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토막
1
내 이름은 “제리”이다. 그것이 정확하게 무슨 뜻인지는 모른다. 그저 그녀가 나와 눈을 맞추고 항상 “제리”라고 하는 걸 보면 그게 이름이지 않을까 싶었다. 나는 올해로 1살 반 정도가 됐다. 보송보송했던 솜털은 이제 길어지고 빳빳해졌다. 어렸을 때라면 열에서 열 두 발자국 정도 가야 되는 거리를 이제는 다섯 발자국이면 갈 수 있었다. 태어났을 적에 샛노랗던 등과 새하얗던 배의 털색은 먼지가 끼여 누르스름해졌다. 이미 색이 변한 털은 아무리 혓바닥으로 쓸어도 원래 색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걸어 다니다 보면 매일 똑같은 냄새가 났다. 주변은 털 사이사이에 얽힌 먼지 냄새로 가득했다. 부스스해진 털 상태로 다니는 것이 이 길바닥에선 더 편한 일이었다. 적어도 내가 다리를 쭉 뻗고 다닐 수 있게 되니까 말이다.
2
검은 고양이는 눈을 깜빡이지 않았다. 나는 검은 고양이를 보며 눈이 뻐근해질 때까지 깜빡였다. 외관상으로는 내가 더 어린 것 같아 먼저 인사를 한 것이었다. 이쯤 하면 답을 해올 법도 한데 검은 고양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순간 기분이 확 상했다. 검은 고양이는 의사소통이란 걸 전혀 할 줄 모르는 것 같았다. 나는 한 마디라도 해야 할 것 같아 한 발짝 더 다가갔다. 검은 고양이의 얼굴 털은 물기라고는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 마치 굳어버린 것처럼 바싹 말라 있었다. 발에 힘을 주어 몸을 좀 더 세웠다. 검은 고양이를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을 정도의 높이였다. 검은 고양이의 목 밑으로는 아무 것도 없었다. 말 그대로 목만 잘려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걸 보고 있으니 다리에 힘이 쭉 빠졌다. 잘린 털끝은 피로 얼룩져 얼굴과 색이 달랐다. 목 부분의 털은 다른 부분보다 더 빳빳해 보였다. 검은 고양이가 쓰러져 있던 전봇대는 밑에만 색깔이 짙었다. 전부 검은 고양이의 목에서 흘러내린 핏물일 것이었다. 발바닥이 이미 굳어 있는 핏물로 물드는 것만 같았다.
가까이서 보니 검은 고양이는 길에서 본 적 있는 얼굴이었다. 검은 고양이를 볼 때는 항상 한 사람의 형제도 같이 볼 수 있었다. 아파트 단지 입구인 그곳은 자주 사람들이 먹을 걸 놓고 가는 곳이었다. 입구 근처의 전봇대에는 사료가 흩뿌려져 있을 때가 많았다. 이 근처에서 지내는 고양이라면 다들 한 번쯤 그곳에서 끼니를 때워봤을 것이다. 지나갈 때마다 풍기는 고소한 사료냄새에 나도 몇 번 발길을 멈추곤 했다. 그 사람을 본 건 그곳에서 잠시 식사를 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그 사람은 검은 고양이만큼 새까만 형체였다. 사람이 아니라 그림자로 보일 정도였다. 그 사람이 거기서 발걸음을 옮기지 않았다면 동상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 사람을 올려다봤을 땐 온통 부스스한 머리칼뿐이라 제대로 된 얼굴은 볼 수 없었다. 우리가 식사를 마칠 때까지 그 사람은 거기에 우뚝 서 있었다.
