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장, 또 시작이구만.”
알람소리가 시끄럽게 울린다. 그는 짜증 섞인 말을 중얼거리며 일어난다. 그는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몇 번 뒤척이다 잠이 들었고, 그 때문인지 알람소리가 그에게 반갑게 느껴지지 않았다. 찡그린 인상으로 이마를 짚은 후, 잘 떠지지 않는 부스스한 눈을 들어 창문을 본다. 아침햇살을 막기 위해 쳐져 있는 블라인드 뒤로는 아직 검은 진주 빛깔의 어둠이 자리 잡고 있었다. 어둠속에서 간간이 가로등의 주홍빛이 골목골목을 비춰주고 있었고, 몇몇의 가로등 불빛아래에서는 날개달린 손님들이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춤을 추고 있었다.
“언제쯤 내 인생에도 특별한 날이 찾아올까.”
그는 몇 달 전부터, 뭔가 특별한 하루가 자신에게 찾아오기를 간절히 바랐다. 대학생활이 끝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일상생활에 찌들어가며, 끊임없이 빨려 들어가는 개미지옥에 빠진 느낌을 받았던 적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그도 처음부터 이런 감정을 가졌던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 직장에 합격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에는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진 듯 행복했지만 그것도 그때 순간 뿐, 막상 직장생활이 2년 이상 지속되면서 그가 가지고 있던 환상이 사라지고 그저 하루하루 건전지를 갈아 끼우고 다시 작동하는 로봇이 된 듯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이 갈수록 로봇이 녹슬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그때부터 그는 자신의 인생을 바꿔줄 특별한 날이 찾아올 것이라는 생각을 무작정 하게 되었다. 로또에 당첨되거나, 엄청난 미인과 사랑에 빠지거나, 갑자기 직장에서 몇 단계 특진을 한다거나 하는 뭐 그런 상황들 말이다. 그러나 그런 상황들이 일어날 확률은 극히 적었고, 그저 그에게 주어진 것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는 오늘은 뭔가 특별한 것이 일어나기를 기대하며, 세면대로 향했다. 그는 샤워기의 물줄기를 열고, 핸드폰에서는 그가 좋아하는 이승환의 ‘Wonderful day’ 노래를 튼 다음 음악에 맞춰 흥얼거렸다
“It's a wonderful day~ 오늘하루 난 실컷 먹고 잘 거야.”
간단히 샤워를 마치고 나와 물기를 털어내고, 그는 간단히 아침을 먹었다. 그리고는 출근 준비를 마치고 회사로 출발했다.
그는 회사와 5분 거리에 있는 자취방을 구해 출퇴근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느끼는 출퇴근전쟁을 느낄 기회가 별로 없었고, 그 덕분에 출퇴근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지는 않았다. 엘리베이터를 내려 그가 마주한 첫 번째 아침햇살은 맑았고, 회사로 걸어가는 길에는 가끔 새들이 지저귐을 보태주고 있었다. 출근 시간까지 시간이 넉넉했기 때문에 그는 집 앞에 있는 카페에 들러 커피를 주문하고 음료가 나올 동안 잠깐 카페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에게 아침 출근길은 다양한 사람들을 관찰 할 수 있는 좋은 장소였다. 직장이 먼 사람들은 이른 시간에도 옷가지를 움켜쥐며 버스나 지하철을 향해 달리고, 차들이 막히는 큰 도로에 접어들면 교통순경들이 아침부터 호루라기를 불며 차들을 인도한다. 신호를 받고 서 있는 차 안에는 무언가 모를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 표정으로 짜증이라는 단어를 써 붙이고 다니는 사람들, 무표정한 얼굴로 멍하니 앞을 향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가끔 출근시간을 잘 맞추어서 빵집 옆을 지나갈 때면, 갓 구워진 빵 냄새를 맘껏 맡을 수 있었다. 게다가 그가 첫 출근을 할 때는 등교하기 싫다며 어머니와 다투고 있던 중학교 학생이 이제는 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잠이 덜 깬 얼굴로 등교하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그는 카페에서 커피를 들고 빠른 걸음으로 한때는 그가 너무나 좋아했던, 그러나 더 이상 그 경치로부터 어떠한 것들을 느낄 수 없는 출근길을 무신경하게 지나쳤다. 만약 그가 회사에 첫 출근하던 시절의 느낌을 조금만 더 간직 했더라면, 앞에서 이야기 했었던 여러 가지 일들을 보고 느낄 수가 있었겠지만, 이제 그에게 이 길과 시간은 출근이라는 일상적인 단어로 뭉뚱그려져 버렸기에 그에게는 단순히 ‘5분 동안 회사로 걸어갔다.’ 라는 내용으로만 머릿속에 기록 되었다.
