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세 김득만씨에게 아이가 생겼다
명예퇴직을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은행장이라는 지위도 놓치고 싶지 않았고, 인생의 마침표를 몇 줄씩 앞당겨 찍는 것 같기도 해서 꺼려지기도 했다. 박수칠 때 떠난다는 생각 역시 해본 적 없었으므로 교사인 부인이 은퇴시기와 최대한 맞춰서 은퇴하는 게 오십 먹고 잡은 내 1차 목표였다. 골프나 여행, 혹은 정원이나 밭을 가꾸는 일 따위에는 전혀 취미를 붙여본 적도, 또 새로이 해볼 생각도 없어서 퇴직 후에 할 게 전혀 없었다. 술도 입에 대지를 않았으므로 가끔 지인들과 가는 등산이 아니라면 집에서 눌러 앉아 퇴직금이나 축내는 홀아비 신세가 될 거라는 건 자명한 일이었다. 부인과 함께 당장에라도 노후를 보낼 수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그녀가 퇴직하려면 별 일이 없는 한 5년은 기다려야만 했다. 교감 선생님으로 은퇴하기는 죽어도 싫은 눈치였으니까.
출근시간이 지나서인지 지하철역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승강장에 덩그러니 서서 열차가 들어오는 걸 보고 있는데 문득 딸의 마지막 말이 떠올랐다.
“나 아빠 딸이 아니래.”
열차에 가만히 앉아있는 것 말고는 할 게 없어서 스마트폰만 쳐다보고 있자니 꼭 평소에 혀를 차며 쳐다보던 젊은이들 같아 보였다. 은선이도 그랬다. 제 엄마와 이야기를 하다 말고, 밥을 먹다 말고, 또 조수석에 앉아서도 그것만 쳐다보고 있기에 핀잔을 주었던 적도 있었으니까. 전날 은선이와 있겠다며 아예 집에 들어오지도 않는 바람에 해질녘 통화 이후로 통 연락이 없는 부인이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아니 글쎄, 당신도 저번에 본 적 있지 않아요? 그 유전자연구원에서 일한다던 남 서방 후배. 왜 기억을 못 해요? 당신이랑 대학 동문이라고 딸 하나 더 있으면 시집보내고 싶다고 했던 그 사람이요.”
알겠다고, 기억이 난다고 이야기했지만 안사람의 목소리가 여전히 나를 답답한 사람 취급했던 건 내가 기억해내지 못했던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리라.
“그 후배가 남 서방한테 유전자검사 한번 해줄 테니 머리카락이나 가져와보라고 했나 봐요. 은선이가 재미삼아 가족들 친자확인이나 해보자고 해서 그러마고 했는데 그렇게 나왔… 왜 화를 내요? 양손에 손주들 데리고 와서 한번 해보자는데 그게 뭐라고 바득바득 거절을 하겠어요. 보통은 평생가도 그런 거 해볼 일 잘 없잖아요. 아니, 낸들 그렇게 될 줄 알았겠어요? 당신은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그럼 은선이가 우리 딸이지 남의 딸이에요? 낳은 정 없으면 기른 정도 없대요? 낳은 정도 나한테는 있어요. 감당도 안 될 만큼 산만하게 부푼 배랑 맞바꾼 딸은 은선이에요. 당신한테는 어떨지 모르지만, 또 당신 씨야 어디서 뭘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 애도 내 새끼라는 걸 부정할 수 없는 것처럼 은선이에 대해서도 나는 같아요. 내 배에서 나온 아이는 나중에 어찌 된다고 해도 지금 당장은 은선이가 세상 하나뿐인 내 새끼가 맞아요, 그만해요! 당신만 기분 안 좋은 줄 알아요? 지금 중요한 건 우리가 은선이의 부모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거예요! 알았어요? 전화 끊어요. 나중에 얘기합시다. 난 은선이한테 가봐야 하니까.”
부인은 아이가 하나였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까지 아이 하나만 바란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아들만 바란 것도 아니었다. 다만 많이 낳는 걸 바랄 뿐이었으나 어쩌겠는가. 아이는 여자가 낳는 것임을. 또 어쩌겠는가. 원치 않는 양육이라는 족쇄를 부인에게 채우고 싶지 않았음을. 결국 내 뜻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상관없었다. 애정을 쏟을 핏줄은 있었으니까.
