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라

by 윤별 posted Feb 10,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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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라

 

 

전부 거지같은 말들뿐이다. 대 여섯 명의 정신병자들이 동그랗게 모여 앉아 아무런 감정도 실려 있지 않은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리며 박수를 친다. 눈동자는 생기 없이 초점을 잃었고 머릿속은 흐릿하게 비어있다. 이 사람들은 분명 서로를 이해하고 있지 않다. 가장 최악인 건 가운데 앉아있는 저 가증스러운 여자인데, 날카로운 인상과는 대조되는 흐리멍덩한 표정으로 50년쯤 살아온 인생의 덧없음이라도 느끼는 듯 매순간 각 잡힌 서류철을 들고 볼펜을 까딱거리며 다리를 꼬고 앉아 유난히 시끄럽게 돌아가는 시계에 시선을 고정한 채 끝나는 시간만을 기다린다. 스스로는 선생님쯤으로 불리고 싶은 모양이지만 나는 늙은 여자라 칭한다. 한 시간 가량의 멍청한 모임이 끝나면 멍청한 여자는 상투적인 말들로 멍청한 병자들을 평가하고 곧 서로가 서로에게 무리 없는 적절하고도 멍청한 평가용지를 주고받는다. 이로써 병자들은 곧 나라에서 나오는 몇 푼의 돈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나도 그 중 한 명이다.

 

 

거리를 비추는 햇살이 유난히 밝게 빛나던 그 해의 어느 날.

아빠는 강간범이고 엄마는 피해자에요. 엄만 내가 여덟 살 때 자살했어요. 살아있는 동안엔 쉬지 않고 날 미워했고요. 몇 년 뒤 출소한 아빠는 보호소에 있는 날 찾아내 또다시 강간하려 했어요. 그래서 죽여 버렸죠. 열여섯 살 때 일이에요.

라라의 첫인사는 강렬했다. 무표정하게 허공만 응시하던 사람들의 시선이 한 순간 그녀에게 몰리는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나 또한 마치 안부 전하듯 과거를 털어놓는 그녀에게 적잖은 당혹감을 느꼈지만 정작 본인은 아무렇지도 않은지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향해 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입 꼬리가 초승달을 그리며 올라갈 때마다 양쪽에 자리 잡은 보조개가 깊게 파였다.

어떻게 죽인 거요?

신경쇠약에 빠졌다던 남자가 몸을 앞으로 바짝 내밀며 궁금한 듯 물었다. 그는 항상 어떻게 죽을지 고민하지만 아픈 건 두려워하는 모순된 인간이었다. 나는 그런 그를 볼 때마다 생각한다. 어디라도 올라가서 뛰어내리지 그래.

그냥 손에 잡히는 걸로 머리를 마구 내리쳤어요. 그게 뭐였는지는 아직도 기억이 안 나고요. 의사말로는 뇌가 그때의 충격을 지운 거라던데.

꺼내기 불쾌할 수도 있는 얘기를 라라는 이상하리만큼 침착하면서도 친절하게 답했다.

그래서 이 상담을 추천받았어요. 정신적으로 도움이 될 거라나?

라라의 말에 남자가 또 질문을 하려 팔꿈치를 들썩이자 늙은 여자는 급히 볼펜으로 서류철을 탁탁 치며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 어려운 질문에 기꺼이 답해준 라라에게 박수 칠까요.

들려오는 박수소리에 라라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해 보였다. 라라와 처음 대화를 나눈 건 그로부터 대략 한 달 후, 여느 때처럼 일주일에 한번 의미 없는 모임이 끝나고 택시를 부르려던 참이었다.

어디 살아요?

라라의 등장은 돌연했다. 흔히 나누는 상투적인 인사말도 없었다.

이 동네는 버스가 없나? 매일 콜택시만 타는 것 같던데, 아님 돈이 많아요?

뒷짐을 지고 내 주위를 빙빙 돌며 천진하게 물어댈 뿐이었다.

우리 친하게 지낼래요?

