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이런 니미럴. 아직도 고집 못 꺾으셨수?”
아들이 불같이 화를 내며 방을 나간다. 그래봤자 갈 곳이라곤 한 군데 밖에 더 남았겠는가. 마당이랍시고 있다만 울타리 하나 없는 모래밭을 건너가다 보면 바다가 코앞이다.
아들은 촛농 위에 불타는 심지 같이 바다 위에 몸을 띄우곤 한다. 파도 위에 올라타 정수리 끝까지 차오른 화를 바다 속에서 한 줌의 잿더미처럼 바스라질 때까지 온 몸에 물을 흠뻑 적실 것이다.
아들은 지 애비에게로 가는 걸까. 애비는 어딘지도 모를 검은 바닥에 깊이 묻혔다. 애비의 목소리는 너무 깊게 수장되어 이제 누구도 들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아들은 고작 물결이나 바위 따위가 서로 맞부딪쳐 철썩거리는 마찰음 밖에 내지 못하는 저 무심한 파도 소리에게 무슨 답을 얻고자 저리 헌신적일까.
바다를 바라보며 매정한 가슴이 아려오는 건, 바다가 이제 더 이상 우리에게 밥 한 숟가락도 떠먹여 주지 못한다는 사실에도 있다. 그동안 가족이 바다 밑바닥으로부터 축 냈던 양식에 대한 대가로, 바다는 우리 가장을 데려가 버렸다. 예고 없던 바다의 잔혹한 대응 이후로 바다와 우리 가족 사이의 암묵적 거래 관계는 무력해진 어느 한 쪽의 비애와 공포로 단칼에 끝이 나버리고 만 것이다.
하지만 나는 거기서 바다와 우리의 악연이 매듭지어졌다고 믿지 않았다. 이따금 저것이 바깥사람의 뼛조각으로도 모자라 심지어는 내 아들의 싱싱한 살점까지 호시탐탐 노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망상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어젯밤만 해도 잠을 뒤척였다. 파도는 까닭 없이 드세지는 소리로 생전 본 적도 없는 선명한 익사체의 모습을 내 꿈속에 멋대로 새겨 놓은 것이었다. 악몽은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익사체의 쇄골 위에는 아들의 머리가 덩그러니 달려있었다. 가장 비열한 약점을 이용해 내 희망을 철저하게 농락한 것이다.
비명 소리도 못 낼만큼 화들짝 놀라 깨어나 보니 늙은 주름 사이로 흥건한 땀이 고여 있었다. 악몽에서 깨어난 이후로 찾아온 또 하나의 두려움은, 내겐 이제 땀을 아래로 흘려버릴 평평한 피부도 없다는 걸 알아차렸을 때 느꼈다. 내게 남은 것이라곤 아들밖에 없으므로 악몽이 현실이 되는 것만큼 삶이 절망으로 추락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잠시 멍했던 정신을 수습하고 보니 아들의 발자국은 너무나도 멀리 뻗어나간 뒤였다. 바다는, 아들을 끌어들이고 있는 그 파도 소리를 엔진이 달린 전기톱 소리처럼 날카롭고 투박하게 몰아치고 있는 것 같았다. 쭈글쭈글한 피부 위로 소름이 올라왔다. 꿇어 앉아 있던 시린 무릎을 절뚝이며 벌컥 방문을 열고 고함을 질렀다.
“그래. 가자! 가자꾸나!”
그러나 아들은 벌써 파도와 몸을 뒤섞고 있었다. 마치 누군갈 흠씬 두들겨 패기 위해서 올라타듯 파도 위에 몸을 던져 몸부림 같은 헤엄을 치고 있는 중이었다. 물살을 저어야 할 손이 주먹을 쥐고 있다는 것이 내 애간장을 저몄다. 독이 잔뜩 오른 얼굴을 하고 파도를 쥐어뜯고 있느라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그 순간 나는 내 말을 거두고 다시 생각해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파도 아래에 반쯤 잠긴 아들의 몸은 물 먹은 미역처럼 퉁퉁 불어가는 환상으로 내 눈앞에 아른거리며 내게 결단을 강요했다. 절대로 외면할 수 없는 망상도 있다. 수 만개의 바늘이 머릿속을 빼곡히 찔러대는 견딜 수 없음이 말이다. 그러자 그만 나는 절규에 가까운 비명으로 외쳤다.
