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스타

by 파란색 posted Jan 14,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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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이 돼야겠다고 결심했다. 티비 속 연예인들은 특이해보였다.

자의식이 생긴 건 열 살 초등학교 3학년 때 교실에서, 새학기라고 선생님이 애들을 상대로 퀴즈 비슷한 것을 던졌을 때다. 영어 선생님으로 오셨던 선생님은 일 년 후, 첫 담임을 맡고 나는 선생님의 제자가 되었다. 친구가 별로 없던 나는 쉬는 시간이면 책 읽는 것을 좋아했다. 생각해보면 책을 읽느라고 친구가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하여튼, 정규수업은 아니고 개학 첫 날 소개 겸 선생님이 퀴즈를 내시길래 흥미가 안가 책을 꺼내 읽었다. 퀴즈라는 것은 영어 선생님이 애들이 선생님의 움직임을 보고 턴 레프트 턴 라이트를 말하면 해당하는 아이 자리까지 선생님을 움직이게 하는 그런 영어게임이었다. 똑같은 패턴만 반복해서 금방 흥미가 떨어져 선생님하고 눈이 마주쳤지만 책으로 눈을 돌렸다.

“다음은.. 은혜수 자리로”

책 첫 장을 막 읽다가 돌연 내 이름이 불려 깜짝 놀랐다. 머쓱해진 나는 책 읽기를 멈추고 페이지를 접어 둔 뒤, 선생님이 내 자리까지 오기를 기다렸다.

“턴 라이트, 턴 레프트, 고 스트레이트” 애들이 한 목소리로 외치자 얼마 안 있어 선생님이 내 자리까지 왔다. 나랑 하이파이브를 하면 끝나는 게임이었다. 수족 다한증이 있어서 하이파이브 같은 건 정말 싫었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손을 갖다 댔다. 내 차례가 끝나고 앞자리에 앉아있던 내가 뒤를 돌아봤는데, 책을 읽는 등의 행위로 게임에 참가하지 않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그 때부터였다. 나는 조금 다르게 노는 것을 좋아하는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열 살 때는 그냥 그런가하고 금방 지워버렸다. 또래에서 어긋나지 않으려고 나를 꽁꽁 싸맸다. 무리에 들려면 그런 의식이 필요했다. 주말에는 무한도전하고 런닝맨을 봐야하고 쇼음악중심하고 인기가요를 숙제처럼 봐와야한다. 난 그런 것들을 잘 지켰다. 그런데도 난 어딘가 초등학교 때까지는 친구라고 할 만한 이렇다 할 무리가 없었다. 겉돈다고 해야 하나, 이 무리도 저 무리도 잘 속하긴 했는데 꼭 얘네는 화장실 갈 때면 나랑 같이 가잔 소리를 안했다. 그래도 체육시간에는 다 같이 나갈 수만 있으면 괜찮았다. 짝지어 등배지기 같은 것들을 할 때도 같이 짝꿍 할 만한 친구 한 명씩은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애가 누군지 이름은 기억 안 나지만.


초등학교 때까지는 그렇게 대충 지냈다. 그리고 중학교에 올라와서 연예인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냥 난 좀 내가 특이해보였다. 성격이 모난 것도 아닌데 특정한 친구도 없고 남들이 안하는 행동이나 하고. 그래서 티비에 나와야겠다고 생각했다. 티비에는 이상한 사람이 나오면 대단한 사람처럼 보였으니까. 남들과 다른 행위를 하는 사람한테는 독특한 캐릭터가 부여됐다. 그리고 그들은 재밌어보였다.

그래서 이제 나는 연예인이 될 특별한 사람이니까 해야 할 숙제 같은, 남들이 하는 의식 따위는 접기로 했다. 난 너희들이 하는 그런 것들을 일부러 할 사람은 아니라고 선포하는 것과 같았다. 사실 KBS를 틀어야한다니,

SBS를 봐야한다니 리모컨을 쥐고 일일이 가족들과 입씨름하는 것도 진절머리 났었다. 꼭 등짝 한 대씩을 맞고서야 눈물을 찔끔 흘리면서 티비를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무한도전을 볼 때도 하나도 재미없었는데 다음 날이 되면 엄청 재밌었다고 얘기해야 해서 지겨웠다. 근데 난 연예인이 될 사람이니까 이제 그런 행동은 안 할 것이다.

