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by 유지 posted Aug 04,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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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6월 3일. 함경남도 풍산군, 산이 굽이치는 마을엔 희끄무레한 안개가 피어올랐다. 낡은 지붕 위로 커다란 달덩이가 잠시 머물다가, 무언가에 쫓기듯 금세 자리를 뜨고 말았다.

날은 흐렸고, 공기는 차가웠다. 모래 구덩이가 움푹 들어간 흙바닥엔 붉은 것들이 웅덩이를 이루고 짙은 피 냄새를 한껏 끌고 왔다.

세상은 꽤나 시끌벅적했다. 왜놈들이 이 나라를 다 먹어치우고 있다나 뭐래나, 산골 속에 살고 있는 억순에게는 얼마 전까지 그 모든 게 먼 소식이었지만, 난장판이 된 마을 풍경을 보아하니 어느새 그 소식은 코앞까지 다가와 있는듯했다. 하긴, 매번 조용했던 동네에 알 수 없는 비명소리가 들리는걸 봐선 마냥 남의 이야기로 생각할 일은 아닌 것 같았다.

불과 얼마 전까지 삼삼했던 동네엔 칼과 총으로 무장을 한 일본 놈들이 득실거리고 있었다. 동네 근처에 왜놈들이 경찰서를 하나 세웠다고 하는 것 같던데, 그 말이 거짓은 아닌 듯 경찰처럼 보이는 남자들이 꽤나 많았다.

그들은 매번 매서운 눈길로 동네 여자들을 훑어 내렸는데, 그 눈깔은 뱀의 눈빛처럼 번뜩거렸으며, 덜 익은 사과를 한입 베어 물고 싶은 듯한 진득한 욕망을 담고 있기도 했다.

대충 들려오는 소문에 의하면 일본 놈들이 마구잡이로 사내들을 잡아간다고 했다. 그것도 무작정 아무 집으로 쳐들어가서 말이다.

사내들을 일본으로 끌고가 억지로 일을 시킨다고 했던 것 같은데, 확실한 내용은 알지 못했다. 하긴, 억순이 살고 있는 이 동네는 워낙 작았고, 산골사이에 자리 잡고 있었기에 자세한 소식통이 있을 리가 없기도 했다.

‘절대 일본 놈들과 마주쳐서는 안 된다.’

불과 어제 밤 아버지가 억순에게 한 말씀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왜놈들과 마주치지 말라는 아버지의 걱정 섞인 말에 억순은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답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눈꺼풀이 자꾸만 감기는 탓에 어쩔 수가 없었다. 금세 어두워진 시야 위로 다가온 거칠한 손길이 억순의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억순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숨막힐 듯한 정적이 도는 동네가 한없이 불안하기만 했다. 딱히 생각해보면 늘 조용했던 동네였지만, 왜일까? 그냥 기분이 이상했다.

억순은 왜놈들이 길거리를 지나갈 때마다 풀숲에 최대한 몸을 숨기며, 꾸역꾸역 숨을 참았다. 일본 놈들이 칼과 총으로 온 몸을 무장한 채 집 이곳저곳을 쑤시고 다닌다는 말이 거짓은 아닌 듯, 묵직한 걸음들이 연신 뿌연 먼지바람을 일으켰다.

억순은 부모님의 새참을 준비하고 있던 중이었다. 아침 댓바람부터 김을 매야한다며 헐레벌떡 밭으로 뛰쳐나간 부모님이 해가 쨍쨍하게 내리쬐는 낮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으시는걸 보면 끼니 한번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채. 일에만 매진하고 있을게 뻔했다.

억순은 커다란 바구니에 오이와 상추, 감자를 담아 황금색 보자기로 감싸고는 손으로 힘껏 묶어 머리에 들쳐맸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허기로 쓰러지기 전에 재빨리 다녀와야 할 듯싶었다.

산골짜기 아래 작은 마을은 언제나 그랬듯 한없이 고요하기만 했다. 왜놈들도 대부분 동네를 떠난 건지, 훤한 길 한복판엔 그 흔한 발자국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 고요함이 왠지 나쁘지 않아, 억순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사뿐한 걸음을 옮겼다. 아래 우물에 들려 물을 기른 뒤, 부모님께 새참을 드리고, 옆집 친구인 선덕이네 집에 놀러가서 같이 땅따먹기를 할 예정이었다.

억순의 집에서 우물가까지는 거리가 꽤나 멀었다. 시간으로 따지자면 한 30분 정도. 땀으로 옷이 축축이 젖어서야 우물가에 도착한 억순이 머리에 이고 온 커다란 보자기를 바닥에 턱 내려놓았다.

어찌나 무겁던지, 걸어오는 내내 몇 번을 쉬었는지 모를 정도였다. 현기증에 머리가 핑핑 돌았다.

우물가엔 알 수 없는 벌레들이 들끓었다. 청소를 안 해서 그런가, 이상한 악취가 코끝을 찡하게 찌르기도 했다. 억순은 우물 위를 덮고 있는 커다란 나무뚜껑을 힘겹게 밀어냈다. 고개를 휙 넣어 안을 살피자, 딱 봐도 희미하게 고여있는 물이 한없이 갈증나보였다.

“에구, 물이 이것밖에 안 되서 어쩐담.”

입술이 삐죽 튀어나왔다. 우물에 고여 있는 물은 바닥을 박박 긁어도, 한 되밖에는 안돼 보였다. 김매러 가셔서 더위에 목이 많이 마르실텐데, 이거 가지고 가족끼리 하루를 버틸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우물 옆에 놓인 바가지를 들어 올린 억순이 우물 밑으로 바가지를 쭉쭉 내렸다. 어떻게 되든 간에 일단 되는대로 물을 최대한 끌어 모을 생각이었다.

하늘이 노랬다. 힘껏 퍼낸 물은 고작 하루를 버틸 정도의 양이었다. 이걸로 어떻게 하지? 눈앞이 캄캄했다. 가뜩이나 비도 오지 않아 마을에도 잔뜩 가뭄이 든 탓에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한참을 망설이던 억순이 우물에서 퍼낸 물을 집에서 가져온 양동이에 조심스레 퍼 담았다. 찌는 듯한 더위에 바짝 목이 타긴 했지만, 물을 최대한 아껴야했기에 억순은 목마름을 꿀꺽 침 삼키는 것으로 대신했다.

“어휴, 더워.”

억순이 이마에 흥건하게 배어나온 땀을 닦아내며, 땀에 전 치마폭을 휙 뒤집었을 때였다. 우물가 근처에서 이상한 말소리가 들려오더니, 커다란 그림자가 시야 위를 덮었다.

억순은 흠칫 몸을 떨었다. 뭐지? 싶을 때쯤, 묵직한 발걸음들이 그녀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머지않아 억순을 휙 들어 어깨에 들쳐 맸다.

“아악! 싫어!”

그건 정말이지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총으로 무장한 일본 군인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억순을 손쉽게 보쌈 해갔다. 온 몸이 벌벌 떨려왔다. 억순은 소리를 치며, 힘껏 발버둥을 쳤지만 군복을 입은 튼튼한 사내 둘을 이길 수는 없었다.

“으아악!”

발악은 짙어졌다. 끔찍한 절규를 토해내는 억순을 바라보던 한 군인이 짜증을 참지 못하고 칼등으로 그녀의 머리를 힘껏 내리쳤다. 퍽, 소리와 함께 뒤통수에 묵직한 충격이 가해지고, 절망으로 버둥거리던 몸이 금세 축 늘어지고 말았다.

*

해산 인근의 일본군 군대에 속해있는 나카무라는 군인 중에서도 최연소에 속했다. 사실 원래 같으면 그보다 4살 많은 형이 군인이 되었어야했지만, 어렸을 때부터 병명을 알 수 없는 희귀병을 달고 살았던 형 탓에 어쩔 수 없이 그가 군대에 끌려오게 된 상황이기도 했다.

나카무라는 17살이라는 어린 나이를 가졌지만, 생각보다 꽤나 용맹한 사내였다. 성인의 남자도 겁내하는 총도 손쉽게 다뤘고, 폭탄이 코앞에 떨어져도 놀라지 않았으며, 칼이 목 끝까지 다가와도 침착하게 상황을 정리하곤 했다. 마치, 족히 40살은 된 어른처럼 말이다.

