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급 돌아이

by 아현 posted Jan 12,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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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급 돌아이

트뤼플 A형인 나는 요즘 [또라이]라는 단어가 신경 쓰인다.

이 단어는 내가 여태껏 살면서 그저 그냥 지나가는 바람과도 같은 단어였다.

지나가는 바람은 신경 쓰지 않는다. 어느 누가 지나간 바람에 신경을 쓰겠는가.

하지만 그건 그 때, 지금은 그러지 않는다.

요즘은 그 단어가 내 머릿속에서 뱅뱅 춤을 추며 맴돈다.

또라이 라는 단어를 사람에 비유하자면 마치 또라이 라는 단어를 짝사랑하고 있는 느낌?

눈앞에 이 단어가 아른거리고 왠지 모르겠지만 자꾸 생각나 미쳐버릴 것 같은 느낌만 계속 들기 시작한다.

그래서 한 번 기억을 돌이켜 보려한다. 또라이 라는 단어가 내 눈 앞에 나타난 건 언제부터인지 알기위해서.

 

여느 때나 똑같은 날, 나는 그날따라 유독 더 공부가 더럽게 하기 싫어졌다. 그날뿐만이 아니었다.

고등학교에 올라온 이후로부터 계속 그랬다. 우리나라에 있는 학생들이 다 대학을 가려고 밤늦게까지 공부한다는 그런 현실이 싫어졌다.

고작 흰 종이 따위에 프린터기계로 인쇄되어있는 숫자에 매달리고 집착하는, 답답하고 변하지 않은 현실에 목매이다 보니 공부에 대한 싫증, 반감이 나날이 갈수록 커져만 갔다.

하지만 이렇게나 불만을 가지고 있어도 소심하고 속마음 따위 겉으로 표출하지 않는 나는 성적표를 보며 한숨 쉬는 어머니께 항상 같은 말만 번복했다.

더 노력해서 서울 안에 있는 대학교에 들어가도록 노력해볼게요!!”

거짓말쟁이, 그럴 생각도 없으면서.

애써 자신 있는 척, 힘이 나는 척하면서 짓는 가식적인 미소.

너무 가식적이어서 아침에 먹은 미역국이 구역질해서 나올 것만 같다.

반항심으로만 가득한 마음에 억지로라도 해야 한다며 외쳤다.

이 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해야지. 어떻게 해서든.’

공부가 하기 싫을 때마다 이 말을 얼마나 머릿속에 되새겼는지 모른다.

하기 싫다는 마음은 집어 치워버리고, 오로지 공부를 해야 한다는 생각만 했다.

공부를 싫어하면서 나는 왜 공부를 하는 것인가.

그 이유는 바로 돈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 바로 돈!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에 가서 좋은 성적을 유지하여야만 대기업 같은 곳에 들어가 돈도 편히 벌 수 있고, 취업난에 시달리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돈을 벌려고 치열하게 경쟁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사회는 점점 성적이 우수한 사람들만 뽑게 되고 이젠 사회도 사람들의 인식도 점점 모든지 우수한 사람만 뽑게 되는 그런 관념이 고정적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난 저 경쟁자들 사이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싶진 않다. 쓸데없는 먹이사슬에 끼어들어 피 터지는 싸움을 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곳에서 싸우라면 모를까.

 

학생이 공부를 해야지, 공부를!”

나는 어렸을 때부터 이런 말만 귀에 딱지가 않도록 듣고 밥 먹듯이 친형과 비교 당했다. 부모님은 형과 내가 인문계 고등학교에 갈 것을 원했고, 인문계고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아 좋은 대학에 가길 원했다. 그래서 난 내가 원하는 전장으로 나갈 수 없었다.

세상은 돈이다. 돈을 쉽게 벌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 공부를 해야 한다. 슬프지만 나한테 있어서는 이게 현실이고, 꿈이란 걸 가진 내 자신이 말 그대로 정말, 꿈이었다.

현실은 내 꿈을, 내 희망을 비참하게 짓밟아버렸다.

세상은 어린아이들이 생각하는 순수한 상상의 나라가 아니다, 내가 앉을 곳은 상상 속 세상의 의자가 아니라 몇 시간 앉으면 엉덩이가 저릴 것 같은 그런 딱딱한 나무 의자였다.