학교에 가서 이제 나는 딴 짓을 숨기지 않았고 굳이 재미있다고 배를 잡고 맞장구를 치지 않았다. 그랬더니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친구는 없어도 어쨌든 무리에 있긴 했었는데 체육시간에 같이 나갈 친구가 없어졌다. 그래도 그것까진 괜찮다. 나중에 연예인이 돼서 훗날 자신의 학창시절을 얘기할 때 좀 사연 있어 보일 것 같기도 하고.

미래를 내다보고 나서 좀 더 그럴싸한 사연을 만들어보려고, 이번엔 수련회 때 하는 장기자랑에서 노래를 부르기로 했다. 나는 아직 가수를 할지 배우를 할지는 안 정했다. 개그우먼은 하기 싫다. 개그우먼 하면 막 망가져야하고 연예인들 사이에서도 급으로 따지면 제일 밑에 있는 것 같아보였다. 그래서 일단 수련회에서는 노래 말고는 연기로 보여줄 건 없어서 노래를 신청했다. 보통 일진 무리가 친구들이랑 같이 나오던데 꿋꿋이 나는 거기에 혼자 나갔다.

수련회가서도 혼자 잘 양치하고 밥도 먹고 기합 받고 레크리에이션도 하고 결정적으로 장기자랑도 잘 마쳤다. 평소 자주 듣는 남자가수의 노래를 실수 없이 잘 불렀다. 다른 참가자들처럼 갈채는 아니었지만 박수도 받았고 나름 뿌듯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수련회에서 돌아오고 주말이 지난 다음 날, 학교에서 묘하게 어딘가 좀 다른 기류가 있었다. 내가 지나 갈 때마다 비웃음이 들렸다.

“쟤야? 그 왕따?”

“쟨 얼굴이 예쁜 것도 아니고 노래도 존나 못하더만. 왜 나왔대?”“아- 조온나 웃기다, 나 쟤 땜에 그날 엄청 웃었잖아”

난 왕따는 아니었고 얼굴이 안 예쁜 건 맞지만 웃기려고 한 적은 없었다. 날 두고 하는 말들의 일부는 맞고 거의 다는 틀렸다. 난 의중을 이해하지 못했다. 왜 내가 지나갈 때마다 저렇게 쑥덕대는 거지, 내가 뭘 잘못했나, 심기에 거슬렸나. 일진들은 대개 아무 이유 없이 본인 마음에 안 들면 빵셔틀도 시키고 그러는 애들이라서 난 쟤들의 심기를 거슬리게 한 걸로 대충 알아차렸다. 내가 너희 앞에서 노래 부른 것이 마음에 안 들었구나.

한동안 나는 쉬는 시간에는 잘 읽던 책도 덮고 엠피쓰리를 들으면서 엎어져있거나, 화장실로 가서 한참 있다 나오곤 했다. 수군거리는 게 무서워서 복도로 잘 나가지 않았는데 반에서도 사실 마찬가지긴 했다. 남자애들이 특히 뒷자리에 앉아서 “은혜수!! 은혜수!!”를 부르면서 내가 진짜로 휙 돌아보면 저들끼리 낄낄 웃어댔다. 난 저들의 추악을 견디려고 엠피쓰리 볼륨을 더 높였다. 한동안 내가 왜 숨어야만했는지 모르겠다. 근데 숨거나 못들은 척 하지 않으면 내가 들어야 할 수근거림이 더 커져서 꼭 그래야만했다.

