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나의 머릿속엔 정신과 신체가 맞닿는 부분이 있다. 나는 그곳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매 순간 슬픔을 느낄 때의 나는 가슴이 아팠다. 나의 기도는 너무나도 간절한데 하나님은 60억의 기도를 들으시며 나의 간절함을 느끼실 수 있을까? 나와 다르지 않게 세상은 테러와 분노, 증오로 가득 차 있다. 이렇게 거대한 분노 앞에 나 혼자만의 의견과 정서는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나는 수많은 사람들이 가득 찬 이곳에서 정말 소중한 존재일까.
수많은 도시의 불빛과 골목길들, 시계침이 가르치는 시간들을 지나서 열정과 여유를 함께하는 걱정이 없는 공간, 나에게는 하늘뿐이었다.
문제는 나의 상황과 나의 겉모습은 계속해서 변해가지만 나의 속마음은 아홉 살 이후 변한 것이 없다는 것.
성인이 된 이후 기도를 해야할 이유는 늘어갔지만 기도를 할곳은 점점 사라지게 되었다. 악마는 아직 나에게 틀린 정보들을 제공하며 나는 아직 발 뻗고 쉴 수 있는 공간을 찾고 있다. 붉은 바닥을 걸어 다니며 열정으로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을거라 생각했지만 비가 내릴때는 늘 우산이 견딜 수 없는 폭우였다. 이러한 상황을 지나오면서 그저 높은 곳에 올라가 더욱 높은 하늘을 바라보는 것만이 나의 유일한 여유가 되었다.
마음이 편한 곳이 집이라곤 했지만 나에게는 그러할 여유가 주어지지 않았다. 혼자 있고 싶은 날이 있다면 그저 음악과 와인 또 하늘이다. 불평의 연속일지 몰라도.. 그러나 바람은 얼마나 상쾌한가.
알지 못하는 이들과 생활을 이어가야 했다. 나는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항상 어려워했다. 나는 항상 그들이 나를 찾기를 바라지도 않았으며 어색한 웃음을 달고 살기엔 내 자신을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더욱 높은 곳을 바라본다. 더 이상 높은곳이란 열정이나 야망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나의 하늘이 무너질 때 온 세상의 하늘은 무너지게 되어있다. 내가 높은곳에 올라 발을 헛디딘다고 하여도 바람은 늘 상쾌하기만하다.
많은 사람들과 호흡을 맞출 여유는 없지만 그래야할 시간들이 다가오기 마련이다. 물론 사랑에 빠지는 상상을하기도 한다. 가끔 운명은 물과 같아 내리는 비에, 거세지는 물살은 멈출 줄 모른다. 사랑은 사치가 되었다.
많은 사람들과 호흡을 맞출 여유는 없지만 가끔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려 한다. 많은 대화가 오고간다. 낱말과 문장들이 오고가는 만큼 그들이 마시는 음료 또한 오고간다. 어색한 웃음을 곁들여 나 또한 한 모금 마셔본다.
어지러움을 느끼고 모두가 나를 떠나보내게 거대한 구름을 몰고온다. 나는 다시 하늘을 바라보러 나간다, 바라본다. 새들을 바라본다. 자신이 원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날아갈 능력이 있는 새들을 바라본다.
모두들 내가 겪는 문제들엔 관심이 없다. 나 또한 그들이 겪는 문제에 관심이 없다. 나는 울고 웃는 사람들 사이에서 정말 소중한 존재일까. 내가 느끼는 나의 특별함은 그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을까. 죽어가는 대지와 사람들의 가슴은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붉은 구름을 향해 나 또한 새처럼 날 수 있다. 나의 날개짓에 하늘은 분명히 추락할 것이다.
‘31일의 구름
종말은 종말 그 자체를 믿는 사람에게만 찾아온다고 한다.
11월의 어느 날 며칠간 이어진 이상 기후는 오히려 사람들에게 행복감을 안겨주었다. 몇몇 종교의 지도자들은 겨울이 찾아오지 않는 것은 가을의 연속이며 그것은 곧 새로운 메시아의 탄생이라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하루하루 일을 하고 월급을 받아가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메시아의 탄생이나 지구온난화 등 자신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이야기는 모두 신경 쓰지 않는 듯하였다. 모두들 이어지는 가을이 행복 했을뿐이었다.
11월27일
가을이 새로운 해를 찾아 떠나갈 즘 엄청난 양의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기상청은 이번 호우가 지나가면 12월의 첫날 기온이 영하로 진입하여 겨울이 시작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계절의 변화를 알리는 비는 그 기세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무섭게 몰아치는 비바람에 사람들은 더 이상 비의 아름다움이나 감성적인 부분들을 떠올릴 수 없었다.
이어지는 빗줄기는 사람들 마음속 지난 가을의 이미지를 깨끗이 지워내고 있었다. 비바람에 옷이 젖고 표정이 구겨지고 다가오는 바람에 우산을 힘겹게 지탱하는 모습은 마치 벌을 받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모진 비를 맞는 사람들 중 자신들이 무슨 잘못으로 벌을 받는가에 대하여 생각한 이들은 매우 적었었다.
11월29일
오전에 그친 비는 바닥을 기어 도시 곳곳의 하수구로 숨고 있었다. 함께 할 수 없는 비와 햇빛은 항상 이어지던 숨바꼭질을 하고 있었고 오후의 햇빛은 그 어느날 보다 따사로웠다. 비가 왔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따듯한 날씨와 아직 숨을 쉬는 꽃들 그리고 겨울을 피하지 않은 곤충들은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가을이 이어질거라는 주문을 걸어주었다.
햇빛의 축복과 지지 않는 태양은 모든 사람들을 축제의 도시로 불러 모았고 그들은 햇빛 아래 커피와 맥주, 와인을 마시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그들 중 누구도 이러한 변화가 가져다줄 나비효과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생각하는 것이 금기시 되었다. 지친 삶의 연속에 드디어 찾아온 햇살은 그들에게 이러한 나날이 이어지기를 바라게 할 뿐이였다.
11월30일
많은 사람들은 내일 당장 12월이 찾아온다는 사실은 잊은 것 같아 보였다. 작은 햇살과 따듯한 기온이 그들에게 크리스마스를 잊을 정도의 행복감을 준다는건 놀라울 따름이다.
도시의 보석을 두른 건물들은 햇빛을 반사시켜 몇 개의 태양을 더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어지는 햇빛의 연속, 그 속에 사람들은 행복을 나누고 서로의 인생과 작품을 공유하고 있었다. 모두들 마치 꿈을 꾸는 듯 하였다. 질리도록 좇겨온 빚과 관계, 고민들 속에서 맑은 날씨가 우리에게 주는 것은 상상 이상이었다. 고민들, 그 무엇들을 지나 햇빛의 소리를 듣고 선선한 바람의 냄새를 맡으며 이런 날들이 계속 될 것이라는 행복을 감상하고 있었다.
“ 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 환각을 경험할거야”
12월1일
아침은 새가 지저귀고 부지런한 노인들이 정겹게 오고가는 모습은 아니었다. 지난날과는 달리 오늘의 해는 지각하는 듯 하였다. 문제는 먹구름 이였다. 태양의 자리를 가로채고 그들을 내려다보는 먹구름은 그들이 바라지 않은 추위 또한 안겨주었다. 선선한 바람과 햇빛의 연속은 우리에게 12월이 찾아오지 않을듯한 기분을 안겨주었지만 ‘계속되는 가을‘이라는 동화를 믿은 어른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이들은 추위속 입김을 불어 담배를 피는 어른을 흉내낸다. 어른들은 담배를 피며 이번 겨울을 걱정하는 눈치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겨울 보다 봄에 더욱 우울감을 느낀다고 한다. 겨울에는 다가올 봄을 상상하며 얼음이 녹는 순간 자신의 모든 갈등 또한 녹아내릴 것을 기대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봄이 찾아온 후에 사람들의 머릿속에 더 이상 도망갈 계절은 없어지게 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여름에도 겨울이 올것이 두려워 여름을 즐기지 못하는 ‘스타크신드롬’을 앓는 사람들도 적은 수는 아니였다. 하지만 모두가 겨울을 맞이한 오늘, 어쩌면 혹독한 추위의 시작이 그들에게 알리는 유일한 조언은 ‘현재를 살아라‘ 일지도 모른다.
오후가 되어서도 태양은 떠오를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마치 오늘 하루는 아침과 저녁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오로지 밤으로만 이루어진 하루 같았다. 어둠에 기생하는 몇몇에게 이러한 날씨는 오히려 축복이였다. 누군가에게 우울감을 주는 추위와 어둠은 동시에 누군가에게는 바깥을 나가야 하는 이유를 제공해주었다.
계속되는 바람과 추위에 맞서는 사람들은 마치 전사와도 같았다. 조금씩 내리는 빗방울에 사람들은 우산이라는 방패를 들지만 우리의 우산에 가증스러움을 느끼는 바람은 더욱 거센 입김으로 우리의 양 손을 자유롭게 만들었다. 우산 없이 비를 사랑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비바람에 맞서는 사람들을 보며 12월의 첫날 인간이 세운 거대한 탑 속의 카페에서 몇 가지 생각들은 내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우리가 정말 이 땅에서 태어난 생명체라면 우리들은 왜 이 땅위에서 추위와 열기에 죽어나가는 것일까. 우리가 정말 이 땅에서 선택받아 자라난 신의 아들, 딸이라면 고작 몇 번의 차가운 바람에 인간은 자신의 체온을 위해 다른 생명체의 가죽을 벗겨야 하는지, 우리는 다른 이의 땅에 불시착해 살아가는 외계인은 아닐지 많은 생각이 지나간다.
