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by 애니 posted Mar 29,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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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노인은 잠에서 깬 이후, 줄곧 자신의 팔과 가슴에 주렁주렁 달린 영양제와 진통제가 들어있는 투명한 병과 비닐봉지, 링거 줄을 번갈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노인의 시선은 진통제가 흘러내리고 있는 작은 병에서 한참을 머물었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노인의 시선은 밥을 먹지 못하는 노인에게 영양분을 공급하는 우윳빛 액체가 담긴 봉지로 옮겨갔다.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가하는 그 순간 노인의 눈이 번뜩였다. 노인의 생각은 일순간 아들이 사준 시계로 옮아갔다. 노인의 시간도 찰나에 그 어디쯤으로 옮겨가 있었다. 노인은 오른 손으로 왼쪽 손목을 만지작거리며 허전한 듯 왼쪽 손목을 한참 바라보았다. 노인은 아들이 사준 비싼 손목시계를 고쳐야 하는데 여태 고쳐 놓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있었다. 노인의 마음이 급해졌다. ‘다음 주에 명자 딸 결혼식이 있지. 곤색 양복에다 그 시계를 차고 가야 어울릴 것인데생각이 여기에 다다르자 노인은 자신의 늙은 아내를 불렀다. “ 승욱아! 승욱아!” 노인은 아내를 부를 때 아들의 이름으로 불렀다.

 

다음 주 명자 딸 결혼식이 있제? 무슨 요일이고?”

 

노인의 아내는 어떻게 대답해야할지 난처하다는 표정으로 노인의 얼굴을 살피고는 대답했다.

 

, . 가만있자 수요일인가? 목요일인가?”

 

노인은 한심하다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금세 화가 치솟아 얼굴이 시뻘게져서 소리 쳤다.

 

매사 똑바로 하는 일이 없어! 우리 아들 승욱이가 사준 노렉스 시계 고쳤는가? 안 고쳤지? 내 그럴 줄 알았다. 결혼식전에 고쳐놓아야 한다고 몇 번을 얘기했어. 도대체 그 대갈 통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뭣이 있는고. 한심하긴.”

 

노인의 아내는 일평생 자신을 괴롭히고 윽박지르던 노인이 다 죽어가는 지금까지도 기가 죽거나 주눅이 들기는커녕, 노인을 간호하는 자신에게 미안해하거나 그동안의 일을 반성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큰 소리를 치는 노인에게 없던 정이 더 떨어지고 더 이상 자신을 괴롭히지 말고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노인의 기억이 가져온 과거의 일이나 혹은 맥락 없이 노인의 뇌에서 만들어진, 노인의 아내로서는 알 수 없는 이야기로 윽박지르는데도 노인의 아내는 습관적으로 안절부절 못하여 무슨 얘기를 해야 노인의 성이 가라앉을까 생각하고 있었다.

명자 딸은 작년에 이미 결혼식을 올렸고 아들이 사준 고급 시계라며 애지중지하던 시계는 몇 번을 고쳤지만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서 장롱에 넣어두었다고 얘기를 하면 노인은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고 오히려 자신을 병신이라며 탓할 것이 뻔하다 여겨 노인의 아내는 대충 둘러대었지만 노인이 예상보다 더 화를 내자, 노인의 아내는 차라리 당신은 이제 노망이 나서 조카 딸년 결혼한 것도 모르고 시계가 고장 난 것도 모르고 며칠인지도 헷갈려 하는 미친 영감탱이다. 그놈의 주둥아리 함부로 놀리고 이래라 저래라 한 번만 더 하면 어디 후진 요양원에 쳐 박아 놓고 다시는 오지 않을 테다.’라고 말할 걸 후회했다. 이 마당에 뭣이 두려워 찍 소리 못하고 힘없이 죽어가는 쭈그렁 영감에게 당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잠들어 있는 노인의 얼굴을 바라보노라면, 산골에서 소를 키우며 세월을 보낸 노인의 외로움이 고스란히 느껴져 측은한 마음이 일어나는 것 또한 어쩔 수 없었다.