낯익은 냄새에 고개를 들었다. 자동차 그늘 밑에서 한숨 돌리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풍겨온 냄새는 검은 고양이의 것은 아니었다. 전봇대 쪽 핏자국은 냄새도 나지 않을 정도로 전부 말라버렸으니까. 냄새가 짙어지면서 발자국 소리도 들렸다. 빛이 들어오는 틈으로 사람의 발이 보였다. 자동차 밑 틈으로 자리를 옮겼다. 틈에 얼굴을 가까이 댔다. 올려다 본 시선에 그때 봤던 부스스한 머리칼이 들어왔다. 그 사람은 말없이 검은 고양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사람은 네모난 무언가를 꺼내 검은 고양이에게 갖다 대었다. 사람들이 걸어 다니며 귀에 대고 말을 하던 물건이었다. 그 사람은 그것을 가까이 대기도 했고 멀리 떨어뜨리기도 했다. 갑자기 찰칵, 하는 소음과 함께 빛이 번쩍였다. 그 사람은 검은 고양이를 툭툭 건드리며 미소를 띠었다. 순간 온몸의 털이 곤두섰고 숨을 꾹 참았다. 조용히 한 걸음씩 뒤로 물러났다. 좁아지는 시야로 그 사람이 일어나는 것이 보였다. 그 사람의 발에 치여 잘린 목이 전봇대에 부딪혀 나뒹굴었다. 그 사람은 연이어 발길질을 했다. 벽에 몇 번이고 부딪힌 목에서는 한 번 더 피가 새어나올 것만 같았다. 목의 털끝에 이미 굳어 눌러 붙은 핏물이 다시 흘러내리는 듯 했다. 눈도 감지 못한 얼굴이 그대로 짓밟혔다. 구역질이 일었다. 뒷걸음질 치던 다리가 서서히 떨려왔다. 구석으로 들어가 몸을 한껏 웅크렸다. 작은 틈으로 보이는 그 사람의 발이 사라질 때까지 한숨도 뱉어낼 수 없었다. 그곳에 가득 물든 그 사람의 냄새가 옅어질 때까지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3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끔찍했다. 귀가 찢어질 것만 같은 지독한 소음이었다. 한꺼번에 몰려드는 아이들의 발소리가 들리면 자세를 낮추었다. 순식간에 몰려든 아이들이 보이면 나도 모르게 발톱을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아이들을 보고 있을 때면 삐져나온 발톱으로 길바닥을 긁곤 했다. 아이들의 웅성대는 소리는 발톱으로 바닥을 긁는 소리 같았다.
눈앞에 초록빛이 어른거렸다. 녹색으로 물든 고양이였다. 나는 천천히 눈을 깜박였다. 녹색 고양이도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떴다. 이 아파트 거리에 사는 고양이들을 여럿 봐왔지만 녹색 고양이는 처음이었다. 사실은 초록색이라고 말하기도 애매한 색이었다. 여러 가지 색으로 뒤엉켜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초록색으로 뒤덮인 듯 했다. 한참동안 녹색 고양이와 마주 보며 눈을 깜박였다. 녹색 고양이는 가냘픈 목소리를 힘겹게 내뱉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눈을 깜박인 게 아니었다. 제대로 들어올리기 힘든 눈꺼풀을 조금씩 들어 올렸다 내리는 거였다. 그 고양이는 곧 끊어질 것 같은 목소리를 연거푸 꺼내고 있었다. 조금 더 다가가려는데 다급한 발소리가 들렸다. 황급히 구석으로 몸을 숨겼다. 발소리는 녹색 고양이 근처에서 멈췄다. 녹색 고양이가 숨어 있는 자동차 앞에는 아이들이 몰려 있었다.