본래 한번 흘러간 감정은 회수도 반납도 되지 않는 것이어서 우리 부부는 온갖 좋은 감정들만을 아이에게 주고자 노력하며 살았다. 그러는 동안에도 내 다산(多産)의 아쉬움이 완전히 지워지지 않은 것과는 별개로, 아이는 무럭무럭 잘 자랐다. 끝내 돌아온 것은 은선이가 우리 딸이 아니라는 결과와 남의 자식을 키웠다는 사실뿐이었지만. 가끔 다큐멘터리를 보면 왜 자기 둥지에 놓고 간 뻐꾸기의 알을 새들이 알아보지 못하는 걸까 의아해하던 나 자신이 머저리로 변하는 순간을 맞이했을 때, 사기를 당했다는 걸 막 깨달은 사람 같았다.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한마음 산부인과’
스마트폰으로 더듬더듬 검색을 해보았다. 예전보다 규모가 커진 걸 보니 꽤나 잘 되는 모양이었다. 남의 자식을 잃어버리고서도 말이다.
실제로 마주서자 병원은 더 커보였다. 2층짜리 건물이 5층이 된 것이야 익히 들어 알고 있었음에도 제대로 찾아온 것이 맞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안에는 두 명의 간호사가 보였는데, 간호사라고 보기에는, 아니 사회인이라고 하기에도 어려보이는 여자 하나와 삼십 대 전후로 보이는 남자 하나가 앉아있었다.
“어떤 일로 오셨어요?”
중년이 넘어가는 아저씨 하나가 어기적거리며 들어오는 게 이상해보였던지 어린 간호사가 일어나 물었지만 나는 넋 나간 사람처럼 병원을 둘러보았다. 원래 병원 구조가 이랬었나 싶었지만, 겨우 사나흘밖에는 보지 못했던, 그마저도 30년 전의 회상이니 제대로 남아있을 리가 없을 테였다. 더욱이 안사람과 딸만 생각하던 터라 병원은 제대로 둘러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으니 오죽했을까.
“환자분 보러 오셨어요?”
내가 아무런 대꾸가 없자 간호사는 미심쩍은 얼굴을 감출 생각이 없어보였고 나는 그제야 입을 열었다.
“아…. 그건 아니고요…”
“그럼…”
나도 간호사도 말끝을 흐렸다. 병원에 경비원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성질 급한 간호사였다면 누군가를 부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보처럼 중얼거리는 내 표정이나 태도가 내가 봐도 수상해보였으니.
“저기… 원장님을 뵈러왔습니다.”
원장을 찾는다는 말에 이번에는 오른편에 앉아있던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저희 원장님은 어쩐 일로…. 진료를 원하신다면…”
“아뇨. 진료가 아니라 원장님한테 볼 일이 있는 겁니다.”
“병원 일 때문에 오신 게 아니고요?”
“아뇨. 아닌 건 아닌데…”
“예? 그럼…”
“그래도 진료를 보러온 건 아니고…”
“실례지만 누구십니까?”
남자는 저 멀리 있는 사람이 소리치는 걸 자세히 들으려 애쓰는 사람처럼 얼굴을 찌푸렸다.
“저는… 아, 그러니까… 저희 딸이 여기서 태어나서…”
“딸이요? 환자분 보러 오셨나요?”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또 무슨 말을 하길 바라는지 스스로도 몰랐다. 다만 무작정 찾아온 게 전부였다. 내 자식으로 살아온 남의 자식과 남의 자식으로 살아온 내 자식이 자신들의 위치를 찾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싶었다. 더 정확히는 내 자식이 어디에서 뭘 하는지, 행복하게 살고 있을지, 고생은 하지 않는지, 살아 있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찾아온 곳이 바로 이곳이었는데, 일단 오고 나니 어찌해야할 바를 몰랐다.
“죄송합니다.”
나는 곧장 병원을 나왔다. 계속 그렇게 아무런 말도 못 하고 서있는 게 민폐라고 여겨지기도 했지만 또 아니기도 했다. 다짜고짜 원장실을 찾아가 지금 자리에 있을지 없을지도 모를, 어쩌면 새로 태어날 아이를 받고 있을지도 모르는 사람을 무작정 기다릴 수도 없었지만, 내가 선뜻 쳐들어가지 못했던 가장 중대한 문제는 내가 상대가 나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일까에 대한 고민과 정리를 다 마치고 나서야 말을 꺼내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그건 사회생활을 시작하기 훨씬 이전부터 해서 지점장이 되고 나서는 최고조에 이른, 때때로 바뀔 수 있는 취향 같은 게 아니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회사를 뛰쳐나온 건 바로 지난 주 월요일이었으니까.
