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보다
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동네에 작은 사진 전시회가 열린다는 이야기를 인터넷에서 보고 나는 시장에서 골동품을 찾는 다는 심정으로 전시회를 찾아갔다. 이런 작은 전시회가 다 그렇듯이 큰 기대는 하지 않았는 데 예상대로 전시된 사진들은 흔해빠진 구도에서 찍어댄 흔해빠진 것들이었다. 이슬에 맺힌 풀을 나름 예쁘게 찍어보려고 한다던가 하는 아마추어들의 사진들이 전시회를 가득 채우고 있어서 여기에 있는 것 마저 고역이었다.
더 이상은 보고 있기가 힘들어서 발을 돌려 가려던 그 때였다. 나는 보았고 매료되었으며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말라비틀어진 나무와 메마른 땅에 핀 물망초 한 송이, 그리고 나무 아래에 우아하게 앉아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는 아름다운 여인은 검정과 하얀색만으로 표현된 세상 속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눈길은 부드럽고 따스해 나 역시 그녀를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이 세상 어디에 이렇게 아름다운 여인이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한 참을 그 자리에 서서 여인과 눈맞춤을 하며 그녀의 세상을 음미하고 있던 나를 깨운 것은 관리인으로 보이는 한 노인의 터치였다.
“ 손님, 이제는 폐장 시간입니다. ”
폐장시간이라니, 그녀와 조금 더 있고 싶은 마음이 계속 남아 아쉬움에 관리인과 작품을 번갈아 두리번 거리며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관리인은 고민에 빠져버린 내가 보기 싫은 지 주름진 얼굴을 찌뿌리면서 내 팔을 잡았다.
“ 죄송하지만 나가주셔야 합니다. ”
계속된 재촉에 나도 덩달아 급해져 내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지도 잠시 갈렸으나 이내 떠올랐다. 작품도 훌룡하지만 나는 그녀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떠올라서 오히려 내가 관리인의 팔을 잡았다.
“ 아저씨, 이 사진의 모델은 어디에 살죠?”
“ 저는 그런 건 모르죠. 제가 사진 작가도 아닌데요. ”
한숨을 내쉬는 관리인, 나를 그저 귀찮은 진상 손님으로만 생각하는 게 뻔히 보여서 갑자기 기분이 나쁘다. 게다가 관리인이라면 작품에 대한 설명은 기본적인 업무일 것이고, 작품에 대한 이해가 깊은 직업임에 틀림없는 데 모른다는 것도 말이 안된다. 그저 알려주기 귀찮아서 대충 둘러댄 핑계일 것이다.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다.
“ 관리인이 작품에 대해서 모른다는 걸 믿으라는 거요?”
“ 정말 모르니까 빨리 나가주세요. ”
내가 살짝 화를 내자 관리인은 갑자기 힘으로 나를 밖으로 내 밀었다. 어차피 노인일 뿐이니 버티려고 했지만, 이 노인은 뭔가 이상했다. 힘이 너무 강해서 나는 거의 밀려나듯이 쫓겨나고 말았다. 차라리 그냥 밀려난 거라면 다행이겠지만 이 노인은 인정사정도 없이 나를 내동댕이 치다 싶이 던져서 바닥에 넘어지게 만들었다. 나는 우선 가장 중요한 나의 카메라부터 허겁지겁 확인을 했다. 다행히도 내 카메라는 무사한 것 같다. 사람을 갑자기 내동댕이 치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싶어 노인에게 따지려고 달려갔는 데 노인은 코 앞에서 문을 닫아버린 후 잠궈버렸다.
“ 사진 모델이 알고 싶다면 작가를 찾아가세요! ”
깜짝 놀랬다. 문을 두드리며 화를 내려했는 데 갑자기 그렇게 소리를 크게 지르다니. 사람이 놀라는 건 아무런 상관 없다는 듯한 그의 태도는 정말 정말 예의라고는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었다. 거기에 문 너머로 나를 욕하는 소리까지 다 들린다. 고작 이런 조그마한 전시회를 관리하는 주제에 감히 나한테 이런 취급을 한다는 게 너무 건방지다. 기분 나빠져 문 앞에 침을 뱉고 자리를 떴다.
조그맣지만 가장 소중한 나의 카메라, 아까 넘어지면서 뭍어버린 흙을 닦아가면서 나의 보금자리를 향해 걸어가는 길에서도 나는 내내 그 전시회장에서 봤던 작품, 작품 안에서 나를 바라보던 그녀에 대한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그녀를 만나야 겠다는 생각 또한 떠나질 않았다. 그런데 그녀를 만나려면 뭘 해야 만날 수 있지라는 질문의 답을 찾기 어려웠지만. 그 예의없는 노인이 꽥꽥 소리를 지르며 말했던 말이 생각났다. ‘작가를 찾아가라’ 그런 성격 더러운 노인이 말해준 것 치고는 괜찮은 생각이다. 사진을 찍은 작가는 모델이 누군지 당연히 알겠지.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거리에 도착하면 늘 기분이 좋다. 언제나 같은 풍경의 거리를 하고는 있지만 그런 익숙함 때문에 오히려 편해지는 느낌이다. 그런 거리를 10분 정도 걷다보면 한적한 골목길이 보인다. 그곳에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행복 고시원’이라 적혀있는 건물, 나만의 보금자리가 있다. 마치 닭장을 연상케 하는 여러 개의 문 중 406호라고 적혀있는 문을 열면 겨우 침대 하나가 들어가있고, 벽에 달려 있는 접이식 책상, 그리고 작품들이 걸려 있는 오른쪽 벽이 있다. 이곳이 바로 아늑한 나의 집이다. 그 중에서도 누군가에게 가장 보여주고 싶은 것은 바로 벽에 걸려 있는 나의 작품들이다. 이 작품들을 보면 위대한 포토그래퍼로 성장해있을 나의 미래가 보여 흐믓함에 늘 미소를 짓게 된다. 물론 이건 나 뿐만 아니라 누가 봐도 그럴 것이다.