그렇게 지낸 지 한 이주 쯤 지났나, 드디어 좀 잠잠해진 것 같았다. 복도로 나가도 내 얼굴을 일부러 확인하러 앞까지 달려오는 애도 없었고, 반에서도 남자애들이 좀처럼 내 이름을 크게 부르면서 낄낄대는 일이 없어졌다.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흥미를 잃는 것은 대개 상대방의 몫이다.

숨통이 좀 트일 즈음 동아리 모집 공고를 봤다. 음악실을 지나다가 붙인 지 얼마 안됐는지 처음 보는, 손으로 대충 그린 듯한 홍보지가 부착돼있었다.

‘해왕중 연극부원 모집. 자격요건 없음, 아무나 들어오세요’

홀린 듯이 홍보지를 쳐다봤다. 아, 난 연예인이 될 운명이다. 연기도 하면 좋지. 가수가 되려했더니 반응이 좋지 않았으니 연기를 해봐야겠다. 홍보지 밑에 적힌 번호를 음악책 뒷면에 적었다.

적은 번호로 저녁에 문자를 보냈다. ‘동아리 지원하려구요..’ ‘내일 학교 끝나고 2학년 3반으로 오세요’ 짤막한 단 하나의 답장을 받고 다음 날 방과 후에 3반으로 갔다.

긴장되면서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똑똑하고 문을 열었다. 열 명이 채 되지 않는 인원이 책상을 흩뜨리고 아무렇게 걸터앉아있었다.

“동아리 지원하려고.. 합니다”

“아.....?”

순간의 정적이 끝나고 갑자기 왼쪽에서 풉-하는 실소가 터졌다. 그것을 필두로 실소가 번져나갔다. 교실 안으로 초대받지 못한 채로 문 앞에 잠깐 서 있었다.

“아아- 연극하려고?”웃음을 멈추고 내 앞으로 온 나보다 윗학년임을 보여주는 초록색 명찰을 한 3학년 언니가 나한테 다가왔다. 고개를 끄덕였더니 나를 안으로 이제야 들여보내주었다.

“이번 축제 때 연극하기로 한 건데 한명이 전학을 가버리는 바람에 역할이 남아서. 해줄 수 있니?”

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하고 싶은 역할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경험 차 연기도 해보면 어떨까 해서 온 거니까.

오디션을 본 것도 아니고 그 날 나는 바로 연극부원이 됐다. 오디션은 아니었지만 나를 위아래로 쳐다보는 스무 개가 채 못 되는 눈을 보긴 했다. 그리고 꼭 비웃는 것 까지도.

그리고 그 날 이후부터 다시 이주 전으로 학교생활이 돌아갔다. 내가 지나갈 때마다 수근거린다. “쟤 인생 진짜 다이나믹하게 산다, 시트콤 아니냐?” “나 완전 웃겨, 진짜 골때려”

열다섯 살 주제에 인생을 얘기하는 것도 웃겼고 얼굴도 본 적 없는 사람이 내가 자기 골을 때리게 했다고 뒷목 잡는 것도 웃겼다. 그런데 이번에 나는 숨진 않았다. 쉬는 시간에 엠피쓰리 볼륨을 높이지도, 책상에 코 박고 있거나 화장실 칸에 숨어 종치기 2분 전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연극부3학년 언니가 준 대본을 외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내가 맡은 역할은 극에서 학생3인데 다른 역할에 비해 대사가 많이 없긴 했지만 그래도 외우느라 신경을 많이 썼다. 집에 가면 꼭 한 시간씩 방문을 닫아놓고 대사 연습을 했다. 주말에는 시간이 더 많아서 가족들이 예능을 보고 있을 땐 티비 소리에 묻히는 것을 감사하며 좀 더 소리를 내서 대사 연습을 두 시간씩 하기도 했다.

동아리부원들이 나만 뒷정리를 시키는 것도, 간식비를 모아 매점에서 간식을 사올 때 나만 돈을 더 내서 간식을 사오는 담당이 되는 것도 다 참고 연습했는데 돌연 역할을 뺏겼다. 다른 부원 한명이 뒤늦게 들어온 것이다. 축제가 벌써 2주 앞으로 임박 했을 때다.