12월 2일
서정적인 겨울비를 원한 이들에겐 실망이었겠지만 12월은 폭우로 시작된다. 겨울은 우리에게 감성과 사념을 반납할 것을 권하고 있었다. 더 이상의 바흐는 없다는 것을 폭우와 추위로 우리에게 이야기 하고 있었다.
몸을 떨며 비를 털어내는 도시의 사람들은 한숨을 쉴 여유도 없다. 그들이 무엇을 꿈꾸는지 알고 있다. 좇겨오며 지나온 삶의 굴레와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만들어진 상식 이라는 기준, 그들은 그저 그 모든 것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그들은 이러한 삶과 매서운 혹한의 관계는 알 수 없었지만 이 둘이 함께해선 안될 것 이라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아이들에겐 겨울방학 이라는 섬이 존재한다. 계속 해서 이어지는 굴레에 추위까지는 감당할 수 없으니 어린 아이들에겐 2~3달의 휴식이 주어진다. 하지만 도시는 어린 아이들에 의해 생명이 유지되지 않는다. 공학은 인간의 삶에 더욱 깊은 자리를 잡고 비바람은 거세지며 그들 스스로를 옥죄고 있었다.
이러한 추위와 이어지는 집단적 우울에도 굴복하지 않는 인간들은 많았으며 일부는 그들을 성인으로 추앙한다. 모두들 손과 다리를 떨며 불안에 휩싸인 눈동자로 이야기 한다. “교활한 농부들과 히피들을 조심하시오.” 하지만 추위에 굴복하지 않는 자들은 이야기 한다. “그렇지 않다. 저 꽃을 보고 저 그림을 보라.” 하지만 그들의 많은 수는 전체의 동의 없이 혹한의 가운데 마음대로 사상을 주입한 죄로 사회적으로 매장되었다.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지만 아직 그들은 12월을 제정신으로 보내본 적이 없다. 진정한 추위를 제정신으로 보내기엔 용기가 부족했을 수도 있다. 그저 그들의 사는 방식이기에 아직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잊지 않은자들은 그들을 비판하지도 판단하지도 않았다.
공학은 인류라는 악마에게 날개를 달아주었다. 더 이상의 바벨탑도 신에게 닿을 순 없었다. 이미 지구의 많은 빌딩들은 바벨의 탑보다도 높이 하늘을 향하고 있었다. 그 빌딩들은 하늘이 높아지며 구름이 낮아지는 착시효과를 보게 하였다. 하지만 몇몇은 이것이 착시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또한 이번은 우리 모두 다른 언어를 구사하는 것과는 다른 상황이될 것 역시 느낄 수 있었다. 구름이 낮아지며 법과 정의엔 금이 가고 있었다.
12월 3일
아직 가정은 사회에서 제 역할을 하고 있다. 어머니는 자녀에게 감성을 제공하고 아버지는 이성을 제공하며 가정을 위한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낮아지는 구름 틈 사이 태양의 존재 자체는 부정 할 수 없듯이 아주 미세한 햇빛은 창문을 뚫고 가정에 전달된다. 미세하지만 파고드는 이 햇빛은 가정에게 자신들의 역할을 다시 상기시켜 준다. 아침의 햇살은 가정의 화목한 대화와 함께 하루의 시작에서 중요한점은 무엇보다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함이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가정의 일원은 이른 아침 꿈속의 먼지를 눈에서 때어내고 식탁에 앉는다. 그들은 이야기를 공유하며 식사를 하고 서로를 공감하며 이해한다. 자녀를 위해 담배를 끊은 아버지와 술을 끊은 어머니, 이러한 희생은 마치 그들이 왜 이 사회에서 중산층으로서의 삶을 이어가는지를 설명하는 듯 하다. 계속해서 매일 같은 웃음과 대화는 이어진다.
12월이 된지는 이제 3일, 변화의 시작을 알리는 첫 번째의 조명탄은 여기 이 식탁 위에서 발사된다. 거대한 발자국의 그림은 문에 그려지며 문의 손잡이는 부러진다. 문은 소중한 손님을 반기듯 활짝 열리며 초대받지 않은 두 남자는 식탁을 향해 사냥용 엽총을 발사한다. 행복한 가정의 대화는 이렇게 막을 내린다. 두 남자는 햇빛이 들어오던 창문을 커튼으로 가리고 성공적인 사냥에 조금은 분노가 가라앉는 기분을 느낀다.
범죄의 동기는 간단하다. 예술을 사랑하며 갤러리를 운영하는 두 남자에게 세상은 더 이상의 살만한 가치를 주지 못하였다. 짧았던 11월의 봄을 제외한다면 사람들은 더 이상 예술에는 신경 쓸 여유가 남아있지 않았다. 날이 더욱 추워지며 인간들은 비상식적인 기준을 만들어냈다. 사람들은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을 비난하며 판단하기 일 수 였고 개성은 혁명과 공산주의의 씨앗으로 받아드려지기 시작했다. 미디어는 항상 아름다운 여성과 멋진 남성만을 보여준다. 마치 그것이 아니라면 인간이 아니라는 듯이 , 모든 고등학생은 대학교에 들어가야 한다. 모든 부모는 자신의 삶을 포기해야 하며 남들의 기준에 맞는 삶을 살기위해선 자신의 꿈을 포기해야했다.
여기서 이 두 남자는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힘이 없는자들은 게으른자가 되고 체제에 의문을 갖는자는 공산주의자가 되었다. 만약 사회가 병들었다면 건강한 일원이 된다는 것이 진정 의미 있는 일인가 그들은 의문을 갖는다. 그리고 이러한 병든 체제에서 남들이 정해놓은 모든 기준을 달성하여 중산층이라는 이름을 달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건강하고 행복한 가정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이러니는 아닐까, 두 남자는 이러한 미친 악습을 끝내고 싶은 마음 뿐이였다.
커튼이 빛을 막자 빛은 자신의 의지를 잃고 다시 한번 폭우를 내리기 시작하였다. 두 남자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계속되는 한파와 폭우속에 인류는 심판을 받는 것 이라는 것을. 그들은 병든 사회의 길거리에서 심판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걸 몇일이고 되뇌었다. 조금은 아이러니 하지만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병이든 사회에서 유일한 유토피아는 감옥이며 그들은 세상과 자신의 멸망을 그나마 자신들이 속하고 싶은 사회에서 보내고 싶었다. 그들은 자백을 결심한다.
햇살이 드는 행복한 가정의 살인사건은 그저 묻지마 살인사건이라는 더 이상 자극적이지 않은 주제로 신문의 한켠에 남을 뿐이였다.
미쳐가는 인간들을 돌보지 않는 사회, 그 사회를 이끄는 사람들의 콧대는 계속해서 높아진다. 그들의 자존감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높아진다. 게으른 자들을 비난하며 그들의 기세는 마치 하늘의 구름마저 낮아 보이게 하였다. 매일 매일 .
12월 4일
혹독한 추위는 사람들에게 정서의 발견의 기회 보다는 오히려 그 정반대의 상황을 제공하였다. 고통과 추위의 연속에 술과 담배의 판매율은 급증하였다.
시계태엽처럼 움직이는 인간들 사이에 아직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부르는 이들은 이제는 히피라고 불린다. 히피들은 아직 우리에게 희망이 남아있다는 것을 얘기하려 노력한다. 그들은 아직 인간에게 믿음을 걸고 있고 소녀와 소년들에게 희망이 달려있다고 믿는다. 어쩌면 미래를 바꾸는 열쇠를 갖은 소년과 소녀들의 노력을 믿으며 그들이 언젠가는 세상이 바꿀 수 있을거라 믿는다. 히피들은 모든 인간들의 노력을 믿는다. 그들은 결혼이란 남성과 여성이 아닌 사랑과 사랑 사이의 일이라고 믿으며 차별을 받아 마땅한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 것을 믿는다.
삭막한 도시라는 도화지는 이제 회색으로 출발한다. 빌딩의 창문들은 더 이상 맑은 하늘의 구름들을 반사시키지 않으며 길가의 빙판은 봄이와도 녹지 않을 것이라는 의지를 안고 얼어있었다. 도시라는 도화지는 주로 인간들로 채워진다. 여기서 히피의 눈을 빌린다. 오늘이 12월이 아니라 하더라도 길을 거닐며 행복한 사람을 과연 몇 명이나 보았는가? 행복이란 것의 달성이 이토록 어려운 것이라는걸 왜 도시는 계속해서 우리에게 이야기하는가.
“ 그렇지 않다. 나는 아직 인간들에게 믿음을 건다. 이유를 물어본다 하여도 나는 아직 악으로 가득 찬 눈들을 믿지 않는다. 서로가 쌓은 기준에 상응하려는 몸부림과 이제는 인류보다 먼저 진화하는 물질들이 정해놓은 선들을 믿지 않는다. 우리는 아직 하늘을 본다. 조금씩 낮아지는듯한 구름들은 우리에게 이야기를 전해주기 위해 우리의 귀로 다가오는 것일 뿐이며 우리들은 아직 그림을 보고 노을을 본다. 모든 생명들이 자기 자신의 우주가 아닌 사람들이 지어낸 행복의 기준이 있는 삶에서 살아간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의 행복을 희생하는 것 또한 믿지 않는다. 나의 어두운 눈으로 세상을 어둡게 관찰하는 투사를 믿지 않는다. 우리는 계속해서 이야기 한다. 일의 연속 이라는 일과를 향해 나아가는 발걸음은 결국 돌아갈 걸음임을 믿으며 어두운 저녁이라도 우리의 필요에는 햇빛의 소리를 듣게 될 것을 믿는다. ”
12월5일
어둠과 추위가 계속된지 5일이 지났다. 고층 빌딩의 어깨와 나란히하는 구름의 메시지를 우리는 읽을 수 없었다. 계속되는 추위와 어둠은 우리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걸까.
