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그녀

by 하치 posted Nov 07,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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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그녀


김종옥


< Prologue >

  2014년 12월 12일

  나는 오늘로써 이 세계에서의 삶에서 사라지려 한다. 과연 남아 있는 사람들은 나를 기억할까? 아니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기억한다 하여도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다면 그것은 사라질 것이다. 난 그런 것을 알고 있기에 이렇게 얘기할 것이다.

“난 당신들을 사랑하지 않았어. 왜냐하면 당신들은 나에게 항상 거짓만을 얘기했으니까...”

내가 그녀를 어떻게 보낼 수 있을까... 그녀는 내 전부였고 난 그녀의 모든 것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삶을 살았다. 그런 그녀가 날 떠난 것은 나에게 죽으라는 말과 같은 것이다. 그런 그녀를 떠나보낼 수 없기에 난 그녀를 잡으러 가려 한다. 이런 나를 사람들은 미쳤다고 하겠지만 난 상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건 내가 그녀를 너무도 사랑하기에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난 항상 생각한다, 이런 나를 그녀는 과연 사랑했을까. 난 사랑했다고 믿을 것이다. 그녀가 나에게 해준 것은 사랑 그 이상의 것이니까.

내가 이 글을 다시 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만약 다시 보게 된다면 난 어떤 모습일까... 지금의 나를 기억하기 위해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나를 기억하기 위해...



< 그녀를 만나기 50년 전 >

  그녀를 만나기 전 그녀의 삶이 궁금해 과거를 보았다. 그녀는 너무도 앳된 모습이었고 역시나 검은 피부와 튼실한 몸은 가지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보며 미래의 모습을 상상하자 눈이 시큼해졌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 너무도 해맑다. 그 해맑은 웃음에 내가 따뜻해지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그런 그녀를 보고 있자니 안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동생과 항상 일 때문에 늦게 들어오시는 어머니, 두 집 살림을 하시는 아버지 때문에 힘이 들지만 항상 동생들을 챙기는 그녀, 그런 그녀가 너무 대견하고 멋있다, 그런 그녀를 내가 사랑했다는 것이 자랑스러울 정도로. 조금이 시간이 더 흘러 그녀는 결혼을 했다. 그녀와 결혼한 남자는 백옥같이 하얀 피부의 일을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사람의 손을 가졌다. ‘그녀는 그와 살아 행복했을까? 그런 남자와 살면 그녀도 조금은 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한 것도 잠시, 그녀는 여전히 일을 하고 있다. 차디찬 냇가에서 식구들의 빨래를 하고 끼니때에 맞춰 밥을 차리고 있다. 그런 그녀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아프다. 얼마나 추울까, 얼마나 힘이 들까. 그런 그녀를 가만히 지켜보는 그도 밉다. 왜 가만히 보고만 있는가?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저런 가부장적인 남자와 살아야 하는 그녀가 너무 가엽다. 하지만 난 그녀를 도울 수 없다. 그녀를 도우면 안되니까... 그래야만 하니까...



< 그녀를 만나기 30년 전 >

  그와 그녀의 사이에서 4명의 아이가 태어났다. 딸 둘에 아들 둘. 그 아이들이 자라 어떤 착한 짓을 하고 나쁜 짓을 하더라도 그것은 그와 그녀의 몫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제 20살이라는 나이에 너무 힘든 짐이다. 그 짐을 덜어줄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없을까? 이제는 그가 말썽이다. 그녀는 그의 신내림을 거부하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고 그 돈을 용하다는 무당들에게 가져다주어야 한다. 그러기에 그녀의 손에는 항상 고무장갑이 있고 아이들을 돌볼 시간이 없다. 그녀를 기다리며 하루를 보내는 아이들이 불쌍하고 그런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미안한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야 하는 그녀가 불쌍하다. 정말 내가 도와주면 안돼는 것일까? 난 그렇게 무능력한 사람인 것일까? 하루 종일 힘들게 일하는 그녀를 보며 내 가슴은 찢어지고 있다. 그런 그녀는 내 마음을 알 수 있을까? 젊은 나이에 너무 힘든 일이 많이 일어나는 그녀를 보고만 있어야 하는 내 마음... 과연 신은 그 심정을 알고 있을까? 만약 알고 있다면 이제 그만 그녀를 놓아주어야 하지 않을까? 난 또 그렇게 믿지도 않는 세상의 모든 신에게 빈다, “제발... 제발... 그녀를 놓아주세요... 이제 그만 그녀를 힘들게 하세요... 그녀가 힘들면 저도... 저도 힘이 듭니다...”



