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장 파는 여자
그녈 처음 보았을 때 수의를 입은 어머니의 모습이 겹쳐졌다. 장례는 어머니의 바람과는 달리 아버지의 뜻대로 매장으로 치러졌다. 염을 마친 어머니는 수의를 입고 이름 모를 나무 관 속에 누워 있었다. 띠로 몸을 바짝 동여맨 채 하얀 얼굴만 드러낸 그날의 어머니. 나는 그 모습을 본능적으로 기억 깊은 곳에 묻어버린 줄로 알고 있었건만, 그것이 이토록 반사적으로 회상된다는 건 그녀가 어딘가 남달랐기 때문에, 아니 어딘가 어머니와 닮았기 때문이 아닐까.
오전의 햇살이 횡단보도 건너편에 그녀가 있는 건물 유리창으로 내릴 때였다. 그녀의 모습은 고작 유리창 너머로 상반신만 간신히 보일 뿐이었고 더군다나 마른 체형인데다가 허리 아래까지 끝을 모르고 내려간 숱 많은 머리카락이 커튼처럼 그녀의 몸을 절반은 가리고 있어서 그마저 조차 자세히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머리카락이 살랑일 때마다 언뜻 보이는 얼굴이 너무 희어 멀리서도 표정만은 또렷하게 보였다. 의자 등받이에 짙은 색 카디건을 걸쳐 두어 더 그래 보였는지도 모른다. 나도 모르게 신호등을 건너 다가가보니 아래로 숙인 고개가 어떤 일에 집중을 하는 모양인지 미간에 잡힌 옅은 주름이 보였다. 간격은 더 가까워지면서 거의 유리창에 이마가 닿을 듯 바짝 한 발 내딛었을 때 툭 하고 발끝에 뭔가가 채였다. 고개를 돌려보니 허리춤까지 오는 도장 모형이 언제부터인가 거기 있었다. 그제야 나는 그녀가 열중하던 일이 무엇인지 짐작이 갈 것도 같았다. 하지만 내가 짐작한 일이란 어느 여배우가 미싱을 돌리다 캐스팅되었다는 비화만큼이나 그녀와 어울리지 않는 일 같았다. 그녀가 일종의 그런 여배우 같은 귀티를 풍기는 건 아니었지만 나는 그녀에게 아주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다.
가게 문에는 경종이 없어 조용히 열리고 닫혔다. 희미한 빛 아래 떠도는 먼지 틈으로 나무 냄새가 풍겼고 작은 조명이 밝힌 어둠은 그늘이 되어 테이블 앞에 앉아 있는 그녀를 덮고 있었다. 내가 제법 가게 깊이 들어와도 그녀는 인기척을 못 느꼈는지 계속 테이블에 고개를 숙인 채 열중하고 있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헛기침을 했다.
-흠.
먼지들이 부산스럽게 흩어지면서 나무 가루들이 달아났다. 그 바람에 그녀는 길고 풍성한 머리를 쓸어 올리며 소리가 난 쪽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눈동자는 불쑥 나타난 손님을 쫓는 것 같아도 초점은 여전히 테이블 위에 둔 것처럼 보였다.
-아, 어서 오세요. 죄송해요. 한창 작업 중이어서 들어오신 줄도 몰랐네요.
그늘진 가게 안에서 보니 그녀의 얼굴은 밖에서 볼 때보다 더 하얘 보이는 것 같았다. 시종일관 보였던 진지한 표정 탓에 그녀의 나이를 나보다 위로 잡아 봤었지만 머리를 묶는 동안 드러난 그녀의 쌍꺼풀 없는 눈꼬리 부근에 촉촉한 윤기가 도는 것을 보고서야 나는 그녀가 나와 비슷한 대학생 끝 무렵의 나이쯤이라고 생각을 하게 됐다.
-어떻게 오셨어요?
그녀로서는 당연한 질문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어수룩하게 허를 찔리기라도 한 것 마냥 우물쭈물 댔다. 그때 문득 일 년 전 공업 폐수에 떨어뜨린 인감이 생각났다. 얼마간은 필요 없을 것 같아 차일피일 미뤄둔 게 떠오른 것이다.