, .

뭐 좋아해요? 같이 밥이라도 먹어요. 나 배고픈데.

부담스러운 질문공세에 슬슬 옆으로 피하고 있던 나를 앞지르며 눈을 동그랗게 뜬 라라가 말했다. 오래전부터 사람들과의 친근감형성 같은 것들이 불편했던 나는 대충 대화를 끝내고 싶었지만 피하면 피할수록 끈질기게 붙어오는 그녀였다. 더욱이, 나를 바라보는 라라의 눈빛이 나는 아주 불쾌했다. 심연의 마지막까지 꿰뚫어보겠다는 듯. 형언할 수 없이 순수한 눈동자. 모르겠다. 그저 아주 순수한 호기심을 담은 눈이랄까. 그래서 괜히 더 기분이 나빴는지도. 모르겠다.

나한테 관심이 많아요?

그 까맣고 깊은 눈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날카롭고 빈틈없는 가시를 세우는 것뿐이었다.

어머! 나 그런 쪽은 아니니 안심해요.

하지만 한사코 까칠한 내 태도에도 라라는 농담이나 던지며 화통하게 웃기만 했다. 도무지 가늠할 수없는 활발함이었다. 그녀의 삶은 지독한 어둠과 죽음으로 둘러싸여있을 뿐인데 어쩜 그렇게 해맑게도 웃을 수 있는 건지 내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질 않았다. 라라를 향한 나의 감정은 호기심, 가여움, 부러움과 짜증이 적절하게 조합된 오묘한 것이었다.

내게 보였던 다정함의 이유에 대해 물어 본적은 없다. 다만 그녀도 많이 외로웠겠거니, 짐작해보았을 뿐이다. 왜인지 사실을 알게 된다면 큰 실망을 하거나 라라가 떠나버리거나 둘 중 하나 일 거라는 막연함에 빠져있었다. 내가 갖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는 그녀에게 애증 같은 것들을 느꼈다. 그리고 언젠가 부터는 내 삶에서 잊혀 질 수 없는, 잊혀 져서는 안 되는 중요한 존재가 되어버렸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천사가 운다.

손길이 뻗지 않는 곳에서.

아무도 천사를 위로하지 못한다.

순수한 태양도 다정한 풀잎도.

다만 천사는 울고 있다.

아무런 위로도 바라지 못한다.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천사가 운다.

 

 

감상평을 바라는 듯 라라는 손으로 꽃받침을 만들어 턱을 앞으로 쭉 당겼다. 어때? 라고 묻는 라라의 음성은 굳이 듣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좋아.

단지 그뿐?

아주 좋아.

라라는 꽃받침을 풀고 입술을 삐죽하며 마지막 빵 조각을 입에 넣었다. 며칠간 고심해서 쓴 시 낭독에 무심할 정도로 담담한 내게 섭섭한 표정을 숨기지 않은 채였다.

나도 시인이 될 수 있을까? 깊은 상념에 잠겨 하루를 일 년처럼 보낼 수 있을까?

라라는 금세 날 선 눈빛을 풀고 속삭이듯 물었다.

하루를 일 년처럼 보내고 싶어?

그렇지만 아직 너무 형편없는걸. 그냥, 그냥 단 한 문장만으로도 온전한 떨림을 느끼고 싶어.

라라는 낮게 읊조렸다. 어떠한 대꾸를 바라지는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잠시 입을 다물고 그녀에게 시간을 주었다. 카페의 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어스름이 번지고 있었다. 첫눈이 얼어붙은 거리는 이제 더러워질 일만 남은 것 같았다.

갈 시간이야.

문득 정신을 차린 라라의 흘기는 눈빛이 느껴졌다. 그래도 나는 가야만 했다.

여긴 네 이동경로잖아 조금만 더 있자고.

곧 해 질 시간이야.

내가 데려다 줄게. 요즘 밤거리가 얼마나 예쁜데.

밤은 위험해 내가 왜 이러는지 너도 알잖아.