그는 회사 정문을 통하며 경비아저씨께 인사를 건네고 자신의 사무실로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집이 가까워서 그런지 주로 사무실에 가장 일찍 도착하는 편이었다. 그는 컴퓨터를 켜고, 자신의 주변에 있는 서류들을 보기 좋게 정리 한 후, 오늘 해야 할 일들을 수첩에 기록 했다. 회의자료 작성하기, 설문조사 정리하기, 주간업무자료 공지하기 등 5~6가지 일들을 수첩에 적고나서 컴퓨터로 메일을 확인할 때 쯤 직장동료들이 하나둘씩 사무실로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좋은 하루 입니다.”
직장동료들이 출근하며 그에게 인사를 건넸고, 부서의 막내였기 때문에 그는 출근하는 선배들에게 모두에게 일어나서 인사를 건넸다. 회사에서는 부서의 막내가 아침 출근 시 일어나서 인사를 하는 것이 전통처럼 굳어져 있었는데, 그의 선배들이 이제 그에게 안 해도 된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만, 군대 생활과 비슷하게 하지 말라고 해서 안하면 버릇이 없다고 혼나는 경우를 자신의 회사동기를 통해서 몇 번 보았기 때문에 막내가 들어올 때 까지는 끝까지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오늘 주간업무회의 있는 거 알지? 빨리 팀원들 업무내용 모아서 아침 10시에 회의 할 수 있도록 하자고.”
출근하자마자 팀장이 그에게 업무를 지시 했고, 그는 메일로 이미 부서원들에게 내용을 보냈지만, 아직 내용을 보내주지 않은 선배들을 찾아가 곧 회의가 시작될 것을 이야기 하며 자료를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겨우 9시 50분 쯤 되서 자료를 모두 취합하여 정리했고, 회의 자료를 출력 한 후 10시에 딱 회의실 정리를 마칠 수가 있었다. 회의는 1시간 정도 진행 되었고,이번 주에 각자가 할 일, 그리고 진행이 되어야 하는데 더딜 경우 팀장에게 요청하는 바를 각자가 이야기 했다. 회의가 끝나고 자리에 돌아와서 의자에 앉으려고 하는데 옆자리에 있는 대리가 자신을 호출했다.
“저번에 회의 한 내용 자료 작성 마무리 되었죠? 오늘 오전 중으로 정리해서 보내줘요.”
그와 같은 부서 소속인 이 대리는 경력직으로 뽑혀 사실상 그보다는 늦게 부서에 배치되기는 했지만, 직급 상 그보다 위였다. 처음 부서에 들어올 때는 그에게 좋은 관계를 가지고 서로 도우면서 일을 하자는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실제로 대리와 같이 일을 하게 되면 대부분의 업무는 막내인 자신이 처리하고 중요한 몇 가지만 대리가 검토해서 윗선에 보고하는 식의 행동이 잦았다. 그래서 윗선에서는 경력직이라 일처리가 깔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그는 몇 번의 억울함을 느껴 부서에 있는 다른 선배들과 이야기를 해 볼까 생각도 했지만, 소심한 마음 때문에 그냥 대리가 원하는 대로 업무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러한 이유로 조금은 울적한 마음으로 회의 자료를 정리해서 대리에게 메일을 보내던 중에 월급관련 메일을 보고나서는 오늘이 월급날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어 약간은 기분이 나아졌다. 사실, 월급이 들어오더라도 그가 살고 있는 자취방 전세금 대출금과 이자를 갚고, 부모님 용돈을 드리고, 재수를 하는 동생이 가끔 책살 돈이 필요하다고 해서 몇 만원 보내주고, 저번 달에 썼던 카드 값을 빼고 나면 자신의 용돈 쓰기도 넉넉한 금액은 아니지만 그래도 월급날이란 한 달의 숨통을 틔어주는 이벤트였다. 며칠 전 고향 집에 있는 냉장고가 고장 나서 조만간 새로 하나 사야겠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 기억나서 언제 부모님께서 그에게 돈을 조금 보태달라고 하실지 모르겠지만, 어찌되었건 간에 오늘이 월급날이고 통장에 돈이 들어온다는 사실이 그를 기쁘게 했다.