시간이 많이 흘러서인지 별 볼일 없던 동네가 상가도 들어서고 번화가에서 쉬이 볼 수 있는 체인점도 즐비해진 걸 보자 놀라우면서도 나 살던 곳을 잃어버린 것 같아 내심 아쉬웠다. 거리의 사람들도 아주 많아서 개중에 내 딸이 있을 것만 같은 생각도 들었다. 한적하고 한가롭던 동네여서 죄다 이 동네에서 아이를 보았으니 우리 딸을 키우던 가족들은 여기서 그렇게 먼 곳에 살지는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원장의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는다면 무슨 말을 먼저 해야 할까. 우선 만나자고 해야 할까.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당장 굶어죽을까 걱정을 해야 하는 때도 아닌, 20세기 후반에 일어난 ‘이전 시대적’ 과오를 나는 어떻게 바로잡아야 할까.
“전화를 받을 수 없어…”
한숨을 내쉬었지만 다행이다 싶기도 했다. 나는 터덜터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피리 3동 11-14번지 87호. 아직도 내가 그 주소를 잊어버릴 수 없는 건 내가 처음으로 홀로서기를 했던 집이기도, 그보다는 부인과 함께 시작했던 곳이기 때문이기도, 또 거기서 딸을 가졌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 집 단칸방에서 시작해서 결국엔 그 집을 사버렸으니 젊은 날을 온통 거기서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스마트폰에 주소를 쳐봐도 없는 주소로만 나오는 걸 보니 이제는 다른 건물이 들어섰거나 주소가 바뀐 모양이었다. 내 인생에서 으레 없어진 것들처럼 나에게는 없는 집이 되어버렸다.
예나 지금이나 파출소의 위치는 그대로였다. 지금은 지구대라고 많이들 부르는데 당시에는 무조건 파출소였다. 친구들과 놀던 은선이가 밤이 되어 무서워지면 가끔 들어가 집으로 전화를 걸어 나를 찾곤 했던 것도, 그보다 더 어릴 때는 파출부 아주머니랑 상관이 있는지 물었던 것도 떠올랐다. 파출소 오른쪽으로 난 두 갈래 길이 다시 한 갈래로 합쳐질 때쯤, 건물 외벽하나 바꾸지 않고 선 사우나가 눈에 들어왔고 곧장 왼쪽으로 난 완만한 언덕으로 걸음을 옮기자 은선이가 다니던 학교 후문이 나타났다. 이어 달동네라고 불리던 그곳이 눈에 들어왔다. 딱 예상했던 것만큼 변해있었다. 길쭉길쭉한 아파트가 들어섰고, 질릴 만큼 새하얗게 서있는 그 아파트라는 게 서울의 여느 아파트단지에 비할 만큼 컸다.
아파트 단지가 아무리 낯설었다고 해도, 예전과 마찬가지로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커다란 이정표가 남아있었으므로 예전 우리 살던 집터를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당시 우리 집 앞에는 커다란 은행나무가 있었는데, 우리 문 앞에서 열 발자국도 떨어지지 않았던 데다, 이전에 살던 집주인 할머니가 자신이 심어서 가꾸어온 나무라고 온 마을에 말하고 다녔던 터라, 집을 넘겨받은 우리 가족이 자연스레 그 소유권을 가져가는 분위기였지만, 이상하게도 떨어진 열매만큼은 따로 정해진 주인이 없는 듯했다. 나나 부인 역시 은행에는 관심이 없었으므로 딱히 그 점을 문제 삼을 일 같은 것도 없었을 뿐더러, 떨어진 은행을 서둘러 가져가주는 게 나한테도, 그리고 은선이한테도 더 나은 일이었다. 날이 쌀쌀해지기 시작하면 우리 부녀는 은행냄새가 난다고 진저리를 쳤으니까.