투덜거리는 라라를 떼어내며 나는 타이르듯 말했다.

그럼 오늘 너희 집에서 잘래.

집엔 아무도 안 데려가.

나까지 못 믿는 거야? 서운한 걸.

못 믿는 게 아니야 라라, 이건.

병이지! 정신병. 잘 알고 있다고.

말을 가로 챈 라라는 이내 웃음보를 터뜨리며 즐거워했다. 그녀의 웃음은 보는 사람마저 기분 좋아지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라라가 내게 정신병이 있다고 놀릴 때면 나는 도리어 마음이 편해졌다. 이 모든 문제들이 별게 아닌 양 가벼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녀만의 특별한 능력이었다. 그래, 그녀는 누구보다도 특별했다.

 

 

어둠이 깔리고 밤이 깊어지면 나는 참을 수 없이 불안해졌다. 기나긴 밤이 지나고 아침 해가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하면 안도할 수 있었다. 안도하는 스스로에 깊은 환멸을 느끼며 더욱 차분히 안도했다. 어둠은 끊임없이 나를 두려움의 구렁으로 내몰았고 나는 결코 저항할 수 없었다. 태양의 광명이 인도의 손길을 내밀 때까지 불길에 휩싸인 늪 속에서 그을음을 회피하려 나는 몸부림쳐야 했다. 그런 내게 라라는 자주 뜬금없는 질문을 하곤 했다.

천국을 믿어?

글쎄.

천국은 있을 거야.

그래.

윤회라든지 환생 같은 거 말이야, 생각해 본적 있어?

없어. 너무 비현실적이잖아.

하지만 우린 살면서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들이 많잖아.

신이 있다고 믿는 거야?

있었으면 좋겠어. 없더라도 있다고 믿고 싶어. 내 간절한 말을 들어주는 누군가가 있다고 생각하면 든든하잖아. 그런 의미에서 믿음은 꼭 필요한 것 같아. 사실 신은 아무것도 해주는 게 없는데 진심으로 빌면 이루어질 거라는 그 믿음 자체가 원동력이 돼서 언젠가는 해내고 마는 게 아닐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감히 토 달고 싶지 않았다. 라라가 그렇다고 하면 그런 거였다. 천국이 있다고 했으니 분명 있을 것이다.

 

 

장을 보는 날엔 같은 시간, 같은 길을 지나 같은 곳에서 물건을 샀다.

우리 동네에 있는 재래시장 갈래? 가격도 저렴하고 아주머니들이 이것저것 챙겨주셔.

상담시간이 끝나자 라라가 달려와 말했다.

난 항상 가는 곳만 가.

알아 그 대형 마트? 하지만 시장이 더 재미있을 텐데.

더 이상 부정하고 싶지 않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 거긴 직원들도 있고 카메라도 있으니 더 안전하다는 거지? 넌 정말 심각한 정신병자야.

침묵의 의미를 알아차린 라라가 토라졌다. 그런 식의 투정은 나를 변화시키려는 그녀만의 노력이었음을 알고 있었다. 전혀 강압적이지도, 강요하지도 않았으며 귀찮을 정도로 밀어붙이지도 않았다. 그저 함께하는 시간들에 천천히 물들어 갔을 뿐.

그럼 내일 같이 장보자. ?

라라는 언제 토라졌냐는 듯 다시 다가와 물었다. 그 정도는 괜찮을 것 같아 알겠다하고는 바로 택시를 불렀다.

돈이 썩어난다니까.

이런 나를 라라는 영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그러나 언제까지고 내가 감수해야 할 낭비였다. 일반 택시보단 모범 콜택시를 불러 집 앞까지 간 뒤 잔돈은 받지 않고 기사아저씨에게 내가 집에 올라갈 때까지만 지켜봐 달라고 부탁했다. 미친 사람 취급받기 딱 좋지만 열에 여섯은 담배한대씩 태우며 부탁을 들어주었다. 가방 안에는 갖가지 호신용품들로 가득하고 집에는 손가락만 펼치면 잡을 수 있는 거리에 똑같은 것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하루하루가 오물로 뒤덮인 터널을 걷는 듯 지독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의 병이었으니까.