사실, 나카무라가 이렇게 어른스러워진 건 조선인인 어머니의 탓이 컸는데, 그의 어머니인 사선은 늘 그에게 살아가는 법에 대해 가르쳐주곤 했다. 폭탄이 떨어져도 살아남는 법, 총을 든 군인 앞에서 살아남는 법 등, 그것을 어디서 알았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어머니가 그에게 전해준 지식들은 꽤나 유용하게 쓰이고 있었다. 그것도, 무려 전쟁에서.

나카무라는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전쟁을 싫어했다. 뭐, 굳이 따지자면 그건, 누구나 생각하는 것이겠지만, 나카무라는 그 정도가 심한듯했다. 왜냐, 전쟁에 참여한 군인이라는 작자가 적군을 죽이지 않으려했으니까.

사실 나카무라는 사람을 죽이는 게 싫어서 몇 번이나 모른 척을 했다가 걸린 게 한 두번이 아니었다. 그 결과로 중대장에게 죽도로 맞아야했지만, 자신이 했던 행동에 대해 큰 후회는 없었다.

같은 군인이면 뭐를까, 아무 죄 없는 민간인에게 총질을 해대는 건 좀처럼 마음에 내키질 않은 탓이었다. 하긴, 따지고 보면 그럴 만도 했다. 전쟁 통에 말려든 민간인들은 죄가 없었으니까.

전쟁은 마치 지옥 같았다. 그 흔한 무기 없이, 총알을 맨몸으로 받아내는 사람들의 모습은 뇌리에 박혀 좀처럼 사라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칼에 배어나간 아이, 군인들에 의해 수없이 범해지는 여인들, 폭탄으로 인해 갈기갈기 찢겨진 사람들까지.

피로 물든 전장은 한없이 처참했고 끔찍하기만 했다. 도저히, 마음이 아파서 견뎌낼 수 없을 만큼 말이다.

“나카무라, 이쪽으로 와.”

“예!”

저 멀리 가네야마상 소대장이 그를 향해 손짓을 했다. 무슨 급한 일이 있는건지, 휘휘 허공을 부유하는 손짓이 꽤나 다급해보였다. 허겁지겁 장비를 챙긴 나카무라가 재빨리 그를 향해 뛰어갔다. 탁탁 멀어지는 발걸음 뒤로 뽀얀 먼지 바람이 일었다.

불안한 시간이 흘렀다. 억순이 눈을 뜬 건,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난 후였다. 어느새 해가 진 것인지, 어두컴컴한 하늘 위로 스산한 바람이 불었다.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탓에 앞을 보는 게 힘들 정도였다. 뻑뻑한 눈을 끔뻑이자, 뒤통수로는 얼얼한 고통이 밀려왔고, 피가 통하지 않는 손발엔 찌릿한 전기가 통했다.

“이, 이게 뭐야?”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은 듯했다. 그도 그럴만한 게 억순의 손과 발은 단단한 밧줄로 꽉 묶여있는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억순은 순간적으로 오늘 낮 우물가에서 일본 군인에게 무작정 잡혀왔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으악! 말도 안 돼! 쩌렁쩌렁한 비명을 지른 억순이 밧줄을 풀기위해 몸을 뒤틀었지만, 거친 밧줄은 그녀의 여린 살결에 상처를 낼뿐, 좀처럼 풀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악! 안 돼!”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밖으로 묵직한 발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머지않아 끼익,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확 불이 켜지고, 금세 시야가 밝아졌다.

억순은 헉 숨을 들이 삼키며, 눈을 깜빡였다. 긴 시간을 어둠속에 있던 탓인지, 빛에 적응되기까지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억순은 주변을 둘러보더니, 뒤로 주춤주춤 물러섰다. 여, 여긴 감옥이잖아? 눈앞을 가린 쇠창살이 한없이 끔찍하기만 했다.

“조선 여자입니다.”

억눌린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억순은 급히 고개를 들어 감방 안으로 들어서는 남자들을 바라보았다. 남자들은 총 7명이였는데, 다들 일본 군복을 입고 있었고, 허리엔 각각 커다란 총과 칼, 그리고 곤봉을 차고 있었다.

손끝이 벌벌 떨렸다. 아까 전 억순을 잡아온 남자 중 한명이 이제 막 감옥으로 들어서는 남자를 향해 꾸벅 인사를 건넸다.

“나이는 어린듯합니다.”

“나쁘지 않군.”

남자가 턱수염을 쓱쓱 매만지며 말했다. 감방 안에 있던 남자들이 그를 향해 다 허리를 숙이는 걸로 봐선, 남자의 직급이 꽤나 높은듯했다.

억순은 단숨에 그 남자가 경찰부장이라는 사실을 알아챘다. 그건, 얼마 전 자신의 아버지를 억지로 끌고 가려했던 그의 얼굴 잊지 않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그런데, 왜 그가 여기에 있는 거지?

억순은 좀처럼 이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저, 우물에 물을 뜨러 간 것뿐이었는데, 당연하다는 듯이 일본군에게 잡혀왔고, 당연하다는 듯이 단단한 밧줄에 온몸이 결박당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이곳은 벗어나려고 해봐도 벗어날 수가 없는 감옥이었다. 죄를 짓는 사람들만이 오는 그 끔찍한 감옥 말이다.

근데 억순은 일본 군인에게 잡히자마자, 이곳으로 끌려오게 되었다. 죄를 지은적도, 잘못을 저지른 적도 없는데. 마치 죄인이 된 것처럼 온 몸이 결박당했고, 끔찍한 폭행을 당했다.

짐승들 사이에 던져진 한 마리의 먹잇감처럼, 두려움에 벌벌 떨고 있을 수밖에는 없는 것이었다. 아, 안 돼. 절규가 섞인 목소리가 허공으로 흩어졌다. 성큼성큼 걸어온 경찰부장이 억순의 몸을 힘껏 내팽겨 쳤다.

“맛 좀 볼까?”

경찰부장은 억순의 몸을 타고 올라와 앉았다. 아악! 끔찍한 비명이 샜다. 흉측한 뱀의 형상으로 변한 그의 손이 억순의 옷깃을 잡아챘다. 싫어! 싫다고! 억순은 몸을 비틀며 그의 손길을 피하기 위해 애를 썼다.

큭큭 대는 웃음들이 연신 귓가를 울렸다. 어느새, 경찰부장의 주위를 감싼 남자들은 눈을 번뜩이며 침을 질질 흘리기 바빴다.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듯한 그 눈빛엔 끔찍한 욕망이 가득했다.

“옷 벗어.”

“싫어!”

억순은 경찰부장의 말을 억세게 거부했다. 그의 얼굴이 잔뜩 구겨졌다. 한번 말하면 알아서 들을 것이지 조선 년들은 꼭 이렇게 짜증나게 군다니까.

펄쩍 뛰는 몸을 힘으로 힘껏 잡아 누르며, 부하 중 한명이 가져온 누더기로 억순의 입을 콱 틀어막았다. 웅웅 대는 목소리가 누더기 속으로 흩어졌다. 이제 좀 낫네.

“시, 실어. 실, 다고!”

억순은 몸을 크게 버둥거렸다. 거친 손길에 의해 그녀의 옷은 이미 거의 다 벗겨진 후였다. 경찰부장은 실실대는 웃음을 흘렸다. 눈앞에 자리한 뽀얀 살결을 보자마자 온 몸이 달아오르며, 뜨거운 흥분감이 차올랐다. 손끝에 닿는 살결이 한없이 부드럽기만 했다.

찌익, 지퍼를 내려 흉측한 물건을 꺼내든 경찰부장이 그녀의 다리사이에 자리를 잡으며, 그녀의 몸속으로 욕망덩어리를 밀어 넣기 위해 애를 썼다.

“아, 정말 짜증나게.”

자꾸만 몸을 뒤트는 억순 탓에 욕망은 자꾸만 빗나가기 바빴다. 후, 짙은 한숨을 내쉰 그가 주먹을 쥐더니, 커다란 주먹을 그녀의 눈에 콱 꽂아 넣었다. 으아악! 끔찍한 비명이 샜다. 꼭 눈알이 빠져버린 것처럼, 숨쉬기 힘든 끔찍한 통증이 밀려왔다.

억순은 몸을 크게 비틀며 괴로워했다. 날카로운 칼로 눈알을 다 도려내버린 것 같이, 눈가로 피가 철철 흘러내렸다.

“가만히 좀 있어.”

