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과 벽

by DADA posted Apr 20,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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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둠과 벽




   한 달 동안 어둠 속에서 살았다. 아니, 정말 말 그대로 ‘어둠’ 속에서 말이다. 오래전부터 지구 종말이 다가올 거라는 기사와 말들을 많이 듣고는 했다. 2000년이 지나면 지구 종말이 찾아온다면서 사이비 종교에서 단체로 자살행위를 한 경우도 있었고 2012년에는 영화까지 제작 되지 않았던가. 그때 나는 지금보다는 어린아이에 불과했지만 그런 말들에 쉽게 현혹될 만큼 어리지는 않았다. 그런데 빛을 보지 못 한 지 30일째, 요즘 들어 사람들이 수군덕 거리는 지구 종말이 정말로 다가오는 것 만 같았다. 하늘이 24시간 매일 같이 어두컴컴했다: 하늘 문은 닫혀 버렸고 태양이 떠오르지 않는 것이다. 


   이 현상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한 달동안 해가 뜨지 않는 이 현상은 제일 먼저 과학자들을 당황 시켰고 정치인들은 이 문제를 일삼아 또 다른 정치 싸움을 하며 각자 자리를 빼앗기에 바빴고 기업인들은 이 일로 인해 자신들의 이윤을 챙기기 위해 잔머리를 굴렸다. 사이비 종교인들은 신의 저주가 시작되었다며 삶의 마감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해가 떠오르지 않으니 시간 개념 역시 사라져버렸다. 사람들은 마치 시간 개념이 없는 또 다른 시공간에 빠져 허우적대는 것처럼 거대한 혼란 속에서 울부짖었다. 그리고 불쌍한 내 동생. 그는 햇빛을 보지 못 해서 매일 방에 틀어박혀 우울증 증세까지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 동생의 행동에 부모님 역시 얼굴을 제대로 펴는 날이 없을 정도로 걱정을 하셨다. 한 마디로 세상 사람들 모두에게 카오스가 찾아왔다는 것이다.








   “과학적으로 맞지 않는 게 너무 많아. 태양이 사라진다면 온도 변화도 있을 테고 달도 뜨지 않을 텐데. 우리는 지금 이렇게 말짱하게 살아있고 매일매일 하늘에 떠있는 달도 보잖아. 어느 과학자가 쓴 글을 읽었거든? 태양이 사라지면 에너지가 에너지를 발생시켜 주변 행성들이 터져버린데. 하지만 아무 일도 없이 지구는 잘 만 돌아가는 게 너무 이상하지 않아?”


   나름 심각하게 자세를 잡으며 손 제스처와 함께 이 상황을 설명을 했다. 하지만 이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유일한 녀석, 김여주는 해맑게 웃으며 나의 진지한 질문에 그녀의 방식대로 대답했다. 


   “태양이 사라진 게 아니야. 지구와 태양 사이에 커다란 벽이 생겨서 그래. 그래서 우리가 햇빛을 못 보는 거지.” 


   쪽쪽, 맛있게도 아이스크림을 빨아먹으며 마치 남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태평하게 말하는 남주가 조금은 한심해 보였다. 세상 사람들이 미쳐간다. 빛을 잃은 어둠 속에서 그들은 하나둘씩 우울증에 빠지거나 이상한 헛소리를 해대며 미쳐가기 시작하는 거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최남주 혼자만 말짱하다. 그녀의 하루는 마치 이 태양 없이 말짱한 지구처럼 미스터리 하게도 잘 만 돌아가는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세상 모든 사람들과 혼자 다르게 행동하는 최남주가 미친 것일지도 모른다.


   “지구가 종말 할지도 모른대. 이번엔 정말 확실해.”


   그런데 너는 무섭지도 않니? 남주에게 물었다. 남주는 얼마 남지 않은 아이스크림을 한 입에 넣고 입안에서 혀로 굴리며 아이스크림을 녹여 먹었다. 손에 쥔 나무 막대기를 미련 없이 땅바닥에 던져 버린 후에야 그녀는 내 질문에 시원치 않은 대답을 해주었다.