 

 

무슨 인스턴트만 이렇게 사?

요리할 필요가 없잖아.

하긴 칼질을 못 하.

라라는 신나게 재잘거리다가 아차 싶었는지 말끝을 흐리며 눈치를 보기 시작했지만 내가 이내 손사래를 치자 다시 멋쩍게 웃어 보였다. 한 달 치 식량과 필요한 것들을 사야 해서 짐이 꽤 많아 졌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가장 무거운 장바구니를 든 라라는 택시를 부르는 내내 힘들다며 옆에서 칭얼거렸다. 그 어색한 칭얼거림의 목적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우리 집에 가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래 그럼.

선뜻 내키진 않았지만 라라가 심하게 삐질 것 같아 어쩔 수 없었다. 집에 친구를 들인 건 그날 이후로 처음이었다.

꽤 잘 꾸미고 사네?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이상한 기계들만 빼면.

현관문을 채 닫기도 전에 뛰어 들어간 라라는 집안 곳곳을 살펴보며 신기해했다. 난생처음 어둠을 맛본 어린 태양처럼. 그녀가 목적 없는 감탄사를 내뱉는 동안 이우는 햇볕이 시나브로 집안을 감싸 안았다. 황금빛 석양을 받은 라라의 온기가 텅 빈 공간에 스며들었다. 그녀의 손끝이 스쳐지나가는 싱크대, 옷걸이, 한편에 놓인 작은 티브이가 따뜻해졌다. 풍경 같은 라라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아름답다는 것밖엔 떠오르지 않았다. 고요하고 평화롭다. 그리고 내가 그 곁에 있다.

침착해 난 괜찮아.

라라와 한 공간에 있다는 걸 인지하고 나서부터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뒤늦게 내 상태를 알아챈 라라는 진정시키려 노력했지만 쉽게 될 리가 없었다. 나는 이미 이중으로 잠긴 문을 자물쇠로 한 번 더 잠그고 미세한 바람조차도 들어오지 못하게 박스테이프를 창틀에 덕지덕지 붙여댔다.

이 정도면 충분해 그만해도 돼.

라라는 끊임없이 말을 걸었지만 그녀의 목소리 따위 들리지 않는 게 당연했다.

날 봐.

라라는 소리쳤다.

날 보라고!

불현듯 정신을 차린 나는 자리에 주저앉아 반쯤 얼이 나간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아주 잠깐의 정적이 맴돌았고 알 수 없는 감정에 에워싸였다. 그리고 그대로 눈물을 쏟아내야만 했다. 우는 나를 끌어안으며 라라는 말했다.

괜찮아, 우린 괜찮아.

 

 

어렸을 때부터 오빠가 특이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저 남들보다 좀 더 짓궂을 뿐이라고 생각했어. 열여덟 살 때의 일이야. 새벽에 시끄러운 소리가 나서 나가보니 오빠는 온 몸이 피투성이였고 그 앞엔 부모님이 쓰러져 계셨어. 난 바로 달려가서 부모님의 상태를 확인했지. 무슨 강도가 들었나 하는 생각이었거든. 오빠 손에 쥐어진 칼을 보기 전까진. 웃음이 나올 정도였다니까 말이 안 되잖아 내가 바로 옆방에서 자고 있었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부모를 난도질한 거야. 오빠는 굳어있는 나한테 딱 한마디만 했어.

도망가.

