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피(脫皮)
1
제법 매섭게 부는 가을바람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1호선 노량진 역.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어 따스한 태양빛이 그대로 내리쬐며 아스팔트를 데운다. 빠르게 달리는 자동차 머리 위로 올라선 육교, 역 밑 화단 옆에서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워대는 남자들, 그 옆 덩그러니 놓인 벤치, 그 벤치에 애린이 앉아 고개를 쳐들어 눈을 감고 있다.
검은 정장에 낮지만 단아한 검은색 구두가 눈에 띈다. 묶었다 풀은 자국이 선명한 긴 머리카락이 세찬 바람에 따라 제멋대로 휘날리고 있다. 그 옆으로 조그마한 플라스틱 통이 놓여있다. 플라스틱 통은 남자 손으로 한 뼘 정도 작은 크기에 오트밀 색 모래가 바닥 가득 깔려 있었다. 그 통을 검지로 톡톡 두드리며 눈을 감은 애린은 이따금씩 들릴 듯 말 듯 한 콧노래를 흥얼댄다. 경쾌한 콧노래와 달리 애린의 입 꼬리는 수평을 유지할 뿐이다.
그런 그녀를 희원이 곁눈질로 쳐다본다. 벤치 옆 화단에서 담배를 피우는 남자들 틈에 섞여있던 희원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그녀를 힐끔댄다. 그러다 이내 그녀의 검지가 톡톡 두드리고 있는 플라스틱 통을 유심히 쳐다본다. 가득 깔린 모래 위로 살짝 소라껍질이 나와 있다. 희원은 한참을 유심히 그녀와 그녀의 플라스틱 통을 살피다가 발로 피우던 담배를 비벼 끈 후 자리를 떠난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걷는 희원의 입에서 그녀의 콧노래가 흘러나온다.
2
밤이 되면 더욱 화려해지는 노량진 거리. 수험생들로 가득한 노량진의 밤은 술과 오락으로 화려하게 물든다. 먹자골목에 책가방을 맨 여러 수험생 무리들이 부산스레 모여 있다. 화려한 술집 간판, 시원한 듯 쌀쌀한 밤공기에 들떠있는 그들 옆으로 희원이 지나간다.
제법 추운 날씨와는 어울리지 않는 추리닝 반바지를 입고 삼선 슬리퍼를 신은 그가 겉옷에 얼굴을 파묻은 채 걷고 있다. 그는 이따금씩 들려오는 즐거운 여학생들의 비명에 인상을 찌푸리기도 하고 바람이 세게 불면 몸을 부르르 떨기도 하며 발걸음을 빠르게 재촉한다. 그의 왼쪽 손에 들린 검은 비닐봉지에는 캔맥주가 차가운 김을 내뿜고 있다. 왁자지껄한 먹자골목을 벗어나니 한결 조용해진다. 곧 희원의 발걸음이 느려진다. 빠르게 걸었던 탓인지 그의 구레나룻 옆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다. 이내 그의 발걸음이 서서히 멈추며 역 앞 벤치에 털썩 엉덩이를 갖다 붙인다. 시원하게 한숨을 쉬며 희원이 고개를 들자 육교에 그녀가 있었다.
3
빠르게 달리는 자동차의 바퀴가 아스팔트와 만나며 굉음을 만들어낸다. 한참의 소음 끝에 신호등의 불빛이 붉게 바뀐다. 동시에 세상은 아주 잠시 조용해진다. 적막이 밤공기에 흩어지는 그 시간, 육교 위에 애린이 앉아 있다. 육교 위에 편하게 앉은 애린이 펜스 사이로 도로를 구경하고 있다. 잠깐 동안의 정적이 깨지고 차들은 다시 굉음을 내며 굴러간다. 그 소리에 초점 없던 그녀의 눈빛이 되살아난다. 크게 한 번 한숨을 쉰 그녀가 육교 펜스에 머리를 가볍게 반복해 찧는다. 그렇게 그녀의 눈이 육교 아래를 향한 순간, 육교 아래 벤치에서 빤히 자신을 보고 있는 희원의 눈길과 부딪힌다. 이내 그는 급하게 일어나 벤치를 떠나버린다.
허둥지둥 자리를 뜨는 그를 한참 보던 애린은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에 묻은 흙을 털어낸다. 천천히 육교를 내려온 그녀는 그가 있던 자리에 덩그러니 남겨진 검은 비닐봉지를 들어 올린다. 비닐봉지 안에는 물방울이 가득 맺힌 캔맥주 하나와 달콤한 허쉬 초콜릿이 들어있었다. 벤치에 앉은 그녀는 망설임 없이 봉지 안에 들어있던 캔맥주를 따 시원하게 들이킨다. 신호가 붉게 물들며 이내 세상은 다시 고요 속에 파묻힌다.
