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화

by 흑표 posted Oct 23, 2014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조화(造花)



밤이 되면 바람도 가무스름해진다. 바람에 밀린 눈발이 사선으로 떨어진다. 하나하나의 흰 점은 검은 웅덩이가 된다. 그것은 아스팔트에 침윤되지 못한다. 다만 손님의 신발자국이 되어 내 가게에 도장을 찍는다.

 

어쩌면 그녀도 신발자국처럼 내게 다가온 것일까. 꺼림칙하지만 지워버리면 그만인, 딱 그 정도의 불결함으로. 하지만 지우고자 밀대를 밀어도 도리어 구정물만 넓고 옅게 퍼지는 성가심으로.

 

빵 굽는 냄새가 담배연기에 섞인다. 나는 문득 하늘을 올려다봤다. 눈은 떨어진다기보다는 점이 되어 붙박이가 돼 있는 듯했다. 극장의 전광판 앞에서는 파란 별자리가, 도로가의 가로등 부근에서는 작은 성운이 빛의 압정에 고정되어 꿈틀거리고 있었다.

 

어쩌면 그녀도 눈(雪)의 별자리로서 살아가는 것일까. 본연의 바탕 위에 그려지는 대로 채색되는, 딱 그 정도의 수동적 자태로. 하지만 꿈틀거려본들 웅덩이 속의 파랑(波浪) 같은 보잘 것 없음으로.

 

그녀를 다시 본 것은 며칠 전이었다. 그날도 눈이 내리고 있었다. 호빵처럼 퉁퉁 부은 얼굴은 더 큰 호빵처럼 불룩 나온 배 위에 꽂혀 있다시피 했다. 얼마나 밖에서 서성거렸던 것일까. 그녀는 흰 동그라미가 두 개 붙여진 눈사람으로 내 가게에 들어왔다. 진흙탕의 발자국이 그녀의 동선을 따라 찍히고 또 찍혔다. 발자국은 점점 내가 서 있는 카운터로 접근해 왔다.

 

그녀는 말이 없었다. 나도 말이 없었다. 실내였지만 눈보라라도 치는 듯 그녀는 떨고 있었다. 나는 시선을 깔고 그녀의 배를 바라봤다. 미간을 잠시 찌푸렸으나 금세 풀어야 했다. 그녀는 찌푸린 미간을 자주 발견했을 것이다. 그 모아진 타인의 눈썹이 자신을 향한 것이었을까, 자신의 뱃속에 든 생명을 쏘아본 것이었을까. 배를 바라보며 눈썹을 모으는 나를 그녀가 봤다. 그러자 그녀는 황급히 배를 감추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이름을 알지 못하므로 용건만 말했다. 그녀는 용건을 말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암갈색의 눈동자는 작은 파랑(波浪)에 너울거렸다. 눈(眼)이 꼭 웅덩이 속의 흙탕물 같군. 나는 잠시 이런 모욕적인 생각을 해보았다.

 

흙탕물 눈동자 아래에서 호흡이 가빠졌다. 마라톤 선수처럼 두 번 빨고, 급하게 두 번 내뱉는 식이었다. 호흡은 빵 굽는 냄새를 타고 올라갔다, 내려가는 듯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가게 문을 닫을 때가 됐으므로 오늘 팔지 못한 빵은 어떻게든 해결해야 했다. 단팥빵은 내일 다시 내놔도 되지만 샌드위치는 그러질 못한다. 나는 그녀에게 유통기한이 간당간당한 샌드위치 세 개를 내주었다. 오늘 일자가 적힌 우유도 몇 통 건넸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을 받지 않았다. 나는 순간적으로 수치스러움을 느꼈다. 악수를 청하다가 거절을 당한 기분 같았다.

 

“괜찮습니다. 어차피 내일 팔지 못할 빵입니다. 가져가셔도 됩니다.”

괜찮다는 말을 다섯 번 정도 하자 그녀는 마지못해 빵과 우유를 받았다.

 

“필요하시면 다음에 또 오세요.”

 

나는 그녀를 붙잡듯이 이렇게 내뱉었다. 문을 나서던 그녀가 잠시 주춤하더니 고개만 돌려 꾸벅 인사했다. 나는 또다시 미간을 찌푸렸으나, 얼른 고개를 숙이며 그것을 감추었다. 창밖엔 바람이 휘몰아쳤고, 그녀는 다시 눈사람이 될 것이다.

 

가게 문을 잠그고 늘 가던 골목길에 접어들었다. 그곳은 청량리 588을 관통하는 골목이다. 골목은 초입부터 비릿한 오줌냄새로 범벅이 돼 있었다. 마치 여기서부터는 588입니다, 라고 안내를 하는 것처럼 1년 내내 사라지는 법이 없다.

 

“아저씨…….”

뒤에서 누군가 날 불렀다. 으레 있는 호객행위였다. 그 다음 말은 ‘놀다 가요’, ‘아가씨 물 좋아’가 따라 나오기 마련이다. 그것도 아주 재빠르고 다급하게, 조금 어울리지 않기는 하지만 활기까지 넘친다. 걸어가는 손님을 잡기 위해 ‘아가씨’의 장점을 속사포처럼 쏘아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를 부른 목소리는 빠르지도 다급하지도 않았다. 활기랄 것도 없었다.

 

“아저씨…….”

 

내가 돌아보지도 않고 몇 걸음 더 가자 목소리는 더 기운을 잃었다. 이제 다시는 날 부르지 못할 만큼 그 소리는 미약했다. 미약했으나 최선을 다한 목소리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이다. 제 젖을 만질 남자를 위해 여인은 젖 먹던 힘을 짜내고 있다.