-인감 하나 파려고요.
-내, 이 주문서에 성함하고 연락처 적어 주시고요, 이름은 한글로 하실지 아니면 한자로 하실지 골라서 인각하실 문자 적으시고 또 서체도 골라주세요. 그리고 아래 칸에 재질 선택 하셔서 동그라미 쳐 주시면 돼요.
그녀의 요구는 예상보다 다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도장이란 그저 나뭇가지를 파내서 깎고 다듬는, 그런 간단한 작업 정도로만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뜩이나 쇠붙이만 만지작거리던 내게 금속 재질 빼고는 다 총집합한 갖가지 재질 항목들은 골치 아프기 충분했다.
-재질이 중요한가요?
-거의 느낌차이죠. 맘에 드는 디자인을 고르는 거라 보시면 돼요.
그녀는 어느새 밖에서 볼 때처럼 테이블에 고개를 숙인 자세를 하고 있었다.
-요즘엔 어떤 걸 많이들 하나요?
-본인거세요?
-네? 아, 네. 제 겁니다.
-젊은 분들은 나무 재질보다 가옥(假玉)을 많이들 찾으시긴 해요.
마지막 항목인 재질을 비워둔 채 서성거리던 나는 의도치 않게 그녀가 앉아 있는 테이블 근처로 가까워졌다. 그러자 그때 날아 온 그녀의 하얀 목소리에 정신이 퍼뜩 들었다.
-죄송한데 그림자 져요.
-아, 예. 미안합니다.
머쓱해진 나는 엉거주춤 한 발 뒤로 물러섰다. 그 자리에서 허리 한 번 고쳐 잡지 않고 꼿꼿하게 앉아 작업에 열중하는 그녀를 신기하게 바라봤다. 내가 들어오고 나서 시간이 멈추기라도 한 것처럼 햇빛은 똑같은 높이로 유리창에 붙어 일정한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머리를 가지런히 묶어 그녀의 하얀 턱 선이 훤히 드러났지만 그녀 주위를 에워싼 그늘은 머리카락 한 올 무게만큼 가벼워지지도, 또 그 두께만큼 줄어들지도 않아 보였다. 그녀의 말투엔 냉담함보다는 정중함이 더 묻어 있었던 것 같아 나는 내 쪽에서 말을 붙여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접 모든 도장을 다 파시나 보죠?
-아뇨. 아직 배우는 과정일 뿐인걸요.
-그럼 후계자셨군요. 손님 입장에서 보기엔 믿고 맡겨도 될 것 같아 보였거든요.
-그래요? 감사합니다.
그녀는 가식 없이 진솔한 음성으로 답례했다. 하나 얼굴에 기쁜 내색은 찾을 수가 없었다.
-가업을 물려받으시는 건가요?
-네. 아빠가 여기 주인이시거든요.
-요즘은 이렇게 일일이 수작업으로 하지 않더라도 도장 파는 기계도 나오지 않나요?
-왜 없겠어요. 그런데 여전히 수공예 도장을 고집하는 어르신들이 있거든요. 그리고 기술을 배워두면 어떻게든 밥줄이 되는 거라고 아빠가 입이 닳도록 닦달하는 판이라서.
그녀는 말을 제법 길게 하면서도 손놀림은 전혀 둔해지지 않았다. 테이블 위를 보니 각기 길이나 크기가 서로 다른 칼들이 늘어져 있었다. 칼끝의 모양들이 저마다 다르게 휘어져 있었는데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이 보기엔 칼 손잡이마다 둘러진 테이프에 적힌 숫자만으로 겨우 그 차이를 구분 할 수 있었다. 그 옆엔 붓이 머리를 풀어헤친 듯 널브러져 있었고 또 그 옆엔 수북이 쌓인 톱밥이 산처럼 솟아있었다. 가게 먼지 속을 떠다니며 냄새를 풍기던 것이 바로 그녀가 종일 앉아 깎아낸 이것이었나 보다.
-다 작성하셨어요?
-아, 네. 여기요.