아이들은 저마다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한 아이의 손에는 작은 물통이 들려 있었다. 투명한 통의 밑바닥으로 물이 넘실대는 게 보였다. 다른 아이들은 물통에 대고 작은 무언가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손을 쥐었다 펼 때마다 녹색 액체가 통 안의 물에 떨어졌다. 순식간에 통 안의 물은 초록색으로 물들었다. 아이들은 자동차 앞에 쭈그려 앉았다. 아이들과 눈이 마주친 녹색 고양이가 급히 몸을 일으켰다. 아이들은 녹색 고양이를 보며 소리를 질렀다. 아이들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녹색 고양이는 한발 짝씩 물러났다. 녹색 고양이의 머리부터 뒷발까지 아이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이 없었다. 녹색 고양이는 애써 그 눈길들을 외면했다. 아이들의 눈길을 피한 시선은 내게 닿았다. 녹색 고양이는 나만 들을 수 있을 것 같은 소리로 울어댔다. 나는 그저 빤히 녹색 고양이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이 들고 있던 통이 바닥으로 기울었다. 길바닥으로 녹색 물이 쏟아졌다. 순식간에 바닥이 흥건해졌다. 아직 물기가 마르지 않은 녹색 고양이의 발이 물들기 시작했다. 녹색 고양이는 재빠르게 뒷걸음질 쳤지만 초록색 물은 곧장 따라붙었다. 검은 바닥을 더 진하게 물들인 녹색 물은 알싸한 악취를 뿜어냈다. 도망갈 데가 없어진 녹색 고양이는 다 쉬어가는 목소리를 연거푸 토해냈다. 축축하게 젖은 녹색 고양이의 털이 쉴 새 없이 떨렸다. 녹색 고양이는 내게서 눈길을 돌리지 않았다. 도저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녹색 고양이에게로 갔다가는 나까지 초록색 물에 잠식당할 것 같았다. 녹색 고양이는 짧게 숨을 뱉어냈다. 새어나오는 숨이 점점 가늘어졌다. 세차게 떨리던 녹색 털이 서서히 얼어붙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겨우 들고 있던 녹색 고양이의 눈꺼풀이 내려앉았다. 눈앞이 온통 초록색으로 뒤덮이는 듯 했다. 시끄럽게 울리는 웃음소리에 귀가 멀 것 같았다. 녹색 고양이의 눈이 완전히 감기자 숨이 턱 내려앉았다. 아이들의 어수선한 아우성에 묻혀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길바닥에 물든 초록색 물이 검붉어보였다.
4
엄마는 눈앞에서 사지가 뜯겨져 나갔다. 정신없이 지나가는 바퀴자국에 다리가 으스러지고 꼬리가 잘려나갔다. 쇳소리가 나올 때까지 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태어나서 그렇게 울어본 적이 있었을까 싶다. 내게로 쏜살같이 달려오던 엄마는 내 앞에서 사정없이 짓밟혀 찢어졌다. 순식간에 엄마의 형체는 원래부터 없었던 것처럼 흩어져 버렸다.
그 자리에서 며칠을 울었을까. 울음에 지쳐 잠든 지가 언젠지도 흐릿했다. 눈을 떴을 땐 그 도로에 있었던 것이 아득했다. 시야가 온통 뿌옇게 변한 것 같았다. 눈을 감았다가 뜨자 내 얼굴의 두 세배 정도 되는 것 같은 얼굴이 보였다. 분명히 나를 보고 있던 그 얼굴은 눈을 서서히 감았다가 떴다. 내가 정신을 차릴 때까지 눈을 깜박이는 걸 계속했다. 뚜렷한 형체가 눈에 다 담기고 나서야 나 역시도 그것을 따라 눈을 깜박였다. 나지막한 웃음소리를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지내던 그 아파트 길목까지 어떻게 왔는지는 모르겠다. 그때 분명 누군가에게 안겨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때 풍기던 냄새는 낯설지만 왠지 모르게 그걸 맡고 있으니 편안했다. 잠깐이나마 맡았던 그 냄새를 따라갔을 때 그녀를 마주했다. 그녀는 처음 만났을 때처럼 나를 보고는 조심스레 눈을 깜박였다.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가본 것도 사람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본 것도 처음이었다. 그녀는 내가 눈을 깜박이는 걸 보고서야 내 털을 쓸어내렸다.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에 살며시 목소리를 꺼냈다. 조심스럽게 쓸어내리는 느낌에 잠들었던 것 같다.
“제리”라고 불린 건 그 날 이후였다. 그녀의 냄새를 따라가면 끼니를 때울 수 있었다. 허겁지겁 그릇을 비워내고 있으면 그녀는 “제리”라고 부르며 내 등을 쓸어내렸다. 천천히 털을 쓰다듬는 손의 온기를 느끼고 있으면 졸음이 밀려왔다. 그때만큼은 편하게 네 발을 쭉 뻗고 잠들 수 있었다. 내가 깊게 잠에 빠져들 때까지 그녀는 내 머리부터 등까지 쓸어내리는 손길을 멈추지 않았다. 그녀가 나긋하게 “제리”라고 부르면 마치 엄마가 옆에 있는 것만 기분이 들었다. 편하게 숨을 내쉴 수 있는 시간은 그때뿐이었다.