 

나는 그 목소리에 호기심이 생기기도 하고, 문득 측은하기도 하여 뒤를 돌아봤다. 눈으로 덮인, 희디 흰, 그래서 성당 앞의 성모 마리아처럼 분장한 여인이었다. 봉두난발 같은 머리에 더러운 맨발은 야생의 그것 그대로였다. 땟국에 전 눈과 코와 입은 문명적 작위를 포기한 자연상태 이상일 수 없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 시선을 잡아끈 것은 하얀 눈의 외투 너머로 보이는 반팔 티셔츠였다. 언제부터 저 옷만 입고 다녔던 걸까. 배가 불러올수록 티셔츠가 가슴 쪽으로 올라가 자칫하면 배꼽마저 보일 정도였다. 아까는 왜 미처 그녀의 차림을 발견하지 못했던 걸까.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이제는 눈으로 가려져 있었다. 두터운 눈의 갑옷은 차라리 포근해 보였다. 바지 주머니에는 남은 샌드위치와 우유 한 통이 삐져나와 있었다. 입가에 묻은 소스로 보아 그녀는 방금 샌드위치를 먹은 듯했다. 나는 그것을 보지 못한 척했다.

 

“저를 부르셨습니까?”

 

나는 그녀를 못 알아보는 체했다. 하지만 그녀는 나를 못 알아보는 체하지 못했다. 힘이 없던 눈자위에 놀람과 부끄러움이 스치더니 그녀는 뒷걸음질을 쳤다. 걷지도 뛰지도 못하는 어중간한 속도로 그녀는 재빨리 사라졌다. 그녀가 사라진 골목은 그녀의 자취를 재빨리 감추기라도 하는 듯 눈으로 덮여갔다. 왠지 그녀가 다시는 내 빵집에 나타나지 않을 것만 같다.

 

 

 

그때는 모든 게 불안했다. 2년제 대학 제빵과를 졸업한 나는 취직에 번번이 실패하였고, 군대까지 다녀온 시점에서는 하루하루 피가 마르는 듯했다. 집이 가난하여 다행이었다. 가난하였기에 빈둥거릴 수 없었고, 무슨 일이든 해볼 수 있었다.

 

지방에서 4년제 대학을 나온 용수는 갈 곳이 없었기에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그가 어떻게 그 일을 시작했는지는 물어보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그는 청량리 588에서 과일주스와 아메리카노 등을 팔기 시작했다.

 

차라리 커다란 우산이라 해야 마땅한 더러운 파라솔 아래에서 용수는 하루에 40만 원씩 번다고 자랑했다.

 

“생각을 해 봐. 여기 업소가 100개가 조금 넘어. 그냥 100개라고 치자. 업소 당 아가씨가 평균 둘씩이야. 그러니까 588에는 총 200명 정도가 일하지. 걔네들한테 하루에 한 잔씩만 팔아 봐. 원가 떼도 한 잔에 2500원이 남거든. 곱하기 200하면 50만 원 아니냐. 한 달이면 1,500만 원!”

 

“그걸 왜 나한테 말하는데?”

 

시린 손을 구겨 넣은 주머니에서 동전 몇 개가 만져졌다.

 

“나는 이제 이 일에서 손 떼려고. 공인중개사 시험에 붙었거든. 어차피 어릴 때부터 이 동네에 살았으니까 안면 튼 사람도 많겠다, 장가도 가야 하는데 이런 일 계속 할 수는 없잖아?”

 

“이런 일? 주스 파는 거?”

 

용수는 내게 자신의 파라솔을 넘기겠다고 했다. 영업의 노하우와 가끔 발생하는 ‘문제’에 적절히 대처하는 요령도 가르쳐주겠다고 했다.

 

“설마 거저주진 않겠지?”

 

주머니 속의 동전으로 저 파라솔을 살 수 있을까……. 하지만 용수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거저 줄게. 그냥 너 가져.”

 

이 녀석이 공인중개사 시험에 붙고 나서 실성을 했나 싶었다. 용수는 자동차면허증 외에는 달리 합격했던 시험이라곤 전무했던 것이다.

 

“정말이냐? 정말 그냥 준다고? 하루에 50만 원 번다며?”

 

내가 눈을 거의 희번덕거리며 재차 묻자 용수가 웃음을 터트렸다.

 

“이 자식이 속고만 살았나! 그냥 준다니까. 단, 조건이 좀 붙지.”

 

조건이라는 말이 차라리 나를 안심시켰다.

 

“뭔데?”

 

“한 달에 300만 원씩 내게 자릿세를 내. 1500에서 300은 거저 아니냐. 뭐, 비싸다 싶으면 됐고! 너 아니라도 하겠다는 사람 많을 테니까. 그래도 친구니까 이런 말 해주는 거야, 인마!”

 

용수는 내가 반박할 말까지 앞질러 반박했다.

 

“만약 네가 말한 그 수익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그럼 뭐… 때려치우는 거지.”

 

용수의 대답은 간결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간결한 말 속에 진리가 있다고 나는 믿고 살았다. 용수 말대로 안 되면 관두면 그만이다. 잘 되면 좋은 거고.

 

이튿날부터 나는 용수의 파라솔과 재료를 가지고 장사하기 시작했다. 용수는 문제가 생길 때마다 자신에게 물어보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이 약간 꺼림칙했으나 주스 파는 게 문제될 건 없어 보였다.