“ 내 노트북이 어딨더라?”
침대와 벽의 틈 사이에 손을 휘저어 가며 나의 보물 1호인 노트북을 찾았다. 오랜만에 꺼내서 그런지 먼지가 살짝 쌓여있어 손으로 한번 쓸어주고는 작동시켜 인터넷을 열었다. 인터넷은 정보의 바다라고 불린다. 왜 그러냐고? 이렇게 작은 상자에 전시회장에 대한 글을 치면 쓸모없는 사진들이 가득한 전시회라도 정보가 나오기 때문이다.
“ 전시회... 사진.. 작가가 누구야? ”
마우스 커서를 드르륵 소리를 내며 내리자 매우 작은 글씨로 써 있는 작가의 이름을 발견했다. 그때의 기분이란 정말 최고다. 자 누군지 한번 볼 까?
“ M,P라 My Photo라는 건가. 그런 훌룡한 작품을 찍은 사람치고는 촌스러운 이름이군. ”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솔직히 나의 사진이라는 예명을 쓰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 정도 작품을 만들 정도면 예술가적인 이름을 쓸 줄 알았다. 예를 들면 레오나르도나 알 본도 같은 것 말이다. 진정한 예술가라면 이름부터 신경 써야하는 게 상식아닌가? 아무리 작품성이 뛰어난 예술가라도 작명센스는 부족했나 보다. 인터넷을 통해 알아낸 정보는 촌스러운 작가의 예명 외에도 셔터 홀릭스라고 하는 중소 사진가 소속사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이 있었다. 이 정도 알아내는 건 솔직히 식은 죽 먹기였다. 홈페이지를 들어가니 대문에 당당히 담당자의 전화번호가 올려져있어 나는 이제 곧 작가를 만나 모델을 알아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가득차 핸드폰의 숫자패드 하나하나를 정성스레 눌렀다. 손가락이 멈추자 이내 짧은 신호음이 들려왔다.
「띠...띠...띠... 상대방이 전화를 받을 수가 없어..」
“ 하! 후우우...”
담당자인줄 알아 바짝 긴장했지만 평소에도 많이 들어본 차분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와 긴장이 풀려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식은 땀이 흘러내려 전화를 얼굴에서 떨어뜨려놓고는 우선은 진정했다. 고작 전화를 하는 것 뿐인데도 그녀를 만날 수 있는 첫 걸음이라 생각하니 심장이 멈추지를 않았다. 몇 분 정도 지나 진정되자 나는 다시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여전히 똑같은 여자의 목소리만 들려왔다. 처음에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을 했다. 담당자라면 일이 있을 거고 업무에 바쁠 것이니까. 예를 들면 다른 작가들과 비즈니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던가, 예술적이고 창조적인 일을 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납득하고는 전화를 거는 간격을 조금 두고 한 번 더 전화해봤다. 안 받는 다. 이해하고 또 시간을 두고 전화를 했것만 6시간이 넘어가는 데도 받지를 않았다. 아무리 너그러운 나라도 이쯤 되면 화가 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전화를 안 받을 거면 대체 뭐하러 전화번호를 써놓은 건데!
“ 젠장 맞을! ”
벽에 부딪힌 핸드폰은 쿵 소리를 내며 반으로 갈라졌지만 내 머리속에는 몇개월 남아있는 약정보단 전화하라고 번호를 기재해놓고 받지 않으며 나를 우롱하고 있는 셔터 홀릭스에 대한 분노로 가득했다. 한참을 침대를 주먹으로 때려가며 베게에 코를 박고 소리를 질러가며 분을 삭혔다. 화가 날 때 소리를 지르니 역시 진정이 되었다. 나는 다시 침착하게 생각을 했다. 어떻게 하면 만날 수 있을 까? 일단은 담당자를 만나야 모델에 대해서 물어보건, 찾아가건 할 것이 아닌가? 누워서 골똘히 생각하다 다시 한번 살펴보자는 생각에 몸을 일으켜서 다시 사이트를 살펴보니 한쪽 구석에 조그맣게 써 있는 담당자의 이메일 주소가 써져있는 것을 보고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이메일을 써나갔다.