< 그녀를 만난 5년 후 >

  그녀는 날 처음 본 날에도 너무나 해맑게 웃어 주었다, 마치 어릴 적 그 해맑은 웃음을 보는 것 같다. 그런 그녀를 이렇게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는 게 너무 좋다.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의 나는 너무도 무능력했다. 그래서 그런 내가 싫었다. 하지만 이제 난 그녀를 어떻게든 지켜줄 수 있다, 그러기 위해 50년을 기다려 그녀를 만났으니까. 신들이 내 기도를 들어준 것일까? 이젠 그녀의 곁은 행복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그녀가 웃는 일도 많이 생기고 있다. 그녀의 웃음을 보니 내가 힘이 나고 기운이 솟는다. 이제 그만 그녀에게 행복한 일들만이 일어나기를 빌고 있다. 하지만 이런 행복도 잠시 그녀의 막내아들이 사고를 치고 있다. 그녀는 겉으로 괜찮다 하고 있지만 속이 남아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녀를 괴롭히는 그녀의 막내아들이 싫고 밉다. 이제 드디어 그녀가 행복해 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게 뭔가? 왜 신은 날 배신하는 것인가? 정말 신이 있다면 난 그를 찾아가 항의 할 것이다. 왜 자꾸 그녀를 못 괴롭혀서 안달이냐고. 더 이상 그녀를 괴롭히지 말라고. 차라리 날 괴롭히라고.



<그녀를 만난 15년 후 >

  내가 그녀를 만난지도 15년. 많은 일들이 있었고 이제 그녀는 해맑게는 아니지만 행복하게 웃는다. 해맑게 웃지 않아도 편안해 보이는 그녀의 모습에 난 평온해진다. 그런 내 모습을 보는 그녀 또한 평온하다. 이제 그녀를 괴롭히는 것들은 사라졌다. 이번에야 말로 신이 내 부탁을 들어주신 것이다. 그녀가 해주는 음식을 먹고 옷을 입고 밖에 나가면 세상의 모든 햇살이 나에게 오는 것 같아 행복함마저 든다. 이것이 그녀가 나에게 준 보답인걸까? 그 오랜 세월을 기다린 나에게 주는 선물인걸까? 그런게 아니라도 좋다, 그저 그녀가 행복할 수 있다면 난 상관없다. 이렇게 웃는 모습으로 앞으로도 계속 내 옆에 있어줬으면 좋겠다. 나를, 그리고 내 주위를 환하게 밝혀줄 그녀가 나에겐 촛불과도 같은 사람이다.



< 그녀를 떠나보내기 하루 전 >

  이제 그녀를 떠나보내야 한다... 그녀가 암이라는 힘든 것들과 싸움을 한지도 언 2년이 흘렀다. 조금 나아지는가 싶으면 다시 아파지고, 그런 일상이 반복됐다. 밖에 나가지 못하고, 집 안에만 있게 되었다. 하루에도 열 두 번씩 다리가 저리고 일어나지 못해 기어서 화장실에 가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런 그녀를 어느 순간부터 난 모르는 척 해버렸다. 매일 이러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그걸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 나에게 물 한잔만 떠다 달라는 그녀의 말을 난 듣지 못했다는 거짓말로 포장해 버렸다. 그 때 그녀의 말을 들어줄껄... 항상 후회하고 생각한다. 다리와 배에 복수가 차오르고 그것 때문에 숨을 쉬지 못해 앰블런스에 실려 가기를 반복한다. 난 왜 지금까지 이렇게 나약하고 한심한 것일까... 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것일까... 이런 내가 점점 싫어진다.



< Epilogue >

  2014년 12월 31일 20번째 여행을 앞두고...

  할머니, 거기는 좀 편한가? 난 할머니를 그리워하고 있어, 그래서 할머니가 살았던 시간으로 되돌리고 있고. 이런 내가 싫다고 하지마! 왜냐면 난 할머니가 보고 싶어... 보고 싶은데 볼 수가 없으니까 과거에 가서 볼꺼야! 이렇게 할머니를 만난지도 19번째인데 아직도 할머니가 그립고 또 그리워. 항상 할머니를 생각하면 어렸을 때의 그 해맑은 웃음이 떠올라, 그리고 할머니가 해준 음식들이 떠올라. 그 음식들을 배우러 다녔던 모습들이 떠오르고 내가 태어났을 때 날 보고 웃어줬던 모습이 떠올라... 날 사랑해줬던 모습들이 떠오르고 사춘기라는 시점에서의 못난 날 보면서도 참아줬던 모습들이 떠올라... 물 떠다 주는 게 뭐가 힘들다고 그걸 안 해준 걸까? 아무리 과거로 가 봐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더라... 할머니가 숨을 쉬지 않는 다는 것을 알았을 땐 아무 생각도 들지 않더라... 그냥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을 뿐이었어... 누군가 그랬어, '사람이 숨을 쉬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숨을 쉬지 않는 것은 너무 잘 보여서 무서워,'라고. 내가 그걸 느낀거였어. 무서웠고 두려웠어. 그리고 아직은 그것을 이겨낼 용기가 나지 않아서 또 과거에 가려고 해. 그 곳에 가면 뭔가 다른 것이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가지고 말이야... 그러니까 우리 또 만나자! 사랑해,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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