 

“얼마냐?”

 

첫 손님은 반말로 접근했다. 내가 꼭 존댓말을 들어야 할 이유는 없으므로 개의치 않았다.

 

“주스는 3000원, 아메리카노도 3000원입니다.”

 

나는 친절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말은 친절하지 않았다.

 

“참새 새끼가 떠넘기고 튀었나 보네. 야, 복잡한 말 필요 없고, 앞으로 주스 하나 팔 때마다 500원은 우리 거야. 알겠어?”

 

나는 그때서야 고개를 들었다. 사람의 얼굴 비슷한 것을 어깨 위에 얹어놓은 지방덩어리 세 개가 나란히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문제 생기면 나한테 전화 해. 용수가 말한 첫 번째 문제는 이것이었다.

 

나는 속담은 잘 모르지만, 로마에 가면 로마법에 따르라는 말 정도는 알았다. 이곳은 조금 특수한 지역이니까 이곳만의 로마법이 존재할 수 있다. 골목 끝에 파출소가 있었지만 법은 아득했고, 주먹은 가까웠다.

 

나는 또 계산을 굴렸다. 예상수익 1,500에서 용수 몫으로 300을 떼면 1,200이 남는다. 그 중 원과 200과 저 불한당의 몫으로 200을 또 떼어내도 무려 800이 남는다. 200만 원만 포기하면 800만 원을 벌 수 있다. 그것도 아주 평화롭고 우애롭게. 나는 200을 버리고 800을 택했다.

 

“예, 예, 예, 그리하지요.”

 

덩어리 셋은 자몽주스에 빨대를 꽂아 쪽쪽 빨아 마시며 시시덕거린 후 사라졌다. 내 목에 거대한 파이프를 쑤셔 박고 빨간 피를 시추하는 흡혈귀 같았다.

 

용수 말대로 장사는 그럭저럭 잘 되는 편이었다. 일거리가 많은 아가씨는 목이 타서 음료수를 시켰고, 일이 없는 아가씨는 속이 타서 음료수를 벌컥벌컥 마셔댔다. 휴대폰이 울릴 때마다 나는 해당업소로 배달을 다니곤 했다.

 

안면을 익히고부터 아가씨들은 내게 실없는 농담을 던졌다. ‘삼촌, 한 달 치 음료수 값은 요걸로 하면 안 될까?’라고 말하며, 두 손을 요상하게 놀리며 어떤 음탕한 상징을 자아내는 것이었다. 나는 그런 동작이 싫지만은 않았다. 매일 보는 얼굴과 몸매에 따로 정욕을 느낄 것은 아니나, 묘한 손놀림에서 어떤 친근감 같은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이곳에서 일하는 아가씨들의 이름을 알지 못했다. 알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 나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면 누나라고 불렀고, 적은 듯싶으면 그냥 아가씨라고 칭했다. 그런 구분이 번거로울 때는 그냥 언니라고 대충 부르기도 했다. 어차피 그들도, 나도 이 동네 뜨내기였다. 수지가 안 맞다 싶으면 미련 두지 않고 뜰 수 있는 곳이 이 동네다. 사람을 특정하여 외우는 이름 따위는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그녀도 그중 하나였다. 처음 봤을 때 그녀는 머리카락을 고등학생처럼 두 갈래로 발랄하게 묶고, 교복 비슷한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어떤 언니는 가슴골이 움푹 파인 드레스를 입거나 몸에 착 달라붙는 ‘캣우먼’식 가죽의상을 입었지만, 그녀는 유달리 교복 차림이었다. 그것도 하나의 영업전략이라면 전략이겠다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유달리 바빴던 그녀는 타는 목을 축이려고 하루에도 네댓 번씩 주스를 시키곤 했다.

 

“삼촌, 삼촌이 보기엔 내가 몇 살로 보여?”

 

하루는 그녀가 이렇게 물어왔다.

 

“글쎄요. 한, 스물일곱?”

 

“뭐야! 내가 그렇게 늙어 보인단 말이야!”

 

내 딴에는 낮춰 부른다고 불렀는데,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럼 몇 살인데요?”

 

“나? 스물일곱!”

 

“뭐예요, 내가 맞혔잖아.”

 

“그래도 더 어려 보이고 싶단 말예요!”

 

자신이 스물셋 혹은 넷으로 보이긴 원했던 것이다. 어쩌면 영원히 스무 살로 머무르길 바랐는지도 모를 일이다. 나이를 한 살씩 먹는다는 것은 골목길 밖에서는 성숙이나 은퇴로 연결된다. 그러나 골목 안쪽에서의 나이는 퇴물을 구성할 뿐이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건너편 골목에서 펑퍼짐하게 퍼질러 앉아 2~3만 원 받고 방바닥에 눕는 베테랑을 그녀는 두려워했다. 비일상적인 일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보다 현실감 있게 말하자면, 겨울이 돼도 한파가 닥치지 않는 한 그녀에게는 예정된 미래라는 게 있었다. 굳이 앞날을 가늠하여 두려워할 필요도 없이 그녀에겐 정해진 내일이 있었고, 그 내일을 향해 세포 하나하나가 조금씩 늙어가고 있었던 셈이다. 티 나지는 않지만 엄연히 그녀는 늙고 있었다.

