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7 창작 콘테스트 소설 공모/안개꽃

by 김류하 posted Jun 01,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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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꽃

 

그녀가 아름다운 미소를 바라보며 슬픈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그녀가 좋아하는 안개꽃을 살포시 내려놓으며 입을 연다.

거긴 어때? 편안하니?”

납골당에 걸린 그녀의 사진을 바라보며 대답 없는 인사를 건넨다. 그리고는 눈가에서 눈물 한 방울을 떨어뜨리며 가슴 한편이 한없이 시려온다. 고개를 떨구며 한참을 눈물을 흘리다가 눈물을 훔치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자기야. 이제 갈게. 편히 쉬고 있고 거기서는 꼭 건강해야 해. 나도 곧 갈테니까.”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고개를 돌려 힘없이 터벅터벅 걸어 나간다. 그녀가 천국으로 떠나가고 상당한 세월이 흘렀다. 계절은 바뀌고 해는 수차례 바뀌었지만 여전히 나는 그녀와의 추억 속에 살아간다.

 

너도 참 징하다. 징해.”

고등학교 동창이자 직장 동료인 지훈은 자리에 앉으며 내게 말을 걸었다. 떠들썩한 포장마차 한구석에서 자리를 잡고 술을 마시다가 문득 그가 보고 싶어서 전화를 걸어 불러냈다. 오늘 같은 밤이면 왠지 혼자 술을 마시기 싫어서 이 녀석을 불렀다.

뭐가?”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날 바라보다가 술 한 잔을 단숨에 들이키며 다시 입을 열었다.

니가 날 술자리에 부른 이유는 뻔하지. 너 또 거기 갔다 왔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멍한 시선으로 술병을 바라본다.

“8년이나 지났으면 이제 잊을 때도 되지 않았냐? 그리고 니가 이런다고 떠난 사람이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너도 이제 연애도 하고 인생 즐기며 살아야지. 언제까지 그렇게 살래?”

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그저 아무 말 없이 술을 마신다. 그리고는 한참 있다가 입을 열었다.

글쎄다. 사람 마음이 그렇게 쉽게 되냐? 때론 잊고 싶어도 잊혀지지 않는게 있는 법이다.”

지훈이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그리고 내 술 잔에 술을 따르며 다시금 말을 건넨다.

우리 나이 이제 겨우 26살이다. 나는 니가 과거에 얽매어 살지 않았으면 한다. 우린 아직 한참 젊고 인생은 길어. 사랑하던 사람이 세상을 떠난 건 당연히 슬픈 일이지만 8년이나 지났고 이젠 니 인생 살아야지.”

그의 말에는 공감하지만 가슴이 그렇지를 못하니 어찌 하겠는가? 그의 말에 그저 묵묵히 술을 마실 뿐이다.

 

그녀를 처음 만난 건 J대학 병원에서였다. 나는 선천성 척추 측만증을 수술 받아서 병실에 누워 있었고 그녀는 옆 병실에 있던 환자였다. 수술 후 후유증으로 한참 동안이나 못 움직이던 지루한 나날을 보내다가 어느 정도 몸이 회복된 후 걸을 수 있는 단계가 되자 나는 병원 복도를 운동 삼아 걸어 다니고 있었다.

... 아직 다리에 힘이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네.”

아직은 충분히 회복 되지 않는 몸으로 조금이라도 빨리 걷고 싶은 마음에 조금씩 복도를 걷고 있는데 의자에 앉아 자판기 커피를 마시고 있던 그녀를 발견했다. 상당히 마른 체격에 핼쑥해 보이는 얼굴이 왠지 모르게 안쓰러워 보였다. 그녀도 나와 같은 환자복을 입고 있었기에 어딘가 아프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나와 같은 동질감을 느끼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그런 그녀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저기... 너는 몇 살이니?”

그녀는 흘깃 나를 쳐다 보더니 이내 대답을 해왔다.

“14

그녀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내게 말을 해왔다. 그리고는 나는 그녀 옆에 앉아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으며 계속 해서 말을 걸었다.