 

노인의 손등은 땅 밖으로 울퉁불퉁하게 솟아나와 있는 물기 빠진 늙은 나무의 뿌리 같았고 그 손등의 굵은 핏대를 따라 사마귀인지 굳은살인지 모를 것들이 파편처럼 흩어져 박혀있었다. 소꼴을 베느라 일생을 보낸 노인의 손바닥은 풀에 베이고 긁힌 상처 사이로 풀물이 들어 거칠고 어두운 풀빛을 띠고 있었다.

 

노인은 번뜩 정신이 다시 돌아왔다.

 

내가 방금 이상한 소리를 했는가? 요즘 영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가질 않아. 승욱이는 온다고 했는가? 온다고 해도 바쁘면 올 필요 없다고 해. 한 번 다녀가려면 비행기 삯이 얼만데.”

 

노인은 외국에서 유명한 큰 회사의 높은 자리에 올라있는 아들이 자랑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아들이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농사짓고 소 키우며 자신 옆에서 살면 얼마나 든든하고 좋을까 생각을 했다.

 

노인의 눈은 짙은 그리움 때문인지 순하고 깊어졌다.

 

노인의 시간은 과거 어디쯤으로 가 있었다.

노인은 팔과 다리의 잔 근육이 팽팽하게 잡힌 채 밭을 갈고 있었다. 밭가에는 가져온 새참을 차리는 아내와 이제 걸음마를 시작한 아들이 흙을 만지며 놀고 있었다. 노인은 그들을 흘끗 바라보았다. ‘ 이제 소로 밭을 가는 것은 그만 두어야겠어. 큰 동네에는 벌써 경운기를 들여 밭을 가는 데 자신도 내 년 부터는 어떻게든 경운기를 사야겠어. 그러면 농사도 더 많이 지을 수 있고 소꼴도 더 많이 베어올 수 있을 것이 여러모로 도움이 될 거야.’

 

노인의 얼굴은 결연해보였다.

 

노인의 시간은 직선으로 흐르지 않았다. 그야말로 노인은 시공을 넘어 존재하고 있었다. 5분이 지나지 않는 시간 동안에도 그의 시간과 장소는 자신의 어린 시절 학교 교실에서 옛 친구들과 얘기를 나누다가 다시 아들을 낳던 해로 갔다가 다시 현재로 돌아왔다. 노인은 여러 시간을 살고 있었다.

 

그렇지요. 다녀간 지 얼마나 되었다고 또 그 먼 길을 오라고 할 수 없지요.”

 

노인의 아내는 노인이 다시 제 눈빛을 찾은 것을 확인하는 듯 노인의 얼굴을 한 참 살피고는 말했다. 노인이 아들을 얼마나 각별하게 생각하는지도, 또 얼마나 보고 싶어 하는지도 알았지만 노인의 말대로 노인의 아내는 아들을 불러들이지 않을 작정이었다. 아들이 회사에서 제법 높은 자리에 올라갔다고 하는데 자꾸 불러들여 회사 일에 지장을 주고 싶지도 않았으며, 노인이 죽게 되면 다시 와야 할 텐데 여러 번 아들을 불러들여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노인의 아내 역시 아들과 며느리가 옆에 있었으면 하는 원망의 마음을 일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다녀간 지 얼마 되지 않는다고 노인에게 말했지만 노인이 아픈지 일 년 가까이 되어가지만 삼 개월 전 노인의 병세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전하고서야 한 번 들러 이틀 밤을 보내고 간 것이 전부였다. 아들 며느리가 있다고는 하지만 멀리 타국에 살고 있으니 몇 날 며칠을 병원 간이침대에서 쪽잠을 자고 있지만 하루 밤 교대해 주지 못했고 두 딸 역시 간간히 찾아오긴 했지만 하루 밤 같이 있어주지 않았다. 큰 딸은 가게를 비우기 어렵다 했고 막내딸은 회사가 바빠서 월차내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오로지 혼자서 이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하는 자신의 처지가 서러웠다. 노인의 아내는 서러운 마음이 들 때면, 그래도 아들이 병원비를 보내 주었고 병원에 입원하기 전에는 딸들이 교대로 병원에 데려다 주고 했으니 그것만도 감사할 일이지 해 준 것도 없으면서 자식들에게 많은 것을 바라면 안 되지. 혼자 중얼거리며 서러운 마음을 달래었다.