4
휴대전화가 시끄럽게 울리는 방 안. 작은 책상과 그 위 어지럽게 놓인 책 몇 권과 옅은 햇빛이 들어오는 작은 창문 하나, 옆으로 매트리스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 어설픈 침대가 있다. 애린은 침대 위에서 눈을 감고 누워 손으로 휴대전화를 찾느라 손을 더듬댄다. 실눈을 뜬 그녀가 간단히 종료버튼을 누르자 다시 방 안이 조용해진다. 그녀는 마른세수를 하며 힘겹게 몸을 일으킨다. 한참을 퉁퉁 부운 얼굴로 침대 위에 앉아있던 그녀는 정신이 돌아온 듯 달력을 보고 다시 몸을 눕힌다.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있던 그녀가 빠르게 책상 위 컴퓨터 앞에 가서 앉는다. 컴퓨터가 켜지는 동안 초조하게 손톱 옆 살을 뜯던 그녀는 컴퓨터가 켜짐과 동시에 인터넷 창을 켠다. 즐겨찾기 목록의 제일 윗줄에 있던 홈페이지를 누르고 몇 번 마우스로 클릭을 해대던 그녀의 손이 멈춘다.
‘2014년 9급 공채시험 최종 합격자 명단’이라고 적힌 pdf 파일에는 ‘박애린’이란 이름이 보이지 않는다. 무표정한 얼굴로 눈동자만 굴리던 그녀의 눈에 눈물이 맺힌다. 눈물들이 쉴 새 없이 떨어져 허벅지와 허벅지 사이에 고인다. 방 안에는 애린의 눈물이 떨어져 고이는 소리만 ‘똑, 똑’ 들린다.
순간 고요하던 방 안에서 딱딱한 무언가가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려온다. 애린은 고개를 들고 방 안을 살피다가 이내 그 소리가 플라스틱 통 안에서 나는 소리라는 걸 인지한 후 서서히 통으로 다가간다. 그 안에서 작은 소라게 한 마리가 자신에게 맞는 쉘을 찾으려 이 쉘에서 저 쉘로 동분서주 움직이고 있다. 얼마 전 애린은 문구점에서 이 소라게를 사왔던 날을 회상한다.
5
크고 높은 건물에서 검은 정장을 입은 남녀가 우르르 빠져나온다.
“무슨 질문 나왔어? 나는 심사위원이 압박질문해서 어리바리하게 있다가 나왔잖아.”
“난 그래도 나름대로 무난했어. 뭐, 근데 이건 내 생각이고.” 단정하게 머리를 올려 묶은 여자 둘이 애린 옆을 지나가며 쉴 새 없이 떠들어댄다. 그 옆에서 검은 정장을 차려입고 머리를 망으로 고정시킨 애린이 힘없는 발걸음으로 건물에서 나온다.
“응……. 별 질문 안했어. 아니야. 외웠던 데에서 질문도 나왔어. 엄마, 내가 나중에 다시 전화할게요. 지금 너무 피곤하다. 네.”
통화를 마친 애린이 건물 앞 버스정류장을 향해 천천히 걷는다. 곧 버스가 도착하자 애린이 사람들 틈에 섞여 버스를 탄다. 버스 안은 이미 만원이었다. 시끌벅적한 분위기에 애린은 이어폰으로 귀를 막는다. 애린은 이어폰을 통해 나오는 노랫소리에 한결 머리가 편안해짐을 느끼며 창밖을 바라봤다. 이내 애린은 방금 전 면접시험장 안에서의 일을 떠올렸다.
심사위원이 애린에게 질문을 건네는 순간 애린은 자신의 머릿속이 텅 비어버림을 느꼈다.
‘분명 어제 밤에 외웠던 예상문제 중 하나였는데…….’ 라는 생각만 머릿속에서 맴돌 뿐 애린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말을 더듬기도 하고 생각하느라 한참의 적막이 흐르기도 했던 애린의 면접시험은 듣지 않아도 그 결과를 알 수 있었다. 애린은 착잡한 표정으로 눈을 감았다.