 

공부가 더럽게 하기 싫어지던 날이 있었다. 그 날은 끔찍한 시험기간 이었다. 그래서 만날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이랑 어울리지도 못하고, 놀러가지도 못하고, 혼자서 쓸쓸히 하교를 해야 했다.

평소라면 집에 들러 저녁밥을 먹고 가는데 얼른 수업을 끝내고 집에 와 쉬고 싶어 교복을 갈아입지 않은 채 바로 학원으로 향했다.

고등학교 1학년 기말고사를 앞두고 학원으로 가는 길의 풍경은 쓸쓸한 내 마음을 조금이나마 위로해준다.

어둑어둑해진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 사이로 조금씩 빛을 내고 있는 별들,

숭숭 부는 칼바람에 날아가는 앞머리를 꾹 붙잡고 가는 여학생들,

아파트 후문에서 매일 싱싱한 과일을 내놓고 손님을 기다리며 자그마한 tv를 시청하고 있는 과일 아저씨,

추운 겨울 날씨임에도 꾸준히 포장마차를 열어 손님을 맞이하는 떡볶이 아주머니.

평범하고 다를 게 없는 학원가는 길이지만 이런 변함없는 풍경이 왠지 모르게 내 마음을 따듯하게 해준다.

 

딸랑-

지긋지긋한 이 종소리. 어느 학원 유리문에나 다 달려있는 싸구려 쇠 종이 두부장수 트럭에 달려있는 종소리처럼 딸랑딸랑 소리를 내며 울려댄다.

안녕하세요.” 생기라곤 하나도 없는 낮은 목소리로 학원 로비에 의자에 앉아있는 선생님께 고개를 살짝 숙였다.

전화 중이었던 선생님은 내 인사에 고개만 까닥 끄덕이고는 교실로 들어가 있으라는 손짓을 하곤, 핸드폰으로 계속해서 상대방과 말을 주고받았다.

얼마 남지 않은 기말 고사 때문에 진도가 가장 느린 나만 보충을 나온 거라서 교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대신에 히터는 빵빵하게 틀어져 있었다.

돌덩이 같은 가방을 옆 자리에 내려놓고 지퍼를 열어 묵직한 교재를 꺼냈다.

 

몇 분 뒤, 밖에서 통화를 하던 선생님이 또각또각 구두 굽 소리를 내며 교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미안, 선생님이 많이 늦었지? 통화 좀 하느라.”

선생님은 간단히 사과를 하고 내 맞은편에 서둘러 앉았다. 의자를 뒤로 끌어내는 소리는 칠판을 손톱으로 긁어내리는 소리 못지않게 더럽게 시끄러웠다.

무슨 일이세요? 큰소리 내시면서 전화하시던데…….”

내 말에 선생님은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저었다.

어휴, 말도 마렴. 전에 나한테 딸 하나 있다고 했었지? 걔가 이제 고3학년이 다 되가는데 성적은 계속 하위권이어서 말이야, 공부 좀 하래니까 애가 하지도 않아. 그래서 내가 하도 답답해서 전화가 걸려온 김에 대학이야길 꺼냈지. 그랬더니 아주 그냥…….”

선생님은 답답한 듯 주먹을 꽉 쥐고 오랑우탄처럼 가슴을 쿵쿵 두드렸다.

어휴.”그리고는 이내 마음을 진정시킨 듯 꽉 쥐었던 주먹을 풀고 말을 이었다.

얘 꿈이 배우야, 배우. 전에 한번 연기실력을 봤거든? 연기실력이 아주 말도 못할 정도로 못해. 이름만 배우인 애들 있잖니, 별로 뜨지 않는 애들, 그런 애들만큼도 못해. 차라리 내가 더 잘하겠어. 어쩜 그렇게 못하는지. 배우란 건 재능이 있어야 연예계에서 뜨는 건데, 얘는 그딴 건 없고 반항심만 많아서……. 하다못해 공부라도 잘하면 대학이라도 갈 수 있을 텐데 말이야. 애가 왜 이러나 몰라, 공부 잘하는 유전자는 딸내미가 아니라 둘째인 아들한테만 다~ 갔나봐. 동생 반만 닮았으면 좋을 텐데 말이지.”

학원 선생님의 말에 손이 움찔했다.

