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데바
해부실 문이 열린다. 갇혀 있던 포르말린 냄새가 옅게 흩어진다. 흩어지는 입자들을 밟으며 백여 명의 대학생들이 들어온다. 나는 그들을 한 명 한 명 찬찬히 훑어본다. 낯익은 얼굴들이 많다. 그들은 모두 동일한 감청색 해부복을 입고 있다. 자주 빨지 않는지 해부복 군데군데에 얼룩이 더럽게 져 있다. 그들은 교수의 지시에 따라 좁게 모여든다. 그들이 모여든 곳은 나의 하반신 아래다. 몇 개의 시선들이 나의 음모로 향한다. 후끈거리는 마음이 들지만 얼굴이 발개지지는 않는다. 이미 얼굴은 반쪽이 잘려 있다. 수박처럼 두 동강 난 얼굴의 단면에서는 표정이 사라지고 없다.
날카로운 면도칼이 음모를 스쳐지나간다. 음모가 있던 자리는 서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맨얼굴을 드러낸다. 검은 풀들이 잘려나가며 깊은 동굴 속이 드러나는 과정을 백여 명의 학생들이 조용히 지켜본다. 털을 깎는 과정은 해부의 가장 첫 번째 단계이다. 해부 대상을 더욱 자세히 보기 위해서. 그들 중 하나가 거뭇한 음부 위로 매스를 들이댄다. 음부 속은 지방이 많아 일일이 지방들을 손으로 긁어내야 할 것이다. 피부가 두껍게 벗겨져 나간다. 방부제를 넣은 탓인지 잘려나간 부위에서 피 대신 반투명한 물이 허벅지를 타고 흘러내린다. 누런 지방들이 섞여 흘러내린다. 학생들 중 한 명이 붙어있는 남은 지방을 떼어낸다. 지방은 닭고기처럼 결대로 손쉽게 뜯겨져 나간다. 자궁 바로 위까지 도려내진 생식기관은 이제 나의 몸과 별개로 그들 앞에 덩그러니 놓여 있다. 그들의 시선이 생식기관 속으로 모여든다. 나도 본 적 없는 가장 깊고 고요한 공간이 그들의 손에 의해 파헤쳐지고 연구된다. 깊은 자궁 속엔 무엇이 들어 있을까. 텅 비었을까. 아니면 탯줄을 통해 양수를 받아먹고 자랐던 나나의 흔적들이 아직도 투명하게 남아있을까.
-이름은 나나로 하자. 예쁘잖아.
폰은 아직 불러오지 않은 나의 배를 어루만지며 속삭였다. 스물두 살이라는 나이에 덜컥 생긴 아이였다. 성인이 되고서야 탄탄한 몸매로 아름답게 굴곡지기 시작했는데 벌써부터 임신이 된 것이었다. 이제야 돈을 벌기 시작했는데 임신이라니……. 나는 병원 의자에 앉아 미소 짓는 폰을 외면한 채 애꿎은 바닥만 말없이 바라보았다. 팔이 의자 위로 힘없이 떨어졌다. 폰은 늘어진 손가락에 깍지를 끼고 잘 키워보자고 웃었다. 망막에 온전히 내 모습이 비치는 폰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나는 우리의 학생시절을 떠올렸다. 지금보다 훨씬 앳된 얼굴이었던 폰의 손에는 항상 나의 가방이 들려있었다. 폰의 눈동자에는 항상 내가 들어가 있었다. 눈을 질끈 감았다. 병원 창문 밖으로 바게트를 파는 라오스 여자들의 높고 청량한 목소리가 진료실 복도까지 새어들고 있었다.
저녁이 되자 줄줄이 이어진 마사지 샵 간판에 차례로 불이 들어왔다. 젊은 여자들이 가게 앞에 하나 둘 의자를 내어놓기 시작했다. 그녀들은 하나같이 몸매가 드러나는 원피스 차림새였다. 나 또한 검은색 슬립원피스를 입고 출입문에 기대어 서 골목을 지나다니는 여행자들을 바라보았다. 여행객들은 골목을 지나다 걸음을 멈추고 불 켜진 가게 앞으로 다가와 메뉴판을 찬찬히 읽어 내려갔다. 배낭여행자들의 천국인 라오스는 젊은 여자들이 일하기 좋은 나라였다. 그중에서도 내가 일하는 가게는 루앙프라방 시내의 중심가에 놓여 있었다. 여행자들이 지친 발길을 멈추기에 좋은 위치였다. 폰의 입술에서 나나라는 이름이 처음 호명된 날에도 어김없이 손님들은 찾아왔다.
-허벅지가 탄탄하네.