“가자꾸나!”
쇳소리를 내며 몰아치던 파도가 돌연 잠시 주춤했다. 그 틈에 아들이 휘두르던 팔을 거두었고 곧 물장구치던 다리가 힘없이 축 처지더니 이내 몸 전체가 물속으로 가라앉아버렸다. 아들이 종종 즐겨하던 잠수는 아닐까.
하지만 이미 잡념들로 뒤덮인 내 머릿속엔 신선한 비극만이 재생될 뿐이다. 이번에는 물 밑바닥에서 해골이 된 지 애비를 발견하고 그 곁에 나란히 누워 영원히 다시 떠오르지 않으려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시나리오가 펼쳐졌다. 나는 이를 꽉 물고 덜그덕 거리는 무릎을 간신히 끌며 아직 지워지지 않은 아들의 발자국을 따라 바다로 내달려가기 시작했다.
내가 너무 나이가 들어버렸다는 것을 왜 이럴 때에 몸으로 느껴야만 하는가. 마음만큼 몸은 천근만근 무겁고 가쁜 숨이 기도를 턱 하고 틀어막힐 땐 고되다는 것보다 무력감에 눈물이 났다. 결국 견디다 못한 다리가 힘이 풀려 쓰러질 뻔 하려던 찰나,
불쑥 아들이 물 밖으로 몸을 내밀었다. 아들은 파도와 싸우다 지친 호흡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물속에서 어무이 달려오시는 발소리가 들렸소.”
그 말에 그제야 발목이 시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어느새 물이 발목 위까지 차 올라있었다. 나는 불현듯 바다가 미워졌다.
“결정하셨수?”
“못 들었나보구나. 그래, 가자꾸나.”
“파도 소리가 워낙 시끄러워서 말이요. 그럼 내일 당장 갑시다.”
“저녁부터 먹고 차차 짐을 싸보자.”
젖은 눈을 감추며 흘끗 본 아들의 탄탄한 몸은 소금기가 묻어 듬직하게 반짝반짝 빛이 나고 있었다. 어둔 밤하늘의 별빛 같았다. 그래, 아들의 젊은 시절은 이렇게 밝아야만 한다. 그러나 그런 소망은 이젠 더 이상 바다에게 기대할 수도 바랄 수도 없는 일이다. 바다는 파도 소리로 아들을 꾀어낸 뒤 소금물로 끌어안는 척하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아들의 목숨을 가볍게 움켜쥘 수도 있는 놈이다. 목숨을 담보로 얻을 수 있는 게 한낱 소금기 같은 가짜 빛이라는 건 사실 비참한 보상이다. 우린 결국 여길 떠나 아들에게 진정으로 빛다운 빛을 낼 기회를 주어야 한다. 나는 늙었고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바다에게 내놓을 것이 없다. 그리고 더는 내어 주기도 싫다.
나또한 아들 못지않게 결심을 내리기 위해 고뇌에 잠길 적마다 귓가를 때리는 파도 소리가 신경 쓰이지만, 왜 그런 것에 마음이 쓰이는지 이 나이를 먹고도 뭐라 해명할 길이 없다는 게 응어리로 맺힐 뿐 아들의 말마따나 여길 떠야만 할 것 같다고, 그렇게 생각은 했다.
“원, 참. 숟가락질이 안 들어가노. 뭔 건더기를 이리 많이 넣었수?”
“마지막 밥상이지 않느냐. 아숩지 않게 많이 넣었다.”
“아니 뭐 피난간답니까? 그냥 이사 가는 거 아닌교. 어무이도 괜히 유난 좀 떨지 마쇼.”
건더기가 고봉으로 쌓인 국그릇에 아들은 큼직한 동태살을 하나 집어서 먹음직스럽게 배어먹는다. 동태찌개. 바깥사람이 그렇게 먹고도 질리지 않아했던 음식이다.
“소주 있소?”
“줘?”
“시원할 걸로 한 병만 갖다 주쇼.”