그녀의 주위는 항상 시끄러운 소리로 북적였다. 그 소리들 사이에 있을 때 그녀는 작은 미소조차 짓지 않았다. 그녀를 찾는 사람들은 나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녀의 집 문 앞에 엎드려 있는 나를 보던 사람들의 눈길은 매일같이 따가웠다. 그 사람들의 시선은 녹색 고양이 근처에 몰려들었던 아이들 같기도 했고 검은 고양이를 바라보던 형체 없는 사람 같기도 했다. 그녀 주위의 냄새는 날이 갈수록 얼룩져갔다.
“사람 먹고 살기도 바빠 죽겠는데 뭣 하러 도둑고양이 같은 걸 챙기는 건지 모르겠어.”
“저런 것들한테 자꾸 밥을 주니까 이 동네에 고양이가 득실대잖아.”
“밤마다 진짜 고양이 울음소리 때문에 잠을 못 자겠다니까.”
그녀 집안에서 웅성대는 소리 중에 그녀의 목소리는 없었다. 어수선하게 얽히는 목소리는 하나같이 날카로웠다. 그들의 얼굴 또한 그랬다. 그 사람들 중에서 그녀와 같은 얼굴은 없었다. 비슷한 얼굴조차도 없었다. 그 사람들의 얼굴은 칼날같이 서늘했다. 그들이 보이면 나는 그녀에게로 가던 발걸음을 돌리곤 했다. 그 사람들의 냄새로 가득할 때에는 그녀 주위의 공기가 탁해지는 듯 했다.
5
내가 제대로 마주한 얼굴은 두 개뿐이었다. 하나는 그녀, 다른 하나는 그녀의 아이였다. 녹색 고양이를 보고 난 후 사람의 아이 얼굴을 다시 마주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녀의 발소리보다 작은 발소리가 들리면 가게를 벗어났다. 작은 발소리만 들어도 그때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귓전을 때리는 것 같았다.
아이는 누가 봐도 그녀의 아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녀를 안 닮은 곳이라곤 찾을 수 없었으니까 말이다. 생김새뿐만이 아니라 하는 행동 까지도 그녀를 빼다 박았다. 그녀가 작아진다면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싶었다. 그녀가 나를 쓰다듬고 있을 때마다 아이는 문 뒤에서 얼굴만 살짝 내밀고 있었다. 어쩌다 한 번 나를 쳐다보고 있는 아이와 눈이 마주치기도 했다. 문 뒤에 서 있던 아이는 하루하루가 흘러가면서 한 발짝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녀의 집 근처에는 나 말고도 여러 고양이들이 몰려들었다. 아파트 단지에서 멀지 않은 골목에 있는 그녀의 집은 그 전봇대와 같았다. 검은 고양이를 마주친 그 전봇대 말이다. 그녀는 나 말고도 다른 고양이들의 밥그릇도 챙겨주곤 했다. 이곳에 오면 쉽게 끼니를 해결할 수 있기에 몇몇 고양이들은 자주 이곳에 찾아오곤 했다.
아이는 나만 봤다 하면 손을 뻗었다. 많은 고양이들 중에서도 아이는 나만 찾아 손을 뻗어오곤 했다. 그녀가 쓰다듬는 고양이는 나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랬던 건지도 모르겠다. 내게 뻗은 아이의 손바닥에는 항상 작게 조각낸 소시지가 놓여 있었다. 아이는 이러다보면 한 번쯤은 내가 다가와줄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나는 그런 아이를 볼 때마다 달아나기 일쑤였다. 아이는 쉽게 손을 거두지 않았다. 아이는 내가 문 앞에 있지 않아도 금세 찾아내곤 했다. 내게 다가오기 시작한 아이는 전과는 달랐다. 문 뒤에 숨어 있는 게 아니라 문을 열고 나와 있었다. 차 밑에 숨어 있는 나를 보기 위해 그 앞에 쭈그려 앉아 있는 게 아이의 일상이었다. 어쩌다 나와 눈이라도 마주치면 환하게 웃음 짓곤 했다. 웃는 아이의 얼굴에 처음 만났을 때 본 그녀의 미소가 겹쳤다.