동아리 부원의 친구로 들어온 아이는 일진 중 한명이다. 새빨간 틴트를 바른 입술이 대사를 말할 때마다 앞니에 자국이 번졌다.

영문도 모른 채 그 아이에게 달달 대사를 다 외운 역할을 다 뺏기고, 3학년 언니가 내게 다른 역할을 주었다. 그것은 허드렛일이다. 나를 매니저 시킨다고 해줬는데, 내가 하는 일은 부원들이 나가고 남은 자리를 청소하고 배고프다고 하면 간식을 사오곤 했다. 3학년 언니가 “혜수야, 수고해” 하고 먼저 나갈 때마다 검은 머리카락을 잡아 뽑고 싶었다.

축제 때 연극에서 나는 결국 다른 애들처럼 똑같이 관객석에 앉아 연극을 관람했다. 자리도 일곱째 줄 아무데나 앉아 그들만의 연극을 봤다.

그 날 이후부터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쓴 대사를 내가 주고 싶은 사람한테 주고 싶어졌다. 그래서 열여섯에 올라가면서부터는 글을 써댔다. 글 쓰는 연예인이 되기로 했다.

 

주로 희곡을 독학으로 배워서 썼다. 소설도 몇 편 써봤는데 역시 나는 대본의 매력에 푹 빠져 자꾸만 희곡을 쓰고 싶었다. 인물을 설정하고 대사 쓰고 하는 글들이 더 재밌기도 했다.

내가 다시 본래의 고양이 습성으로 돌아가 조용하게 열여섯을 마무리하고, 고등학교에 올라와서는 공모전 사이트에 가입해서 보이는, 열린 백일장에 족족 참가했다. 대학교에서 주최하는 고등학생 대상 백일장도 다 참여하곤 했다.

성과는 번번이 없었지만 희열이 있었다. 내가 뭘 해도 아무도 나를 비웃지 않는 고요한 작업. 보는 이가 정해져있고 쓰는 데 까지 오직 혼자만이 이뤄내는 작업,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여전히 이동수업에 같이 갈 친구 한 명 없었지만 그런 일쯤이야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열여덟까지 습작과 낙방한 글들까지 합치면 백여 편을 썼을까. 그냥 취미이자 특기가 됐다. 하루에 한 시간이라도 글을 쓰지 않으면 속 언저리가 꽉 얹힌 듯이 찝찝하게 하루가 넘어가는 꼴을 보기가 힘들었다.

열아홉이 되던 해, 성과가 눈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청소년 대상 공모전에서 입상을 했다. 내가 글 쓴다는 사실은 아무도 모르는 비밀리에 부친 일이라서 기쁨을 나눌 이도 없었지만, 홀로 회포를 열심히 풀었다. 상금으로 받은 돈하고 그동안 모은 돈을 합쳐서 주말에는 통영으로 일박이일 여행도 다녀왔다.

그 이후부터 아마 내 인생은 조금씩 풀리기 시작한 것 같다. 백프로는 아니지만 늘어난 확률로 꽤 입상작에 이름을 올렸다. 교외에서 주최하는 행사는 어떻게든 찾아가 참가해서 상을 몇 번 타다보니 오히려 교내 행사에 참가를 꺼리게 됐다. 난 정말로 고양이가 되었다. 교내에서 하는 행사에는 혹여나 입상이라도 할까봐, 심사하는 교내 선생님이 내 글을 읽는다는 것 자체가 꺼려졌다. 난 연예인이 될 사람이긴 한데 언젠가부터 주는 관심이 매우 힘들어졌다. 아마도 중학교 때 경험이 큰 작용을 했으리라고 짐작 가는 것을 부인하진 않겠다. 나는 아직도 은혜수 !!를 목청 높여 부르며 낄낄거렸던 그 애들을 생각하면 몸이 떨린다.

학교 안에서는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다. 정말 그냥 학교에 갔다가 도서관에 들렀다가 집에 가는 일상의 반복. 그렇게 3년을 지냈다.