 

*

 

노인의 모습은 며칠 사이에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었다. 여기저기 솟아오른 죽음 꽃과 물기가 빠져 줄어든 입술은 벌어져 그 사이로 간신히 공기가 드나들었다. 변은 열흘 째 보지 못해 가스가 찬데다 폐에 물이 차서 노인의 배는 임산부처럼 불룩 솟아 있었다.

 

열흘 전 1인실로 옮기기 전 노인은 7인실에 있었다. 노인의 아내는 병실비가 6천원인 7인실에 계속 있고 싶었다. 그러나 노인이 병원에 입원하기 전, 상당한 액수가 모인 통장을 노인의 아내에게 내 놓으며, 자신의 병세가 악화되어 대소변을 가릴 수 없게 되면 추한 꼴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고 싶지 않으니 꼭 1인실로 옮겨달라고 했었다. 그러나 노인의 아내는 알았다고 해놓고 계속 옮기질 알았다. 노인의 아내는 노인이 죽은 후를 생각하고 있었다.l 노인이 소를 키울 때는 송아지를 팔아 생활비를 했지만 자신 혼자 소를 키울 수도 없고 아들이 먼저 용돈을 주면 모를까 먼저 아들에게 용돈을 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딸들 또한 자기들 산다고 바빠서 자신을 돌볼 여유가 없는 마당에 자신의 수중에 돈이 있어야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되도록 오래 7인실에 있으려 했다. 어차피 노인의 정신이 온전하지 않으니, 1인실인지 7인실인지 잘 구분하지도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병실 옮기는 것을 차일피일 미루었다. 어느 아침 환자복 바지도 입혀지지 않은 채 기저귀만 차고 있는 자신을 인식한 노인은 아내를 향한 분노를 터트렸다. 아침을 가져오는 아내의 손을 세차게 쳐버렸다. 그 날 저녁 결국 1인실로 노인을 옮기게 되었다.

 

노인의 막내딸이 병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노인의 딸은 열흘 사이 확 달라진 노인의 모습에 통곡했다.

 

아빠! 아빠! 미안해. 혼자 오래 있어서 이렇게 된 거야. 엄마가 우리 영인이 본다고 아버지 혼자 그 산골에 혼자 계시게 해서 잘 못 먹고, 외로워서 이렇게 된 거야. 미안해. 미안해. 아빠아--”

 

노인의 막내딸은 노인에게 아빠라는 호칭을 쓰고 반말을 하는 유일한 자식이었다. 아들과 큰 딸은 노인을 어려워하며 거리감을 느꼈지만 막내딸은 하고 싶은 말을 다 했으며 모두가 반항한다던 사춘기에도 아들과 큰 딸은 말대꾸 한번 하지 못했다. 그러나 막내딸은 노인에게 입찬소리를 했으며 노인도 막내딸에게만은 너그러웠다.

 

영인이는 어쩌고 왔어?”

 

노인의 아내는 딸을 보자 눈이 번쩍 뜰 만큼 반가웠다. 막내딸이 오늘 저녁은 자신과 함께 있어 줄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시어머니 와 계셔. 일주일 사이에 아버지 얼굴이 완전히 달라졌어. 이렇게 금방 나빠지실 줄 몰랐어.”

 

몸만 나빠 진 게 아니라 정신도 오락가락 한다. 오늘 아침에 화장실을 가는 데 들어갈 때는 분명 온전한 정신이었는데 나올 때는 글쎄 내가 누군지 알아보지도 못하고 한참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엄마 언제 왔소?’ 하더라. 인제 정말 오래 못 살 것 같구나. 볼 날도 얼마 남지 않은 거 같다.”

 

누구냐?”

 

아빠! 나 윤정이. 알아보겠어? ?”

노인은 잘 보이지 않는지 한참을 빤히 쳐다보고는 말했다.

 

왔냐. 나 물 좀.”

 

딸은 냉장고에서 얼른 물을 꺼내어 주었다. 물을 다 마시기도 전에 노인은 아프다고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다.