   “글쎄.”


   남주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투명한 피부 뒤로 비치는 파란 핏줄을 보고 나도 모르게 코를 찡긋 거렸다. 피부도 투명하고 생각도 투명해. 나는 언제 지구가 펑- 하고 터져 버릴지 몰라 매 순간을 조마조마하게 보내는데 너는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은 거야. 그 생각에 미치자 온몸에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별로 달갑지 않은 느낌에 두 손으로 나 자신을 감싸 안으며 소름이 돋은 팔을 연신 문질렀다. 


    “난 무서워, 남주야.”

    “아니야, 넌 무섭지 않아. 다들 그래. 그냥 무서운 척하는 거야. 실제론 겁에 질린 게 아니야. 다들 무서운 척을 하니까 너까지 무서운 느낌이 드는 거야. 정말이야, 그게 다야.”


   그건 또 무슨 헛소리야… 나지막하게 기어 들어가는 내 목소리에 남주는 나를 향해 싱긋 웃어주었다. 어쩌면 남주는 이 세상 무서운 게 하나도 없을지도 모른다. 남주의 아빠는 술과 도박에 빠진 이 동네에선 유명한 미치광이이다. 집 재산을 담보로 걸었다가 홀딱 망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정신을 차리지 못 하고 아직도 도박에 팔려 있다. 알코올중독이라 그런지 정신도 온전하지 못 하다. 혼자 이상한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동네 거리를 휘젓고 다닌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매일 저 욕을 들으며 살아야 하는 남주를 생각하며 나 혼자 마음 아파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남주의 엄마는 딱하게도 그 애가 딱 열여섯 살이 되던 해에 집을 나가 버렸다. 엄마가 집을 나가자마자 남주는 학교를 자퇴했고 노동부터 시작해서 아르바이트까지 뛰며 돈을 열심히 벌었다. 하지만 벌면 뭐 하나, 미치광이 아저씨가 다 뺏어 가는걸. 이미 세상 모든 힘든 고통을 다 겪어 본 최남주에게 이 깜깜한 어두움은 사실 아무것도 아닐지 모른다. 그래서 내가 무섭다고 찡찡 거리는 것도 남주에겐 귀여운 엄살 수준으로 밖에 안 보일지도.


   그래서 그런지 남주는 나에게 전혀 공감되지 않는 말들만 해주었다. 태양과 지구 사이를 막는 벽이 있다느니. 우리는 그 벽을 허물어야 한다느니. 절대 과학적이지도, 말이 되는 소리도 아니고, 그렇다고 나에게 위로가 되는 말도 아니고. 


   그래서 그날 이후로 난 남주와 연락을 하지 않았고 남주를 보러 직접 찾아가지도 않았다. 연락이 끊긴 이후로 그 애의 근황이 조금 궁금하기는 했지만 결코 먼저 물어보지는 않았다. 그냥… 열심히 그 애처럼 엉뚱한 생각을 하며 열심히 일이나 하고 있겠지.








   또 다른 한 달이 지났다. 이번에는 사태가 조금 더, 아니, 많이 심각해졌다. 우리 가족도 그렇고 내 주변 환경도 그렇고 이 세상 모든 것들이 점점 머리 맡에 하늘처럼 새까맣게 타버리기 시작했다. 빛이 사라진 처음 몇 주 동안은 그저 어두움이 지겨울 뿐이었다. 눈을 감아도 떠도 보이는 깜깜한 밤 하늘을 내일 아침에 일어나도 봐야 한다는 것이 많이 슬펐으니까. 