 

스무 살이 되던 해, 무난하게 문창과에 입학해 글을 쓰는 일이 좀 더 많아졌다. 예대에 가고 싶었지만 너가 무슨 글을 쓰냐고 전공부터 반대하는 부모님을 설득하느라 애먹어서, 여기에 오는 것만 해도 많은 수고가 들었다.

고3 때 담임과 상담하며 문창과에 전형을 골라 수시 넣을 때, 그동안 입상했던 교외 공모전 성적들을 나열하니 놀랐던 표정이 생생하다. 그 때 희열감은 꼭 선생님이 아니라 학교에 복수라도 한 것 같았다.

고등학교에선 별 기억에 남을만한 적대가 없는데도 학교 분위기라는 틀 때문에, 난 날보고 놀라워하던 그 표정에서 희열을 느꼈다.

그것을 잊지 않으려고 대학교 들어와서는 더 미친 듯이 글을 썼다. 나한테 하루는 24시간이 아니고 30시간 쯤 되는 것 같았다. 노트북 충전은 하루 두 번, 얻은 것은 어깨 결림과 안구건조증. 이것은 내 훈장이 되었다.

“은혜수.. 자네.. 글이 이게 뭔가”

교수의 몇 마디가 내 훈장에 스크래치를 내면서 내 적대에 다시 불을 지피기 시작했지만.

전공답게 당연히 글을 창작하는 과제를 해간 것을 두고 수업시간에 교수는 내 글을 발표했다. 혹시?하는 오만한 심정으로 앞에 나와 교수의 말을 듣다가 겸연쩍게 다리에 힘을 주고 버텨야했다.

“아무렇게나 쓰고 싶으면 그게 다 글이야? 아니 자네, 내가 주제가 자유라고 해도 그렇지 본인 틀에 갇혀서 그렇게 쓰면 어떡해. 참고문헌 좀 보지 그러나”

강의실은 적막이 흘렀고 나는 네..알겠습니다.. 라고 하다가 이내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했다. 사실 나도 뭐가 그렇게 죄송한 일인지는 모르겠다.

그 날 이후로 슬럼프가 왔다. 상 몇 번 받았다고 너무 오만했던 거지. 한동안 노트북을 키지 않았다. 수업도 더러 빠졌다.

학교에 안 나간 지 이주일 째, 노트북에는 먼지가 뽀얗게 쌓였고 학교 근처 자취방에서만 지낸지도 이주일 째. 그럼에도 휴대폰은 고요하다. 나를 찾는 이가 서럽도록 없다.

난 연예인이 될 사람인데, 찾는 사람이 왜 이리도 없는지. 서러워 일어났다. 눈물로 적신 베개가 보기 싫어 세탁기 통에 넣어버렸다. 그리고 그 길로 나가 곧장 학과사무실에 들러서 휴학신청서를 냈다.

 

공모전을 다시 알아보기 시작했다. 한동안 학교 커리큘럼만 따라가기도 벅차서 찾지 않았던 즐겨찾기 목록을 뒤져 공모전 사이트를 접속했다. 나는 이제 대학생 혹은 일반인에 속해서 참가할 수 있는 공모전 폭이 더 넓고 다양해졌다.

스크롤을 내려 쭉쭉 보다가 페이지가 넘어갔을 때 색 있는 글씨가 반짝이는 드라마 공모전을 봤다. 조회 수가 가장 높았고 스크랩 수도 많다.

‘당신의 열정을 보여주세요’ 뜬 포스터는 디자이너가 멋들어지게 장식한 타이포그래피가 공모전을 소개했다.

‘신인 작가를 모집합니다. 응모 자격 요건 전혀 없고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당신의 열정을 보여주세요. 주제는 자유’

교수가 선정했던 자유주제가 생각났다. 그래서 난 그 문장에 확 꽂혔다. 드라마 공모라면, 참고문헌을 봐서 은근한 표절을 안 해도 되고 장르도 가리지 않아도 된다. 마감일은 이번 달 안이다. 아직 월초지만 촉박하다. 이후 안내사항은 쓱 한번 읽어보고 얼른 달력에 마감일을 표시했다. D-26. 돌려놓은 세탁기의 빨래들을 널고 커피한 잔을 타왔다. 그리고 곧장 작업을 시작했다.