 

승욱아! 승욱아! 가슴이 답답하다. -악 아야- 아야야야-”

 

고통 때문인지 다시 정신을 잃어버린 것인지, 딸이 온 반가움도 잠시, 노인의 눈은 다시 날카롭게 번득이고 있었다. 지금껏 있는 힘을 다해 살아왔으며 남에게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왜 이런 병에 걸려 벌을 받아야 하는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치밀어 오르는 분노는 다시 노인의 기억을 다른 시간과 장소로 데려갔다.

 

노인의 아내는 노인의 변화를 감지하고 간호사를 불렀다. 진통제를 놓아달라고 할 참이었다.

간호사가 오는 사이 노인은 참을 수 없는 갑갑함을 느꼈으며 자신의 손과 가슴에 달린 링거 줄들이 마치 자신을 묶어놓은 밧줄로 느꼈다. 그 순간 누군가가 자신을 감옥에 가두고 묶어 놓았다는 강한 확신에 사로잡혔다. 간호사가 병실에 왔을 땐 이미 노인의 모든 정신은 공포심에 잠식되었다. 노인에게 간호사는 자신을 가두려는 사람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쓴 돈이 아니래두! 나를 잡아 가둬봐야 아무 소용없어! 저리 가! 저리가라고!”

 

노인은 자신이 쓴 돈도 아니라고 이럴 수는 없다고 하소연 했다. 노인의 소를 바라보던 집달관들은 땅이 넘어가지 않으려면 소를 팔아 이자라도 갚으라고 그러면 땅은 지킬 수 있다고 했다. 그들은 노인에게 돈을 갚을 능력이 있으면서 왜 갚지 않느냐고 노인을 윽박질렀다. 노인에게 그들이 하는 소리는 모두 소를 끌고 가겠다는 소리로 들렸다. 그러고도 몇 번을 더 집달관이 찾아오자 노인은 양복 입은 사람만 봐도 공포심에 사로잡혔다. 멀리서 검은 옷을 입은 낯선 남자들만 보이면 집에 매어놓은 소를 이끌고 산으로 숨어들어갔다. 그리고 노인의 아내에게 그 사람들이 가고나면 자신을 데리러 오라고 했다. 노인의 아내가 사람들이 돌아갔다고 했지만 노인은 곧바로 아내를 따라나서지 않았다. 몇 번을 확인하고 또 확인한 다음에야 소를 끌고 다시 집으로 내려왔다. 그러나 얼마 못가 노인은 자신의 손으로 키우던 소를 끌고 나가 팔아야 했다.

노인은 자신을 묶고 있는 밧줄을 모두 뜯어냈다. 그러고는 아내를 크게 불렀다.

 

승욱아! 승욱아! 윤서방 정서방 빨리 불러. 아부지 잡혀간다! 어서.”

 

노인의 아내는 링거 줄을 뽑아 피투성이가 된 노인의 모습에 어쩔 줄 몰라 넋 놓고 있었다.

남자 간호사 둘이 들어와 노인을 잡고 억지로 앉혀 진정제를 투여하려 하자 노인은 더욱 흥분했다. 간호사에 의해 억지로 앉혀진 노인은 분노와 공포가 뒤섞인 초점 잃은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막내딸은 언니와 남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둘 다 연결이 잘 되지 않았다. 가까스로 연결이 된 남편은 멀리 있어 오는 데 한 참이 걸린다고 했고 겨우 노인의 아내가 큰 사위와 연결이 되어 큰 사위를 병원으로 불러들였다. 일주일에 두 세 번은 병원에 들르긴 했지만 두 딸과 두 사위 모두 바쁘다는 이유로 채 한 시간을 병원에 머물지 않았다.

 

윤서방! 쉿 조용히 해야 해. 내가 여기 있는 거 들키면 나를 다시 묶을 거야. 내가 힘이 없고 우리 아들 승욱이가 멀리 있다고 저것들이 나를 무시하고 함부로 하는 거야. 윤서방 자네 혹시 힘 있는 사람 좀 아는가? 우리 힘으로는 아무래도 탈출하기엔 힘들 거 같은데.”

 

승욱 아버지! 있긴 뭘 있다고 그래요. 정신 차리소! 여기 병원이오.”

 

! 조용히 하래두!”

