


 다른 경찰관이 급히 민선을 구석에 있던 작은 방으로 데리고 갔다. 걸어가는 내내, 뒤에선 아 얘가 성폭행을 당했다네요, 어쩌죠? 하는 심각한 통화 소리가 들렸다. 끼익, 방문이 열리고, 경찰관은 민선을 구석에 있는 소파로 이끌었다.


 “여기서 잠시만 기다릴래?”


 민선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경찰관은 한껏 굳은 입 꼬리를 당겨 작게 웃어보였다. 편하게 대하려 애쓰고 있는 행동이 무척이나 어색해보였다. 쾅, 소리와 함께 문이 닫히고, 정적이 맴돌았다. 여태까지 참고 있던 숨이 터져 나왔다. 나 잘한 걸까? 모든 게 달라질 수 있는 걸까? 머릿속엔 답을 알 수 없는 물음들이 떠다녔다. 민선은 무릎을 끌어 모으며, 그 속에 얼굴을 파묻었다. 눈앞에 어둠이 내리고, 머지않아 스르르 잠에 빠져들었다.


 “그럼 그 학생들은 어떻게 만났니?”


 잠에서 깨어나면, 분명 모든 게 달라져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언제부터 그랬어? 몇 살 때부터 계속 관계를 가진 거니?”


 하지만,


 “시간은 기억나니? 그 사람들이 네 어디를 만졌어?”


 이상하게도,


 “몇 명의 학생들이랑 관계를 한거니?”


 달라진 건 하나도 없었다.


 맞은편에 앉은 형사가 쉴 새 없이 질문을 쏟아냈다. 민선이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하면, 답을 들을 때 까지 계속해서 똑같은 질문을 반복했고, 도무지 의중을 알 수 없는 물음들을 이어갔다. 시간이 갈수록, 끔찍한 과거가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금방이라도, 울음이 쏟아질 것 같았다. 고작, 몇 분 만에 민선의 어깨는 작아졌고, 고개는 바닥을 향했다.


 “저, 저는.”


 이젠 제발, 제발. 그만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마디를 뱉을 때마다 그때 기억이 떠올라서 숨통이 턱턱 막혀왔다. 등에선 식은땀이 흘렀다. 민선의 몸이 심각할 정도로 덜덜 떨리는데도, 형사는 도통 그만할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새하얀 흰 종이에 검은 글씨가 점점 가득 채워져 나갔다. 머리가 핑 돌고, 정말로 듣기 싫었던 그 말을 들었을 때,


 “네가 그런 행동을 하도록 유혹을 한건 아냐?”


 민선은 결국 정신을 잃었다.




  왜 사람들은

  내 얘기를 듣지 않고,

  스스로 판단해버리는 걸까?







 민선이 눈을 떴을 땐 병원이었다. 잠시 주변을 살펴보던 민선이 급히 몸을 일으켰다. 여길 나가야해-.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그것뿐이었다. 얇은 손목에 꽂혀있는 링거를 빼고, 곧바로 서랍을 뒤쳐 펜을 찾아냈다. 병실 밖에 사람이 없다는 걸 확인한 뒤에 절뚝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급히 옥상으로 향했다.


 옥상은 조용했다. 민선은 그게 참 다행이라 생각했다. 녹이 슨 철문을 열고, 차가운 시멘트 바닥 위로 걸음을 옮겼다. 거세게 부는 바람이 몸을 휘청이게 만들었다.


 민선은 울컥하는 마음을 참으며, 몸 위에 꾹꾹 펜으로 여태까지의 억울함을 눌러썼다. 아버지를 잡아주세요, 그 남자애들을 잡아주세요, 줄줄이 써내려가는 내용은 그 것 뿐이었다.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민선은 옥상난간에 올라섰다. 눈부신 햇살이 시야를 어둡게 만들었다. 다리가 휘청이고, 머지않아 민선의 몸이 하늘로 높이 떠올랐다. 꺄악! 사람들의 비명이 울려 퍼지고, 붉은 것들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않을까?






 세상은 금세 시끄러워졌다. 「성폭행 당한 여고생의 끔찍한 자살시도.」라는 제목으로 수없이 많은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민선을 향해 동정의 눈길을 보냈으며 생각 이상의 관심을 쏟아냈다. 방송국은 민선의 이야기를 취재하기 위해 애를 썼고, 어떻게든 정보를 하나 더 얻기 위해 사방을 뛰어다녔다.


 민선이 몸에 새긴 글씨 덕에 성폭행을 한 남학생들을 찾는 건 쉬었지만, 그 아이들의 부모는 그 사실에 가만히 있질 않았다. 그 여자애가 먼저 와서 꼬리를 쳤다잖아! 그 상황에 안 넘어가는 남자가 어디 있어? 그 년 나오라고 해! 난리를 치는 부모덕에 경찰서는 금세 아수라장이 되었다. 자주 비명소리를 들었다는 이웃 사람들의 신고로 민선의 아빠는 겨우 형을 선고 받았지만, 남자아이들은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벌금에 그치고 말았다.


 시끄러웠던 세상은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해졌고, 민선을 향한 관심도 금세 식어버렸다.




 빨리 달아오른 만큼,

 금방 식어버렸다.

 사람들의 관심은 언제나 그랬다.

 






 민선이 눈을 뜬 건, 그날로부터 꼬박 세 달이 지난 후였다. 사람들이 민선을 빨리 발견한 덕에 민선은 기적적으로 살아날 수 있었다. 끔뻑끔뻑 천장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민선을 본 엄마가 엉엉 울음을 쏟아냈다. 아이고, 우리 딸, 불쌍해서 어떡해. 엄마의 가슴은 무너져 내렸다.


 민선의 온 몸엔 붕대가 감겨있었다. 나 살아있구나, 꿈만 같은 일들에 울컥 눈물이 차올랐다. 곁엔 엄마가 있었다. 엄마의 얼굴은 전과 달리, 핼쑥해져 있었다. 잠시 주변을 둘러보던 민선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엄마, 악마는?”

 “…악마?”

 “악마는 어떻게 되었어?”


 뜬금없는 말이었다. 엄마는 이해를 하지 못했다. 곁에 서있던 경찰관은 금세 그 말을 이해했다.


 “악마는 잡혀갔어.”


 경찰은 말했다. 민선은 그제야 작게 웃어보였다. 경찰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민선이에게 아빠는 악마였던 걸까?







 지옥을 향하다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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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번에 쓴 글은 ‘지옥을 향하다’라는 글입니다. 아버지에게 학대와 성폭행을 당한 학생의 이야기를 적어보았습니다.


가장 다루기 힘들고, 민감한 주제가 아닐까 해서 적어보았던 글입니다. 이 글의 주인공인 민선이에게는 살고 있는 현실이 지옥이지않을까 하는 마음이 많이 들더라고요. 벗어나려 해도, 오히려 더 빠져드는 지옥 같은 현실을 표현해보고 싶었습니다.


몇 가지의 성폭행 사례를 찾아보다가, 마음 아픈 사실들이 많이 있어서 적기로 마음먹었던 글입니다. 대부분 피해자들은 주변사람들이 피해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많고, 알고 있어도 개입하지 않고 어떻게든 피하려고만 하더라고요. 또 경찰서나 선생님께 도움을 청하면, 피해자 탓으로 돌리거나, 민감한 얘기를 꺼내 상처를 더 깊게 만드는 경우도 많은 것 같더라고요. 그런 상황을 표현해보고 싶었습니다.


많이 어두운 주제이지만, 그만큼 꼭 다루어야하는 주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럼 지금까지 제 글을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Who's 최유지

?

유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