예전에 써놨던 습작 중에 아쉬운 습작 하나를 변주해 확장시키기로 했다. 그렇게 밤낮을 지새웠나. 마감일을 3일 남기고 간신히 마친 퇴고를 메일로 보냈다. 다 마신 커피잔을 설거지통에 담가두려고 일어났을 때 허리에서 뭉친 근육이 앓는 소리를 냈다. 퇴고한 기념으로 마사지 숍에 다녀오기로 했다.

 

습작으로 하루를 꽉 채우는 날들의 연속 중 두어 달이 지났을 때 낯선 번호로 연락이 왔다.

“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UGS 방송국입니다. 은혜수씨 맞으세요?” “네, 제가 은혜수인데요”

“축하드립니다, 공모전에 당선되셨어요”

전화 한 통 이후로 난 습작 할 틈이 없어졌다. 내년에 전격 드라마 되기로 라인업이 잡혔다. 작가님 소리를 들으면서 많이 불려 다녔다. 생전 처음인지라 여기저기 많이도 불려 다녔는데 암만 다녀봐도 그 분위기는 낯익어지지 않았다.

“은작가님, 라인업 중 하나가 펑크가 나서 작가님 드라마가 더 빨리 들어가게 됐어요. 우리가 해놓은 게 있어서 망정이지, 아니 그 예정돼있던 드라마 표절시비 붙었다지 뭐에요. 기사 봤죠? 난리야”

“아아, 네.. 그럼 제 드라마가 더 빨리 나오겠네요?”“그렇죠, 원래 내년 초에나 나가려고했는데 올해 말에 나가게 됐어”“전 다 좋아요, 권피디님. 다른 건 다 좋은데 저기.. 부탁이 있는데.. 극본 뜨고 이름에 은혜수 말고 필명 넣으면 안되나요?”권피디가 뭐하러 필명을 쓰느냐고 물었지만 멋쩍게 웃었다. 중학교 때 경험까지 끄집어내며 제가 나서면 사람들이 비웃어요, 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저 멋쩍게 웃었더니 작가님 좋을 대로 하라고 해서 필명은 오혜선으로 넣기로 했다.

 

대본은 이미 다 썼고 현장에도 몇 번 가봤다. 사전 제작한 내 드라마는 펑크를 메꾸는 용 치고 순조롭게 잘 방영됐다.

자취방에 티비가 없어서 드라마고 뭐고 잘 보지 않았는데 내 작품을 보려고 컴퓨터로 실시간보기 서비스를 결제했다. 첫 방영 날, 밤 열 시가 되기 전까지 아침 아홉시부터 일어나서 장장 열한시간을 기다렸다.

내 부탁대로 제목 ‘미쳐버리는 날’이 뜨고 극본 오혜선 이름이 차례로 떴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모니터 앞에 바짝 가 앉아서 시청했다. 그리고 한 시간이 지났을 때 권피디한테 제일 먼저 문자가 왔다. 은작가님, 어때요. 잘 빠졌죠? 웬일로 이모티콘까지 붙어있는 다정한 문자에 나는 감사하다고 답장했다. 내가 일을 내긴 냈구나.

 

<미쳐버리는 날>은 정말로 일을 냈다. 케이블인데도 시청률이 십오프로를 넘겼다. 아직 중반 넘어왔지만 월화드라마로 공중파 통틀어 대박행진을 이어갔다. 시청률은 점점 더 상승하는 기세라고 권피디가 말해주었다. 난 아직 잘 실감이 안 난다. 그냥 기분이 이상했다.

매주 월요일, 화요일이 돌아오기까지 수목금토일을 기다리기만 하는 와중에 문자가 왔다.