맨발이라는 걸 깨닫기 전까지 미치도록 달렸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병원이었어. 오빤 곧바로 잡혔고 살해 이유에 대해서는 그냥 마음에 안 들어서, 라고 했어. 그날따라 거슬렸대 정말 웃기지 않아? 이유가 고작 거슬려서라니. 그 후로 난 진술하고 뭐 여기저기 끌려 다녔던 것 같은데 기억은 잘 안나. 부모님 장례식이 어떻게 됐는지도 모르겠어. 일가친척도 없었고 혼자 남은 날 맡을 사람도 없었어. 뉴스엔 온통 우리 집 얘기뿐이었고 내 머릿속엔 피 묻은 칼을 쥐고 있는 오빠의 차가운 목소리만 계속 맴 돌았어. 반년 정도 지나니 동네에는 내가 충격을 못 이기고 미쳤다는 소문이 퍼졌지. 맞아, 그때쯤부터 병이 생긴 거야. 칼만 보면 발작을 일으켰고 어두워지면 잠을 자지도 못해 우리 집에 누가 오면 혹시 그 사람도 죽을 까봐 아무리 혼자 있는 게 무서워도 친구 하나 부르지 못했고 주변엔 별로 소용도 없는 온갖 호신용품들로 가득 채웠어 집에 있는 창문이랑 현관문은 자물쇠로 몇 겹이고 채워놓고 당연히 일도 못했지 학교도 못 다녔어. 밖에 나갈 일이 있을 땐 나름의 이동경로를 정해놓고 거기서 벗어나지 않았어. 그게 좀 더 안전하다고 느껴졌거든. 오빤 평생을 감옥에 갇혀 있을 테지만 그 정도로는 날 안심시킬 수 없으니까. 도망가라는 건 쫓아오겠다는 거잖아 언제든지 날 죽일 수도 있다는 거야 내 오빠라는 사람이, 내 하나뿐인 가족이 말이야. 더 비참한 건 그래도 난 살고 싶거든. 정말 살고 싶어.

 

 

꿈을 꾼다. 어둠에 잠긴 밤. 끝이 안 보이는 이차선도로 위에 나는 서있다. 희미한 중앙선만이 내가 가야할 곳을 가리킨다. 어딘지 모르는 그곳을 향해 나는 걷는다. 걷고 또 걸으면 끝없이 달릴 것만 같은 차가 달려온다. 어쩌면 달리는 것만이 유일한 목적인 차. 무언가를 짓밟고 깔아뭉개는 것만이 존재의 이유인 차. 요란한 경적이 울리고 발은 그대로 굳어버린다. 두렵다. 꿈인 줄 알면서도 두려워한다. 피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은 나는 끝내 다가오는 죽음을 받아드리기로 한다. 가만히 눈을 감고 마지막 숨결을 뱉어내는 그 순간 누군가의 손길이 나를 인도한다. 바람 따라 흔들리는 하얀 빛 같은 손. 조금만 옆으로, 옆으로 서. 낯선 빛에 몸을 웅크리고 경계하던 나는 이내 손길의 따스함에 취해 발걸음을 옮긴다. 희미하지만 단단하게 뻗어있는 선 하나가 밟힌다. 비로소 세상이 밝아진다.

 

 

그날 살고 싶다며 울부짖는 나를 품에 안은 라라는 어느 때보다도 단호히 말했다.

살 수 있어. 살게 될 거야.

그렇게 라라는 더욱더 적극적으로 나를 이끌기 시작했다. 처음 시작은 상담 받는 건물에서 두 블록 정도 떨어진 음식점부터였다.

정말 별로야 싫어.