나랑 동갑이네. 말 놔도 괜찮지?”

그녀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무표정한 얼굴로 계속 해서 커피를 마실 뿐이었다. 나는 왠지 모르게 그녀에게서 신비로움과 한쪽 가슴이 조금씩 두근거림을 느끼고 있었다. 가슴이 까닭 모를 두근거림을 느끼고 있었다.

병원 생활 지긋지긋 하지 않냐? 지금 몇 달째인지 기억도 안 난다. 빨리 퇴원 하고 싶다어 미치겠다.”

나의 말에 그녀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그저 묵묵히 계속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너는 병원 생활 얼마나 되었니?”

“2년 반 정도 되었지.”

그녀의 담담한 말에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아직 어린 나이에 2년 반씩이나 병원 생활을 하다니 걱정도 되면서 가슴 한편으로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 게 내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녀의 병명을 묻고 싶었으나 그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 묻지 않기로 했다. 초면에 다짜고짜 왜 입원 했는지를 묻는다면 실례라고 생각 했기에 그저 다른 이야기로 대화의 주제를 바꾸기로 했다.

넌 시 좋아하니?”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 모습에도 나는 왠지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낀다.

내가 시집 빌려 줄 테니까 읽어볼래?”

나는 말이 끝남과 동시에 무섭게 병실로 돌아가서 내가 평소에 자주 읽던 시집을 가져와 그녀에게 건넸다. 그녀는 약간 어이 없어 하는 표정이었지만 시집을 받고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감사의 표현을 했다.

내게는 위로가 많이 되어준 시집이거든. 너도 읽고 힘냈으면 좋겠어.”

그녀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은 채 내가 준 시집의 첫 페이지를 펼치기 시작했다. 더 이상 대화가 이어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나는 그녀에게 인사를 하고 병실로 돌아갔다.

 

다음 날 아침 식사를 마치고 그녀가 있던 자판기 옆 의자에 갔다. 그녀는 아침부터 시집을 읽고 있었다. 야윈 얼굴에 아파보이는 인상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나에게는 그저 예쁜 얼굴일 뿐이었다. 그녀 옆자리로 터벅터벅 걸어가서 앉아 조용히 말을 걸었다.

내가 준 시집 읽고 있네?”

! 깜짝이야. 사람 놀래키지 말라니까.”

그녀의 반응이 귀여워서 한참을 웃다가 문득 떠오른 궁금증을 이기지 못 하고 말을 건넸다.

생각을 해보니까 니 이름도 모르네? 이름 좀 알려줄래?”

... ...”

뭐라고?”

이시은이라고. 내 이름.”

시집 읽고 있었네? 어때? 상당히 좋은 내용이지?”

. 좋은 시집이더라. 근데 너는 내가 여기 있는 걸 어떻게 알았어?”

그냥 무작정 온 거야. 왠지 여기라면 니가 있을 것 같아서.”

그녀는 피식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눈을 마주친 순간 심장이 멎은 듯 했고 얼굴에 빨갛게 달아 올랐다.

하하! 니 얼굴 엄청나게 빨개! 어디 아파?”

그녀는 놀리 듯 말했고 나는 당황에서 한참이나 말을 이어 나가지 못 했다. 순간적으로 난 깨달았다. 아직 한참 어린 나이지만 내가 이 아이를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 사실에 나는 당혹감과 처음 느껴보는 감정에 왠지 모를 떨림이 느껴졌다.

그냥. 아무튼 다 읽었으면 우리 밖으로 나갈래?”

나는 말을 돌리며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나의 손을 잡고 일어나 함께 걸었다. 그리고 병원 산책로를 걸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너 진짜 책 읽는거 좋아하는구나?”

그렇지. 거의 공공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했으니까. 아마도 집에 있는 시간보다 도서관에서 책 읽는 시간이 훨씬 많을 것 같은데?”

작가라도 되려고?”