“ 저는.. M,P의 열혈 팬... 꼭 만나고 싶습니다.. 좀 진부한가? ”
고심하고 또 고심하면서 글을 지웠다가 썼다를 반복하다보니 어느새 1시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담당자가 이 글을 본다면 작가를 만나고 싶다는 팬의 마음이 그의 마음에 절실히 전해져서 감동을 받을 만한 글을 썼다고 생각한 후에야 비로소 전송을 클릭하고는 뿌듯함과 개운함에 기지개를 한번 폈다. 화면 속에는 ‘메일이 전송되었습니다.‘ 라는 문구만이 써져있었다. 아마 내일이면 답이 오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 일어나요. 상인씨”
침대에 누워 눈을 감은 지 채 얼마 되지 않아 누군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이끌려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그 목소리는 너무 달콤하고 나를 유혹하여 눈을 뜨지 않고서는 배길 수가 없었다.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켜 주변을 살펴보았다. 살짝 당황스러웠던 것은 내 눈에 보인 것은 언제나 있던 나의 보금자리가 아니라는 것. 내가 있던 곳은 어디 갔는 지도 모르게 사라져버리고, 어느새 나는 푸르른 초원 위에 누워있었다. 나의 오른 편에는 여러 종류의 꽃들이 만개하고 있었고, 저 앞에서는 다람쥐나 사슴 같은 온순하고 아름다운 동물들이 뛰어놀고 있었으며, 사방에서 들려오는 새들의 지저귐은 마치 오페라를 듣는 듯이 나의 귀를 정화시켜주었다. 처음 마주한 아름다움들의 향연에 한참을 주변을 구경하면서 감탄하던 나의 눈 위를 무언가가 가렸다. 갑작스럽게 눈이 가려지자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아, 그녀다. 전시회장에서 만났던 그녀다. 그 무엇보다 빛나는 금발의 생머리를 하고 뒷짐을 지며 나를 보며 웃고 있다. 환한 치아, 웃을 때 찢어지는 눈꼬리, 그 모든 것이 나의 마음을, 모든 것을 움직이게 했다. 그녀를 처음 봤을 때 세상의 모든 색은 검정과 하양으로 뒤 덮였다. 흑백 속에서 나를 봐주었던 그녀는 두 개의 색으로 이뤄진 세상에서 나와서 나를 바라보며 손을 내밀어주었다. ‘쿵쾅 거리는 심장의 울림소리가 그녀에게 들리지는 않았을 까?‘라는 걱정을 절로 하며 한 손은 내 가슴을 부여잡고, 다른 한 손은 덜덜 떨어가며 그녀의 손을 겨우 감아쥐었다. 그 순간 나는 세상 그 무엇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부드러움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고운 비단결은 그녀에 비하면 거친 사포나 다를 것 없었다. 새끼 고양이의 털을 어루어 만지는 것 또한 그녀에 비하면 그 어떤 의미도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런 그녀의 손을 잡고서는 그녀와 함께 아름다운 노래로 가득찬 이 초원을 함께 뛰어다닌다. 웃으며 그녀를 보니 그녀 또한 나를 바라보며 웃는 다. 나의 사랑이 나를 바라보면서 나를 사랑해주었다. 잊을 수도 없고, 잃어버릴 수도 없는 나의 사랑 그녀가!
「띠띠띠! 띠띠띠! 띠띠띠! 띡!」
시끄러운 자명종 소리에 눈이 번쩍 떠졌다. 보이는 것은 흰색으로 도배되어 있는 천장 뿐. 한 손으로 자명종을 끄고서 부스스한 머리털을 어루만지고는 몸을 일으켰다. 다 꿈이었구나, 아쉬움이 마음에 깊게 남는 다. 그녀와 함께한 모든 것이 비록 꿈이었어도 결코 잊을 수 없는 일이다. 크게 하품을 하고는 전원을 끄지도 않은 채로 놓여있는 노트북을 바라보았다. 그제서야 문득 노트북의 배터리가 다 떨어지지는 않았는 지 걱정이 되어 마우스를 잡자 화면보호기가 꺼지면서 ‘받은 메일함(1)’ 이라는 글귀가 보여졌다. 혹시 답장이 아닐까 기대하면서 메일함을 열자 역시 나의 예상대로 담당자가 보내온 답장이 있었다. 어느 장소로 나올지, 몇 시에 만날 것인지에 대한 내용이 있을 것을 생각하며 기쁜 기분으로 그 메일을 열자 내용이 매우 가관이었다.
「만나지 않겠습니다.」
“ 만나지 않겠다고? 왜!”
어처구니가 없어 책상을 세게 내리쳤다. 도대체 왜 만나지 않겠다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는 다. 이메일을 보면 작가에 대한 보호라느니, 팬에 대해서는 만나주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느니 하는 멍청한 소리만 써놔서 이해는커녕 속에서부터 화가 치밀어 올라 벽을 쳐대며 소리를 질러댔다.
“ 시끄러워! 소란 피울꺼면 나가!”
소리를 지른지 3초도 채 안돼서 집주인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대체 내가 뭘 했다고 이러는 거지? 내가 내 집에서 마음대로 소리도 못 지르나? 진짜 답답하고 짜증나고 화만 난다. 자리에서 일어나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있는 트레이닝 복을 주워 입고는 얉은 지갑과 겨우 스마트폰 구실을 하는 핸드폰만을 챙겨서 문을 열었다.
“ 이봐 총각! 왜 이렇게 시끄럽게 구는 거야? ”
“ 죄송해요. 근데 그럴 수도 있지, 아주머니도 왜 자꾸 예민하게 구세요? ”
“ 뭐? 어휴, 집세도 안 내고 살길래 양심만 없는 줄 알았더니 싸가지도 없어.”
밖으로 나가려던 내 앞에 나타난 집주인 아줌마를 보니 정말 토가 쏠린다. 아줌마는 그 녹아내린 듯한 얼굴과 언제 닦았는 지 아주 시궁창 냄새가 올라오는 입냄새를 풍겨가며 나에게 손가락질과 함께 침을 한 바가지를 내뱉으며 핀잔을 주니 정말 더 이상 버티기에는 나의 비위가 너무 약했다.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어 아줌마를 옆으로 밀고서는 밖으로 뛰쳐나갔다. 당연하게도 내 뒤로 땍땍거리며 욕을 퍼붓는 소리가 들리기는 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애초에 미래에 위대한 포토그래퍼이자 예술가로 등극할 나에게 집세 따위를 운운하며 무시하고 욕 짓거리를 하는 예술의 예자도 모르는 미개한 사람이 무엇을 알까? 그런 사람과는 아예 상종을 않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 어느정도 뛰었을 까, 더 이상 욕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주변에는 사람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뜀걸음을 멈춰 걷기 시작했다. 거리에는 산들바람이 적당히 불어줘 상큼한 기분을 주었고, 주변의 사람들은 제 마다의 길을 찾아 걷고 있다. 언제나 똑같은 거리와 풍경이지만 언제나 똑같은 거리와 풍경을 담을 수 있기 때문에 사진이 아름다운 것처럼 이 이거도 아름답다고 생각하며 그 한 가운데에 있는 무지개 도서관 앞에 도착해서 문을 열었다.