학원 선생님은 학구열이 강하다. 가끔씩 말 하는 딸 얘기를 들어보면 알 수 있다.

이 선생은 딸에 대해 굉장히 부정적이다. 그에 비해 공부 잘하는 아들에게는 굉장히 호의적이다.

딸의 연기력을 항상 부정적으로 말하며 선천적으로 재능이 없거나 학업성적이 우수하지 않는 사람들을 비하한다.

짜증나서 못 들어먹겠다. 당장이라도 가방 챙겨들고 이 교실에서 나와 학원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내가 어떻게 그렇게 대담하게 행동을 하겠는가, 게다가 나는……. 이 의자에 앉아 밀린 공부를 해야 한다.

만약 내가 이 곳을 뛰쳐나오면 분명 집으로 전화가 갈 터이고 그러면 나는 이런 추운 날씨에 잘 하면 집에서 쫓겨날 지도 모른다.

귀를 틀어막고 싶어, 이 곳에서 나가고 싶어.

괴로워하며 눈을 질끈 감자, 선생님이 또 입을 열었다.

하다못해, 또라이라도 되 보던가,”

?”

아니, 또라이들은 미친 애들이잖아, 하지만 그런 것도 어떻게 보면 능력인 거잖니? 그런 미침을 본 받아서 공부에 전념하면 얼~마나 좋니.”

이래서 어렸을 때 인성교육을 제대로 해야 나중에 제대로 된 어른이 된다더니. 미친 사람들이 당신 보단 제대로 된 사람이겠다.

?.잠깐 또라이?

또라이,

또라이,

또라이…….

 

여기서 부터다. 내 눈 앞에서 또라이라는 단어가 아른거리던 때가.

소심하고 다른 사람 눈치보고 자신의 속마음을 잘 표현하지 않는 내 자신과는 전혀 반대인 나한테서는 찾아볼 수 없는 그런 특별한 단어, 또라이.

그래서인가 나는 또라이라는 단어를 갈구 했다. 또라이는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이 내키는 대로 미친 짓을 하고 다닌다.

속마음을 잘 표현 하며,

도가 지나칠 정도로 활발하며,

다른 사람의 눈치 따위는 보지 않는다.

그렇다, 또라이는 특별하다. 남의 눈치 안보고 실컷 날뛰어.

또라이라는 단어가 눈앞에 아른거리는 이유를 찾으려 과거를 회상하자 답이 보였다.

 

지금 나는 여느 때와 같이 학원에 가는 길이다. 기말고사는 끝났지만 이제 곧 고등학교 2학년이 되기 때문에 선행학습을 하러 학원으로 향했다.

머릿속에서는 또라이 단어가 아른 거리는 이유를 생각하며 몸으로는 학원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앞으로 몇 십 걸음만 더 걸어가면 도착할 예정인 학원. 또라이 단어를 생각해낸 이후로 나는 학원방향으로 가는 발길을 멈추었다. 그리고 입에서 가느다란 실 웃음을 자아내었다.

또라이처럼 미친 듯이 실실 웃어대니 지나가는 사람들은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히히 히히히. , 끄윽, , 히히히.”

미친 웃음을 멈추고 가만히 멈추어 있는 내 신발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더운 등굣길, 더운 하굣길,

추운 등굣길, 추운 하굣길,

1년 내내 공부만 하러 딱딱한 콘크리트 바닥을 밟은 회색운동화, 아무 무늬가 없어 굉장히 심플했던 내 신발의 앞부분은 어느 새 긁힌 자국으로 인해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생겼다.

이곳저곳에 생채기가 생겨 흉터가 남아버린 내 운동화.

이쯤이면 됐어. 이제 더 이상 아파하지 않아도 될 거야. 학원에서 오랫동안 공부한답시고 밤늦게까지 너와 같이 고생하지 않을 거야.

목적지를 학원에서 집으로 바꾸었다. 그리곤 몸을 돌려 학원을 등지며 건물 밖을 나왔다.

또라이가 되기로 결심한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학원이 있는 건물에서 나와 집으로 뛰어갔다.

무겁고 불안한 마음은 기쁨에 벅찬 마음이 큰 해일처럼 집어 삼켜버려 지금은 완전히 가벼운 마음, 하늘을 둥둥 날아갈 것만 같은 마음만이 내 정신을 지배했다.

