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철없던 시절은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그러나 난 이 철없던 시절을 어떻게 보내는지에 따라 천차만별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다만 그 시기가 다를 뿐....
고등학교에 입학 후, 나는 한층 더 성장했다는 착각을 했으나 그저 빨빨거리기에 바빴다.
“아들 고등학생도 됐는데, 공부 좀 열심히 해야지. 엄마 호강 안 시켜 줄 거야?”
요즘 들어 부쩍 엄마는 나에게 이런 말들을 한다. 지금의 나로선 딱히 와 닿지는 안았다. 계속해서 나와 엄마 아빠는 행복하고 평범하게 살아갈 것 만 같은 느낌은 이유 없이 들었다. 지금까지 그래오도록
“학교 가서 공부하고 학원도 갔다 왔으면 됐지. 그리고 아직 1학년이잖아 엄마.”
내 나름대로의 가장 논리적인 변명이었다.
“그래 엄마는 아들 믿어. 밥 차려 놨으니깐 챙겨먹어. 일 갔다 올 테니깐 밥 굶지 말고 꼭 먹어.”
“응”
엄마가 차려놓은 음식은 꽤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항상 회사일과 집안일에 치여 사는 엄마는 나를 신경써주지 못해 미안해했다. 그 미안함이 항상 잔소리로 이어졌지만, 엄마가 대단하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띠리리링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어 재경아 뭐해 빨리 나와”
“안 그래도 방금 엄마 나갔어. 나도 밥만 먹고 피시방으로 갈게” “응 기다리고 있을게”
나는 서둘러 밥을 먹고 외출준비를 했다.
“왔어? ㅋㅋ 야 이번에 여기 앞 편의점 담배 뚫었거든? 돈 줘봐 담배 사올게”
“오~ 대박 오랜만에 임마가 기특하네”
“아 맞다 세정여고 얘들이랑 술 마시는 건 어떻게 됐어? 오랜만에 여자랑 좀 놀고 싶다.”
“짜샤 좀만 기다려봐. 다음 주 주말에 집 비거든? 애들 다 넘어 왔으니까ㅋㅋ 딱 각 나오지 않냐?”
나는 괜찮다.. 괜찮다.. 하며 비 미래지향적인 생각으로 공부 따윈 미루어 둔 채 이렇게 놀기 바빴다. 딱히 꿈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지금 이 순간처럼 놀면 걱정 따윈 없고 즐거웠다. 앞으로도 계속 이럴 것만 같았다.
그러나 시간은 기다려주지 안았다. 2년이 지난 나는 여태껏 미루어 뒀던 것들로부터 직면했다. 공부는 또래 아이들 수준엔 발도 못 닿았고 친구들과도 많이 멀어졌다.
다들 바쁘게 목표를 향해서 달려가는데 나 혼자만이 빨간불에 걸린 채 멈춰 있었다.
‘이 현실을 너무 늦게 깨달아 버린 걸까’ 싶었지만 , 여기서 이 문제는 2갈래로 나뉜다고 나는 판단했다.
다시 시작하기 늦었다 / 이제라도 시작하면 늦지 않았다
난 밑져야 본전 이라는 생각으로 두말 할 것 없이 후자를 택했다. 가족, 엄마를 위해서라도
EBS 참고서를 샀고 인강을 결제했다. 야간자율학습 후에는 독서실에 가서 자기 전 까지 공부만 했다. 엄마는 늦깎이 공부를 시작한 나를 대견해하고 고마워했다. 물심양면으로 엄마의 도움을 받은 나는 순풍에 올라탔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최선을 다한 내 고등학교 3학년은 결실을 맺었다. 우리 지역에서 호평을 받는 전북대학교를 장학금까지 받고 입학을 한 것이다. 또 한 집으로부터 거리가 도보로 20분 거리여서 통학하기에도 매우 편리했다.
부모님 , 특히 엄마는 아들이 장학금까지 받고 전북대에 합격한 것을 누구보다도 좋아하셨고, 굳이 자주 나가지 않던 모임까지 나가셔서 자랑하고 다니셨다.
나는 조금만 더 일찍 할 걸... 하는 후회도 들었고 자신감도 생겼다.
그러나 그 자신감은 자만심으로 금세 변해버렸다.