“어서 오세요. 어머 상인씨 오랜만에 오셨네요? ”
도서관에 들어가자 늘 친절한 미소로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아름씨가 나를 보며 인사를 건냈다. 오랫동안 도서관에서 일하며 단골들에게 친절한 미소와 함께 신간을 추천해주는 그녀의 배려는 이 도서관의 매력요소 중 하나다. 오늘도 아름씨가 건내준 책들 안에 있는 사진을 보며 예술의 바다에 빠져들었다. 마음이 안정되고 기분이 좋아져 이제 건네 받은 책의 마지막 책을 들었다. 그런데 이건, 사진책이 아니다.
“ 변장의 귀재? ”
한 쪽에서 책을 정리하던 아름씨가 내 말을 들었는 지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리곤 내가 든 책을 보더니 그녀는 책을 달라고 말하며 나에게서 책을 받았다.
“ 이건 여기 있을 게 아닌 데. 제가 잘못 줬네요. ”
“ 아름씨도 이런 실수를 할 때가 있네요.”
나는 멋쩍게 웃으며 그녀의 말에 대답해주었다. 그녀는 미소로 답하면서 변장의 귀재라는 책을 훑으며 입을 열었다.
“ 사진책도 좋지만 그래도 가끔은 이런 소설도 괜찮아요. 변장의 귀재인 괴도 몬 메타는 저택에 숨겨져 있는 보물 검은 월장석을 훔치기 위해 저택의 집사로 변장하여 침입하는 데에 성공하였다. 그 누구도 그가 괴도일 것이라 생각지 못했다! 재밌지 않나요?"
아름씨는 책의 한 구절을 마치 뮤지컬인양 온몸을 과장되게 움직여 표현하더니 혼자 웃었다. 물론 그 책의 내용은 하나도 흥미롭지도, 재밌지도 않았다. 그저 평소에 조용하다고 생각했던 그녀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당황했을 뿐. 그래도 이런 소설 유치해서 안 본다고 딱 잘라 말하면 나를 이상하게 보거나 싫어할지도 몰라 그냥 바보처럼 말 없이 실실 웃어주었다. 저런 유치한 내용이 뭐가 재밌다고들 보는 지 모르겠다. 저택에 들어가려고 집사로 변장이라니. 그런게 정말 통할까? 아! 갑자기 뇌리를 스치는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변장. 그래 변장을 하는 거다. 셔터 홀릭스에 어떻게든 들어가면 그 작가를 볼 수 있을 확률이 높아질 게 분명하니까. 셔터 홀릭스에 다시 연락하기 위해서 나는 아름씨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바로 도서관을 나가 고시원을 향해 뛰어갔다. 카운터에서 돈을 세던 집주인 아줌마가 날 보고 소리쳤지만 들리지도 않았다. 바로 방안으로 들어가 노트북을 열어 이메일을 보냈다. 이번에야 말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에 흥분되어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초조한 마음으로 노트북 앞을 떠나지 못했다. 그저 계속 메일함을 새로고침하며 메일이 왔는 지만 기다렸다. 밥을 먹는 것 조차 잊고, 잠 조차 잊으며 버텼지만 어느새인가 거대한 바위가 나를 누르듯 졸음이 쏟아져내려와 꾸벅 졸다 뒤로 넘어지며 깨어났다. 벌떡 일어나서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잠을 깨려다 더는 안되겠다 싶어 마지막으로 확인해보고 없으면 잠을 자려했다. 아무런 기대 없이 새로고침을 눌렀다. 아! 셔터 홀릭스에서 메일이 왔다. 너무 기뻐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러놓고 또 집주인 아줌마가 뭐라할까 입을 막고 주변을 살폈다. 다행히 늦은 밤이라 자고 있는 듯. 아무런 말이 없다. 메일을 열고 내용을 확인했다. 그 내용은 나를 흐믓하게 잠들 수 있게끔 해주었다.
내일을 준비하는 나에게는 꿈조차 사치인 듯 꾸지 않았다. 눈을 뜨자마자 나는 약속된 한 카페에 갔다. 그곳에 앉아 시원하다 못해 추운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싸구려 아메리카노를 입구가 조그마한 빨대로 마시려니 잘 들어가지도 않고 맛도 없다. 대체 이걸 왜 이렇게 먹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는 다. 돈만 아깝다.
“ 음 실례합니다만, 그건 티스푼이고 이게 빨대입니다. ”
내 앞의 담당자가 나에게 빨대를 건 내며 말했다. 왠지 부끄러워져 얼굴이 붉어졌다. 이게 빨대가 아니라 티스푼이었구나. 빨대인 줄 알았던 이 막대기를 빼서 바닥에 던지듯 두고, 붉어진 얼굴을 감치려 고개를 푹 숙인채로 빨대를 컵에 꽂아 쓰디쓴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셔터 홀릭스의 담당자는 매우 덩치가 큰 남자였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분명 어딘가의 피트니스 클럽 트레이너로 착각할 것이다.