40대 후반의 남성에게 추위는 그의 삶에서 이루어진 노력에 보답을 하지 않는다. 그는 치매와 싸우는 어머니와 음악을 전공하고 싶은 딸을 위해 매일을 싸운다. 아침 5시30분 누구보다 먼저 일어나서 하루동안 수없이 더러워질 몸을 씻음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며 자신의 세상을 뒤엎을 용기를 갖고 살아가는 남자지만 보답을 주지 않는 사회를 위한 끝 없는 노력은 그의 삶 자체를 하나의 아이러니로 만든다. 평균적으로 출근하는 시간이 이를수록 늦게 출근하는 이들 보다 경제적 자립도가 낮으며 삶의 만족도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누구에게도 이야기 하지 않았지만 그를 진정 눈물이 가득 차있는 슬픔으로 밀어 넣은 것은 일터의 먼지와 철근의 무거움도 아니였다. 그의 슬픔의 근원은 보상이 없이 매일을 기계처럼 일한 후 퇴근길에 돌아오는 외로움이였다.
그는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며 커다란 꿈을 갖지도 않은 겸손한 남자였다. 그저 일년에 한번쯤은 딸과 어머니와 함께 조금은 다른 장소에서 떠오르고 지는 태양을 보고 싶었고 자신이 이루어낸 노동의 대가로 가족에게 선물을 하고 싶었다. 매일 매일 일의 연속과 수면의 부족으로 외로움속에 그는 자신이 노력으로 이루어내기에 삶이라는 한계는 구름의 높이와 같음을 인지하게 된다. 주머니속 복권들과 울리지 않는 핸드폰은 더 이상 그의 눈에는 자신의 유품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가정을 향한 책임감과 딸과 어머니, 두 여자에 대한 사랑을 놓을 순 없었다.
“ 가끔 우리를 움직이는 동기는 우리에게 큰 아픔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긍정적인 동기로 인하여 매일 자기 자신을 위해서 노동을 할 것을 믿는다. 인간은 자신의 걸음을 위해 신발을 만드는 것을 믿으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바느질을 할 것을 믿는다. 하지만 자신의 노동이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돈을 제외한 보상은 무엇일까. 우리는 아직 꽃들의 향을 믿는다. 자신의 행복이 아닌 무언가를 위해 매일 옮기는 발걸음에서 그들이 언젠가는 벤치에 앉아 호수를 바라볼 것을 믿는다. 우리는 요일과 시간, 숫자를 믿지 않으며 오히려 그 중간에서 여유를 믿는다. ”
남자는 히피들의 이야기에 강을 뒤로한채 난간에서 내려온다. 한참을 걸은 그가 다른 선택을 한 순간이였다.
집으로 돌아간 그의 눈에 들어온 딸과 어머니는 그에게 그의 노력으로는 그들의 행복을 보장할수 없음을 깨닫게 만든다. 히피들의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가 사랑하는 두 여자는 자신과 같은 세상에서 살아갈 것을 생각하며 자신의 한계에 분노를 느낀다. 그는 먼저 나이든 어머니에게 다가가 그녀의 눈을 바라본다. 어쩌면 어머니의 한계에 의해 자신이 이러한 삶을 살게되지는 않았을까 생각하며 어머니의 목의 주름들을 관찰한다. 그는 어머니의 고통을 이해하며 사랑하는 이의 더 이상의 고통을 용납하지 않을 것 이라 다짐한다. 무엇보다 사랑하지만 어쩌면 무엇보다 사랑하기에 어머니의 목을 감싸고 기도를 읊는다. 계속되는 기도의 끝에 어머니는 자신의 무능력으로 빚어진 고통에서 해방된다.
그는 자신의 선택을 존중하지 않고 공포에 떨고 있는 딸을 바라본다. 그의 자녀가 소녀였을 때 그는 자신이 인생을 살아가며 어떠한 고통과 죄를 짓고서라도 그녀의 행복을 위해서 살아갈 것을 다짐했던 때를 떠올린다. 그리고 그 시간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두려움에 떨며 가장의 선택을 받아드리지 않으려는 소녀에겐 머리에 몇 번의 충격이 가해진다. 그는 자신을 매일 움직이게 하던 그의 동기를 제거하였고 자신의 삶을 가장 행복하고, 행복하기에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암을 인생에서 제거하였다. 그는 이제 자유의 몸이 되었다.
두 여자의 혼이 집을 떠났을 즈음 남자 또한 자신이 떠나야 할 때임을 깨닫는다. 모두와 마찬가지로 그는 한번도 죽어본적이 없기에 앞으로 자신에게 펼처질 여정을 조금은 기대하는 눈치다.
사람들은 극심한 고통에게 떠밀려 지하철에 뛰어든 남자에게 자신의 출근 시간을 지연시켰다며 비난하고 수 많은 소년과 소녀의 죽음을 정치적 목적이 숨어있다며 비난한다. 우울함에 고통을 겪으며 자살을 시도하는 이들에겐 죽을 용기로 살아보라고 조언한다.
하지만 남자에게 지금 이 순간은 죽음보다 이 삶을 이어가는데에 더 큰 용기가 필요해보인다. 겸손한 그의 삶의 끝나는 죄목은 용기의 부재이며 다시 죽음을 앞둔 순간 주님은 그에게 새로운 역할을 부여하기 위하여 그의 죽음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의 새로운 인생은 감옥이라는 협소한 공간에서 새로 시작될 뿐이였다.
모든 광경을 바라보던 구름의 한숨은 세상의 모든 먼지를 날려 보내었다. 힘이 빠져 처진 구름의 어깨는 오늘의 아침 보다 더 낮아진 듯 하였다.
계속되는 집단적 우울에 사람들은 자신이 불행해지는 것을 걱정하며 불안에 떨고 있다.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가치를 찾는 여정은 많은 성인들이 그러하였듯 극심한 고통을 수반하였다. 12월의 오늘 미디어를 바라보는 모든 사람들은 순례의 길을 나서게 되었음을 짐작한다.
12월6일
우리가 매일 지나가는 출근길,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는 만남의 장소에서 누군가가 당신에게 한 가지 이야기를 해준다면 당신은 그 자리에 서서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 있을까? 아니면 늘 그래왔듯이 도시에 불어오는 매서운 바람 중의 하나로서 이야기를 스쳐 지나갈까.
“우리는 기계가 아닌 인간이다. 우리를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첫 번째 가치는 내가 아닌 다른 인간을 위하는 순간 그 자체이다. 나는 아직 인간을 믿는다. 내가 믿는 같은 인간이 돌이키기 어려운 선택을 하였다 하더라도 나는 아직 인간을 믿고 있다. 우리는 언제쯤 우리가 이 땅에 사랑 하기 위해 내려온 것을 믿게 될까. 그들은 총과 마약이 인간을 죽인다고 이야기 하지만 사실은 이러하다. 매년 총이 앗아간 생명보다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거두는 수는 압도적으로 우세 하였으며 국가라는 테두리 안에서 40초에 한명씩 스스로의 목숨을 끊고 있다. 만약에 우리에게 타인의 고통을 완전히 이해하고 나누려는 본능이 있다면 우리는 40초에 한번은 죽음을 겪을 정도의 우울감과 고통을 느껴야한다. 대학에 입학하기전 우리는 12개의 반을 지나온다. 그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는 한 반에 한명, 그저 즐거웠던 학창시절, 창가에 앉아 바람과 씨름하는 커튼을 묶고 창밖의 체육시간을 바라보던 학창시절을 떠올린다면 그 반의 한명은 지금 더 이상 숨을 쉬지 않고 있다. 학창시절을 떠올리기 싫다면 늘 그래왔듯이 출근길을 생각해보자 당신은 일터로 향하기 위하여 지하철에 몸을 담는다. 그리고 40명 가량이 탑승한 그 한 칸에서의 한명은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 여기서 착각하지 말아야 할 중요한 포인트는 그 지하철 칸의 사람의 수는 41 명이 아닌 40명이라는 것이다. 당신은 더 이상 우울감에 휩싸인 이들의 관찰자가 아니며 사십분의 일에 속하는 생명이자 확률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우리의 본능은 사랑이다. 단순한 번식의 욕구를 넘은..
12월7일
12월7일 , 7일의 시작은 광장의 히피의 사망으로 시작된다. 사람들은 지쳐간다. 사람들은 추위에 지쳐가며, 낮아 지는 구름에 대한 궁금증에 지쳐간다. 사람들은 지쳐가며 월급을 기다리고 친구의 부탁을 외면하며 아내의 조언을 피하는 것에 지쳐간다. 그저 이 모든 현실을 잊고 싶을 뿐이다. 그들은 모든 것이 괜찮아 질것이라는 이야기에 지쳐가며 그들은 희망을 갖기에는 부정적인 감정 또한 포용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러기엔 너무나도 지쳐간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움직이기엔 너무나도 지쳐있으며 그저 현실을 잊게 해주는 텔레비전만이 그들의 삶을 위로한다.