 

늙어 간다는 점에서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벌써 스물일곱이었다. 뭘 끈덕지게 해둔 게 없으니 이룬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었다. 인간이 만약 자신이 서 있는 대지 위에서 그 정체성이 규명된다면, 나는 588의 주스팔이에 불과할 것이다. 어쩌면 용수는 바로 이 점이 두려워 떠났는지도 모르겠다. 언제까지 ‘이 일’을 계속할 수는 없잖아. 용수는 이렇게 말했었다.

 

인생의 돌아올 수 없는 어느 한 시점에 서서, 그 망연한 세월의 덧없음을 한탄하는 초로의 인간은 나조차 부러워할 것이다. 그래도 시간이 남았음을, 그래서 무언가 시도를 해볼 수 있음을, 아직 가능성이란 게 전무하진 않음을 그는 내게서 발견할 것이다. 그러나 내게 그런 게 있기는 한 걸까. 나는 식물처럼 이곳에 서 있고, 동물처럼 배달을 다니고, 3,000원을 받을 때마다 꽃처럼 웃다가 용수와 덩어리에게 돈을 뜯길 때마다 조화(造花)가 된다. 오히려 시간이 부족한 인간들이 부럽다. 그들은 포기를 할 수 있고, 인생의 의미를 대충 해석하여 자위라도 할 수 있을 게 아닌가.

 

이런 부질없는 생각을 품을 때마다 언니들이 떠올랐다. 유리창 너머로 마네킹처럼 웃고 있는 여인들도 어떤 의미에서는 인간이라기보다는 조화였다. 그들은 시들지도, 시들 수도 없다. 매일 밤 새로 피되, 매일 밤 같은 모습으로 핀다. 그러다가 낡아지면 재활용 될 것이다. 보다 싼 가격으로, 더 음침하고 냄새나는 골목으로 배송될 것이다. 그곳의 집들은 유리창마저 없이 ‘들장미’, ‘꽃송이’, ‘야생마’ 등의 간판을 짐처럼 떠받치고 있다.

 

 

 

그럭저럭 돈 버는 재미로 살다보니 어느새 1년이 흘렀다. 그동안 떠난 이도 있었고, 새로 들어온 언니도 있었다. 더러 도망치는 여인도 생겼다.

 

“오빠, 나 여전히 예뻐? 혹시 엉덩이가 쳐지진 않았어?”

 

그녀도 나처럼 이제 스물여덟이 됐다. 동갑나이임에도 ‘오빠’라는 호칭이 어색하진 않았다. 그녀는 모든 남성을 오빠라고 부른다.

 

“괜찮은데 뭐. 아직 한창이에요.”

 

정말 그랬다. 가슴은 탱탱했고, 히프는 팽팽했다. 허리 쪽에 군살이 약간 있긴 했으나 그 정도는 교복이 감춰줄 수 있었다.

 

“오빠, 나 시집갈까 봐.”

 

그녀는 주스를 빨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남자와 결혼을 한다는 게 주스를 마시는 것 이상의 의미를 띨 수는 없는 듯했다.

 

“어디 좋은 남자라도 있어요?”

 

“남자야 많지. 나 단골손님 중에 결혼하자는 새끼들이 얼마나 많은데. 미친놈들.”

 

미친놈들의 청혼이 뭐가 우습다는 건지 그녀는 낄낄거리며 혼자 웃었다.

 

“여기도 이제 막장이잖아. 청량리 개발된다잖아. 뭐 주상복합인가 그것도 들어서고, 청량리역도 지금 엄청 크게 짓잖아. 저기 극장이랑 백화점도 새로 생긴다는데, 이런 골목을 그냥 놔두겠어? 이거 다 밀어버리고 아파트랑 학교나 짓겠지.”

 

내가 이곳에서 일을 시작할 때인 작년 여름만 해도 업소가 100개는 넘었었다. 하지만 가을이 되자, 낙엽이 지듯 하나 둘 불이 꺼졌고, 아가씨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정부에서는 성매매의 음성화를 우려했고, 언니들은 그 우려를 받으며 원룸과 오피스텔로 잠입했을 것이다.

 

“언제 시작한대요?”

 

나는 초조해져서 그녀에게 물었다.

 

“뭐가?”

 

“재개발.”

 

“나야 모르지. 왕언니는 집값이 아무리 올라도 우리한테 세받는 것보다 못하다던데……. 내 몸 팔아 왕언니 자식새끼 유학자금 대는 것도 이제 정말 지겨워!”

 

“월세가 얼만데요?”

 

“낮에 일하는 애들은 200, 밤에는 300. 목 좋은 데는 더 비싸겠지.”

 

그녀는 사거리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서 시집을 가겠다고요?”

 

그녀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남자는 있어요?”

 

“아까 말했잖아. 미친놈들 많다고. 뭐, 나랑 속궁합이 그렇게 잘 맞대나. 기왕이면 올 때마다 때려달라는 손님이랑 결혼하고 싶어. 실컷 스트레스나 풀고 살게. 오빠도 다른 일 알아봐요. 여기 오래 못 가.”

 

그녀 말이 맞았다. 용수는 재개발 붐을 타고 공인중개사로 변신했고, 구식 산업을 내게 떠넘기고 떠났다. 내게 용수만 한 수완은 없겠지만 슬슬 정리를 할 때가 되긴 했다.

 

용수가 저녁이나 한 끼 하자고 전화 온 것은 그 다음날 오전이었다.

 

“장사는 잘 되냐?”

 

내가 건넨 300만 원을 받아든 용수는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용수가 테이블에 올려둔 자동차 열쇠고리에는 BMW라고 적혀 있었다.

 

“그럭저럭 되긴 해. 근데 여기 개발된다며?”

