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대학교

by 유명한남자 posted Feb 10,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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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대학교

 

커피 한 잔만 마셔도 잠을 설치는 과민성체질의 주 팀장은 새벽 3시가 넘도록 뒤척거렸다. 동양화가인 사촌 형님 개인전에 갔다가 커피를 배불리 마신 탓이었다. 6월답지 않게 후덥지근한 날씨도 한몫 거들었다.

 

평일인데도 인사동 거리는 꾸역꾸역 몰려드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지하에 있는 아라라는 갤러리로 들어서자 흐린 날의 뒷방처럼 우중충했다. 때마침 다과회 중이었다. 저녁도 때울 겸 일부러 그렇게 갔다. 사촌 형님은 손님 맞으랴 작품 설명하랴 여념이 없었다. 우선 개피떡을 몇 개 집어먹고 커다란 음료수 컵에다 포도 주스를 그득 따라 한 모금 마셨다. 뒷맛이 썼다. 입맛이 없어 그런가 싶어 또 한 모금 마셨다. 더 썼다. 포도 주스 페트병에다가 시커먼 블랙커피를 끓여 담은 거였다. 감쪽같이 속았다는 생각에 쓴웃음이 입가로 주룩 흘렀다. 워낙 음식 남기는 걸 싫어하는 성미라 잠 못 이루는 밤이 될 줄 뻔히 알면서도 벌컥벌컥 들이켰다. 포만감이 빠르게 느껴지면서 목구멍으로 꺽 하고 쓴맛이 올라왔다.

 

시커먼 블랙커피가 불러들인 잡념에 사로잡혀 얼마나 질질 끌려 다녔을까? 신문 배달 오토바이 소리에 깜짝 놀라 눈을 떴다. 이른 새벽의 검푸른 빛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창문을 뚫고 들어온 여명이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방 안의 회색 어둠을 창밖으로 내몰자 타원형 벽시계가 민낯을 내밀었다. 새벽 520분이었다.

벌써 출근하게요?”

……,”

아내는 만사가 귀찮은 듯 들은 척도 하지 않고 탁상시계 버튼을 꾹 눌러 알람 소릴 죽였다.

 

파트타임제로 아파트 청소 일을 하는 아내는 아침도 거른 채 3킬로가 넘는 거릴 3년 넘게 걸어 다녔다. 유난히 추웠던 작년 겨울에는 손발까지 얼어 터졌었다. 늘 그랬던 것처럼 엘리베이털 붙들고 서 있자 아내가 빛바랜 손가방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푸석푸석한 얼굴에 손이 퉁퉁 부어있었다. 뭐라 할 말이 없어 엘리베이털 타는 아내에게 손만 살짝 흔들었다.

 

아내가 빠져나간 집 안은 시베리아 벌판처럼 썰렁했다.

민구야, 학교 늦겠다.”

……,”

방문을 열어젖히고 녀석을 깨웠으나 무사태평이었다. 남들은 밤늦도록 공부하느라 코피를 쏟는데, 녀석은 게임 하느라 쌍코필 쏟았다.

야 인마, 수능시험도 며칠 안 남았잖아,”

……,”

녀석은 이불을 뒤집어쓴 채 죽은 척했다. 할 수 없이 방으로 들어가 엉덩이를 걷어찼다.

내가 동네 똥강아진가, 발로 차게,”

, 인마, 똥강아진 먹을 거만 주면 꼬리라도 잘 흔들지,”

그럼, 똥강아지나 데려다 가르치든가,”

이 녀석이 어디서 꼬박꼬박 말대꾸여,”

솔직히 아버지라고 해준 게 뭐가 있다고……,”

맞는 말이었다. , 중학교 졸업식 때도 회사에서 일만 했다. 생일도 까먹기 일쑤였다.