한여름인데도 나한테는 벌써 그 냄새가 나는 듯했다. 잠시 쉬려 나무 옆 벤치에 앉자 정면에 마주한 아파트의 2층 베란다가 보였다. 예전 집의 모습을 거기에 씌우는 게 터무니없는 일 같았으나 어느새 나는 그 터무니없는 일을 하고 있었다. 정면으로 보이는 아파트 안주인이 빨래를 널고 있었는데 자신의 집을 바라보며 앉아있는 내가 이상해보였는지 집안에 있는 다른 누군가에게 무어라 말을 건네고 있었다. 너무 빤히 그 집을 바라보는 것만 같아서 금세 시선을 거두고 일어나려 했지만 햇볕이 너무 뜨거워 차마 그늘을 벗어날 수 없었으므로, 더위가 사위고 나서야 집으로 향할 수 있었다.
신발을 벗어 신발장에 가지런히 넣어놓고는,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부인을 열 발자국이 채 안 되는 거리에 선 채로 바라보고 있었다. 안경은 어디다가 벗어던졌는지 목이 빠져라 화면만 보고 있었는데 아마 학교 사이트를 굽이굽이 누비는 모양이었다.
“씻고 와요. 밥 차릴 테니.”
애가 타는 건 나뿐인가 싶을 정도로 그녀의 목소리는 태연했다. 우리는 하얀 쌀밥과 콩자반, 깻잎무침, 김치 그리고 감자를 넣은 미역국을 놓고 마주 앉았다.
“들어요.”
“별 일 없어?”
“별 일이야 있겠어요? 이제 막 개학을 해서 좀 어수선하긴 하지만 괜찮아요. 선생님들이나 학생들이나 몇 주 안 되는 사이에 늦잠 자던 버릇이 그새 배었는지 다들 힘든가 봐요.”
“그렇군.”
“깻잎 좀 먹어봐요. 은선이가 당신 좋아하는 거라고 가져왔어요. 미역국도 끓여놓고 갔어요. 당신이야 고기를 넣은 게 좋다고 해도 난 아닌 거 잘 알죠? 그러니 또 괜히 저번처럼 입맛에 안 맞는다고 핀잔주지 말고요.”
“그러네.”
“무슨 대답이 그래요? 은선이는 연락 없었어요?”
“그러네.”
“이해해요. 애들 학교에 들어가서 좀 바쁜가 봐요. 시집가더니 안 챙긴다고 서운해 하지 말고요.”
은선이는 결혼을 좀 일찍 했다. 아이는 그보다 더 빨리 낳았는데, 출산을 일찍 하는 건 아내나 장모님도 마찬가지였다. 그 애가 성인이 되자마자 아이를 가졌을 때, 이른 나이에 출산을 하는 게 집안 내력으로 굳어버리는 게 아닐까 싶기도 했을 정도였으니.
첫 손주를 보며 느꼈던 신비한 감정, 그런 감정을 느꼈던 나 자신이 싫어졌다. 더 정확히는 그런 감정을 느꼈던 나 자신에게 배신감을 느꼈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그나마 행복하고 즐거웠던 손주들과의 추억이 내 주름 속에 자리 잡고 있다고 할지라도 이제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애초부터 잘못된 시작이었으므로 그간의 모든 것은 정말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좀 더 들어요.”
부인은 반찬을 내 쪽으로 밀었다.
“당신도 먹어.”
“당신만 먹으라고 하는 거 아니에요. 나도 먹을 거예요.”
절반이 넘게 남은 밥공기와는 다르게 텅 비어버린 국그릇을 다시금 채운 부인은 내 옆자리로 옮겨 앉았다. 부인은 방금 전보다는 천천히 밥그릇을 비웠다. 아마 그날따라 유독 천천히 먹는 나에게 속도를 맞춘 것이리라. 나는 밥을 먹는 중간 중간, 집에 이사 올 때부터 있던 나무 식탁에 일정한 간격으로 그어진 직선의 틈에 시선을 메웠다. 어디 하나 평행하지 않은 곳이 있는지 틈의 너비가 다른 곳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몇 번이고 위로부터 아래로, 그리고 아래로부터 위로 몇 번씩이나.