나는 소주 한 병을 들다말고 한 병을 더 꺼내 잔 두 개와 함께 가져왔다.
“어무이도 자시려고? 웬일이요?”
“그냥. 동태찌개가 얼큰하게 됐길래.”
얼마만인지, 아니면 처음인지 아들과 마주보면서 술을 주고받는 저녁이다. 내가 아들한테 한 잔, 그리고 아들이 내게 한 잔. 아들이 소주잔을 한 입에 가뿐히 털어 넣는다. 나도 똑같이 한 모금에 들입다 삼켰다. 혀끝이 저릿하고 머리가 아찔해졌다.
“괜찮은교? 동태찌개로 안주하쇼. 술도 못 하시면서.”
“아니다. 괜찮다. 한 잔 더 할래?”
아들은 영 마뜩찮은 동작으로 무겁게 손목을 들고 술잔을 기울였다. 내가 또 아들한테 한 잔. 그리고 아들이 내게 또 한 잔을 올리는 그때,
나는 문득 그 날이 떠올랐다.
“아!”
나는 그만 술잔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방 안이 깜깜해지고 잠시 세상이 핑 도는 것 같았다.하지만 큰일은 아니었다. 딱 눈 깜빡할 새만큼만 잠시 정신이 흔들렸던 모양이었다.
“어무이요! 와 이러는교?”
차츰 상황을 둘러보니 아들이 나를 안아 뉘이고 있었다.
“아니, 한 잔 먹고 이리 넋을 놓습니까! 어디 편찮은 거 아닌교?”
“취한 거 아니니 걱정 말거라.”
“그럼 뭐 땜에 그라는교?”
그 날, 바깥사람의 장례식장에 시신도 없이 놓아 둔 영정사진 앞에서 오가는 술잔들이 떠올랐었다. 정작 그날의 주인공인 사람의 육신이 참석하지 못한 자리에서 오가는 조문객들만 술에 취한 밤이었다. 그러고보니 그 틈에 끼어있던 아들도 그날부터 한 잔 두 잔 술을 마시기 시작한 것 같다.
“네 애비 장례날 떠올라서 그랬다.”
아들은 별 숨기는 기색도 없이 뱉어낸 나의 고백을 듣고는, 안심하는 투는 뒷전으로 미루고 무거운 헛웃음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곧 떠날라는 마당에 아직도 마음 두십니까? 여기 다 묻어두고, 다 버리삐고 갈라는데 끝까지 그라시면 뭐 할라고 떠나자는 겁니까, 예?!”
“나도 안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란 게 어디 눈 감는다고 단념할 수 있는 것이더냐. 칼로 물 베기인 기억도 있는 게다.”
“하, 참. 이젠 나도 질렸소. 하마터면 마음도 없는 어무이 껍데기만 들고 갈 뻔 했구려. 그래, 나도 알았으니께 좋을 대로 하쇼!”
아들은 불거진 얼굴로 술병을 들고 방을 나갔다. 내가 원망스럽다고 바다 밑에 깔려있는 술동무가 그리워지는 걸까. 아, 아들이 취한 발걸음으로 한 손에는 소주병을 든 채로 멀어진다.
나는 다시 한 번 괴로울 것이다. 아들이 긴 발자국을 남기고 가버리기 전에 문을 또 열어야 한다. 그리고 소리쳤다.
“그만 돌아오너라! 애미가 잘못했다.”
성큼성큼 걸어가던 아들이 멈칫한다. 우두커니 바다처럼 검은 뒷모습으로 잠시 선 채 소주병을 떨어뜨린다. 그리고 뒤돌아서 바닷바람에 흔들리는 목소리로 내게 외쳤다.
“어무이가 무슨 잘못이 있소!”
그 한마디에 마치 모든 힘을 쏟아 부은 듯이 아들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소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나 역시 맥이 탁 풀려버려 남은 소주를 들고 아들과 그 너머에 있는 바다를 바라보며 두세 모금 홀짝였다. 여전히 혀끝이 알알하고 저려왔지만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을 수 있었다. 생각이 잠시 잊히는 기분이었다. 바깥사람과 아들이 왜 술을 마시는지 알 것도 같았다. 굴곡진 파도 소리가 밤을 가득 메웠다.