그녀와 대화를 나누다 보니 시간 가는 줄도 모를 정도로 즐거웠다. 시간은 빛처럼 빠르게 흐르고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그녀의 부모님의 모습이 보였다.

시은아! 어디 있던거니? 한참 찾았잖아.”

그녀의 엄마로 보이는 분이 나를 힐끔 쳐다보더니 내게 말을 걸었다.

우리 시은이. 그새 친구를 사귀었구나. 네가 다른 사람이랑 이야기를 나누는 건 처음 보는 것 같은데. 혹시 둘이 사귀니?”

시은이의 양쪽 볼은 빨개지며 절대 아니라며 부정을 했고 나는 그런 시은이의 얼굴이 너무 귀여워 꼬집어 주고 싶었다. 그리고 시은이의 아버지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우리 시은이가 어제 말한 친구가 너구나. 그래. 반갑다. 이 녀석이 도통 다른 사람들과는 말을 하지 않는 아이인데 왠일로 친구를 사귀었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랬단다.”

인자하게 생긴 시은이의 아버지는 중년의 중후함이 느껴지는 분이셨다. 그는 내게 음료수를 주며 인사를 건넸고 나는 그저 말없이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그래. 병원에 있는 동안 우리 시은이랑 잘 어울려 주면 좋겠구나.”

시은이 아버지의 얼굴에는 왠지 모를 쓸쓸함이 가득한 표정으로 내게 말을 걸어왔고 나는 그 표정에 어떠한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의 눈빛에는 슬픔이 가득해 보였고 쓸쓸해 보였기 때문이다.

너 내일 봐! 아침에 봤던 곳에서.”

시은이는 손을 흔들며 부모님과 함께 엘리베이터로 향했고 나는 벤치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하며 그 표정의 의미에 대해 생각에 잠겼다.

 

그날 이후로 우리는 늘 붙어 다녔다. 마치 오래된 단짝 친구처럼 대화도 잘 통했고 때때로는 위로가 되어주는 사이 같았다. 나는 시은이와 있는 게 시간 가는 줄도 모를 만큼 즐거웠고 또 행복했다. 그녀가 내 곁에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내게는 큰 기쁨이었다.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매순간 함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늘 붙어다니며 쉴새 없이 대화를 나누고 또 나누었다. 그런 시간이 나에게는 참으로 고마운 시간이었다. 그러고도 한달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너 혹시 어디 가고 싶은 곳 있어?”

갑작스러운 나의 질문에 그녀는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잠시 생각하는 표정을 짓더니 내게 대답을 했다.

수목원. 수목원에 가보고 싶어.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번도 가지 못했거든.”

그녀의 말에 약간의 슬픔이 느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입을 열었다.

이번 주말에 나랑 같이 갔다 오지 않을래?”

갑작스러운 나의 말에 그녀는 깜짝 놀란 듯한 표정을 하며 말을 했다.

진심이야?”

. 진심이야. 여기서 버스 타고 30~40분 정도 가면 수목원이 있거든. 우리 주말에 같이 다녀올래?”

부모님이 허락 안 하실 것 같은데...”

당일치기로 다녀오는 건데 뭐 어때. 그냥 병원 앞에서 산책 했다고 둘러 되면 되지.”

그녀는 여전히 망설이는 듯한 표정으로 머뭇거렸다.

그래도...”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가자. 한 번도 못 갔다면서? 이번엔 나랑 같이 갔다가 오는거야.”

그녀의 얼굴을 살짝 빨개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보니 이 녀석은 예쁘기만 한 게 아니라 귀엽기도 하다. 그녀의 빨간 볼을 살짝 꼬집었다.

이게 뭐하는 짓이야! 죽을래!”

그녀는 내 가슴을 때리며 말했다. 그리고 나는 덥석 그녀의 입술에 키스를 했다. 나와 그녀 모두 얼굴이 빨개지며 한참 동안이나 말을 잇지 못했다.