현대의 사회에서 한 남성이 직업을 잃는다는 것은 그의 생사의 존폐 여부에 영향을 끼친다. 더 이상의 정장과 넥타이가 필요 하지 않게된 남성에게 세상은 새로운 해결책을 주지 않는다. 그는 바로 지금 이 순간부터 다음 달의 월세를 내야할 방법을 찾아야한다. 하지만 그 보다 더욱 큰 상처는 그의 사회적 지위의 박탈이 그가 진심으로 믿었던 인간 관계를 유지할 자격의 박탈이라는 사실에서 찾아왔다. 단순히 그가 더 이상 책상에 앉아서 자신의 원치 않는 일을 할 수 없게 됨으로서 자신의 사랑들은 떠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했다. 이해하긴 힘들지만 그것은 현대식 사랑의 방식이였다.
오늘 모든 것을 잃은 그에게 가장 큰 고통은 내일의 희망이였다. 내일의 희망은 그가 오늘 더욱 깊은 고통을 인내하고 기다려야하는 이유가 되었다. 오늘의 그는 어제의 히피의 이야기에 질리기 시작한다. 오늘의 그는 자신의 내일을 바꾸기 위하여 어제의 히피의 머리에 벽돌을 던진다.
“ 내가 원하는 것은 이제 집에 가서 텔레비전을 보는 것 뿐이야.” 히피에겐 시민권도, 보험도, 자신이 살아있다고 외쳐줄 어떠한 숫자와 자료는 남아 있지 않았다. 명백히 히피의 살인은 살인이라고 보기는 힘들었다.
12월 8일
사람이 많이 모인 광장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날 때 많은 사람들이 도망을 가는 이유는 오직 단 한가지다. 나도 저렇게 살인을 당할까봐. 하지만 어제 히피의 죽음에서 도망을 간 사람들의 수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극심한 추위와 눈보라속에서 햇빛을 운운하는 이야기에 경멸을 느낀 이유도 있지만 사람들이 도망가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그것이 살인사건은 아니였기 때문이다.
12월에 태어난 신생아들에서 기형아의 출산이 급격히 증가하였다. 많은 사람들은 내리는 비에 방사성 물질이 다량 함유된 것을 문제로 지적하였지만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도시라는 기계가 돌아가는 톱니바퀴를 멈출 수 없다.
이 톱니바퀴는 우리의 아버지와 아버지의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이 땅에 오기 전에도 계속해서 돌아가고 있었다. 톱니에 낀 기형의 인류는 계속해서 돌아가는 톱니의 날을 마모시키는 장애물이였다.
아이들은 자신의 자아를 인식하게 된후 부모에게 ‘내가 왜 이 순간 나로서 여기에 있는가’를 다양한 방법으로 끊임 없이 질문을 남긴다. 그리고 부모들의 대답은 과학과 신 그리고 황새 등으로 아이의 지적 갈증에 도움을 준다.
하지만 이제는 황새가 날아오기엔 하늘이 너무 낮아진 탓일까 어쩌면 수 년전에 이루어 졌어야 할 법은 오늘 12월8일통과 되었다.
12월9일
그녀의 생일은 12월9일 이다. 조금은 추운 날씨에 이 땅에 도착 하였지만 태어난 순간부터 그녀의 눈을 바라본다면 그녀가 모든 해답을 쥐고 있음은 바보라도 알 수 있었다. 호기심과 선함으로 가득 찬 눈동자를 바라본다면 그녀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녀를 타락시키는 어떠한 어둠도 용서 할 수 없을 것이다.
부모의 끝 없는 사랑을 받으며 신발을 신지 않고 잔디를 밟으며 걷기를 사랑하였다. 그림을 그릴땐 한번도 붓을 사용한 적이 없었다. 살아오며 많은 이성에게 사랑한단 이야기를 들으며 많은 친구들에게 누구보다 큰 웃음과 행복을 주었다. 언제나 위인전 보다는 동화를 즐겨 읽었으며 가끔 그녀에게 힘든 일도 있었고 넘어지는 순간도 있었지만 그녀는 항상 넘어지는 그 자리가 꽃밭이라 생각하며 이른 시간에 그 꽃밭을 떠나진 않았다.
그녀의 부모는 그녀의 실수들을 눈감아 주었고 그녀가 자신만의 가정을 차릴 무렵 자신과 닮은 딸을 낳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부모님이 그러 하였듯 끝 없는 애정을 쏟으며 딸의 미소를 지키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그녀는 매년 돌아오는 혹한의 겨울을 막을 방법을 알게 되지만 그녀는 존재 하지 않는다.
12월8일 낙태는 합법이 되고 12월9일 출산 예정 당일 부모는 낙태를 결정한다. 이유는 간단하였다. 경제력의 부족.
아직은 자아의 의식이 없으니 명백히 살인은 아니었다.
줄어드는 인구의 수는 생산성에 저해가 될 수 있으니 돈이 없다면 기형의 아이들은 낙태 대신 종교의 보육기관에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12월10일
오직 죽음만은 빛 보다 빠를 것이다. 추위에 자신을 지킬 힘이 전혀 남아 있지 않은 노인들은 비어있는 건물과 공원들을 전전했다. 노인들은 움직이는 타임머신 이였으며 시간이 흘렀음의 증거 또는 지표로 남아있을 뿐이였다. 도시와 빛의 유일한 공통점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 이다. 우리가 빛과 같은 속도에서 빛을 마주본다 하여도 빛은 계속해서 나아 갈 뿐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나아간다. 우리는 도시에 몸을 담은 순간 이후로 계속해서 나아가며 더욱 빠르게 전진하기 위하여 하나가 되어 나아간다. 우리는 생각을 공유하며 나아가는 것에 해가 되는 개개인과 이해할 수 없는 사념들을 배척한다.
노인들의 5명중 1명은 극빈한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빛의 본능을 갖고 태어난 우리는 계속 나아가기에 그들을 돌볼 여유가 없다. 어떤 이들은 쓰레기를 뒤지며 살아가고 어떤 이들은 종이를 줏으며 살아간다.
“인간은 쓰레기를 뒤지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 만약 그렇다고 한들, 누가 그 사실을 받아드릴 수 있을까”
폭풍이 점거한 도시에서 사람들은 하늘을 바라본다. 우리의 문명이 높아지는 것 일까 하늘이 낮아지는 것 일까 천둥을 머금은 구름은 계속되는 소음으로 우리를 불안하게 만든다. 푸른 어둠은 바람을 타고 사람들을 덮친다. 우리의 가장 큰 본능인 호기심은 무시하고 싶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질문을 남긴다. 우리가 하늘 만큼 높아지고 발전한다면, 아니면 하늘이 우리 만큼 낮아진다면 그날 우리는 어디에 서 있을까 .
12월11일
내가 원하지 않는 사건들로 이루어진 하루가 내 자신을 표현한다면, 나는 거짓말쟁이 인가? 출근과 퇴근, 음주의 반복이 내 자신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같은 거리를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에 값 비싼 외제차를 타고 다니는 내 모습은 나를 대표하는 것 일까? 우리는 왜 동등한 기회를 가지고 태어나지 않을까?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겐 왜 보이지 않는 등급이 매겨지고 있을까? 매일 매일 작성하는 서류와 엑셀 파일들이 나의 자아실현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가난하고 기회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존엄성 이란 무슨 의미 일까?
한 단계 허리를 숙이며 우리에게 분노와 신경질을 내는 듯, 천둥 같은 고함을 지르는 하늘의 구름은 우리의 머릿속 질문들을 바람으로 날려 보내었다. 12월의 강추위에 질문과 공상이라는 여유는 주어지지 않는다. 구름은 인간에게 새로운 바람을 불어 넣는다.
열심히 일을 하지 않으면 바보가 된다. 열심히 글을 쓰지 않으면 바보가 된다. 열심히 살아가지 않으면 바보가 된다. 경쟁에서의 도태는 존엄성의 상실에 대한 암묵적 동의이다. 남을 위하는 것은 오늘 보다는 내일의 주제이다. 열심히 일을 하지 않으면 바보가 된다. 매일 같은 시간 성실하게 출근하는 것이 삶의 유일한 목적이며 성공의 지름길 이다.
우리가 진정 누군가의 계획에 의해 만들어진 창조물 이라면 우리에겐 분명 목적이 있을 것이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 , 자연을 경배 하는 것, 내면을 탐구하는 것 하지만 우리는 그저 우리에게 목적을 줄 수 있는 구름을 따를 뿐 이다.
12월 12일
계속해서 거대해지며 고도가 낮아지는 구름들은 천둥의 소음과 함께 도시를 점거하고 있다. 자연의 이치를 거부하며 항상 제자리에 머무는 것을 거부한 구름의 하강은 진리와 이치의 파계와 변화의 시작을 알렸다. 대기의 산성 농도와 중금속 농도는 불과 한달전과 비교하기에도 치명적인 수준이 되었고 많은 사람들은 호흡기에 문제가 생김을 느끼고 있었다.