 

고등학교 졸업반인 녀석은 싸구려 하숙집 같은 집구석이 싫어 불량 학생들과 자주 어울렸다. 게임방에 들락거리다 돈이 떨어지면 선량한 학생들 주머니까지 털었다. 아내의 간곡한 부탁으로 퇴학 처분만은 면할 수 있었지만, 앞날이 캄캄했다.

 

뱀 허물 벗듯 몸만 쏙 빠져나간 녀석의 방은 돼지우리나 다름없었다. 수북이 쌓인 담배꽁초, 아무렇게 벗어 던진 옷가지, 책꽂이에는 교과서보다 불량 서적이 더 많았다. 당장 불량 서적과 컴퓨털 내다 버리고 싶었지만, 주먹으로 가슴만 후려치고 말았다. 작년에도 홧김에 컴퓨터 때려 부쉈다가 새 컴퓨터 사주느라 아내만 골탕 먹었었다.

 

흐트러진 책들을 책꽂이에 꽂다가 책상 위에 떨어진 사진 한 장에 시선이 멈췄다. 큰아들인 찬구의 사진이었는데, 밝게 웃고 있었다. ‘아버지, 학교 다녀오겠습니다.’라는 목소리가 귓가에 쟁쟁했다. ‘꿈은 이불 속에서 꾸는 것이 아니라 책상 앞에서 키우는 것이다.’ 라는 문구를 써 붙어놓고 밤새도록 공부하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손으로 사진 속의 얼굴을 어루만지자 왠지 모를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 설거지와 청소를 했다. 체면이 거실 바닥에 떨어져 휴지 조각처럼 굴러다녔지만, 이삿짐센터에서 일하다 허릴 다쳐 마땅한 일거리도 없었다.

 

한바탕 난리를 치르고 나니 맥이 쭉 빠졌다. 일상적인 생활에 짜증이 났다. 부지런한 초여름의 해는 새벽같이 일어나 두툼한 어둠을 걷어내고서야 도봉산봉우릴 어슬렁어슬렁 기어올랐다.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앉은뱅이책상 앞에 앉아 소설책을 읽다 보니 글씨가 안 보일 정도로 어두워졌다. 전기밥솥에다 밥을 안치고 감잣국을 끓였다. 냉장고에서 시어 꼬부라진 김치와 짜디짠 깻잎 장아찌만 꺼내면 됐다. 달걀이 몇 개 있었지만, 밥투정이 심한 명구 때문에 손대지 않았다. 녀석은 항상 늦었다. 아예 안 들어올 때도 있었다. 아내도 늦는 편이었다. 주말에는 자정을 넘길 때도 있었다. 아파트 청소를 끝내고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식당에서 허드렛일을 했다. 감잣국에다 밥 한술 뜨려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아내가 뼛골 빠지게 번 돈을 사기당한 후로는 전화통만 보면 가슴이 콩닥거렸다. 전화벨 소리는 점점 요란해졌다. 머뭇거리다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오늘 당신 생일이라 일찍 들어가려 했는데, 주말이라……,”

아내의 목소리는 착 가라앉아 있었다.

백수건달 주제에 생일은 무슨……,”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삐뚜름하게 걸린 벽시계를 쳐다봤다. 저녁 730분이었다.

 

유명그룹 인사팀장으로 있을 때만 해도 전화통이 뜨끈뜨끈했었는데, 회사에서 쫓겨난 후론 전화해도 받는 놈이 없었다. 수첩을 뒤적이다 혹시나 하고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네가 갑자기 웬일이냐?”

그냥 궁금해서……,”

……,”

입사 동기 중에 가장 친했던 회계팀장이었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사업을 하다 쫄딱 망했을 때 전세보증금까지 빼 줬던 대학 동창 녀석도 마찬가지였다. 땅이 꺼질 듯 한숨을 내쉬다 빨간 돼지저금통으로 시선이 꽂혔다. 다짜고짜 면도칼을 들이대자 히쭉 웃던 돼지저금통이 몸을 바짝 움츠렸다. 얼마나 굶주렸는지 뱃속엔 거지 떼만 우글거렸다. 한 옴큼밖에 안 되는 동전을 잠바 주머니에다 집어넣고 길 건너 슈퍼로 갔다.