“엄마~ 대학생도 됐는데 용돈 좀 많이 줘! ”
“무슨 학생이 그렇게 돈을 많이 써? ” “아 엄마는 대학교도 안 가봤잖아. 대학가면 술 마시고 밥도 사먹고 돈이 얼마나 많이 드는데. 게다가 나 장학금도 받았잖아”
“이놈이.. 알겠어. 통장 가지고 와. 엄마가 통장으로 넣어줄게”
“여기 있어. 엄마 나 학교 갔다 올게~” “늦지 않게 와. 오늘도 늦게 오니?”
나는 엄마의 물음도 들은 체 만체하고 집을 나섰다. 요즘 들어 엄마의 잔소리는 심해졌다.
난 이정도로 엄마가 원하는 대로 했으면 엄마 또한 나를 정신없이 놀게 해줘야 되지 안냐는 생각이 든다.
나는 대학교만 가기를 기다렸던 놈 마냥 매일을 친구들과 여기저기를 누볐다.
지금껏 접하지 못했던 신문물을 받아들인 나는 우물속의 개구리 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여러 무리 속 일부가 자연스럽게 된 나를 발견했다.
특히 학과 개강파티는 놀라웠다. 고등학교시절 철없던 애들과 술 마시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술자리였다. 여기 저기 사람들은 술을 돌리기 바빴고 여자에게 환심을 사기 위해 갖은 칭찬을 아끼지 안았다. 여러 지역에서 개성 각각 모든 사람이 모여 참 신기했다. 술잔 부딪히는 소리는 끊이질 안았고 분위기와 취기는 내려갈 줄 모르고 치솟았다.
처음으로 제대로 된 술자리에서 나는 극한까지 취해버렸다. 손발은 제대로 가눠지지도 안아 동기들의 부축을 받아 택시에 탔다.
“재경아 집까지 갈 수 있겠지? 내일 꼭 연락해라”
“....” 나는 듣고만 있었다. 대답하기조차 귀찮은 기분이였다.
“기사님 얘 집이 동물원 쪽 대지마을인데 그쪽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기사님께 나를 인수인계한 친구들은 선배들과 3차를 가기위해 다시 대학가로 갔다.
나는 특히 술을 마실 때에는 귀소본능이 강하게 발동한다. 너무 피곤하더라도 친구집 , 찜질방 보다는 내 집이 편했다.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한 나는 집으로 간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었다.
그러나 안도감도 잠시, 과속방지턱에 덜컹한 난 메스꺼움을 느끼고 택시에 토를 해버렸다.
“아 학생 여기다가 토를 하면 어떡해. 이거 원 내일 장사는 공쳤네. 얼른 부모님께 연락 해봐”
이런 경우는 처음. 저질러버린 나도 매우 당황스러웠다. 일단 부모님께 연락드려서 일을 마무리해야 하는게 맞다는 생각이 들어서 부모님께 전화를 걸었다.
자고 있던 엄마는 나의 전화에 집 앞으로 나를 데리러 나오셨다.
“아줌마 이거 택시에 토하면 청소하고 냄새를 빼야 되서 내일 장사를 못해요. 8만원은 주셔야되.”
8만원이라는 적지 않은 액수에 당황한 엄마를 본 나는 무슨 객기인지 욕을 대뜸했다.
“아니 X발 뭔 택시에 토 좀 했다고 돈을 그렇게 많이 달래? 이거 완전 공갈 맥이는거 아냐?”
엄마는 나의 욕지거리를 듣고 매우 화가 나셨다
“뭘 잘했다고 술이나 퍼마시고 욕이야? 죄송합니다 기사님. 돈을 놓고 와서 집에 들어갔다 와서 돈 드릴게요. 재경아 너는 얼른 먼저 들어가. ”
나는 취기를 이기지 못했고 토 한 것 때문에 찝찝하기도 해서 순순히 집에 올라갔다.
너무 피곤했던 난 대충 씻고 잠에 들었다. 긴 하루 중에서도 꽤나 긴 하루였다.
씻고 침대에 누워 하루가 끝났다고 느낄 찰나에 아까 했던 토는 예고도 하지 않고 2차를 돌입했다. 메스꺼운 반응에 나는 바로 화장실로 가려고 했지만 , 내 몸은 기다려주지 안았다.
때마침 엄마는 택시기사에게 돈을 물어주고 집에 들어왔다.
“으.... 엄마 나 방에 토했어.” 나는 엄마에게 말하고 화장실에 들어가 입 주변을 씻었다.