그녀가 갑작스레 채근하는 바람에 나는 보지도 않고 재질 선택 항목에 아무렇게나 대강 동그라미를 치고 주문서를 건넸다. 주문서를 받은 그녀는 찬찬히 살펴보다가 처음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눈이 마주쳤다. 그 얼마 되지도 않는 침묵과 고요함에 침이 말라갔다.
-뭐 잘못된 거라도 있나요?
-아뇨. 이렇게 하신다는 거죠?
-네.
-알았어요.
그녀는 알 듯 모를 듯한 표정을 지으며 주문서를 테이블 옆에 얹어두었다.
-왔냐?
-몸은 어떠세요?
-훨씬 나아지고 있다.
거짓말이 눈앞에 만져진다. 아버진 당신의 주름이 하루가 다르게 안쪽으로 파고들고 있다는 걸 온종일 누워만 있으니 잘 모를 만도하다.
-뭐래더냐?
-생각해보겠대요.
-생각해 본다는 말 따위 기대도 마라. 자기 욕 덜 처먹을 그럴싸한 변명거리나 생각하는 거겠지.
-삼일만 쿠사리 먹다보면 원숭이도 배우는 일인데요. 화장실 갔다 온 사이에 자리 뺏겨도 이상할 거 하나 없는 자리였어요.
-속 편하게도 말한다.
-이미 그렇게 된 일인 걸요 뭐.
확실히 사장의 거짓말도 혓바닥에서 떨어지기가 무섭게 곧장 만져졌다. 만약 그때 내 손가락이 조금만 더 말려 들어갔더라면 며칠 동안 깁스만 하는 정도로 상황이 일단락되진 않았을 것이 분명했다. 사장에겐 사인해야 할 서류가 수두룩이 쌓였을 것이고 안전 관리 담당자들의 전화와 방문이 따라다니는 것과 더불어 고용주를 대상으로 한 의무 교육 참여 소환이 사장을 귀찮게 했을 테니까. 아마 내가 앰뷸런스에 올라타고 차량 뒷문이 닫히는 그 순간 이미 기다렸다는 듯이 누군가 내 자리를 꿰찼을 것이다. 그때 나는 무얼했나 떠올려 보니 응급실로 실려 가면서도 오늘까지 일한 일당을 계산해보면서 등록금만큼은 채웠다는 생각에 마음을 놓았었다. 마음이 놓이니 손가락뼈가 뒤늦게 아려오기 시작했고 고통을 잊으려고 학교 다니던 시절을 떠올려봤다. 어느 강의가 떠올랐는데 거기서 배운 실존주의에 따르면 우린 세상에 던져진 존재인 것이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지금 시대에 우린 세상에 버려진 존재다. 이젠 그 학설이 달라진 게 틀림없다는 생각이 무의식적으로 들고 말았다.
갑자기 병실에 있는 텔레비전이 켜지고 소리가 나기 시작하자 동시에 아버지는 눈을 감았다. 화면은 쇼핑몰 채널에 맞춰져 있었다. 리모컨은 늘 그렇듯 병실 구석에 누워 있는 폐암 환자인 중년 아줌마가 독점하고 있었다. 화면에 나오는 쇼호스트는 골반까지 쫙 달라붙는 원피스를 입고 여성용 속옷을 소개하고 있었는데 믿거나 말거나 자기 몸매 라인의 비결이 바로 이 속옷 덕분이라고 흥분한 톤으로 말하고 있었다. 나는 옷걸이에 도장 파는 여자를 대입시켜봤다. 허튼 짓이었다. 아까 가게에서 그녀를 훔쳐보면서도 내 시선은 그녀의 골반까지는 물론이고 쇄골만큼까지도 아래로 내려가 보지 못했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그때 그녀에게서 육감적인 이미지를 머릿속에 담아 올 생각 같은 건 하지 않았던 것을 깨달았다.
아버지가 내 팔을 툭툭 건드렸다. 아버지는 손끝으로 서랍장을 가리켰다. 나는 서랍에서 라디오를 꺼내 아버지 귀 옆에 올려놓았다.