“ 음, 일단 이메일과 사진을 보았는 데. 일본에서 작가 생활을 하셨다고요. 경력도 괜찮아서 마음에 들었는 데. 사진을 보니 더 감탄했습니다. 그 구도와 사진에서 나오는 감성은 정말이지.. ”
담당자가 내가 꾸며낸 가짜 이력서와 사진을 보며 자신의 감상평을 쏟아냈다. 이력서를 가짜로 꾸며 보낼 때만 해도 들키지는 않을 까 조마조마 했는 데 잘 통한 듯 하다. 거기에 내가 보낸 작품은 정말 내가 찍은 것들이니 당연히 감동 받을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내 앞에서 감상평을 내 뱉어대는 것은 이해하지만, 지금 나에게 중요한건 이런 것들이 아니다. 어떻게든 빨리 그녀를 만나야하는 데 담당자는 너무 쓸모없는 이야기들을 꺼내놓고 있었다. 빨리 사무실을 가야하는 데.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는 것을 참을 수 없어 담당자의 말을 자르고 본론을 내뱉었다.
“ 그것보다 M,P 작가님을 만나고 싶은데요. ”
“ 예? 무슨 말입니까? ”
“ 솔직히 말씀드리죠. 얼마전 한 전시회에서 M,P 작가님의 작품 속에 있는 여인을 보고 전 한눈에 반했습니다. 그녀를 만나려면 그녀를 찍은 작가님을 만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담당자님께 수십통의 전화도 드렸지만 받지 않으셨고, 이메일도 보냈지만 작가 보호니 뭐니 하는 이해안가는 이유로 거절하셨죠. 일본에서 작가 생활? 그런거 안했습니다. 이력서 다 가짜입니다. 물론 그 사진은 제가 찍은 게 맞습니다. 그렇지만 전 M,P 작가님을 만나 그녀를 봐야해요. 제발 작가님을 만나게 해주세요 담당자님! ”
담당자의 손을 꼭 부여잡고는 내 속에 담겨있는 진심을 내뱉었다. 이 정도면 담당자도 감동하여 내 부탁을 꼭 들어주지 않을 까 하며 담당자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는 무언가가 생각난 듯 처음엔 ‘아 그 사람이...?’ 같은 얼굴을 짓다가 이내 일그러졌다. 못난 나의 얼굴은 그에게 처량한 눈빛을 보냈지만 느낄 수 있었다. 내 부탁을 거절할 거라는 걸.
“ 음, 미안하지만 그럴 수 없어요. ”
담당자는 더러운 휴지를 버리듯 내 손을 뿌리쳤다. 그리고 자신이 앉고 있던 의자에 걸쳐둔 더플코트를 들고서는 자리에서 일어나고는 나에게 만나서 반가웠다는 헤어짐의 인사를 건냈다. 짧은 순간. 그가 고개를 돌리고 더플코트를 입은 그 순간에 나는 여기서 이 사람을 그냥 보내면 모든 것이 끝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담당자의 앞에 무릎을 꿇고는 다리를 붙잡고 매달리며 사정했다.
“ 제발요. 제발 부탁드립니다 담당자님! ”
“ 이게 뭐하는 짓입니까. 이거 놓으세요! ”
나도 이런 나의 행동에 당황했다. 하지만 이런 방법 외에는 별다르게 떠오르는 생각이 없었다. 당황한 담당자는 다리를 흔들어대며 손으로 날 밀치며 떼어놓으려고 했다. 생긴 것처럼 힘이 어마어마 했지만 다시는 그녀를 못 만날 것이라는 생각은 절박함을 만들어주었고, 절박함은 나에게 힘을 심어주었다. 카페 안에 있던 사람들은 우리를 의식하며 수군거린다. 담당자는 그런 분위기를 읽고는 꽤나 곤란해 하는 듯 했다. 이대로 가면 마음을 돌릴 수 있을 것 같다.
「퍽!」
엄청난 힘에 밀려 뒤로 넘어진 나는 바닥에 머리를 찧었다.
“ 음, 이보세요 선생. 그만하세요. 억지를 부린다고 모든 게 다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
“ 담당자님. 제발 부탁해요. 이거 보시고 한번만 더 생각해주세요."
나는 급하게 일어나 품 속에서 명함과 작품들을 꺼내 담당자의 손에 강제로 쥐어주었다.
“ 이거 보시고 생각해주세요. 그리고 작가님에게도 동의를 구하면 작가를 보호한다니 뭐니 하는 것도 다 해결되는 거잖아요. ”
담당자는 작품들을 받아들고는 눈을 흘겨 나를 바라보더니 내 팔을 떼어놓았다.
“ 음, 일단은 생각은 해보겠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선생의 뜻대로 해준다는 건 아니니 너무 기대하지 마십시오. ”
그는 그러고는 카페를 나와 차를 타고는 출발해버렸다. 나는 담당자를 따라서 카페를 나와 도로 너머로 달려가는 자동차를 바라보았다. 한 동안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사라져가는 차의 뒷모습만 바라보았다. 왠지 이상하다. 단순히 자동차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것 뿐 인데 마음이 왠지 모르게 쓰려와 눈시울이 붉어졌다. 도로 위의 차들이 뿜어내는 매연 때문인지, 아니면 모든 게 끝날 것이라는 슬픈 현실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졌을 때에야 뒤돌아서 집을 향해 걸었다. 집으로 향하는 걸음은 너무도 무거웠다. 언제나 같은 풍경의 거리를 지나가면서 나 또한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떠나지 못하고 영원히 그녀를 만나지 못할 것만 같아 왈칵 눈물이 났다. 힘 없이 방 안으로 들어가서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방을 두드리는 아줌마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단지 핸드폰을 보고, 이메일을 확인하고, 핸드폰을 켜고, 이메일을 클릭하며 핸드폰을 만지고 이메일을 들어가서는 담당자의 답장이 왔는 지만 확인하며 살게 된 지가 벌써 1주일이 지났다. 그러나 그 동안 그 어떠한 전화나 문자도 오지 않았고, 받은 메일함의 숫자는 늘어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1주일이라는 시간은 짧은 시간이 아닌데도 답이 오지 않았다는 것은 모든 게 끝났다는 것. 나는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는 기로에 서버렸다.