화장실에서 나오니 엄마는 방바닥을 걸레로 닦고 있었다.
토를 2번이나 해버린 내 몸은 거의 녹초가 되 버렸다. 토를 닦던 엄마를 피해 나는 침대로 다이빙했다.
“엄마...미안 진짜 사랑해”
“.......”
“내 맘 알지 엄마?”
“앞으로 또 그렇게 술 퍼 먹고 오기만 해봐 아주그냥”
그 말을 끝으로 나는 깊이 골아 떨어졌다.
머리가 깨질 듯 했지만 나의 귀와 코는 도마소리와 맛있는 북엇국 냄새에 자극되어 일어났다. 이럴 때 보면 사람 몸은 정말 본능에 충실하단 생각이 든다.
비몽사몽인 채로 주방으로 들어가니 엄마의 뒷모습이 보였는데 ‘언제 이렇게 늙었지?’라는 생각이 드는 등 이였다.
“와 냄새 죽인다 엄마.”
“일어났어? 북엇국 끓였으니깐 어서 먹어”
그래도 여전히 엄마는 따뜻했다.
“역시 엄마 밖에 없어”
“아이고 나는 너네 아빠 뒤치다꺼리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너까지 그러니”
“그러니까 엄마 밖에 없단 거지~”
“얼른 해장이나 해 이 녀석아”
엄마 덕분에 기분 좋게 해장을 한 내 몸은 늘어지도록 풀렸다. 행복이란 건 멀리서 찾기보다 가까이에 있는 소소한 것에 만족 하는 것 이 행복인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받으니 그 행복도 배가 됐다.
평화로웠다. 이런 일상이 계속 내게 존재 할 것 같다.
그러나 어이없게도 이 순탄한 일상에 군대라는 제동이 걸렸다. 어렴풋이 군대에 가야 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입대도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은 충격 그 자체였다.
1학년을 마치고 바로 가기 위해 신청했으나 대학입시 만큼 엄청난 경쟁률에 밀려 낙방(?)했다.
학년이 끝나고 방학인 시점에 수천번 고민했다.
‘아직 입대 날짜가 정해지지 않았지만 휴학하고 기다릴 것인가’
아니면 ‘합격하지도 안았으니 2학년 1학기를 다니면서 수시로 신청할 것 인가’
내 주위 친구들은 하나둘씩 입대를 한다고 SNS에 글을 올리는 것을 보니 더욱 착잡했다.
2학년은 전공을 배우기 때문에 공부할 엄두도 나지 않았다. 그러나 울며 겨자 먹기로 2학년을 등록했다. 남은 시간을 그냥 농땡이 피우면서 보낼 순 없기 때문이다.
수학,물리,영어 등 교양만 배우다가 전공을 배우려니 죽을 맛 이였다.
난생 처음 접한 학문:공학 은 내 머리를 좌에서 한번 우에서 한번 펀치를 날린 것 같았다.
‘괜히 전공이 전공이 아니구나... 나도 내 나름대로 한다고 했는데 도대체 이 학점은 어떻게 받아 들여야 되지?’
난 학점에 쓰여 있는 두 숫자를 보고 황당했다.
평균학점: 2.1
하지만 딱히 나도 열심히 노력하지 안았으니 이 학점은 맞아도 싸다 라는 식으로 자기위로를 했다. 군대 가기 전 아니면 언제 이런 학점을 맞아보겠나 하고 훌훌 털어버렸다.
수업은 다 나갔으니 학사경고를 면 한 것에 만족했다.
그러나 더 큰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으니....
아직도 군대가 무소식이다.
이렇게 되면 학교를 또 다녀야만 할까. 동기들과 거리가 계속 멀어지는 것 같다.
이 쯤 되니 발상의 전환이 필요했다.
차라리 휴학을 하고 붙을 때 까지 일을 하며 내 시간을 보내는게 낫다고 판단했다.
이런 식으로 생각을 하지 않으면 주위에서 “너 군대 안가니?” 라는 말들을 들으면서 버틸수가 없었다.
주저 없이 학과 사무실에 가서 휴학 신청을 했다. 그리고 여기저기 알바를 알아보았고 모델하스에서 스텝 자리를 구하게 됬다.
모델하우스에서 손님들의 차량 주차 관리도 하고 전단지도 뿌리고 사은품도 옮기고 등 여러 일을 했다. 말이 좋아 스텝이지 그냥 잡일을 하는 심부름 꾼 이였다.