“오늘 점심 같이 먹는 게 어때? 회사 식당에서 점심 먹는 거 하루 이틀이지,매일 먹기는 좀 지루하잖아? 오늘은 나가서 먹자”
그의 동기가 메신저로 같이 점심을 먹자는 연락을 했고, 그는 마침 점심시간이 다 되어서 부서 사람들에게 자신은 동기와 점심을 먹기로 해서 먼저 식사를 하러 가시라고 말을 건넸다. 부서원들이 식당으로 가고 난 후, 그는 점심약속을 한 동기를 만나기 위해 회사 정문으로 향했다.
회사 동기는 이미 정문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입맛이 까다롭지 않은 그는 그의 동기에게 네가 먹고 싶은 음식점에 가자고 이야기를 했고, 동기가 먹고 싶어 하는 샤브샤브를 먹으러 갔다. 그의 동기가 물었다.
“요새 만나는 여자는 있냐?”
그는 또 시작이냐는 듯 그를 보며 이야기 했다.
“야 내가 여자 친구 생기면 이야기 한다 그랬잖아. 없어 없다고, 그런 이야기는 소개팅이라고 시켜주면서 이야기 하는 거야. 어른들 말씀이 친구를 잘 사귀라고 했는데 아무래도 난 너 때문에 실패한 것 같다.”
“에이 뭘 또 심각하게 받아 들이냐, 이건 너를 놀리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이야기 하는 건데, 난 정말 네가 대단한 것 같다. 나는 여자 친구가 있는데도 회사 생활하는 게 재미가 없는데, 넌 여자 친구 없어도 잘 버티잖아. 우리 동기 중에서도 벌써 2명은 적성이 안 맞는다는 이유로 퇴사를 했는데 말이야.”
“걔네들한테는 각자 나름의 사정이 있었겠지 뭐, 나라고 회사를 나가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겠냐. 그냥 전세금 대출도 있고, 부모님 용돈도 드리고, 동생 재수하는 것 좀 보태고 이래저래 돈을 쓰다보면 퇴사생각은 쏙 들어가는 거지 뭐.”
“나는 너처럼 갚아야 할 빚은 없고 경제적으로 나를 구속하게 하는 건 별로 없는데, 요새 신경이 예민해졌는지, 시간이 조금 지나니까 부서 사람들이 이상하게 싫어지더라고, 그러고 나니 점심 같이 먹기도 싫고 일도 같이 하는 게 불편하고 그렇게 되던데, 넌 안 그러냐? 아참, 혹시 여기 우리 회사 사람 있는 건 아니겠지?”
“있을 수도 있지, 잘 둘러봐. 사실 난 몇몇 싫은 사람이 부서에 있기는 한데, 아직 전체적으로 다 싫다고 느껴본 적은 없어. 그나저나 넌 입사할 때 성적도 제일 좋았고, 첫해 고과도 우리 중에 제일 좋았잖아. 그 정도면 그냥 참고 회사를 다닐 만 하지 않냐? 잘하면 내년에 진급 할 수도 있는 거잖아.”
“에이 진급은 무슨, 2년 전에 고과 받은 건 우리 신입사원들끼리 경쟁해서 평가 받은 건데, 올해부터는 신입사원이 아니니 부서실적이랑 직급에 따라서 고과를 준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열심히 했는데도 아직 나이도 어리고 고과가 중요할 시기도 아니라고 하면서 낮은 고과 주던걸? 일할 맛이 싹 사라지더라고”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에, 그들이 주문한 샤브샤브가 준비되었고 잠시 이야기를 멈추고 음식을 먹기 시작 했다. 그와 그의 동기는 동향에다가 같은 나이로 인턴으로 회사에 입사 했을 때부터 같은 조에 속해 있었다. 게다가 인턴 후 신입사원 연수를 받을 때도 운이 좋게 같은 조에 속하게 되어 다른 동기들보다 더 친해서 서로 편하게 말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 그가 생각하기로 그의 동기는 열정적이고 경쟁심도 굉장히 강해서 회사생활에 잘 맞는 것 같으면서도 호불호가 확실히 갈리고 어릴 적 편하게 자란 탓인지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어려움에 접하면 크게 위기감을 느끼곤 했다. 그는 그와는 달리, 신중한 편이었기 때문에 부서원들에게 강하게 어필할 수 있는 능력은 조금 부족했고, 어린 시절 아버지의 실업과 어머니의 병간호를 했던 기억덕분에 위기가 닥치면 조금 멀리 떨어져서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서로 장단점이 있었는데, 그 장단점은 거울로 비춘 듯 서로 정반대의 성질을 띠고 있었고 그것이 오히려 둘 사이의 우정이 잘 유지되는 이유이기도 했다. 음식을 거의 다 먹은 후, 그의 동기가 다시 그에게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처음 회사에 입사 했을 때는 정말 기뻤던 것 같은데, 뭐가 잘못된 걸까. 회사 생활이 별로 재미가 없네, 그냥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 같아. 사실 우리가 이렇게 느끼면 안 되잖아. 우리가 취업을 했을 때 취업하지 못한 친구들이 분명히 있었고, 아직도 취업이 어려워서 고생하고 있는 친구들이 있는데 우리는 이미 취업을 하고 나서도 불만족스럽다고 느끼는 거잖아. 난 가끔 그렇게 절실한 사람들의 권리를 내가 빼앗은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지, 그 당시 너도 절박했고, 그 사람들도 절박했었잖아. 우리가 지금 생활에 만족을 못하는 것에 대해서 죄책감 느낄 필요는 없어. 그리고 지금 우리가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에 대해서는 나도 공감해, 나도 매일 일어나면 ‘뭔가 새로운,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라고 기대를 하고 일어나지만, 막상 하루가 끝날 즘이 되면 ‘오늘도 그냥 평범한 하루 이었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잠이 든단 말이야. 뭐 어쩌겠어, 그래도 동기 중에 두 명은 이미 회사를 나갔지만, 아직도 우리는 끈질기게 남아 있잖아. 야, 우리 이렇게 답답한 이야기 하지 말고 뭔가 새로운 이야기를 해보자.”