아줌마, 얼음처럼 차가운 소주 있죠?”

주량이 소주 한 병이었지만, 오늘만큼은 세상모르고 곯아떨어지고 싶었다. 눈만 뜨면 귀찮게 찾아오는 아침이 싫어 아예 눈을 감아버려도 괜찮을 것만 같았다.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길 건너편 어린이 놀이터로 갔다. 늦은 밤이라 웬 중년 남자만 벤치에 앉아 부스럭거렸다. 남루한 형색으로 미루어 정상적인 사람 같진 않았다. 눈에 뵈는 게 없어 겁날 건 없었지만, 어렵게 잡은 분위기라 신경이 쓰였다. 두리번거리다가 반대쪽 구석으로 갔다. 별빛밖에 없는 그믐밤이라 어둑어둑했다. 땅바닥에다 신문지를 깔고 상을 차렸다. 소주 세 병에 새우깡 한 봉지였지만, 백수의 생일상치고는 그런대로 괜찮았다.

 

소주병 뚜껑을 확 비틀자 막혔던 코가 뻥 뚫리면서 숨통이 트이는 듯했다. 아니나 다를까 맞은편 벤치에 앉아있던 정체불명의 남자가 어슬렁어슬렁 다가왔다. 양어깨가 축 처진 그는 키꺽다리에 얼굴이 길쭉했다.

실례합니다만 좀 앉아도 될까요?”

그가 긴 허릴 구부정하게 꺾고 배짱 좋게 바투 다가앉자 고갤 홱 돌려버렸다.

집에서 빈둥대다 마누라한테 쫓겨났나 보죠?”

……,”

그의 비아냥거림에 은근히 부아가 치밀었다. 머리통을 들이박고 싶었지만, 워낙 덩치가 커 얼굴만 힐긋 쳐다보고 말았다.

담배 한 대만 빌립시다. 이놈의 동넨 담배도 안 피우는지 그 흔한 담배꽁초도……,”

주 팀장의 작달막한 체구가 만만했던지 그는 제멋대로 나불거렸다. 입을 열 때마다 똥내가 풍겨 속이 울렁거렸다. 꼭 재래식 화장실에 앉아 있는 기분이었다.

담배는 없고 소주나……,”

주 팀장이 치솟는 감정을 억누르며 종이컵에다 소주를 따라 건네자 기다렸다는 듯 단숨에 잔을 비워버렸다. 입이 재래식 화장실 같아 그렇지 막돼먹은 놈 같진 않았다.

 

이것도 인연인데, 이왕이면 기분 좋게 마십시다. 건배도 하고요.”

그가 소주병을 뺏어 들고 너스렐 떨었다. 주객전도라더니 꼭 그 짝이었다.

술잔이 몇 순배 돌자 그의 굵직한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동대문시장 지게꾼부터 노점상, 막노동 등 안 해 본 게 없다고 했다. 믿을 수 없지만, 남대문 도깨비 시장에서 수입 장사할 땐 고급 외제차까지 끌고 다녔다고 했다.

 

그렇게 잘 나가던 양반이 어쩌다가 이 모양이 이 꼴이 됐소.”

주 팀장의 굳게 닫힌 말문이 술김에 스르르 열렸다.

경마와 여자에 미쳐 그 많던 돈 다 날리고 이혼까지 당했죠.

애들은 없었소?”

중학교 2학년짜리 딸내미가 있었는데, 얼마 전 가출해버렸죠. 자식이라고 달랑 그거뿐인데, 어쩌겠소. 어떻게든 찾아야지……,”

괜한 걸 물었나 싶어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랬었군요.”