마음이 내 정신을 지배한 것이 원인이었을까. 주체할 수 없는 두근거림에 적색으로 바뀐 신호등을 무시하고 무작정 앞으로 뛰어갔다.

- - -

자동차의 경적 소리가 시끄럽게 울렸다.

회색 승합차가 나를 향해 재빠르게 다가오더니 나를 저 높은 하늘로 띄워 보냈다.

눈을 감았다. 행복한 표정을 지은 채로.

그리고 그 뒤로 정신을 잃었다.

또라이가 되기로 결심한 나는 교통사고를 첫 발걸음으로 하여 또라이 신고식을 치렀다.

 

컴컴한 어둠 속. 나는 어둠 속에 서있다. 어둠 속인데도 불구하고, 이곳은 마치 불을 켜 놓은 것처럼 환하다.

여긴 어딜까.

아무도 없나 주변을 둘러보았다. 저 멀리 앞에서 형형색색의 체육복을 입은 학생들이 저 멀리서 빛나는 빛을 향해 뛰어간다.

가만히 어둠 속에서 서있는 나는 앞서 뛰는 학생들을 보며 나도 뛰어야 되는 것이라 생각하고 무작정 뛰기 시작했다.

뛰고, 뛰고 또 뛰어보았지만 그 학생들은 나보다 더 빨리 더 멀리 갈 뿐이고 그들은 점점 백색의 빛과 가까워지고 있었다.

한 번도 쉬지 않는 그들과 달리 금세 숨이 차 뜀박질을 멈추었다.

그러나 쉬는 것도 잠시였다.

나는 또 다시 달렸다. 그들을 따라 잡기 위해서 뛰었고 그들보다 더 빨리 빛이 있는 곳에 도달하려고 전속력으로 달렸다.

그렇게 나는 내 의지 하나만으로 그들을 따라잡았다. 마침내 그들과 같은 위치에서 달릴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내 위치가 이 곳이 아니라는 생각만 자꾸 들었다.

이 곳이 내 자리가 아닌 걸 깨달았음에도 억지로 달렸다.

내 자신을 속이고 계속 달렸다.

계속 해서 달리자 어느 새 내가 도착한 곳은 아주 밝은 빛이 나는, 이 어둠을 나갈 수 있는 빛 앞에 다다랐다.

이 곳까지 얼마나 전속력으로 뛰어왔는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다리를 움직이려 했지만 다리가…….움직이지 않는다.

남들은 저 빛을 통해서 이 곳을 나가기 시작하는 데 나는 걸음이 멈추어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다.

움직이려고 애써도 움직여지지 않는다. 왜지?

내 위치가 아닌데 억지로 나 자신을 속이고 온 것이 문제였던 걸까.

나는 눈앞에서 출구를 두고 유리조각처럼 조각조각 깨졌다.

그리고 그 위치에서 사라져버렸다.

 

.안 돼!!”

정신이 팍 들었다. 양 쪽 눈에선 눈물이 흘러내렸다. 갓 나온 눈물방울은 내 뺨을 타고 내려갔다.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으려 왼팔을 들려고 했지만 왼팔에는 링거 바늘이 꽂혀져 있어 왼팔의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했다.

왼팔에 링거가 꽂혀있다는 건 내가 지금 병원에 있단 소린데, 아 맞아, 나 교통사고 당했었지.

아이고~아이고~ 한이야…….”

어머니의 목소리이다. 난 다친 몸을 일으켜 침대에 앉았다.

양 옆으로 어머니와 아버지가 마주 앉아 계셨고, 대성통곡을 하시는 어머니 옆에는 형이 양팔에 팔짱을 끼고 날 쳐다보고 있었다.

누워있던 아들이 갑자기 깨어나 꽤 놀라셨는지 어머니의 눈은 놀란 토끼 눈처럼 동그래졌다.

어머니는 방금 막 깨어난 내 모습을 보고는 눈물을 흘리며 안아주기는커녕 등을 철썩 때렸다.

아이고, 이 미친놈아. 학원 짼 건 둘 째 치고, 어떻게 교통사고를 당해, 이놈아. 죽을 라고 작정했어?”

말은 다소 험악했지만 간만에 들은 어머니의 걱정 어린 한 마디였다.