 

. 아버님. 제가 검사, 판사, 경찰서장 하는 제 친구들하고 힘 좀 쓰는 놈들로 한 삼 십 명 쯤 불러왔습니다. 걱정 마시고 계시면 됩니다.”

 

큰 사위는 맞장구를 쳐주며 노인을 안심시켰다.

 

그래. 정말이지. 윤서방 자네만 믿네.”

 

사위는 노인의 등을 조용히 쓸어주었다.

 

노인은 몇 번을 다짐 받고 다시 눕더니 순순히 주사를 맞고 잠이 들었다.

고맙네. 고맙네. 윤서방. 자네 아니 없으면 어쩔 뻔 했는지 모르겠어. 내가 믿을 사람은 윤서방 자네 밖에 없네.” 노인의 아내는 정말로 사위가 고마웠다.

 

노인의 막내딸은 넋 나간 듯 노인의 발작을 지켜보고 서 있다가 전화기가 울리자 반가운 듯 전화를 받고는 병실 밖으로 나가더니 한참 후에 다시 들어왔다.

 

엄마! 미안해서 어쩌지. 오늘 자고 가려고 했는데.. 시어머니가 이명증이 있는데 우리 영인이 보다가 어지러워서 놓쳤대. 다친 건 아닌데 아무래도 시어머니한테 아이를 못 맡길 거 같아. 지금 가봐야 할 것 같아.”

 

그래. 할 수 없지. 여기 걱정은 말고 얼른 가봐.”

 

형부. 죄송해요. 저 가봐야 할 것 같은데 형부는 좀 있을 수 있는 거죠?”

 

잠시는 괜찮은데 나도 오래 가게를 비울 수는 없는데.”

 

괜찮다. 다들 바쁜데 할 수 없지. 지금 와 준 건만도 고맙다. 얼른 가봐.”

 

눈치를 보던 막내딸이 먼저 병실을 떠났고 한참을 침대 곁에 앉아 장인을 바라보던 큰 사위 역시 깨지 않을 것 같은 데요.“ 한마디 남기고 병실을 떠났다. 늦게 일이 끝나는 큰 딸 역시 병실에 잠시 들러서는 아버지에 대한 걱정보다는 장사가 너무 안 된다며 먹고 살기 너무 힘들다는 푸념을 늘어놓고는 함께 있어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과 엄마 너무 힘들어서 어떡해하냐며 위로를 남기고 문구점 문 닫기 전에 아이들 준비물 사야한다며 서둘러 병실을 떠났다. 결국 노인과 노인의 아내만 병실에 남게 되었다. 노인의 아내는 폭풍처럼 휘몰아친 저녁의 사건들을 떠올리며 노인이 깨어나서 다시 발작을 일으키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었다. 다시 아이들을 부를 수 없고 믿을 사람은 간호사들 밖에 없는데 간호사들은 노인을 묶을 게 뻔 한 데, 노인이 묶이는 것을 노인의 아내는 원치 않았다.

 

노인의 아내의 걱정과 달리 노인은 더 이상 발작하지 않았다. 간호사는 마약성 진통제로 인한 섬망 증상이라 어쩔 수 없다고 다음에 또 나타날 수 있다고 했다. 노인의 아내는 진통제를 줄여달라고 부탁했다. 그 때문인지 새벽의 깬 노인의 정신은 맑았다. 대신 또렷한 정신만큼 고통을 더 또렷하게 느꼈으며 자신의 뜻대로 하고 싶은 마음이 강해져서 다루기가 더 어려웠다. 노인은 소변 줄을 빼달라고 소리를 질렀다. 노인의 성화에 못 이겨 결국 소변 줄을 제거했다. 소변 줄을 제거하고 노인은 기저귀를 차고 있었지만 10분 간격으로 화장실을 가겠다고 노인의 아내를 불렀다. 노인의 환자복 바지는 노인이 오줌을 누려고 할 때마다 오줌을 흘리는 바람에 아예 환자복 바지를 벗겨놓았다. 기저귀만 차고 물기 없이 비썩 마른 나무 토막 같은 가랑이에 하얀색 기저귀를 끼우고 어기적거리며 링거 대를 밀며 화장실을 오갔다. 노인의 아내는 노인이 1인실로 오고 난 이후 열흘에 가까운 날들을 잠다운 잠을 자지 못하고 있었다. 노인의 아내는 차라리 자신이 먼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만큼 지쳐있었다.