아팠다. 정말이지, 너무 아파서 누군가가 자신의 몸을 더듬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억순은 벌벌 떨리는 손끝으로 바닥을 짚었다. 차디찬 시멘트 바닥 위로, 형체를 알 수 없는 축축한 액체들이 들끓었다. 코끝으로 비릿한 냄새가 풍기는 걸로 봐선, 주변을 감싸고 서있던 남자들이 쏟아낸 사정액인 듯했다.

“우웩, 시. 실어!”

금세 헛구역질이 치밀어 올랐다. 누더기 속에 묻힌 애절한 목소리가 금세 허공으로 흩어져버렸다. 경찰부장은 그녀의 몸 안으로 욕망덩어리를 밀어 넣으며 힘껏 허리를 차올렸다. 온몸을 휘감는 쾌감에 그의 입가로 만족스런 웃음이 피어올랐다.

“역시, 어린 여자가 맛있다니까?”

씩, 새는 웃음이 끔찍했다. 여린 몸이 사정없이 찢기고 짓밟혔다. 앞이 보이질 않아서 이곳이 현실인지 꿈속인지 알 수가 없었다. 흉측한 물건이 그녀의 몸을 쑤욱 빠져나왔다가, 다시 쑤욱 들어가기를 반복했다.

코끝으로 피비린내가 스쳤다. 억순은 그게 능욕을 당하고 있는 자신의 아래에서 흐르고 있는 것인지, 그들에 의해 갈기갈기 찢겨진 심장에서 흐르고 있는 것인지 알지 못했다.

얼마나 시간이 흐른 건지 좀처럼 가늠이 되질 않았다. 그저, 사정없이 천장이 흔들렸고, 피 냄새가 코끝을 찔렀으며,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끔찍한 고통이 밀려왔다. 그래, 그게 다였다. 왜 이곳에 끌려왔는지, 왜 이런 짓을 당하는지도 알지 못한 채. 지옥 같은 시간이 흘러갔다.

일본군에게 잡혀간 그 날 억순은 경찰부장과 뿐만 아니라, 그의 곁에 서있던 남자 7명까지 상대해야했다. 슬프게도. 그녀에게 그들을 거부할 권리 따위는 주어지지 않았다. 싫다고 발악을 하면 온 몸을 힘껏 두드려 맞았고, 몸을 뒤틀면 거친 손길로 뺨을 맞았으며, 소리를 지르면 눈에 커다란 주먹이 꽂혀들기 바빴다.

억순은 경찰서 감방 안에 갇혀서 연일 능욕을 당했다. 그 날 이후로 하루도 빠짐없이, 감방으로 찾아오는 남자들은 양손가락으로 꼽기도 힘들 정도였다. 억순은 시간과 몸 상태에 상관없이 늘 남자들을 상대해야만 했다. 차라리, 죽고 싶을 정도로 그들은 매일 같이 억순을 찾았으며, 그녀를 짓밟았고, 그녀를 지옥으로 떨어트려 버렸다. 그렇게 해서 억순에게 주어지는 건, 겨우 숨을 부지할 수 있는 주먹밥 한 덩어리뿐이었다.

입 앞으로 경찰이 들이미는 주먹밥을 꾸역꾸역 받아먹으며, 억순은 엉엉 울음을 토해냈다. 마음 같아선 정말로 먹기 싫었지만, 어쩔 수 없이 먹어야만 했다. 이것을 먹지 않는다면, 또 다시 불같은 주먹이 날아올 테니까.

밥으로 꽉 눌린 가슴이 체한 듯 답답했다. 억순은 서글픈 슬픔을 쏟아냈다.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는 밥임에도, 한없이 짜게만 느껴졌다.

매일을 살려달라고 빌었다. 군인들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애원도 해보고, 그들에게 동정심도 유도하면서 제발 살려달라고, 시키는 건 뭐든지 다하겠다고 빌고 또 빌었다. 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오히려 그들은 억순의 그런 행동을 보며 즐거워했고, 더 끔찍한 짓들을 시키기 바빴다. 꼭, 인형을 가지고 노는 것처럼.

일본군이 하는 대화를 들어봐선, 이미 숱한 처녀들이 경찰서에 끌려와 능욕을 당하고는 다시 어디론가 끌려갔다고 했다. 아 뭐, 굳이 따지고 보면 그건 처음 이곳에 끌려온 날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었기에 억순은 그 얘기를 듣고 그리 놀라지 않았다. 하긴, 억순이 잠을 자는 동안, 늘 어디선가 여자들의 끔찍한 비명소리가 들려왔으니까. 모르는 게 더 이상할정도이긴 했다.

“살려주세요.”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얼굴이 너무 보고 싶었고, 평범하지만 소박한 일상이 미치도록 그립기만 했다. 어머니, 아버지. 보고 싶어요. 울컥 눈물이 차올랐다. 수없이 범해진 아래가 고통스럽기만 했다. 잇새로 새는 신음소리를 참아내며, 억순은 엉엉 울음을 토해냈다.

“제발.”

그때 억순의 나이는 고작, 14살이었다.

지옥 같은 시간이 흘렀다. 경찰서에서 수많은 일본 군인을 상대한지 얼마 되지 않아, 억순은 해산 인근의 일본군 군대로 끌려가게 되었다.

끼익, 감방 문이 열리고 두 명의 일본 군인들이 달라붙더니, 그녀의 양팔을 붙잡았다.

눈앞이 핑핑 돌았다. 가기 싫다며 악을 지를 기운도, 그들을 떼어놓을 힘조차도 없었다. 억순은 마치 하나의 짐덩이처럼 질질 끌려갔다.

뜨거운 햇빛을 보는 게 얼마만인지 알 수가 없었다. 억순은 잔뜩 미간을 찌푸린 채 터덜터덜 걸음을 옮겼다. 눈앞을 가린 뽀얀 먼지바람 사이로, 알 수 없는 피비린내가 스쳤다.

몸이 흠칫 떨렸다. 코끝을 스치는 냄새가 꼭 제 몸에서 나던 냄새 같아서 억순은 억지로 숨을 참았다. 이제, 더 이상 끔찍한 냄새는 맡기 싫었으니까.

병참보급품 수송차량엔 수많은 여자들이 들끓었다. 다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그 짓들을 당한건지 얼굴부터 몸까지 상처가 없는 곳이 없었다.

억순은 힘겹게 차안으로 밀어 넣어졌다. 시동이 걸리자, 뿌연 먼지바람이 일었다. 억순은 순간적으로 다신 고향으로 돌아 올 수 없을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을 받았다. 그래서, 자신도 알지 못했던 초인적인 힘으로, 마지막 발버둥을 쳤다.

“싫어! 으아악! 내려줘!”

“저년이 또 지랄이네.”

그건 발악이었다. 살기 위한, 이 지옥을 벗어나기 위한 마지막 발악 말이다. 억순이 차에서 뛰어내리기 위해 발버둥을 치자, 성큼성큼 걸어온 한 군인이 커다란 손으로 힘껏 그녀의 얼굴을 내리쳤다. 짝, 소리와 함께 돌아간 고개에서 뜨거운 피눈물이 흘렀다. 볼이 얼얼했다. 끔찍한 고통이 온 정신을 마비시켰다.

폭행은 지긋지긋 할 정도로 계속되었다. 볼 살이 떨어져 버린 것처럼, 수없이 맞고 있는 볼 살엔 전혀 감각이 없었다. 짝, 짝 돌아가는 고개가 점점 바닥을 향했다. 군인은 더 힘껏, 그리고 더 끔찍하게 폭행을 이어갔다.

그건 어찌 보자면 경고이기도 했다. 반항을 할 시엔 이렇게 된다는 무언의 경고 말이다. 차에 타있던 여자들은 입을 틀어막으며, 숨을 죽였다. 반항의 빛은 그렇게 쉽게 사라져버리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억순은 그대로 정신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다. 얼마나 맞았는지 좀처럼 가늠이 되질 않았다. 그저 얼굴에선 불같은 고통이 일었고, 피비린내가 코끝을 스쳤으며, 시야가 뿌옇게 흐려지길 반복했다.

그게 다였다. 지옥으로 끌려가는 시간동안, 억순에게 주어진 것이라고는 고작, 더 큰 지옥을 맛보는 일 뿐이었다.