   두 달이 지난 후에는 주변 환경에 엄청난 변화가 찾아왔다. 12월인데도 불구하고 기온이 50도 섭씨까지 올라가며 급격히 날씨가 뜨거워졌다. 뉴스를 틀어 보면 동물들이 떼죽음을 당하는 무서운 이야깃거리와 땅이 쩍쩍 갈라지고 많은 나라에서 심각한 지진 등의 자연재해가 일어나고 있다고 했다. 옆집 사는 아주머니께서 자살을 했다는 소식도 접하게 되었다. 아직 아들이 세 살밖에 되지 않았는데 남편과 아들은 어떻게 사나- 하고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지금 내가 누굴 걱정할 처지가 아닌 것 같아 고개를 가로저었다. 3일 전부터 침대에 누워 가만히 눈만 감고 있는 우리 동생 역시 매우 심각하기 때문이다. 시체처럼 누워만 있어서 심장에 가만히 귀를 가져가면 분명 심장소리는 들리는데 며칠 동안 미동도 없고 눈을 뜰 생각을 하지 않는다. 덕분에 우리 엄마는 미쳐가기 시작했다. 매일 밤마다 동생의 이름을 부르며 목을 놓아 통곡을 하다가도 깜깜한 하늘을 삿대질을 하며 쌍욕을 퍼붓기도 했다. 아빠는 점점 말이 없어졌다. 예전 같았으면 베란다 난간에 기대어 욕을 하는 엄마를 말리며 안으로 끌어들였을 텐데 이제는 무기력하게 소파에 앉아 허공만 쳐다보다가 뉴스를 보다가. 


   시끄러운  TV소리와 엄마의 꽥꽥 거리는 신음이 들려오는 밤이었다. 나는 조용히 내 방 침대, 이불 속으로 들어가 이어폰을 귀에 꼽았다. 음악 소리를 최대치로 올린 후에야 평화롭게 잠을 잘 수 있었다.


   주변 사람이 죽어가는 소식을 매일 접하게 되었다. 무서웠다. 무서웠고 최남주가 보고 싶었다. ‘넌 무서운 게 아니야. 다들 그래. 무서운 척하는 거야. 무서운 척을 하니까 너까지 무서운 것 같은 거야.’ 그 애가 한 말이 떠올랐고 그 애의 말을 믿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 말을 또 듣고 싶었다. 그래서 오랜만에 신발장을 열었다. 눅눅한 신발을 구겨 신고 최남주를 찾으러 달렸다.








   "얘, 거기 학생. 거기서 뭐 하니?"


   남주가 사는 낡은 빌라 아파트 107호 앞에 도착해 초인종을 누르려고 할 때였다. 경계심이 묻어있는 앙칼진 목소리에 손가락을 다시 접고 옆을 돌아보았다. 언제 문이 열린 것 인지 여주 옆집에 사는 아주머니께서 현관문을 열고 나를 멈춰 세우셨다. 나는 문 앞에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친구 만나려고요."

   "친구? 107호에 사는 그 여학생이 네 친구니?"


   네... 힘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더니 아주머니께서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나를 쭉 훑어보신다. 그리고 팔짱을 낀 채 말씀하셨다.


   "옆집 양반 때문에 내가 못 살아. 지 딸내미랑 동반자살 하겠다고 일주일 전부터 생난리를 피웠다니까. 넌 그 집 딸내미랑 친구라면서 그것도 모르고 있었니?"

   “네?! 그… 그럼 남주는요?”


   놀라서 묻자 아줌마는 어깨를 으쓱거리셨다.


   “집 주인 양반은 며칠 전부터 안 보이고 그 여학생은 그제 커다란 가방 들고 새벽에 나가서 아직도 안 들어 왔더라.”


   불쌍해. 딸내미는 무슨 잘 못이라고. 몇 년 동안 매일 제 아빠한테 맞고 살고. 욕 소리랑 비명 때문에 내가 잠을 못 잤어. 안쓰러워서 경찰에 신고하는 거 도와주겠다고 하니까 눈 똑바로 뜨고 아줌마가 오해하신 것 같다며 그냥 가더라고. 맨날 제 아빠한테 맞고 사는 게 훤히도 보이는데 아무렇지도 않은 척 꿋꿋하게 다니는 걸 보면... 독한 건지 미련한 건지. 