 

주말의 아침은 내게 커다란 긴장과 설렘을 가지고 왔다. 아침 일찍 일어나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때마침 우리 부모님은 다른 지역으로 출장을 가신 관계로 타이밍도 좋았다. 가벼운 옷차림에 지갑과 핸드폰 그리고 물통과 약만 챙기고 병실 밖으로 나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사복으로 갈아입은 그녀의 모습은 내 눈에는 한없이 예쁜 소녀였다.

처음이야. 니가 사복을 입은 모습은. 진짜 예쁘네.”

그녀의 볼이 살짝 빨개지며 말했다.

아 뭐야. 이상한 소리나 하고. 빨리 가자.”

그녀와 함께 병원에서 빠져 나와 병원 입구 앞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우리는 대화를 나누었다.

버스 빨리 왔으면 좋겠다. 그치?”

그녀는 어쩐지 아무런 대답이 없다. 그리고는 약간은 빨간 얼굴을 한 채 생각에 잠겨 있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뭔가 말을 하고 싶었지만 때마침 버스가 와서 그녀의 손을 붙잡고 버스에 올라탔다.

오랜만에 탄 버스였지만 전혀 어색 하지 않았다. 버스 안에서 그녀와 병원 입원 전에 있었던 일들에 대해 서로 이야기하며 가니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어느새 수목원에 도착 했고

수목원에 입장해서 꽃과 나무들을 천천히 바라보며 여유롭게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그녀는

어느 꽃 앞에 서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나는 그런 그녀 옆에 서서 물었다.

무슨 꽃이야?”

안개꽃. 내가 제일 좋아하는 꽃이야. 나는 저 꽃만 바라보면 왠지 모르게 가슴이 따듯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그래? 꽃말은 뭔데?”

맑은 마음이랑 깨끗한 마음과 사랑의 성공

나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녀는 흠칫 놀란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고 나는 그저 묵묵히 안개꽃을 한참 동안이나 바라보고 수목원을 계속 걸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가고 어느새 석양이 저물어 갔다. 그리고 우리는 버스정류장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와 함께 한참 대화를 하고 있을 무렵 그녀는 나의 소매를 붙잡으며 물었다.

아까부터 궁금한게 있어.”

뭔데?”

그녀는 상기된 얼굴로 진지하게 물어 왔다.

너 나 좋아해? 우리 사귀는거야?”

그녀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나는 약간 당황하며 주춤거렸다.

우리 사귀는 거냐고? 너 어제 밤에 나한테 덜컥 키스 했잖아. 어제 너 때문에 한숨도 못 잤어. 그 생각이 계속 떠올라서.”

나 역시도 빨개진 얼굴을 감출 길이 없어서 빨개진 얼굴로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는 입을 열었다.

너 지금 내 손 잡으면 오늘부터 1일이야.”

그녀는 사과보다 훨씬 빨개진 얼굴로 내 손을 잡으며 고개를 푹 숙인 채 내 품에 살짝 안겨 왔다.

나 지금까지 계속 병원 생활 하니라 친구도 없고 연애 자체가 처음이야. 어제한 키스가 생에 첫 키스였다고.”

나는 그녀를 꽉 안아주며 귓속말로 좋아한다고 말하자 그녀는 한참 동안이나 내 품에 안긴 채 고개를 들지 못 했다.

나 이제 곧 퇴원해.”

그녀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병문안은 매일 올 거야. 네 얼굴 보러. 그러니까 걱정 하지 말아.”

버스는 도착하고 버스 뒷자리에서 우리는 손을 잡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병원에 있으면서도 우리는 매순간을 붙어 다니며 조잘거렸다. 어린 시절 추억과 각자 입원 하게 된 이야기 등 모든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내가 퇴원 하는 날 부모님이 짐 정리를 하는 사이 나는 그녀의 병실로 찾아갔다. 그녀는 울먹거리는 얼굴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 내가 매일 찾아 올테니까.”

그녀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그녀를 달랬다. 어느 순간부터 내 세상의 중심에는 그녀가 있었고 그녀는 내 유일한 친구이자 사랑이었고 내 인생의 일부를 차지 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결코 놓고 싶지 않았다.