그래도 좋은 사람들과 같이 일을 해서 나쁘지는 안았다.
처음으로 한 알바는 종종 엄마가 했던 말을 떠올리게 했다.
‘남의 지갑에서 돈 꺼내게 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아?’ 쓰기만 하던 돈을 벌게 되니 이 말은 정말 주옥같은 말씀이였다.
돈을 벌다 보니 여유가 생겼다. 여유가 생기니 나에게만 쓰던 돈을 남에게도 쓰게 되었다.
술값을 자주 내던 친구에게 술을 사줄 수 있었고 취미를 하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특히 내가 평소 관심 있던 브랜드의 멋진 옷도 사서 입고 다녔다. 말이 성인이지 학교에서 느낄 수 없었던 것들을 많이 배운 것 같다. 꽤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이다.
일을 한지 꽤 되었을 때 집으로 입영 통지서가 날라 왔다. 입영 통지서에는 무자비하게 보이는 말투로 2달 후 논산훈련소로 14시까지 입대 하란 명령! 과 준비물이 적혀있었다.
나도 드디어 갈 때가 된 것 같다. 모델하우스 매니저 형에게 말씀드렸다.
“매니저 형 요즘 안 바쁘지 않아요?”
“청약도 이제 끝물이니깐 바쁘지는 않지. 그래도 다음 건도 있으니깐 슬슬 준비 해야겠어” “참, 재경이도 다음 하우스도 할 거지?”
“아 저 영장이 나와서요. 이번 것 까지만 하고 그만둬야 할 것 같아요.”
“하하하하 영장? 국방의 부름을 드디어 받은 거야? 야, 형 때는 말이야 ...........”
그 이후로 30분간 매니저형의 군대 일화를 들어야만 했다.
딱히 와 닿지는 안았다. 매니저 형과 나이차이는 크게 나진 안았지만, 요즘 군대가 많이 좋아졌다는 이야기를 귀에 딱지가 박히도록 들어서이다.
“무튼 알았으니깐 이번 주 까지는 마무리 짓도록 하자”
“예 매니저형”
정이 든 것은 아니었지만, 두 달 여간 좋은 사람들과 일한 모델하우스는 미련이 약간 남았다.
뭐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고 새로운 만남이 있는 법
“수고하세요”
“어 재경아 수고했다. 월급은 달별로 나눠서 들어 올거야. 인연이 되면 나중에 보자 군대 가서 몸조심 하고.”
나는 말없이 손을 눈썹쯤 에 갖다 대어 거수경례를 했다.
앞으로 많이 해야 할 동작이지만 지금은 숨 막히게도 어색했다.
난 남은 기간 동안 내가 하지 못했던 것들을 했다.
자전거를 타고 다른 지역까지 여행해 자고 오기도 하고, 못했던 RPG게임을 며칠 밤새서 하곤 했다.
군대 가기 전엔 무엇을 하던 간에 아쉬웠고 부족해 보였다. 그래서인지 내 눈은 해외로 향했다.
일단 무계획적이지만 여권을 만들었다. 가고 싶은 곳 은 당연히 유럽이었다. 동양에서 볼 수 없는 문화기 때문에 너무 나도 궁금했다. 하지만 하루도 허투루 쓸 수 없는 나는 오고 가는 비행기 시간이 긴 곳은 선택 할 수 없었다. 나는 동양에서도 독특한 문화로 유명한 일본으로 결정했다. 평소에 코스프레나 애니메이션 같은 것들이 유명했던 일본이 궁금했던 찰나에 기가 막힌 선택을 한 것 같아 만족스러웠다.
모아뒀던 돈들을 마지막 일격에 쏟아 부었다. 먹고 싶은 만큼 먹고 보고 싶은 것들을 맘껏 구경했다.
이제 와서 신세계를 구경하고 나니 아쉬웠다. 진즉에 갔으면 한 번 더 가지 않았을까 했지만 지금 날 기다리는 것은 내 머리를 밀어줄 이발기 밖에 없다.
막상 머리를 밀고 나니 시원했다. 애초에 하루 빨리 가고 싶었던 군대였다.
엄마는 이모네와 저녁 식사를 하자고 했다. 이모는 내가 군대 간다는 소식을 듣고 마지막으로 오리고기를 먹여야겠다고 하신 모양이다.