 

화장실을 세 시간 째 스무 번쯤 오갔을 때 노인을 부축하고 다녀야 했던 노인의 아내는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제발 잠 좀 자자! 영감탱이! 소변 줄 곱게 달고 있을 일이지 왜 그걸 빼가지고 난리야. 소변 줄이 싫으면 기저귀에 그냥 싸라고 제발! 기어코 나를 끌고 다녀야 속이 시원하지! 저 영감탱이 분명코 나를 잡아먹고 말 작정이지. 살아서 평생 괴롭히더니 죽는 마당에도 곱게 안 죽고 이렇게 사람을 괴롭히나. 어 어 어 아아안 돼! 링거 줄 빠진다고! 또 피투성이가 되고 싶어! 이 영감탱이야노인의 아내는 노인을 침대 위로 다시 끌어올려 놓았지만 다시 내려와 링거 줄이 팽팽해져 위태로웠다.

 

이 씨팔년아! 오줌 마려워서 사람 죽겠단 말이다.” 노인은 앉아서 주먹질과 발길질을 해댔다. 노인의 아내는 다시 달려들어 노인을 끌어다 올려놓고 노인의 머리통을 사정없이 세 차례를 후려 쳤다.

 

젊어서 맞고 살았지. 지금도 내가 맞고 있을 줄 알고. 늙어 다 죽어가면서 나한테 뭘 어쩌겠다고 주먹을 휘둘러. 죽을 때까지 인간이 안 된다. 다른 사람은 죽을 때가 되면 주변 사람들에게 잘못한 것은 용서도 빈다고 하더니만 죽을 때까지 패악질이다

 

그래도 노인의 아내는 분이 덜 풀렸는지 참아왔던 화가 봇물 터지듯 터져 나왔는지 악을 썼다.

 

노인은 아내의 기세에 눈이 동그래져 바라보았다. 예상하지 못했던 아내의 모습이 어리둥절한지 충격을 받은 것인지 모를 눈으로 아내를 쳐다보았다. 노인의 아내를 바라보는 노인의 눈은 애원하는 것 같기도 하고, 당신이 내게 이럴 줄 몰랐다는 것 같기도 한, 마치 엄마에게 갑자기 버림받은 아이의 깊은 절망이 담긴 눈빛 같은 것이었다. 노인의 아내는 마주친 노인의 시선을 재빨리 외면했지만 어쩐지 그 눈빛이 서늘하게 가슴에 푹 박히는 것 같았다.

 

노인은 잠시 조용해지더니 다시 내려오려고 발버둥 쳤다. 노인의 아내가 간호사를 불러 진정제를 놓은 후에야 잠이 들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노인은 승욱아! 승욱아! ” 또 불러댔다.

노인은 자신의 아내가 자신의 뒤통수를 사정없이 후려갈겼던 것을 잊은 듯 했다. 습관적으로 승욱아를 불러댔다. “ 나 물 좀 줘.” 노인의 아내도 반쯤 감긴 눈으로 빨대가 달린 컵을 노인의 입에 갖다 댔다. 노인은 아내가 입에 갖다 주었지만 빨대를 보고도 그것을 빨아 물을 마시질 못했다. 컵의 가장자리를 마치 아기처럼 쪽쪽 거리고 있었다. 노인의 아내가 다시 빨대를 입에 넣어주자 짜증을 내며 다시 가장 자리를 쪽쪽 거렸다. 노인의 아내는 어쩔 수 없이 컵에 물을 따라 다시 입으로 가져갔지만 노인은 손으로 컵을 쳐 버리고 빨대 달린 컵을 고집했다. 두 번째로 다시 물을 컵에 부어 가져오자 노인이 손을 휘젓자 노인의 아내는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 컵의 물을 노인의 얼굴에 부어버렸다.

 

어이구! 못 살겠다. 빨리 죽지도 않나.”

 

노인은 입술에 뭍은 물을 혀로 핥았다. 노인의 아내는 주저앉아 주채하지 못하는 자신도 알지 못하는 감정 때문인지 노인때문인지 모를 눈물을 흘렸다.