‘해왕중 동창회. 다음 주 금요일, 많은 참석 요망’

휴대폰을 처음 손에 얻었을 때부터 쓰던 번호를 써서 이런 문자도 다 받아본다. 아마도 반장이 출석번호대로 적힌 연락망을 보고 다 찍어서 단체문자로 보냈을 것이다.

가볼까. 은혜수를 부르고 웃던 뒤에 앉은 남자애들, 동아리 뒷정리를 맡기던 3학년 선배, 간식을 사오라던 부원들이 생각났다. 거울을 봤다. 열다섯일 때랑 엄청 많이 다른 모습은 아니다. <미쳐버리는 날>의 성공으로 0이 무수히 찍힌 통장이랑 카드를 챙겼다.

월화를 기다리는 동안 수목금토일이 바빠졌다. 온갖 숍이란 숍은 다 다녀봤다. 연예인이 다닌다는 숍들만 일부러 골라서갔다. 마사지, 경락, 피부 관리를 돌아가면서 받고 이주동안 굶었다. 현기증이 나 방금 자고 일어났는데도 눈이 감기는데도 참을만했다. 딱 죽기 전까지만 먹었다.

 

드디어 금요일, 오전에 헤어랑 메이크업 세팅을 마치고 약속한 장소로 갔다. 이주 만에 사람이 확 달라져있었다. 급하게 살이 없어져 핼쑥한 볼이 내가 보기에도 좀 안쓰러웠지만 전보다는 나았다. 힘든 티를 안내려고 철분제며 비타민이며 챙겨먹고 나왔다.

일부러 오 분 늦게 들어갔다. 이미 자리는 거하게 열리고 있었는지 내부가 시끌벅적했다. 사복만 차려 입었지 여전히 키만 좀 컸거나 화장을 한 낯익은 얼굴들이 보였다. 아는 척 할 사람은 없었지만 그들을 똑바로 보며 안으로 들어왔다.

해왕중 우리 졸업기수 동창회치고 엄청 많은 인원은 아니었지만 볼만한 얼굴들은 다 보였다. 특히 같은 반이었던 남자애들, 동아리부원이었던 사람들이 보였다.

“어? 혜수..? 은혜수 맞나? 이야, 너 대학가고 엄청 예뻐졌다”

학교 다닐 땐 생전 대화 한 번 해본 적 없는 남자애가 와서 말을 걸었다. 은혜수 이름을 목 놓아 부르던 애들 중 한명이다.

“어? 은혜수? 아, 그 연극부 했었지?? 어머, 되게 반갑다. 잘 지냈어?”

손에 천원을 쥐어주며 간식을 사오라고 시켰던 여자애가 말을 걸었다. 불과 육년이 지났을 뿐인데 굉장히 반가운 사람을 본 듯 군다. 심지어 굉장히 친한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다정했다. 그 다정함에 토할 뻔 했다.

토를 삼키려고 맥주 한 잔을 원 샷 했다.

“응, 안녕. 잘 지냈니?”

그리고 다정한 말투를 가장했다. 역시 난 연예인을 할 운명이었어. 이렇게 연기를 잘하잖아. 하나 둘 내 주위로 혜수야 반갑다며 말을 거는 애들이 와서 테이블 하나에 사람이 다 찼다.

인사를 다 하고 나서 그들이 하는 얘기를 들었다. 열다섯 살 때나 지금이나 하는 얘기들은 똑같았다. 처음엔 저마다 입학한 대학교 얘기를 좀 하더니 연예인 얘기로 넘어갔다. 그 흐름을 이해할 수 없었다.

“너네 드라마 그거 봐? 미쳐버리는 날! 진짜 재밌잖아 요즘”

“당연하지, 야 그거 보는 낙으로 산다니까. 김태희랑 원빈 미친 거 아니야? 얼굴이 어쩜 그래?”