「따르릉, 따르릉」
그때 전화가 울렸다. 수화기를 향해 떨리는 손을 겨우 뻗어 잡았다.
“ 여보세요? ”
굵직하고 신사다운 이 익숙한 목소리. 셔터 홀릭스의 담당자다. 나는 아무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그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입단을 허락해주었다. 그리고 나의 이야기를 작가님에게 전해주자 작가님이 흥미를 보이고 만나고 싶다고 했다는 말. 그 말을 듣는 순간 절망만 가득했던 이 세상은 모든 것이 희망과 빛으로 바뀌었다. 전화가 끊어지고 나는 오늘을 희생하고 내일을 준비했다. 작가를 만나기 전에 지켜야할 예의, 거칠어진 피부는 작가에게 거부감을 줄 수도 있기에 난생 처음 팩이라는 것을 하고, 가장 소중한 카메라의 렌즈를 닦았다. 카메라의 초점을 거울로 두어 나를 보았다. 거울에 앉아 있는 나는 그 누구보다 행복해보였다. 사진을 찍는 다.
해가 뜨자마자 나는 방을 나와 그녀를 향해 달렸다. 셔터 홀릭스의 사무실은 생각보다 그리 멀지 않았기에 30분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 때 사무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아무도 없었기에 나는 사무실 앞 계단에 앉아 담당자가 올 때 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 지 모르겠다. 잠을 자지 못해 졸다보니 어느새 계단에서 잠이 들었는 데, 시끄러운 소리에 눈을 떠보니 내 앞에 담당자가 날 깨우고 있었다.
“ 선생. 여기서 뭐합니까?”
“ 아, 안녕하세요.”
“ 음, 여기서 주무신 겁니까? 들어오시죠.”
조금이라도 자서 그런지 피곤함이 조금은 가라앉았다. 담당자를 따라 사무실로 들어가니 언제 왔는 지 다들 자리에 앉아 일을 하고 있었다. 이름 있는 몇몇 작가들도 보이고 예술성 있는 작품들이 걸려있는 갤러리 같은 공간도 보였다. 이전의 나라면 이것저것 물어보며 흥미로워 할테지만 지금의 나는 오로지 작가님이 어디 있는 지만이 신경 쓰였다.
“ 작가님은 어디있죠?”
“ 음, 그 전에 일단 앉으시죠.”
담당자는 나를 조그마한 티 테이블이 있는 방으로 데려오더니 커피를 한 잔 타주었다. 담당자가 시키는 대로 자리에 앉아 믹스 커피를 마시며 담당자를 바라만 보았다. 좀이 쑤신다. 대체 언제쯤 작가님을 볼 수 있는 건지.
“ 작가님은 어디에 있나요?”
담당자는 나를 한번 흘깃 보고는 커피를 들고 내 앞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는 웃으며 말했다.
“ 정말 작가님을 보고 싶어하시는 군요. 그 날 선생의 무례한 행동 때문에 당황했지만, 선생이 준 그 사진들을 보고도 길 거리에 방치된 돌멩이 마냥 두는 것은 사진 작가들을 예술의 경지로 올리는 담당자로서 직무유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입단을 논의했고, 선생이 원하는 대로 M,P작가님에게도 동의를 구했죠.”
슬슬 짜증이 난다. 내 말에나 답해주면 좋겠는 데 언제나 자신의 할 말만 하는 담당자가 답답해 뜨거운 커피를 한 입에 다 마셨다.
“ 그래서 작가님은 어디에 있냐구요! ”
컵을 책상에 내려놓자. 담당자는 그 나불대는 입을 다물었다. 당연하겠지만 그는 썩 기분이 나빴는 지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는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자신의 벽 뒤를 손으로 가리켰다.
“ 이 뒤에 작가님이 계십니다.”
“ 그럼 지금 당장 만나게 해주세요. 되는 거죠?”
“ 그러시죠.”
담당자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이 좁은 방에서 나와 작가님이 있다는 방 앞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밖에 있던 사무실의 사람들이 내가 소리치는 걸 들었는 지 사무실의 분위기는 몹시 차가웠다. 그것 때문에 나는 문고리를 만지는 것조차 조심스러워 졌다. 뜨거운 커피를 한번에 마셔 입천장이 까지고 속이 뜨거운데도 분위기 때문인지, 냉방 때문인지 문고리로부터 차가움이 느껴져 왔다. 그러나 그런 것도 중요한 건 아니다. 가장 중요한 건 이 안에는 작가님이 있다는 것. 이제 그녀를 향해 가까이 다가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와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 음, 선생. 작가님을 만나게 되면 너무 놀라지는 마십시오.”
담당자가 갑자기 나의 귀에 대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가 말하는 분위기가 마치 사나운 개집을 지나가는 사람에게 조심하라고 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어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작가를 이따위로 소개하는 모습에 더욱 담당자가 마음에 안 든다. 들은 체 만체 고개를 성의 없이 끄덕이고는 문을 열었다. 끼익 소리가 들려오자 나도 모르게 가슴이 쿵쾅거렸다. 열려버린 작은 틈으로 보이는 건 뿌연 연기, 그리고 작은 테이블, 더는 참을 수 없어 문을 완전히 열었다. 방 안에는 뒤돌아 앉아 있는 한 여자, 그녀는 다리를 테이블에 올린 채로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눈이 찌푸려졌다. 담배라니? 작가라는 사람이 어찌 그런 흉물스러운 것을 쥐고 있는 지 이해가 안 간다.
“ 응? 더럽게 늦게 오네.”