창틈으로 오후의 하얀 햇살이 들어오고 있었다. 아버지는 눈을 감고 라디오 소리에 귀를 완전히 묻은 듯 평온해 보였다. 갑자기 아버지는 누런 잔디처럼 마른 눈꼬리를 잔뜩 찡그렸다. 그럴 땐 라디오에서 광고가 나오는 순간이라는 신호다.
-사연보다 광고가 더 많은 게 라디오가? 게다가 요즘 광고도 다 지랄 같은 광고들뿐이다. 도무지 정이 안 간단 말이다.
-사연 안 보내실 거예요?
-내일.
아버지가 엽서에 적어 보낼 사연은 일 년 전에 죽은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였다. 입원하기 전까지만 해도 아버지는 너무 건강해서 탈이었다. 어머니와 내겐 일상이 호흡 곤란과도 같이 숨통이 조이는 나날들이었다. 아버지는 이따금 나에게는 물론이고 어머니에게까지 손찌검을 하는 통에 어머니로서는 집 밖으로 나돌아 다니는 게 그나마 속이 편하다고 내게 입버릇처럼 하소연 하시곤 했다. 결국 평소처럼 집 밖으로 뛰쳐나간 날, 그 날 어머니는 덤프트럭에 깔리셨다. 그 날 내가 어머니를 못 나가게 잡았더라면, 그게 아니라 함께 뛰쳐나가기라도 했다면 뭐가 달라졌을까.
죽음만큼 진부한 게 또 있을까 싶지만 그만큼 진부하게 또 의미를 붙여주는 사람들이 바로 라디오 DJ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아버지는 DJ의 가슴을 후려쳐 집에 박혀있는 낡은 냉장고를 바꿀 요량이었다.
-가 볼게요.
-호연아.
호연지기에서 호연. 남자란 모름지기 큰 뜻을 품고 세상을 두루두루 넓게 살아가란 의미로 아버지가 붙여준 이름이다. 막연히 거대한 그 무언가가 대체 무얼 말하는 건지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무튼 많은 기대가 담긴 이름이란 것쯤으로만 알아두고 대강 살아 온 이름이다.
-네, 왜요?
-내일 오는 길에 엽서 한 장 사오너라. 제일 좋아 보이는 걸로다가.
-네. 알았어요.
-어디 갈 거냐?
-학교에 잠시요.
-뭣하러?
-복학 신청하려고요.
-알았다. 가 봐라.
학교로 가는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길에 나는 다시 가게 건너 횡단보도에 섰다. 주홍빛 황혼이 내린 유리창 너머로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착각인지 몰라도 그녀의 커튼 같은 머리카락이 좀 더 열어젖힌 듯 보였다. 횡단보도를 건너 나는 가게 문을, 병실 문을 열 때보다 그리고 오전에 처음 가게 문을 열 때보다 더 쉽게 열어젖혔다.
-어, 다시 오셨네요. 뭐 놓고 가셨어요?
-아니요. 그게, 저… 맞다. 아까 제가 작성한 주문서 좀 다시 볼 수 있을까 해서요.
그런데 그녀로부터 주문서를 건네받는 순간 삐걱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게 또 다시 다친 손가락이나 상할 대로 상한 고막이 문제를 일으키나 싶어 애꿎은 그녀의 손에서 까칠하게 주문서를 낚아채다시피 받고 말았다. 그녀 쪽에선 나름 놀랐던 모양인지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나는 얼른 무안을 감추려 주문서에 얼굴을 묻었다. 거기에 유별난 점이라고는 생긴 것과 다르게 거창하기만 한 내 이름 말고는 별 게 없었다.
-저기, 아까 뭘 보고 재차 물어보신 거죠?
-아, 그거요? 그냥 요즘 젊은 분들치고 도장을 그런 재질로 주문하는 경우는 한 번도 못 봤거든요.
그제야 나는 내가 보지도 않고 동그라미 친 재질 목록을 살펴보았다.
-취향이 남다르시구나 싶었어요.
-그런 건 아니에요. 사실 이 나무가 뭔지도 몰라요. 그냥 아무 생각 않고 표시한 것뿐인걸요. 그건 그렇고 그쪽은 어떤 도장 쓰세요?
그녀가 고개를 들자 그녀를 덮은 그늘이 햇빛에 씻겨 하얀 얼굴이 환하게 드러났다. 그리고 약간 힘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전 도장이 없어요.