“매일 뭔가 새로운 일이라. 그런데 뭐? 새로운 이야기? 너 좋아하는 여자 있냐?”
“또 시작이네. 아 맞다. 요새 옆 부서에 신입 여직원이 말이야.”
그렇게 그와 동기는 이야기를 나누며 점심을 먹고 회사로 돌아왔다.
“다시 전쟁터로 간다. 수고해라”
그의 동기가 인사를 건네고, 그는 다시 부서로 돌아왔다. 점심시간이 조금 남아서 그는 가방에서 책을 꺼내 들었다. 요새 그는 독서에 취미를 붙였다. 대학교 1,2학년 일 때는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시험공부하고 연애하고, 친구들과 노느라 책을 많이 보지는 못 했다.다만 군대시절 어느 정도 계급이 올랐을 때 남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해 군대 내에 도서관에 간 것이 그가 다시 책을 손에 들게 했던 계기가 되었고 그 이후 꾸준히 일주일에 책 한권 정도는 꼭 읽곤 했다. 그리고 그 습관이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게다가 회사 생활을 하며 취미로 스트레스를 풀어야 하는데, 동호회 같은 것을 나가기에는 야근이나 특근이 많아서 참석하기가 어렵고, 움직이는 것을 하기에는 운동신경이 별로 뛰어나지 않아 혼자 조용히 집에서, 그리고 점심시간에 할 수 있는 취미로는 독서가 제격이었다. 그는 조금 남는 점심시간에 책을 조금 보았고, 금방 점심시간이 끝나 다시 업무시간이 되었다. 여전히 그가 근무하는 부서는 바쁘고 부서 선배들이 그에게 요청하는 것들은 많았다. 그들이 막내였을 때에도 분명히 그들이 했던 일 또한 많았겠지만, 가끔 그들이 막내일 적에 일이 많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많은 일들을 만들어서 막내인 그에게 일을 시키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정신없이 오후를 보내던 와중에 점심시간에 그가 그의 동기에게 이야기 하던 옆 부서의 신입여직원이 그에게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다름이 아니라 선배님께서 설문조사 분석을 하신다고 들어서요, 혹시 저희 부서 관련된 내용이 있으면 자료 공유가 가능한지 여쭤보려고 왔어요.”
그는 갑작스런 그녀의 방문에 당황했고 뛰는 가슴을 조금 멈출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것은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와 처음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인데 그는 너무 긴장을 했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녀를 보고 잠깐 고민을 하는 척 마음을 진정시키고 그녀에게 말하려고 하는 순간 그의 핸드폰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갑작스런 전화에 그는 말을 하려다 말고 핸드폰을 보았고 흘러나오는 이승환의 ‘wonderful day’ 노래와 함께 우리엄마라고 쓰여 있는 핸드폰의 발신자 화면을 발견하자마자 급격히 핸드폰을 뒤집고 횡설수설하며 그녀에게 말했다.
“하하. 요즘 광고? 사기? 아, 아무튼 이상한 전화가 많이 오네요.”
그녀가 웃으며 이야기 했다.
“이승환의 ‘wonderful day’ 노래 좋아하세요? 저도 그 노래 완전 좋아 해요.벨소리로 하실 정도면 이 가수 노래 많이 좋아하시나 봐요?”
“아, 네. 팬이에요. 노래가 마음에 들어서요.”