아무래도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은 밤이다. 아들은 소주를 두 병이나 마시고서야 먼저 겨우 코를 골기 시작했다. 요즘 잠귀가 예민해졌다고는 한들 내게 아들의 코고는 소리가 잠을 방해한 적은 없었다. 다만 야밤에 이 늙은이의 심중을 뒤숭숭하게 하는 것은 내 낡은 두 다리에겐 너무도 멀리 있지만, 밤을 지새우고 있는 귓가엔 너무 가까이 있는 바다의 파도 소리뿐이었다.
아들도 잠들어버렸건만 저 파도가 대체 무슨 하고픈 말이 있길래 저리도 아우성을 치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 아까 마시다 말고 두었던 소주를 들고 나섰다. 바다도 잠을 못 이루고 있는 걸까.
파도는 밤을 울리며 웅장하게 몰아쳐댔지만, 가까이 다가 간 나는 위협을 느끼진 않았다. 그렇다는 건 이 아닌 밤중의 홍두깨 같은 요란이 나를 부르고자 한 것일까.
난 파도가 최대한 뻗는 물살 앞에 발이 젖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떨어져 섰다. 거기선 채로 한참이나 남은 소주병을 높이 흔들어 바다 위로 뿌려주었다. 하지만 파도는 몸을 재빨리 빼더니 달빛에 훤히 드러난 백사장만이 얼큰히 취하고 말았다. 나는 바다 쪽으로 더 가까이,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다시 높이 병을 흔들어 술을 뿌려주었다. 그러나 파도가 가뿐하게 다시 몸을 빼더니 또 내 발끝으로부터 멀어졌다. 바다는 잠들고 싶지 않은 걸까, 그렇지 않으면 내게 무슨 다른 할 말이라도 있는 걸까. 몽롱한 궁금증에 골똘히 취해 조금 더 다가가려는 그때,
파도 속에서 뭉친 해무 덩어리가 어떤 형상처럼 물 위로 떠오르는 것이 보였다. 그 순간 바깥사람이 집을 나간 날이 떠올랐다.
당신, 이제 그만해요. 그러다 진짜 평생 누워 지내려 그래요?
뱃사람이 몸 사리면 어떻게 사노? 하면 또 하는 게 뱃사람 몸인기라.
그거야 지금 괜찮다지만 그게 언제 갑자기 병이 커질지 모르는 일이잖아요.
병은 또 무슨 병? 불길한 소릴. 내 몸은 내가 잘 안다 안 카나. 점마 대학 졸업만 시키놓제? 그땐 암만 일 하라고 등 떠밀어봐라. 내가 털끝하나 꼼짝하나.
딱 올해까지만 한다고 무리하지 말아요. 원래라면 작년에 팔았어야 할 배인데, 내 고집 꺾고 기어이 한 해 더 타는 거니까 욕심 부리지 말아요. 결국 더 벌면 더 버는 거지, 손해 볼 거 없다고요. 알겠죠?
알았다, 알았어. 애는?
아직 자요.
깨워서 밥 맥이라. 학교 늦을라.
네. 그럼 조심히 다녀와요.
그 하얀 해무덩어리가 뭉친 앙금은 그날 문을 나서던 바깥사람의 뒷모습을 닮았다.
“당신, 왜 아직 안자고 있어요? 얼른 자요. 그래야 나도 자지. 내일 떠나려면 오늘 푹 자둬야 해요.”
마치 바깥사람과 두런두런 담소라도 나누듯이 나는 파도 위로 보이는 환영(幻影)에게 말을 건넸다.
“애 데리고 올라가려고요. 이제 여기서 더 살긴 어려울 것 같아요. 당신한텐 외로운 소리로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이해해 줄 거죠? 얼른 한 잔 올리고 들어갈게요.”
그때였다.
순간 파도가 소리가 채 못 따라 오는 천둥처럼 갑자기 날 향해 달려 들었다. 난 순식간의 상황에 숨 한 번 쉬지 못하고 그대로 파도에 삼켜졌다.