내겐 그녀의 대답이 자기는 이름 같은 건 가진 적이 없다는 것처럼 들렸다.
-보통은 연습할 때 본인 이름으로 도장을 팔 거라 생각하는데.
-제 이름은 예쁘지가 않은걸요. 깎고 싶지가 않은 이름이에요. 있잖아요 도장은 있죠. 없어지지 않는 한 평생 갖고 살아야 하는 거니까요.
살아야 한다는 그녀의 말은 내게 있어서 생의 어떤 의무감 같은 것을 연상케 했다. 그녀도 나처럼 세상에 버려진 존재일까. 그녀는 당당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그녀의 얼굴에 내린 햇빛이 하얀 그늘처럼 보이는 바람에 차마 어떤 이름이냐고 물을 용기가 나질 않았다. 형식적인 위로랍시고 뱉었다간 자칫 대화가 엉망진창이 되기라도 할까봐 나는 얼른 화제의 키를 고쳐 잡았다.
-도장파기에서 제일 중요한 건 뭐에요?
-음… 특별할 건 없어요. 손 조심 하는 거예요.
유리창을 뚫고 들어오는 이 저녁 무렵의 햇빛의 각도는 그녀가 작업하는 테이블 높이까지는 닿지 않았다. 그러나 어둠이 짙은 가운데 그녀의 길고 가는 손가락은 유난히 찬란해 보였다. 자세 보니 볕을 쬐지 못한 탓인지 무척이나 흰 그녀의 손가락에 깊은 지문처럼 긁혀있는 상처들이 또렷이 보였다. 내가 눈을 떼지 못한 채 말했다.
-까딱했다간 일을 못하게 될 수도 있겠군요.
-것보다 흉이 보기 싫은 걸요. 내가 평생 도장만 파다가 장인이 될 거라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죠?
그녀가 그늘을 벗고 대꾸했다. 그래놓곤 가게와는 어울리지 않는 발랄한 말투가 저도 민망했던지 옅게 웃어보였다. 그리고 말을 다시 이었다.
-개명을 할까 해요. 그런 생각 안 해보셨어요?
-왜 안 해 봤겠어요. 어딜 가든 이목이 쏠렸거든요. 다들 기대가 가득한 눈길들로 날 바라봤어요. 무슨 일이든 뭐든지 잘 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로 몰아갔거든요. 그런데 헛배짱만 크지 실속은 텅 비었어요.
-내가 파면서도 피식거렸다니까요. 재밌는 이름이긴 했어요.
-이름보다 더 재밌는 얘기 하나 해 줄까요? 군대에 있을 때 민가와 가까운 전방에 있었거든요. 한 날은 갇혀 지내는 게 너무 답답해서 몰래 담을 넘어 민가에 있는 중국집에 들어가서 자장면에 짬뽕에 탕수육까지 배 터지게 먹은 적이 있었어요. 에라 모르겠다하고 먹는 동안에 사장님 곤란해 하는 표정 보면서 몇 번이나 얹혔는지 참. 지금 생각해도 그 많은 걸 혼자 다 먹었다는 게 신기했다니까요. 아무튼 그걸 다 먹었다면 시간이 얼마나 지났겠어요. 그렇게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있다가 부대에 돌아와 보니 난리가 난 거였죠. 부대원들이 전부 맨바닥에 머리를 박고 있었어요. 자다가 불려 나와서 팬티 바람으로 덜덜 떨면서 머리를 박고 있는 최고참을 보니까 모든 상황이 계산기 돌아가듯 후다닥 깔끔하게 정리되고 짧은 머리카락이 바짝 곤두서더라고요. 그 다음은 어떻게 됐겠어요. 분리수거장에서 고참들한테 워커발로 걷어차인 횟수를 큰 소리로 세야 했는데 두 자릿수가 넘어가고부터는 목소리가 안 나오더라고요. 그런데 그렇게 맞는 와중에도 참 내가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가는 게 맞다보니 배가 꺼졌는지 꼬르륵 소리가 나지 뭐에요? 그 바람빠진 풍선 같은 소리가 둔탁한 소리를 비집고 울려 퍼지니까 주위가 조용해졌어요. 그때 최고참이 화를 내야할지 어이없어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황당한 투로 한 말이 아직도 잊히지가 않아요. 야, 네 배때지 하나만큼은 호연지기다. 넌 뒈지는 순간까지 밥그릇 씹으면서 뻗을 줄 알아. 그러곤 군견 쇠 밥그릇을 가져와 내 입에 물리고선 계속해서 마저 때리더라고요. 그렇게 쇠맛을 질리도록 맛봐서 그런지 다음부터 철책 담만 봐도 넘을 생각은커녕 진저리가 쳐지더라니까요.