차를 타고 가는 중간에 몇 명의 여자들이 차에서 내렸다가 다시 타기를 반복했다. 어디선가 희미한 울부짖음 소리가 들리는 걸로 봐선, 일본 군인들이 또 다시 여자들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 듯했다. 맨 처음, 차에서 강제로 끌어 내려진 여자가 절뚝거리는 걸음으로 힘겹게 차에 올라탔다.

눈물자국이 가득한 얼굴 위엔 알 수 없는 오물들이 가득했다. 그녀의 몸에선 어디선지 모를 곳에서 쏟아져 내린 피가 줄줄 흘러 그녀의 다리를 타고 내려왔다.

손끝이 벌벌 떨려왔다. 나름대로 반항을 했던 건지, 손목 곳곳에 시퍼런 멍이 들어있었다. 여자는 아랫도리를 감싸 쥐며 괴로워했다. 내 아기, 내 아가…. 하면서.

1933년 6월 13일, 억순이 도착한 곳은 대대 수비대였다. 여기에 도착하는데 까지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린 것 같았지만, 오는 내내 기절해 있던 탓에 억순은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렀는지 알지 못했다. 그냥, 꿉꿉한 공기와 차가운 한기가 도는 걸로 봐서 꽤나 멀리 왔다는 걸 어렴풋이 눈치 챌 수 있을 뿐이었다.

모든 게 꿈만 같았다. 이곳에 갇힌 지금도, 남자들에게 능욕 당하던 자신도 모든 게 다 환상이길 바랬다. 눈을 감았다 뜨면 사라져버릴 환상 말이다.

“내려!”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도 알지 못했다. 일본어와 한국어가 섞인 오묘한 말들이 귓가를 한없이 어지럽혔다.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음에도, 왠지 모르게 그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곧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들은 한껏 눈치를 살피며, 그들의 행동을 순순히 따랐다. 이곳에서 반항을 한다면, 죽도록 맞거나, 죽게 될 테니까.

억센 손길이 차안으로 쑥 밀려들어왔다. 일본 군인들에 의해 차에서 강제로 끌려나온 여자들이 흙바닥을 놔 뒹굴었다. 으아악! 터지는 절규 섞인 비명이 한없이 익숙하기만 해서, 그냥 바보같이 서글프기만 했다.

억순은 제일 마지막으로 차에서 내렸다. 하도 난리를 친 탓에 일본 군인들에게 요주의 인물로 찍혀버린 듯했다. 입안에 고인 피를 퉤 하고 뱉어내며 억순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오는 길 내내, 어찌나 군인들에게 많이 얻어맞았는지 앞이 잘 보이지도 않을 정도였다.

뿌연 먼지바람 뒤로, 수많은 인영들이 아른거렸다. 억순은 군인들에 의해 질질 끌려가면서도 매서운 눈길로 주위를 살폈다. 흙바닥을 놔 뒹굴고 있는 여자들은 어림잡아도 400명은 넘어보였다. 여자들의 얼굴들을 보아하니, 주변을 감싸고 서있는 일본 군인들의 손녀 뻘 밖에는 되지 않아보였다.

앳된 얼굴엔 두려움이 가득했다. 여자들의 나이 때는 12살부터 시작해서, 13살, 14살, 15살까지. 최소 20살 미만의 여자들뿐이었다. 그녀들은 뽀얀 얼굴에 하나 이상의 큰 상처를 매단 채, 꾸역꾸역 눈물을 삼켜내고 있었다.

코끝으로 끔찍한 냄새가 스쳐지나갔다. 피비린내가 어찌나 심하던지, 억순은 여자들 틈을 지나가면서 숨을 꾹 참았을 정도였다.

날이 흐렸다. 엄청난 수의 여자들은 낮 내내, 찬 물에 강제로 목욕을 당한 뒤 일본 군인들에 의해 뿔뿔이 흩어져버린 상태였다. 여자들에게 주어진 것은 천막으로 지어진 막사의 방이었다. 그 방은 개인별로 한명씩 들어가도록 만들어놓았는데, 성인 남자가 한명 들어와도 꽉찰만한 작은 공간엔 딸랑 침대가 한개 놓여있을 뿐이었다.

각 방에는 세척용 과망간산칼리의 수용액이 배치되어있었다. 그게 무엇인지 확실히 알 수는 없었지만, 코끝을 찌르는 알콜 냄새를 보아하니, 누군가의 몸에 쓰일 거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 수가 있었다.

억순은 그것의 뚜껑을 덮으며 최대한 멀리 그것을 치워버렸다. 이곳에 있는 모든 것의 냄새는 한없이 끔찍하기만 했으니까.

억순은 구석에 쪼그려 앉아, 숨을 죽였다. 솔직히 좀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애써 참았다. 이젠 우는 것도 지겹기만 했다. 어차피 운다고 해서 달라지지 않을 현실이기에 어쩔 수 없이 포기해버린 것도 사실이었다. 퉁퉁 부어버린 볼 위로 뜨거운 공기가 스쳤다.

“아버지, 어머니….”

눈앞에 아른거리는 얼굴이 한없이 서글프기만 했다. 지금쯤이면 부모님께서 억순을 찾아다니고 계실지도 몰랐다. 아니, 아예 죽었다는 생각에 포기해버릴 수도 있으려나? 문득 떠오른 생각은 축 쳐진 마음을 더욱 더 무겁게만 만들었다.

“어머니 아버지, 너무 보고 싶어요.”

흐느낌이 샜다. 아무리 어른인척, 아무리 강한 척 하려해도, 억순은 아직 소녀였다. 마음도 몸도 여물지 않은 여린 소녀 말이다. 그런데, 그런 소녀에게 닥친 현실은 한없이 끔찍하기만 했다. 차마, 입에 담을 수도 없을 만큼.

금세 날이 짙었다. 어두워진 하늘위로, 묵직한 발소리가 울려퍼졌다. 억순은 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며, 눈물을 꾸역꾸역 참아냈다. 그늘진 시야위로, 커다란 인영이 금세 그녀를 덮쳤다.

피로 물든 꽃냄새가 풍겼다. 그건 꽃에서 나는 냄새가 아니었다. 누군가가 강제로 꽃을 꺾고 짓밟으며 만들어낸 지독한 냄새였다. 머지않아, 꽃이 떨어졌다. 꽃을 피우기 위해 진 봉우리가 채 활짝 피지도 못한 채, 억센 손길에 꺾여 바닥을 놔 뒹굴었다.

*

나카무라는 가네야마상 소대장과 함께 그의 방으로 향하고 있는 중이었다. 걸어가는 내내 어찌나 어색하고 불편하던지, 나카무라는 소대장의 뒷모습을 보며 잔뜩 숨을 참고 있을 정도였다. 도대체 무슨 일 때문이신 거지? 마음이 한없이 불안하기만 했다.

휙, 그의 손길에 의해 치워진 천막 뒤로, 널찍한 풍경이 보였다. 나카무라는 흠칫 놀라 뒤로 주춤 물러섰다. 족히 10명은 잘 수 있을만한 커다란 천막 안엔 없는 게 없을 정도였다. 가네야마상 소대장은 안으로 들어서며, 나카무라를 향해 앉을 것을 권했다.

“술을 마시나?”

“아직 잘 못 마십니다.”

그럼, 차를 준비해야겠군. 가네야마상 소대장이 태연하게 답하며 침대 옆에 놓인 탁자로 향했다. 나카무라는 천막 중간에 놓인 의자에 정자세를 하고 앉아있었다. 조심스레 주변을 둘러보자, 총부터 시작해서 칼, 무전기 등등. 방안을 가득 채운 물건들이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냥 이상하게도 기분이 불안했다. 별일 없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그랬다. 나카무라는 숨이 턱턱 막혀오는 것을 느꼈다. 어두워진 하늘 위로 절망의 빛이 스쳐지나갔다.

가네야마상 소대장은 몹시도 분주해보였다. 차를 준비하는 건지, 탁자 밑 작은 서랍에서 차로 보이는 흰 가루를 꺼내든 그가 찻잔 안에 가루를 넣고는 작은 티스푼으로 휘휘 저었다. 뜨거운 물에 스르르 녹은 가루가 금세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가네야마상 소대장은 씩, 하는 미소를 흘렸다. 재밌겠네, 정말. 뽀얗게 올라오는 연기사이로, 왠지 모를 약냄새가 풍기는 듯했다.