그건 정말이지 겨우 발목이나 젖던 서늘한 감각과는 차원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말하자면 아예 감각이 송두리째 갈가리 뜯기는 느낌, 아니 느낌이라 말하기도 어려운 낯설고 충격적인 감각이 내 혼 구석구석 공포로 파고 들어왔다. 그나마 심장마비로 즉사하지 않은 게 천운이라 할 정도였다.
파도는 눈 깜짝할 새에 땅에 발이 닿지 않는 곳으로 날 끌고 가 버렸고 출구 없는 밤하늘을 표류하는 것 같은 냉혹하고 어두운 막막함에 나는 그만 공황상태에 빠져 온 사지가 굳고 말았다.
그런 순간에도 죽는다는 생각에 살기를 바라기보다는, 내일 아침이 되면 밥 주이소 하고 외칠 아들의 모습이 떠올라 얼음장 같은 파도 속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심장이 타들어가듯 서글퍼졌다.
그런데 그때 바로 그 아들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다.
“어무이요! 여기 잡으이소!”
눈에 반쯤 찬 물살 위로 소리가 나는 방향을 보려고 기를 썼다.
그러자 칠흑 같이 컴컴한 암흑 속에서도 유독 밝은 어떤 것이 아른거렸다. 이젠 겨우 실오라기처럼 간신히 붙들고 있는 정신을 끌어다 모아 간절히 바라보았다.
점점 다가오는 하얀 물체는 거의 내 눈앞에까지 들이밀고 와서야 그것이 흰 빛줄기처럼 내게 뻗어 오는 아들의 손이란 걸 알았다. 하지만 이미 사태는 내가 내게 손이 있다는 것조차 잊고 만 절체절명의 지경이었다.
“어무이요! 정신 차리소! 내 갈텡게 여 꽉 잡으소!”
아들의 손이 늘어진 내 팔목을 확 잡았다.
뜨거웠다. 모든 감각을 잃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들의 체온만으로도 얼어붙어가는 심장에 혈기가 돌아오는 것 같았다.
그때부터는 파도도 더 이상 날 붙들어 매지 않았고 파도와 나, 그리고 아들은 그렇게 서로 한 데 어우러져 바다 위를 굴러다녔다. 그러자 갑자기 정신이 차츰 돌아오고 묘하게도 공포가 사라졌다.
아들은 내 허리를 낚아채듯 감싸 안고 저 혼자 단신으로 헤엄칠 때보다도 훨씬 날랜 움직임으로 나를 물 밖으로 끄집어냈다. 그리고 곧장 나를 들쳐 업고 숨도 참은 채 허겁지겁 집 안으로 달음박질치기 시작했다.
“어무이, 아직 살아있지요? 정신 놓으면 안 됩니데이!”
낡은 방문을 때려 부수듯 걷어차고 아들은 안방에 보일러 선이 지나는 가장 따뜻한 곳에 나를 눕힌 뒤, 젖은 옷을 벗겨서는 서랍장 안의 마른 수건이란 있는 대로 꺼내어 내 몸 위에다 던졌다. 그리고 한술 더 떠 안방 장롱 깊숙이 감춰 놓은 헌 이불까지 꺼내어 나를 덮었다.
“됐다. 이러다 깔리죽겠다.”
한동안 얼이 빠져 몸이 본능가는 대로 움직이던 아들이 그제야 정신이 퍼뜩 돌아와 다리가 풀린 듯 주저앉았다.
“아이고. 뭐한다고 밤에 그까지 나갔는교!? 얼마나 놀랬는지 아쇼!? 몸은 왜 또 그리 불덩이 같은지.”
아들이 또 노기를 내 비친다. 하지만 평소처럼 바다로 뛰쳐나가지는 않았다. 나는 아들을 계속 붙잡아두고 싶은 마음에 이불을 대강 추르고는 솔직하게 터놓았다.
“네 애비한테 마지막으로 인사하러 갔다.”
“뭐라고요? 그게 아니라 아부지 있는 데로 갈라카는 건 아니었고? 밤바다 우습게 알지마쇼! 하마터면 황천길 갈 뻔 하셨다고요!”