그는 무심결에 이승환의 팬이라고 그녀에게 이야기했다. 사실 그는 이 노래가 이승환의 노래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고, 다만 뭔가 특별한 날이 언젠가 오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설정해놓은 벨소리였다. 그녀가 말했다.
“혹시 이 가수의 다른 노래도 좋아하세요?”
그는 속으로 ‘망했다.’ 라는 생각을 했다.
“네? 아, 네. 그. 다른 노래가. 음.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지 않네요.”
그는 팬이라고 했던 것을 후회하며 그의 다른 노래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얼버무렸다. 다행이 그녀는 그것에 크게 개의치 않는 듯 했다.
“저희 나이 대에 이승환의 팬이 드문데 반갑네요. 이번 겨울에 콘서트를 한다고 하는데 팬 분이시면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네? 아, 네. 참고가 될 것 같네요. 고마워요. 그런데 아까 찾아오신 용무가 설문조사? 아, 네 설문조사였죠? 분석을 하다가 관련내용이 있으면 요약해서 보내드릴게요. 음, 메일로 보내드리면 되나요?”
“네, 감사 합니다 선배님. 나중에 커피한잔 사드릴게요”
그렇게 그녀는 종종걸음으로 그녀의 자리로 돌아갔고, 그는 커피한잔이라는 말에 많은 의미가 담겨있지는 않은지 망에 휩싸여 진지하게 고민을 하다가 혹시 그녀와 이야기가 잘 통하고 마음이 맞으면 꼭 연말 이승환의 콘서트 티켓을 구매하리라고 생각했다.
“이번에 월말보고서 누가 쓰기로 했지? 담당자 내 자리로 와서 이야기 좀 하지.”
팀장님의 갑작스런 호출로 그의 행복한 상상은 막을 내렸고, 다시 바쁜 업무의 흐름에 몸을 맡기게 되었다. 선배들의 요청, 그리고 팀장의 업무지시 등 여러 가지 일들을 하고 나니 벌써 저녁시간이 다 되어 있었다. 그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대리가 자신에게 일을 맡기고 퇴근을 했고, 그로인해 잠깐 스트레스를 받으며 ‘나는 나중에 선배가 되면 후배에게 일을 떠넘기지는 말아야지’ 라는 생각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나중에 선배가 되었을 때 어떻게 하게 될지는 미지수 이지만 말이다. 그의 부서 선배들도 대부분 정리를 하고 퇴근준비를 했다.
그는 마무리할 일이 있어서 야근을 하기로 했고, 퇴근하는 선배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자리에 앉아서 남아있는 일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너도 오늘 야근 하냐? 나도 오늘 야근인데 커피나 잠깐 한잔 하는 게 어때?”
그의 또 다른 동기가 그에게 메신저로 말을 걸었다. 연락이 온 동기는 결혼 전에는 자주 연락을 하던 사이였다. 하지만 이후 연락이 뜸하던 사이였기 때문에 메신저로 말을 걸어서 반가운 마음으로, 그리고 머리도 식힐 겸 그와 만나 회사 내에 있는 휴게실에서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가 그의 동기에게 이야기 했다.
“오랜만에 얼굴 보네, 요새 너희 부서일은 할만 해?”
“그냥 그럭저럭 이지 뭐, 재미있기도 하고, 지겹기도 하고 마치 부부처럼 애증의 관계라고나 할까?”
그는 일과 애증의 관계라는 표현이 신선해서 그에게 다시 물어본다.
“애증의 관계정도면 일과 엄청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 아냐?”
“깊지, 너무 깊어서 우리나라 이혼율 1위에 대해서 전적으로 공감하는 바이기도 하고.”
그의 동기가 잠깐의 침묵을 깨고 다시 말한다.
“나 이번 달 말 부로 퇴직하기로 했다. 팀장님한테까지 허락은 받았고, 내일 임원에게 보고 드리면 절차적으로는 다 끝날 것 같다.”
“뭐야, 뭐 그런 이야기를 애증관계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하는 거야? 어디 정하고 가는 거야? 여기보다는 괜찮은 데로 가야 할 거 아냐?”
“글쎄, 딱히 어디로 정하고 퇴사를 하는 건 아냐. 그리고 만약 이직을 한다면 연봉을 더 받지는 않지만 야근이나 특근이 많지 않은 회사로 가고 싶어. 그래야 내 시간, 가족과 보낼 시간을 좀 더 가질 수 있을 것 같아. 너도 알다시피 내가 작년에 결혼하고 나서 지금 신혼 2년차인데 평일에 집에 가서 와이프와 함께 저녁을 먹은 날이 열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니 말이야. 난 돈보다는 그냥 여유로운 생활을 택해야 할 것 같다. 사실 앞으로 어떻게 될 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선택이 나한테 더 맞는 것 같네.”