 

“뭐 그렇다고 하더라고.”

 

공인중개사 용수는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식으로 말했다.

 

“너는 부동산 잘 되냐?”

 

“뭐 그럭저럭. 요즘은 손님들이 까다로워서 인터넷에 사진도 올려야 하고, 이것저것 할 게 많아. 귀찮아 죽겠어.”

 

귀찮아 죽겠다는 말은 그만큼 손님이 들끓는다는 뜻이라 짐작했다.

 

“어디 싼 값에 빵집이라도 차릴 데 없냐? 나도 이런 일 관두고 얼른 자리를 잡아야 하는데…….”

 

‘이런 일’이라……. 어디선가 들어본 말 같았다. 용수는 내게 가판대를 넘기며 ‘이런 일’이라고 표현했었다.

 

“뭐, 매물이 나오면 알아봐줄게.”

 

한번 생각해볼게. 선처를 고려해볼게. 네 사정을 감안해볼게. 매몰이 나오면 알아봐준다는 말은 저런 식으로 들렸다. 나는 또다시 용수의 고객이 되고자 계약을 체결한 것이었다. 달리 방법도 없었다.

 

밥을 다 먹은 용수는 구두를 재빨리 신더니 소변이 급하다면서 화장실 쪽으로 황급히 갔다. 계산하기를 기다리는 주인은 나를 쳐다봤다. 302만 원. 점심값 치고는 꽤 거나했다.

 

“연락할게.”

 

BMW에 올라 탄 용수는 화장실 갈 때보다는 느긋하게 사라졌다. 1301. 번호판이 왠지 눈에 익었다. 1301. 어디서 봤더라.

 

제기동 설렁탕집에서 청량리까지는 걸어와도 괜찮은 거리지만, 인도에 빼곡한 가판대와 시장상인들이 지긋지긋해서 지하철을 탔다.

 

가방은 없었지만 차림으로 보아 여대생인 듯한 여성이 내 앞에 서 있었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대학생 두 명이서 그 여성을 힐끗 보며 뭐라고 쑥덕거리기 시작했다. 뭐가 재밌는지 한 번씩 키득거리더니 가위바위보까지 했다.

 

나와 여성은 청량리역에서 내렸고, 대학생 두 명도 뒤늦게 청량리역에서 내렸다. 그 여성은 내 뒤를 따라 오는 것 같았고, 대학생 두 명도 그 여성을 뒤쫓는 것 같았다. 내 걸음이 <미성년자 출입금지>의 푯말을 지나칠 때쯤에 뒤를 한 번 돌아봤다. 여성은 나를 아랑곳하지 않고 골목으로 들어섰다. 남학생들은 더 호기심이 생겼는지 그녀 뒤를 바짝 쫓았다. 마침내 그녀가 커튼이 드리워진 유리창 안으로 사라지자 남학생들은 허탈해하며 침을 찍 뱉었다. 그 유리창은 나와 잡담을 나누는 동갑내기 그녀의 업소였다.

 

“세상에 믿을 인간 하나 없다니까.”

 

“완전 속았네. 속았어.”

 

“우리 여기까지 온 김에 쟤랑 놀까?”

 

“나 돈 없어.”

 

믿지 못할 여성이 돈 없는 남성으로부터 해방되는 순간이었다. 그들은 어스름 속으로 사라지더니 낡은 조화 앞에서 멈칫했다. 또다시 가위바위보를 하더니 한 명이 지갑을 꺼냈고, 둘은 낡은 조화와 팔짱을 끼고 ‘야생마’ 안으로 들어갔다.

 

“아까 대학생 둘이서 언니 따라가던데요?”

 

주스를 건네며 내가 말했지만 그녀는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그런 애들 종종 있어, 오빠. 내가 여대생으로 보였나 봐.”

 

여대생은 어느새 여고생으로 변신해 있었다.

 

둘이 시시덕거리고 있는데 덩어리 둘이 우리 앞에 나타났다. 나는 돈을 꼬박꼬박 냈으므로 내게 볼 일이 있는 건 아니었다. 덩어리 하나가 그녀의 손을 낚아채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영문을 몰라 가판대로 돌아갔다.

 

30분쯤 지나서였을까. 내가 그녀의 유리창 부근을 지나쳐 배달을 가는데, 그때 덩어리와 그녀가 안에서 나왔다. 덩어리는 땀을 닦고 있었고, 그녀는 얼굴이 상기돼 있었다.

 

“무슨 일인데요?”

 

덩어리가 사라진 후 내가 물었다.

 

“무슨 일이긴, 개새끼!”

 

나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새벽 4쯤 되자 골목은 한산해졌다. 비틀거리는 중년남성은 보이지 않았고, 벽에 오줌을 지리는 남성이 더러 콧노래를 불렀다. 오줌 냄새가 골목길을 따라 퍼져나갔다. 나는 삼거리에서 장사를 하므로 세 갈래의 각각 다른 오줌냄새를 몽땅 맡아야 했다. 덩어리들은 그 중 한 갈래에서 지린내처럼 나타났다.

 

“장사 잘 되냐?”

 

오늘은 둘이다. 하나는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아, 예, 예, 예.”

 

“잘 된다고?”

 

그 말이 왠지 불길하게 느껴졌다.

 

“아, 뭐, 그럭저럭…….”

 

“너 여기서 일한 지 1년 넘었지?”

 

“예, 예.”

 

“그럼 집세를 올려야지?”

 

“예? 집세라뇨?”

 

“내일 다시 올게.”