탁자는 정신이 없었다. 수많은 술병들이 놔 뒹굴었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박스들이 줄줄이 쌓여있었다. 나카무라는 눈을 가늘게 뜬 채, 탁자 위를 살폈다. 탁자위에 쌓여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알려고 해봐도, 좀처럼 무엇인지 파악할 수가 없었다. 하긴, 술병위에 적힌 단어들이 무슨 내용인지 읽을 수 없는 걸로 봐선 나카무라가 한 번도 본적 없는 비싼 술인 듯했다.

코끝으로 막사의 향기가 풍겼다. 그 냄새는 꼭 비를 한껏 머금은 나무 넝쿨 냄새 같기도, 습한 산속에서 나는 진흙 냄새 같기도 했다.

나카무라는 막사 구석에 위치한 족히 3사람 정도가 잘 수 있을 것 같은 커다란 침대를 바라보다가, 금세 휙 고개를 돌렸다. 소대장이 저 정도면, 대대장은 얼마나 큰 침대를 쓰는 걸까? 머릿속엔 바보 같은 생각만이 가득했다.

가네야마상 소대장은 나이에 비해 동안인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지금 서 있는 뒷모습만 봐도, 나이 때에 비하면 말도 안 될 정도로 훨씬 어려 보였으니까.

그는 길쭉한 얼굴과 날렵한 눈매, 햇볕에 그을린 듯한 구릿빛 피부를 가지고 있었는데, 씩 들어나는 새하얀 이 탓에 얼굴이 더 까매 보이는 듯했다. 마치, 열대기후에 사는 사람처럼.

나카무라는 주위를 휘휘 둘러보다가 시선을 바로 했다. 이것저것 구경하고 싶은 건 많았지만 차마 그러지 못했다. 그도 그럴만한 게 가네야마상 소대장이 갑자기 휙 뒤를 돌았기 때문이었다.

“편하게 하고 있어.”

“네!”

화들짝 놀란 나카무라가 어색한 자세를 바로 했다. 기껏 엉덩이를 움직여 자세를 바꿔보았지만, 딱히 방금 전 있던 자세와 크게 다를 것은 없는 듯했다. 하긴, 아무리 편하게 하고 있으려고 해도, 소대장과 같이 있는데 어떻게 마음이 편할 수 있겠는가? 나카무라는 괜히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사실, 가네야마상 소대장의 별명은 ‘콧구멍짝이’였다. 그건 양쪽 콧구멍이 말도 안 되게 작아서 붙여진 별명이기도 했는데, 살에 붙어있는 듯한 콧구멍은 꼭 바늘로 구멍을 콕콕 뚫어놓은 것처럼 한없이 안타깝기만 했다.

귓가로 희미한 숨소리가 들렸다. 쌀 한 톨 들어갈 만한 소대장의 콧구멍사이로 숨이 들어갔다 나오는 것이 어찌나 신기하던지, 나카무라는 넋을 놓고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을 정도였다.

차를 다 완성한건지, 갑작스레 휙 뒤를 돈 가네야마상 소대장이 그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왔다. 나카무라는 한껏 몸을 움츠린 채, 멍한 시선을 허공위로 던졌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지? 일어나서 차를 받아야하는 건가? 머릿속에 떠오르는 물음은 많았지만, 좀처럼 나오는 답은 없었다.

“자, 차나 한잔 해.”

한참을 망설이는 사이, 차를 건넨 그가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감사합니다! 꾸벅 인사를 건넨 나카무라가 뜨거운 차를 건네받았다. 오묘한 빛깔이 가득한 차를 바라보다가, 눈치껏 입에 대고 한 모금 머금었다. 그리곤 우웩. 꽤나 특이한 맛에 잔뜩 얼굴을 찌푸린 나카무라가 텁텁한 입안을 혀로 쓱 쓸어냈다. 원래 차가 이런 맛이었나?

“넌 네 동생을 닮았어.”

가네야마상 소대장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지금이 몇 번이더라? 그의 새까만 손가락은 나카무라를 바라보며 하나씩 사라지고 있는 중이었다. 입가가 씰룩 거렸다.

나카무라는 눈치를 보더니, 울며 겨자 먹기로 또 다시 찻잔을 들어 차를 벌컥 마셨다. 지금까지 3번이네? 가네야마상의 눈이 꼭 짐승처럼 번뜩거렸다.

나카무라가 차를 마시면 마실수록, 미칠 것 같은 쾌감이 온 몸을 휘감았다. 사실 가네야마상은 속으로 나카무라가 차를 몇 입 마시는지 세고 있는 중이었다. 그것도 아주 짜릿하게.

그는 스스로 이렇게나 재밌는 일은 또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긴, 여물지 않은 아이들을 가지고 노는 건 언제나 재밌었으니까.

지금까지 다섯 모금 마셨으니까, 반응은 한 30분 뒤에 오겠네? 새빨간 마음이 활활 타오르더니, 머지않아 재가 되어 후두둑 떨어지고 말았다.

“아 친동생분 말이십니까?”

나카무라는 태연하게 답했다. 워낙, 그에게 많이 들었던 말이라 이젠 놀랍지도 않았다. 사실 나카무라가 이 부대에 왔을 때부터 가네야마상 소대장은 늘 나카무라에게 자신의 친동생을 닮았다고 말했다. 뭐 물론, 그 동생분의 사진 한 장 본적이 없는 탓에 자신과 얼마나 닮았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소대장이 지겹도록 하는 말을 듣다보면 꽤나 닮은 듯했다.

“어. 3년 전 죽은 내 동생 말이야. 너랑 아주 똑같이 생겼었지.”

뭐라고 답해야할지 몰라 나카무라는 입만 벙긋거렸다. 감사하다고 해야 하는 건가? 아니면, 괜찮으신 거냐고 위로를 해야 하는 건가? 잠시 망설이는 사이, 소파 옆에 있던 술병을 들어 올린 그가 술병의 뚜껑을 따고는 입에 댄 채 술을 벌컥 벌컥 들이켰다. 꿀렁이는 목울대 위로 잔잔한 술이 흘러내렸다. 술의 반 이상이 사라질 때쯤, 가네야마상은 잔뜩 탁해진 눈빛으로 그에게 물었다.

“여자 맛 본적 있나?”

“예?”

술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나카무라는 순간 자신의 귀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렇지 않고서야, 한참의 정적 끝에 소대장이 꺼낸 말치고는 꽤나 황당했으니까. 화들짝 놀란 나카무라가 멍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여, 여자요?

“여자 안아본 적 있냐고.”

“아, 저, 저는 한 번도 없습니다.”

“그래?”

나카무라는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힘겹게 답했다. 소대장의 말을 이해하자마자, 후끈하게 물들어가기 시작한 붉은 것들은 어느새 온 몸을 뒤덮을 정도였다. 갑자기 왜 그런 질문을 던지시는 건지. 아직 나이가 어린 탓에 여자이야기는 나카무라에게 먼 세상의 이야기와 같았기에 황당함이 컸다.

“그럼 이걸 줘야겠네.”

가네야마상 소대장이 벌떡 몸을 일으키더니, 탁자 밑에 숨겨둔 상자에서 뭔가를 꺼내들었다. 번쩍이는 포장지에 쌓인 뭔가가 불쑥 그의 앞으로 던져졌다. 나카무라는 허둥지둥 그것을 받아들었다. 사탕만한 크기의 그것을 자세 들여다보자, 돌격 1번이라는 글자가 적혀있었다. 어? 이거.

“콘돔이야”

가네야마상이 태연하게 말했다. 예? 화들짝 놀란 나카무라가 어쩔 줄을 몰라 하며, 이리저리로 시선을 피했다. 콘, 콘돔이라니 도대체 무슨? 정말이지 어이가 없어서 미칠 지경이었다. 아니, 갑자기 부른 것도 모자라서, 여자 얘기를 꺼내고, 기껏 내민 게 콘돔이라니? 저절로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나카무라는 어린 나이이긴 했지만, 워낙 성인인 군인들과 같이 지내온 탓에 성에 대해서는 꽤나 지식이 트여있는 상태였다. 뭐, 그랬기에 소대장이 준 것을 보고 바로, 콘돔이라는 것을 알아채기도 한 것이었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에 관심이 많거나 이런 건 아니었다.

나카무라는 이상하게도 여자에게 관심이 없었다. 뭐, 굳이 따지자면 성에 대해 관심을 가질 정도로 나이가 많지 않았기에 그런 것이기도 했고, 만약 나중에 관계를 나누게 된다면 꼭 사랑하는 사람과 하고 싶었기에 있었기에 그랬기도 했다.