아버지는 한숨을 쉬며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으셨다.

나는 지금 이 순간을 기회 삼아 내 결심을 가족들에게 말하기로 했다. 우리 가족은 넷 다 한 번에 모이는 시간이 별로 없다. 지금 이 순간에 눈치 없이 그런 말 하면 안 된다는 거 나도 잘 안다.

하지만, 지금 아니면 언제 또 내 진심을 말하겠나.

분명 부모님은 노발대발하실 거고, 형은 나를 한심하게 쳐다보겠지.

하지만 괜찮아. A급 또라이가 되기로 했으니까.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형, . 또라이가 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학원도 째고 무작정 차도에 뛰어들었어요. 더 이상 남들 눈치보고 소극적으로 살기 싫고, 좋은 대학 가고 돈 쉽게 벌려고 하기 싫어요.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거 하고 살면서 내 삶에 만족하고 사는 또라이가 되고 싶습니다. 저 제가 하고 싶은 거 하고 싶어요.”

막상 내 결심을 말하고 나니 속이 시원했지만 갑자기 부모님과 형의 후환이 두려워졌다.

그러나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예상외의 부모님의 행동에 안심하고 있을 때 갑자기 커다란 손이 내 오른쪽 뺨을 향해 날아왔다.

철썩-

어머니가 방금 내 등을 친 소리에 못지않게 찰진 소리가 들렸고, 이내 내 오른쪽 뺨이 화상 입은 것처럼 후끈후끈 해졌다.

오른 뺨에 손을 가져다 대며 눈을 여러 번 깜박였다.

눈앞에는 얼굴이 상기된 형이 서있었다.

어머니는 부어오른 내 오른 뺨을 보고 분노에 못 이겨 형의 뺨을 때리려 오른손을 높이 치켜들었다.

형은 어머니의 오른 손이 자신의 뺨에 전속력으로 다가오는 것을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눈을 지그시 감았다.

-

누군가 어머니의 팔목을 잡았다.

빠른 속도로 형의 뺨에 다가오는 어머니의 손을 막은 건 바로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한숨을 쉬며 형의 손목을 잡고 서둘러 병실 밖으로 나갔다.

어머니는 형의 뺨을 때리려 했던 자신의 오른쪽 손목을 잡고 부들부들 떨었다. 어머니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셨다.

형이 왜 그런지는 알 수 가 없었다. 더군다나 부모님은 아무 말 안 하시는 데 어째서 형이.형이 이럴 수 가 있지?

나에게 친절하게 굴던 우리 형이, 여태껏 가족 중에서 가장 의지 되었던 형이 내가 또라이가 되어버린 다는 말에 사나운 개처럼 갑자기 돌변해버렸다.

자리에 주저앉은 어머니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 옆으로 와 앉으셨다. 그리곤 부어오른 내 뺨을 보며 또 다시 눈물샘을 터뜨리셨다.

아이고, 저 것이 수술까지 한 동생 뺨을 때리고 지랄이여! 저게 형이야?! 내 저 놈 다시 들어오기만 해봐!!”

통곡을 하시며 동시에 형의 욕까지 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자 픽- 웃음이 흘러 나왔다.

이 웃음은 내가 또라이여서 나온 웃음이 아니었다. 항상 나와 형을 비교하시던 어머니가 형의 편이 아닌 내 편을 들어주어서 기쁜 마음에 흘러나온 웃음이었다.

얘가, 또라이가 된다더니, 사고 한 번 일으키더니 정말 또라이가 되어버렸네. 또라이가 된 게 그렇게 좋니?”

하하하. 아뇨. 어머니가, 아니 엄마가 제 편 들어준 게 너무 좋아서요.”

정말 너. 사고 때문에 성격이 바뀐 거 같다. 애가 달라졌어. 예전엔 엄마라 부르라고 했는데도 굳이 어머니, 어머니, 형 따라 그렇게 불렀으면서.”

엄마는 아까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말했다.

나는 형처럼 어른스러워 보이려고 항상 엄마를 어머니라고 높여서 불렀다.

하지만 오늘은 엄마를 어머니라 부르지 않고 누구나가 부르는 것처럼 엄마라 불렀다.

오랜만에 엄마와 얼굴을 마주했다.