 

덩어리 둘은 붉은 자몽주스를 하나씩 집더니 사라졌다. 그만큼 내 피가 말라가는 기분이었다.

 

내일 온다던 덩어리들은 모레 나타났다. 그날은 오후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해서 손님도 없던 날이었다. 비 오는 날에는 불 켜진 유리창이 드물기 마련이라서 나는 폐가를 지키는 문지기처럼 공허하게 서 있었다.

 

“너 우리한테 얼마 냈었지?”

 

“200만 원인데요.”

 

“그새 물가가 많이 올라서 말이야.” 덩어리는 담배를 발로 짓밟아 끄며 말을 이었다. “100만 원만 더 내라.”

 

안 그래도 요즘 장사가 예전 같지 않아 갑갑하던 차였다. 재개발이 시작되면서 유리창들은 하나 둘 빛을 잃어가기 시작했고, 그만큼 주스는 팔리지 않았다. 유리창이 어두워질수록 덩어리들의 지갑도 얇아질 것이다. 조바심을 낼만했다. 하지만 용수에게 300, 너희에게 300을 주고, 원가를 떼고 나면 나에게 얼마나 남느냐. 문제 생기면 나한테 전화 해. 용수가 말한 두 번째 문제는 이것이었다. 용수는 몇 번째 문제까지 풀어야 했을까.

 

나는 문득 골목 끝의 파출소를 바라봤다. 파출소는 시야 닿는 곳에 무의미하게 서 있었고, 나는 덩어리의 주먹 사정권에 놓여 있었다.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했다. 이제 정말 이 일을 접을 때도 된 듯했다. 덩어리들이 그 결심을 더 재촉해줘서 차라리 고마웠다.

“네, 알겠습니다.”

 

지금 관둔다고 하면 전봇대 뒤로 끌려갈지도 모른다. 한 달만 더 상납하고 나타나지 않으면 그만이겠지.

 

이제 돈도 적당히 모았겠다, 제빵 기술을 잊어버리기 전에 슬슬 빵집을 차려야 했다. 용수는 알아봐준다고 했으니 정말 알아봐 줄 것이다. 지금 이 일을 알아봐준 것처럼.

 

이 오줌 냄새와 덩어리들과 의미 없는 파출소에서 벗어난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유쾌해졌다. 모아둔 돈이면 어디 목 좋은 데는 아니더라도 입에 풀칠할 빵집은 차릴 수 있을 것이다. 발이 가벼워진 나는 여느 때보다 더 열심히 배달을 다녔다.

 

두 번 배달을 나가면 한 번은 꼭 그녀의 유리창을 지나쳐야 한다. 덩어리 때문에 더러워진 그녀는 언제 화장을 고쳤는지 말끔한 여고생을 변신해 있었다.

 

“어, 오빠, 어, 어, 그래, 곧 나가. 금방 와야 해.”

 

그녀는 전화를 끊더니 핸드백을 챙겼다.

 

“어디 가시나 봐요?”

 

“긴 밤.”

 

“그게 뭔데요?”

 

일 년을 일해도 아직 서로 알 수 없는 게 있다. 나의 주스 원가를 그녀가 굳이 물어보지 않듯이 ‘긴 밤’, ‘짧은 밤’도 내게 그랬다.

“바보, 그런 게 있어.”

 

그녀는 불 꺼진 유리창 앞에서 담배를 폈다. 혹시 그녀가 이대로 떠나버리는 건가 싶어 꼬치꼬치 캐묻기 시작했다.

 

“긴 밤이 뭐죠?”

 

“오래 하는 거, 연예. 돈 더 받구. 오빠는 여기 사람이라면서 그것도 몰라?”

 

여기… 사람…….

 

“오빠, 여기야.”

 

다가오는 고급자동차를 향해 그녀가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나도 그녀의 시선을 따라 그쪽을 봤다. 1301. 번호판에 분명 그렇게 적혀 있었다. 1301.

 

나는 냉큼 고개를 돌리고 반대편으로 후닥닥 걸어갔다. 1301. 용수의 번호판에 있던 숫자다. 용수 차의 번호판을 다 외운 건 아니었다. 43가의 1301인지, 57나의 1301지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같은 차종에, 같은 번호를 다는 확률이 얼마나 될까.

 

1301 BMW가 골목을 뚫고 넓은 도로로 들어서는 게 보였다. 더럽고 좁은 흙탕물의 지류가 드디어 맑은 강줄기에 닿는 듯했다. 자동차는 짙게 선팅이 돼 있었으므로 운전석의 남성을 보지는 못했다. 그녀가 운전석과 어느 정도로 밀착해 앉았는지, 그녀의 표정이 단순한 사무처리인지 진심어린 반가움인지도 알 길이 없었다. 1301은 제기동 쪽으로 사라졌다.

 

그녀가 무슨 차를 타고 누구와 어디를 가든 내가 상관할 일은 아니었다. 그녀는 ‘미친놈’에게 시집을 가길 원했고, 이곳은 곧 재개발이 될 것이다. 그녀의 왕언니는 그녀를 원했지만, 건설업자는 그녀를 원치 않았다. 그녀와 한 번씩 룸 안에서 정담을 나누는 듯한 파출소 순찰경관은 그녀를 아꼈지만, 그녀와 경쟁하는 옆 유리창의 언니는 그녀를 꺼려했다. 가끔씩 떼를 지어 단속 오던 구청직원들은 그녀를 그리워했으나, 또 다른 구청직원인 건설과의 공무원은 그녀를 귀찮아했다. 나는 그녀에게 주스를 판다. 그것만이 그녀와 잡담을 나누는 유일한 이유일까.