버스에서 내리자 책가방을 맨 공무원 수험생들이 저마다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힘 빠진 애린이 자신이 살고 있는 고시원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고시원 앞에 다다르자 그 옆 문구점이 보였다. 문구점 문 위쪽에는 ‘담배’라는 표지판이 붙어 있었다. 슈퍼까지 가려면 두 골목을 지나야 해 애린은 담배를 살 때 종종 문구점을 이용하고는 했다. 문구점 앞 뽑기 기계에는 여러 아이들이 따개비처럼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아이들은 연신 비명을 질러대며 자신이 원하는 것이 나올 때까지 돈을 넣고 기계를 돌려댔다. 그 모습을 흘깃 보던 애린이 문구점 안으로 들어가 자연스럽게 담배를 달라고 하며 지갑을 열었다. 그 때 계산대 앞에 있는 ‘소라게 기르기’라는 서툰 글씨가 보였다. 애린은 무심하게 여러 플라스틱 통 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러자 밖에 다리와 얼굴을 꺼내고 먹이를 먹던 소라게가 숨어버렸다. 애린의 눈에는 소라껍데기밖에 보이지 않았다. 애린이 살짝 흔들어 봐도 소라게는 숨어서 나올 줄을 몰랐다. 그런 소라게를 애린은 한참 바라봤다. 이내 문구점에서 나온 애린의 손에 소라게가 든 플라스틱 통과 담배가 들려 있었다.
6
“희원씨!”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나른하게 졸던 희원이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파티션 너머로 선배가 자신을 향해 이리 오라는 손짓을 하고 있다. 그는 선배에게 간단한 업무지시를 받은 후 자리로 돌아와 재빠른 손놀림으로 문서를 작성해나간다. 그 때 입사 동기인 재호가 희원의 옆으로 와 오늘 술 한 잔 하자는 신호를 보낸다. 희원이 입가에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이자 재호가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고는 돌아선다. 키보드 위에서 계속 움직이던 희원의 손이 잠시 멈춘다. 모니터를 빤히 응시하던 그는 이내 책상 서랍을 열어 허쉬 초콜릿을 꺼내 입 안에 넣는다. 달콤한 허쉬 초콜릿이 혀 위에서 사르르 녹는다.
한참 키보드를 두드리던 희원은 기지개를 켠 뒤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 밖으로 걸어 나간다. 잠시 후, 회사건물 밑 1층 화단 앞에 희원이 담배를 피우며 서있다. 오늘따라 거리가 한적하다.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그는 천천히 화단 옆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담배를 입에 물고 예전에 몇 번 마주쳤던 그녀가 부르던 콧노래를 흥얼댄다. 그 때 누가 옆에 털썩 가방을 내려놓은 뒤 앉는다. 콧노래를 멈춘 희원이 옆을 흘깃 보는데 그 자리에 그녀가 앉아 있다. 방금까지 콧노래를 흥얼대던 희원이 쑥스러운 마음에 급히 담배를 끄고 일어나려는데 그녀가 희원을 부른다.
“저기요. 불 있어요?”
청바지에 운동화, 백팩 그리고 한쪽으로 높게 올려 묶은 머리까지. 너무나 앳돼 보이는 그녀와는 어울리지 않는 첫 마디라고 생각하며 희원은 바지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내민다. 그녀가 라이터를 받아 들고는 담배를 물어 불을 붙인다. 그녀가 물고 있는 담배에서 뿜어지는 흰 연기가 그의 얼굴에 닿는다. 그녀는 라이터를 돌려주며 고개를 살짝 숙여 감사의 표시를 건넨다. 라이터를 받아들고도 자리를 떠나지 않는 희원을 한 번 쳐다본 뒤 애린은 아직 다 타지 않은 담배를 끄고는 자리를 떠난다. 희원은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잠시 보고는 자신도 일어나 회사 건물로 들어간다.
7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새벽, 희원은 어제 회식 때 한 과음으로 요의를 느껴 평소보다 이르게 자리에서 일어난다. 화장실에 다녀온 후 침대에 걸터앉아 시간을 보니 새벽 5시가 조금 넘었다. 잠시 고민하던 희원은 다시 침대에 누워 눈을 감는다.
이내 희원이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출근시간에 임박해서였다. 희원이 다급하게 고양이 세수를 하고는 옷을 입고 집을 나선다. 회사 근처에 집을 얻은 덕에 많이 늦지는 않겠지만 평소 지각을 하지 않던 그는 늦잠을 잔 자신이 너무나도 원망스럽다. 재빨리 걸음을 재촉하는데 오늘도 벤치에 그녀가 앉아있다. 희원의 눈은 자연스럽게 그녀의 입과 손가락으로 향한다. 그녀의 입과 손에는 담배가 없다. 살짝 그녀와 그의 눈이 맞닿는다. 희원은 그녀의 눈길을 모르는 척 고개를 돌려 회사 건물로 들어간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애린이 가만히 바라본다. 그녀의 입에서 콧노래가 흘러나온다.