, 자업자득이죠. 방랑 시인도 아닌 방랑 거지가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사흘을 굶으니깐 쓰레기통까지 뒤지게 됩디다. 오늘도 유통기간 지난 빵과 막걸리로 끼니를 때웠죠.”

남의 일 같지 않아 땡감을 한 입 베어 문 것처럼 입맛이 떨떠름했다.

나는 입이 아파 좀 쉬어야겠소. 어디 형씨 얘기나 좀 들어봅시다.”

궁금한 게 많았던 그가 채근하듯 주 팀장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이런 얘기 하면 졸릴 텐데,”

잠이 폭포수처럼 쏟아져도 좋으니 얼른……,”

그는 작정이라도 한 듯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머뭇거리던 주 팀장이 꽁꽁 묶어놨던 이야기보따릴 풀기 시작했다.

 

3년 전, 큰아들인 찬구의 고등학교 졸업식이라 일손이 잡히지 않았다. 하던 일을 밀쳐놓고 창가에 기대 담배를 피워 물었지만, 머리만 지끈거렸다. 창밖에는 때늦은 폭설이 앞이 안 보일 정도로 퍼부었다. 필터만 남은 담배를 비벼 끄고 컴퓨터 앞에 막 앉으려는데 전화벨 소리가 다급하게 울렸다.

여보세요. 튼튼히 병원 간호산데요. 찬구 아버님 되시죠?”

, 맞습니다만……,”

지금 병원으로 빨리 오셔야겠어요. 찬구가 위중한 상탭니다.”

……,”

낮에 통화까지 했는데 무슨 소린가 싶었다. 작년에도 비슷한 전화를 받은 적이 있었다. 그때도 신입사원 채용과 인사발령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을 때였다. 보호자가 없어서 그런다며 불러준 계좌로 백만 원을 입금하라는 거였다. 빨리 입금하지 않으면 수술을 못 해 위험할 수도 있다며 겁까지 줬다. 때마침 걸려온 아내의 전화로 안도의 한숨만 내쉬고 말았지만, 한동안 전화 공포증에 시달려야 했다.

 

별일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찬구가 교통사고로 병원에 실려 갔다는 게 사실이오?”

무슨 소리여요. 졸업식 끝나고 점심까지 사줬는데,”

아내의 침착한 목소리에도 놀란 가슴은 진정되지 않았다.

여보세요. 거기 튼튼히 병원이죠? 혹시 찬구라는……,”

, 맞습니다. 지금 빨리 오셔야겠습니다. 자정을 못 넘길 수도 있으니까요.”

간호사의 다급한 목소리가 휴대폰 밖으로 뛰쳐나와 가슴을 마구 두드렸다.

 

사무실을 황급히 빠져나와 택시를 잡았으나 갑자기 내린 폭설로 정체가 극심했다. 뚱뚱한 체격에 머리가 희끗희끗한 기사는 남의 속도 모른 채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에 맞춰 고개만 끄덕였다.

아저씨? 빨리 좀 갈 수 없어요. 지금 우리 찬구가……,”

뒤늦게 분위기를 파악한 기사가 라디오를 끄고 뒤쪽을 힐끗 쳐다봤다.

죄송하게 됐습니다. 전 그런 줄도 모르고……,”

무거운 침묵에 휩싸인 택시는 가다 서기를 반복했다.

 

의정부 튼튼히 병원에 도착했을 땐 밤 9시이었다.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응급실로 뛰었다.

찬구 아버님이시죠?”

간호사는 외투도 안 걸친 채 헐레벌떡 달려온 주 팀장을 단번에 알아봤다.

우리 찬구 괜찮은 거죠? 그렇죠?”

죄송한데요. 워낙 크게 다쳐 서울대병원으로 옮겼거든요. 다행히 어머니가 오셔서……,”

간호사는 기어들어가는 말끝을 흐리며 고갤 돌렸다.