 

그 뒤로도 그녀는 1301을 타고 여러 번 골목을 들락거렸다. 어떤 날은 아예 그 차를 타고 출근하기도 했다. 그런 날이 반복될수록 청량리 역 부근의 공사장 소음은 더 요란해졌다. 저녁에 내가 출근하면 가판대가 비산먼지에 덮여 뿌옇게 변해 있었다.

 

“오빠, 건물은 참 남자 같지 않아?”

 

“뭐가요?”

 

“저 건물들 말이야. 조금씩 더 굵고 길어지잖아.”

 

건물이 굵고 길어질수록 그녀는 ‘미친놈’에게 더 매달리다시피 했다.

 

“그 사람은 애인인가요?”

 

“누구?”

 

“그 BMW…….”

 

“아, 그 오빠. 뭐, 내가 말한 미친놈 중에 하나예요. 나이도 나랑 동갑이고.”

 

동갑…….

 

“그런데 왜 묻는데?”

 

“아뇨, 어떤 사람인가 싶어서.”

 

“그 오빠는 돈 많고, 사람 좋고, 의리 있고, 매너 좋고, 뭐 괜찮은 사람 같아요.”

 

그가 그런 사람이었나.

 

“그 남자가 결혼하자던가요?”

 

“그렇게 말은 하는데, 잘 모르겠어요. 설마 나 같은 여자랑 정말 결혼을 할까.”

 

용수는 결혼을 약속한 여자가 있었다. 하지만 차마 그 말을 하지는 못했다.

 

“저는 이제 곧 장사를 접으려고 해요. 빵집이나 알아보려고요.”

 

그렇지 않아도 용수에게 반가운 연락을 받은 터였다.

 

“그래? 잘 됐네. 빵집 차리면 자주 갈게. 할인해줄 거지?”

 

그녀와 나눈 마지막 대화였다.

 

그 후 나는 청량리 588 골목 초입에 있던 오래된 빵집 하나를 인수했다. 새로운 시작이 나를 설레게 했고, 빵가게 주인도 기분이 좋아 보였다. 빵집은 용수가 중개해준 것이었다.

 

빵집은 허름하였지만 주변 상권이 워낙 좋아 장사가 잘 됐다. 더 이상 용수에게 300, 덩어리에게 300을 줄 필요도 없었다. 대신 건물 주인에게 300을 내야 했다.

 

“내가 여기서 세놓은 지가 벌써 20년째여. 그 동안 장사 안 돼서 세 밀린 사람 없었으니께 자네도 잘 해보드라고. 세는 절대 밀리면 안 뎌!”

 

“예, 예, 예, 알겠습니다.”

 

빵집에서 2분만 걸으면 주스를 팔던 그 자리였다. 하지만 나는 그곳으로 발길을 잡은 적이 없었다. 집에 갈 때도 지름길을 포기하고 일부러 돌아갔다. 그녀가 보이지 않고부터 그리로 갈 일도, 이유도 없었다. 겨울이 다가올수록 그녀는 잊혀졌다.

 

“화냥년 같으니라고!”

 

그녀가 왕언니라고 부르던 아줌마가 욕지거리를 내뱉고 있었다. 나는 가게 앞에서 담배를 피며 무심한 듯 물어봤다.

 

“무슨 일이세요?”

 

“그년 말이여. 영미 그년!”

 

그녀의 이름이 영미였구나.

 

“그런데 왜요?”

 

“아 글쎄 그년이 무슨 바람이 났는지 오사리잡놈처럼 생긴 자식하고 붙어먹어서 시집을 간다잖우. 자주 와서 긴 밤 끊던 그 자식이랑 말이야. 그래서 그건 내가 못 막겠다, 하지만 밀린 세랑 빚은 갚고 나가라, 너 이거 못 갚으면 시집이든 개집이든 못 간다, 이랬더니 매달 얼마씩 이자까지 붙여서 꼬박꼬박 갚겠다는 거야.”

 

왕언니는 남자가 고급승용차를 몰고 다닌다는 점, 그 남자가 그녀를 여간 살뜰하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는 점, 그간 그녀와 쌓았던 정이 가볍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이자까지 붙여서 갚겠다는 계약서를 작성했기에 그녀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는 것이다.

 

“아, 글쎄 총각도 이 동네 사람이니 알 것 아냐. 내가 어디 애들 피나 빨아먹는 노친넨가? 그렇게 사정을 봐줬으면 은혜를 갚아야 할 것이 아니냐, 이 말이지. 한 반 년을 갚아 나가더니 지난달부터 입금도 끊기고, 연락도 끊겼다니까!”

 

왕언니는 곧 집이 팔린다고 했다. 재개발 덕에 집값도 두둑이 올랐겠다, 이제 유학 갔던 딸도 시집보내야겠다, 더 이상 이 일을 하기도 싫다는 것이었다.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날 동네인데, 뒤끝이 좋지 않아 다 버려놨다고 말하며 코를 흥 풀었다.

 

“더러운 것 같으니라고! 그런 심보로 어디 가서 얼마나 잘 먹고 잘 사나 두고 보자. 뭐? 네 까짓 년이 시집을 가? 참 잘도 살겠다.”

 

나는 듣기 싫어져 가게로 들어왔지만 왕언니는 분풀이라도 하는 듯 주변 사람들을 보고 그렇게 험담을 계속했다.