그런데 도대체 왜? 나카무라는 금세 가네야마상의 의도를 파악했지만, 애써 모른척하며 말끝을 흐렸다.

“저, 저는 아직 이런 걸 해본 적이 없어서….”

“하게 될걸?”

“예?”

가네야마상 소대장은 씩, 하는 미소를 흘리며 말했다. 그가 들고 있던 술병은 어느새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탁한 가네야마상의 눈과 딱 마주치자마자, 저절로 악! 하는 비명이 새어나왔다. 눈앞이 핑핑 돌았다. 나카무라는 몸이 점점 이상해지는 것을 느꼈다. 속이 울렁거렸고, 등 뒤론 뜨거운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뭔가 따가우면서도, 나쁘지 않은 오묘한 기분이 온 몸을 잠식시켰다.

“하게 될 거라고.”

참으려고 해봤지만 좀처럼 참을 수가 없었다. 가네야마상 소대장이 도대체 무슨 말을 지껄이고 있는지도 알지 못했다. 그 정도로 나카무라는 힘겨워했으며, 몸을 뒤덮은 뜨거움에 한치 앞을 보는 것도 어려워했다. 손끝이 벌벌 떨려왔다. 발끝부터 찌르르하게 울리던 통증은 점점 커지더니 어느새 그의 아랫도리를 덮어버렸다.

“그것도, 네 스스로 말이야.”

거친 숨이 샜다. 나카무라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콘돔을 손에 억세게 쥐었다. 빛을 담고 있던 눈빛은 어느새 탁해지고, 묵직한 어둠으로 가득 차버렸다.

절망으로 물든 하늘이 졌다. 밤이 되자, 수많은 군인들이 막사 앞으로 길게 늘어선 채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땀에 푹 절어버린 몸 위로 알 수 없는 피 냄새가 풍겼다. 군인들은 목을 죄인 군복의 단추를 툭툭 풀어헤치며, 막사 안으로 들어갈 준비를 마쳤다.

군인들은 몹시도 분주해보였다. 하긴, 위안부 수용소가 만들어질 날만을 그토록 기다려왔기에 마음이 조급할 만도 했다. 바지 지퍼를 쭉 내린 채, 흉흉한 물건을 꺼내고 있는 군인들이 수십에 달했다. 물론, 막사 안에 들어가서 옷을 벗어도 되었지만, 각자마다 1시간 밖에 주어지지 않은 탓에 모두들 미리 준비를 해놓은 듯 했다. 그래야, 최대한 오래 즐길 수 있을 테니까.

소문을 듣기로는 막사에 있는 여자들은 모두 조선 계집들이라고 했다. 어린 계집들로만 꽉꽉 채워 넣어 놓았다며 너스레를 떨던 야마모토 중대장의 얼굴이 눈에 훤했다. 아, 빨리 좀 해! 한없이 뒤로 밀려나는 차례에 다들 지루한 듯 짜증을 쏟아내기 바빴다.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동동거리는 발걸음 뒤로, 알 수 없는 스산한 바람이 불었다. 투박한 손 들 위에는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돌격 1번이라는 콘돔이 쥐어져 있는 상태였다.

밖은 꽤나 소란스러웠다. 다들 자신의 차례가 오길 고대하고 있는 듯, 하나같이 야한 농담을 던지며 시간을 때웠다. “아, 난 어린년이 걸려야할 텐데.” 삐쭉 선 눈썹을 가진 군인이 중얼거리자, 옆에 있던 군인이 픽 웃으며 “이 막사 안에 있는 년들은 다 어린년들이래, 아마 우리가 처음인 년도 있을 걸?” 하고 말을 덧붙였다.

“맛이 죽여주겠네.”

그 말을 들은 건지, 맨 앞에 있던 군인이 큰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푹푹 터지는 웃음들이 하나같이 가볍기 그지없었다. 군인들은 손에 쥐어져있는 콘돔을 더 힘껏 쥐며, 한껏 어깨를 폈다. 하루 종일 군복을 입고 시달렸더니, 한시라도 빨리 이 묵직한 피로를 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얼마 만에 맛보는 계집이냐, 번뜩 뜨인 눈으로 왠지 모를 살기가 스쳤다.

*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정말이지 이건 쉽게 믿겨지는 일이 아니었다. 억순은 손으로 천을 살짝 들춰 밖을 살피다가 몸을 크게 떨었다. 대충 보기에도, 밖에 서있는 군인들은 족히 몇 백명은 넘는 듯 했다. 설, 설마 아니겠지? 분명 아닐 거라고 생각했지만, 억순의 예상은 순식간에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그래, 그건 믿기 힘들겠지만, 믿어야만 하는 현실이었다. 하룻밤이란 시간동안, 여자들에게 할당된 군인들은 무려 40명이 넘었다. 그녀들은 모두 군인들을 상대해야했고, 말도 안 되는 행위를 강요받아야만 했다. 여자들이 생리를 하건, 임신을 하건 그딴 건 그들에겐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일본 군인들에게 여자는 그저, 욕정을 풀기 위한 도구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으니까.

끔찍했다. 하룻밤사이에 아래가 깨져서 피를 쏟다가 죽은 아이들이 수백 명이 넘었다. 하기 싫다며 거부를 하다가 고문을 당해 죽은 여자들도, 남자를 만족시키지 못했다고 무작정 두드려 맞다가 죽은 여자들도 셀 수 없이 많았다.

시체는 한없이 가벼웠다. 일본군들은 그 시체를 거둬다가 땅에다가 묻거나, 돼지 밥으로 주거나, 이름 모를 산속에 휙 가져다 버리는 것이 다였다.

그래, 슬프게도 그랬다. 아마, 지금 겪게 될 억순의 현실도 우리가 알고 있는 끔찍한 역사와 크게 다를 것이 없을 듯 했다. 남자들에게 강제로 몸을 내주고, 마음이 갈기갈기 찢기며, 소모품의 역할을 다하게 되면 차디찬 바닥에 버려질 것이 뻔했다. 죽음의 냄새가 서서히 억순을 덮치고 있었다.

눈앞이 아찔했다. 칸칸이 주어진 방 밖으로 절망 섞인 비명소리가 퍼져 나왔다. 군인들에게 각각 주어진 시간은 1시간 정도였는데, 그 시간을 지키는 군인들은 몇 안 되는 듯 했다. 하긴, 다들 하나같이 자신의 욕정을 풀기에 급급한 듯 했으니 시간 따위를 잴 여유는 없을 것일게 뻔했다.

피비린내가 스쳤다. 그건 여린 살갗이 찢어져서 나는 냄새 같기도, 군인들에게 강제로 범해진 아래에서 흐른 피 냄새 같기도, 그녀들이 흘리는 눈물에서 나는 냄새 같기도 했다. 억순은 입을 틀어막았다. 바로 옆 방에서 무슨 짓이 벌어지고 있는지 여태까지 당해왔던 일들을 통해 어렴풋이 알 수 있었지만, 억순은 그 끔찍한 현실을 좀처럼 믿고 싶지 않았다.

밖으로 귀를 기울였다. 지금 할 수 있는 거라곤 그것밖에 없었기에 딱히 어쩔 도리가 없었다.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이 막사를 뛰어나가,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힘겹게 이 막사를 벗어난다고 한들, 억순에게 주어질 것이라고는 수십 개의 총구뿐일게 뻔했다.

“조용히 안 해?”

“아악!”

뺨을 내리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뺨이 아니려나? 살갗을 마구 내리치는 듯한 끔찍한 소리가 계속해서 귓가를 울렸다. 억순은 침대 위에 앉아, 몸을 벌벌 떨며 끔찍한 시간을 세고 있었다. 무슨 일인건지는 몰라도 억순의 막사에는 아직 아무도 들어오지 않은 상태였다. 다행이라고 생각해야하는 건지, 불행이라고 생각해야하는 건지 하염없이 서글픈 눈물만 줄줄 흘렀다.

“14살 계집입니다.”

“나쁘지 않군.”

불행은 한순간에 다가왔다. 수군거리는 목소리가 들린지 얼마 되지 않아 천막이 휙 거둬졌다. 커다란 풍채를 가진 남자가 성큼성큼 천막 안으로 들어오더니, 곧장 윗옷을 벗었다. 억순은 화들짝 몸을 떨며, 한껏 몸을 움츠렸다. 우락부락한 몸과 부리부리한 눈 그리고, 쭉 찢어진 입까지 눈앞을 덮은 그림자가 한없이 무섭기 그지없었다. 남자는 씩 하는 미소를 흘렸다.