 

택시를 잡으려고 큰 도로로 나갔으나 새벽 찬바람만 사정없이 두 뺨을 후려갈겼다. 외투도 안 걸친 채 얼마나 덜덜 떨었을까? 시내 쪽에서 흰 눈을 뒤집어쓴 개인택시 한 대가 엉금엉금 기어왔다.

더블로 드릴 테니 서울대병원으로 빨리 좀 갑시다.”

지금 아침 먹으러 가는 중인데……,”

조수석에 앉자마자 애원했지만, 칠십 초반의 노인은 아무리 바빠도 밥부터 먹어야겠다는 심산이었다. 처음엔 백발에 긴 눈썹까지 새하얘 웬 산신령이 운전댈 잡았나 싶었다.

아침은 서울 가서 제가 사드릴 테니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

글쎄요. 워낙 도로가 미끄러워서……,”

그렇게 급하면 다른 택시를 타라는 식이었다.

 

사정사정해서 출발은 했지만, 빙판길이라 차들이 거북이걸음이었다. 도봉산역쯤에서 신호등에 걸리자 산신령은 손으로 배를 쓱쓱 문지르며 하품만 연신 해댔다. 밥 먹고 가자고 그럴까 봐 몹시 불안했다. 아내의 휴대폰마저 먹통이라 미칠 지경이었다. 실례를 무릅쓰고 담배를 한 모금 길게 빨아 창밖으로 내뿜자 신기하게도 교회의 십자가가 눈에 들어왔다. 얼떨결에 피우던 담배를 눈 더미에다 집어 던지고 두 손을 모았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시여 가엾은 우리 찬구 좀 부디 굽어 살펴주시옵소서……,”

무신론자였던 주 팀장의 기도는 간절했다. 기도 덕분인지 미아리고개에 쭉 늘어섰던 차들이 꽁지가 빠지라 내뺐다.

 

서울대병원 응급실은 각처에서 몰려든 교통사고 환자들로 북새통이었다. 아무리 찾아도 찬구와 아내는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우리 아들 좀 찾아주세요. 우리 찬구 말이에요.”

아무한테나 매달려 울부짖었다.

여보?”

반갑게도 아내였다. 얼마나 울었는지 얼굴이 퉁퉁 부어있었다.

찬구는……,”

여기 있잖아요.”

바로 옆에 있었는데도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붕대로 칭칭 감겨있어 알아볼 수가 없었다. 산소 호흡기를 뒤집어쓴 채 침대에 반듯이 누워있는 찬구를 보자 가슴이 찢어지듯 아려왔다.

찬구야? 그렇게 누워만 있지 말고 뭐라고 말 좀 해봐,”

찬구의 손을 끌어다 얼굴에다 비볐지만, 미동도 하지 않았다. 처자식이야 어떻게 됐든 회사밖에 몰랐던 자신이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다.

다 못난 아비 때문이야! 아비 때문에 이렇게 된 거라고……,”

아닙니다. 다 저 때문입니다.”

 

바닥에 주저앉아 흐느끼다 귀에 익은 목소리에 고갤 치켜들었다. 찬구의 단짝인 동식이었다. 깁스한 오른팔을 붕대로 친친 감아 목에 걸고 목발을 짚었지만, 큰 부상은 아니었다.

아버님, 정말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동식아, 이게 웬 날벼락이냐?”

……,”

동식은 돌아서서 훌쩍거리기만 했다.

뭐라 안 그럴 테니, 사실대로 말해 봐,”

휴게실로 데려가 살살 달래자 잔뜩 부르튼 동식이 입이 열리기 시작했다.

 

졸업식이 끝나고 돼지 갈빗집에서 점심을 먹었거든요. 학교 근처였는데, 어머니는 바쁘다고 중간에 가셨고, 둘만 남게 됐죠. 식당에서 나와 큰길 건너 노래방엘 가려는데, 찬구가 아버지가 보고 싶다며 종로에 있는 회사로 가겠다는 거예요. 우등상을 타 기분이 좋았었나 봐요. 그때 붙들지만 않았어도……,”

……,”

동식은 목이 메어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진정하고 차근차근 말해 봐,”

두 시간 정도 놀다 밖으로 나오니깐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 거예요.