중년의 백인남자가 햇볕에 옅게 그을린 나의 허벅지를 슬쩍 쓰다듬었다. 마사지를 하기 위해 남자의 어깨 근처에 무릎을 꿇고 앉았을 때였다. 나는 남자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손바닥에 오일을 적당량 덜었다. 주인에 의해 보라색 암막커튼이 느리게 쳐졌다. 남자는 커튼을 조용히 바라보더니 꿇고 있는 무릎 안쪽으로 팔을 뻗었다. 고개를 숙이자 허벅지와 종아리 사이에 십만 낍이 위태롭게 끼어있었다. 나는 속옷 깊숙이 지폐를 집어넣고 남자의 어깨 사이 근육들을 주물렀다. 어깨를 타고 등과 허리로 안마가 진행될 때마다 접혔던 다리를 조금씩 폈다. 그러고 나서 딱 만 낍 정도로만 다리를 벌렸다. 백인남자의 눈길이 다리 사이에 머물렀다.
마사지가 끝나자 백인남자는 여느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흡족한 표정을 지은 채 가게를 빠르게 빠져나갔다. 여기 마사지가 훌륭하네, 라는 말을 주인에게 던지며.
학생들이 조를 지어 생식기 안을 들여다본다. 그들은 말라 비틀어져 썩은 고기처럼 보이는 음부덩어리를 다각도로 관찰한다. 여학생 한 명이 눈을 찌푸리며 바라보더니 기어이 문 앞에 구역질을 한다. 해부실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온다.
-나와 봐. 이런 걸 가지고 뭘.
남학생 중 한 명이 나의 생식기를 집어 든다. 이런 걸이라니. 한 생명이 자라기도 했던 공간에 이런 걸이라니. 그는 질 속에 손을 집어넣고 힘을 주어 벌린다. 힘없는 자궁이 쉽게 모습을 드러낸다.
-진짜 작다.
남학생이 자랑스럽게 자궁을 손바닥 위에 올려 보여준다. 마치 자신의 전리품인 것처럼 당당하게 미소 짓는다. 그래. 저 작은 자궁 속에서 나나가 나왔지. 그 아이의 눈과 코, 입이 저 속에서 생겨났지. 심장 속에서 또 다른 심장이 뛰었지. 그렇게 작고 위대한 공간을 고작 이런 걸이라니.
마지막 조 해부가 끝나간다. 많은 손을 거쳐서인지 조그마했던 자궁이 더 작아 보인다. 학생들이 장갑을 벗는다. 몸에서 분리되었던 자궁이 다시 하반신 속으로 들어온다. 꿰매지 않은 자궁은 이물질처럼 골반 뼈 안에 자리 잡는다. 지금까지 몸에서 분리된 장기는 자궁을 포함해서 여섯 개다. 그들은 나의 얼굴을 반으로 갈라 눈과 코 입을 보았으며, 창자를 꺼냈고, 피부를 도려냈다. 폰은 알았을까. 학생들이 우루루 몰려와 나의 뇌를 들었다가 놓고, 자궁을 집었다가 다시 집어넣으며 개복된 채로 언제까지 해부되어야 할지 모르는 시간들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 죽어도 해부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적어도 마음은 온전한 상태로 보존되고 있다는 것을. 그들이 나간 자리에는 해부복 하나만이 주인을 잃은 채 버려져 있다.
감청색 외투를 입고 가게로 들어온 것은 한국남자였다. 남자는 여느 배낭여행자들과는 달리 깔끔한 차림새였다. 신발에 흙먼지 하나 묻어있지 않았다. 나이는 서른 중반쯤 되어 보였다. 남자는 조용히 들어와 마사지만 받고 가게를 빠져 나갔다. 남자가 다녀간 자리에는 많은 금액의 팁이 놓여있었다. 마사지 이외에 어떠한 요구도 하지 않았다. 나는 남자가 떠난 자리를 정리하며 어떤 사람일지를 상상했다. 외형상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음에 틀림없었다. 남자를 생각하자 폰의 얼굴이 잇따라 떠올랐다. 남자에 반해 폰은 손이 거칠고 항상 햇볕에 검게 그을린 얼굴이었다. 폰이 웃을 때마다 치료받지 못해 생긴 충치 하나가 검게 빛났다. 그날 이후로 남자는 날마다 밤이 되면 가게를 찾아왔다.
-같이 한국으로 가지 않을래요?