문을 확실히 열자 앉아 있는 작가라는 사람이 말을 했다. 그녀는 의자를 내 쪽으로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경악! 그 외에 그녀를 표현할 말이 있을 까? 오른쪽 입에는 피어싱이 달려있다. 그것은 그녀의 작은 오른 쪽 귀에 있는 피어싱과 괴기하게 생긴 줄로 연결되어 있어 마치 영화에서 스스로를 관대하다고 자랑하고 다니는 황제가 연상되었다. 내가 그녀를 계속 쳐다보자 그녀는 작은 입으로 담배와 입맞춤을 하고는 하얀 연기를 내 쪽으로 뿜었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며 연기를 피하자 뭐가 웃긴건지 그녀는 키득키득 웃어댔다.
“ 들은 거에 비해 귀엽게 구네. 여기 앉아봐. ”
나는 이 사람이 정말 작가가 맞을 까 이제는 의심이 들었다. 담당자가 나를 골탕먹이기 위해 벌인 일은 아닐까? 그럼에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에 그녀가 시키는 대로 의자에 천천히 걸어가 앉았다. 담당자는 나와 그녀를 보더니 무덤덤한 표정으로 좋은 시간되라고 말하며 문을 닫고 나갔다. 이제 이 방에는 작가와 나만 남았다. 그녀가 담배를 재떨이에 박았다.
“ 그래서, 뭐가 마음에 들었던 건데?”
“ 아.. 예?”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다. 그녀에게서 풍겨져 오는 이 느낌은 내가 생각한 예술가가 아니라 양아치였다. 나 조차 이러긴 싫었지만 내 몸은 마치 중학생 형들 앞에서 아무것도 못하는 어린애처럼 떨었다. 그녀는 비웃듯 미소 지었다.
“ 그 사진 말이야. 니가 마음에 들어서 나를 꼭 만나야겠다고 담당자, 민 노아를 곤란하게 만들었다며. 키킥 웃긴 녀석이야. 카페에서 무릎을 꿇고 난리를 치다니.”
경박하게 깔깔 거리는 웃음소리를 내면서 손으로 나를 퍽퍽 쳐댔다. 이 순간 정신이 아득해져서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저 맞고만 있었다. 그녀를 바라만 보는 것도 힘겹다. 어떻게 이런 양아치에게서 그런 작품이 탄생할 수 있는 거지? 작가를 만나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충분히 나누고 즐기며 사진에 대한 깊은 대화를 나누려했던 나의 바램은 이미 문을 연 순간부터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이젠 빨리 모델을 알아서 이 자리를 떠나고 싶다.
“ 그게... 제가 그 사진 속 모델을 꼭 만나고 싶거든요.”
“ 왜?”
“ 작품이 매우 아름다웠어요. 흑백으로 만들어진 세상도 그랬고, 그리고 아름답고 착하고 성품이 온화할 그녀의 모든 것이 저를 매료시키고 사랑에 빠지게 했거든요. 그녀를 만나서 꼭 고백하고 싶어요.”
“ 풉 ”
진지하게 말했는 데 비웃었다. 상당히 기분이 나쁘다. 내 이야기가 그렇게 비웃음 당할만한 일도 아니다. 오히려 이딴 태도와 정신을 가지고 예술을 하는 본인이 더 비웃음 당할 사람이다. 이제 더 이상은 이 여자와 같은 자리에 있기가 싫다. 불쾌하고 더럽다고 생각한 게 얼굴에 나타났는 지 그녀는 나에게 삿대질을 해댔다.
“ 똥이라도 본 것 같은 얼굴 짓 지마. 웃겨서 웃은 거니까.”
“ 뭐가 그렇게 웃깁니까? 나는 나만의 사랑을 찾는 거라구요!”
“ 그렇게 소리지르지마. 웃길 수밖에 없잖아? 바로 앞에 두고도 모르고 있으니.”
“예?”
바로 앞? 바로 앞이라고? 그녀는 계속 낄낄 웃으며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담배를 꺼내 물었다. 불을 붙여 담배를 태우곤 연기를 내뿜는 다. 그녀의 얼굴의 일부가 잠시 담배연기에 가려졌다. 짙은 립스틱과 연기에 가려진 피어싱, 그제서야 깨달았다. 그녀가, 나의 사랑 그녀가. 이 여자였다. 난 그 자리에서 얼어 두 눈을 크게 뜨고 입을 열지 못했다. 연기가 사라지고 그녀는 계속 웃으며 말했다.
“M,P 내 예명이지. 나의 사진. 나는 자화 컨셉샷을 전문으로 찍는 작가야. 고로 니가 본 그녀는 바로 나라는 거지. 어때 실제로 보니까? 아름답냐?”
“아...”
내 눈을 의심했다. 나의 그녀가 이럴 리가 없지 않은 가. 나의 그녀는 아름답고 나의 그녀는 순백하고, 나의 그녀는 온화하며 존귀하다. 그런데 이 여자는 천박하고, 더럽고, 성격도 더럽고 양아치와 같아 하등의 가치조차 없다! 이런 여자가 내 사랑 그녀라고? 사실이 아니다. 이건 모두 거짓말이다.
“거짓말... 거짓말하지마!”
테이블을 쾅 내리찍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거짓말쟁이는 이상한 놈을 본다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 순간에도 나의 그녀의 얼굴이 겹쳐보였다. 더 이상 바라보기에 괴로워 눈을 질끈 감고는 소리를 질러대자 문이 열리고 담당자가 들어왔다. 나는 담당자를 보자마자 당장 뛰어가 멱살을 잡아쥐었다.
“이 거짓말쟁이! 이게, 이 천박한 년이 작가라고? 이 년이 나의 그녀라고? 거짓말하지마!”
“그만하세요!”
담당자는 나를 방 밖으로 내 던졌다.