오랜만에 먹는 오리고기였지만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겠다. 이모는 평소에 잘 먹던 내가 못 먹는게 안쓰러워 보였나 보다.
“재경아 군대 가면 못 먹으니깐 많이 먹어둬”
“예....”
그래도 워낙 음식을 가리지 않고 잘 먹기 때문에 걱정되지는 안았다. 그러나 나중에 맛있는 것들을 많이 못 먹고 온 것을 후회 할 줄은 몰랐다...
집에 온 후부터 시간은 나와 다른 평행선상에 있는 것 같았다. 시간은 가고 있으나 나는 멈춰 있는 것처럼.
문득 누워서 상념에 잠기니 부모님께 죄송스러웠다. 입대 전 같이 밥도 많이 먹지 않았고 , 기억할만한 추억 또한 없었다. 주위 사람들은 “입대하면 가장 떠오르는게 부모님이야. 부모님이랑 좋은 시간 많이 보내고가” 라고 많이 조언 해주었지만 그러지 못 한게 많이 후회 됬다.
멍한 상태로 있다가 정신 차려보니 나는 신병교육대의 강당무대에 서있었다. 입영가족들을 위해 몸 건강히 다녀오겠다는 아들들의 큰 절을 올리는 이벤트였다.
할 때는 낯간지럽게 왜 이런 걸 하나 싶었지만 시키니 곧 잘 잘하는 나였다.
절을 하고 일어나 보니 엄마는 작은 키로 손을 흔들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 또한 엄마를 찾았지만 눈에서 주책 맞게 흐르는 눈물을 감추기 위해 고개를 숙이고 그대로 통제 조교를 따라갔다.
풍문으로만 듣던 군대는 상상 이상 이였다. 목적으로 이루어진 단체생활 조직 이였기 때문에 하나의 일도 쉽게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특히 집에선 부모님이 해주던 일을 나 스스로 직접 하게 되니 감회가 남다르고 부모님 생각이 많이 들었다.
고된 훈련에 통제된 행동에 지쳐 있을 때 쯤 좋은 소식을 들었다. 부모님과 5분간 통화를 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수신자 부담 전화로 부모님께 전화를 걸었다. 오랜만의 부모님 목소리는 힘듬을 잊게 했다.
“어 엄마 잘 지내고 있지?”
“아이구.. 아들 밥은 잘 먹고 있지?”
“당연하지 내가 음식은 잘 안 가리잖아. 군대가 밥도 안주겠어?”
“다친 곳은 없고?” “어 다친 곳은 없어. 건강해 살도 6Kg이나 빠졌어.”
“우리 아들 살 빠져서 잘생겨지면 못 알아보면 어떡해. 보고 싶다 아들..”
“나도 엄마 예 조교님 엄마 끊어야되 ..... 엄마 아빠 보고 싶다”
진심 어린 고백을 끝으로 통화를 종료했다. 다음 사람을 위해 전화 부스에서 나왔지만 여운이 가시지 안았다.
각개전투 , 화생방 , 행군 , 정신교육 등등을 끝으로 나는 훈련소를 무사히 마무리 했다.
훈련소에 있으면서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것은 수료 후 부모님과 외출을 하는 것 인데, 바깥은 ‘메르스’란 질병 사태로 꽤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군대는 수료식을 통제했고, 전입 장병들을 최대한 빠르게 신병위로휴가를 내보내 주었다.
그래도 자대에서는 한 달 정도 자대생활을 적응 후에 출타시키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
부모님을 볼 수 있는 기회에 보지 못한 것에 실망이 큰 나는 하루라도 빨리 나가고 싶은 맘뿐 이였다.
자대는 진짜 배기 군대였다. 여러 간부님들과 호랑이 같은 선임들이 있었다. 그래서 매순간 긴장의 연속이었고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흘러 휴가 날짜 까지 다가왔다.
휴가 날짜가 다가올수록 부모님에 대한 생각이 많이 커졌다. 죄송한 마음과 잘해드려야겠다는 맘 뿐 이였다. 그래서 사이버지식정보방에 갈 때 마다 부모님과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계획들을 많이 짜 두었다.