남자가 어깨를 주무르던 나의 손을 잡고 입술을 열었다. 일주일 째, 아무 말 없이 마사지만 받고 가다 처음 내게 뱉은 말이었다. 나는 말없이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의 쌍커풀 없는 눈이 느리게 깜빡였다. 남자의 눈은 검고 깊었다. 폰과는 또 다른 눈이었다. 보랏빛 커튼이 조용히 흔들렸다. 커튼 사이로 늙은 부모님과 나보다 어린 여동생 두 명의 웃음소리가 둥그렇게 들리는 것만 같았다. 더 이상 누군가의 몸을 만지지 않아도 될 것이었다. 그가 마사지를 마치고 나가자마자 짐을 싸 주인에게 몸이 아프다고 말했다. 일찍 퇴근을 하고 그의 숙소로 들어가 그에게만 맞는 마사지를 더 해주었다. 우리는 이제 가게에서 만나지 않아도 되었다. 그날부터 내게 ‘우리’라는 존재는 ‘나’와 ‘한국남자’로 바뀌었다. 어느새 ‘우리’라는 단어에 ‘폰’과 ‘나나’는 포함되지 않았다. 그의 방에 가기 전에 전화기 또한 가게에 놓고 나왔다. 언제 폰에게 안부 전화가 올지 몰랐다. 지금 기분은 어떤 지, 태아의 상태는 어떤 것 같은지에 대해.
매일같이 그의 침대에 누워 한국이란 나라에 대해 전해 들었다. 그의 입술에서 그려진 한국은 라오스보다 더욱 아름답고 멋있는 나라였다. 그곳은 종교를 갖는 것도 자유고, 결혼할 상대가 꼭 아니더라도 자유롭게 연애할 수 있다고 했다. 도심 가운데에 인공파도가 치는 수영장이 있다고도 얘기해주었다. 나는 그의 침대에 누워 눈을 감을 때마다 한국을 떠올리며 있는 힘껏 배에 힘을 주었다. 점점 배가 불러오고 있었다. 나나의 정체를 들켜선 안 되었다. 폰의 얼굴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한국이 어떤 모습일지 그의 얼굴을 통해 선명하게 그려질 뿐이었다.
밤이다. 해부실에는 나만이 남아 있다. 이제는 나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실험물이 된 몸체이다. 누군가가 창문을 닫지 않고 나갔는지 몸체 위로 덮인 천 쪼가리가 휘날린다. 개복된 몸체 안으로 바람이 가볍게 드나든다. 과연 라오스 장례풍습인 송사깐대로 화장되었어도 뼛가루 사이로 바람이 가볍게 드나들 수 있었을까. 스님들이 장례행렬에 따라 따뜻하게 유골함을 안아주고 돈과 사탕을 뿌려주었을까. 창문 바깥에서 어렴풋이 찬송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해부실 문이 열린다. 교수가 해부실 안으로 들어온다. 자주 해부실을 왔다 갔다 하며 연구를 하던 노교수이다. 교수가 내게 다가와 잘린 얼굴 단면 사이로 눈알 하나를 꺼낸다. 핏줄을 확인하고, 눈알 뒷면을 더듬으며, 풀린 홍채를 본다. 교수는 밤마다 나를 찾아와 장기 하나씩을 훑는다. 어느 날은 심장을, 또 다른 날에는 구멍 뚫린 식도를. 오늘은 눈이다. 이 눈으로 항상 웃던 폰을 보며 따라 웃었었는데. 나나의 초음파 사진을 폰과 함께 바라 본 적이 있었는데……. 늙은 교수는 정수리가 훤히 보이고, 허리는 구부정하다. 그는 자켓 속에서 손수건을 꺼내 눈을 닦아내기 시작한다. 기억들을 지워버리라는 것인가. 그가 뚫어져라 눈알 한쪽을 바라본다. 폰이 수없이 바라봤을 나의 눈이다. 내가 한국남자를 따라 비행기를 타기 전, 폰은 마지막으로 내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무섭다. 사람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포기할 수 있다니. 그렇게 빠르게 생명 하나를 손으로 죽일 수 있다니.
한국 남자가 내게 한국행 티켓을 쥐어주었을 때, 나는 산부인과로 향했다.
나나는 너무나도 쉽고 빠르게 세상 밖으로 나왔다. 차가운 스테인레스 쟁반에 담긴 나나는 잘잘하게 분해되어 있었다. 장기가 분리되고, 팔과 다리, 얼굴이 뒤섞여 점토처럼 놓여 있었다. 잘린 나나의 넓적한 뒤통수가 폰을 빼닮아 있었다. 폰의 주먹 정도만큼 자란 나나를 떨리는 손바닥 위로 옮겨 닮았다. 나나의 무게가 생각보다 무거웠다.
노교수는 오늘도 어김없이 무게를 잰다. 나의 심장과 창자 그리고 뇌의 무게를. 오늘은 눈의 무게를. 마음의 무게는 왜 재지 않는 것일까. 내 속에 부장품처럼 놓여 있는 마음의 무게. 왜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가며 해부하지 않는 것일까. 이렇게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는데.