“선생이 원하는 대로 다 해주었는데도 이렇게 소란을 피우고 난동을 피우다니. 정말 예의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군요!”
“닥쳐! 너희는 다 거짓말을 하고 있잖아. 이런 소속사 따위에 들어온 게 멍청한 짓이었어! 단체로 나를 놀리고 있는 거 잖아!”
그 자리에서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욕이란 욕을 다 퍼붓고는 바로 사무실을 박차고 나왔다. 무언가에 쫓기는 것만 같아 뒤는 돌아보지 않고 오로지 나의 보금자리를 향해 달리고 뛰었다. 새들의 지저귐은 나를 보고 비웃는 그 작가의 웃음소리처럼 들려와 귀를 막고 뛰었다. 그러자 언제나 똑같은 풍경을 보여주는 거리가 나왔다. 나는 그곳에서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을 보고는 소름끼치도록 놀랐다.
“ 멍청한 정상인. 니가 생각하는 그녀를 이제 어디서 찾을 까?”
“ 으아아!”
눈을 질끈 감고는 달렸다. 수도 없이 걸었던 이 거리는 눈을 감고서도 충분히 찾아갈 수 있다. 달리고 달리다보니 어느새 나의 집에 도착했다. 내 몸 속에서 계속 울려퍼지는 심장소리를 들으며 손을 가슴에 대고 쉼호홉을 하며 문 앞에 서있었다. 조금 정신이 들자 땀으로 흠뻑 젖었다는 것을 인지하였다. 오른손으로 흘러내리는 얼굴의 땀을 닦고는 내 방을 찾아가 문고리를 잡아 열었지만 열리지 않는 다. 당황해 문을 잡아당기고 문을 두드려가며 소리치자 옆 방에서 한 아저씨가 나와서는 화를 내며 말했다.
“ 아까 집주인이 짐 다 뺐으니까 제발 좀 조용히 하세요.”
쾅 닫는 문소리가 들리고 나는 문 앞에 작은 상자를 보았다. 아무래도 방안에 있는 내 짐들을 정리해서 빼놓은 것이겠지. 상자를 들어보니 안에는 노트북 하나와 카메라 정도뿐이었다. 허무하다. 내 것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건 고작 이정도였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짐을 든 채로 집주인 아줌마를 찾았지만 언제나 시끄럽게 통화하던 카운터에도 없었다. 나를 만나는 것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다. 더 이상 대화를 할 수가 없다. 말도 없이 방을 뺐다는 건 이미 대화로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것. 고시원을 나왔다. 절묘하게도 조금씩 오던 비가 세차게 오기 시작했다. 비를 피할 곳도 없고, 갈 곳도 없다. 그렇게 만나고 싶어했던 그녀는 내가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작가가 나에게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닐까? 멍청하게도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너무 우스워 허탈하게 웃었다. 눈물과 함께 흐르는 웃음은 웃음이라고 할 수 있는 걸까 아니면 울음이라고 해야 하는 걸까? 입으로는 반복되게 포기하자고 외치지만 그럼에도 나의 마음은 그녀를 만나고 싶다고 절규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녀를 만나고 싶다.
비에 젖은 몸을 이끌고 나는 자연스럽게 점점 전시회장을 향하고 있었다. 전시회장의 앞에 도착했을 때에는 어둑한 밤이 되었고 당연하게도 이 작은 전시회장의 문은 닫혀있었다. 규모가 작고 도심의 외각에 열린 이 전시회장은 경비도 그때 그 할아버지 한 명이 전부였다. 말 뿐인 ‘관계자 외 출입금지’ 라는 문구를 무시한 채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조그맣고 어두운 전시회장에는 여러 개의 사진들이 걸려있다. 흔해빠진 이슬이 맺힌 풀을 찍은 사진, 아마추어가 찍은 것 같은 사진들의 향연과 그것들을 전시해 놓은 볼품 없는 전시회. 그것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더 자세히 살펴보며 들어가다 어둠 한 가운데에 걸려있는 그녀를 재회했다.
여전히 나를 보고 있는 그녀는 아름다웠다. 흑과 백으로 이루어진 세상 속에서 새침하게 앉아 그 검은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목에 걸린 사진기를 들어 사진 속 그녀의 눈빛에 초점을 맞추는 순간 나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찰칵 소리와 함께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녀와 나를 갈라놓은 선을 넘어 그녀의 얼굴을 어루어만졌다. 너무나도 부드러웠다. 나의 얼굴을 그녀의 얼굴에 가져다 대어 그 무엇에도 견줄 수 없는 그녀의 따뜻함에 비에 젖어 얼어버린 내가 녹아내린다. 얼음이 녹아 물이 흐르듯 흐르는 눈물은 입술을 적셔주며 또르르 떨어진다. 언제나 따뜻한 그녀이기에 나는 달디단 눈물을 입에 머금어 그녀를 조금 더 느끼려 애썼다. 시간이 흘러 따뜻함은 사라지고 차디찬 기운만이 남아 그녀의 옆에 앉았다. 사진기를 앞에 세워 그녀와 단 하나 뿐인 사진을 찍는 다.
「찰칵!」
눈을 감으니 그녀를 처음 본 그 때가 생각났다. 화려한 색으로 허세 부리는 것들 사이에서 오로지 흑과 백만으로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던 여인, 그런 그녀는 나에게 첫 사랑이었고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런 그녀를 포기해야만 한다면 차라리 죽는 것이 나을 것이다. 허망한 마음으로 눈을 떠서 카메라에 찍힌 사진을 보다. 나 조차 의미 모를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았다. 이룰 수 없다면 차라리 사랑조차 알 수 없도록 죽음을 택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 아닐까?
지은이: 황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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