내 말이 라라에겐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아무리 싫다고 저항해도 라라는 막무가내로 내 팔을 잡아끌고 시내로 향했다. 한번만 더 싫다고 하면 업고 간다기에 바로 입을 다물었지만 이동경로 외의 다른 곳에는 가본 적이 없던 나는 처음 가는 새로운 장소에 다리가 떨려 걷지도 못할 지경이었다. 거의 눈을 감은 채 라라에게만 의지해 도착한 음식점은 카레 전문점이었다. 자리에 앉아 주문을 하는 순간까지 나는 주변을 살피느라 바빴고 음식 맛도 제대로 느낄 수 없었다. 앞에서 쉴 새 없이 조잘대는 라라의 말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아서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확실한 건 그렇게 억지로 입에 집어넣은 카레를 집에 와 바로 게워냈다는 것이다. 그런 사실을 알 리가 없는 라라는 매주 새로운 곳, 처음 가는 곳으로 나를 이끌었다. 떨고, 체하고, 게워내기를 반복하며 나는 어느 정도 모험이랄 것에 익숙해져 갔다. 두 블록이 다섯 블록이 되고 날씨가 좋을 땐 삼십분 정도를 마냥 돌아다니기도 했다. 물론 해 지기 전엔 무조건 집으로 들어왔지만 택시가 아닌 버스를 타는 날이 늘어갔다. 몇 달 정도가 지난 후엔 약의 복용량도 줄었다. 처음 버스를 타던 날, 라라는 예쁘게 포장된 작은 상자 하나를 내게 건넸다. 충전 식 교통카드였다. 라라는 첫 선물이야, 하며 자신이 얼마 정도의 돈을 넣어 놨으니 마음껏 쓰라는 말도 덧붙였다. 우린 버스정류장 의자에 꼭 붙어 앉아 마치 첫 등교를 기다리는 초등학생들처럼 기대감과 초조함에 떨려했다. 라라는 언제나 옆자리를 지켜주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 없인 불가능했을 일들이 늘어갔다. 밤늦게 돌아다니는 건 여전히 어려운 일이었지만 사람들과 부딪히는 일이 예전보다 많이 편해졌다. 시장에서 장을 보거나 음식점을 찾아다니며 밥을 먹는 것 또한 자연스러워져 갔다. 물론 라라가 항상 곁에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얼굴에 생기가 돌고 활력이 생길 때쯤 라라가 물었다.

학교를 다니는 건 어때?

나는 깜짝 놀라 마시던 커피를 쏟을 뻔 했지만 라라는 개의치 않아하며 대답을 기다리는 눈치였다.

글쎄, 아직 생각해본 적은 없어.

이제 괜찮을 것 같지 않아?

모르겠어, 학교 다닐 돈도 없고.

너만 괜찮다면 다닐 수 있어 방법이야 많으니까.

너도 같이 다닐 거야?

난 워낙 학교랑은 안 맞아 근데 넌 아주 잘 할 것 같아서.

라라는 제법 진지했다. 학교 측의 배려로 고등학교도 겨우 졸업한 내가 대학을 간다는 건 상상도 못해본 일이었다. 라라는 잘 생각해보라며 재차 거듭했지만 도저히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아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게다가 그곳엔 라라도 없었다.

 

 

바람이 차가워지고 그 해의 상담이 세 번도 남지 않았을 때, 늙은 여자가 나를 불러냈다.

요즘 많이 밝아진 것 같아요.

의외의 첫마디였다. 내가 밝아졌다는 말도 놀라웠지만 이 여자가 그 동안 날 지켜보고 있었다는 사실이 더 놀라웠다.

좋아 보여요. 앞으로도 노력 해봐요.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해를 넘게 봐오면서 상담시간 외에는 일체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던 터라 갑자기 이런 식으로 나오니 어찌할 바를 몰랐지만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예전 같았으면 끝나는 시간만 기다리는 것 같던데 그래도 할 일은 하나보지 라든지 조는 걸 윗사람한테 걸려서 한 소리 들었나 보군, 하며 삐딱하게 생각했을 텐데 이제 그런 건 내 속만 쓰릴 뿐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뜻하지 않게 늙은 여자와 나는 상당한 대화를 나누었다. 여자는 평소와는 다르게도 상당히 전문가적인 모습을 보이며 이런저런 말들을 해주었다. 지루하지도 않았고 가식적으로 보이지도 않았다. 형식적으로 내뱉는 말이 아닌 진심으로 다가오는 말이었다. 내가 이런 얘기를 하자 라라는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그건 네 마음 자체가 바뀌었기 때문이야.

내 마음?

전엔 잔뜩 날이 서서 부정적인 기운만 풍기고 다녔다고.

설마.

그랬다니까? 근데 지금은 아주 밝아졌어. 눈도 선해지고.