8
저녁 늦은 시간, 희원이 회사 건물에서 터덜터덜 걸어 나온다. 습관처럼 벤치 쪽을 흘깃 보다 이내 시선을 거둔다. 머리를 좌우로 꺾자 목에서 ‘두둑’하는 소리가 난다.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크게 켜는데 육교 위에서 그녀가 육교 바닥에 앉아 그를 보고 있다.
‘회사 건물에서 나올 때부터 지켜봤나?’ 희원은 건물에서 나오자마자 벤치 쪽을 살펴본 것을 들켰을까 괜히 부끄러워진다. 집을 가려면 신호를 건너야 하는데 평소 계단이 싫어 육교로 길을 건너지 않았던 희원이 웬일인지 육교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육교 계단을 천천히 걸어 올라오는 희원을 그녀가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 그런 그녀의 시선을 애써 무시한 채 희원이 천천히 그녀가 있는 육교 반대편을 향해 걷는다. 그러다 희원은 이전에 자신이 놓고 간 맥주와 허쉬 초콜릿이 문득 궁금하다. 물어볼까 한참을 망설였지만 결국 희원은 입을 떼지 못하고 그녀의 곁을 지나친다. 그 찰나 그녀가 먼저 말을 건넨다.
“그 맥주요, 놓고 가셔서…….” 희원이 부자연스러운 동작으로 그녀를 향해 몸을 돌린다.
“드세요!” 희원은 자신이 말해놓고도 실수였지 싶어 횡설수설한다. 우스운 그의 모습에 애린이 희미한 미소를 짓는다. 순간 신호등에 붉은 불이 들어오며 세상은 잠시 고요해진다. 편안하고도 어색한 적막에 희원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뒤돌아 가던 길을 가려는데 애린이 왜 자꾸 자신을 훔쳐보느냐 장난스럽게 묻는다. 그 말에 희원이 화들짝 놀라며 손사래를 친다. 희원이 당황한 빛을 내비치며 집 방향으로 몸을 트는데 애린이 심드렁하게 말한다.
“소라게고, 사람이고, 나만 보면 다들 숨기만 하네. 에라이!” 애린의 눈이 차가 달리는 도로에 고정돼있다. 그 말을 들은 희원이 눈을 잠시 크게 뜨다 몸을 돌려 육교를 빠져나간다. 애린은 그런 그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끈질기게 응시한다.
9
희원은 그 후에도 애린을 자주 마주치고는 했다. 둘은 서로의 눈이 부딪힐 때마다 눈인사로 서로의 존재를 확인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희원은 가끔 늦은 저녁 육교에서의 그 날을 떠올리곤 했다. 왜 도망치듯 그녀로부터 벗어나려고만 했었는지 자책도 했다. 매번 혼자 앉아 하는 생각이 궁금했고 아무도 없는 육교 위 바닥에 앉아 지나가는 차들을 바라보는 이유도 알고 싶었다. 마지막 자신에게 했던 말도 몇 번이나 곱씹어봤다.
‘소라게?’
10
방 안에 편안한 옷차림으로 누워있던 희원이 두꺼운 겉옷을 들고 슬리퍼를 신은 후 문을 열고 나선다. 차가운 가을 밤바람이 희원의 두 귓불을 세게 스친다. 자정이 다 돼가는 시간, 거리는 한산하다. 수명을 다 한 낙엽만이 달리는 차가 일으키는 바람 따라 공중에서 빙그르르 회전한다.
희원은 집에서 나와 도로가에 위치한 편의점에 들어간다. 무표정한 30대 초반의 직원이 기계처럼 인사말을 내뱉는다. 주류 코너로 가 맥주 세 캔을 집어 든다. 그리고는 스낵 코너에서 한참을 망설인다. 이내 허쉬 초콜릿을 집어 들고는 계산대로 발걸음을 옮긴다.
편의점에서 나온 희원은 빠르게 집 쪽으로 발걸음을 돌리다 순간 멈칫한다. 뭔가 고민하듯 입 안 쪽 살을 씹던 희원이 방향을 틀어 천천히 걷는다. 잠시 후 노량진역 앞에 위치한 육교 앞에 희원이 서서 한참을 두리번댄다. 이윽고 육교 위에 앉아있던 애린과 눈이 마주친다. 둘은 한참을 서로 그렇게 바라본다. 둘의 눈맞춤은 애린의 눈인사로 끝이 난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희원은 한참을 생각하다 천천히 육교계단을 오른다. 몇 개의 계단을 올랐을까. 희원의 눈앞에 애린이 있다.
“어디 가세요?” 애린이 검은 비닐봉지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희원에게 묻는다.