 

*

 

노인의 큰 딸은 병원에 채 30분도 안되어 돌아 나왔다. 어차피 자신의 남편이 가서 아버지를 진정시켰으니 할 도리는 한 것이라 여기며 마음을 가볍게 하려 했다.

노인이 폐암진단을 받았을 때 노인의 큰 딸은 노인을 큰 병원에 데려가 검사를 받게 했다. 노인과 노인의 아내는 큰 딸에게 고마워했으며 노인의 병에 관한 이것저것을 의논하기도 했다. 병원을 가야 할 때면 의례히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처음엔 그녀도 당연히 응했다. 그러나 노인의 딸은 처음의 마음과 달리 시간을 지날수록 자신만 시간을 내야하고 외국에 살고 있는 오빠나 직장에 다니는 동생에게보다 자신에게 그 모든 부담이 지어질 까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더구나 재산의 거의 대부분을 오빠에게 주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혜택은 오빠에게 부담은 자신에게 짊어지는 것에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이런 생각이 머릿속에 들어오자 처음에 노인을 바라보던 안쓰러운 마음은 희미해져갔고 시간을 내는 것도 병원에 다닐 때마다 들어가는 돈이 모두 부담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했으며 자신의 가게가 어려움을 겪는 것도 노인에게 시간을 빼앗긴 것도 한 원인이라는 데까지 생각이 이어져서 그녀는 노인의 아내에게 전화가 걸려오면 걱정보다는 짜증이 일어났다.

 

그러다 자신이 나쁜 사람 같다는 죄책감이 들 때면 어린 시절 노인이 자신이나 가족들에게 폭언과 폭행을 휘둘렀던 것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내가 정이 없는 것은 다 아버지가 자초한 일인거지

 

그러나 집으로 가는 차 속에서 내내 큰 딸은 몸이 삭정이처럼 말라가고 정신은 잃어가고 있는 노인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러면 고개를 흔들어 떨쳐버리고 내일 있을 큰 아이의 중간고사를 떠올렸다.

 

이번엔 성적이 좀 올라야 할 텐데. 친구 딸은 지난번에 전교 5등이었다는 데 같은 학년이 아닌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

 

노인의 아들은 전화를 받았다. 노인이 또 위독하다는 것이었다. 아들은 노인의 아내에게 곧 간다고 얘기하지 않았다.

 

뜸을 들이던 아들은 노인의 아내에게 물었다.

 

혼자 들어가야 할 까요? 얘들하고 서윤 애미도 같이 들어 가야할까요?”

 

노인의 아들은 노인의 임종 여부를 완곡하게 물었다. 참으로 예의바른 말투였다. 노인이 금방 죽을 것 같지도 않은 데 회사에 지장을 주면서 아이 수학여행도 있고 작은 아이는 시험인데 가족 모두를 데리고 가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한 것이라 생각했다. 노인의 아들은 인간이면 다 죽는데 좀 의연하게 죽음을 받아들이면 좋을 텐데 삶에 집착하여, 노인이 노인의 아내와 주변 가족들을 괴롭힌다고 생각했다. 아들은 노인의 아내가 이성적이지 못하면 자신이 잘 판단해야 한다고 여기고 바로 들어가지 않기로 했다.

 

지난번에도 노인이 위독하다고 하여 비싼 비행기 삯을 치르고 들어갔지만 숨이 좀 가쁜 것을 제외하고는 기력이 넘쳐보였다. 노인의 아들이 병실로 들어섰을 때 노인은 아들을 보자 한참 동안 눈을 떼지 못하고 미소를 지었다. 노인의 아들은 노인의 아들이 살아있을 때까지는 노인의 병원비를 대고 노인이 지시한 땅에 노인을 묻고 노인의 바람대로 제사도 지내고 선산과 땅을 지킬 생각이었다. 그러나 노인의 아들은 노인이 기대할지도 모르는 눈물을 흘리거나 아픈 몸을 만져 준다든지 많이 아프시죠? 이제 제가 옆에 있을게요.’ 와 같은 따듯하고 친밀감 있는 말을 하지 않았다. 병실에 들어와서도 어색함을 감추지 못해 노인의 아들은 저 왔습니다.’ 한마디 말고는 멀뚱히 앉아있을 뿐이었다. 밤새 노인이 소변이 마렵다며 기저귀만 찬 채로 침대에서 내려와 병실바닥과 침대를 오르내렸을 때에도 노인의 아들은 노인의 아내에게 맡겨두고 병실 밖으로 나가버렸다. 다시 병실로 돌아왔을 때에도 노인이 기저귀 차림으로 엉거주춤하게 링거봉지가 주렁주렁 매달린 링거 대를 잡고 오줌통을 가져오라고 욕설을 노인의 아내에게 퍼붓자, 노인의 아들은 제발 어지간히 좀 하소! 아프면 좀 얌전히 누워나 있을 테지. 에이하고 병실을 다시 나와 버렸다. 노인은 아들의 호통에 조용해졌으며 기저귀에 오줌을 싸고는 승욱아! 승욱아! 나 오줌나지막이 아내를 불렀다.