내 눈은 똑같아.

똑같이 예쁜 눈이지만 지금은 더 빛이 난다는 말이야.

라라는 한쪽 눈을 찡긋하며 웃어 보였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밝아졌다는 건 분명 그녀 덕분일거라 생각했다. 라라가 웃으면 따라 웃게 되고, 라라가 이끄는 곳은 포근함으로 가득했다. 그날 밤부터 앞날을 위해 많은 걸 경험해 보라는 늙은 여자의 말이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여자와의 대화를 회상할 때마다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나로서도 믿을 수 없는 것이었다.

엄청 좋아 하겠네.

 

 

예상대로였다.

역시 내 친구야! 정말 잘 생각 했어 장하다 장해!

그녀는 몇 분 동안이나 사람들의 이목이 모두 집중될 만큼 큰소리를 내며 나를 껴안고 소리쳤다.

근데 난 아직도 밤에 잠을 못 자잖아 잠을 못 자면 수업도 제대로 못들을 테고 어쩌다 일이 생겨서 제때 집에 도착이라도 못하는 날엔 어떡해.

그런 건 상관없어 내가 도와줄게.

나의 고민에도 라라는 별 문제 아니라는 듯 막힘없이 자신의 계획을 얘기했다. 그녀에겐 모든 게 쉬워 보였다. 마치 오래 전부터 준비하고 있었던 일인 것처럼.

그렇게 쉬운 문제가 아니야.

지금까지 많이 좋아졌잖아 앞으로 더 좋아질 수 있어, 믿어봐.

라라는 그날부터 우리 집에서 거의 살다시피 생활하기 시작했다. 결심이라도 선 듯 어느 날밤엔 어떤 때보다도 확고한 표정으로 양손가득 술을 사 들고 와서는 마셔보라고 권했다. 매일 밤 잠 못 드는 나를 위한 라라 나름의 비책이라지만 기본적으로 어떠한 일이 닥쳐도 완벽히 대처하기 위해 온전한 정신의 유지를 고집하는 내가 술을 마셔서 몸을 흩뜨린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모험이었고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라라는 참 많은 것을 변화 시켰다.

 

 

학교를 다니겠다고요?

늙은 여자는 놀란 눈을 허옇게 부릅뜨고 재차 되물었다.

괜찮을 것 같아서요.

여기저기 알리고 싶진 않았지만 입학을 하기 위해서는 학교생활에 문제가 없다는 진단서가 필요했다.

잘됐네요, 정말 잘됐어.

여자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지만 이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학교생활은 가능해요. 집단상담도 더 이상 필요가 없을 것 같고 생활비지원도 정상적인 생활을 한다고 판단되면 언젠간 끊길 거예요. 그렇게 되면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더 많아질 건데, 각오는 됐어요?

어느 정도는요.

한 달에 두 번씩 의무적으로 개인 상담을 받아야 해요. 그 외에 힘들거나 문제가 생겼을 땐 언제든지 도움을 청해도 되고요. 알고 있죠?

.

축하해요. 한 걸음 더 나아갔네요.

 

 

라라의 도움 덕인지 학교생활은 생각보다 순조로웠다. 한 학기 정도 지나니 밤에 잠드는 게 가능해졌고 또 한 학기가 지나니 저녁시간에 혼자 버스를 타는 것도 괜찮아졌다. 라라와 함께 하는 시간이 예전보다는 줄어들었지만 그녀는 진심으로 행복해했다. 학교얘기를 해줄 때면 어린아이처럼 귀를 기울였고, 공부하는 내 옆에 앉아 혹 방해가 될까 작은 숨소리마저 조심하며 지켜보고는 했다. 어색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지내는 것도 꽤 수월했다. 라라는 엄청난 발전이라며 감격에 겨워했다.

다행이다, 다행이야. 너무 기뻐 축하해.

내 두 손을 부여잡고 몇 시간째 같은 말만 되풀이하는 라라였다.

고마워 네 덕분이야.