“아, 예. 주말에 잠도 안 오고 해서 가볍게 맥주 한 잔……. 드실래요?” 희원이 작은 목소리로 대답하다 애린에게 맥주 한 캔을 내민다. 순간 둘 사이에 정적이 흐른다. 희원은 등에서 흘러내리고 있는 한 줄기 식은땀을 느끼며 애린의 대답만을 기다렸다.
“네. 주세요.” 애린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애린이 희원 손에서 맥주 한 캔을 받아가자 희원이 어색하게 애린 옆에 앉는다. 둘은 그렇게 한참을 말없이 육교 위 맨바닥에 앉아 있다.
11
29살이고 얼마 전까지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이었던 수험생 박애린. 하지만 3년간의 수험생활 끝에 얼마 전 시험의 최종합격자 명단에 본인 이름이 없는 것을 확인한 후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고민 중이다.
31살의 평범한 출판사에 다니고 있는 김희원. 회사 근처에 원룸을 얻어 혼자 살고 있으며 부모님은 지방에서 따로 사신다.
서로의 간단한 호구조사가 끝나자 둘은 또 한참 침묵을 지킨다. 침묵을 먼저 깬 것은 희원이다.
“아, 그 때 소라게 어쩌구 하신 건 무슨 뜻이에요?” 희원이 사뭇 궁금하다는 듯 묻는다. 그 말을 들은 애린이 목젖을 드러내며 크게 웃는다. 그런 애린을 희원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본다. 웃음을 멈춘 애린이 방금 전 웃음과는 대조적인 목소리로 나지막이 대답한다.
“제가 소라게를 키우거든요. 그런데 자꾸 저만 보면 숨더라고요. 그 날 정말 화나는 날이어서 희원씨에게 화풀이했네요. 죄송해요.” 말을 마친 애린이 씁쓸하게 미소 짓는다. 희원은 더 묻고 싶었으나 애린의 입이 다시 열릴 때까지 기다려야만 할 것 같았다. 한참 후 애린이 말을 이어갔다.
“저는 소라게가 달팽이처럼 집을 가지고 태어나는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자신의 몸에 맞는 쉘을 찾아 입구 부분을 갉기도 하고 이 집 저 집 옮기며 맞는 쉘에 들어가는 거래요. 근데 저는 제 몸 숨길 쉘 하나 없네요. 이렇게 쉘만 찾다가는 딱딱한 몸통도 닳아 없어지겠죠?” 애린이 말을 마치고 세운 무릎에 얼굴을 묻는다. 희원은 아무 말 못하고 그녀를 바라본다. 희원의 눈에 쉘 없는 초라한 소라게가 보인다.
12
「잘 들어가셨어요?」
애린은 어젯밤 희원에게 온 문자를 한참 바라본다. 낯선 이에게 자신의 치부를 들켜버린 것 같아 애린은 부끄럽기만 하다. 애린은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어제 먹었던 허쉬 초콜릿과 맥주, 차가운 가을바람, 한적하던 도로, 그 위의 희원. 모든 게 꿈같다. 사실 애린은 자신을 자주 흘깃거리는 희원이 궁금했다. 가끔 벤치 옆 화단에서 담배를 피우던 희원이 생각났다.
‘화단 옆 건물이 직장이었구나.’ 자신보다 한 뼘 정도 더 큰 키, 단정히 입고 있던 검은 양복, 어리바리한 말투, 애린은 희원을 상상하며 미처 듣지 못했던 희원 이야기에 대해 상상의 나래를 펼쳐나갔다. 그러다 문득 최종합격자 명단에 없던 자신의 이름을 떠올렸다. 애린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지며 감은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린다. 그 때 애린의 휴대전화에서 벨소리가 울린다. 액정을 보니 희원의 이름이 떠있다. 잠시 고민하던 애린은 눈물을 닦으며 전화를 받는다.
13
점심시간이 한참 지난 오후 4시. 희원과 애린이 쌀국수 집에서 마주보고 앉아 있다. 둘은 즐거운 대화를 나누며 이따금씩 희원이 가볍게 미소 짓기도 하고 애린이 깔깔대기도 한다. 시끌벅적한 가게 안이 두 사람의 웃음소리로 가득 찬다.
가을이 지나가며 점차 해가 짧아지는 탓에 저녁 6시에도 금세 어두워진다. 둘은 침묵한 채 시끌벅적한 골목을 함께 걷는다. 둘의 입가에 은은한 웃음이 걸려있다.
“바다 가보고 싶지 않아요?” 애린이 희원을 쳐다보며 말했다. 희원은 뜬금없는 애린의 말에 잠시 고민하다 대답했다.
“춥지 않을까요?” 엉뚱한 희원의 대답에 애린이 크게 웃는다.