그래서……,”

찬구가 또 아버지한테 가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데려다주려고 오토바이에 올라타니깐 술에 취해 위험하다며 키를 뺏는 거예요. 제가 교통비 좀 아끼려고 고물 오토바일 타고 다녔거든요. 찬구가 피자집에서 아르바이트할 때 많이 타봤다면서 저를 뒤에 태우는 거예요. 술도 안 마셨고, 워낙 침착한 애라 안심했죠. 망월사역 사거릴 지나 유명약국 앞에서 신호대기 중이었는데, 갑자기 뒤에서 외제차 한 대가……,”

 

안녕하십니까. 주찬구의 아버님 되시죠?”

동식이 얘기에 넋을 잃고 서 있던 주 팀장 앞으로 웬 낯선 남자 둘이 다가왔다.

그렇습니다만,”

의정부경찰서 강경식 경사입니다. 이쪽은 같이 근무하는 엄정한 경장이고요. 경황이 없으시겠지만, 이번 사건에 대해 협조 좀 해주셔야겠습니다.”

그러잖아도 연락드리려던 참이었는데……,”

주 팀장이 오른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자 강 경사도 예의를 갖춰 손을 잡았다.

제가 묻는 말에 사실대로 답변만 하시면 됩니다.”

50대 초반의 강 경사 질문은 간단명료하면서도 단호했다.

찬구의 성격은 어땠습니까?”

자식 자랑 같지만, 온순하고 착했죠. 여태껏 말썽 한 번 피운 적 없었으니까요.”

취미는요?”

책밖에 몰랐죠.”

어떤 책이었나요?”

꿈이 세계적인 물리학자라 블랙홀은 검은 것이 아니라 빛보다 빠른 속도의 입자를 방출하며 뜨거운 물체처럼 빛을 발한다는설은 주장한 스티븐 호킹 박사 책을 즐겨 읽었죠.”

장한 아드님을 두셨군요.”

강 경사의 질문은 길어졌다. 가정환경, 종교, 교우관계 등에 대해 자세히 물었다. 엄정한 경장은 손바닥만 한 수첩을 꺼내 들고 동식에게 뭔가를 꼬치꼬치 캐물었다.

 

사고현장은 다녀오셨겠죠?”

조바심이 났던 주 팀장이 강 경사에게 한마디 툭 던졌다.

물론이죠. 난데없는 폭설로 비상근무 중이었는데, 유명약국 앞에 학생 둘이 쓰려져 있다는 전화를 받고……,”

강 경사는 아내가 뽑아다 준 커피를 홀짝이며 말을 이어 갔다.

현장에 도착했을 땐 119구급차가 다녀간 뒤라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오토바이밖에 없었죠.”

그렇게 늦게 도착했단 말입니까?”

폭설 때문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

목격자나 단서가 될 만한 유류물도 없었나요?

주 팀장이 미궁에 빠질지도 모른다는 초조감에 다그쳐 물었다.

뺑소니 차량 것으로 추정되는 앞 범퍼조각을 수거했는데, 국과수 결과가 나오려면 열흘은 되어야 할 겁니다. 그러고 눈 속에서 손목시계를 발견했죠. 사각형에 까만 가죽 끈이었는데, 찌그러진 시곗바늘이 저녁 6시를 가리키고 있었죠. 바로 이 시계입니다.”

강 경사가 잠바 안주머니에서 시계가 든 흰 봉투를 꺼내 건넸다.