혹독한 추위에 기침을 하는 사람들은 도시의 길가에 피를 토하고 있었다. 수 많은 피는 추위에 기화되어 다시 구름으로 향하고 있었다. 호흡기로 손쉽게 전염되는 대기의 바이러스는 인간들이 손 쉽게 정복할 수 있지만 자본주의는 정복할 수 없었다. 백신의 가치는 수 백만원을 호가 하였지만 생명의 갈림길에 선 이들에겐 그리 비싼 가격은 아니었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몇 백만원이 없어서 도시의 병마에 굴복할 수 밖에 없지만 어떤 이들은 자신의 능력으로 백신을 구입할 수 있지만 병마와 함께 잠드는 것을 선택하였다. 추위 속 창궐하는 전염병은 인간을 고통 없이 죽인다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다.
삶에 지친 노동자들에게 각자의 인생은 과연 몇 백만원의 가치를 하고 있을까?
피로 물드는 빈민가의 골목은 이미 답을 하고 있다. 어쩌면 어려운 질문이 아닐 수도 있을 것이란 근거는 아무도 삶을 선택에 의해 얻지 않았기 때문이다.
천둥의 소음을 내는 구름은 많은 양의 중금속과 네온, 아르곤을 품고 붉은 빛을 띠고 있었다. 만약 이것이 종말의 시작이라면 가장 아름다운 형태의 종말일 것이다.
시간이 흐르며 사람들과 도시 그리고 우리는 조금씩 정신을 잃는다.
12월 13일
위스키 히피 도시 구름 추위 비 눈 바람 LSD 전진 파시즘 학살 등급 차별 가치 환경 산성 창조 죽음 공학 소통 이기주의 수면 유산 혼란 상식 문학 카나비 향 빛 시간 공간 거울 나무 랭보 음악 유산.
열심히 일을 하지 않으면 , 바보가 된다.
열심히 글을 쓰지 않으면 , 바보가 된다.
혹독한 추위 속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는 소통이 오염되어 단어들이 바람에 날려 다니는 혼란의 메카이다. 우리는 더 이상 청정 국가에 살아가고 있지 않다. 어쩌면 히피들의 이야기가 맞았을지 모른다. 거대한 회색 빌딩들 속으로 향하는 붉은 구름, 우리의 사념을 구름위로 날리려는 교활한 농부들과 그 사이, 우리는 그림을 보고 꽃을 본다.
도시의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원하는 만큼 꿈을 꾸게 해주는 약이 유행하고 있었다. 평소보다 수 백배의 집중력을 가지고 꿈을 꾸게 되어 마치 현실처럼 느껴지게 만들어주는 꿈의 약은 놀랍게도 우리의 신체에 아무런 나쁜 영향을 주지 않았다. 일부 히피들 사이에선 우리가 꿈에서 계속해서 반복적인 이미지를 그리다 보면 그것이 현실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돌았다. 약의 유행은 불 보다 빠른 속도로 퍼지고 있었다.
더 이상 치안에 신경을 쓰지 않는듯 하였던 정부도 꿈의 약을 퇴치하는 것엔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사람들이 추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꿈을 필요로 했고 그들이 정부에게서 숨고 도망을 다니며 정부는 공동체에서 제외된 모습을 보였다. 그 결과로 폭력범죄의 검거율은 바닥을 향하고 있었다. 모든 폭력과 범죄를 용납해 준다면 화를 풀곳이 필요한 사람들은 적은 수가 아니였다.
12월 14일
꿈의 이야기
우리는 무의식과 의식의 로테이션 그 가운데 존재한다. 먼 여정을 떠나야 하는 우리는 수 많은 양의 의식을 지니고 걸을 수 없으니 우리는 많은 것을 무의식속에 담아둔다. 하지만 어느날 우리가 의식하는 모든 것이 오히려 주체인 나 자신을 무의식속에 담아두고 싶게 만드는 것은 나의 타락일까 나를 담은 도시의 타락일까. 도시는 많은 아웃사이더들이 도시의 중앙을 바라보며 살아간다. 하지만 아웃사이더들에게 더 이상 의식하고 싶은 현실은 없으며 의식하고 싶은 도시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오히려 바깥이 아닌 내면을 바라보며 꿈에 잠긴다.
꿈의 이야기
다시 앞으로 걸어가고 있다. 안개가 자욱한 거리를 걸어가며 수 많은 사람들을 바라본다. 그들의 고민들을 느끼며 그들의 행복 또한 느낀다. 내가 숨을 수 있는 도피처는 행복이 가득한 곳이길. 안개와 연기 속 나는 비상하며 도시를 떠난다. 나무 위의 새들이 겨울을 피해 살아가며 여름만을 즐기듯 나 또한 비상한다.
은빛 바닥의 재를 구름판 삼아 나는 뛰어 오른다. 이곳은 구름과 추위가 점거하지 않은 곳. 끝 없이 펼처진 가로수길의 하늘은 하루에 4번의 노을이 진다. 내가 마시는 와인은 나의 식도를 타고 다시 하늘에서 바닥으로 솓구친다. 내가 들이 마시는 담배연기는 내가 걸어가는 길을 안개로 매운다. 나는 모든 에너지에서 내 자신의 아카펠라를 느낄 수 있으며 나는 다시 도시가 되어간다.
나의 세상, 하지만 나의 등뒤엔 붉은 소음과 고통스러운 찬 바람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다.
12월 15일
높은 빌딩의 옥상, 우리는 구름을 내려다 본다. 붉은 빛의 천둥을 머금은 구름을 바라보는 우리는 구름 속 무엇이 있을까 호기심을 갖는다.
그들의 기억이 정확하다면 9살 때 바라본 하늘은 지금 우리가 내려다보는 하늘과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이다. 하늘이 변한 것 일까 내가 변한 것 일까. 우리가 도시에 물들기 전 우리는 하늘을 바라보며 구름위의 왕좌를 상상하였다. 우리가 매일을 일터와 관계에 목매이며 살아가는 동시에 9살의 우리는 구름 위를 뛰어 넘어 다닐 수 있음을 믿고 있었다.
혹독한 추위에 사람들은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지만 아직 몇몇은 구름을 주시하고 있다. 그들에게 지난 15일은 마치 15년과도 같이 느껴졌고 시간은 우리에게 아무런 힌트 조차 주지 않은 채 흘러가고 있었다.
우리가 아이였을 때 우리는 구름 위를 뛰어 다닐 수 있음을 믿었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왜 나와 다른 이에게 비굴해져야 하며 잘못됬음을 인지하는 모든 사건에서 아무런 소리를 내지 못한채 갇혀 있어야 할까.
구름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이야기 한다.
이것이 정말 내가 원하는 삶일까. 추위는 너의 등을 민다.
붉은 불빛은 너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시간이 흐르며 모든 것, 모든 것이 괜찮지는 않음을 오늘이 돼서야 인지한다.
우리가 아이였을 때 우리는 구름 위를 뛰어 다닐 수 있음을 믿었다. 혹독한 추위는 우리의 등을 민다.
그들은 붉은 구름위로 비상 하였고 구름속에 자신을 가두며 자유를 얻었을 때 아무도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떨어지지는 않았다. 너는 어디에 있을까.
12월 16일
도시라는 이름의 올가미.
붉은 구름의 입김은 우리에게 추위만을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다. 차가운 공기가 이동하며 우리에게 이야기 하는 것은 , 결국 우리 개개인 모두 이 도시에 어울리는 인간들 이라는 것.
어떤 사람은 나보다 좋은 직장에 다니고, 콘크리트의 회색은 우리의 마음속을 회색 빛으로 바꾸어 간다. 어떤 이들은 나보다 훨씬 잘생기고 이쁜 모습이며 어떤 사람들은 나보다 훨씬 좋은 차를 운전하고 더 많은 소비 생활을 하며 살아간다.
“당신이 이미 갖고 있는 것을 사랑하기 전까지 새로운 것들은 당신에게 찾아가지 않을 것 이다 ”
우리는 너무나도 지쳐있다. 내가 갖은 것을 사랑하기엔 우리와는 너무나도 다른것들로 둘러 쌓여 있고 새로운 곳으로 향하기엔 도시를 떠날 용기가 나지 않는다.
거리의 히피들은 이야기 한다. 어쩌면 혹독한 추위와 알 수 없이 낮아지는 붉은 구름은 종말의 시작이 아닌 그저 그 자체일 뿐이라고. 그들은 추위 조차 신경 쓰지 않는듯한 모습을 보인다. 우리가 호기심에서 나온 불안 속으로 뛰어 들어가는 순간, 그곳에 유토피아가 있다고 믿는다.
구름은 우리에게 자신을 찾아오라고 이야기 한다. 인간들은 등급이 매겨지고 존엄성을 잃어간다. 따스한 햇살과 꽃밭들을 바라보며 위안을 얻고, 공학이 아닌, 의식의 발전은 가능성을 찾아 볼 수 없다.
유토피아는 당신이 가장 두려워 하는 그곳에 있다.
12월17일
햇빛 하나 들지 않는 도시라는 정글 속 거리의 피를 닦고 있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바라보면 우리는 정말 행복한 세상에서 살고 있나 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바람은 사람들의 등을 떠밀고 천둥의 소음은 그들이 소통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고통스러운 12월의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있었다. 병마와 추위, 치솟는 자살률에 인간들은 진심에서 부터 눈물이 흘러나올 행복한 유토피아를 찾고 있다.