“딱 봐도 어린 계집이군.”

억순을 찾은 건, 수비대원 대대장이었다. 그는 막사에 있는 군인들 중에서 계급이 가장 높아보였는데, 억순은 막사 안에서 가장 나이가 어렸던 탓에 그의 재물로 받쳐진 듯했다. 위안부를 수용하는 이곳에선, 어리고, 성경험이 없는 여자들이 가장 최상품으로 쳐졌으니까.

“싫어! 싫다고!”

억순은 말을 듣지 않았다. 하긴, 이 와중에 고분고분 말을 듣는 여자들이 몇이나 있을까 싶었다. 한 장의 천으로 가려진 각각의 방에서 고통 섞인 울부짖음이 흘러나왔다. 바지 벨트를 풀어헤친 대대장이 뱀처럼 변한 그것을 들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억순의 몸을 힘껏 내리쳤다. 퍽, 퍽 살갗을 파고드는 고통에 눈앞엔 번쩍 불이 일었다.

“조용히 안 해?”

발악은 계속되었다. 온 몸이 피로 물들었음에도 억순은 계속해서 괴물의 손길을 거부했다. 그의 몸을 밀치고, 비명을 지르고, 발버둥을 쳤다.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밖으로 도망치고 싶었지만, 천막 앞을 막고 서있는 남자들 탓에 어쩔 수 도리가 없었다. 하긴, 이곳을 벗어난다고 한들 몇 분 안에 잡혀 다시 끌려 들어올게 뻔했다.

“조용히 하라고!”

단단한 가죽 벨트는 억순의 몸을 수없이 내려쳤다. 얼마나 많이 맞았는지, 바닥이 온통 피바다였다. 눈앞에 번쩍 불이 일었다. 비틀거리는 억순의 몸을 손쉽게 잡아챈 대대장이 그녀의 몸을 침대 위로 휙 엎어트렸다. 그리고는 순식간의 억순의 몸 위를 타고 올라, 그녀의 숨통을 조여왔다.

“말, 을, 들으라고, 했잖아!”

한 음절씩 끊어 말하는 목소리엔 억눌린 분노가 가득했다. 꽉 막힌 목 위로 억억, 하는 끔찍한 숨이 샜다. 대대장이 밖에 있는 누군가를 향해 빽 소리를 치자, 얼마안가 몇 명의 군인들이 안으로 들어오더니, 허겁지겁 무언가를 꺼내기 바빴다. 퉁퉁 부어버린 잇새로, 아악! 하는 비명이 샜다.

“하여간, 계집들은 한 번에 말을 듣는 법이 없다니까?”

억순은 힘껏 몸을 비틀며 비명을 질렀다. 피멍으로 물든 온 몸엔 지진이라도 난 듯, 한없이 벌벌 떨려오고 있었다. 으악! 소리를 질렀다. 군인들의 손에 들린 그건 쇠막대기였다. 그것도 뜨거운 불에 달궈진 쇠막대기 말이다.

“네가 언제까지 버티나 보자.”

옷은 어느새 다 벗겨져 바닥을 놔 뒹굴고 있었다. 팬티만 입고 있던 억순의 아래로 뜨거운 쇠막대기가 와 닿았다. 으아아악! 끔찍한 비명이 샜다. 살갗이 뜯어지며 일어난 새빨간 혈흔이 다리를 적셨다. 입가로 침인지 피인건지 모를 액체가 줄줄 흘렀다. 치익, 소리와 함께 고기가 익는 듯한 뿌연 연기가 일었다.

“으아악!”

또 다시 쇠막대기가 와 닿았다. 대대장은 억순의 몸을 더 힘껏 누르며, 킬킬대는 웃음을 흘렸다. 옆에서 쇠막대기를 억순의 몸에 가져다대던 한 군인이 차마 그 모습을 보지 못하고 휙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쇠막대기가 닿자마자 찢어지는 살갗과 온 얼굴에 튀는 핏방울, 그리고, 홀딱 벗겨지는 덜렁거리는 살갗까지 한없이 끔찍하기만 했다.

“으아악! 싫어!”

제정신이 아니었다. 고문을 하던 중간에 대대장이 뭐라 물은 것 같았지만, 그것에 대해 맞다고 대답했는지, 싫다고 대답했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끔찍한 고문은 계속 되었다. 그들은 억순에게 왜 말을 안 듣냐고 지지고, 앞으로 말을 들을 거냐고 지지고, 또 소리친다고 지지며 말도 안 되는 핑계로 살갗을 태우고 찢기를 반복했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가 없었다. 피로 물든 담요가 한없이 축축하기만 했다. 밖으로 나간 대대장이 손에 묻은 핏방울을 대충 닦아냈다. 억순은 절망이 섞인 신음을 내질렀다. 힐끔 내려다본 아래는 뜨거운 쇠막대기에 데여 번쩍번쩍했다. 팬티는 바닥을 놔 뒹군지 오래였고, 아래의 껍데기는 뜨거운 불에 의해 쭉 찢어져 너덜거렸다.

억순은 정신을 잃었다. 아니, 잃은 것 같았다. 덜렁이는 살갗 아래로, 또 다시 군인들 40명이 달라붙었다. 그건, 위안부 수용소에 끌려간 14살 소녀에게 일어난 단 하루만의 일이었다.

온 몸이 뜨거웠다. 가네야마상 소대장이 차에 타서 먹인 것이 흥분제라는 걸 깨닫게 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카무라는 술에 잔뜩 취한 사람처럼,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했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짜릿한 흥분감이 온 몸을 덮쳤고, 울컥 차오른 뜨거움이 자꾸만 그 것을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정신이 희미했다.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나카무라를 질질 끌어 옮긴 소대장이 위안부 수용소 앞에 그를 휙 던져버렸다.

억, 하는 비명이 샜다. 불뚝 솟아오른 뜨거움에 어쩔 줄 몰라 하며, 몸을 비트는 꼴이 꽤나 볼만 했다. 이거 생각보다 더 재미있잖아? 가네야마상 소대장은 꼭 몹시도 재밌는 광경을 목격한 사람처럼, 계속해서 킬킬대는 웃음을 흘렸다.

“으, 윽.”

“어때?”

코끝을 스치는 약냄새가 나쁘지 않았다. 술기운이 온 몸에 퍼지자, 세상이 한없이 아름다워 보이기만 했다. 소대장은 군화로 나카무라의 심장 부근을 꾹 짓밟으며, 그에게 물었다.

흥분제를 먹은 소감이 어때? 너도 다른 놈들과 다를 거 없지 않아? 연신 질문을 던져도, 사경을 헤매고 있는 나카무라에게선 좀처럼 돌아오는 답이 없었다. 사내새끼가 이렇게 약해서야 원. 쯧쯧 혀를 찬 소대장이 그의 얼굴을 힘껏 발로 걷어찼다.

“아악!”

“너는 내 동생을 닮았어.”

아주 재수 없게도 말이야.

“으, 으윽.”

발길질에 의해 휙 돌아간 고개가 좀처럼 바로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카무라는 코 부근을 손으로 꽉 쥐며 몹시도 괴로워했다. 피가 터진 건지, 목 뒤로 꿀꺽 넘어가는 침이 한없이 비리기만 했다.

이렇게 쉬우면 재미가 없잖아. 가네야마상 소대장은 발로 휙 나카무라의 얼굴을 정면으로 돌려놓으며, 킬킬대는 웃음을 흘렸다.

“넌 내 동생이랑 똑 닮았어.”

그래, 내 동생. 유일한 핏줄이었던 카즈마. 내 밑에 있는 소감이 어때?

“그래서, 난 네가 너무 싫어.”

눈앞에 번쩍 불이 일었다. 가네야마상 소대장은 정말이지 나카무라가 싫었다. 나카무라는 3년 전 죽은 자신의 동생을 소름끼칠 정도로 꼭 빼닮았기 때문이었다. 한없이 깨끗한 척, 정의로운 척 하던 재수 없던 그 동생을 말이다.

재수 없는 새끼. 자신보다 4살이나 어린 카즈마는 늘 어른인척을 하며 그의 심기를 툭툭 건드려놓았다. 어찌나, 콧대를 세우던지 결국 참지 못하고, 그 콧대를 발로 힘껏 짓밟아버릴 정도였으니까.