 

병원에서 퇴원 하고 학교로 돌아가니 아이들은 날 신기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여름방학이 끝나고도 한참 동안을 학교에 나오지 못 했으니 아이들은 아마도 내가 전학 간 것으로 알고 있었겠지. 아무튼 나는 학교로 돌아 왔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내 학교생활은 그다지 평탄치 못 했다. 아이들은 나를 형식적으로만 대하고 다가오는 아이들은 없었다. 원체 성격 자체가 내성적이고 혼자 있은 것을 좋아해서 예전에도 그랬지만 퇴원 이후 학교로 돌아온 이후 더욱 더 심해진 것 같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거의 홀로 지냈기에 금세 지루함을 느꼈다. 그래서 예전처럼 학교에서는 했듯이 공공 도서관에서 빌려 온 책을 읽거나 A4 용지에 글을 적으며 시간을 보냈다. 병원 생활 동안 책을 많이 읽지 못 했기 때문에 밀린 책을 학교생활 하면서 계속 책을 읽었다.

 

학교를 마치면 공공 도서관에 들려 책을 반납하고 다른 책을 대여한 다음 버스를 타고 1시간이 걸리는 병원에 갔다. 물론 그녀를 만나기 위해서다. 그녀를 만나고 오늘 있었던 이야기와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며 밤 10시까지 시간을 보내고 버스 마지막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게 내 하루의 일상이었다. 나에게는 그 시간이 가장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녀를 대화를 하거나 병원 인근을 손을 잡고 산책을 하는 것이 항상 내게는 즐거움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내 중학교 학창 시절은 지나갔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이후에도 내 일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달라진 게 있다면 학교에서 반강제적으로 시키는 야간 자율 학습 때문에 그녀의 병문안을 금요일과 주말에만 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학교생활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내게는 심적으로 상당히 괴로운 일이었다. 애초에 공부는 흥미도 없었기에 대부분의 일과를 책을 보거나 글을 쓰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고 매일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그녀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지루한 일상의 위안이 되었다.

오늘 컨디션은 어때?”

날이 갈수록 야위어 가는 안쓰러운 시선으로 그녀의 모습을 바라본다. 그녀의 말라가는 얼굴을 볼 때마다 내 마음은 시려오고 너무나 아파온다. 그녀가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똑같지. ... 자기는 오늘 어땠어?”

학교생활이야 늘 똑같지. 별 다를 게 있겠어? 평상시랑 다를 바 없이 책 읽거나 글을 쓰거나 그래.”

그래.”

그녀는 요즘 부쩍 말수도 줄었다. 날이 갈수록 말라가고 기운 없이 침대에 누워 지내는 날이 많았다. 그녀의 병세가 악화 될수록 나 역시도 걱정과 두려움이 날로 커지기만 했다. 그녀가 너무 안쓰러워 그녀의 볼을 쓰다듬으며 그녀의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나 이제 얼마 안 남은 것 같아. 두려워.”

그녀는 눈물을 펑펑 흘리며 힘겨운 표정으로 말했다. 제대로 먹지도 못 하고 독한 약을 먹으니 날이 갈수록 그녀는 약해지고 있었다. 부쩍 마르고 제대로 먹지도 못 하는 그녀가 너무나도 안쓰럽고 가슴이 아프다. 이대로 보내기에는 그녀와 함께 해온 5년이 넘은 추억과 사랑 때문에 도저히 내가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녀를 껴안고 나도 한참 동안이나 눈물을 흘렸다. 그녀가 없는 세상은 나 역시도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나는 그녀 없이는 살 자신이 없다.

 

월요일 아침부터 기운 없는 표정으로 한참 동안 멍하니 앉아 있다가 옆자리 짝궁인 지훈이가 말을 걸어 왔다.

월요일 아침부터 뭐 이리 축 쳐져 있냐?”

그냥. 오늘 따라 유난히 기운이 없네.”

너 또 애인 병문안 갔다 왔냐? 넌 꼭 월요일만 되면 이러더라.”