그는 동기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빠졌다. 사실 그는 여자 친구도 없고 가족들과도 멀리 떨어져 살았기 때문에, 게다가 주중에 회사동료들 외에는 딱히 약속을 잡지 않았기 때문에 여가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동기의 말을 들어보니, 자신이 그처럼 결혼을 하게 되었을 때 매일 야근과 특근으로 집에 늦게 들어가게 되어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식사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열손가락으로 꼽을 정도가 되어버린다면 조금 슬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네 생각이 정 그렇다면 네 결정대로 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와이프는 네 결정에 찬성하는 편이야?”
“처음에는 당연히 반대했지, 그런데 내가 너무 힘들어 하는걸 보고 있으니까 자기도 회사를 그만두는 것이 좋겠다고 이야기 하더라. 당장 아파트 전세금 대출 갚아야 하는 것도 문제이기도 해서 최대한 빨리 직장을 구해보려고.”
“음. 새로 직장을 구할 마음이 있으면 회사 다니면서 좀 더 안정적으로 하는 것도 낫지 않아?”
“처음에는 회사 다니면서 직장을 구하려고 했는데, 점점 마음이 약해지더라고. 사실 게을러지는 것도 있고 말이야. 퇴사는 6개월 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는데 회사에 다니고 있으니까 그냥 현실에 계속 젖어들게 되어서 배수진을 친다는 생각으로 결정하게 된 거야.”
그와 그의 동기는 좀처럼 말을 이어나가지 못했다. 그의 마음속에는 만약 자신이 그의 입장이라면 어떻게 행동 했을까 라는 생각이 자리 잡아 그를 좀 더 이해해 보려는 노력을 하고 있었고, 동기의 마음속에는 앞으로 어떻게 세상을 헤쳐 나갈지 그리고 잘 나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에 잠겨있었다. 휴게실에서 창밖으로 보이는 빌딩을 바라보며 그가 이야기 했다.
“그래, 어찌 되었건 간에 네 결정을 축하한다. 인생이 어디로 흘러갈지 누가 알겠냐. 지금 결정이 어떻게 보면 네 인생의 큰 전환점일 것 같다. 사실 우리 동기 중에서도 퇴사를 하고 싶지만 너처럼 용기가 없는 사람들도 있을 거 아냐, 그렇게 보면 넌 무모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남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하는 용기 있는 결단을 내린 거지. 그리고 혹시나 중간에 힘들면 연락해서 술이나 한잔 하자. 내가 살게. 그러고 보니 옛날생각 나네, 네가 우리 동기들 연극 대본 썼었잖아, 그때 우리가 너보고 작가님 했던 거 기억 나냐?”
“그래, 생각나지. 그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네. 오랜만에 봤는데, 여전히 편안한 녀석이야 넌.”
그와 그는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헤어 졌다. 그는 멀어져가는 동기의 뒷모습을 잠깐 바라보고 있었는데, 새로운 문으로 들어서는 탐험자 같기도 하고 현실의 슬픔을 지고 가는 사람 같기도 했다.
그렇게 그는 다시 사무실로 돌아왔고, 몇 가지 일들을 마무리 한 후, 남아있는 팀장님께 인사를 드리고 퇴근을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오늘 옆 부서의 그녀를 떠올리며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걸어갔다.
출근길과 마찬가지로 퇴근길에도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가 회사에서 나와 걸어가는 큰길에는 여러 음식점들이 있는데, 주로 그의 회사 사람들이 주로 회식을 하곤 했다. 그리고 그가 퇴근하는 시간에는 고등학생들이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나오는 시간과 겹칠 때가 많아서 종종 고등학생들이 웃고 떠드는 이야기가 들리기도 했다. 게다가 아침에 출근을 했던 직장인들이 이제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이 되어서 다들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을 향하고 있었고, 가로등은 그들이 자신의 항해를 온전히 완수하도록 등대역할을 충실히 해주고 있었다. 하늘에는 수가 많지는 않지만 빛을 내는 작은 별들이 몇 억 광년 전 자신들이 살아있었음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었고, 아침에 어머니와 등교로 다투던 고등학교 학생이 가방을 메고 초인종을 누르며 ‘엄마, 저 학교 오는 길에 엄마가 좋아하는 떡 사왔어요. 아침에는 미안했어요.’라고 이야기 하는 것을 들을 수도 있었다. 그는 오늘 피곤함을 느꼈기 때문에 고개를 들어 자신의 퇴근길을 자세히 살펴보지는 않았지만, 만약 그가 조금만 주의를 깊게 살피고 주변의 사물, 그리고 사람들을 관찰했다면 그가 오늘 점심을 같이 먹었던 동기가 회식자리에서 취해서 부서원들이랑 더 친해지고 싶다며 악을 쓰는 모습을 볼 수도 있었을 것이고, 오후에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그녀가 그보다 앞선 50m거리에서 걸어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오늘의 그 모든 것을 관찰하기에는 너무나 같은 길을 오래 걸어왔고 또 그의 일상 속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다. 그는 5분의 퇴근길을 거쳐 다시 자신의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어머니가 자신에게 전화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전화를 들어 어머니와 통화를 나누었다.