엄마는 우릴 키우시느라 많이 늙으셨다. 초등학생 때 봤던 젊은 엄마는 온데간데없고 밤낮으로 일하랴 살림하랴 얼굴에 주름살만 생긴 우리 엄마가 내 옆에 앉아있었다.

눈을 동그랗게 뜨자 이마의 주름살이 예전보다 더 깊게 파인 게 무엇보다도 더 눈에 띄었다.

엄마, 엄마는 내가 공부 안하고 하고 싶은 거 한다고 해도 괜찮아요?”

엄마는 그걸 말이냐고 하냐?”라고 하면서 얼굴을 찡그렸다.

그러나 찡그림도 잠시, 엄마는 찡그림을 풀고 눈을 꾹 감고 말했다.

너는 어렸을 때부터 형이랑 항상 비교 당해서 네 꿈은 항상 선생님이다, 대학에 갈 거다. 이런 말만 했었잖아? 엄마는 그 때부터 알고 있었지. 네가 말한 건 전부다 진심이 아니라는 걸. 내 새낀데 어떻게 내가 모르겠어.”

“.....”

엄마는 이제 네가 딴 거 한다고 해도 괜찮아. 내가 대학을 안 가고 네 아빠는 대학을 가도 별 가도 안 가도 소용없는 대학을 나왔으니 부모 심정에는 어떻게 서든 보내고 싶었지. 네 형은 보냈으니 이제 너만 대학에 보내면 내 자식들은 팔자가 편해질 거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얼른 좋은 대학에 보내고 싶어 엄연히 다른 형과 너를 항상 비교했었어. 하지만.”

엄마는 눈을 꾹 감고,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터져 나오는 눈물을 참는 것처럼 보였다.

이번 계기로 깨달았어. 내가 틀렸던 거야. 내 자식이라고 해서 내가 그 애의 미래를 정하는 게 아닌데, 자식의 미래를 부모가 정하는 게 아닌데 나는 너의 미래를 네 의견과 상관없이 무작정 정했었어. 네 생각을 물어보지도 않았고, 그러다 보니 네가 이렇게. 다쳐버리게 되버렸지.”

울지 않으려 꾹 닫은 눈 사이로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졌다.

엄마는 쉴 새 없이 눈물을 흘렸다.

나는 쉴 새 없이 눈물을 흘리는 엄마의 손을 잡고 빙긋 웃으며 말했다.

지금이라도 알아주니까, 괜찮아요. 엄마.”

엄마는 훌쩍거리시며 나를 한 번 안아주셨다.

따듯한 엄마의 품. 난 이 품에 얼마나 오랜만에 안기는 거지. 초등학교 때 이후로는 안겨본 적이 없는 것 같아.

그렇게 난 몇 분간 엄마의 품에 안겼다. 꽉 안아주느라 엄마도 힘들 법 하신데 별 말없이 날 꼭 안아주셨다.

엄마 품에 안겨있는 동안 아버지에게 끌려 나간 형이 생각이나 엄마의 품 안에서 나왔다.

엄마, 나 잠깐만, 형하고 얘기하고 올게요. 아빠한테 여기로 오시라 할 테니까. 기다리세요.”

엄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눈물을 훔쳤다.

엄마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가 일어서고 병실 밖으로 나가는 걸 도와주신 후 의자에 앉아 코를 훌쩍이셨다.

 

사고로 인해 몸을 쉽게 가누지 못 하는 내가 불안한지 엄마는 계속 같이 가준다고 하셨다.

나는 엄마께 애써 괜찮다는 미소를 지어보이고는 형과 아빠를 찾으러 병원 정원으로 나섰다. 다행히 병원 정원은 내가 입원한 병실이 있는 층이라 왼쪽으로 조금만 걸어 나가면 금방 도착했다. 하지만 하늘이 뻥 뚫려있는 정원이라서 겨울에는 꽤 춥다는 단점이 있었다.

추운 정원임에도 불구하고 따듯한 겉옷을 챙겨 입고 나와 바깥 공기를 쐬는 환자들은 많았다.

정원 벤치에 앉아 자판기 음료를 뽑아 마시는 젊은 남자,

빨간 스웨터를 입고 링거 거치대에 의지해 정원을 산책하는 3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여자,

다리에 붕대를 둘둘 감고 휠체어에 앉아 작은 인형을 가지고 놀고 있는 어린아이 등등.