   아주머니가 혼자 중얼거리시더니 아까보다는 조금 누그러진 표정을 지으신 채 나를 다시 쳐다보셨다. 


   "친구라며. 정말 몰랐어?"

   "...몰랐어요."


   뒤통수를 차가운 얼음덩어리로 얻어맞은 것 같았다. 나는 김남주와 오래전부터 알던 사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런 일들을 알지 못 했던 것 인지. 남주가 가정폭력의 피해자라는 것을 남주의 입이 아닌 옆집 아주머니의 말로 입으로 전해 들은 것도 충격이었지만 여태껏 남주는 티 하나 내지 않고 항상 깨끗하고 맑은 미소를 짓고 다녔다는 것이 나를 더 놀랍게 만들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남주가 나에게 그 일에 대해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는 것이 화가 났고 나도 그만큼 남주에게 관심이 없었다는 점에 화가 났다.


   "하여튼 학생이 찾는 친구 여긴 없으니까 그만 돌아가."


   아줌마가 말을 흐리며 눈살을 찌푸리셨다. 곧 이내 안쓰러운 눈으로 나를 쳐다보시더니 곧 철컥 소리를 내며 현관문을 닫고 들어가셨다. 나는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바로 코앞에 내 시야를 막고 있는 커다란 철문을 쳐다보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철문 손잡이를 잡았더니 예상과 다르게 쉽게 손잡이가 돌아가는 것이다. 이상한 소리를 많이 해도 절대 문을 열어 놓고 다니는 위험한 행동은 하지 않는 아이였다. 그런 애가 왜 문을 잠그지도 않고 다니는 거지? 침을 꿀꺽 삼킨 후 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집 안은 눅눅하고 뜨거운 바깥공기와는 다르게 차갑고 쾌쾌했다. 그리고 누가 봐도 난장판이었다. 쓰나미라도 다녀온 것인지 거실, 주방, 안방에 있는 가구와 물건들 중 온전한 것들을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였다. 자꾸만 목이 매여왔다. 침을 꿀꺽 삼키고 나는 조심스레 남주의 방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녀의 책상 위에 가지런히 올려져 있는 종이 쪽지에 나는 속에 쥐고 있던 모든 것들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 승관아, 겁먹지 마. 내가 괜찮으니까 너도 괜찮을 거야. ]


   '태양이 사라진 게 아니야. 지구와 태양 사이에 커다란 벽이 생겨서 그래. 그래서 우리가 햇빛을 못 보는 거지.' 남주가 한 말이 쪽지의 내용과 함께 머릿속에 맴돌며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목을 놓아 울기 시작했다.


   너와 나 사이에는 어떤 보이지 않는 커다란 벽이 있었던 것일까. 그것 때문에 나는 벽을 넘어 너를 볼 생각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집으로 돌아왔다. 집안 풍경은 어제와 다를 바가 없었다. 엄마는 발코니 창가에서 소리를 지르며 통곡을 해대었고 아빠는 지지직 거리는 TV 스크린을 텅 빈 표정으로 쳐다보며 작동되지 않는 리모컨을 달칵 거렸다. 동생은 여전히 침대에 널브러져 있다. 이제는 동생이 시체인지 사람인지 구분도 짓기 힘들었다. 나는 신발을 벗지 않은 채 조용히 방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옷장 문을 열어 책가방을 오랜만에 꺼내었다. 그리고 주섬주섬 짐을 싸기 시작했다. 제법 무거워진 가방을 등에 매고 다시 현관문으로 나왔다.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아직도 해는 뜰 생각을 하지 않았고 여전히 달은 머리 위에 떠 있다. 나는 한층 가벼워진 발 걸음으로 무작정 앞을 향해 걸었다.


   그렇게 나는 오늘 그 벽을 허물러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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