“나는 어쩌면 넘어져도 꽃밭인 아름다운 인생을 살고 있다. 사람들은 도시가 잔인한 기계의 세상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그 안에서도 아름다움을 매일 발견하며 살아간다. 구름은 계속해서 우릴 향해 다가오지만 나는 오히려 우리가 구름을 향해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의 모든 형제들은 잿빛의 도시에서 붉은 구름의 아름다움을 발견 하였다. 구름은 우리의 눈처럼 붉었으며 구름에서 뿜어져 나오는 낙뢰는 우리의 머릿속 잡념을 끊어 주었다. 도시의 추위에서 행복을 찾기에 우리는 편집증에 시달린다. 우리의 목소리는 낮아지며 잦은 기침에 시달린다. 나는 우리 모두가 먼 길을 왔음에 자랑스럽고 우리 모두가 잘못된 길을 왔음에 마음이 아프다. 나는 이번 겨울이 우리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으며 더 이상 피상적이며 물질만능적인 도시의 겉 치레에서 벗어나 나를 따라와 꽃에 불을 피워 행복을 느끼고 유토피아를 찾아서 비상하길 원한다 ”
도시의 올가미는 사랑을 찾아 떠나는 사람들의 발목을 잡을 수 없다. 음악과 꽃을 사랑하며 아름다움에 목매는 사람들의 관심을 얻을 수 없다.
12월18일
도시의 거리, 빌딩의 유리창을 깨며 넘어오는 붉은 구름의 바람은 우리 모두를 현혹 시킨다. 많은 히피들은 거리에서 살해 당하였고 노동자들은 그들의 피를 닦고 그들의 목걸이를 훔치며 삶을 조롱하였다. 하지만 구름이 우리를 찾아오는 순간을 두려워하는 많은 사람들은 어쩌면 히피들의 이야기가 맞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된다.
“우리는 수 많은 꽃과 환각속에 살아가는데 왜 도시의 불평에 얼굴을 찡그리는가 , 우리는 언제 즈음 우리가 이땅에 사랑하기 위해 태어났다는걸 알게 될까”
우리가 부모의 도움 없이는 신발끈도 매지 못하였을 때부터 오늘날 매일의 출근과 퇴근을 반복하는 지금 까지 무엇이 달라졌을까 어쩌면 우리는 부모의 도움 없이 신발끈을 맬 수 없는 아이의 모습에서 크게 달라진 것이 없을 것이다. 우리는 아직도 혼란스럽고 도움이 필요하다.
도시의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을 신발도 없이 걸어오며 눈물을 흘릴 때, 붉은 구름의 아래에서 추위를 느끼며 어디로 가야할지 모를 때, 인간들이 세운 규칙이 종교를 넘어서고 사람들의 피상적인 사념이 서로에게 다가가지 못하게 할 때, 많은 사람들은 경제적인 활동을 포기하고 히피들을 따라 나서게 되었다.
“ 우리는 꽃에 불을 붙이며 , 더욱 진해지는 색들의 빛에 시선을 뺏길 것이며 아름다운 음악을 듣는 이들에게 참을 수 없는 사랑을 느낄 것이다. 구름이 끝 없이 낮아지는 날에도 우리는 오히려 비상할 것이다. ”
12월 19일
붉은 구름은 한 남자에게 매서운 바람을 불고 있다. 눈보라를 몰아치며 남자와의 소통을 요구한다.
그는 남과 다를 것 없이 평범한 삶을 살아왔다. 모두가 그래야했으니 그는 대학에 진학 하였고 대학을 졸업하니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빚을 어깨에 짊어지고 사회에서의 삶을 이어간다. 빚을 갚고, 살아야 할 곳을 찾아야한다. 그저 생존을 위해 살아간다. 어떤 날은 고객에게, 어떤 날은 상사에게 폭력을 당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자존심이 얼마나 잘났다고 한들 빚을 갚아주진 않는다. 그리고 그는 생각한다. 이것이 정말 내가 원하는 삶일까. 아니면 도시는 내가 이러한 삶을 살기를 진정으로 원하는 것일까.
그는 새로운 선택을 할 시간이 왔음을 깨닫는다. 구름이 나를 찾아 오는날이 올 것이다. 아니 어쩌면 내가 먼저 찾아갈 것이다.
그는 숟가락 위 마법을 시도한다. 흰색의 가루들은 마치 따듯한 여름의 구름을 연상시킨다. 여름의 뜨거운 열기는 도시 위의 구름을 녹이며 구름은 끓어 오르기 시작한다.
“하나님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길을 잃고 있습니다.”
구름들은 녹아 비가 되어 남자의 혈관에 흐르기 시작하며 항상 그래왔듯이 빗물은 거리를 씻어낸다. 남자의 동공은 길을 잃었지만 분명 행복해 보인다. 그에게 모든 것은 놀라움이며 한 가지의 쾌락에 집중한다면 그곳에서 헤어나올 방법이 없어 보인다. 이미 시간을 초월한 그는 31일을 찾아 나선다. 도시에 빛이 없음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의 마음속엔 누구보다 밝은 빛이 있으며 그 빛은 더욱 밝은 붉은 빛을 향하고 있었다.
도시는 늘 사랑을 찾아 나서는 순진한 영혼들에게 상처를 준다.
12월 20일
혹독한 추위와 붉은 구름의 출현은 사람들을 광기로 몰아 넣었다. 수 많은 히피들은 무언가에 취한 상태로 도시의 사회인들에게 삶을 빼앗기고 있었다. 유래 없던 테러의 연속으로 사람들은 사상과 사회의 일부가 되기를 거부하였다. 그들은 종교를 거부하였으며 자본주의를 거부하였고 민주주의를 거부하였으며 사회의 구성원이 되는 것을 포기하였다. 언론에서 보여주는 사회의 몰락은 개인의 몰락보다 끔찍할 수는 없었다.
붉은 구름과 그녀의 대화.
그녀는 늘 모자라는 것이 없이 자라왔다. 그녀에게 필요한 모든 것은 그녀의 부모에 의해 충족되었으며 그녀가 학교를 졸업할 즈음 그녀의 사업을 위해 돌아올 것을 기대하지 않는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훌륭한 사회의 구성원이 되며 지역의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며 살아가는 그녀는 가끔 예전이 그립다.
가계의 이득과 손해를 계산하는 것 보다는 순간을 사로잡는 시를 읽는 것에 심장은 더욱 뛰었다. 사람들에게 내가 어떻게 보여질까 걱정하는 것 보다는 아름다운 음악에 가슴이 설레여 눈물이 흐를 것 같은 순간들이 더욱 그리웠다. 먼 거리를 운전하며 하루의 계획을 세울때에 그녀는 모든걸 멈추고 아름다운 그림 한편에 빠져서 하루를 보내고 싶었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모든 것이 가능한 세상에서 살아왔다. 이번엔 시간을 되돌리기로 결심한다. 잿빛의 도시에서 순수의 결정체인 흰색만을 모아 줄을 세우며 아름다움 앞에 큰 숨을 들이 마신다. 조금씩 몰려오는 우울감은 그녀를 10대로 돌려 놓은 듯 하다. 눈은 바깥이 아닌 머릿속을 바라보며 코에서는 피가 흐르지만 그녀 또한 행복감에 31일을 찾아간다.
구름은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
12월21일.
붉은 구름은 이제 거리의 대부분의 빌딩보다 키가 낮아졌다. 구름이 우리에게 다가오면서 구름과의 소통은 더욱 잦아졌다. 거리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침을 하며 피를 흘리고 와해된 언어를 구사하며 분열의 전조를 보이고 있었다. 눈보라가 치며 평소보다 큰 천둥이 치는 때에는 거리에서 폭력이 끊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늘 서로를 비난하며 누가 더 잘났는가에 대해 이야기 한다. 히피들이 없는 거리에 사람들은 꽃을 잊으며 살아간다. 사람들은 음악을 잊으며 살아가고 예술을 잊으며 살아간다.
거리에 부모를 잃은 소녀가 제자리에 서있다. 그녀는 하루종일 자신의 자리를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누구보다 아름다운 어린 소녀이지만 길을 잃은 도시에서 어디로 발을 뻗어야 할지 용기가 나지 않는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그녀를 처다보지만 대부분은 판단의 눈빛 이였으며 누구도 그녀에게 옳은 길을 가르쳐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구름은 그녀에게 길을 알려준다. 차가운 바람으로 그녀의 등을 떠밀며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를 말한다.
“ 너는 그 무엇보다 아름다우며, 너가 땅 보다는 하늘을 자주 봤으면 좋겠다. 거짓말 보다는 시 한편에 귀를 기울이기를 바라고 돈 보다는 너가 믿는 것을 좇아가기를 바란다 ”
혹독한 추위에 발을 땐 그녀는 건물의 옥상으로 향한다. 누구든 자신이 항상 바라보는 곳으로 향하게 되어있다.
붉은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12월22일
더욱 낮아지는 구름은 우리의 어깨를 짓누른다. 강해지는 기압에 사람들의 호흡은 거칠어 지며 그들을 육식동물로 탈바꿈 시킨다. 거센 바람에 빌딩들의 유리창은 모두 깨져있으며 간판들은 더 이상 하늘위에 자리 잡지 못하였다. 이제는 누구든 하늘을 내려다 볼 수 있었으며 하늘의 위에는 어둠뿐이었다. 사람들은 구름이 땅에 닿는 날 , 어둠에서 살아갈 공포에 휩쌓이게 된다. 많은 사이비 종교들이 종말을 예견하며 많은 노동자들은 노동의 가치를 깨달으며 조용히 종말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들은 열리지 않을 판도라의 상자와의 싸움에서 지치고 있었다. 하지만 도시는 매일의 같은 일과를 강요하였다. 예민해지고 예술을 잊고 살아가는 사람들 중 도시의 야경과 날아가는 새에 순간을 사로잡히는 사람들은 매우 적었다. 붉은 구름이 불어내는 입김은 우리에게 순간적인 여정을 떠나게 하였다.