“언성 좀 낮춰라, 야밤에. 뱃사람 아들 아니랄까봐 목청이 울린다. 갑자기 파도가 불어나서 그런 거라 어쩔 수 없었는기라.
말을 듣고 있던 아들의 눈길은 이불더미 제일 위에 있는 헌 이불을 태울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아부지요? 이제 죽은 아부지? 멀쩡히 산 사람도 못 살게끔 만드는 그 망령말이요!? 빌어먹을 이번에 어무이까지 데려갈 뻔 했다지! 자기가 빠져 죽었던 그 캄캄하고 찢어지게 시린 물에 빠뜨려서요, 어!? 그게 어디 한 집안의 가장이란 양반이 할 짓입니까.”
아들의 화는 전에 없이 커졌다. 결국 불같은 성질이 터져 헌 이불을 움켜잡고 문 밖으로 던졌다. 아들은 그걸로 성에 안 찼는지 이불을 집어 들고 바다로 달려가 파도 소리를 전부 덮어버리듯이 집어 던졌다. 이불은 밀물을 타고 다가오는 파도와 맞부딪쳐 바다 위에 둥둥 떠다녔다.
“그렇게 밤이 시리시면 여기 당신 이불이나 덮고 푹 주무쇼! 죽어서 이게 뭔 짓거리요!”
아들의 절규는 내가 외칠 때와는 달리 거친 파도 소리 속에서도 또렷하게 들렸다.
시간은 새벽을 지나고 있었고 아들은 내 옆에서 웅크리고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버티고 있었다.
“그만 누워 자거라. 허리 상할라.”
“아직 미련이 남으셨소?”
아들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미련이라.
“무슨 미련 말이냐?”
“다요, 다. 아부지, 바다, 이 집. 그리고 모두 다요.”
“남아 있다 한들 어쩌겠냐.”
“그럼 제발 다 버린 척이라도 하고 삽시다, 제발요.”
“……”
“나라고 여기에 매정하기만 하겠어요? 여서 태어나고 자란 기억이 아마 평생 갈거요. 옛 친구들이랑 뛰어다니던 골목, 낙서해 놓은 집들 사이사이의 담벼락, 물장난 치던 바다, 처음으로 좋아했던 여자애 집 빨간 대문, 다 못 잊을 거요. 그리고 아부지가 나 배 태워주고 낚시 알려주던 내 생일 날까지도 하나하나 평생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을 거요.”
“……”
“하지만 이제 이 바다는 우리 게 아니란 말입니다. 우리가 이제 여기서 할 수 있는 건 없어요. 어무이는 늙고 뼈는 얇아지고 있잖습니까. 또 나는 대학만 나왔지 기술이란 건 당최 배운 것도 없어서 여기서 무슨 일을 한답니까? 물론 잘 된다는 장담은 내 당장 못 드리지만 그래도 뭘 하더라도 가능성이 있는 땅에서 해봐야하는 거 아니겠어요?”
“……”
“오늘 어무이까지 그렇게 물에 빠져 죽었더라면 나도 그 길로 바다에 빠져 죽었을 거요. 어무이까지 없으면 갈 데라곤 바다 한 군데 밖에 안 남게 될 테니까.”
아들이 그토록 달려 들었던 바다는 정작 아들이 가고자 하는 길이 아니었나보다. 사실 그제야 깨달은 바가 있었다. 바다를 길 삼아 향하던 사람은 아들이 아니라 바로 나였던 모양이다. 아들과 내 앞에 놓인 두 가지 길은 양극이 나뉜 막대자석처럼 바다와 바다 반대 방향으로 뻗어 있었지만, 아들과 나는 시시때때로 성질이 바뀌는 철가루들처럼 그 주변을 어지럽게 맴돌 뿐이었다. 그 두 가지 길 중 하나의 길은 이제 내 가슴에 묻어둔 채로 살아야만 한다. 마치 삼킨 돌을 일생에 걸쳐 녹여내듯이 삶이 따끔따끔 거릴 운명이지만, 나머지 하나의 길은 미우나 고우나 가야만 하는 길인 것이다. 그건 가자, 라고 내가 감히 고를만한 선택사항이 아니었다.
“그래. 네 말 잘 알았다.”