“더 추워지기 전에 한 번 가보고 싶어서요. 태어났을 때부터 서울에서 살다보니 한강만 잔뜩 봤지, 바다를 별로 못 봤네요. 이제 시험도 떨어졌겠다, 시원하게 바다 한 번 보고 부모님 댁으로 들어갈까 해서요.”
“부모님 댁으로 가는 거예요?” 노량진을 떠난다는 애린의 말에 희원의 목소리가 어두워진다. 그런 희원의 마음을 모르는지 애린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간다.
“벌써 이곳에서 공부한 지 3년이 넘었어요. 스무 살 때부터 독립해서 여기까지 왔네요. 정말 많은 일도 해봤고 남자도 많이 만나봤어요. 그런데 제 쉘은 없더라고요. 10년 가까이 내 쉘만 찾아 해매는 불쌍한 소라게로 살다보니 제 껍질도 이제 말랑말랑해졌어요. 원래는 되게 단단했었는데 어느 순간 이렇게 돼버렸네요. 이제는 그냥 다 싫어요. 쉬고 싶네요.” 혼자서 한참을 떠들어대던 애린이 도로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 곳에 있는 육교를 본 것이리라. 희원은 그렇게 생각했다.
14
소라게 한 마리가 여러 쉘 사이에 외로이 서있다. 소라게는 연약한 자신의 복부를 숨기려 맞는 쉘을 발 빠르게 찾는다. 복부를 쉘 안에 고정시키려 쉘의 중축을 강하게 붙잡아보지만 쉽지가 않다. 소라게는 그렇게 여러 쉘에 들락거리며 자신의 연약함을 숨기려 노력한다. 하지만 자신에게 맞는 쉘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소라게가 크디 큰 쉘에 연약한 몸을 숨긴다. 이윽고 소라게의 단단한 껍질이 말랑해진다. 소라게는 그렇게 쉘 안에서 조용히 말랑한 몸을 가지고 숨죽인다.
그 후로도 희원과 애린은 자주 만나 함께 점심을 먹기도 하고 간단히 맥주를 즐기기도 했다. 희원은 애린을 만나는 것이 즐거웠고 점점 그녀가 자신에게 스미는 것이 나쁘지 않았다. 다만 곧 이 곳을 떠날 것이라는 애린의 말이 그를 불안하게 했다. 그녀가 간다는 것이 단순히 부모님에게로 가는 것이 아님을 그는 알고 있었다. 연기처럼 사라져버릴 그녀가 겁이 났다. 연기는 너무나 달콤해서 함부로 그 연기 속에 손을 집어넣어 휘저을 자신이 없었다. 희원은 달콤한 연기를 휘젓고 싶지 않았다.
15
주말 낮의 한강은 눈부시게 빛난다. 찬바람 속 반가운 햇볕 아래 희원과 애린이 앉아있다.
“한강도 좋네요. 바다는 아니지만…….” 애린의 말에 희원은 은빛 강물을 바라본다.
“우리 다음에는 바다 가요! 가서 그 때는 강물 말고 바닷물이 햇빛에 물드는 거 봐요.” 애린이 웃으며 말하자 희원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그런 희원을 아는지 모르는지 애린의 표정은 밝기만 하다. 희원은 말없이 애린의 손을 꼭 잡는다. 애린이 힐끔 희원을 살핀다. 희원은 묵묵히 강물만 바라본다. 알 수 없는 불안함이 희원의 몸을 감싼다. 순간 애린의 휴대전화 벨소리가 울린다. 애린이 잠시 망설이다 전화를 받는다.
“네, 네. 조만간 갈게요. 알아요. 아니요, 네네. 네.” 짧은 통화 끝에 애린이 한숨을 쉬며 전화기를 내려놓는다. 불안한 눈빛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 희원을 보며 애린은 쓴웃음을 짓는다. 집에는 언제 올 예정이냐는 어머니의 재촉전화에 애린의 마음도 초조해진다. 그녀는 망설임에 확실히 결정짓지 못하는 자신이 답답했다. 스스로에게 갖는 불안감이 희원에게도 전해진 것 같아 애린의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애린의 고시원 앞, 희원이 애린을 걱정스럽게 쳐다본다. 한강에서의 짧은 통화 후 애린의 말수가 부쩍 적어졌음을 느낀 그였다. 하지만 희원과 애린은 서로에게 갖고 있는 궁금증을 묻지도, 캐지도 않았다. 서로가 가진 불안함을 애써 외면하려 노력했다. 희원은 애린이 고시원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끝까지 보다 이내 뒤돌아섰다.
“소라게…….” 희원은 조그맣게 읊조렸다.