이야기를 듣는 내내 그녀는 눈썹 사이를 오므렸다가 또 입술을 질끈 물었다가 이따금은 손으로 입을 가리기도 하면서 마지막엔 농도 짙은 웃음을 터뜨렸다. 사실 이건 내 동기의 이야기다. 당시 함께 담을 넘자던 동기의 유혹을, 나는 뿌리쳤었다. 그런데 그녀에게 내 일화인 것처럼 떠들어 댄 건 담 안쪽에 덩그러니 남아있던 내 모습을 내세우기엔 부끄러운 모습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한층 앳되어진 그녀의 활짝 열린 웃음을 타고 좀 더 깊은 사연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그런데 왜 개명을 하려는지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요?
-아빠가 지어준 이름인데요. 언제인가 그 이름을 곰곰이 뜯어보니 내가 여기서 도장을 파고 있는 게 어쩐지 태어나 이름이 붙여진 그날부터 계획된 일이라는 생각이 들지 뭐에요.
-그렇게 말씀하시니 무섭잖아요.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면 안 돼요? 수공예 도장이라면 정통성도 있고 무엇보다 안정적이기도 하고. 또 마음먹기에 따라 의미 있는 직업일 수도 있으니까요.
그렇다. 도장이란 무서운 물건이다. 하지만 우린 그 조그마한 나무 위에 이름 석 자를 새겨 넣지 않고는 살아 갈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인생이란 덮이는 관 뚜껑에 새겨질 그 이름 석 자를 평생 끌고 가야만 한다.
-의미라. 아빠 말로는 도장이란 게 재산을 들여다 오는 물건이래요. 웃기죠? 돈이란 게 없다가 갑자기 생기는 게 아니잖아요. 도장에 묶인 돈은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게 내 생각이에요.
-그래도 우리나라에서 도장 없이 살 수 있나요 어디.
-아빠랑 똑같은 말을 하네요.
그녀의 말엔 호흡이 많이 실린 깊은 숨소리가 있었다.
-아, 그게 나쁜 뜻은 없었어요. 그냥 농담하려다 보니 그만. 미안해요.
-괜찮아요. 사과할 건 아닌걸요.
잠시 침묵이 흘렀고 나는 그만 일어날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참, 잠시 어딜 가는 길에 들른 거거든요. 다음에 또 올게요.
-도장이 다 되려면 시간이 걸릴지도 몰라요.
-그전에 또 올게요 그럼.
가게를 나와 유리창을 돌아다보니 그녀가 머리를 쓸어 넘기며 날 향해 웃고 있었다. 하지만 오래 남아있던 그녀의 잔상은 학교로 가는 버스를 막 타려는 찰나 걸려온 전화 한 통에 흩어지고 말았다. 병원이었다. 아버지의 주치의는 직접 할 말이 있다고 했고 어차피 내일도 도장 가게 앞을 지나 올 테니 학교야 내일 가도 괜찮겠다 싶었다. 그러나 그럴 일은 생기지 않았다.
주치의 말로는 아버지의 몸이 굳는 속도가 걷잡을 수 없이 빨라지고 있다고 했다. 일주일이라 말은 했지만 경험상 최악의 상황은 넉넉잡아 계산하는 법이 아니란 것쯤은 알고 있다. 주치의의 말을 나름 해석해봤을 때 아마 아버지는 한 시라도 빨리 수술에 들어가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어디 가게?
-학교에요.
-어제 갔잖아?
-일이 생겨서 못 갔어요.