“어휴… 나, 참.”
아들이 한숨을 내쉬었다. 한참을 내뿜던 불길이 그치고 조금 식은 입김이 아들의 입에서 흘러 나왔다. 잠시 정적에 빠져 있다가 나는 아들에게 궁금하던, 그렇지만 물어보기가 두려웠던 질문을 했다.
“너는 왜 그렇게 하루가 멀다 하고 바다로 뛰어 들어갔느냐?”
고요한 방 안에 내 말소리가 가득 메워졌다. 아들은 못 듣지는 않았을 테지만 가만히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빠져 죽으려 했느냐?”
“……”
“너도 떠나기가 싫었던 거냐?”
“……”
아들은 무릎을 끌어안은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아들이 아직까지도 젖은 옷을 입고 있었다.
“감기 들라. 옷 갈아 입거라.”
“파도 소리가 너무 시끄러웠어요.”
“뭐가?”
“아버지가 저 밑에서 나 여깄다고, 고함을 지르는 것 같았다고요.”
“……”
“근데, 너무 추웠어요. 이제 뼉다구밖에 안 남은 아부지는 아무것도 못 느끼실지 몰라도, 나는 살거죽이 버젓이 붙어있어서 바닷물이 너무 차가웠단 말입니다.”
아들은 오한 탓인지, 아니면 사람이 살면서 으레 가끔 복받칠 때 올라오는 감정 탓인지, 그런 흐느낌으로 어깨를 들썩였다. 아들의 몸을 둘러싸고 있는 공기가 훈기를 놓쳐 서늘해지고 있었다. 찬 숨결이 이불 아래까지 스며들자 나는 그만 아들의 성질을 돋우어 괜히 역정을 내게끔 하고 싶어졌다. 차라리 아들이 불덩이처럼 몸부림을 치는 게 내겐 덜 두려운 일이기 때문이니까.
한 숨도 못 잘 것 같았던 새벽이었지만 간밤의 소동에 지쳐버렸는지 잠들어 버린 모양이었다. 일어나 방문을 열어 바깥을 보니 이른 아침의 바다는 어제 일어난 소동과 자신은 아무 상관도 없다는 듯 잔잔하게 파도를 흔들고 있었다. 나는 태연한 바다가 원망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은빛이 넘실거리는 꼴이 정답다거나 하는, 스스로도 참 얄궂다 느끼는 그런 마음이 들어버리는 것이다.
아침상을 다 차리고 아들을 불렀다.
“밥 먹자.”
아무 대답이 없었다. 나는 다시 외쳤다.
“밥 먹자!”
아들의 방에 귀 기울여 보니 안이 너무 조용했다. 나는 문득 지난 밤 축축하게 웅크린 아들의 모습이 떠올랐고, 귓가에 울리는 질리도록 차분한 파도소리에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헐레벌떡 아들의 방문을 열어젖혔다.
“아!”
또 그 날이 떠올랐다. 간밤, 아들의 술을 받던 순간 머릿속을 잔인하게 스쳐갔던 장례날이. 그날은 이제 삼켜버린 돌조각처럼 아주 이따금 욱신거릴 뿐인 인생의 한 토막 사건쯤으로 회자될 수가 있는데, 지금 내 발끝에 누워 푸른빛을 띠는 창백한 얼굴을 하고 웅크리고 있는 아들을 바라보는 기분이란 내 뼈와 장기 마디마디가 돌칼로 찢겨 인생이 넝마 쪼가리가 되는 파괴나 다름없었다.
“정신 차려 보거라! 얘야!”
감각이 무뎌진 늙은 손가락으로 보듬어 본 아들의 얼굴은 딱딱하고 차가웠다. 아들의 얼굴에 죽음의 그림자가 파도처럼 오락가락 하고 있다. 정작 바깥의 파도는 너무나도 잔잔해서 내 절규는 그 어느 때보다 뚜렷하게 들렸다. 집 안에 쩌렁쩌렁 울리는 늙은 여인의 비명이 스스로조차도 듣기 싫어 나는 입술을 씹으며 흐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아들이 알아 눕게 된 뒤부터 나는 몇 날이고 아들 곁을 지켰다. 수시로 아들의 옷을 벗겨 혹시라도 남아있을지도 모를 소금기를 꼼꼼히 닦아내고 안방의 이불까지 끌어다 덮어주었다. 그리고 잠들 수 없는 밤이면 아들을 끌어안고 내 낡고 앙상한 생명이나마 나눠 주고픈 간절한 염원에 아들의 얼굴을 부비며 소리 죽여 울었다.