이 외에도 환자나 보호자들로 정원에는 많은 사람들이 군데군데 모여 있었다.

그 사람들 중에 감색 떡볶이 코트를 입고 있는 우리 형과 청록색 점퍼를 입고 갈색 목도리를 두르신 아버지, 아니 아빠의 모습이 보였다.

수술 한지 얼마 되지 않아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몸을 조금씩 움직이며 걸어갔다.

근처에 다다르자 형과 아빠의 다투는 목소리가 더 자세히 들렸다.

아빠.”

아빠는 용케도 내 작은 목소리에 반응하여 날 쳐다보았다. 낑낑대며 온 내 모습을 보며 아빠는 서둘러 청록색 점퍼와 갈색 목도리를 벗어 나한테 걸쳐주시고 목에 둘러주셨다.

몸도 안 좋은 놈이 여긴 왜 나왔어? 수술한지도 얼마 안 됐잖아. 후유증 도지면 어쩌려고!”

괜찮으니까, 엄마한테 가보세요. 형이랑 얘기 좀 하게.”

괜찮다는 말로 아빠를 안심시키며 한 손으로 아빠의 등을 밀었다.

아빠는 형을 한 번 쳐다보고는 머리를 벅벅 긁으며 병원 안으로 들어가셨다.

형은 내가 왔는데도 고개 돌리지 않았다. 이 형 정말 오늘따라 왜 이러나 몰라.

설마 이대로 말 안하는 건 아니겠지?

. 나랑 대화 좀 하자.”

먼저 말을 꺼낼 것 같지 않은 불안감에 내가 먼저 말을 걸어버렸다.

형은 아랑곳도 하지 않고 컴컴한 밤하늘 아래 반짝이는 도시야경만 바라봤다.

, 말한 대로 나는 형처럼 그렇게 공부를 빡세게 하고 싶지 않아. 여기 나오기 전 엄마랑 얘기하고 왔어. 엄마는 내 생각 존중해준다 했고, 아빠는 아직 자세하게 얘기는 안했지만 아까 분명 고개를 끄덕이셨어. 형은 내 생각. 존중해줄 수 없는 거야?”

! 너 제정신이냐.”

내가 보기엔 형이 나보다 더 제정신이 아닌 것 같네. 사과는커녕 제정신이냐고 물어보다니.

공부도 안 하고 인 서울도 안 나오면 다들 개 무시 한다고!! 그래서 난 부모님이 대학을 가라고 강요해서 대학 간 거고!! 며칠 전 까지만 해도 어머니한테 대학 간다고 큰소리치던 놈이 왜 이제 와서 딴소린데?!”

형이 난생 처음 나한테 소리 질렀다.

난 어렸을 때부터 엄마가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 가면 좋겠다고 나한테 밥 먹듯이 말했어. 하지만 네가 태어난 후로는 나한테 쏟아 붓던 관심이 다 너한테로 가고! 나는 그저 공부만 했지. 오로지 공부 밖에 안 가르쳐 주는 학원에 매일 같이 쳐 가서 하루 종일 공부만 하고 점수가 개떡같이 나오면 부모님 기대에 저버리니까 항상 성적올리고!! 그런데, 그렇게 나한테는 대학가라고 강요했으면서!!! 너는, . 사고 한 번 났다고 어떻게 그렇게 고개 끄덕이면서 수긍할 수가 있는 거냐고.”

형이 얼굴을 붉히면서 바락바락 외쳐댔다. 주위에 있던 환자들이 다들 화들짝 놀라 우리 쪽을 한 번 씩 쳐다보았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주위사람 시선 따위를 신경 쓰는 예전에 내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형보다 목소리는 더 크게 하지만 차분하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가슴 펴고 당당하게 했다.

앞에 말들은 다 형이 말한 게 맞아. 하지만, 마지막 말은 내가 들어야 될 말이 아니야. 그런 말은 엄마한테 해. 그리고 나도 잘 알아. 형 학생 때, 하루하루 힘들게 공부한 거. 문 틈새 사이로 형의 뒷모습 볼 때마다 내가 느낀 감정이 뭐였는지 알아? 친구들은 공부 잘하는 형 둬서 좋겠다고 말하고, 엄마는 너희 형 공부하는 모습 봐. 얼마나 좋아? 라고 말하고. 그런데, 그게 뭐가 좋아 보여? 도대체 어디가 좋아 보이는 거야?”