-의사가 뭐래디?
-그냥 늘 똑같은 얘기죠.
-호연아.
-네.
-공부 열심히 해라.
아버지는 할 말을 다 했다는 듯 눈을 감아버렸다. 이름만 던져 주고선 옛 추억 속으로 숨어버리는 안개처럼. 그 말은 내게 해결책도, 심지어는 한 푼어치의 위로조차도 되지 않았다. 그때 폐암 환자 아줌마가 텔레비전을 켜자 아버지는 구시렁거렸다.
-저년이 얼른 향나무 관에 들어가야 좀 조용히 살지.
그러곤 얼어버린 내 팔을 툭툭 건드리며 서랍장을 가리켰다.
다음날 늦은 오후 가게 유리창엔 햇빛이 거의 시들어 가는 볕을 밀어 넣고 있었다.
-왔어요?
그녀가 친근하게 반겨주었다. 하지만 내겐 사무적인 용무가 있어 차마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억지로 열었다.
-도장 줄래요?
-네?
-다 된 거 맞죠? 다름이 아니라 급하게 쓸 일이 있어서 그래요. 지금 줄 수 있어요?
그녀는 입술을 굳게 다물었지만 미소를 완전히 거두진 않았다. 그리고는 눈꼬리에 촉촉이 옅은 미소를 머금어 둔 채 테이블 아래로 몸을 숙였다. 그러자 유리창을 넘어 들어오던 햇빛의 사각지대 아래로 그녀의 몸이 완전히 파묻혔고 전신이 그늘 속에 가려졌다. 나는 그녀가 사라진 착각이 들 정도로 눈앞이 깜깜해졌다. 얼마간 더듬거리는 소리가 환상처럼 들렸고 그늘로부터 점차 가까워지는 드르륵 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고무바퀴가 구르는 소리와 철심이 삐걱거리는, 마치 공장에서 내 손가락을 아작 낼 것처럼 쇠로 된 이빨이 맞물리는 소리가 폐부를 파고들었다. 어느덧 그녀는 내 옆에 바짝 다가와 있었다. 날 향해 내민 포장된 도장 케이스는 축 늘어진 내 손 높이에 와 닿았고 그보다 낮은 위치에서 그녀의 시선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 시선 훨씬 아래쪽에 그녀의 떠 있는 발을 태운 바퀴달린 의자가 수줍게 멈춰 서 있었다. 나는 말없이 도장 케이스를 받아들었다. 그녀가 남아있던 희미한 미소를 짜낸 채 말했다.
-또 오세요.
은행원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급한 돈이 필요하냐며 예사말을 던졌다. 이 땅에서 내 또래가 좋은 일로 적금을 깨러 오는 경우가 있을까. 나는 나와 겨우 탁자 하나 간격을 두고 무심한 말을 내던지는 은행원이 라디오 DJ와 별다를 바 없는 인간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라디오 DJ가 어머니의 죽음 값으로 냉장고를 줄 수 있다면 이 은행원은 내 대학 등록금의 죽음 값으로 아버지의 굳어가는 몸을 녹여주는 해동기인 셈이다.
-여기 형광펜으로 칠해진 곳에 사인해 주시면 돼요.
-네? 도장은 필요 없나요?
-네. 그냥 서명만 해주시면 돼요.
도장케이스를 열려다 말고 나는 허탈해졌다. 표시된 곳에 서명을 다 마치고도 개운치 않아 서류를 이리저리 뒤집어 다시 보았다. 정말 그게 전부였다. 일은 도장도 필요 없이 간단하게 끝나고 말았다.
김호연님. 그렇게 적힌 통장에 들어 온 액수의 금액을 보니 그것이 내 호연지기의 최대 한계를 나타내는 지표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마저도 내 소유라고 해서 자유로울 수 없는 돈이었다. 통장에 새겨진 금액의 잉크는 아버지의 척추로 스며들어 갈 것이고 아버지의 손가락에서 써진 잉크는 라디오 DJ의 혓바닥으로 스며들어 우리 집 한 구석에서 냉장고가 되어서는 또 다시 낡아 갈 것이다. 결국 나는 내 손가락을 거의 아작 내면서 번 돈으로 낡아 갈 냉장고를 사게 되는 것이었다.