다음날에도 피리동으로 출근을 했다. 산부인과 근처 설렁탕 집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나니 어느새 정오가 되었다. 햇살이 징그러울 정도로 뜨거워 길 건너에 있는 2층짜리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커피숍이라는 데가 그렇게 사람이 북적이는 데인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커피라는 건 입에도 대지 않는데다가 젊은 사원들이 한 잔씩 사들고 돌아다니는 커피가 밥값 못지않다는 데 놀라서 비싸게 이용하는 사람이나 비싸게 판매하는 사람 어느 쪽이든 잘못되긴 했다는 생각만 했을 뿐이었는데, 자릿값, 자릿값 하더니만 이 더운 날 몇 시간씩 죽치고 시원하게 앉아있는 나 같은 사람들 생각하면 마냥 없는 핑계도 아니겠다 싶었다.
“자네가 커피숍에서 보자고 해서 놀랐네. 이런 데 평생 안 올 것 같더니.”
훌러덩 벗겨진 머리에 휘갈긴 낙서 같은 머리를 가지런히 한번 쓰다듬으며 원장이 내 옆자리에 앉았다.
“예, 선배님. 그렇게 됐습니다.”
“아이고, 왜 병원으로 오지 않고?”
“그냥, 뭐 그렇죠.”
“그래. 뭐 장소가 중요해? 그나저나 이 평일에 무슨 일이야? 출근은 안 했어?”
“저 퇴직했습니다.”
“퇴직? 뭣 하러? 아직 좀 남았잖아?”
“그랬죠.”
“권고사직인가?”
“아뇨. 그런 건 아니고요.”
“명예퇴직이군.”
“예, 뭐…”
“요즘 임금피크제다 뭐다 해서 다들 눈치 보여 빨리 그만둔다고 하더니…. 표정이 많이 안 좋은 거구만.”
“꼭 그런 건 아니고요….”
“무슨 다른 일이라도 있는 거야? 자리를 옮겨서 이야기할까?”
“아뇨. 괜찮습니다.”
박 선배는 둘 사이의 대화를 행여나 누가 들을까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는 나의 고등학교 선배이자 은선이가 태어난 산부인과의 원장이었다. 동문회에서 우연히 그 선배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내 딸은 그곳에서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엉뚱한 부모에게 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당시 내가 사는 동네에 개업한 산부인과 원장의 아들이자 의사인 사람이 나의 고등학교 선배라는 사실은 안사람이 그곳에서 출산을 하는 데 커다란 이유가 되었고 대한민국 인맥이라는 게 그렇듯, 뿌리치기가 쉬운 것은 아니었다.
“무슨 일이 있는 거야? 왜 아무 말이 없어?”
“선배님.”
“그래.”
그는 내 쪽으로 몸을 내밀었다. 그의 시계는 오후 12시 2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바쁘신 거 아니에요?”
문득 그가 바빠 도중에 돌아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염려되었다. 분명 잘못은 그가 한 것이므로 내가 다짜고짜 병원으로 찾아가 내 자식을 내놓으라고 난리를 쳐도 박 선배는 할 말이 없는 게 분명한데도 그에게 내줄 시간이 있는지를 물어보았다. 나는 그만큼 비겁하고 억눌린 사람이었다.
“아냐, 아냐. 오늘은 별 거 없어. 예약도 없고 저 병원에 의사가 나 하나도 아니니까. 게다가 요즘은 애도 잘 안 낳으러 오는데 무슨 일을 하겠어?”
그는 손사래를 쳤다.
“그나저나 자네 나한테 할 말이 있어서 온 거 아니야, 정말?”
“선배님.”
“그래, 나 여기 있으니까 어서 말해봐. 무슨 일이야?”
“은선이가. 은선이가 제 딸이 아니래요.”
“아니, 그게 무슨…”
“말 그대로에요.”
다짜고짜 화를 내며 따져들고 싶었다. 멱살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따져 물으려고 하자 그의 표정이 어두워지고 시무룩해지는 것이 떠올랐고, 벌써부터 난감해지기도 했다. 은선이가 내 딸이 아닌 게 맞느냐며 안사람에게 소리치던 막무가내는 지금 없었다. 나는 잠시 숨을 멈췄다.
“그럼 제수씨가 다른 남자와 만났다는 거야? 은선이가 다른 남자의 애라는 거야?”
잠시의 정적. 힘껏 치고나가기 위한 숨고르기를 그는 그렇게 끊어버렸다. 나는 부인의 불륜을 눈치 채고 푸념을 하러 온 남자가 되어있었고, 내 둥지에 알을 가져다놓은 가해자는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억울했다. 적어도 선배는 내 아이를 만져보기라도 했다는 사실에 더욱 화가 났다. 의사랍시고 나에게로 와서는 그 차가운 손으로 내 아이를 둥지 밖으로 던져버린 것일까.