지훈이는 내 어깨를 토닥이며 말을 건넸다. 그녀의 병문안을 다녀오고 다음날인 월요일은 항상 이렇게 힘이 든다. 갈수록 병세가 악화 되어 가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오는 날이면 이렇게 기분이 축 쳐지고 가슴이 아프다. 요즘 나는 그녀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에 빠져 있다. 그리고 문득 떠오른 생각에 나는 그날 조퇴를 했다.

 

그녀의 얼굴이 보였다. 그녀는 십자수를 하고 있었다. 문을 노크하자 그녀는 깜짝 놀란 얼굴로 나를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자기야? 왠일이야? 학교에 있을 시간에?”

그냥 자기 얼굴 보고 싶어서 왔지. 도저히 못 견디겠어서.”

그래도 학교를 빠지면 어떻해?”

그래서 조퇴하고 달려 왔어. 내일까지는 학교에 나가지 않을 계획이야.”

? 그러며 안돼. 어서 학교로 돌아가.”

그녀는 나를 달래며 재촉했다. 그러나 나는 갈 생각이 없다. 그녀와 가고 싶은 곳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를 앉아 휠체어에 태우고 병실 밖으로 나왔다. 그녀는 당혹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어디 가려고? 엄마 금방 있으면 올텐데....”

괜찮아. 나중에 설명 해드리면 되지.”

그녀를 휠체어에 태운 채로 병원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한참을 걸려 수목원에 도착했다. 그리고 첫 데이트를 했던 그날의 추억을 떠올리며 수목원 곳곳을 둘러보았다.

? 안개꽃이다. 잠깐만.”

그녀는 안개꽃 앞에서 한참을 바라보더니 눈물 한 방울을 떨어뜨리며 말했다.

정말 오랜만에 안개꽃을 보게 되네. 너랑 첫 데이트한 날에도 안개꽃 보러 수목원에 왔었는데.”

그녀는 슬픈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약하게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그 미소에 가슴에 통증이 밀려 들어오는 것을 느끼며 그녀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나중에 또 오면 되지. 오늘 같은 날은 울면 안되는거야. 바보야.”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는 미소를 지었다. 입으로는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가슴 속으로는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지만 말이다. 그녀와 수목원에서 나와 택시를 타고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동물원에 갔다. 그리고 동물원에서 그녀의 휠체어를 밀며 동물들을 바라보며 어쩌면 마지막 추억이 될지 모를 순간들을 가슴 속 깊이 담아 두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바다로 향했다.

 

바다는 때마침 석양이 저물어 가고 있었다. 아름다운 석양빛을 바라보며 나는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어때? 아름답지?”

그녀는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며 말을 계속 이어 나갔다.

우리 나중에 성인이 되면 여기서 결혼식 할래?”

나의 갑작스러운 말에 그녀는 눈물을 한참 동안이나 흘렸다. 나는 그녀가 눈물을 흘리는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석양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녀를 뒤에서 끌어 앉으며 그녀와 함께 아무 말도 없이 그저 저물어가는 석양을 바라보며 조용히 입맞춤을 나누었다.

 

그날이 지나고 몇일의 시간이 지났다. 평상시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일상이었다. 오늘도 그저 책을 읽고 독후감 형식으로 글을 쓰고 있었는데 담임선생님께서 나를 갑작스레 불렀다. 그녀의 부모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그녀가 중환자실에 있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가방을 챙길 여유도 없이 그대로 그녀의 병원에 미친 듯이 달려갔다. 달리는 도중에 눈물은 소나기처럼 쏟아져 흐르고 지나가던 사람들은 전부 날 이상하게 보았지만 그런 건 전혀 개의치 않았다. 병원에 도착하니 그녀는 중환자실에서 호흡기를 착용하고 있었고 그녀의 부모님 또한 자리 잡고 있었다. 그녀의 숨소리는 미약 했고 곧 마주하고 싶지 않는 순간이 다가옴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나의 손으로 향했고

나는 그녀의 손을 붙잡고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그녀는 미세한 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 안해. 그리...고 사랑해.”