그러던 어느 날 꿈을 꾸었다. 숨을 한번 쉬어보니 바닷바람의 짠 내음이나 해무가 낀 밤공기가 콧속을 적셨다. 그게 마치 꼭 현실처럼 생생했다. 나는 안방에 앉아있었고 방문이 열려 바다가 내다보이는 한편 파도는 부드럽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마치 무슨 할 말이 있는 듯 넘실, 또 넘실거렸다. 또 그 위엔 전에 없던 등대가 삐죽 솟아 올라와 있었다. 그걸 한참 바라보고 있는데, 바다에서 아들이 불쑥 올라와 눈 깜짝 할 새에 내 옆에 앉았다. 등대를 한참 바라보던 내가 아들에게 말했다.
“등대가 참 밝구나. 우리 저리로 가 살아보지 않으련?”
그러자 아들이 숨을 새근새근 내쉬다가 지긋이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니요, 어무이. 파도가 저 등대가 빛을 쬐는 쪽으로 가랍디다.”
나는 아들이 가리킨 바다 반대쪽을 응시하면서 그 말의 뜻을 골똘히 생각해 보았다. 그러다 꿈속인데도 마치 다시 잠에 빠지듯 정신이 몽롱해졌다.
그때 아마 나는 아들을 끌어안은 채 잠이 들어 있었는데, 귓가에 꿈인지 생시인지 가물가물한 파도 소리와 함께 속삭이며 말을 거는 듯한 아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너무 춥소, 어무이. 꿈인가 생신가, 앞에 촛불이 있길래 끌 안아 보니 어무이가 아닌교. 따뜻하니 조금만 더 이러고 있어요, 어무이.”
짐은 다 꾸렸다. 이젠 정말 떠나려나 싶었는데 짐 더미에서 무언가를 꺼낸 아들이 불쑥 말했다.
“우리 가족사진 한 장 안 찍을랑교?”
아들은 자기 바짓단을 무릎까지 접었다. 그리고 내 바짓단도 똑같이 그만큼 접어주었다.
“와?”
“이리로 오쇼.”
아들은 가벼운 짐 상자들 몇 개를 가져와 모래 위에 차곡차곡 쌓아 올려 그럴싸한 거치대를 만들었다. 그리고 거기서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 나를 세워두고 얼마간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더니 기계음이 들려왔다.
발목을 따뜻하게 감싸는 감촉이 시원했다. 한낮의 바닷물은 단맛이 날 것만 같다.
앞에서 아들이 날 향해 다가오고, 그리고 뒤에서는 잔잔한 파도가 밀려온다. 아들이 내 곁으로 와 나란히 서자 파도는 깨끗한 물소리를 내며 우리의 복사뼈를 감싸 안았다. 그 순간 셔터 소리가 났다.
“한 번 더 찍을까요?”
“아니 됐다. 잘 나왔을 것 같구나.”
폴라로이드 카메라인가 뭔가라고 했는데 무튼 찍고 잠시만 기다리면 바로 사진이 나온댔다.
“젊게 나오셨네요.”
내가 만약 모래 위를 걷는 무릎이 바닷바람처럼 가벼워진 탓이 파도가 발목을 밀어주었다는 이유였다고 아들에게 말하면 아들이 알아줄까? 사실 이 나이를 먹고도 분명하게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하지만 아들은 말은 안 해도 자기도 방금 똑같은 기분을 느꼈다고 말할 것만 같다.
백사장 위엔 아들이 떠나고 내가 떠나 간 발자국이 남을 테다. 그리고 그 발자국은 파도가 시간의 섭리에 따라 알아서 덮어 갈 것이다. 나와 아들은 그런 뒤를 돌아다보지 않고 앞으로, 앞으로 걸어갔다.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