걸어가면서 열지 못했던 도장 케이스를 열어 보았다. 좋은 일로 적금을 깨러 오는 젊은이가 없는 것처럼 향나무로 도장을 만드는 젊은이 역시 없지 않을까. 도장에선 언젠가 한 번 맡았던 적이 있는 묘한 향과 더불어 그녀의 손에서 묻은 듯한 온갖 나무 냄새와 비누향도 함께 났다. 도장을 눕혀 인각된 이름을 보았다. 김호연. 양각으로 판 모음의 뾰족한 획이 힘차게 위로 뻗어 있었지만 둥그런 원 안에 갇힌 이름이 허리도 못 펴고 쭈그려져 있었다. 나는 그날의 관이 아른거렸고, 그날의 어머니 옆에 누워 있는 기분이 들었다.
걷다보니 신호등 건너편 가게 유리창너머 그녀가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주홍빛 황혼이 쏟아지자 가게 안으로 그늘이 졌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어두워지는 가게 안에서 그녀 하나만은 유난히 환해지는 것이었다. 그러자 갑자기 내가 그 그림자를 흡수하기라도 하는지 내 온 몸이 검은 그늘로 뒤덮이는 것 같았다. 움직일 수도 없이 이건 마치 수의를 입은 기분이었다. 그때 한 행인이 지나가다 내 등에 쿵하고 부딪쳤다.
-뭐야? 눈을 어따 두고 다니는 거야?!
도리어 신경질을 부리던 행인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구기며 사라졌다. 그리고 나는 내 손에 있던 도장도 사라진 걸 알았다. 그때 횡단보도로 덤프트럭 한 대가 지나갔다. 고무바퀴가 구르고 철심이 삐걱거리며 손목이 아작 나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나무가 으깨지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여자의 비명 소리도 들었다. 하지만 마지막 소리는 내 귀에만 들렸는지 주변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제 갈 길을 갔다. 내겐 다시 도장이 없어졌다. 그러나 나는 처음처럼 저 가게 문을 열고 걸어 들어갈 용기가 없었다. 내 그늘이 그녀에게 묻을지도 모른다. 그녀에겐 언제까지고 그녀 이름이 새겨진 도장이 없을 것이다. 그녀는, 붉은 인주 범벅으로 자기 이름이 짓눌리는 도장을 판다는 건 결국 자기 관을 스스로 짜는 일이었음을 알고 있었지 않았을까. 이제 알았다. 어머니의 하얀 얼굴은 결코 죽음의 빛깔이 아니었다는 것을. 그리고 같은 얼굴빛을 띤 그녀는 세상에 버려지지도, 그렇다고 이미 던져진 존재도 아니었다는 것을. 달릴 수도 없는 그녀는 세상을 뛰쳐나간 존재였다는 것을. 그녀는, 언젠가 집을 뛰쳐나간 그날의 어머니처럼 그녀 스스로 새로 지은 이름을 가슴에 품은 채 법원까지 힘차게 바퀴를 굴려 갈 것이다. 내가 만약 그날의 어머니를 따라 뛰쳐나갔더라면 오늘이 달라졌을까. 관 속에 누운 어머니의 하얀 얼굴을 끌어안고 아버지에게 어머니를 살려내라고 울부짖었다면 이토록 부끄럽지 않을 수 있었을까. 어머니의 원래 바람대로 관 뚜껑에 이름을 새기지 않고 화장을 한 뒤 강물 위로 뿌렸다면 내게 지금처럼 두려움이 찾아오지 않았을까. 결국 나는 등을 돌리고 말았다. 돌아서서 가는 이 길을 걷다 보면 발길에 치이는 건 높은 철책 아래에 있는 병실 문일 뿐 더 이상 도장 모형은 아닐 거란 걸 알고 있었다. 문득 눈가가 가렵기 시작했다. 눈가로 쏟아지는 주름에 메말라가는 눈꼬리 위로 아린 통증이 찾아와 눈을 감고 말았다. 세상이 온통 그늘로 뒤덮였다.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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