“그렇죠. 그리고 애 엄마도 다른 사람이고요”
“이해가 안 가네. 대체…”
박 선배의 말은 거기서 멈추었다. 내가 그를 찾아온 이유를 그가 깨달은 순간 상대에 대한 내 일말의 걱정은 사라지고 없었다.
“예. 여기서 바뀐 게 아닐까 싶어요. 사실 그게 아니고서야 아이가 바뀔 일은 없잖아요. 안 그래요? 안 그렇겠어요, 형님?”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충분히 그럴 법했다. 시간을 돌리지 않고서야 해결해줄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진짜 딸을 찾아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걸, 이미 서로 다른 부모의 아이, 다른 아이의 부모가 된 사람들을 원래대로 돌리지는 못한다는 걸 모를 리가 없을 테니까. 선배와 나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다음날에도, 또 다음 주에도 나는 산부인과 근처 커다란 커피숍으로 출근했지만 그 어떤 것도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부인과 무슨 대책 비슷한 거라도 나누고 싶었지만 며칠째 이야기도 못 나누었고, 박 선배가 현재 어떻게 하고 있고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간간이나마 문자로 보내주기는 했지만 만족스럽고 시원한 대답은 전혀 아니었다. 그리고 그게 나의 인내심을 바닥나게 했으므로 나는 병원 진료시간이 끝날 시간이 되어갈 때쯤 무작정 그의 사무실로 쳐들어가기로 결심했다.
저 멀리 산부인과 앞에 전에 없던 현수막이 걸려있는 게 보였다. 글씨는 알아볼 수 없었지만 그리 커보이지는 않았다. 앞으로 발을 내딛을 때마다 내심 쿵쾅거리던 발자국과 쿵쿵 내딛던 심장소리가 작아져가는 것을 느꼈다. 현수막의 내용이 서서히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지만 워낙에 심한 근시인 내가 글씨가 보이는 거리까지 가기에는 꽤 걸렸다.
“여보…”
글씨를 읽을 수 있을 만큼 가까이 섰을 때, 그러니까 내 눈이 현수막의 글씨를 잡아내는 것과 거의 동시에, 내 귀는 익숙한 목소리 하나를 잡아냈다.
“당신이 어쩐 일이야?”
“그러는 당신은요? 지금 회사에 있어야하지 않아요?”
“그건 내가 할 소리야. 왜… 학교는 어쩌고…”
부인이 말을 잇지 않은 건지 못한 건지는 모르겠다. 다만 아내의 뒤에 솟아있는 괴물 같은 건물로부터 아내를 피신시켜야만 할 것 같았다. 아무런 대책 없이 괴물을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으니까. 서늘한 커피숍 창가에 자리를 잡고 그녀와 마주앉았다. 안사람은 왼쪽 건너편으로 보이는 괴물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회사는 어쩌고 여기에 있어요?”
“그게…”
퇴직했다는 말을 꺼내지 못해 우물쭈물하고 있는데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그만 두었어요.”
“응?”
“학교요.”
“그만 두었다고?”
“그렇다니까요.”
“사표를 냈다는 말이야?”
나는 놀라 물었다. 마치 내 딸을 잃었던 그 순간처럼.
“자, 나는 말했으니 당신도 말해 봐요. 설마 회사를 관둔 건 아니죠?”
“관두었어.”
“왜요? 일할 수 있을 때까지 일하고 싶다면서요. 밑 빠진 독처럼 줄줄 새는 인생 살기 싫다고 해놓고선.”
“회사에서 월급 축내는 인간으로 취급하니 그렇지. 너도나도 퇴물 취급하는데 버틸 수가 있어?”
“당신 딸 찾으러 온 거죠? 그래서 일도 그만둔 거고요.”
“다 알고 있으면서 왜 그만두었냐고 물어보는 건 무슨 심보야?”
“그거야…”
“당신 말이 맞아. 우리 딸인데 찾아야하지 어떡하겠어. 또…”
순간 그녀의 눈에 그렁그렁 맺힌 눈물이 보였다. 눈물이 흘러내릴까 숨죽이고 기다렸지만 끝내 떨어지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다시 돌아가지 그래? 나야 지점장 달아봤으니 그렇다고 해도 당신은 아직 목표를 못 이뤘잖아. 교장 직함 달고 내려올 거라며.”