노인의 아들은 노인의 기력이 한참은 더 버틸 것이라 생각했으며 승진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아버지 때문에 자리를 비워 업무에 차질이 생기면 안 된다 생각하며 4일간의 일정으로 나왔지만 다음 날 비행기로 돌아갔다.

 

승욱아! 이번엔 식구들 다 들어와야겠다. 의사 선생님이 오늘을 못 넘길 것 같다고 하는 구나.”

 

노인의 아내 역시 노인의 임종을 확신할 수 없었다. 노인의 아내는 죽는 사람은 기력이 다 빠져 며칠 씩 의식 없이 누워있다 죽는 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노인은 호흡이 가쁜 것을 빼고는 기력이 아직도 팔팔했다. 그래도 어쩐지 아들의 얼굴을 한 번 더 노인에게 보여줘야만 할 것 같아 거짓말을 했다.

 

*

 

노인은 가쁜 호흡을 몰아쉬었다. 노인의 정신은 그 어느 때 보다 맑았다. 노인은 아들의 얼굴이 생각나는지 승욱이 이놈! 무정하고 야속한 놈.’ 되뇌다 갑갑한지 코에 끼고 있던 호흡장치를 떼버렸다. 노인의 아내가 다시 끼워주려 했지만 거칠게 거부했다. 호흡이 더 가빠졌는지 침대에 가만있질 못하고 침대에서 내려와 엎드렸다. 노인의 아내와 간호사는 다시 노인을 침대로 올려 산소튜브를 다시 끼우려 하자 손으로 강하게 쳐버렸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숨을 고르려고 애쓰더니 조금 안정되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다시 화장실을 가야겠다고 간호사에게 나가라는 손짓을 했다. 그러나 노인의 아내가 노인의 기저귀를 내리고 소변 통을 갖다 대었지만 한 방울의 오줌도 나오지 않았다. 노인의 숨은 더욱 가빠졌다.

 

여기서는 아무래도 안 되겠어. 승욱아! 나 서울병원 데려가 줘. 이대로는...”

 

말을 채 마치지 못하고 노인은 숨이 가쁜지 몇 번 켁켁 거리더니 조용해졌다.

 

노인의 아내는 노인의 죽음을 실감하지 못했다. 노인의 아내가 생각하는 죽음은 의식 없는 상태로 며칠을 보내다 가는 것인 줄 알았지 금방까지 소리를 지르던 사람이 이렇게 갑자기 생명이 빠져나가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노인의 아내는 움직임 없는 노인의 앙상한 얼굴을 한참을 매만지더니 죽음을 확인한 듯 주저앉아 눈을 감았다. 눈을 감았지만 노인의 애원하는 눈빛이 선하게 보였다.

 

노인의 곁에는 간호사를 제외하고 가족이라고는 노인의 아내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노인의 아내가 아들에게 곧 들어 와야 한다고 했지만 비행기가 없다고 다음 날 들어갈 수 있다는 연락이 왔고 노인의 딸들은 휴대폰으로 아무리 연락을 해도 연락을 받지 않아 가게와 회사로 연락해 겨우 노인의 임종이 임박했음을 알렸다. 모두 곧 출발한다고 했지만 아무도 도착하지 않았다.

 

 

 

 

 

 

이름: 이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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