출타 신고를 마친 나는 KTX를 탔고 금세 집에 도착했다. 부모님은 정말 환한 얼굴로 나를 맞아주었다. 오랜만의 집은 정말 천국 같았다. 부모님이 해준 음식은 군대 밥과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맛있었고 , 눈치를 주는 선임 대신 엄마는 나를 따뜻하게 보듬어주었다. 나 또한 부모님에 휴가동안 잘 해드렸다.
낚시를 좋아하는 아빠와 낚시 장비를 준비해서 밤 낚시를 갔다. 가서 아빠와 평소에 터 놓지 못한 이야기들을 진솔하게 나누었다.
또 엄마에게는 내가 요리를 잘 하지는 못하지만 돼지김치찌개를 끓여드렸다. 주방에 가면 물도 묻히지 않던 아들이 요리를 해드리니 엄마는 맛이 없더라도 맛있게 드셔주었다.
그리고 휴가 나오기 전 남은 월급으로 가족사진 도 알아보고 예약했다. 군대에서 평소 집에 가족사진 한 장 없던 게 내내 아쉬웠는데 이번기회에 내가 추진해서 거실에는 우리 가족의 환한 모습이 걸리게 됬다. 부모님과 보낸 이 좋은 시간들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왜 더 이런 시간을 자주 갖지 안았나 후회가 막심했다. 앞으로 휴가를 나올 때 마다 이런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다짐했다.
복귀 전 날 저녁에는 부모님과 집에서 쉬고 있는데,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이 이주성이라는 친구는 대학교 동기인데, 군대를 1학년 마치고 바로 간 경우여서 병장을 달고 전역을 한두 달 앞두고 있었다.
“여보세요? 야 재경아 휴가를 나왔으면 바로 연락을 해야지 왜 안했어 섭섭하다 우리사이에”
“아 주성아 미안하다. 휴가 나와서 부모님이랑 계속 보내느라
“아 맞나. 부모님이랑 맛있는거 먹었나.” “응”
“키키 잘했다. 그게 제일 남는 거다. 너 내일 복귀 맞나?”
“어 내일 복귀다. 아 진짜 복귀하기 싫다.. 너도 이런 맘 이였냐?”
“나도 짬찌 때는 매일 그랬다 키키. 복귀하기 전인데 그냥 잘 수는 없지 안나. 술 한 잔 하게 나온나 ”
“얼굴 안본지도 오래 됐는데 그럴까? 지금 준비해서 대학로로 갈게”
“나 지금 전주 오는 길이라 쫌 걸린다. 한 30분 걸릴 것 같은데 지금부터 우리 집 쪽으로 걸어 온나”
“그러면 딱 시간 맞겠다. 근데 어디 길래 지금 전주로 오고 있는 거야?”
“어디 쫌 갔다 왔다. 아 맞다 니 올 때 혹시 마스크좀 사다 줄 수 있겠나”
“마스크? 왠 마스크? 뭐 메스르 같은 것 때문에 그래?”
“일단 묻지 말고 사서 집 쪽으로 온나.” “알겠어.”
나는 전화를 끊자마자 나갈 준비를 했다. 까먹지 않고 친구 집 앞 쪽에서 마스크를 샀다.
친구네 아파트와 가까워지면서 단지 앞에는 까만 피부에 군인치고 꽤 긴 머리의 친구가 서있었다.
“와 주성이 오랜만이네. 피부도 타고 머리도 긴 거 보니깐 참 군인 다 됐네ㅋㅋ ”
“ㅋㅋ 너도 짬 차면 이래 된다. 아 맞다 사오라는 마스크는 사왔나? ”
“ 어 사왔지 근데 이건 어디에 쓸라고?” “그런게 있다”
주성이는 대충 둘러대고는 마스크를 가져가더니 착용하고 자신의 모습을 촬영하고 있었다.
나의 눈치로 추측 해보건대 친구는 최근에 터진 ‘메르스’ 사건으로 휴가를 나온 것이 아닌가 싶었다.
“주성아 너 메르스라고 부대에 뻥치고 휴가 나온거냐? ㅋㅋ 딱 사이즈가 나오네 ”
“아 아이다. 내 가서 이야기 해줄게. 이제. 술이나 무로 가자 ” “ㅋㅋ알겠어 에지간이 휴가 나고오 싶었나 보다~ ” “ 됐다. 조용히 하고 따라오기나 해라 ”
우리는 서로간의 군대이야기에 정신없이 떠들어 댔다. 군필 남자가 뭉치면 대화 소재 1순위는 역시 군대 이야기였다. 그렇게 대화가 물오를 쯤 우리는 대학로에 도착했다.