차 밑에서 나왔을 때 아이의 손에는 여전히 소시지가 놓여 있었다. 나는 아이를 빤히 쳐다보다가 아이의 손으로 시선을 옮겼다. 아이의 손에 코를 가까이 대고 조심스럽게 냄새를 맡았다. 아이에게서 옅게 그녀의 냄새가 났다. 소시지를 하나 먹자 아이는 더 활짝 웃으며 손을 더욱 가까이 내밀었다. 소시지를 다 먹고 아이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머리 위로 큰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아이가 손을 내 머리 위로 뻗은 것이었다. 머리로 커다란 그림자가 드리워지자 녹색 고양이에게로 물통을 기울이던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다시금 들리는 듯 했다. 순간적으로 나도 모르게 발톱을 드러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이의 손등이 빨개져 있었다. 아이는 자지러지게 울었다. 우렁찬 울음소리에 그녀가 다급하게 달려오고 있었다. 그녀를 보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바로 그 자리를 뛰쳐나왔다.
그녀를 못 본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문 앞에 가만히 엎드려 있으면 곧 그녀가 와서 쓰다듬어줄 거라고 생각했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나를 흘겨보며 걸음을 재촉했다. 문틈으로 겨우 본 그녀는 천장에 걸린 네모난 것을 보고 있었다. 그 까맣고 네모난 것에서는 딱딱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최근 서울 시내 길고양이에게서 바이러스 검출되었다는 결과가 보도되었습니다. 도심을 떠도는 고양이에게서 발견된 것은 이른바 살인진드기라고 불리는 바이러스입니다. 연구진은 사람 간에 바이러스 전파 사례로 볼 때 길고양이와 사람 간에도 바이러스가 전염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무슨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그 목소리를 들으며 간간히 그녀와 사람들의 얘기가 시작된 건 확실했다. 그들은 그 상자에 눈을 떼지 않으며 대화를 이어갔다. 수군거리는 소리가 마치 내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이래서 도둑 고양이를 안 좋아한다니까.”
“그럼 어떡해? 자기네 가게 찾아오는 그 고양이도 위험한 거 아니야?”
“맞아, 저번에 자기네 애기도 저 고양이가 할퀴었다고 하지 않았어?”
그들의 목소리는 어수선하기 이를 데 없었다. 호들갑을 떠는 그들 앞에서 그녀는 고개만 떨구고 있었다. 한두 번 정도 대답을 하던 그녀의 목소리는 평소보다도 가라앉아 있었다. 어떤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것 때문일까. 아니면 그 아이를 상처 입힌 것 때문일까. 머리가 어지러웠다. 다시 얼굴을 파묻은 채 눈을 감았다.
6
일주일 만에 드러난 그녀는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나를 쓰다듬는 손길은 여전했으나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다. 그저 말없이 내 등을 쓸어내리기만 할 뿐이었다. 그녀는 허공을 응시하며 손으로만 내 털을 쓰다듬었다. 그녀가 돌아온 후에는 그녀의 얼굴을 마주했던 적이 없었다. 그녀는 더 이상 나를 보며 눈을 깜박여 주지도 않았다.
가게 문틈으로 아이를 본 적도 있었다. 나를 쳐다보다 눈이 마주칠 때면 아이는 전에 다친 손을 부여잡았다. 그녀는 아이를 절대로 문밖으로 나오게 하지 않았다. 아이 역시도 내가 있을 때에는 나올 생각이 없어보였다. 그녀의 손길을 느끼는 날이 갈수록 줄어들었다. 그녀는 나를 쓰다듬으면서도 허공을 보거나 아이만을 주시했다. 나중에는 나를 쓰다듬기는커녕 쳐다보지도 않았다. 내가 올 때쯤 되면 밥그릇만 채워놓았다.