16
애린이 버스 창가 좌석에 앉아 창밖을 보고 있다. 버스 안으로 비춰 들어오는 햇빛에 먼지가 반짝인다. 애린은 검지로 애꿎은 허공의 먼지를 흩트린다. 반짝이는 먼지가 애린의 검지를 휘감는다. 덜컹이는 버스의 바퀴 소리만이 적막한 버스 안을 가득 채운다.
“엄마, 저 왔어요.” 애린이 고즈넉한 단독주택 대문을 열며 외친다. 그 소리에 애린의 어머니가 걸어 나온다.
“잘 왔다. 고생했다.” 애린은 자신의 등을 부드럽게 토닥이는 어머니의 손길에 코끝이 시려 옴을 느꼈다. 집 안에 들어서니 음식 냄새가 코를 찌른다. 어머니는 분주하게 주방으로 들어가며 남편을 불렀다. 이윽고 애린의 아버지가 방에서 나와 애린을 맞았다. 애린은 아버지의 표정을 살피며 말없이 고개를 숙여 인사한다. 아버지는 그런 애린을 쳐다보지 않은 채 서재로 들어간다. 애린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어머니가 애린의 앞으로 반찬접시를 밀어주며 애린을 따뜻하게 바라본다. 그런 어머니의 시선을 애써 외면하며 애린이 고개를 푹 숙이고 밥을 먹는다. 그간 애린이 어떻게 생활했는지에 대한 질문이 계속해서 날아온다. 애린은 걱정스럽게 자신을 쳐다보는 어머니의 눈길이 부담스러워 고개를 들지 않고 밥을 먹는다. 이제 어떻게 살 것이냐는 어머니의 말에 애린의 젓가락질이 멈춘다.
“그만 하고 들어와. 아버지도 걱정 많이 하셨어. 너 그만큼 했으면 됐어. 네가 정말 노력했다는 거 우린 안다. 널 원망한다거나 손가락질하려는 게 아니야. 이제 정말 현실을 봐야하지 않겠어?” 어머니가 간절한 눈빛으로 애린을 바라본다. 애린이 대답하지 않자 어머니도 이내 걱정스러운 얼굴로 밥을 한 술 뜬다. 한참을 젓가락과 그릇이 부딪히는 소리만 들린다. 곧 아버지의 젓가락질이 멈추고 아버지가 자리에서 일어나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연다.
“그만 들어와라.” 말을 마친 아버지가 안방으로 들어간다. 애린은 여전히 고개만 푹 숙인 채 밥을 꾸역꾸역 목구멍으로 집어 삼키고 있다.
17
오늘따라 어두운 애린의 표정에 희원의 표정이 덩달아 어두워진다. 무슨 일 있냐는 희원의 거듭된 질문에도 애린의 입은 열릴 생각이 없어 보인다. 술 취한 여러 무리들이 흥이 난 목소리로 그들이 앉아있는 벤치 옆을 지나간다. 애린은 희원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로 한참동안이나 눈을 감고 있다. 더 이상 묻기를 포기한 희원도 애린의 머리가 떨어지지 않게 어깨를 곧추세운다. 해가 완전히 떨어지자 역 주위의 가로등이 하나 둘 켜진다. 갑작스레 세찬 바람이 한 줄기 불자 애린이 몸을 부르르 떨며 옷깃을 여민다. 희원이 애린의 손을 잡고 일어나자는 제스쳐를 취한다. 하지만 애린은 희원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 눈을 감고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희원이 다시 어깨 위 애린의 머리를 고정시키는데 애린이 입을 열었다.
“정말 이상해요. 세상의 많고 많은 소라게들은 저마다 자신에게 꼭 맞는 쉘을 가지고 있잖아요. 그런데 왜 나만, 나만 없을까요? 쉘? 이젠 정말 지쳤어요. 난 내 몸 하나 편히 누울 쉘 하나 갖고 있지 않잖아요. 단단한 내 껍질도 이젠 말랑해진 것 같아요. 이렇게 바닷물에 휩쓸리면 전 마디마디 끊어져버리겠죠?” 힘없는 목소리로 말을 마친 애린이 조용히 흐느낀다. 눈과 입을 꾹 다물고 어깨만 들썩이던 애린이 희원의 어깨에서 머리를 뗀다. 애린이 고개를 숙이자 애린의 감은 눈에서 눈물이 쉴 새 없이 떨어진다. 애린의 허벅지가 눈물로 흠뻑 젖어간다. 희원은 그런 애린을 가만히 바라본다.