…….”

나는 형 불쌍하게 밖에 안 보였어. 그 뒷모습이. 자신이 하고 싶은 거 억누르면서 공부만 하는 그 모습이 어디가 좋아 보이는 건데?”

형은 말문이 막힌 듯 커다란 오른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쓸어내렸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커다란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 그렇게 몇 분이나 되었을까 형이 손을 내리고 나지막이 말했다.

하아…….미안하다. 아까 그걸 보고 너무 열 받아서 그랬나보다. 내가 그런 식으로 말했을 때는 두 분 다 그렇게 난리를 치시더니만, 네가 말했을 때는 아무 말 없이 그저 고개만 끄덕이시니까 너무 어이가 없고, 열이 받았어. 정말 미안.”

형은 마치 지난날의 기억을 회상하듯 눈을 찡그렸다.

하지만 너 대학은 가야 돼.”

형은 눈에 힘을 주며 내 어깨를 세게 잡았다.

네가 다른 꿈 있다는 거 알겠어, 남들 눈치보고 안 살고 싶단 거 알겠어, 하지만 세상은 그렇지 않아. 공부라는 단지 그 두 글자짜리 단어가 네 인생을 좌우해. 그리고 대학이라는 단어가 앞으로의 네 생계를 좌우하고.”

형은 바들바들 떠는 소리로 내 어깨를 계속 잡고 말을 이어나갔다.

꼭 좋은 대학 아니어도 돼. 이제는 네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공부해. 그러면서 꿈에 맞는 학과가 있는 대학에 가. 또라이가 되고 싶어도 일상생활에서 또라이가 될 수는 없어. 너와 맞는 분야에서 네가 네 재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곳에서 또라이가 되는 거야. 형 말, 무슨 말인지 알겠지?”

정말로 현실적인 대답이다.

또라이가 되고 싶어도 일상생활에서 또라이가 될 수 없단 형의 말에 내 눈동자는 흔들렸다.

나는 어쩌면 또라이라는 말을 잘못 인식하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자신의 분야에서 재능을 미친 듯이 발휘하는 것이야말로 그 학원 선생이 말했던 진정한 또라이의 의미라면 난 도대체 뭔 짓을 한 거지, 또라이가 되겠다고 미친 듯이 날 뛴 내 자신이 부끄럽다.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리자 형은 내 어깨에서 손을 떼고 내 이마를 딱 소리 나게 때렸다.

어디서 그런 말을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단어의 의미를 뭔가 잘못이해 한 것 같네. 하여튼 이해력이 부족하다니까, 뭘 말하면 깊게 생각하지 못하고 바로 정신에 물들이고 말이야! 우리 동생한테 그런 점이 있다는 건 처음 알았네!”

형은 실실 웃으며 말했다.

아악!! 시끄러!”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내 마음을 이해해주기는커녕 형은 계속 방긋방긋 웃기만 했다.

형은 웃음소리를 점점 줄이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이제 병실로 들어가자. 어머니 아버지 걱정하시겠다.”

내 어깨에 팔을 두르며 병실로 들어가기를 재촉했다.

형은 손을 싹싹 비비며 입김을 후 불어 손의 체온을 유지하며 그간 담아 왔던 응어리가 드디어 풀린 듯 실컷 미소를 지어보이며 나를 데리고 히터가 틀어져 있는 따듯한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A급 또라이가 되기 위하여 미친 듯이 웃으며 공부를 포기하고 남들 눈치 보지 않고 살기를 원했다. 그리고 미친 불도저처럼 빨간 신호등임에도 불구하고 차한테 달려들었다.

그러다 이 꼴이 나게 되었지만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또라이라는 단어를 계기로 난 인생에 단 몇 십분 만이라도 남들 눈치 보지 않고 겁 없이 미친 듯이 행동도 했고, 처음으로 형과 진지하게 대화를 하게 되었고, 부모님께 내 꿈을 말할 수 있었다.

담을 수 없는 주머니에 억지로 우겨넣던 내 진심들을 이제야 주머니를 열고 털어놓는다.

주머니 속 자그마한 찌꺼기 하나 남김없이.




성명: 권소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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