“아들, 회사에서 별일 없지?”
“네, 엄마. 회사에는 별일 없어요. 엄마 오후에는 왜 전화하셨어요? 무슨 일 있어요?”
“아니, 별일 없어. 그냥 목소리 듣고 싶어서 전화했지. 그나저나 엄마 미숙이 알지? 그 대기업 다닌다는 아들 엄마 말이야.”
“네, 알죠. 근데 왜요?”
“아니 글쎄 말이야, 오늘 시장에서 장을 보다가 만났는데 자기 아들 자랑을 뭘 그렇게 하느냐 말이야. 뭐 아들이 상여금을 받아서 자기한테 선물을 사줬다느니, 고과를 잘 받아서 연봉이 더 올랐다느니, 내가 아들한테 뭐 받고 싶어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얄미워서 그래. 만날 때마다 아들 자랑만 하는데, 우리 나이 대 엄마들이 다 아들자랑에 살아가는 것은 물론 알지. 그래도 그렇지 시도 때도 없이 자랑하는 건 좀 도가 지나치다고 생각하지 않니? 매일 말끝마다 대기업, 대기업 그러는데 배알이 꼴려서 도저히 못 들어 주겠더구나, 그래서 그냥 속이 안 좋다고 바로 집에 와버렸지 뭐니, 에구 내가 이 이야기를 하려고 전화를 한 건 아니고, 아들 요새 잘 지내는지 궁금해서 전화를 했어. 그런데 말을 하다 보니 이런 이야기 까지 해버렸네. 네가 생각해도 얄밉지 않니?”
“엄마 미숙이 아주머니가 뭐 받았대요? 오늘 저 월급날이니까 제가 돈 좀 보낼 게요. 그러니까 엄마도 다시 만날 때 자랑하세요.”
“오호호, 역시 우리 아들밖에 없네. 다음에 만날 때는 내가 코를 확 납작하게 해줘야지 호호호. 아참 아들 혹시 요새 만나는 처자 없니? 이제 결혼도 슬슬 생각해야 하고, 지금이면 한창인데 여러 사람 만나봐야지.”
“엄마, 그건 제가 알아서 할게요. 제가 나중에 여자 친구 생기면 바로 알려드릴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아니, 걱정은 안 되고. 네가 워낙 잘하니까 알아서 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남자는 말이다. 여자를 잘 만나야 한다. 너도 알다시피 엄마 주변에 여자 잘못만나서 인생 망친사람이 한둘이 아니야. 그리고 여자를 볼 때는 말이야.”
“엄마, 통화 할 때마다 똑같은 이야기해서 다 알고 있거든요? 저 오늘 야근해서 좀 피곤 해요. 곧 주무실 시간이니까 엄마도 푹 쉬시고, 잘 주무세요. 아빠한테도 제 안부 전해주시구요.”
“그래, 알겠다. 푹 쉬어 내 아들”
그는 피로감을 느끼며 전화를 끊었다. 어머니는 항상 그와 통화할 때 걱정이 많았다. 물론 그것이 사랑에 기초를 한 모성애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이제 30이 넘은 그의 나이로서는 오히려 간섭으로 생각되는 면이 많았다. 그는 머리를 흔들며 여러 가지 생각을 흩어버리고 저녁준비를 시작했다. 그는 자취생활을 한 이후로 간단하고 빠르게 음식을 먹는 것에 익숙해 지게 되었다. 사실 누군가와 같이 먹는 것이 아니라면, 최대한 빨리 식사를 하고 쉬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그에게는 가장 효율적인 생활 방식이었다. 그는 저녁을 다 먹자마자 싱크대로 그릇을 가져가서 씻은 후, 샤워를 하기 위해 옷을 벗고 수건을 하나 가지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는 샤워기의 물줄기를 온수와 냉수의 중간에서 온수 쪽으로 조금 더 기울여 물을 틀고 샤워기 아래에 몸을 가져다 댔다. 아침에는 빠르게 씻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저녁에는 그의 하루 피로를 씻어 내리는 것이 목적 이었다. 마치 전투에서 돌아온 전사들이 하는 의식처럼 그는 따뜻한 물이 나오는 샤워헤드 아래에서 자신의 몸을 맡겼다. 그는 사회생활을 한 이후 항상 퇴근하고 샤워하는 것을 잊어버린 적이 없는데 온몸 전체에 있는 피로들을 밖으로 빠져나가게 한다는 그 자신만의 작은 미신 때문이었다. 그는 샤워를 끝내고 수건으로 자신의 몸을 닦은 후에 수건을 세탁기 속으로 던져 넣은 후 속옷과 잠옷을 입고 침대에 누웠다.