“너무 힘들었어요.”
“응?”
“내가요…”
안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 또 하려는지 이해하지도 예상하지도 못했던 건 살면서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날 통화하면서 당신한테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잖아요. 그렇게 전화를 끊고 곧장 은선이한테 전화를 걸었어요. 우리도 이렇게 힘든데 은선이는 오죽할까 싶었거든요. 다행히 전화를 걸자마자 받더라고요. 은선이 이야기는 듣지도 않고 나만 주절주절 떠들어대면서 온갖 위로의 말을 쏟아냈어요. ‘누가 뭐래도 너는 내 새끼다. 너 밖에 없다. 마음 약해지면 안 된다.’ 하면서요. 내 말이 다 끝나니까 나한테 ‘엄마’ 하면서 말을 이어가는데 그 소리가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었어요. 당신한테 그랬죠? 낳은 정만 정이냐고. 나라고 낳은 정 중요한 걸 모르겠어요? 그래도 이 마당에 낳은 정 그까짓 게 중요하면 얼마나 중요하겠나 싶었는데 은선이가 내 핏줄이 아니라는 걸 알고 나니까 그 중요한 게 홀랑 날아가 버리더라고요. 내 배에서 나온 새끼한테로 말이에요. 낳은 정이야 예전만 못한 거고, 기른 정은 계속 이어지는 거니까 기른 정만으로 살아갈 수 있을 줄 알았어요. 두 가지가 나란히 자리하는 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실은 차례로 쌓인 성 같은 거더라고요. 온갖 색깔의 기른 정 하나하나에 낳은 정이 깔려있던 거였어요. 그래서 무너져버린 거죠. 당신 말처럼 아이를 더 낳았더라면 그 애들한테 묶인 낳은 정으로 버틸 수 있지 않을까 생각도 했지만 어떻게 하겠어요. 다른 아이라고는 없는 걸.”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아니, 할 필요가 없었다. 이미 얼굴에는 계속 이야기하라는 표정이 쓰여 있었으니.
“그렇게 몇 날 며칠 미치도록 괴롭고 힘들어했더니 내 핏줄이 보고 싶어지더라고요.”
부인은 결국 눈물을 흘려보냈고, 나는 카페 한쪽에 마련되어 있는 휴지를 가져다가 건네주었다.
“커피나 좀 마셔요.”
아내는 눈물을 닦아내며 말했다.
“뭐 마실 거야?”
“난 커피 잘 몰라요. 비싼 걸로 줘요. 퇴직금도 많이 받았을 거 아니에요.”
“알겠어. 조금만 기다려.”
양손에 커피를 들고 올라오자 팔짱을 낀 채 창밖을 바라보는 부인이 보였다. 그녀의 팔뚝만한 커피를 앞에 놔주고는 옆에 앉아 함께 허공을 빤히 바라보았다.
몇 분이 흘렀을까. 잠시의 침묵 뒤에야 아내는 입을 열었다. 그러나 말을 할 생각이 없는 모양인지 혹은 아직 말을 꺼낼 준비가 되지 않아서인지 그저 커피를 홀짝일 뿐이었다. 슬슬 해가 지려했지만 커피숍의 사람들은 더욱 늘어났다.
“그래서 당신도 병원에 찾아간 거야? 핏줄 찾으려고?”
한동안 대답이 없던 그녀는 내가 질문을 던지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그거 알아요?”
“뭐 말이야?”
“며칠 전에 예전 우리 살던 집에 가봤어요. 가야지 하고 마음먹은 건 아니고, 그냥 갑자기 생각이 났거든요. 당신도 예전 주소 기억해요?”
부인은 여전히 시큰둥한 표정으로 커피를 홀짝였다.