반반한 면상을 한껏 밟아줬을 때, 어찌나 통쾌했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었다. 자신 발밑에서 설설 기며, 살려달라고 우는 꼴이 꽤나 볼만했으니까.

가네야마상 소대장은 몇 번의 발길질에 기절해버린 카즈마를 산속으로 질질 끌고 가, 땅을 파고, 산채로 그를 묻어버렸다. 다신, 이 세상으로 살아오지 못하도록 말이다.

카즈마는 항상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하긴, 형인 가네야마상 보다 성적도 좋았고, 친구도 많았으며, 부모의 기대를 착실히 따라왔기에 어떻게 보자면 그럴 만도 했다.

카즈마가 사랑을 받을수록, 가네야마상은 점점 더 소외되어만 갔다. 어찌나, 부모가 카즈마를 편애 하던지, 그 보다 4살이나 어린 카즈마가 애정을 등에 엎고 형인 가네야마상을 무시할 정도였다.

“그 새끼를 죽였을 때, 어찌나 통쾌하던지 넌 모를 거야.”

픽, 하는 웃음이 샜다. 살인을 계획하고 실행하는데 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운동한번 배워본 적 없던 동생이었기에 그를 바닥으로 떨어트리는 건 참으로 쉬운 일이였다. 나풀거리는 연약한 몸이 발길질 한번에 구겨졌으니까. 가네야마상은 그때부터 무력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에 대해 깨닫게 되었다.

힘이란 건 바로 이런 거야. 누군가를 짓밟을 수 있는 강력한 권력인거지. 그는 눈을 번뜩였다. 그렇게나 죽이고 싶었던 사람이 자신의 발밑에서 무릎을 꿇고 살려달라고 비는 꼴이란, 가네야마상은 다시 똑같은 상황을 겪는다 해도 그 기분을 느끼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구름을 밟고 있는 듯, 나풀거리는 기분이 둥둥 하늘 위를 날았다. 가네야마상 소대장은 몇 명의 군인을 시켜 나카무라를 막사 안에 있는 위안부들에게 던져줄 것을 명령했다. 네가 얼마나 버티나 보자, 흥분제에 취한 나카무라는 아무리 싫다고 해도 본능을 억누르지 못할게 뻔했다.

“치워.”

나카무라 역시 매번 선비인 척하는 동생 카즈마와 똑같았다. 순간적으로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동생이 살아왔다고 착각할 정도였으니까.

니들이 아무리 고고한 척, 어른인척해도. 너네도 똑같은 쓰레기일 뿐이야. 이가 부득부득 갈렸다. 군인들에게 양팔을 붙잡힌 채 질질 끌려가는 나카무라의 뒤로 뿌연 먼지바람이 일었다.

*

지옥 같은 시간이 흘렀다. 몇 번이나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났는지 알지 못할 정도였다. 고문으로 인해 망가진 아래가 한없이 고통스럽기만 했다.

억순이 꿈과 현실 속에서 헤매고 있는 사이, 수많은 군인들이 그녀의 다리 사이에 자리를 잡으며 뜨거운 욕망을 쏟아냈다. 어찌나 다리가 벌어져있었는지, 가만히 누워있어도 허벅지가 벌벌 떨릴 정도였다.

아래에선 아무런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힐끔 내려다본 아래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엉망이 되어있었다. 고문으로 인해 휙 벗겨진 살덩이가 금방이라도 떨어질듯 아슬아슬하게 덜렁거렸다.

억순은 그 살갗을 떼어내려다가, 금세 고개를 젓고 침대에 몸을 뉘었다. 연신 귓가를 울리는 여자들의 고통 섞인 비명소리가 끔찍하기만 했다.

몇 시간이나 흘렀는지 알지 못했다. 그저 한없이 천장이 흔들렸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으며, 비릿한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중간 중간에 일본 군인들에게 힘껏 두드려 맞은 것 같기도 했지만, 워낙 아래의 고통이 심했기에 다른 곳은 아프다는 생각이 잘 들지 않을 정도였다.

억순은 끙끙대는 신음을 흘리며, 땀을 한바가지 쏟아냈다. 날카로운 칼에 의해 도려내진 듯 화상을 입은 아래가 한없이 고통스럽기만 했다.

“들어가,:

밖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머지않아 휙 천막 문이 걷어졌다. 억순은 희미한 시선으로 질질 끌려 들어오는 사내를 바라보다가 금세 휙 고개를 돌렸다.

어차피, 이곳에 들어오는 남자는 다 똑같았기에 굳이 얼굴을 볼 필요도 없었다. 또 다시 일본 군인에개 강제로 범해지겠지. 억순은 이를 악물며 억지로 숨을 참았다. 제발 이 시간이 끝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네 차례다.”

묵직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군인들에 의해 바닥으로 던져진 나카무라가 끙끙대는 신음을 흘렸다. 약해 취해버린 것과 더불어 가네야마상 소대장에게 힘껏 두드려 맞기까지 했더니, 좀처럼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땅바닥을 기던 나카무라가 퍼뜩 고개를 들어 침대위에 누워있는 여자를 살폈다. 옷이 다 벗겨진 채로, 수없이 범해진 그녀는 힘을 잃은 채 가만히 누워있었다.

“으윽.”

온 몸이 뜨거웠다. 당장이라도 이 뜨거움을 빨리 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나카무라는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허겁지겁 침대위로 올라갔다. 억순의 양팔을 누르고, 바지 지퍼를 내리며, 잔뜩 발기가 된 흉물스런 물건을 꺼내들었다. 억순은 반항하지 않았다. 그저 눈을 꼭 감은 채 이시간이 끝나기를 바랄 뿐이었다.

상처가 가득한 몸이 시야 안으로 들어왔다. 얼마나 끔찍한 폭행을 당한건지, 몸 곳곳에 상처가 없는 곳이 없었다. 훤히 드러난 아래의 살갗이 무언가에 의해 다 타들어가 까맣게 변해있었다. 이, 이게 도대체…. 다리사이로 자리를 잡던 나카무라가 뒤로 주춤 물러섰다.

순간적으로 정신이 깨어났다. 나카무라는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다가, 급히 몸을 일으켰다. 내가 지금 뭘 하려던 거지? 좀처럼 자신의 행동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아무리 약해 취해있었다고 해도, 이건 아니었다. 커다란 망치로 뒤통수를 한대 얻어맞은 것처럼, 온 몸이 얼얼하기만 했다.

열기는 금세 식어버렸다. 나카무라는 침대에서 내려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무런 반항을 하지 않는 여자의 얼굴이 한없이 어리기만 해서 울컥 터져 나오는 눈물을 좀처럼 참을 수가 없었다. 그냥 이상했다. 위안부 수용소가 생겼다는 사실도, 이곳이 뭐하는 곳인지도 뻔히 다 알고 있었음에도, 이 모든 것을 처음 본 것처럼 눈 앞에 자리한 광경이 한없이 생소하기만 했다.

죄책감인지 무엇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마음이 내키지 않는 건 사실이었다. 조선 여자들이건, 일본 여자들이건, 이렇게 강제로 범하는 건 정말이지 싫었다. 군인들을 말릴 힘도, 그녀들을 이곳에서 도망치게 할 수도 없다는 거 잘 아는데, 그냥 이 지옥 같은 곳에서 그녀를 조금이나마 쉬게 해주고 싶었다.

“미, 미안해.”

툭툭 떨어진 눈물이 바닥을 적셨다. 휙 고개를 돌린 억순이 멍한 눈빛으로 그를 살폈다. 왜, 왜? 억순은 입을 달싹였다. 자신의 앞에서 엉엉 울고 있는 남자가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은 탓이었다. 네가 왜 울어? 너네가 이딴 짓을 해놓고선 네가 왜 우냐고? 속에선 뜨거운 분노가 차올랐다. 정말이지 할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벌떡 일어나 남자의 숨통을 잘라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미안해.”

그런데, 이상했다. 분명 그래야하는 게 맞는 건데, 마음이 한없이 아프기만 했다. 억순은 바보처럼 눈물을 흘렸다. 입에선 꾸역꾸역 참고 참아왔던 흐느낌이 새어나왔다. 밑에 깔아놓은 요가 다 젖어 가는지도 모른 채, 억순은 짙고 슬픈 눈물을 계속해서 떨구었다. 커다랗게 일렁이는 바다가 점차 그 둘을 삼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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