 

생일선물로 사준 시계와 같이 산산이 부서진 찬구의 세계적인 물리학자의 꿈은 그야말로 처참했다. 이미 명문대에 합격한 터라 그 애통함은 무어라 형언할 길이 없었다. 찬구를 위해 할 수 있는 건 기도밖에 없었다. 의식만이라도 찾게 해준다면 목숨이라도 기꺼이 바치겠다며 하나님께 빌고 빌었다. 2주쯤 되자 가늘게나마 찬구의 눈이 떠졌다. 그러나 아직 의식불명 상태였다. 병시중하던 아내마저 몸져눕자 휴직을 할 수밖에 없었다. 회사에선 명예퇴직을 종용했지만, 눈덩이처럼 불어난 병원비와 학자금 때문에 어떡하든 버텨야만 했다.

 

주 팀장의 소설 같은 얘기에 심취해 있던 키꺽다리가 자기 일이라도 된 양 씩씩거리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 때려죽일 놈은 아직도 못 잡았나요?”

찬구의 한이라도 풀어주려고 목격자를 찾습니다.’라는 현수막을 여러 곳에 내걸고, 수천 장의 전단지를 돌렸지만, 돌아온 건 회사에서 보낸 해직 통보서와 아파트를 팔아도 모자랄 빚뿐이었죠. 그때부터 착하기만 했던 명구도 비뚤어지기 시작했고요.”

저는 그런 줄도 모르고…… 마음도 심란한데, 노래나 한 곡 불러드릴게요.”

그는 빈손으로 기타 치는 흉내를 내며 시키지도 않은 노래를 불러 젖혔다.

 

그대 보내고 멀리 가을 새와 작별하듯

그대 떠나보내고 돌아와 술잔 앞에 앉으면

눈물 나누나……

 

그대 보내고 아주 지는 별빛 바라볼 때

눈에 흘러내리는 못다 한 말들 그 아픈 사랑

지울 수 있을까……

 

김광석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노래였는데, 어찌나 가슴을 후벼 파는지 온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

차라리 가수나 하지 그랬소.”

사실은 가수의 꿈을 품고 시골서 올라왔는데, 잘난 놈들이 많더라고요. 실력도 실력이지만, 학벌과 돈이 없으니깐 안 되겠더라고요. 가정 형편상 중학교 밖에 못 나왔거든요.”

그 양반들 되게 시부렁대네, 시끄러워서 통 잠을 잘 수가 있어야지……,”

옆집 창문이 드르륵 열리더니 웬 신경질적으로 생긴 아줌마가 소릴 버럭 질렀다.

죄송합니다. 친구 생일이라서……,”

그가 능청스럽게 둘러대자 열렸던 창문이 드르륵 닫혔다.

 

소주에다 독약 같은 고독을 섞어 마셨더니 빠르게 취기가 오르면서 가로등 불빛이 가물거렸다. 마음은 집으로 가자고 손을 잡아끄는데, 축 늘어진 몸뚱이는 땅바닥에 꽉 잡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노닥거리던 꺽다리도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손으로 땅을 짚고 일어나려다 꼬꾸라지고 말았다. 이따금 식어 빠진 밤바람만 귓전에 스칠 뿐 고요했다.

 

뭉게구름을 타고 얼마쯤 올라갔을까? 수백만 평의 별밭 가운데로 푸른빛의 은하수 다리가 눈에 들어왔다. 보석을 깔아 놓은 것처럼 반짝거렸다. 뭉게구름에서 내려 은하수 다리 위를 걸었다. 꽤 길었지만,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그냥 마음만 먹으면 됐다. 은하수 다릴 막 건너서자 무지갤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아치형의 커다란 문이 보였다. 눈이 부셔 쳐다볼 수가 없었다. 문에는 하늘 대학교(sky university)라고 크게 쓰여 있었다.

아버지, 여기요.”

저만큼에서 찬구가 뛰어오고 있었다. 청바지에 흰 셔츠를 입었는데, 옛 모습 그대로였다.

찬구야, 정말 오랜만이구나!”

……,”

찬구는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싱긋 웃기만 했다.