“피리 3동 11-14번지 87호. 생각보다 아파트가 크더라고요. 예전에 당신이랑 은선이가 뜨악해하던 그 은행나무도 봤어요. 이사 갈 때 은행나무를 통째로 가져가고 싶을 정도로 크고 예뻐서 그 나무의 소유권을 누구에게든 꼭 한번은 짚어 놓고 싶을 정도였는데, 다시 보니 이상하게도 꽤 작아보였어요. 기분 탓이었겠죠? 더 이상한 건 은행 냄새가 났다는 거예요. 예전에도 그 냄새를 막 좋아라하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이 질겅질겅 밟고 다닐 때에도 고약하다는 생각까지는 안 들었거든요. 그런데 이번엔 안 그랬어요. 원래 앉으려던 나무 옆 벤치에는 못 않고 무작정 아파트 건물로 들어가 버렸죠. 냄새도 냄새지만 햇볕이 너무 뜨거워서 버티기가 힘들었으니까요. 이젠 어쩌지 싶다가 문득 꼭 전에 우리가 살던 집터였을 법한 2층으로 발걸음을 옮겼어요. 무작정 벨을 눌렀죠. 내가 미쳤지 싶었지만 어쩌겠어요. 벌써 일은 저질렀는걸. 새댁하나가 나왔는데, 꼭 우리 딸만했어요. 내가 이러저러해서 여기에 오게 됐다고 하니까 웃으면서 들어오라는 거 아니겠어요? 물론 딸 이야기는 안 했어요. 그래도 참 친절하더라고요. 요즘 같아서 누가 모르는 사람 집에 막 들이겠어요? 새댁이 나한테 차를 한 잔 내어주고는 베란다에서 빨래를 너는데, 뒤로 서있는 은행나무가 파릇파릇한 게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었어요.”
안사람은 잠시 입을 닫았다. 그녀의 왼쪽 어깨 위로 피어오른 노을을 가만히 보다가, 다시금 열린 도톰한 입을 바라보았다.
“당신 선배가 하는 그 산부인과에는 가볼 생각도 안 했어요. 병원에 가봤자 뭘 하겠어요. 기껏해야 물어물어 바뀐 아이 주소나 찾을 수 있을 텐데. 난 그냥 그 새댁이 보고 싶어서 거기로 한번 가볼까 했던 것뿐이라고요. 게다가…”
“게다가?”
“아니에요.”
“왜 말을 하다가 말아?”
“아니, 이제야 말하는 거지만 아무리 의사라고 해도 당신 선배라는 사람 앞에서…, 그때야 아파서 창피고 뭐고 정신도 없었지만 처음에는 썩 내키지 않았다고요. 그때만 떠올리면 정말 얼굴을 못 들겠어요. 그런데도 내가 그 병원을 가고 싶겠어요?”
안사람은 두 눈을 감고 고개를 가로저었고 나는 치솟는 죄책감에 어쩔 줄을 몰랐다. 그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그녀는 자신의 컵을 내 컵 옆에 나란히 놓으며 말했다.
“참 크기도 하네요. 이건 이름이 뭐래요?”
“글쎄, 영수증이 없어서 잘 모르겠어.”
“그럼 당신 건요?”
“모르지.”
“뭔지도 모르고 주문한 거예요?”
“아니, 요 밑에 커플 세트라고 되어 있더라고.”
“그 많은 메뉴 놔두고 그냥 행사 상품 골라온 거예요?”
“그게 아니라 카페인이 적다고 해서 고른 거야. 메뉴를 보면 뭘 해. 어차피 뭔지도 모르는 걸. 여러 날 여기서 죽치고 있어도 주문하는 거야 항상 같았으니.”
“대체 얼마나 있었던 거예요?”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다만 저 멀리 있는 산부인과와 현수막만 바라보았다. 그러자 은선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은선이를 떠올리자 딸이 생각났고 딸을 생각하니 은행나무집 생각이 났는데, 그게 또다시 은선이를 떠올리게 했다.
인생의 절반을 은선이의 아빠로 살아온 고통이야 평생을 내 딸로 살아온 은선이의 고통만 할까. 그러나 이런 마음가짐에 따라오는 감정, 한심하고 비겁하고 무기력한 인간이라 치부되는 느낌까지 없애는 건 불가능했다.
“왜 말이 없어요?”
안사람은 코를 훌쩍이며 물었다. 나는 이번에도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고, 대신 벌떡 일어나 빤히 바라보는 부인의 한쪽 손에 들린 컵과 반대쪽 손에 들린 휴지뭉치를 휴지통에 버리고 그녀 앞에 서서 말했다.
“그만 일어나지. 퇴근 시간이야.”
응모자 : 김지혜
이메일주소 : elegantjihye7@gmail.com
연락처 : 010-7912-36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