라라는 말없이 고개를 내둘렀다. 울고 있었다. 그녀가 처음으로 내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기뻐서 그래. 이젠 정말 아무 걱정이 없어.

뭐가 그리도 서럽고 기뻤는지 라라의 눈물은 쉽게 그치지 않았다. 언젠가 그녀가 그랬듯, 부드럽게 끌어안고 등을 쓸어내리며 나는 말했다.

괜찮아, 우린 괜찮아.

라라의 몸은 더욱 세차게 흔들렸다. 참아온 모든 것을 터뜨리기라도 하듯 그녀는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접었다 펴길 수십 번. 행여 구겨질까 조바심 내며 편지를 읽어 내렸다. 이젠 하루의 시작과 마감을 알리는 중요한 의식처럼 되어버렸다. 라라가 없음을 인정하는 것과 빈자리에 익숙해지는 데에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조금씩 정신을 차릴 수 있을 때쯤, 그녀의 선택을 원망하진 않을 거란 말을 해주고 싶었다. 내게 용서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면 기쁜 마음으로 용서하겠다고, 앞으로의 날들이 미치도록 두렵지만 널 위해 살아가겠다고 곁에 남은 투박한 종이 한 장과 유골함 앞에 서서 고개를 떨어뜨린다. 맑고 순수한 라라의 영혼이 차마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살아가는 내내 끔찍한 비극의 책임을 물으며 스스로를 괴롭힐 자신이 없었을 것이다. 이미 늦어버린 지금, 그녀가 찾아준 삶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만이 유일한 보답의 길이리라. 그 누가 라라의 존재를 없애고 싶어 했을까. 좀 더 빨리 알아주지 못한 어리석음에 나또한 용서를 구하며 그녀가 믿었던 천국에서만큼은 주변까지 환하게 비추던 그 예쁜 미소를 잃지 않길 바랐다. 서로의 나눔을, 그날의 외침을 다독여야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해.

거리를 비추는 햇살이 유난히 밝게 빛나던 그 해의 어느 날이었다.

 

 

안녕 친구야. 너와 함께한 시간들 덕분에 내가 좀 더 행복하게 갈 수 있게 되었어. 물론 마음이 편하진 않아 네가 많이 슬퍼할 테니까. 언젠가는 날 용서해 주지 않을래? 이건 아주 오래 전부터 준비해 온 일이야. 아마도 엄마가 죽은 뒤부터겠지. 네가 이해해 주길 바란다면 내가 너무 이기적인 걸까? 그럼 존중은 어때? 이건 슬퍼할 일도, 원망할 일도 아닌 그저 약간의 존중이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오늘은 우리 엄마가 아빠라는 사람한테 모든 걸 빼앗긴 날이자 내가 만들어진 날이야. 스물한 살 엄마의 봄이었어. 지금 내 나이 때의 엄마는 지옥보다 못한 일을 당한 거야. 죽이지 못해 키운 나를 보면서 엄마는 굉장히 괴로워했고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어. 그렇게 엄마가 죽고 나서 꽤 많은 시간동안 내 삶을 저주하며 살아야했는데 어느 날 깨달았지, 엄마의 인생을 보상해 줄 방법은 내가 없어지는 것뿐이라는 걸. 진작 알았더라면 엄마가 죽지 않아도 됐을 텐데 말이야. 그래서 오늘 스물한 살의 나는 스물한 살의 엄마에게 용서를 빌며 이 세상에서 사라지려 해. 네가 많이 울지 않았으면 좋겠어. 지금 난 그 무엇보다도 널 울릴 수도 있다는 사실이 가장 슬퍼. 날 잊지 말아달라는 말이나 내 몫까지 잘 살아달라는 부탁은 하지 않을게 그건 너무 염치없잖아. 이것만 기억해줘 빛나는 길 위에 서있는 너의 곁엔 언제나 내가 함께 있을 거란 걸. 사랑해.


 

<이름>

윤 선미

 

<전자우편>

yoonstaro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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