그녀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손을 떨구며 숨을 거두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주저 앉아 미친 듯이 눈물을 흘렸다. 그녀의 부모님 또한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나는 실성한 놈처럼 눈물을 흘리다가 곧이어 실신을 하고 말았다.

 

그녀의 장례가 끝나고도 나는 한참 동안 폐인처럼 지냈다.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고 그저 멍하니 그녀와 함께 찍은 사진들을 보거나 그녀와 자주 걷던 산책길과 데이트 장소들을 걸으며 추억 속에 그리움과 슬픔을 느끼며 그저 걷는다. 가족들과 친구들의 위로도 귀에 전혀 들어오지 않고 오로지 그녀의 얼굴만이 내 머리를 가득 채운다. 미친 듯이 눈물만이 쏟아져 내리고 눈물로 지새우는 밤이 늘어갈수록 그녀의 얼굴은 더욱 선명 해져만 가고 찢겨진 가슴은 더욱 찢겨오고 아파온다. 5년간의 추억이 이렇게 허무하게 끝이 났다. 그런 만큼 나에게는 그녀를 지키지 못 했다는 자책감과 고통으로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학교도 한참 동안 나가지 않고 집에 틀어 박혀 나오지 않고 그저 눈물로 하루를 보낸다. 눈을 뜨면 눈물이 흐르고 눈을 감으면 그녀와의 추억들로 마음속이 한없이 괴롭기만 하다. 살아 있는게 사는게 아니고 마치 지옥 같다.

 

그녀가 하늘로 천사가 되어 떠나간 지도 벌써 8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 나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대학을 졸업 하고 군대도 다녀오고 남들보다 이른 나이에 회사에 입사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와 함께 하던 추억들은 여전히 그대로다. 매년 그녀의 기일과 생일이면 납골당에 찾아가 그녀에게 안개꽃과 최근에 있었던 이야기를 한참 동안 한다. 이외에도 그녀가 많이 생각나는 날이면 종종 이렇게 찾아 그녀와의 추억에 잠긴 채 눈물을 짓는다. 그녀는 이제 세상에 없지만 나는 여전히 그녀와의 추억 속에 살아간다. 만약 그녀를 다시 만난다면 나는 그녀에게 미안함과 아직도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 그러기에 오늘도 나는 안개꽃을 들고 그녀의 영정 사진 앞에 서있다. 그리고 오늘도 최근에 있었던 일과 함께 이런 저런 말을 건넨다. 그리고 미안하다는 말과 사랑한다고 말하고 한참 동안이나 그녀의 사진을 바라보며 있다가 고개를 돌린다. 도저히 떨어지지 않는 걸음이지만 억지로라도 발걸음을 옮긴다.

 

밖은 벌써 석양이 저물고 있었다. 오늘 따라 왠지 모르게 술을 한 잔 마시고 싶다. 고등학생 시절에는 책과 그녀와 함께 하던 시간을 보냈고 대학 시절은 내내 공부에 미쳐 살았더니

내 주위에는 친구라고는 그 녀석 하나 있다. 전화기를 꺼내어 지훈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디냐? 시간 있으면 술이나 한 잔 하자.”

나의 말에 그는 한참 있다가 대답이 들려온다.

너 또 거기 갔다 왔냐?”

.”

내 대답에 그는 크게 한숨을 내쉬고 항상 마시던 술집으로 오라고 했다. 나는 알았다라는 말을 하고 곧바로 자리를 옮겼다.

 

포장마차 한쪽 구석에 빈자리가 보였다. 제법 떠들썩한 분위기의 포장마차는 내가 종종 찾는 단골집이다. 한쪽 구석에 앉아 소주와 안주를 시키고 나의 유일한 친구를 기다리며 먼저 소주 한 잔 마시며 잠시 회상에 잠기고 있었다. 이윽고 지훈이는 도착하고 서류 가방을 옆에 두고 내게 말을 건네왔다.

너도 참 징하다. 징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