아버지, 여기가 제가 다니는 하늘 대학교에요 교수진도 쟁쟁하죠. ‘지식보다 중요한 것은 상상력이다.’라는 명언을 남긴 아인슈타인, ‘사과나무에서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떠올렸다는 뉴턴, 그 외도 유명한 교수들이 많죠.” 제가 좋아하는 스티븐 호킹 박사도 곧 하늘 대학교로 오실 거고요.”

찬구는 어깨를 으쓱대며 학교자랑에 신이 났다.

그러고요. 모든 게 다 무료에요. 자동차 오토바이가 없어 사고가 날 염려도 없고요.”

……,”

 

얼마나 드르렁드르렁 코를 골았을까? 신문 배달 오토바이 소리에 반사적으로 몸을 벌떡 일으켰다. 꼭 하늘나라에 다녀온 기분이었다. 꿈이었지만, 찬구를 만난 건 크나큰 행운이었다. 고갤 꺄우뚱거리며 집을 향해 터벅터벅 걸었다.

 

현관문을 조심스레 열고 거실로 들어서자 소파에 앉아 꾸벅꾸벅 졸던 아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밤을 꼴딱 새웠는지 눈이 푹 꺼져있었다. 탁자 위에는 케이크와 샴페인 한 병이 놓여있었다.

밤이슬에 속눈썹까지 적은 걸 보니 무슨 좋은 일이라도……,”

아내가 퉁명스럽게 쏘아 붙었다.

하도 답답해서 밖에 좀 나갔다가……,”

그럼, 못 들어온다고 전화라도 해야죠?”

그게 좀……,”

별 거지 같은 놈하고 밤을 새웠다는 얘길 차마 할 수 없었다. 요금 체납으로 휴대폰이 끊겼다는 얘기도 할 수 없었다.

 

장승처럼 서 있지만 말고 이쪽으로 좀 앉아요.”

아내가 상자에서 케이크를 꺼내자 콧날이 시큰거렸다.

여보, 생일도 지났는데……,”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에 속에 없는 소릴 슬쩍 흘렸다.

뭐가 지나요. 난 한잠도 못 잤는데, 시계하고 달력만 안 쳐다보면 되지……,”

여보, 미안해요. 앞으로 잘할게요.”

아내는 아무런 말도 없이 주르륵 흘러내리는 케이크의 촛농만 바라봤다.

여보, 어젯밤 꿈에 찬구를 만났는데, 하늘 대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더라고요.”

우리 찬구가요?”

아내가 깊은 한숨을 몰아쉬며 텁텁한 입을 열었다.

인제 찬구는 하나님의 아들이에요. 온 인류의 아들이기도 하고요. 우리는 열심히 기도만 하면 돼요. 그러고 그 뺑소니 운전자 잡혔더라고요. 어젯밤 TV에서 봤는데, 키꺽다리에 얼굴이 길쭉했어요. 꼭 알코올 중독자처럼 생겼더라고요. 생각 같아선 당장 쫓아가 요절을 내고 싶었지만, 이미 끝난 일인데,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그동안 얼마나 쫓겨 다녔던지 다 죽게 됐더라고요.”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는 아내의 말에 숙연해졌다. 하나님 얘기만 나오면 손사랠 활활 치던 아내는 어느새 믿음이 깊은 집사가 돼 있었다. 술이나 퍼마시며 방황하는 사이 아내는 밤새도록 마음을 비우고 있었던 거였다.

 

  아내는 바윗덩이 같은 몸을 이끌고 어김없이 출근했다. 몰골이 흉해 얼굴을 쳐다볼 수가 없었다. 아내는 작은 뜰이자 작은 수도원이라는 베토벤의 말을 곱씹으며 민구를 두드려 깨웠다. 청소도 하고, 밀린 빨래도 깨끗이 해치웠다. <>

 

 

장르: 단편소설

제목: 하늘 대학교

성명: 류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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