“난 작가도 미친 것 같아, 스토리 진짜 장난 아니야”“맞아, 작가 진짜 골때려. 김태희, 원빈도 그렇고 인생드라마야 진짜로”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갑자기 미쳐버리는 날에 대해서 감탄을 내뱉기 시작했다. 아, 난 정말로 이럴 줄 알았다. 이렇게 될 줄 다 알고 있었다. 어쩌면 내 시나리오에서 이렇게 하나도 벗어나질 않는 건지. 이쯤에서 내가 한마디 해 줄 때가 됐다. 여전히 그들이 이번 주 스토리를 반복하고 다음 주 스토리를 예상하기 시작할 때, 지금이다.

“아~ 거기서 김태희가 물에 빠져. 자살할거거든”

뭐? 무슨 소리야. 혜수야, 뭐라고 ? “김태희는 자살하려고 해. 근데 역시 자살에 실패하지. 왜? 그냥 죽으면 심심하잖아. 그래서 원빈이 나타나. 그리고 그 때 같이 죽어. 그 때 그 둘은 정말로 같이 죽어”혜수야, 너 왜그래. 이야 너 골때리는 거 여전하구나.

“믿기 싫으면 안 믿어도 돼. 어차피 다음 주 얼마 안 남았잖니? 아, 너..이름이 뭐더라? 아니다, 그냥 말하지마. 하여튼 나 골때리는거 여전하잖아. 나처럼 골때리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한 명 더 있나봐”

무슨 소리 하는 거야 혜수야. 너 좀 이상해.

난 이때 가방을 들고 일어나 테이블에 앉은 한명 한명을 주시한다. 저 수상쩍게 바라보는 눈빛들. 완벽한 시나리오대로 굴러가고 있다. 자, 이제 내 연기의 클라이맥스를 보여주고 난 여기를 나가면 된다.

“오혜선, 은혜수. 감이 오지 않니? 그래도 모르겠으면.. 뭐, 더 해줄 말은 없고. 너희 참 여전하네”

멍 때리다가 점점 동그래지는 눈까지, 완벽해. 속으로 쾌재를 외쳤다. 이렇게 완벽한 씬을 보는 쾌감을 미쳐버리는 날을 볼 때도 느껴 본 적 없었다.

“김태희랑 원빈하고 회식이 있어서 가볼게. 아, 그리고 그거 아니? 너흰 그렇게 평생 남 얘기만 하다가 죽을거야. 너흰 한 번도 주연이었던 적이 없잖아. 여기 계산은 내가 할게. 재밌게들 놀아”

이제 가방을 들고 난 카드로 이백만원을 일시불로 결제하고 나왔다. 날이 맑다. 택시를 타고 도착한 자취방으로 들어가기 전에 편의점을 들러서 컵라면 하나를 사먹었다.

 

“권피디님, 저 이제 극본 옆에 오혜선이라고 쓴 거 수정 좀 해주면 안돼요? 역시 필명보다 그냥 은혜수로 쓰는 게 낫겠어요”

“에이, 작가님 변덕이 좀 있으시네. 알았어요. 수정해줄게”

드라마 홈페이지에 공지를 올리고 오늘 나가는 방영 회차부터 수정돼서 나간다고 답을 받았다. 오전 중 전화를 마치고 또 열시까지 기다렸다가 티비를 틀었다. 미쳐버리는 날 14화가 시작하고 밑에 제작진 이름이 뜬다. 몇 명이 좀 더 앞에 뜨고 극본 은혜수 라고 떴다. 이름이 뜨고 난 후에 문자를 두 통 받았다. 한명은 조금 친하게 지냈던 동기한테 온 문자고 한 명은 엄마한테 온 문자다.

너 이름 안 흔한 편인데 지금 드라마에 너 이름 떴어! 답장을 해주느라 14화는 제대로 보지 못했다.

확실한 건 김태희가 물에 빠지는 씬은 제대로 봤다. 그리고 어쨌든 살아서 병원에서 눈을 뜨는 씬으로 넘어가는 것을 봤다.

마저 보려다가 다시 휴대폰을 들어야했다. 스무 통이 넘는 문자가 연달아서 오고 있었다.

 


박은지/010.2852.2099/shu55k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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