우리는 그렇게 자주 가던 고기집으로 들어갔다. 오랜만에 만나서 일까. 우리는 정신없이 회포를 풀기 바빴다.
어느 정도 취기가 오를 무렵, 주성이는 자신이 못 만난다고 했던 이유와 마스크를 사오라고 한 이유를 말하기 시작했다.
“사실 나 계속 완주에 있었다. 완주에 우리꺼 별장 있는 거 알지? 거기에 지금 우리 엄마 요양 중 이다.”
“요양? 시골에서 요양을 할 정도로 아프셔? 무슨일인데”
“나도 부대에서 갑작스럽게 들은거라 정신이 없다. 중대장님이 호출해서 가보니깐 엄마가 많이 아프다고 전화가 와서 청원휴가 나왔는데 엄마가 위암 말기란다.”
“.....”
“건강검진 받을 때만 하더라도 몸 건강하고 , 신체나이가 실제나이보다 10살 어리게 나와서 좋아했던게 엊그제 같은데 엄마가 갑자기 암 말기란다.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도 뭐라 해줄 말이 없다.”
“ㅋㅋ 나도 엄마한테 뭘 해줄게 없는데 니가 어떻게 나한테 할 말이 있겟노. 니는 그냥 너네 어머니한테 잘하기나 해라 나처럼 후회하지 말고.”
“그래.. 주성이 너 말이 맞는 것 같다.” “이제 많이 마신 것 같은데 막잔 짠하고 가자 취한다.” “그럼 너 오늘은 전주에서 자고 내일은 완주 별장으로 돌아가는 거야?” “어. 오늘 집에 아무도 없는데 같이 잘래? ”아니야 너도 엄마 간호하느라 피곤 할 텐데 집에 일찍 들어가서 자야지. 주성아 오늘 반가웠고 좋은 소식만 있길 바랄게 잘 들어가라.
우리는 인사를 하고 각자의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밤새 회포를 풀 줄 알았는데, 주성이도 병간호 하느라 피곤해 했고, 나도 다음 날이 복귀인지라 부담스러웠다.
그런데 내 주위에서 이런 드라마틱한 일이 일어날 줄은 몰랐다.
이런 일은 드라마에서 일어나는 줄 알았다. 친한 친구가 이런 불행한 일을 겪으니 우리 엄마 아빠도 혹여 걱정이 됐다. 근데 여태 건강했고 나를 보면 항상 환한 미소를 지어 주는 엄마 아빠가 아플리가 없단 생각으로 훌훌 털었다.
복귀 후 부모님과 통화는 자주 하지 않았다. 전화를 할 여유는 충분히 있었지만,
난 나 나름대로 군대에 적응하느라 바쁘다 는 식의 합리화를 했다. 사실은 귀찮아서이지만
그러던 어느 날 야간근무가 비번 인 날 이였는데 불침번이 나를 다급하게 깨웠다.
“재경아 중대장님 호출이다. 빨리 가 봐 ”
나는 오랜만에 단잠에 깬 것에 짜증이 확 낫지만 , 선임이라서 화도 못 냈다.
“혹시 무슨 일 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나도 잘 모르겠다. 일단 빠르게 가봐. 급하게 찾으신다.”
“예 알겠습니다”
나는 비몽사몽 한 상태로 바지를 입고 슬리퍼를 찍찍 끌며 행정반으로 갔다.
“충성! 중대장님 찾으셨습니까? ” “어 재경아 일단 이리로...”
중대장님은 나를 상담실 안으로 데리고 갔다.
“재경아 방금 아버지한테 전화가 왔는데... 어머님이 많이 아프시데. 꽤 심각한 상황 인 것 같다.....
지금 나가지는 못하니깐 내일 아침 일찍 휴가를 나가야겠다. 그렇게 알고 있어.”
“.......”
주먹에 힘이 들어갔고 땀이 났다.
“일단 늦은 밤에 정신없을 테니 지금은 들어가서 자도록 해. 아니 담배 한 대 필래?
들어가서 옷 입고 활동화 신고 나와. 담배 한 대 피자.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생활관 안으로 들어갔다.
머리는 망치로 한 대 맞은 듯 띵 했고 , 난 침대 매트릭스에 앉아 애꿎은 담뱃갑만 꽉 움켜쥐었다.
이름:최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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