마치 어린 아이의 꿈처럼 그들은 붉은 구름 위를 걸어 다니며 끝 없는 황홀의 길을 걷고 있다. 그들의 확대된 동공은 무엇을 바라보는지 알 수 없었다. 미칠 듯이 사랑하던 사람의 향기와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의 그림자는 구름 속에 존재하는 듯 하였다. 모두들 자기가 있어야 할 곳은 냉혈의 도시가 아닌 사랑의 향기가 흐르는 구름 속 일것이라 확신한다. 모두는 자신이 사랑의 행복을 위하여 태어났다고 믿지만 그것을 위해 살고 있지는 않았다.
총알은 총과 함께 가지 않으며, 화살은 활과 함께 하지 않는다. 그들은 유토피아를 확신하며 영혼은 육신을 떠나 구름 속으로 흘러간다.
구름을 바라보는 그들의 눈은 붉어진다.
12월23일
돈의 가치는 얼마일까 . 영원은 얼마나 긴 것일까. 관계는 나의 행복을 위한 것 일까.
가끔은 우리 자신조차 져버리게 만든다.
가끔 영원은 순간 보다 짧다.
나의 행복에 진심으로 기쁨을 느낄 사람은 몇 명일까.
도시의 많은 사람들은 매일의 일과를 저버리고 히피들을 따르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하늘의 왕국이 땅을 점거함을 믿으며 그 안에 자신이 찾는 해답이 있을 것 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들의 붉은 눈은 구름을 바라보지 않을때도 지옥 보다 붉었다.
많은 이들은 도시의 혼란속에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지 않는다. 그들은 붉은 눈의 행복의 강요들로부터 도망치며, 붉은 구름으로부터 도망치고, 매일의 일과로부터 도망치고 있었다. 계속해서 도망치는 삶에서 그들은 문을 찾게 된다.
어떤 이는 거대한 나무에서 문을 발견하고 들어간다. 어떤 이는 햇빛을 막아주는 커튼에서 문을 발견한다. 또 어떤이는 길을 걷는 와중에도 자신도 모른채 문에 들어가기도 하였다.
“ 햇살이 너의 피부에 닿을땐 너의 마음 또한 그러길, 생각하지 못한 순간에 음악이 흐를땐 잠시라도 음악에 갇혀 너만의 순간을 간직하길, 우리가 길을 잃고 하늘에게 어디로 가야할지 질문하는 순간에도 누군가를 향한 그리움을 안고 미소를 잃지 않기를 ”
그들은 문에서 나온다. 눈은 붉어지며 도피처를 찾는 자신들의 모습을 발견한다.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거대한 우울감이 몰려오지만 그곳에서의 달콤함에 지금의 자리를 떠날 수 없음을 확신한다.
12월24일
크리마스이브의 아침 , 구름은 낮아지며 기압은 강해지고 바람은 그 언제보다 강하였다. 사람들은 공포에 떨며 자신을 놓아 버린지 오래였고 붉은 구름의 이야기에 아무도 도시를 떠나지 않았다.
도시 외곽의 거대한 저택의 화재는 도시의 혼란을 가중시켰으며 저택에서 피어오르는 불길은 하늘에 쉽게 닿으며 마치 수 많은 별이 가득 찬 우주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매서운 추위에 얼어버린 무덤가는 그 언제보다도 소란 스러웠다.
“ 나는 한 평생 마귀와 그림자에 시달리며 살아왔다.”
“ 나는 너가 행복하기 보다는 남보다 행복하길 원해”
“ 가끔은 내가 모든 것으로부터 떠나고 싶을 때, 마귀가 나를 점거하기도 한다 ”
“ 수준이 낮은 계층들을 보는건 고통스러운 일이야”
“ 구름이 나에게 오기전에 도망치고 싶어”
“ 나는 후회만이 가득 한 삶을 살았어”
“ 내가 선택을 할 수 있던 수 많은 상황들에서 나는 계속해서 실수를 해왔어”
“ 마귀는 나에게 기회를줘 다시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를”
“ 쾌락은 나의 가장 거대한 동기야”
“ 수백번의 시간을 되돌리며 계속해서 같은 실수를 반복했어”
음과 양의 조화는 무너진다.
붉은 눈의 히피들은 망령됨이 24일을 오염시키는 것을 바라볼 수 없다. 구름은 우리에게 무덤 위에 십자가를 꽂아 태우기를 원하고 있다. 죽음을 느끼게 하는 추위에도 당신의 무덤 위에서는 십자가가 불타고 있다.
24일이 탄생에서 출발 하였다면, 끝의 24일은 죽음 그 이상이여야 할 것이다.
12월25일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나는 것은 우연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것에 운명이라는 이름을 붙이는건 우리의 선택이다.
크리스마스의 아침, 어디에서도 캐롤은 들리지 않으며 구름의 천둥 소음만이 도시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어떤 아이도 크리스마스의 선물을 기대하고 있지 않았다. 붉은 구름은 큰 나무의 이파리에 닿았으며 인류는 크리스마스의 선물로 하늘을 내려다 보는 특혜를 얻었다.
우리는 각자 다른 공간을 지나온다. 모든 사람들이 정한 1시간에도 누군가는 3분과도 같은 시간을 느끼며 누군가는 10년같은 시간을 느낀다. 완벽히 다른 세상에서 우리는 나와 다른 사람들을 만나며 살아간다. 하지만 우리 모두 같은 방향을 향해 나아감은 틀림없다.
도시의 차가운 길바닥에서 수 많은 사람들은 문을 열고 나온다. 피를 흘리는 예민한 여자 또한 같은 곳을 향한다. 남들보다 더욱 거대한 동공을 갖은, 팔에 수 많은 흉터를 갖은 남자 또한 같은 곳을 향한다. 붉은 눈의 히피들 또한 같은 곳을 향한다.
“ 매서운 추위 속 우리에게 다가오는 구름을 종말이라고 해석 하는 것은 우리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종말을 믿지 않는다. 우리는 오선지의 언어를 믿으며, 그려지는 우주를 믿는다. 혹시라도 저 구름이 우리에게 종말을 안겨준다 하여도 우리는 그 속에 유토피아를 믿으며 지금 이 순간 생명의 잉태를 믿는다. ”
빌딩의 옥상에 올라선 그들에게 25일은 1년과도 같았다. 피를 흘리는 여인은 흉터를 갖은 남자의 생명을 잉태하고 자정이 오기 전 새로운 생명은 울음소리 없이 붉은 구름과의 눈맞춤으로 세상에 태어난다. 아이는 히피들에 의해 먼저 유토피아를 향한다. 그저 우리들의 운명의 연속일 뿐이었다.
12월26일
희망은 전략이 아니다.
강해지는 기압은 우리의 숨을 조여온다. 햇빛이 닿을 수 없는 도시에 아침과 새벽의 경계는 사라지고 있다. 해가 뜨기 전 새벽이 가장 어둡지만, 아침이 찾아오지 않을 것을 알고 느끼는 새벽은 어떠한 감성도 전해주지 못한다. 아직도 매일의 일과를 반복하는 사람들에겐 아무것도 놀라울 것이 없다.
거리의 사람들은 계속해서 피를 토하고 태어나는 아이들은 눈 또는 목소리를 잃은 채 태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매일 매일을 반복할 뿐이다. 도시에서의 활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구름의 붉은 빛은 사람들의 얼굴에 반사되어 마치 망자들이 걸어 다니는 듯 하였고 수 많은 무덤가는 파헤쳐있었다.
도시에 희망이 점거 하였을 때 히피들은 거리에서 살인 당하였고, 도둑들은 아직 남의 물건을 훔치고 있었다. 또한 살인자들은 계속해서 남의 목숨을 앗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희망이 사라진 도시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는다. 우리의 희망은 매서운 추위와 붉은 구름에 대한 지적 결핍을 우리가 채울 수 있을거라 믿었을 때에 존재하였다. 하지만 우리는 인류의 존재의 유일한 이유인 호기심을 포기 하였고 더 이상의 진화를 포기하였다. 희망을 잃은 순간 우리는 솔직해진다.
가끔은 남의 불행에 행복을 느끼기도 하였으며,
가끔은 남의 행복에 내가 불행하다고 느낀 순간도 있었다.
나는 행복한 순간에는 행복이 영원할 수 없을 것 이라 두려워 하였고, 가장 불행한 순간에는 영원히 행복할 수 없을 것이라며 되뇌이곤 했다. 매서운 추위를 몰고온 구름 조차 희망을 잃은 이들에게 솔직해진다.
나는 오직 고통을 전하러 왔다.
12월27일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하늘의 지붕은 생각보다 아름다웠다. 혜성은 얼음을 흩뿌리며 목적 없이 비행하고 있었으며 멀리서 보이는 주홍빛 성단은 마치 예전의 노을을 연상시킨다. 거대한 암흑의 세상이 우리를 대신하여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러 오는 듯 하다.