“누구나 인생에서 절망하는 순간은 와요. 누구는 처음 사회에 나가 막내로서 허드렛일들을 도맡아 할 때 ‘왜 내가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지?’라고 생각하며 자존감을 잃어가기도 하고, 누군가는 끝까지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해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하죠. 누군가는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아 사랑하는 사람을 잃기도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가진 게 너무 많아 그 속의 진짜 자신을 사랑해줄 사람을 찾지 못하기도 해요. 지금 애린씨처럼 최선을 다 했지만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도 지금 이 순간 절망하고 있겠죠. 하지만 극복해야 해요. 그래야 스스로 자존감을 찾을 수 있고, 배신의 나락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고, 진정한 사랑을 지킬 수도, 찾을 수도 있는 거예요. 원래 신은 각자가 버틸 수 있는 만큼의 고통만 준다고 하더라고요. 지금 애린씨가 겪는 고통은 애린씨가 견딜 수 있을 만큼의 크기일거예요. 정말 버틸 수 없는 고통이라면 애린씨 옆에 누군가와 함께 나누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희원이 애린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희원의 말을 들은 애린이 눈을 뜨고 희원을 바라본다. 그런 애린의 눈물을 닦아주며 희원이 말을 이어간다.
“내가 애린씨의 쉘이 될 수도 있잖아요.” 장난스러운 희원의 말에 애린이 눈물을 멈추고 희원을 껴안는다. 애린이 희원을 안은 채로 아랫입술을 꽉 깨문다.
“우리 바다 가요.” 애린의 말에 애린의 등을 쓸고 있는 희원의 손이 멈춘다. 희원의 눈이 슬퍼진다. 잠시 흐르던 침묵을 깨고 희원이 대답한다.
“그래요. 가요.” 서로를 꽉 껴안은 희원과 애린의 머리 위로 가로등만이 밝게 빛나고 있다.
18
희원은 기차역에 홀로 서있다. 밤 10시까지 만나기로 했던 애린은 약속시간보다 한 시간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희원은 애린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상대방이 받을 수 없다는 안내 음성만이 희원의 휴대전화를 가득 채운다. 희원은 역 안 의자에 앉아 여러 번 서고, 출발하는 기차를 바라본다. 그렇게 시간이 자정을 넘자 희원은 천천히 일어나 기차역을 벗어난다. 여전히 애린은 전화를 받지 않는다. 희원이 익숙하게 노량진 역 앞 벤치로 발걸음을 돌린다. 고요한 밤. 가끔씩 불어대는 가을바람 소리만이 희원의 몸을 싸늘하게 감싼다.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안내 음성이 끊기며 삐-소리와 함께 녹음이 시작된다. 한참 말없이 휴대전화만 귀에 대고 있던 희원이 어렵사리 입을 뗀다.
“그 때 애린씨가 그랬잖아요. 맞는 쉘이 없어 전전긍긍하다보니 어느새 껍질이 말랑해졌다고. 이러다 온 몸이 바닷물에 흩어지는 거 아니냐고. 내가 소라게를 잘 몰라서 정말 열심히 찾아봤거든요? 바다로 가는 애린씨 옆에서 내내 말해주고 싶어서. 소라게들은 몸이 더 커지고 껍질이 단단해지려고 탈피(脫皮)를 한 대요. 그 전까지는 조용히 밑에 숨어서 힘겹게 껍질을 벗는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힘들게 탈피를 하고 나서도 말랑해진 껍질을 단단하게 말리려고 쉘 안에 숨어 있다고 하네요. 애린씨도 탈피하고 내 안에서 숨어 있었던 거죠? 사실 애린씨가 바다 가자고 할 때마다 겁이 났어요. 넓은 바다 속으로 나만의 소라게가 가 버릴까봐. 부디 더 단단해진 껍질로 꼭 맞는 쉘 안에 들어가길 바랍니다. 미안합니다.” 말을 마침과 동시에 벤치 앞에 도착한 희원이 힘없이 벤치에 앉는다.
소라게가 바위 밑에서 말랑해진 몸을 말린다. 벗어놓은 허물을 오독오독 씹어 먹으며 소라게는 긴 시간을 움직이지 않는다. 세차게 물결치는 바닷물은 위협적으로 소라게를 밀어낸다. 이윽고 단단해진 껍질의 소라게가 조심스럽게 자리를 떠난다. 위협적이던 바닷물에 어느새 몸을 맡긴 채 그렇게 소라게는 사라진다. 소라게가 떠난 자리에 빈 쉘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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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에 나가고 싶어 올린 글인데 이 곳에 올리는 줄 몰랐네요^^;
창작마당에 올렸던 글 지우고 살짝 수정해서 다시 이쪽으로 옮겨 올렸습니다.
이름, 메일, 휴대전화번호는 첨부 파일에 원본과 함께 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