그녀가 돌아오고 나서부터 마주치는 고양이들이 줄어들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의 가게에는 익숙한 향기가 났다. 같이 밥을 먹던 고양이들의 냄새였으나 뭔가 달랐다. 그들의 냄새는 지저분하게 뒤섞여 있었다. 한 번도 맡아본 적 없는 체취와 어우러져 있었다. 그건 그녀의 체취에도 마찬가지였다. 만날 때마다 그녀는 전과는 다른 향기를 내뿜었다. 이제는 그녀가 그녀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그녀의 얼굴을 하고 나타난 것은 아닐까. 그녀가 나를 보지 않았을 때부터 그녀의 집에 가는 날도 줄어들었다.
그녀의 체취에 다른 냄새가 엉켜 있었다. 겨우 마주하게 된 그녀는 뒷모습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사료 위에 어떤 알갱이들을 쏟아 붓고 있었다. 잘랑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알갱이를 쏟아내는 그녀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게 보였다. 파란 알갱이들에 사료의 색이 뒤섞였다. 다른 고양이들의 체취에 섞여 있던 냄새였다. 알싸한 악취가 코끝을 찔렀다. 그녀는 채워놓은 밥그릇을 한참동안이나 바라보다 안으로 들어갔다.
사료 냄새에 정신이 혼미했지만 먹고 싶지 않았다. 나는 차 밑에 숨어 엎드려 있었다. 자동차 밑 틈으로 하얀 발이 보였다. 이 주위에서 본 적 없는 것 같은 고양이였다. 얼굴과 등은 검은 색에 배와 발은 하얀색인 익숙한 무늬를 가진 고양이였다. 꽤 오랫동안 굶주렸던 것인지 그 고양이는 곧장 그릇을 비웠다. 숨 쉴 틈도 없어 보일 정도로 허겁지겁 사료를 먹어치웠다. 순식간에 그 고양이에게 알싸한 냄새가 배겼다. 냄새가 물들어 가면서 그 고양이의 몸이 기울어졌다.
검은 고양이의 숨이 점점 빨라졌다. 숨을 내뱉기도 힘든 것처럼 보였다. 그 고양이는 막힌 숨을 간신히 뱉어냈다. 뱉어내는 숨이 점점 잦아들었다. 검고 하얀 털이 바짝 말라가는 것처럼 보였다. 검은 고양이는 꼬리부터 시작해 온몸이 굳어가고 있었다. 그 아이는 힘겹게 한 걸음씩 내딛었다. 내딛을 때마다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듯이 다리가 떨리는 것이 보였다. 그 고양이는 계단을 다 내려오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졌다. 미세하게 움직이던 배가 서서히 멈췄다. 눈도 채 감지 못한 채 검은 고양이는 쓰러진 모습으로 굳어버렸다.
몸이 떨렸다. 꼬리부터 귀까지 몸이 천천히 경직되어갔다. 녹슨 문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문을 열고 나온 건 그녀의 다리였다. 차 밑에 웅크려 시선만 올렸다. 올려다 본 그녀는 입술만 깨물고 있었다. 그녀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감았던 눈을 뜬 그녀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어느 것으로도 가리고 있지 않은 얼굴인데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도 그 고양이처럼 굳어버린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딱딱하게 쓰러진 고양이를 발로 툭 툭 건드렸다. 이미 숨을 거둔 고양이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녀의 손에는 검은 비닐이 들려 있었다. 그녀는 손을 비닐에 넣고 고양이를 주웠다. 고양이를 주은 상태로 비닐을 뒤집었다. 죽은 고양이를 비닐에 담는 내내 그녀는 울지도 웃지도 않았다. 움직이지 않는 앞발을 간신히 움직였다. 천천히 뒷걸음질 했다. 시야에는 그녀가 비치지 않았다. 시선을 올려도 더 이상 그녀가 보이지 않았다. 내가 본 게 그녀가 맞는지 모르겠다. 그녀의 얼굴을 가진 다른 사람이 온 것일까. 차 밑을 빠져나와 달렸다. 눈을 질끈 감은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달렸다. 굳어가는 고양이들의 얼굴에 그녀의 미소가 겹쳤다. 그림자와 같이 새까맸던 전의 그 사람처럼 그녀의 웃는 얼굴이 점점 사라졌다. 검게 물들었다. 눈앞이 온통 캄캄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