이제 구름은 작은 나무에도 걸릴 듯 하며 우리의 숨을 조인다. 오늘날 도시에서 거리를 거닐 때 보이는 나무에 걸린 시체들은 보기 어려운 일이 아니게 되었다. 하지만 누구도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은 구름을 향해 뛰어들었지만 유토피아를 믿지 않는 이들은 아직도 많았다. 하지만 지하철에 뛰어드는 이들에겐 출근시간을 늦게 한 죄로 이미 혼이 떠난 육신에 폭력이 가해졌다. 이길 수 없는 러시안룰렛을 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많은 사람들이 길에 피를 토한 이후로 사람들은 서로의 피에 알러지 반응을 보였다. 재채기를 하고 콧물을 흘리며, 폭력적인 행동을 서슴치 않았다. 그리고 그들 모두는 피의 향과 색을 바라볼 때 구름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무덤가는 너무나 소란스러워 누구라도 땅에 묻히지 못하였다. 우리는 죽음으로 다시 흙으로 돌아갈 자격 조차 잃었다. 희망이 사라진 도시에서 이제는 아무도 우리에게 행복할 자격이 있을까 질문하지 않는다.
매일을 반복하는 사람들, 쓰레기통을 뒤지는 사람들, 자신부터 시작해서 모든 것을 미워하는 사람들, 그들은 자신이 행복할 권리를 가지고 태어났음을 믿지 않는다.
장미는 무덤이 아닌 나의 코 밑에 놓아 주고, 나의 양손엔 초록 꽃을 쥐어주어라 , 또한 붉은 구름에서 얼음이 흐를땐 그것을 녹여 나의 혈관에 비를 내려 주어라.
12월28일
빛이 돌아오고 있음을 믿는다. 낮아지는, 우리의 숨을 조여오는 구름에도 나는 아직 꽃을 떠올린다. 햇빛은 우리에게 찬란한 색깔들의 향연에 빠질 기회를 줄 것이라 믿으며 우리는 다가오는 붉은 얼음에도 나의 자신을 잃지 않고 사랑을 전하리라 믿는다.
매서운 추위에 모든 잎을 잃은 나무에는 마치 사과와도 같이 히피들의 시체가 걸려있었다. 하지만 힘과 의식을 잃은 도시의 누구도 앞날을 신경 쓰지 않는다.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 일까. 우리는 언제부터 우리가 행복한 삶을 이어갈 자격이 없음을 인정하게 되었을까. 거센 추위의 돌풍에 우리들의 걸음은 오히려 한 템포 빨라진다.
빠른 걸음에서 우리는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다. 몇 미터 위의 구름이 우리의 시야를 막고 있지만 어느날 빛의 창은 구름을 뚫고 우리에게 빛을 전해줄 것이며, 에너지를 전해줄 것을 믿는다. 하늘이 우리에게 한 차례 더 축복을 내려줄 것을 믿는다. 아주 빠른 시일에 우리에게 축복의 비를 내려주실 것을 믿는다.
도시의 어둠은 나의 모든 것을 장악한다. 항상 나를 움직이게 만들었던 누군가를 향한 그리움도 너무나 어두워 멀어지고 있다. 매서운 추위에서 나는 봄을 떠올리지도 않는다. 바람에 유리창은 깨지며 어둠보다 어두운 색의 바람은 나의 피부를 찢는다. 시체와 피가 점거한 겨울의 도시는 우리에게 모든 것을 내려 놓으라 이야기 한다.
많은 것을 내려 놓으며 우리는 오히려 많은 것을 얻는다. 우리는 어떻게 인지하는가에 따라 완전히 다른 세상을 살 수있다. 그리고 시온의 비를 시작으로 우리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인지할 것이다.
우리는 이미 자신을 놓아 버린채 누군가와 대화하고 있다.
12월 29일
29일의 아침 사람들은 모두 같은 약속이 있는 것처럼 같은 시간에 일어난다. 오늘 도시의 거리엔 오히려 바람이 불지 않는다. 머리맡에 닿을 붉은 구름에서는 계속해서 종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종소리는 계속해서 울리며 멈추지 않는다. 천둥과 함께 울리는 종소리는 마치 이색적인 음악과도 같았으며 우리의 심장을 뛰게한다. 심장이 뛰며 간단한 사고조차 하기 힘들고 혼란스럽다. 우리는 엄청난 혼란에 휩싸인다.
바람 하나 불지 않는 붉은 잿빛의 도시에 우박이 내리기 시작한다. 계속해서 빨라지는 종소리에 불안해지는 인간들은 혼돈의 일부가 되었다. 어떤이들은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녔으며 어떤이들은 네발로 기어 다니며 눈물을 흘린다. 동공이 없는 눈을 갖은 여인들은 계속해서 흘러나오는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도시는 매혹적이었다. 모든 사람들은 바닥에 쌓여가는 우박, 얼음을 주워담기 시작한다. 그들은 얼음을 얼굴에 비비며 코에 넣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계속해서 얼음을 먹고 있었으며 종소리는 멈추지 않는다. 얼음은 각자 모두에게 돌아가 빗물이 되어 흘러간다. 종소리는 멈추지 않는다. 우리는 어떻게 인지하냐에 따라 아예 다른 세상에 살게된다. 종소리는 멈추지 않는다.
머리맡 붉은 구름은 바닥에 닿기전 인간들에게 우박을 선물한다. 계속되는 종소리는 사람들을 옥상으로 걸어가게 한다. 그들은 기쁨과 환희에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상승하는 발걸음은 춤과 걸음을 구분할 수 없다. 매일의 일과를 반복하는 사람들은 오지 않았지만 수 많은 사람들이 옥상에서 종소리에 고개를 끄덕일 때 머리 맡의 구름은 폭우를 내린다.
붉은 눈의 사람들은 서로의 마음을 읽는다.
“ 우리는 어디에서부터 왔을까.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은 행복한 순간 그 뿐이다. 우리는 우리의 본능대로 계속해서 전진한다. 방금 눈앞에 그림이 보였다. 무엇보다 아름다운것들, 아름다운 순간들과 아름다운 사람들, 우리는 구름을 바라본다. 그 속에서는 음악이 흘러 나오며 와인에 취해 춤을 추며 행복에 겨운 사람들의 함성소리가 들려온다. 내가 계속해서 이 길을 걸어왔을 때 우리는 추위를 두려워하였고 바람을 두려워하였고 폭풍을 두려워하였다. 어떤 이들은 나의 존재를 저주하였다. 하지만 짧지 않은 길을 돌아온 나이기에 유토피아는 나를 위해 펼쳐져있다. 이제는 정말 그림을 보고 꽃을 볼때이다. 구름속엔 사랑하는 이의 향기가 흐르고 사랑하는이의 음악을 맡을 수 있으며 아름다운 명화를 느낄 수 있다. 너무나도 긴 시간을 돌아왔으며 나는 왜 이 시간까지 진리를 깨닫지 못하였을까 우리는 행복하기 위하여 이 자리에 서있다. 구름은 우리를 반긴다. 9살 때 바라보던 구름과 같은 모습이다. 나의 행복을 위하여, 정말로 가슴 벅찬 행복을 느끼기 위하여 실천할 순간이다. 우리는 지금 유토피아로 향한다.” 환각을 위해
수 많은 사람들은 같은 순간 옥상에서 낮은 붉은 구름으로 뛰어내린다. 크리스마스 4일후의 기적엔 우리는 운명이란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 뛰어내린 사람들은 누구도 바닥에 떨어지지 않았으며 구름의 일부가 된 듯 하였다. 쾌락을 위해
29일의 자정, 구름은 폭우를 내리며 바닥에 닿는다. 도시는 거대한 암흑과 먼 거리의 별들로 가득차며 사람들은 미친 12월에 처음으로 편히 잠들게 된다. 매일을 반복하는 사람들은 사랑했던 이들을 잃었지만 방어기제에서 시작된 광기에 그들은 슬픔을 느끼는 법을 잊은 듯 하였다. 극도의
12월30일
30일의 아침, 마치 봄이 온 듯 맑은 하늘이다. 햇빛은 도시의 골목 골목에도 가득 찼으며 아주 높이 있는 맑은 구름은 우리에게 미소를 보내는 듯 하다. 도시의 공원 속 씨앗들은 마지막 겨울에게 인사를 하며 새롭게 시작될 봄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모든 것은 완벽하였다. 높이 선 빌딩들은 햇빛을 반사해 어느곳으로든 향하고 있었다. 새들은 꽃을 물고 하늘을 비행하며 그들의 날개짓은 작은 무지개를 만들어낸다. 밤새 내린 폭우로 도시 어느곳에서도 핏자국을 볼 수 없었으며 비는 흙을 만나 새로운 향을 뿜고 있었다.
새벽의 이슬을 머금은 풀들은 선선한 바람에 자신의 몸을 씻는다. 가장 완벽한 그림은 자연이 알아서 그리기 시작하였다.
찬란한 색이 피어나는 도시에 남은 유일한 잿빛은 매일을 반복하는 사람들이였다. 그들은 아무런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12월의 하루하루는 매일 같았으며 특별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내년도 이와 같을 것이며 자연이 그리는 그림은 우리의 마음을 회유하려 하지만 우리는 더 이상 아무것도 느끼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그저 매일을 걸어간다. 공간을 이동하며 시간을 흘려보낸다. 우리는 이득을 위해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마음속엔 불안이 가득하지만 남을 위하여 미소도 지어본다. 우리의 몸과 마음을 쉬게 하는법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오늘 하루가 끝날 때 나는 피곤하며 지쳤으며 다시 내일을 걸어야 한다.
우리는 그림과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12월31일
유토피아.
우리는 아직 이곳에 있다.
그림을 보고 꽃의 향을 맡으며, 사랑하는 이의 미소에 눈시울이 붉어지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