인천공항에 도착하자, 공항에 마중 나온 것은 한국남자의 아내였다. 남자에게 아내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한국에 도착하면 강남에 들려 파스타와 피자를 먹자는 남자의 말에 비행하는 다섯 시간 내내 비행기 날개를 힘 있게 바라봤을 뿐이었다. 이혼서류는 아직 법원에 넘어가지 않은 상태였다. 남자는 아내를 보더니 인천공항 근처 모텔에 나를 내려주었다. 어느새 내 손에는 한국 돈 이십만 원이 쥐어져 있었다. 남자는 중화반점에 전화를 걸어 짜장면 하나와 탕수육 하나를 주문하고서 기다리라는 말과 함께 사라졌다.
모텔 방 안은 붉은 꽃이 새겨진 벽지로 뒤덮여 있었다. 나는 거기서 처음으로 짜장면과 탕수육이라는 것을 보았다. 검은 음식이라니. 어쩐지 불결한 느낌이었다. 면발을 힘겹게 집어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면발을 후룩 빨아들이자 고춧가루가 뒤섞인 자장소스가 가랑이 근처에 이리저리 검붉게 튀었다. 나는 점토처럼 묻은 자장소스를 내려다보다 바지를 벗어 화장실로 달려갔다. 비누를 물에 풀어 바지를 거칠게 빨았다. 손이 물에 점점 불었다. 지문 사이로 주름이 물렁하게 잡힐 때까지 바지 가랑이를 오랜 시간 벅벅 긁어냈다.
남자가 모텔주인의 계좌로 보내주는 돈의 액수가 점차 줄었다. 일주일에 십만 원에서 오만 원으로, 삼만 원에서 만 오천 원으로. 세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주인은 방을 빼라고 했다.
-남자 분이 번호를 바꾸셨더라고요.
주인이 더듬더듬 하는 영어에 따르면 남자가 법원에 낸 이혼서류를 다시 회수했다고 했다. 나는 얼마 없는 짐을 꾸려 모텔 밖으로 나갔다. 택시를 타고 인천 부둣가에 내렸다. 조금 걷자 방파제가 나왔다. 나는 방파제 위로 올라가 주저앉았다. 짠 소금 냄새와 함께 알 수 없는 언어들이 사방에서 들려왔다. 바닷가에서는 파도가 세차게 일렁이고 있었다. 루앙프라방에서는 볼 수 없는 포말이 이는 파도였다. 나는 인천 바다를 바라보며 블루라군을 상상했다. 그곳은 잔잔한 물결이 유영하는 우리들의 놀이터였다. 우리, 폰과 나의 놀이터였다. 햇살이 비치면 티셔츠를 벗고 나뭇가지 위에 올라가 다이빙을 하고 놀았었는데. 폰은 수영을 굉장히 잘했었는데……. 물결 사이를 헤엄치는 폰의 기다란 팔다리가 인천 바다 속에서 잠시 비쳤다. 그러나 이내 파도와 함께 휩쓸려 사라졌다.
나의 사망 절차는 간단히 이루어졌다. 누군가의 발견으로 인해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선고시간이 정해졌다. 나는 곧바로 병원 근처에 있는 대학 해부실에 옮겨졌다. 연고자가 없는 이유에서였다. 손에는 한국남자에게 받은 한국 돈 삼천 팔백 원이 쥐어져 있었다. 나나를 마지막으로 손에 만졌던 무게 정도였다. 피는 쉽게 빠졌다. 혈관에 넣은 방부제가 몸속을 빠르게 타고 돌았다.
바깥에서 향냄새가 스며든다. 나의 영결식이 있는 날이다. 매년 이맘때쯤이면 영결식이 치러졌다. 고인에게 예를 다해 추모하는 영결식. 자신들이 해부하고 몸 속 곳곳을 적나라하게 들여다보았던 시체에게 마지막으로 하는 추모이다. 예를 갖춘다고 차려입은 양복쟁이 백여 명의 학생들이 해부실 근처로 모여든다. 영결식에 내 사진은 없다. 그들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그들은 나의 영정사진 대신 자신들의 기념사진을 찍는다. 개인 또는 단체로. 양복 입은 자신의 모습을 애인에게 전송하며 자랑스러워하겠지. 폰이 나나의 초음파 사진을 들고 와 아빠가 되었다며 자랑스러워했던 것처럼. 폰이 웃으며 내게 좋아한다고 할 때마다 나도 저렇게 사랑스럽게 웃었는데. 그들이 영결식을 하고 나면 나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내일이면 똑같이 새로운 학생들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칼집이 그대로 나 덜렁거리는 뱃가죽과 함께. 또 다시 이국에서의 밤이 찾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