 

하지만 왕언니의 저주는 엉뚱하게도 나를 향했다. 높이 올라간 빌딩의 마감작업이 끝나자 상가가 하나 둘씩 들어섰고, 빵집도 빠지지 않았다. 내 가게를 중심에 두고 동서남북으로 빵가게가 하나씩 생겨났다. 동, 서, 북쪽은 각각 다른 대기업의 후광을 등에 업은 가게였고, 남쪽은 고급화 전략을 쓰는 비싼 빵집이었다. 내 가게는 그 한가운데에 포위돼 있는 형국이었다. 손님 입장에서는 할인되는 제휴카드도 없으므로 굳이 동서남북을 지나쳐 중앙까지 올 필요도 없었다. 그나마 골목을 기웃거리는 남성들이 배회를 시작하기 전에 주린 배를 채우러 들어오는 게 전부였다. 내게 이 빵집을 넘긴 아저씨는 지긋지긋한 마누라랑 이혼 도장 찍듯 떠났고, 내게 이 빵집을 세준 노인은 오매불망의 손님 맞듯 나를 반겼었다. 이제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나는 또다시 배달 일을 해볼 생각이었다. 앉아서 팔리지 않을 때는 움직이면 그나마 나을 때가 많다. 주스를 팔러 유리창을 기웃거렸듯이 대신 빵을 손에 들면 될 일이다. 죽치고 앉아 있기엔 갚아야 할 돈이 너무 많았다. 주인은 세를 못 받으면 건물을 팔지도 모른다. 혹은 건물 매매가가 임대료 수익을 넘어설 때 영미의 왕언니처럼 건물을 내놓을 것이다. 그러니 나는 정신을 차려야 했다. 백화점은 점심시간이라고 해서 손님이 붐비지 않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점원들을 단골손님으로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빵 배달 아이디어는 생각보다 성공을 거두었다. 아르바이트까지 써야 하나 싶을 정도로 배달이 밀려들었다. 겨울은 어느새 성큼 다가왔고, 빵이 새로운 계절과 더불어 굽히고 있었다.

 

맨발에 반팔 티셔츠 차림의 여인을 본 것은 보름 전이었다. 밤 11시 경, 가게 문을 닫고 돌아서는데 추위에 오들오들 떠는 임부가 눈에 띄었다. 어두운 곳에 있었으므로 얼굴은 볼 수 없었다. 나는 가엾은 생각이 들어 적선이라도 해줄까 싶었지만 그녀는 딱히 그럴 의지도 보이지 않았다. 구걸을 의도하지 않는 사람에게 무례를 범할 수 없어 그냥 돌아섰지만, 영 기분이 개운치 않았다.

 

그 다음날 같은 시간에도 임부는 그 자리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남자를 껴안듯 팔을 교차시켜 추위를 견뎌내고 있었다. 앉은 채로 무릎을 올려 배를 가린 것은 아이를 위한 배려였을 것이다.

 

나는 그 모습이 너무 딱해 그녀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그녀는 내 얼굴을 보고서 그런 건지, 아니면 그냥 그랬던 것인지 힘없이 일어나 더 어두운 곳으로 사라졌다.

 

임부는 더 견딜 수 없었던지 늦은 밤 내 가게 문을 열었다. 주황색 반팔 티셔츠에 얇은 추리닝 바지, 양말도 못 신은 맨발. 딱 그 임부였다. 나는 잠시 멍해졌다. 임부는 바로 유리창 너머의 그녀였던 것이다. 시들 수 없는 조화(造花) 같은 웃음이 모조리 사라진 자리에는 핏기도 없었다. 어떻게 1년도 채 안 된 사이에 사람이 이렇게 변할 수가 있나. 하지만 나는 그녀를 알아보지 못하는 척했다. 내 입장에서도 도무지 같은 사람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몰락이기도 했으니까. 알아보지 못했으므로 무덤덤하게 유통기한이 다 된 빵과 샌드위치 몇 개를 건넸다. 빵은 딱딱하고 건조했다.

 

“감사합니다.”

 

그녀는 ‘고마워, 오빠’라고 말하지는 못했다. 그 뒤로 그녀는 몇 번을 더 내 가게에 찾아왔다. 그녀의 방문은 늘 문을 닫기 직전에 있었다. 내 가게를 찾을 때마다 그녀는 이미 아기를 낳기라도 한 듯 배가 움푹 들어가 있었다.

 

나는 끝내 그녀를 알아보지 못하는 척했다. 그녀도 굳이 나를 알아보려고 하지 않았다. 내가 위생모를 쓰고, 그새 눈이 나빠져 안경을 쓴 탓일 수도 있다.

 

지금 내 앞에 조화 한 잎이 바람에 흩날린다. 걷는다기보다는 차라리 바람에 밀려나고 있다. 나는 안다. 이제 그녀는 내 빵집을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불룩 나온 배를 낑낑거리며 아쉬운 대로 임부를 허락하는 남성을 찾아 이 골목을 배회할 것이다. 추위를 피할 유리창도 없고, 자신을 여고생으로 바꿔줄 의상도 없이 눈사람처럼 벌거벗은 채로 굴러다니다시피 할 것이다.

아저씨……. 아저씨……. 나를 부르던 그녀의 음성이 눈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것만 같다. 부른 배가 더 부풀어 질 때, 그렇게 풍선처럼 날아갈 수 있을까. 아주 가볍고 허망하게, 가로등의 성운을 지나쳐, 새로 지어진 극장의 별자리를 떠나, 남자를 닮았다는 빌딩 꼭대기를 넘어서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