그는 침대에 누워 자연스럽게 자신의 핸드폰을 켜고 페이스 북을 실행했다. 그는 잠에 들기 전에 종종 페이스 북에 있는 친구들의 상태를 즐겨보곤 했다. 그것은 마치 몰래 숨어서 다른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 같은 묘한 기쁨을 주는 행동 이었다.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얼굴이나, 최근에 맛있게 먹었던 음식이나, 여행을 다녀온 사진을 자신들의 프로필에 올려놓는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그 사람들을 만나지 않더라도 무엇을 하고 있는지 손쉽게 알 수 있었다.
“얘 는 요새 여자 친구가 생겼네, 그렇게 솔로라고 슬퍼하더니 지금은 엄청 자랑을 하네.”
그는 그 친구의 프로필을 보고 부러운 감정과 질투심을 느꼈다. 그리곤 바로 다음 사진을 보기위해 다른 친구의 화면으로 넘겼다.
“어라 이 친구는 여행을 갔었네. 아, 나도 나중에 이곳으로 휴가를 가고 싶었는데 정말 괜찮은 곳 인가봐.”
그리고 그는 나중에 메신저를 보내 여행정보를 좀 알려달라고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친구의 사진에 ‘좋아요’ 버튼을 눌렀다.
“에고, 얘는 아직도 취업준비를 하고 있네. 요즘 취업이 정말 힘들기는 한가봐.”
그는 아직 취업준비를 하고 있는 친구의 글을 보며 약간의 안타까움과 자신은 지금 직장을 다니고 있다는 안도감과 우월감을 느꼈고, 친구의 글에 ‘좋아요’ 와 ‘힘내, 넌 잘할 수 있을 거야. 파이팅!’ 이라는 댓글을 달았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이제 그가 주로 자는 시간까지는 1시간 정도가 남았다. 그는 자신의 가방에서 점심시간에 회사에서 다 읽지 못했던 책을 꺼내 남아있는 부분을 읽기 시작했다. 그 책의 제목은 ‘황제의 철학’으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라는 로마 황제의 ‘명상록’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 책이었다. 그는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 황제라는 특별한 사람의 인생은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그런 삶과 자신이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고, 또 그런 삶과 비슷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이 책을 도서관에서 빌렸다. 그러나 오히려 그는 이 책을 읽으면서 황제가 적어놓은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자신의 삶, 그리고 여러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아이러니 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스토아 철학이니 뭐니 하는 것들을 그가 이해를 할 수는 없었지만, 단순히 과거의 황제들이 하는 고민들도 사실 현대 사람들이 하는 고민들과 같은 범주 안에 있다는 사실이 그를 조금 위로해 주었다. 그는 이제 잠을 청할 시간이 되어서 책을 덮고 불을 끄고 이불속에 들어갔다. 그리고 혼자 이야기했다.
“오늘은 특별한 하루였나?”
그는 다시 오늘 하루를 되새겨 본다. 분명 오늘 하루는 여러 가지 일 들이 많았고, 신경 쓰이는 일도 많았지만 극히 ‘평범한 하루’ 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내일은 특별한 날이 되기를 바라며 다시 스스로 이야기 했다.
“언젠가 내 인생에도 분명히 특별한 하루가 날이 찾아올 거야.”
그렇게 그는 잠이 들었다.
그날 밤 그가 살고 있는 원룸에 불이 났다. 너무 깊이 수면에 빠졌던 그는 연기가 자신의 방을 가득 차고 창문 밖이 붉게 물들 때쯤에 잠에서 깼고, 자신의 방을 빠져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 때쯤에 연기를 너무 많이 마셔 두 번 다시 잠에서 깰 수 없었다. 그리고 그에게는 오늘보다 더 특별한 Wonderful day는 찾아오지 않았다. <끝>
지은이: 정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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